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6:35:20

자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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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주의]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OO특별/광역시'라고 표기하는 것과 달리 'OO시'라고 표기한다.
[가] 북한 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상으로는 '직할시'만 명시적으로 존재하며, 평양시, 남포시, 라선시, 개성시를 모두 동급의 직할시(혹은 특별시)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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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도
慈江道 | Jagang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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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40001><colcolor=#fff> 도소재지 강계시
하위 행정구역 3 16
면적 17,248㎢
인구 약 1,352,180명[1]
인구 밀도 78.39명/㎢
당 위원회
책임비서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박성철
시/도
인민위원장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김영춘
최고인민회의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34석[2]
지역번호 067
ISO 3166-2 KP-04

1. 개요2. 역사
2.1. 도 신설 의도 추측
3. 역대 책임비서/인민위원장
3.1. 책임비서 3.2. 인민위원장
4. 자연5. 인문환경
5.1. 경제5.2. 군사적 가치5.3. 폐쇄성5.4. 자강도 정신
6. 출신 인물7.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clearfix]

1. 개요

북한. 자강도의 도소재지는 강계시이며 2008년 기준 인구는 135만 2180명이다.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행정구역 체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교과서 등의 국가발행물에서는 량강도와 마찬가지로 표시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 "북한의 행정 구역" 등 이름으로 별도로 다루는 경우 지도상에 량강도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자강도의 이름은 고려, 조선 때처럼 대표도시인 자성강계에서 한 글자씩 이름을 따왔다. 지금은 희천시, 만포시가 자성보다 인구가 많지만 도 신설 당시에는 자성이 강계에 이어 도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았다.

경기도를 제외한 7도는 전부 해당 도내에 있는 대표 도시 두 곳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전라도전주나주, 충청도충주청주, 평안도평양안주, 함경도함흥경성, 강원도강릉원주, 황해도황주해주, 경상도경주상주의 앞 글자를 땄다. 그리고 이 대표 도시는 이름이 붙은 조선시대 기준[3]이기 때문에 현대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시인 경우도 많다.[4]

2. 역사

1949년 1월: 북한은 평안북도 강계군, 희천군, 초산군, 위원군, 자성군, 후창군 등 평안북도 동부 6개 군과 함경남도 장진군 동문면을 분리하여 자강도를 신설, 도소재지를 강계군 강계면에 두었다. 이때 자강도를 신설하면서 강계군 만포면, 고산면, 시중면, 외귀면, 이서면의 강계군 북부 5면[5]을 분리해 만포군을 신설하였고, 강계군 전천면, 성간면, 간북면, 화경면, 입관면, 용림면 등 강계군 남부 6개 면을 분리해 전천군을 신설해 강계군을 셋으로 나눴다. 또한 자강도로 분리한 장진군 동문면을 강계군에 편입하였다(총 8군).

1949년 12월: 도소재지인 강계군 강계면이 강계시로 승격하였고, 잔여 지역은 장강군으로 개칭하였다(총 1시 8군).

1952년 12월: 군면리 대폐합으로 동신군, 송원군, 고풍군, 룡림군, 성간군, 시중군, 중강군, 화평군이 신설되었으며 장강군 동문면은 함경남도 랑림군으로 넘어갔다(총 1시 16군)

1954년 10월: 량강도가 신설되면서 후창군이 량강도로 이관되었으며, 평안북도 우시군과 함경남도 랑림군을 편입하였다(총 1시 17군).

1967년 10월: 만포군이 만포시로 승격하였다(총 2시 16군).

1967년 11월: 희천군이 희천시로 승격하였다(총 3시 15군).

2023년 2월: 평안북도 향산군을 편입하였다(총 3시 16군).

2.1. 도 신설 의도 추측

량강도/자강도 신설과 황해도·북도 분도는 분단 당시 북한이 6도, 남한이 9도로 총선거 때 의석이 부족할 것을 우려했다는 설이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의 경우 삼팔선 이북의 경기도 지역을 황해도강원도로 분할 편입해서 6도이고 남한의 경우 삼팔선 이남 황해도 지역을 경기도로 편입시켰으나 동시에 제주도전라남도에서 분리 신설해서 현재도 여전히 9도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북한에서 치러진 선거는 남한에서와는 달리 공산주의식 찬반선거였으므로, 북한에서 남한과 같은 방식의 총선거를 할 의향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 남한과 통일임시정부 같은 조직이 만들어졌을 때 도의 갯수가 같아야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 외에, 평북도 도당위원회를 포함한 평북도의 행정거점은 전부 도 서쪽 끝인 신의주에 위치해 있어서 현 자강도 지역까지 평북에서 관할하려면 행정 과부하가 심해지는 현실적인 이유로 분리했다는 설도 있다.

3. 역대 책임비서/인민위원장

3.1. 책임비서

3.2. 인민위원장

  • 박창식(1955 ~ ?)
  • 리봉길(1967~?)
  • 리봉길(1973~?)
  • 한영봉
  • 박승일(1983~1984)
  • 김종호(1984~?)
  • 리봉길(~1992)
  • 연형묵(1992~1998)
  • 김종호(1998~2001)
  • 최기룡(2001~2011)
  • 김덕훈(2011~2014)
  • 리형근(2014~현임)

4. 자연

압록강을 끼고 있으며, 면적의 90%가 산지인데다 대륙성 냉대기후 지역답게 겨울에 몹시 춥고,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하다. 한국에서 추운 곳으로 알려진 중강진중강군(광복 당시에는 자성군의 일부)에 있으며, 6.25 전쟁 당시 국군이 유담리를 넘어 진격하려고 했던 동문거리가 바로 낭림군(광복 당시는 함경남도 장진군의 일부)이다. 이에 대해서는 장진호 전투를 참고.

5. 인문환경

주요 도시는 강계시, 만포시, 희천시 등. 북한에서는 굉장히 춥고 척박한 곳으로 여겨지지만, 한편으론 물 좋고 미인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도의 최대 도시인 강계시가 수려한 경관, 좋은 물, 미인,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계시6.25 전쟁 당시 북한이 한창 밀릴 때 임시수도로 기능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교통편도 좋은 곳인데, 혜산만포청년선을 청년돌격대를 동원해서 뚫어버렸다던가(만포선은 이미 일제강점기에 진즉 뚫렸다), 평양 - 희천간 고속도로가 뚫렸다. 덧붙이자면 북한은 평양신의주간 고속도로도 아직 개통되어 있지 않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라는 여행사에서 만포시 1일 관광 상품을 2019년 5월 내놓은 것이 첫 자강도 관광 상품이었으나, 다른 도는 이미 관광 상품이 존재하였다. # 이는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잠정적으로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신은미가 평안북도를 거쳐 육로로 희천시를 방문한 사진을 올린 적은 있다. 신은미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정치 성향 논란이 좀 있으나 아예 외부인이 희천의 사진을 올린 경우는 이것 뿐이다.

김일성 관련 유적들이 많은 곳이다.

5.1. 경제

2020년 3월 자강도 시골의 모습[6]
파일:강계 2022년.png
2022년 강계시의 야경

북한 내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7][8] 량강도 같이 더 척박한 지역이 존재하지만 대외 교역이 다른 곳 이상으로 제한되어서 가난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보다 옥수수을 많이 재배한다고 하며, 벼는 주로 낮은 평야지대에서 재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감자, , 보리 등도 재배한다고 한다.

평지는 없지만 곡식 외에 과일을 많이 재배한다. 그래서 북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수원이 많다고 한다. 주로 재배하는 과일은 포도이다. 또한 자강도에서 재배하는 배와 포도로는 과일주리큐르를 제조한다. 자강도 강계시에 있는 강계포도술공장이 북한의 유명한 과일주 생산 공장이다. 인풍술과 백로술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다만 현지 주민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분야는 군수 분야로 추정된다. 위와 같은 주장은 북한의 문헌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군사기밀을 북한에서 공개적인 자료에 쓸 수 없기에 쓰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무역일꾼 등을 조사한 곽인옥 교수에 따르면 물류 유통도 만포라는 국경도시를 통해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지고 다른 북한의 지역과는 유통이 잘 안된다고 추정하였다. #

5.2. 군사적 가치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진다. 조선 세종 시대에 개척한 4군 6진의 바로 4군이 자강도에 존재한다. 또한, 옆의 량강도와 함께 중국 국경을 놓고 압록강, 두만강이 흐르며, 산맥, 고원 지형이 대부분인 험준한 지역이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수비하기 좋은 지역이다.[9]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의 임시 수도가 바로 자강도의 강계시였기 때문에 자강도 전체가 유사시 후방 역할로 군수 공업이 크게 발달해 있다. 김씨 일가 입장에서는 나중에 전쟁이 터졌을 때 평양까지 밀리고 나면 최후의 항전을 할 곳이 바로 자강도인 셈. 이로 인해 대를 이어 군수공업에 종사하라는 통제가 극심하여 시장경제의 발달이 이웃한 도에 비해 미흡하다고 알려져 있다. 환경오염이 심하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군수공업 종사자가 도민의 과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2020년 북한의 도 중 식량 사정이 가장 안 좋은 곳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전천군에 병기 공장인 전천 2.8 기계공장이 있다. 화성-15가 발사된 곳. 또한 이곳 용림군(룡림군)에는 북한의 지하 미사일기지가 있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위치 중 하나다. 2017년 7월 8일 23시 45분 경에 이곳에서 규모 2.8 진동이 잡혔다. 자연 지진일 수도 있지만 미사일 폭발 사고일 수도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 2형도 자강도 일대에서 연달아 발사되었다. 산악지형이라 터널 뚫기가 용이하고, 남한과의 거리도 상대적으로 멀어 여러모로 유리하다. 중국과 인접해 있어 미군의 폭격도 부담스러운 상황. 까딱하면 중국이기 때문에 공군 폭격이든 탄도미사일 발사든, 중국을 자극하기 쉽다.

거기에 북한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12군단을 창설한 곳이기도 하다.

5.3. 폐쇄성

폐쇄적인 국가로 유명한 북한 내에서도 유별나게 폐쇄적인 곳이라고 한다. 가히 북한 안의 북한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 내에서도 가장 이동이 제한된 곳이라고 꼽히기도 한다. 출입 제한 구역이 곳곳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군수시설, 군수공업 종사자가 많은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로 타지에서는 이곳의 사투리를 심하다고 여긴다. 이 지역의 사투리에 대한 언급을 참고하면 이동 제한과 폐쇄성으로 인해 다른 평안도 지역에 비해 본연의 평안도 방언이 변화를 적게 겪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자강도는 거주하는 지역 밖에 있는 다른 으로 이동하려고 해도 려행증을 따로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이다.[10]

또 자강도는 북한 체제의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우가 함경북도 같은 곳에 비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 대해서 다른 북한 지역 주민들도 의아하게 보는 나머지 자갈도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한다.[11] '혁명의 수도'라 불리는 평양 시민들조차 자강도 주민들의 비정상적인 충성심에 경악할 정도라고. 물론 하술할 것처럼 북한에서도 이런 자강도 사람들의 충성심을 프로파간다용으로 잘 써먹고 있다.

자강도 주민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몇 개 들자면, '비법행위 척결의 달'로 선포된 2024년 4월에 중국 휴대전화를 통해 해외와 연결해주고 돈을 받은 브로커 30여 명이 보위성 측에 체포되었는데 자강도 주민들은 이에 대해 국가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대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덤으로 이번 브로커 관련으로 일반 주민보다는 단속 주체인 보위원의 가족 친척이나 그와 연관된 지인들이 많이 잡히는 것에 대해 "보위부가 더 많은 나쁜 짓을 하면서 무슨 할 말이 있냐"며 보위부를 비야냥거렸다. # 2020년에도 환경오염으로 기형아를 낳던 자강도 주민들이 원수님 은혜를 운운하기도 했다. #

자강도 출신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군수 기밀의 외부 유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특별 통행증'이 필요하여 자강도 주민이 거주지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보름 정도가 필요하고, 평양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강도에 들어가는 게 더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또 자강도에 있는 공장 중 공식적으로는 성냥, 착암기 공장으로 알려진 곳들도 실제로는 죄다 군수 공장이며, 북한의 군수물자 90%가 자강도에서 생산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자는 본인은 평양 사람과 외국인, 나선 사람도 만나봤는데 자강도 출신은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박충권의 증언으로는 김정은국방종합대학에 진학한 지방 출신 학생들은 보통 졸업 후 평양과 그 인근에 배치받으려 하지만 자강도 출신들은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나머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할 정도다. #

이웃한 량강도 탈북민도 이 지역에 대해 군수 공업 발달 등 단편적인 정보만 아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북한의 지방 도시는 유튜브고려투어의 영상이나 외국인이 촬영한 영상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해주, 원산, 사리원 등 한 번 정도는 보여준다. 그런 지역과 달리 자강도는 묘향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개방이 되어있지 않다.

탈북이라는 측면에서는 옆쪽의 량강도에 밀리고, 중국과의 무역이라는 점에서는 역시 옆집인 평안북도에 밀린다.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지역. 국내 탈북민 중에서 자강도 출신이 인구가 더 적은 량강도의 20분의 1이 채 안될 정도이다. 자강도 출신은 2020년 3월 총 238명으로 집계된다.

즉, 국경과 인접한 곳을 제외하면 북한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갈렙선교회유튜브 동영상에 '강계시', '만포시'와 같은 지명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촬영하는 듯하다.

정유나에 의하면 자강도가 외국은 물론 북한 내의 다른 지역과도 교류가 적을 정도로 외부와 철저히 고립돼 있다는 지리적 특성도 있고 군수공장이 많기 때문에 배급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뤄져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보안과 관련된 조치가 심해 일반적인 북한의 지역에 비하면 외부 문물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여 주민들이 깨기 어렵게 하는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지역 출신 탈북민이 적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압록강 상류에 위치에 있기에 강폭이 넓어 도강해서 탈북하기가 두만강보다 훨씬 어렵고, 군수공장마다 초소 경비가 삼엄해서 더욱 탈북하기 어렵다고 한다. 출처

그런데 한편으론 국경지대의 만포시, 자성군, 중강군, 화평군 일대는 밀수를 중국과 해본 적도 있는 것으로 보이고##, 도 소재지 강계시를 찍은 영상에서는 시내 거리에서 연인끼리 손을 잡는 외부 풍습을 따라하는 영상도 발견된 것으로 보면 이 지역에는 좀 깬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자강도 사람들조차 북한 당국에 불만을 품는다는 증언이 나왔다. 2023년 7월 21일 데일리NK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자강도 사람들은 강계시 밖에 종합약국을 설치한다는 북한의 조치에 대해 "병원이 있어도 온전히 우리나라 이름으로 된 약 하나도 제대로 못 사 먹는데(무상치료를 해준다는 병원에 가도 약이 없어 중국에서 밀수입해서 장마당에서 파는 약을 사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약국을 건설한들 무슨 소용이겠냐"라고 불만을 품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 자강도 사람들조차 북한의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불만을 품고 있을 정도니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북한 체제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2024년 4월 11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태양절을 앞두고 북한 당국이 광명성절까지는 잘만 주던 소학생에 대한 당과류 선물이 '설탕 수입이 늦어진다'며 갑자기 끊기자 자강도에서 어린 자식을 둔 가정들은 김정은을 '선물 도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코로나 시기에도 소학생에 대한 당과류 선물은 빠짐없이 줬는데 코로나도 끝난 시국에 갑자기 선물을 중단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자강도에서도 김정은을 '도둑'에 비유할 정도가 되었으니 이제 북한 민초들 사이에서 김정은에 대한 좋은 민심은 사실상 전멸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 사실 2015년에도 김정은이 현지지도 과정에서 쪽잠을 자고 줴기밥(주먹밥)[12][13]을 먹는다는 선전에 자강도 주민들도 "산삼과 녹용보다 더 좋은 보약은 '쪽잠과 줴기밥'이기 때문에 이젠 병원도 약도 필요 없다" "'쪽잠과 줴기밥'의 깊이와 양에 따라 장군님처럼 가분수가 될 수 있다"고 조롱한 바가 있다. #[14]

또 외부와의 휴대전화 연락도 타 지역보다 엄하게 처리하는지 무기 로동교화형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

5.4. 자강도 정신

자강도는 고난의 행군 시기 나에게 정든 고장입니다.
김정일의 교시

자강도는 고난의 행군 시기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도 해서 북한 정권이 자강도 정신 내지는 강계 혁명정신이라고 치켜세우며 다른 지역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내세우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자강도는 10여개의 중소형 수력발전소들을 건설해 공장들의 전력난을 해결했고, 당의 도움 없이도 각종 시설물들을 자체적으로 건설했다. 또한, 이탄을 응용한 각종 대체식품들을 주민들에게 공급해 기아에 대처했다. 북방민족들이 이탄을 섞어만든 음식을 먹었던 것에서 착안해서 보급했던 것이다. 물론 전력난 때문에 가공이 원활히 진행되지는 않았고, 항문이 막혀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자강도의 이러한 대처방식은 김정일도 감동시켰다고 한다.

이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 2001년에 개봉한 북한 영화 자강도 사람들이다.

6. 출신 인물

외교관 출신 탈북민 고영환강계시 출신,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진이기도 한 정유나전천군 출신이다. 2012년 노크 귀순의 주인공인 임바울 목사도 자강도 출신이라고 한다.

7.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파일:1467303393.jpg 파일:3000.gif

▼좌측이 광복 직후, 우측이 2023년 2월 편입된 향산군을 제외하면 현 북한에서 사용하는 행정구역.
표에서 기록하는 행정단위의 이동은 면 단위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면적의 단위는 ㎢이며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하였다.
평안북도 및 자강도의 행정구역 변화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번호 시 / 군 면적 번호 시 / 군 면적 참고
평안북도 A 신의주시 평안북도 A 신의주시 166 [15]
평안북도 B 의주군 1,677 [16]
평안북도 B 의주군 420
C 피현군 439 [17]
D 삭주군 [18]
E 천마군 763 [19]
평안북도 C 용천군 570 평안북도 C 피현군 439 [20]
F 룡천군 270
G 신도군 108 [21]
H 염주군 330 [22]
평안북도 D 철산군 456 평안북도 [23]
I 철산군 364
J 동림군 437 [24]
평안북도 E 선천군 673 평안북도 [25]
K 선천군 450
평안북도 F 정주군 828 평안북도 L 곽산군 310 [26]
M 정주시 473
N 운전군 360 [27]
평안북도 G 박천군 589 평안북도 [28]
O 박천군 288
평안북도 H 영변군 1,709 평안북도 P 녕변군 504
Q 구장군 584 [29]
자강도 R 향산군 483 [30][31]
평안북도 I 운산군 820 평안북도 S 운산군 [32]
평안북도 J 태천군 684 평안북도 T 태천군 730
평안북도 K 구성군 1,242 평안북도 E 천마군 763 [33]
U 구성시 653
평안북도 L 삭주군 1,153 평안북도 D 삭주군
W 대관군 837 [34]
평안북도 M 창성군 1,323 평안북도 V 창성군 620
Y 동창군 665 [35]
평안북도 N 강계군 5,404 자강도 1 강계시 264
2 만포시 672 [36]
3 시중군 602 [37]
4 장강군 727 [38]
5 성간군 949 [39]
6 전천군 1,001 [40]
7 룡림군 1,195 [41]
평안북도 O 희천군 2,366 자강도 8 희천시 984
9 동신군 1,205 [42]
평안북도 P 자성군 1,806 자강도 10 자성군 887
11 중강군 669 [43]
12 화평군 1,219 [44]
평안북도 Q 후창군 2,429 [45]
량강도 김형직군 1,473 [46]
함경남도 장진군 5,688 자강도 13 랑림군 2,062 [47]
평안북도 R 위원군 1,234 자강도 14 위원군 1,160
평안북도 S 초산군 2,328 자강도 15 초산군 590
16 고풍군 675 [48]
17 송원군 1,080 [49]
평안북도 T 벽동군 1,215 자강도 18 우시군 703 [50]
평안북도 X 벽동군 640


[1] 2008년 기준 북한 인구조사인구주택총조사 통계[2] 강계시 로두철, 안용남, 장혁, 최창선, 김혜란, 정광철, 한영호
만포시 김명훈, 채정석, 김천호
희천시 김재룡, 박철훈, 함남혁, 태종수, 리용헌
성간군 리승금, 신관진
전천군 리서련, 김영일, 홍승무
룡림군 서경호
동신군 박춘건
송원군 김천균
장강군 박영복, 고병헌
랑림군 리형근
화평군 서경철
자성군 김광주
중강군 김득몽
시중군 장일룡
위원군 김창걸, 송종학
초산군 리승녀
고풍군 리철호
우시군 장금희
[3] 전라도와 경상도는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4] 나주시, 상주시, 충주시, 황주군, 안주시, 경성군 등.[5] 광복 당시 강계면과 만포면은 이 아니라 인 강계읍, 만포읍이었지만 1946년 읍이 폐지되어 북한의 모든 읍이 일괄적으로 면으로 격하된 상태였다. 이후 읍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다수 부활했지만 이번에는 면이 폐지되어 현재 북한에는 읍만 남게 되었다.[6] 유심히 보면 창문에 유리도 없이 비닐막으로 겨우 가려놓은 모습이 보인다.[7] 실제로 고난의 행군 때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으로 꼽힌다.[8] 강계시도 혜산시보다 더 가난한, 북한에서 가장 가난한 도 중심지로 꼽힌다. 사진 속 야경 역시 선전 차원으로 외관을 LED로 장식한 것인지라 야간 위성사진에서 강계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9] 이러한 험준한 지형이 끝나는 지역은 의주시나 라선시 일대에나 존재한다.[10] 사실 김일성 시기에는 자강도 외 다른 지역들도 다른 군으로 이동하려고 하면 려행증을 발급받아야 가능했지만, 김정일 시기 고난의 행군의 여파로 살기 위해 식량을 찾으러 다른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른 로 이동할 때에 려행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것으로 완화되었다.[11] 물론 저 별명에는 척박한 환경도 한몫했을 것이다.[12]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먹는 주먹밥은 무우오가리(무말랭이) 정도만 든 소박한 주먹밥이라고 선전하고 있다.[13] 익히 알려진 것처럼 원조는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이다.[14] 사실 김정은의 체형을 보면 아무리 자강도 사람이라도 전혀 믿을 수 없는 선전이긴 하다.[15] 구 행정구역의 면적이 10.6㎢로 제시되는 경우가 있는데, 명백한 오류. 구 행정구역과 신 행정구역에서 변화된 것이라고는 의주군에서 위화면(이성계회군했다는 바로 그 위화도)이 넘어온 것과 용천군에서 삼교천 일대 유역 일부가 넘어온 게 전부이기 때문.[16] 서쪽 끝의 위화면이 이동.[17] 위원면, 고관면의 절반, 비현면, 월화면이 이동[18] 가산면, 광평면, 옥상면이 이동. 현재의 삭주군 면적 대부분은 의주군에서 온 것이며 원래 삭주군이였던 지역은 1/3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19] 고령삭면이 이동[20] 동북부 동상면이 이동[21] 비단섬 일대의 섬만 따로 떼어서 만든 군.[22] 군 남단의 내중면, 외하면, 외상면, 부라면이 이동[23] 군 북부의 서림면이 이동[24] 군 북부의 점면이 이동[25] 군 서부의 심천면, 용연면이 이동[26] 군 서부의 안흥면, 옥천면, 관주면, 임포면이 이동[27] 군 동부의 고덕면, 마산면, 대전면이 이동[28] 군 서부의 용계면의 절반, 청룡면의 절반, 가산면, 양가면, 서면이 이동[29] 군 동부 남신현면, 고성면의 절반, 오리면의 절반, 용산면, 백령면이 이동[30] 군 동북부 남송면의 2/3, 태평면, 북신현면이 이동[31] 2023년 2월 자강도로 편입[32] 정확한 면적은 불명이지만 행정구역의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860~870㎢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잠시 금광이 있던 지역을 북진군으로 분리한 적이 있다.[33] 군 서부의 관서면, 천마면, 사기면이 이동[34] 군 남부의 수동면, 양산면, 외남면, 남서면이 이동[35] 군 남부의 청산면, 대창면, 동창면이 이동[36] 군 북서부의 고산면, 만포읍, 문옥면, 이서면과 외귀면의 1/3이 이동[37] 군 북서부의 외귀면 남부 2/3, 시중면, 곡하면, 어뢰면이 이동[38] 군 서부의 공북면, 종남면, 종서면이 이동[39] 군 중부의 성간면, 간북면이 이동[40] 군 남서부의 전천면, 화경면과 입관면의 서부 1/5이 이동[41] 군 남동부의 용림면과 입관면의 대부분이 이동[42] 군 동부의 신풍면, 장동면, 동창면이 이동[43] 군 최북단의 장토면, 중강면이 이동[44] 군 남부의 이평면이 이동[45] 군 서남부의 남신면, 칠평면이 이동[46] 후창군이 이름이 바뀐 것.[47] 동문면, 북면과 상남면의 서부 절반이 이동[48] 군 중부의 고면, 풍면, 강면이 이동[49] 군 남부의 판면, 송면, 도원면이 이동[50] 군 동부의 벽동면의 동부 절반, 오북면, 우시면, 가별면이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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