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22:12:13

황해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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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남포시 개성시 라선시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주의]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OO특별/광역시'라고 표기하는 것과 달리 'OO시'라고 표기한다.
[가] 북한 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상으로는 '직할시'만 명시적으로 존재하며, 평양시, 남포시, 라선시, 개성시를 모두 동급의 직할시(혹은 특별시)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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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

해주시
강령군 과일군 룡연군 배천군 벽성군
봉천군 삼천군 송화군 신원군 신천군
안악군 연안군 옹진군 은률군 은천군
장연군 재령군 청단군 태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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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黃海南道
South Hwanghae Province
}}}
<colbgcolor=#E20001><colcolor=#ffffff> 도소재지 해주시
하위 행정구역 1 19
면적 8,450km²
인구 2,610,485명
인구밀도 273명/㎢
당위원회 책임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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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덕
인민위원장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김영철
지역번호 045
ISO 3166-2 KP-05

1. 개요2. 역사3. 정치4. 경제5. 교통6.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7. 정리8. 통일 이후

[clearfix]

1. 개요

북한 남서부에 위치한 도. 원래 황해도였지만 북한에서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로 개편한 것이다. 도소재지는 해주시.

동쪽으로 황해북도와, 북쪽으로 평안남도와, 그리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황해와 맞닿아 있다. 서해5도가 맞은 편이라 이 일대에 해군의 시설이 밀집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황해남도라는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는 황해도의 남부가 아니라 서부 지역에 위치해있다. 충청북도, 충청남도와 비슷하다. 근현대 이후 다른 도들을 남북으로 나누어 부르니 이쪽만 동서도로 이름 붙이면 일관성이 없어 보여서 이렇게 작명한 것일 수도 있다. 황해남도 소재지인 해주시가 황해북도 소재지인 사리원시보다 남쪽에 있어서 지어진 명칭일 가능성도 있다. 황해남도가 황해북도보다 면적과 인구가 조금 더 많다.

북한에서 황해북도와 함께 유이하게 1만km²가 안되는 도다.

2. 역사

고구려 남부 지역이었고 신라가 차지한 후 한주, 패강진을 두어 다스렸다. 고려 때는 서해도를 두었고, 조선시대에 지금의 황해북도 지역과 함께 황해도를 이루었다. 이 때부터 남북도 분리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황해도 문서 참조.

북한은 1954년 10월 황해도를 남/북도로 분할하여 해주시 등 황해도 서부 해안 지역으로 황해남도를 신설하고, 그와 동시에 나머지 지역은 개성시 등 경기도 일부 지역과 합쳐져 황해북도가 되었다.

북한은 행정구역이 이리저리 바뀌기로 유명하다. 1991년 초판 발행된 <최신북한지도 부 중국주요지도 부>에 따르면 해방 당시 11시 89군이던 것을 시 및 군 통합 170여 개로 대폭 늘렸고 시와 군의 경계선도 심하게 바뀌었다. 오죽했으면 이 지도에서는 아예 해방 전과 당시의 군 경계선을 같이 나타내고 있다. 현재는 절판.

6.25 전쟁 휴전 이후, 연안군배천군의 70~80% 주민들이 함경남도로 강제 이송되었다고 한다.[1] 영상[2] 빠져나간 인구는 함경남도에서 그대로 채워왔다.

3. 정치

신해방지구라는 한국전쟁으로 뺏아온 지역이 있어[3] 중점적인 관리 대상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방송의 전파가 직접 닿는 지역이라 이에 대한 감시도 있다고 한다.

해상으로 탈북하는 드문 사례가 있으나 북한이 배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고 함경북도 일대와 달리 북한 외부와 연계가 힘들어 탈북자가 적다. 서해5도를 마주보지만 남한에서의 이 지역과의 교통이 북한에서 허가되지 않아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충돌이 많이 일어났다. 개성공단의 노동자 중 일부가 이곳 출신이었다는 주장은 있다.

4. 경제

황해남도는 북한의 곡창 지대 중 하나다. 이곳의 기후는 경기도, 강원 영서 지방과 유사하다. 생산되는 농수산물 자체가 남한과 유사하여 북중 국경지대 동부, 한반도 동북쪽 끝 위주의 탈북민의 생활상에서 들을 수 없는 생산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나마 황해남도에서는 밀도 좀 생산된다는 것이 차이지만 한국 정부가 기후가 불리함을 감안한다기보다는 단지 밀 생산에 큰 관심이 없어서 남한에서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2012년경 수도미, 군량미의 수탈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사태 때는 그나마 넘긴 식량난 문제가 심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황해남도에서는 'ㄹ'로 끝나는 것이 죄다 부족하다고 북한 주민들이 농담을 한다. 고난의 행군 이후 먹고사니즘이 어려워져서 , , 을 피울 땔감이 부족하다고...

탈북민이 많은 함경북도, 량강도와 달리 산에 밭을 일구기 어려워 중앙의 수탈에 취약했다. 그 이후에는 농민이 도시로 일하러 가는 등의 행위[4]로 어찌어찌 넘어간 듯하다. 이외에도 어업, 광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연평도의 어장이 꽃게로 유명하듯, 북한의 연평어장 근처 해역에서도 꽃게가 많이 잡히지만 중국 어선의 피해를 입거나 북한이 잡아도 일반 주민은 크게 사업을 벌일 수 없고 수산사업소 같은 곳에서 잡는다. 옹진군에는 금광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운영되던 금광을 북한 당국이 방치하다가 일반인이 정부의 관여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다시 가동시켰다는 기이한 증언도 있다.

5. 교통

도로망은 거진 북한의 지역이 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심각하게 열악한 수준이다. 그래도 철도망은 의외로 잘 짜여져 있는 편.

남쪽으로는 옹진선 - 배천선, 해주에서 사리원 방향으로 이어지는 황해청년선, 도 중서부를 가로로 관통하는 은률선장연선 등이 있으면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수준. 황해북도의 동북부(이쪽은 아예 5개 군이 철도가 없다)를 생각해 보면 철도 환경은 일단 꽤 좋은 셈. 단 해주에서 거리가 꽤 되는 편이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도 은근히 많다.

6.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좌측이 광복 직후, 우측이 현 북한에서 사용하는 행정구역.
표에서 기록하는 행정단위의 이동은 면 단위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면적의 단위는 ㎢이며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하였다.
황해도의 행정구역 변화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번호 시 / 군 면적 번호 시 / 군 면적 참고
황해도 A 송화군 723 황해남도 A 과일군 324
B 송화군 193
H 삼천군 353 [5]
황해도 B 장연군 1,073 황해남도 C 장연군 396
D 룡연군 463
J 태탄군 341 [6]
황해도 C 은률군 467 황해남도 E 은률군 413 [7]
황해도 D 안악군 851 황해남도 F 은천군 454
G 안악군 386 [8]
황해도 E 신천군 792 황해남도 [9]
H 삼천군 354 [10]
I 신천군 490
황해도 F 벽성군 1,564 황해남도 [11]
J 태탄군 342 [12]
K 벽성군 449
L 신원군 479 [13]
M 해주시 206 [14]
N 청단군 489 [15]
P 강령군 506 [16]
황해도 G 옹진군 1,062 황해남도 [17]
O 옹진군 639
황해도 H 재령군 740 황해남도 Q 재령군 328
황해북도 T 은파군 378 [18]
황해도 I 황주군 874 황해북도 R 황주군 517
U 연탄군 544 [19]
송림시 65 [20]
황해도 J 봉산군 842 황해북도 S 봉산군 436 [21]
T 은파군 378 [22]
황해도 K 서흥군 914 황해북도 U 연탄군 544 [23]
V 서흥군 566
W 린산군 503 [24]
황해도 L 평산군 1,353 황해북도 [25]
황해남도 X 봉천군 493 [26]
황해북도 Y 평산군 545
황해도 M 연백군 936 황해남도 N 청단군 489 [27]
Z 연안군 479 [28]
a 배천군 475 [29]
황해도 N 수안군 1,215 황해북도 U 연탄군 544 [30]
b 연산군 547 [31]
c 수안군 666
황해도 O 곡산군 1,854 황해북도 d 신평군 1,075 [32]
e 곡산군 521
황해도 P 신계군 820 황해북도 [33]
f 신계군 722
황해도 Q 금천군 959 황해남도 X 봉천군 493 [34]
황해북도 h 토산군 422 [35]
g 금천군 498
경기도 R 개풍군 744 황해북도 [36]
i 개성시 179 [37]
j 개풍군 263
경기도 S 장단군 724 황해북도 k 장풍군 542
경기도 T 연천군 696

7. 정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에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는 전부 폐지되고 이북 5도청에서 쓰고 있는 분단 직전의 행정구역으로 돌아가거나, 분단 직전 행정구역으로 돌아가서 대한민국 방식으로 새로운 행정구역을 짜던가 아예 제3의 행정구역으로의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하에서 설명하는 면의 배분 개념은 모두 광복 직후의 면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일단 황해남도에 속한 행정구역은 전부 구 황해도에서 출발하였다.
  • 해주시(海州市)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해주목으로 존재했던 유서깊은 고을. 벽성군에서 일부 면을 얻어서 면적을 넓혔다.
  • 강령군(康翎郡)
    조선시대 강령현이라는 독립된 고을로 존재하였으나 1909년 옹진군에 합병되었다. 1952년 구 벽성군의 남쪽 바닷가의 두 개의 면과 구 옹진군의 남동쪽 면 3개를 합쳐서 부활시켰다. 2지선 철도인 부포선이 이 군에서 시종착한다. 도청 소재지는 강령역에 인접해 있으며 부포선은 도 북서쪽의 신강령역에서 분기한다. 강령탈춤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 과일군
    조선시대 풍천군이었던 곳이었으나 1909년 송화군에 합병되었다. 1967년 김일성이 송화군 서부의 과수농장지구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과수농장지구가 위치한 구 풍천군 지역의 대부분을 분리해서 신설됐다. 여담으로 과일군은 한반도에서 몇 안 되는 비한자어 행정구역명으로[38] 진짜로 과일이 많이 난다고 해서 과일군이다! 북한의 과일 생산량의 25%가 여기서 난다(…). 군 중심부를 은률선이 지나간다(구 철광선 부분).
  • 룡연군(龍淵郡)
    1952년에 신설된 군. 구 장연군의 남서쪽 임해 4개의 면(이 중 2개는 일부분만)이 분리되었다. 지리적으로 해주에서 꽤 멀고 북한 교통의 핵심인 철도가 지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황해도의 서쪽 끝인 장산곶과 몽금포가 여기 있다.
  • 배천군(白川郡)
    조선총독부가 멋대로 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탄생했던 연백군을 다시 북한이 원래대로 연안과 배천으로 쪼개는 과정에서 동쪽 10개 면이 배천군이란 이름으로 다시 복귀했다. 한자 음으로는 '백'천인데, 원래 관용적으로 '배'천이라 불려서 예외적으로 '배'천이라 읽는다. 옛날 사람들도 헷갈렸는지 민담에도 이곳 현감에 제수받은 사람이 "제가 이번에 백천 현감으로 제수받았습니다"라고 자랑했다가 집안 어른에게 자기가 갈 고을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고 욕 먹은 이야기도 있고, 흥선 대원군의 일화 중 이걸 '백천'이라고 읽었다가 대원군에게 망신당한 신정왕후 조씨의 친척 이야기가 야사에 남아 있다. 배천선의 종착지. 군청 소재지 역시 배천선과 매우 가깝다.
  • 벽성군(碧城郡)
    1938년 해주군 해주읍이 부(府)로 승격되자 나머지 읍면지역을 벽성군으로 개칭하였다. 당시 벽성군은 현 황해남도의 면적의 약 1/5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군이었으나, 서쪽 끝부분의 2개의 면은 태탄군에, 남쪽 2개의 면은 강령군에, 북쪽 1개의 면은 신천군에, 동쪽 6개의 면은 청단군에, 가운데 1개의 면은 신원군, 해주시, 청단군에 떼어주었다. 그런데 그러고도 면이 5개가 남았다. 군 남쪽으로 옹진선이 지나가며 군청은 벽성역 근처에 있다.
  • 봉천군(峯泉郡)
    1952년에 신설된 군. 황해북도 문서에 설명된 구 평산군의 남부 나머지 1/3이 바로 이 봉천군이다. 예전에는 평천군(平川郡)이었으나 1990년에 개칭하였다.
  • 삼천군(三泉郡)
    조선시대 문화현(文化縣)이라는 독립된 고을로 존재혔으나 1909년 신천군에 합병되었다. 문화 유씨(文化 柳氏)의 문화가 바로 이 동네다. 1952년 구 신천군의 서쪽 4개 면(2개는 일부분)과 구 송화군의 동남쪽 면 3개(1개는 일부분)을 잘라서 신설하였다. 군의 중심부는 은률선이 관통한다.
  • 연안군(延安郡)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해서 만들어 놓았던 연백군을 다시 연안과 배천으로 복구시키면서 구 연백군 서부 8개 면을 원래대로 연안군으로 다시 분리했다. 군 중심부를 배천선이 통과한다.
  • 옹진군(甕津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구 옹진군의 서쪽 5개 면. 도청 소재지가 동쪽에 치우쳐 있고 해주시에서 은근히 먼 관계로 접근성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한국 전쟁 휴전 당시 여러 개의 섬이 남북을 왔다갔다한 관계로 당시에 가장 변동이 심했던 행정구역.
  • 은률군(殷栗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1895년부터 1909년까지는 군의 일부가 장련군(장연군이 아니다)으로 분리되었던 적이 있다. 남부의 1개 면의 일부를 송화군에 떼어준 것을 빼면 거의 변한 게 없다. 은률선의 종착지. 유명한 서해갑문이 여기에 있다.
  • 은천군(銀泉郡)
    1952년에 신설된 군. 구 안악군의 북부가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남포시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 장연군(長淵郡)
    고구려 때부터 장연군으로 불렸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원을 갖는다. 태탄군에 2개, 룡연군에 4개를 떼어 주고 남은 4개의 면을 장연군이라 칭한다. 장연선의 종점이며 장연역에서 군청 소재지까지는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다.
  • 재령군(載寧郡)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을. 신원군에 일부를 떼어주고 남북으로 길게 남은 7개의 면이 현재의 재령군이다. 손꼽히는 곡창이라고. 은률선이 지나간다.
  • 청단군(靑丹郡)
    1952년에 신설된 군. 벽성군의 동쪽 6개 면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배천선이 군의 남부를 통과하며 규모가 큰 저수지가 있는 것이 특징. 여담으로 한자만 놓고 보면 고스톱의 그 청단 맞다(…).
  • 태탄군(苔灘郡)
    1952년에 신설된 군. 구 벽성군의 2개의 면과 장연군의 1개의 면을 조합하여 신설되었다. 하지만 그뿐. 접근성은 룡연군 못지않게 나쁘다.

8. 통일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부정하니, 통일 이후에는 전부 폐지하고 이북 5도청에서 쓰는 분단 직전의 행정구역으로 돌아가거나, 제3의 행정구역 개편이 있을 듯하다.

북한의 황해도 분할이 상당히 괴악한데 분명 해주보다는 사리원 방면 접근성이 훨씬 좋은 재령, 신천, 은율 같은 지역들이 이상하게 황해남도로 묶여서 도청 소재지 한 번 가려면 멸악산맥을 넘어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황남-황북간 경계 조정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노령산맥이 전통적으로 호남을 남북으로 갈랐던 것처럼, 멸악산맥이 도계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1] 이는 38선 분단 이후~6.25 전쟁 이전까지 대한민국령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고 전시에도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던 지역이었으며, 이산가족도 많았던 만큼 북한 정권에서 주민들을 위험분자 취급했기 때문이다.[2] 증언하는 인물은 황해남도 연안 출신 탈북민으로 북한에서 3대째 보위부원으로 지내던 집안이다.[3] 38도선 이남. 북한 행정구역 기준으로, 옹진, 강령, 청단, 연안, 배천, 개성이 신해방지구로 분류된다.[4] 북한에는 농민은 대대손손 농촌에서 일하게 하는 정책이 있다. 중국 농민공 같은 것이 북한에서는 불법이다.[5] 남부 2개의 면만 이동[6] 동부 2개의 면만 이동[7] 일부 면적이 송화군 소속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면적이 줄어든 것.[8] 동남부 4개의 면만 이동[9] 북부 3개의 면이 이동[10] 서부 3개의 면이 이동[11] 북부 1개의 면만 이동[12] 서부 2개의 면만 이동[13] 동부 5개의 면이 이동[14] 중부 1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 구 면적은 불과 14.52㎢였다. 좌측 지도의 F 안의 조그만 동그라미가 해주시.[15] 동부 5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16] 남부 3개의 면이 이동[17] 동부 4개의 면이 이동[18] 동부 1개의 면만 이동[19] 동부 3개의 면이 이동[20] 겸이포읍이 승격됨. 지도에서 R로 표시된 부분 안쪽의 표시되지 않은 부분이 송림시.[21] 양쪽 지도의 봉산군 구역 내에 있는 조그만 도시가 사리원시이다. 현재 면적 188㎢.[22] 남부 5개의 면이 이동[23] 북부 3개의 면이 이동[24] 서남부 1개의 면만 이동[25] 북서부 4개의 면이 이동[26] 남부 5개의 면이 이동[27] 북서부 2개의 면과 1개 면 일부가 이동[28] 중부 8개의 면이 이동[29] 동부 9개의 면이 이동[30] 서부 1개의 면만 이동[31] 북부 5개의 면이 이동[32] 북부 5개의 면이 이동[33] 동북부 1개의 면만 이동[34] 서부 2개의 면이 이동[35] 동부 6개의 면이 이동[36] 북부 1개의 면만 이동[37] 중부 1개, 남부 1개의 면이 이동[38] '과일'의 유래는 한자어 '과실(果實)'이기 때문에 순우리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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