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15 17:05:06

채수반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채수반
蔡洙般[1]이라고 표기한 문헌도 있다.]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명 채수반 (蔡洙般)
본관 평강 채씨 [2]
출생 1900년 8월 7일 [3]
평안북도 영변군 팔원면 용산동 [4]
(現 평안북도 영변군 팔원노동자구)
사망 1955년 12월 25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상도동
(現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追書)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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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채수반은 1900년[5] 8월 7일 평안북도 영변군 팔원면 용산동(現 영변군 팔원노동자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영변에서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해 일제의 한국병탄과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일제가 금서로 지정한 애국적 서책들을 윤독하는 등 독서회(讀書會) 운동을 하다가 1920년 11월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1921년 2월 6일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흥사단의 국내 조직체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하여, 1928년 12월 평안남도 용강군 지운면 진지리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한편, 혁산구락부(革山俱樂部)를 조직하여 농민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다가 1930년 9월 30일 용강경찰서 당 모 경부와 김 모 형사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영변경찰서에 압송되었다.

이후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며, 1932년 10월 3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어 결국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5년 7월 20일 만기출옥한 그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8.15 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북한이 급격하게 공산화되자 월남(越南)하였다.

이후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이름을 감추고 부두노동자로 일하다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상도동(現 동작구 상도동)으로 이주했으며, 1955년 12월 25일 자택에서 중풍으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채수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3. 여담



[1][2] 26代孫. (항렬 洙○, 浩○)[3] 陰. 7월 13일[4] 평강 채씨 집성촌이다.[5] 고종(高宗) 37년, 광무(光武)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