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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영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7171f><tablebgcolor=#d7171f> 파일:조선일보 제호 화이트.svg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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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4대 회장
방일영
方一榮 | Bang, Il-young
파일:방일영회장.jpg
<colbgcolor=#ed333b> 출생 1923년 11월 26일[1]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면 동문동
(현 평안북도 운전군 가산리)
사망 2003년 8월 8일 (향년 79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지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선영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우초(愚礎)
본관 온양 방씨[2]
학력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업)
주오대학 (예과 / 졸업)
부모 양조부(친 종조부) 방응모, 아버지 방재윤
형제 남동생 방우영
자녀 슬하 6남 3녀
장남 방상훈, 차남 방용훈

1. 개요2. 일생3. 기타4. 가족관계5. 수상경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기업인. 조선일보 전 회장.

2. 일생

일제강점기인 1923년 11월 26일,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면 동문동(현 운전군 가산리)에서 아버지 방재윤(方在胤, 1901. 2. 13 ~ 1940. 4. 30)과 어머니 수안 이씨(遂安 李氏) 이성춘(李成春, 1906. 5. 13 ~ 1973. 12. 8)[3]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방재윤은 원래 방응모의 친형 방응곤(方應坤, 1880. 11. 25 ~ 1942. 11. 2)의 차남이었으나 당시 아들이 없었던 방응모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방일영은 동생인 방우영과 함께 작은할아버지 방응모의 양손자가 됐다. 유년기에 양할아버지인 방응모를 따라 경기도 의정부시로 이주하였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주오대학 예과를 졸업했다. 그 후 1943년 할아버지 방응모의 부름으로 귀국,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사장비서가 되었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조선일보가 복간된 뒤인 방응모 사장이 납북되자 조선일보 이사로 선출되었고, 이후 부산시로 피난갔다가 휴전 후 1953년부터 인쇄인을 지내다 1954년에 대표이사로 취임해 경영권을 잡았다. 그러나 1970년 발행분까지 등기상 명예사장은 방응모로 되어 있었다.

1964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동생인 방우영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같이 일했으며 1970년에는 사실상 공석이던 사장직까지 주었다.

1975년에는 방일영의 출연금으로 '방일영장학회'를 만들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을 매년 10명 선발해 수업료 전액과 생활비를 지급했다. 현재까지 3백 30여 명이 장학금을 받았고, 최근에는 대학원생에까지 규모를 넓혔다.

1978년에는 학교법인 동방문화학원[4] 이사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93년에 조선일보 회장직을 동생인 방우영에게 넘기고 고문이 되어 1999년 퇴임 시까지 56년을 조선일보와 보냈다.

그 외에도 1964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이사장, 1965년 국제언론인연맹(IPI) 위원, 1969년 아시아신문재단 이사장, 1976년 IPI 한국위원장, 그리고 온양 방씨 중앙종친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할아버지 방응모의 가묘를 마련하기도 했다. 2003년 8월 8일 새벽 2시 5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1세.

3. 기타

국내 최대 언론사인 조선일보의 사주인 그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러줬다고 한다. 술자리에서의 교제가 워낙 넓고 잘 놀았기 때문이다. 조봉암과도 절친한 술친구였다고 한다. 조선일보 편집장을 지냈던 한기악의 친손자인 한홍구 교수의 2001년 글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방일영에 대해 ‘기생의 머리를 가장 많이 얹어 준 사람’, ‘오입대장’이라고 부르며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5] 요즘 말로 아다폭격기란 뜻이다. 방우영도 별명을 물려받았다.

굉장히 통이 크고 대식가였다고 한다.#

3번 결혼해서 슬하 6남 3녀를 두었다.

그는 본처 밀양 박씨 박현숙(朴賢淑, 1927. 4. 6 ~ 1986. 12. 31)[6] 사이에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 2남 1녀를, 첫 번째 후처 사이에선 3남을, 두 번째 후처 사이에 1남 2녀를 각각 두었다.

4. 가족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선일보/오너 일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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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5. 수상경력

  • 국민훈장 무궁화장 (1982)
  • 금관문화훈장 (1999)


[1] 음력 10월 18일.[2] 판서공파(判書公派) 38세 ○영(榮) 항렬.[3] 이은엽(李殷葉)의 딸이다.[4] 숭문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사학재단.[5] 머리를 얹다라는 표현은 기생과 결혼하여 그 머리를 얹어 주다. 조선시대에 비녀를 꽂으려면 머리를 올려야했는데 비녀는 유부녀만 할수있었기 때문이다. 참고[6] 박순흠(朴舜欽)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