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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夏文 / Tangut script
1. 소개
거란 문자·여진 문자와 같이 한자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나 훨씬 복잡하다. 거란 문자와 여진 문자는 기본적으로 한자를 변형하고 보충하여 넓은 의미에서 한자로 볼 수 있는 문자이다. 하지만 서하 문자는 글자를 만드는 원리는 본땄을지언정 구성요소들은 근본적으로 새로 만들어서 한자로 분류할 수 없는 수준이고, 한자보다 획수가 미친 듯이 많다. 거란 문자와 여진 문자는 한자의 모양을 그대로 따오고 소리만 다른 경우도 많지만, 서하 문자는 새로 만든 추상화된 기호들을 합하여 문자를 이룬다.
왼쪽부터 '물', '흙', '진흙'을 뜻하는 글자. 물을 뜻하는 자와 흙을 뜻하는 자의 요소를 합쳐서 진흙을 뜻하는 문자를 만드는 것이다.
표어문자에 해당하며, 문자 수는 이체자를 제외하고 5800여 개이다. 서하국은 1227년에 망했으나, 명나라 말기까지는 옛 탕구트의 후예들이 서하 문자를 간간히 사용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현존하는 서하문 중 가장 최근 것은 1502년에 제작된 석당(石幢)이다.
이미 사멸한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이지만, 이런저런 자료들이 많아 남아 있어서 거란·여진 문자보다는 더 잘 연구된 편으로 중국과 일본에 전문 연구자들이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광운대학교에 서하 문자 사전이 비치되어 있으니 관심 있다면 찾아보기 바란다. 2016년 6월 기준 유니코드 9.0에 추가되었다(U+17000 ~ U+18AFF 영역).[1]
사실 서하인은 표음문자가 표의문자보다 쓰기 편하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다. 실제로 서하인이 티베트 문자나 데바나가리 문자로 자국의 언어를 표기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고유의 문자를 만든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우선 서하의 영토에는 서하인 외에 티베트인, 위구르인, 한족들도 살고 있었으므로 언어가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에는 표음문자보다 표어문자 쪽이 훨씬 나았고[2], 서하어는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동음이의어의 수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표음문자로 적으면 의미가 헷갈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기왕 표어문자를 쓸 거, 이미 문자로서 완성된 체계와 동아시아 국제 공용문자라는 위상을 갖고 있던 한자를 채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고 외국인들과 교류하기에도 더 나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새로운 문자를 만든 이유는 역시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도 문자로 중국을 낮춰 부른다. 서하 문자에는 한자의 부수개념에 해당하는 부호들이 있는데 중국(漢)을 나타내는 글자를 구성하는 이 부수부호는 '작다'라는 부호와 '벌레'라는 부호를 합친 것이다. 한자에서 주변 '오랑캐'들을 나타내는 문자들 중에 비하하는 게 많은데 서하도 마찬가지로 이와 비슷한 걸 만든 셈. 다만 서하는 한인과 탕구트가 힘을 합쳐 만든 국가로, 탕구트의 정체성과 함께 중화 황제의 지위를 언제나 노리고 있던 또 하나의 국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문자를 만든 것은 단순한 자존심 표현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슈팅 게임 선더포스Ⅵ에서 뜬금 없이 은하연방이 쓰는 문자로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뜬금 없게도 적 세력인 온 제국은 몽골어를 쓴다. 전례 없는 다양한 게임 음악 작곡가들의 BGM 외주 참여와 더불어 전작들에 비해서 게임의 분위기를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치.
- 만화 슈토헬에서는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군이 중원을 유린할 때 자신들의 문자를 지키려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문자가 바로 서하 문자. 글씨체가 묘하게 간지나서 은근히 수요가 있다.[스포일러]
- 일본의 유튜브 채널인 QuizKnock에서 서하 문자를 다루는 퀴즈 콘텐츠가 진행되었다. 퀴즈 참가자들에게는 의미가 적혀 있는 서하 문자 카드 100개가 사전에 제공되고, 각 카드에 적힌 서하 문자들의 모양과 그 의미를 통해 조합 원리를 유추하여 출제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서하 문자의 의미를 맞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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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니코드에 서하문자가 한번에 전부 추가된 것은 아니고, 유니코드 13.0 버전 등에도 서하문자가 계속 조금씩 추가되는 중이다. 새로 발굴, 해독, 연구되는 문자들이 꾸준히 추가되는 것으로 보인다.[2] 즉 필담용 공용 문자의 용도로 서하 문자를 썼다.[스포일러] 작중 칭기즈 칸은 집요하게 서하 문자 말살에 집착하는데, 칸의 등짝에 어렸을 때 낙인으로 새겨진 "서하의 노예"라는 글자 때문이다. 설사 자기 등의 글자가 노출되더라도 이 글자를 아는 사람이 없으면 대칸의 권위에 금이 갈 수 없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