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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5대 서체 | ||||
전서 | 예서 | 해서 | 행서 | 초서 |
1. 개요
초서(草書)는 서예의 서체 중에서 한자를 가장 흘려쓴 서체이다.초(楚)나라 장기알의 글자가 초서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초서체를 '초나라의 글자체'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초나라보다 후대인 후한대의 장지(張芝, ?~192)라는 인물이 초서를 창시했다고 전한다. 장지의 초서는 장초(章草)라고 하여 한 글자 한 글자를 흘려 쓰는 방식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예서(隸書)를 속기로 흘려 쓰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서예가이면서 한학자인 월천 권경상은 '장초'를 근거로 초서가 예서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영상 15분 6초부터 이렇게 초서는 행서보다 추상화된 형태이나 성립시기는 행서보다 오히려 빠르다. 이 당시에는 한대 예서의 특징인 '파세'(혹은 '파략')가 글자에 드러나며, 이후 금초(今草), 광초(狂草)에서는 이것이 사라진다.
한자는 획수가 많아서 원래의 형태를 하나 하나 똑바로 적으려면 한 글자를 적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해서는 느릿한 걸음, 행서는 일반적인 걸음이라는 표현이 있다. 속기를 해야 한다면 원래 한자의 많은 획수와 복잡한 형태가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라, 한자의 모양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로마자 필기체처럼 흘려 쓰는 형식이 발달했다. 이것이 초서인 셈. 그러나 속기성에 치우쳐 글자의 모양을 너무 간략화했기 때문에 때로는 글을 쓴 본인조차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자신이 무슨 글자를 썼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큰 단점이 있다.
霜降水反壑 | 상강수반학 |
서리 내린 물은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고 | |
風落木歸山 | 풍락목귀산 |
바람에 지는 나무는 산으로 돌아가네 | |
冉冉歲華晚 | 염염세화만 |
서서히 한 해가 저무니 | |
昆蟲皆閉關 | 곤충개폐관 |
벌레들은 모두 움츠러들었구나 |
2. 초서의 특징
예서에 비해 가장 두드러지는 초서의 특징은 4가지가 있다.- 붓을 빠르게 놀리는 과정에서 획이 직선화된다.
- 획 하나하나의 길이 역시 짧아진다.
- 경우에 따라 획과 획이 떨어진다.
한자 人의 왼쪽 획과 오른쪽 획을 초서에서는 서로 떨어지게 쓰는 경우가 있다. - 젖힌 획을 엎어 쓰기도 한다.
일부 초서 서예가들의 경우 한자 人을 그리스 문자 α에 가깝게 쓰는 경우가 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기타 세세한 규칙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 평행하는 획은 생략하고 또 어긋나게 쓴다. (世, 長, 書, 春, 幸…)
- 왼쪽 획은 되도록 생략한다. (宀, 貝, 生, 隹, 南… )
- 삐침이나 파임과 같은 긴 획은 짧은 획 또는 점으로 처리한다. (木, 未, 今… )
- 삐침 다음에 종맥을 살리기 위해 세로획을 먼저 쓴다. (千, 手, 年, 毛, 平, 乎, 方, 午, 半, 香, 圭, 卉, 南… )
- 획을 줄이거나 생략하되 실획과 허획을 반드시 구분한다. (海, 路, 如… )
: 즉 한붓그리기에 가깝게 글씨를 쓰되, 원래 서로 떨어져 있던 획이라면 희미한 선으로 이어주거나, 서로 떨어졌더라도 이어진 것처럼 여운을 남긴다. 예컨대, 幾의 초서에서 비롯된 히라가나 き의 아랫부분은 キ와 서로 떨어졌기도 하고, 희미한 획에 의지해서 붙어 있기도 하다. - 좌우 대칭의 부분은 세 점으로 줄인다. (學, 榮, 櫻, 品, 皆, 幾… )
- 추상화, 부호화한다. (甚, 叔과 七의 비교 )
-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낸다. (與 -> 与)
- 점획의 호응(필맥)은 초서의 모든 경우에 절대적이다.
사적(私的)으로 작성된 고서나 고문서는 초서로 쓰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글 쓴 사람에 따라서 필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고려~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초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비중으로 따지면 조선시대가 더 높다. 특히 고문서학에서 초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90%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왕실문서는 무조건 해서로 적는 게 원칙이지만 관청문서, 민간문서로 넘어가면 초서는 100% 등장한다. 최소 가로길이가 미터로 시작하는 결송입안/분재기류로 넘어가는 순간 초서와 이두가 함께 공존하는 아스트랄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사학 전공자 중에서도 초서를 능숙하게 읽는 사람은 소수다. 어지간한 사료는 (국역은 아니더라도) 전산 작업을 완료했기에 해서만 알아도 웬만한 연구는 가능하다. 이두가 문제인데, 그래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진짜 빠르게 휘갈겨 쓴 초서는 실제 붓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원래의 글자를 추정해야 할 정도로 매우 복잡하다. 또한 서예가 중에서도 초서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서예가는 극히 소수이다. 그러다보니 문장 전체가 아닌 글자 하나하나를 초서로 쓰는 것에서 그치거나, 기존 작품을 필사하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초서로 쓴 글은 글자 형태 자체만 보고서는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1] 자형과 문맥을 모두 따져야만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초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자라는 문자 자체와 초서라는 필체는 물론이고, 한문의 다양한 문맥이 머리에 들어 있을 정도로 한문에 대단히 익숙한 사람으로, 한문에 대해서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언뜻 제멋대로 쓴 것 같아 보여도 시중에 초서 사전이 있고 일정한 규칙이 있기 때문에 훈련을 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한다. 문제는 옛날 고문서가 그렇듯 깔끔하게 작성된 서류는 많지 않다는 것.. 쓰다가 틀리면 검은 먹으로 그냥 지워버리기도 하고 좀먹거나 찢어진 부분도 많아 판독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내에서도 읽고 쓰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며, 쓸 줄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쓴 것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체가 아니다. 다만 쓸 줄 알면 붓의 궤적을 따라가는 데는 수월할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행서와 기본 개념은 비슷하다. 기본 법칙과 형태를 가지고, 간략하게 쓴 것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한 번 더 간략화한 것이 초서이다. 사실 행서에서도 쓰는 필자에 따라 글자 하나에도 강조되는 구조나 형태가 제각각이다. 그러나 초서는 가뜩이나 제각각이고 축약된 행서에 더욱 형태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해독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또한 글자 형태가 매우 단순해지면서, 자칫 아예 다른 글자를 똑같은 글자로 해석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뒤 문맥과 글자를 파악해가면서 알고리즘 분석하듯 해석한다. 승정원일기의 해독이 지지부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초서를 바르게 해독하여 해서, 예서와 같은 정자로 옮기는 작업을 탈초(脫草)라고 부른다.
3. 이모저모
현대 중국의 간체자가 이 초서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車(수레 차)를 간화한 车가 그 예. 장기알을 보면 초나라의 차가 车와 비슷한 모양으로 적혔는데 실제로 車의 초서체가 그렇게 생겼다.또한 일본의 히라가나도 초서체를 약간 변형해서 만든 문자다. 예를 들면 '安'자의 초서체를 변형시킨 것이 바로 'あ'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일상적으로 쓰이던 서법이었고, 현대 중국에서도 후술할 히라가나 표의 초서체는 서예작품에서 자주 쓰인다.
파일:choseo_china.jpg
위는 에도 시대 일본 조동종 승려이자 서예가 료칸(良寬, 1758-1831)의 작품. 그는 개성 넘치는 히라가나 서예로 유명했다.
위는 히라가나가 아니라 文武(문무)를 초서체로 쓴 것이다. 武의 초서가 마치 む와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로도 む가 武의 초서체에서 유래한 글자다. 다만 초서체의 자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한문에서 초서체를 이렇게 정성들여 반듯하게 쓰는 경우는 드물다. 굳이 시간 들여 이럴게 쓸 거면 그냥 알아보기 쉬운 해서체나 행서체로 쓰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상중하로 각각 히라가나, 원래 한자(해서체), 그 원래 한자의 초서체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초서 해독 전문가로는 《난중일기》를 완역한 노승석 교수가 유명하다.
[1] 이는 한자를 모국어의 문자로 사용하는 일본인이나 중국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별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초서를 읽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