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명사가 아닌 한자사전 전반에 대한 내용은 자전(사전)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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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玉篇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고야왕(顧野王)이 543년에 편찬한 부수별 한자사전이다. 자서로서는 설문해자, 자림(字林) 다음으로 오래됐다. 원본 옥편은 일부분이 멸실되어 사라졌고 자림은 현존하지 않는다.
또한 후세에 영향을 끼쳐 한국에서는 한자사전의 대명사가 됐다. 조선시대에는 '운회옥편(韻會玉篇)'과 '전운옥편(全韻玉篇)'이라는 한자사전이 편찬됐고 현대 한국에서도 한자사전을 '옥편'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원본 옥편을 집필한 고야왕은 성이 고(顧) 씨에 이름이 야왕(野王), 자가 희풍(希馮)[1]이다. 자칫 한 나라의 임금 또는 임금을 자칭했던 인물로 착각할 수 있으나 그저 이름에 왕(王) 자가 들어갔을 뿐 양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한 학자였다.
2. 상세
권수는 전 30권이다. 부수는 배열은 설문해자 체계를 따르되 조금 추가하여 542종류인데, 一부에서 시작하여 亥부에서 끝나는 점은 설문과 같지만 중간의 배열순이 다르다. 설문해자와 달리 글자의 형태가 비슷한 정도에 따라 배열하지 않고 의미가 비슷한 동류의 부수를 정리하는 등 검색의 편의를 좀더 궁리하여 저작에 반영했다.표제어는 설문해자와 달리 예서체로 적었고, 1만 6917자를 수록했는데 반절로 음운을 표시하였다. 옛 문헌의 용례를 인용한 주석을 붙여 다양한 의미를 기술하고자 했는데, 고야왕 자신의 생각을 '야왕안(野王案)'이라고 하며 쓴 부분도 있다. 게다가 옛 글자와 이체자에도 자세한 주석을 붙였고, 이체자가 있다면 그 글자들을 나열해 어떤 부수에 있는지도 밝혔다. 이처럼 옥편은 주석이 많은데 설문해자는 반대로 극단적으로 주석이 짧다.
당나라 때 손강이 상원본 옥편과 약본 옥편을 편찬했는데 약본 옥편이 널리 사용되자 원본 옥편은 대부분 사라져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 중국에는 원본이 소실됐고 일본에는 잔권이 몇 권 남아 국보로 지정됐다. 송나라 때 진팽년이 상원본 옥편을 토대로 '대광익회 옥편(大廣益會玉篇)'[2]을 대중상부 6년(1013)에 편찬했는데, 이 자서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본으로 전한다.
3. 여담
- 玉자가 얼핏 보면 헷갈리는 것을 이용한 말장난 하나. 어느날 삼형제의 아버지가 자식들의 한자 실력을 알아 보기 위해서 월화수목금토일(月火水木金土日)을 한자로 써 놓고 읽게 했다. 첫째가 월화수목김토일[3]이라고 읽었고, 둘째는 '월화수목금사일[4] 그리고 셋째가 월화수목금토왈[5]이라고 읽자 분노한 아버지의 외침. “야! 가서 왕편[6] 가져와!”
[1] 풍(馮) 자는 '빙'이란 음도 있기 때문에 고야왕의 자를 '희빙'이라고 쓰기도 한다. 하지만 희풍이 더 정확한 듯하다.[2] 전 38권[3] 金의 독음이 둘인 것을 이용한 말장난. 그런데 김이라고 읽는 경우는 성씨와 지명밖에 없다.[4] 흙 토(土)와 선비 사(士)가 비슷한 것을 이용한 말장난.[5] 가로 왈(曰)과 해 일(日). 참고로 일본(日本)을 '왈본(曰本)'이라 부르기도 한다.[6] 임금 왕(王)과 구슬 옥(玉). 위의 예시에 비해 이건 안 헷갈릴 것 같지만, DQN 네임 문서에 보면 일본에서 이 둘을 헷갈려 자식 이름을 잘못 지은 경우가 있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참고로 玉은 변(한자의 왼쪽에 붙는 부수의 모양)으로 쓰일 때 점이 빠져서 '王'자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