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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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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성씨의 역사
1.1. 성과 본관1.2. 현황
2. 문화적 수입품으로서의 한국 성씨3. 귀화성(歸化姓)
3.1. 조상이 같다고 보는 성씨들3.2. 등록된 성씨 목록3.3. 등록된 본관 목록(가나다순)
4. 한국의 성씨 분포5. 이름글자로 쓰는 경우6. 기타7. 본관에 따른 성씨 표기8. 둘러보기9. 관련 문서

1. 한국 성씨의 역사

15세기 초를 기준하여 한국의 성씨가 총망라된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성자(姓子)를 당대(唐代)의 ‘군망표’ 소재 성자와 대비해 보면, 전자는 대부분 중국의 유명 성자를 모방한 것이며, 후자에 없는 것은 박씨 등 16성(··河···俊·昔·諸·益··邦·芳·價·勝·濯·承氏)에 불과하다. 그나마 군망표에 없는 성자도 박씨를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정초(鄭樵)의 『통지략 通志略』 씨족지에 나타나 있다.

중국 역대에 걸쳐 성씨를 취득한 연원 32가지를 열거하면서 (國)·(邑)·(鄕) 등 지명을 성자로 한 것이 가장 많고, 명(名)·자(字)로 한 것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고 하였다. 즉 한국의 성씨는 바로 이렇게 생성된 중국의 것을 모방했던 것이다.

물론 한국의 성씨가 모두 중국의 것만을 모방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박·석·김씨와 같은 신라의 종성은 본래 신라에서 출자한 것이며, 후삼국시대 이래 호족들의 한성화과정에서 스스로 성씨를 호칭해 놓고 보니 우연히 중국의 성자와 동일한 것도 많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한국 성씨의 보급시기를 고려 초로 잡고 있다. 그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비로소 중국식 성씨제도를 전국에 반포함으로써 사람들은 모두 성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는 성씨의 보급과정을 설명하면서 크게 ① 고려 초 사성(賜姓) 이전의 성씨(삼국 및 가락국의 왕실), ② 중국에서 동래(東來)한 성, ③ 고려 초 사성 등 셋으로 나누면서, ①과 ②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③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에 대하여 확실한 근거자료는 아직 찾지 못하였지만, 940년(태조 23)경을 전후하여 전국 군현에 성씨가 분정되었던 것이며, 이는 다음의 사실이 뒷받침해 준다.

첫째, 왕건은 즉위 이래 개국관료·개국공신 및 귀순호족들에 대한 사성을 광범위하게 실시하였다. 둘째, 신라의 3성과 6성 등 고려 건국 이전에 성립한 기존의 한성과 중국에서 도래한 외래성을 제외하면 나머지 각 성의 시작은 대부분 고려 초기로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고려사』 태조세가에 등장하는 인물을 분석해 보면 태조 23년을 전후하여 그 이전에는 고유명이 주류를 이루다가 그 이후부터는 한식성명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광종을 거쳐 성종대(982∼997)와 현종대(1010∼1031)로 내려오게 되면 고유명을 가진 인물이 관료계층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성종(10세기 말) 이후가 되면 지방군현의 양민층에게까지 성씨가 수용되고 있었다. 고려 초에 확립된 성씨체계는 15세기 초까지 끊임없이 분관·분파 등을 통해 성의 분화와 발전이 계속되었던 것이며, 조선왕조의 성립과 함께 성씨체계도 다시 정비되었는데 그것이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역사상 한국 성씨의 수용 및 보급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첫째 왕실과 중앙귀족층에게 수용된 시기는 삼국 말기부터 신라 하대까지이며, 둘째 지배층 일반에게 성씨가 보급되어 성과 본관체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 초기이며, 셋째 양민층에게 확대된 시기는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다.

성씨가 보급된 뒤에도 무성층으로 남아 있던 공사노비, 화척(禾尺), 향·소·부곡민, 역·진민 등 천민층은 10세기 이래 조선시대까지 개별적인 신분해방과 신분상승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성씨를 획득해 갔지만, 그들에게 성씨가 획기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조선 후기였다.

다만 그 이전에도 성씨가 있던 양민이 죄를 짓거나 몰락해 노비가 되거나 부모중 한쪽이 양민이어서 이어줄 성씨가 있던 경우 천민이라도 성씨를 쓰는 경우가 있었고 특히 공노비의 경우 비율이 높았다고한다.

조선 전기(15∼16세기)까지만 해도 노비를 비롯한 천민층이 전체 국민 가운데 대략 절반을 차지하였으니 무성층은 그만큼 많았다. 16세기 말부터 시대적·사회적 변동에 따라 신분해방과 함께 새로이 성을 갖게 된 계층이 격증해 갔다.

당시 사회계층을 크게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나눌 때, 양반층은 일찍이 군현토성에서 귀족과 관인을 배출한 사족(士族) 가문이며, 중인층은 군현과 임내의 이족(吏族)에서 서리·기술직을 맡은 계층으로 양반의 서얼 출신이 여기에 해당된다. 상민층은 고려 이래 관인을 내지 못한 일반 농민층으로서 성종상 백성성·촌성·향·소·부곡성 출신이 많았다.

천민은 대체로 무성층이었다. 최하층인 이들은 조선 후기 300년간에 걸쳐 점차적인 신분해방과 함께 새로이 성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1894년 갑오경장을 계기로 종래의 신분·계급이 타파되며 성의 대중화가 촉진되었고, 1909년 새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부터는 누구나가 다 성과 본을 갖게끔 법제화되었다.

상당수였던 무성인이 이때를 기하여 새 성을 갖게 되자 갖가지 희화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성이 없는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담당 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주기도 하였는가 하면, 노비의 경우는 상전의 성을 따르기도 하였다.

또 주위에 많은 김·이·박 등 대성을 모방하여 성을 정함으로써 종전의 대성 명문들은 그 수가 더욱 늘어갔다. 가령, 전주에서 출생한 사람은 이씨, 경주지방 출신은 김씨나 최씨 하는 식으로 출신지의 대성이나 문벌을 본떠서 자기 성으로 정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의 희성·벽관 가운데는 당시 경찰이 호구조사를 하고 호적담당 서기가 호적을 기재하면서 한자의 획(劃)을 잘못 적은 데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다.

국민 모두가 성과 본관을 가지게 된 시기는 신분과 계급제도가 타파된 한말에 와서 단행된 것이며, 그것이 일제의 식민통치과정에서 시행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내선일체황국신민화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이 추진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본식으로 성명을 고치는 사람은 있었고 창씨개명은 이를 전 조선인에게 '권장'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강제였다. 그러나 한민족에게는 성이란 일생토록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관념이 철저했기에 친일/반일을 막론하고 반발이 심했다. 그래서 웃지도 보지도 못할 허다한 희비극이 연출되었다. 그때 각 씨족 문중은 회의를 열어 창씨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기지를 발휘하여 어떻게든 고유의 성이나 본관의 흔적을 남기려고 무척 애를 썼다. 가령 이가(李家)·김본(金本)·배정(裵井)·오산(吳山)·장전(張田) 하는 식으로 본성을 표시하였는가 하면, 남양(南陽)·수원(水原)·경산(京山)·광산(光山) 하는 식으로 본관을 그대로 성으로 쓰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시조전설이나 연고지를 상징화하여 성으로 쓴 일도 많았다. 가령, 파평 윤씨의 경우 평소(平沼, 히라누마)라 하였는가 하면, 한산 이씨는 본관에다 목은(牧隱)의 자손임을 강조하여 목산(牧山, 마키야마)이라 하였고, 청주 한씨는 청주의 고호인 서원(西原, 니시하라)을 그대로 성으로 썼다. 이러한 일본인식 창씨는 입부혼인(入夫婚姻)·서양자(婿養子) 제도와 함께 1939년 말부터 실시되었다. 하지만 일제가 패망한 뒤 미군정의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이 1946년 10월 23일 법령 제122호로 공포되며 일제하의 창씨개명으로 인한 일본식 씨명은 그 효력을 잃었다.

한편, 성자에 의한 한국 성의 수는 성씨관계 문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성씨 관계자료인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모두 250여개의 성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이미 소멸된 망성이 포함되어 있다.

1486년(성종 17)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세종 이후에 귀화한 성과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성씨(망성 포함)를 수록한 결과 277성이나 되었다.

영조 때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한 『도곡총설 陶谷叢說』에는 298성이 나오는 데 비하여 고종 때 발간한 『증보문헌비고』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고문헌에 있는 모든 성을 거의 망라하였기 때문에 무려 496성이나 수록되었는데, 여기에는 한성화 이전의 고유명자(固有名字)와 이미 소멸된 역대의 망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후대까지 존속된 성수는 15세기 지리지 소재 성수대로 대략 250성 내외였다. 그러한 사실은 1930년대 국세조사 때 250성, 1980년대 국세조사 때 250성 안팎으로 나타나는 데서 확인된다.

성세(姓勢)와 본관수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김·이·박씨 등과 같이 대성일수록 본관수가 많았다. 이의현은 『도곡집』의 「도곡총설」에서 한국의 성 298성을 그 성세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① 저성(著姓):李·金·朴·鄭·尹·崔·柳·洪·申·權·趙·韓(12성).

② 그 다음 저성:吳·姜·沈·安·許·張·閔·任·南·徐·具·成·宋·兪·元·黃(16성).

③ 그 다음 다음 저성:曺·林·呂·梁·禹·羅·孫·盧·魚·睦·蔡·辛·丁·裵·孟·郭·卞·邊·愼·慶·白·全·康·嚴·高(25성).

④ 희성(稀姓):田·玄·文·尙·河·蘇·池·奇·陳·庾·琴·吉·延·朱·周·廉·潘·房·方·孔·偰·王·劉·秦·卓·咸·楊·薛·奉·太·馬·表·殷·余·卜·芮·牟·魯·玉·丘·宣 (41성).

⑤ 그 다음 희성:都·蔣·陸·魏·車·邢·韋·唐·仇·邕·明·莊·葉(섭)·皮·甘·鞠·承·公·石(19성).

⑥ 벽성(僻姓):印·昔·龔·杜·智·甄·於·晉·伍·拓·夜·賓·門·于·秋·桓·胡·雙·伊·榮·思·邵·貢·史·異·陶·龐·溫·陰·龍·諸·夫·景·强·扈·錢·桂·簡(38성).

⑦ 그 다음 벽성[貴姓]:段·彭·范·千·片·葛·頓·乃·間·路·平·馮·翁·童·鍾·酆·宗·江·蒙·董·陽·章·桑·萇·程·荊·耿·敬·寗·京·荀·井·原·袁·萬·班·員·堅·騫·燕·時·傅·瞿·嵇·米·艾·梅·雷·柴·聶·包·何·和·賀·花·華·賈·夏·麻·牛·僧·俊·曲·栢·翟·畢·谷·弓·種·邦·凉·良·芳·卿·刑·永·乘·登·昇·勝·信·順·侯·藩·端·鮮·芊·牙·水·彌·吾·珠·斧·甫·部·素·附·凡·固·台·才·對·標·肖·那·瓜·化·壽·祐·價·尋·森·占·汎·克·郁·翌·宅·直·則·澤·綠·赫·冊·濯·骨·燭·律·物·別·實·弼·合·乜·鴌·揚(136성).

⑧ 복성(復姓):南宮·皇甫·鮮于·石抹·扶餘·獨孤·令狐·東方·西門·司馬·司空(11성).

이상 298성에는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250여 성과 『동국여지승람』 270여 성 및 그 뒤 귀화성이 모두 합산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이미 소멸된 망성이 많이 포함되었다. 성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늘고 줄게 마련이어서 옛날에 있던 성이 뒤에 소멸되기도 하고 과거에 없던 성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15세기 이래 현재까지 한국의 성수는 대략 250성 내외가 되었는데, 송나라 소사(邵思)의 『성해 姓解』에 의하면 한자성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2,568성이나 되며, 한국의 성에 해당되는 일본의 씨(氏)는 그 종류가 10만에 가깝다 하니, 중일 양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성종은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250여 성 가운데 김·이·박·최·정씨 등 5대성이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1. 성과 본관

씨성(氏姓) 또는 토성(土姓)이라 할 때 ‘씨’와 ‘토’는 그 성의 출자지인 본관을 의미하고 있다. 성과 본관은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한국의 성씨 체계 가운데 한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본관제도이다.

성이 같아도 본관이 다르면 이족(異族)이요, 반드시 성과 본관이 같아야만 동족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원칙론이지, 실제로는 예외가 많아 상당히 복잡하다.

씨족의 연원을 같이하면서도 성 또는 본관을 서로 달리하는 성씨가 많은가 하면, 반대로 이족이면서도 성과 본관을 같이하는 경우도 많다. 편의상 성과 본관을 조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몇 개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동족의 동성동본과 동성이본, 동족의 이성동본과 이성이본, 이족의 동성동본과 동성이본, 이족의 이성동본과 이성이본 등 8가지 경우가 있다.

본관의 연원을 추적해 보면, 첫째 성을 사용하기 전인 7세기 이전에는 그 사람의 출신지(거주지)가 신분의 표시로서 성의 구실(신라의 6부 같은)을 하였으며, 둘째 본관이란 시조의 출신지 또는 그 씨족이 대대로 살아온 고장을 가리킨 것이며, 셋째 신라 말 고려 초 이후 성이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혈족계통을 전혀 달리하는 동성이 많이 생겨남으로써 이족의 동성과 구별하기 위하여 동족의 표시로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성의 분화과정에서 성만으로는 동족을 구별할 수가 없으므로, 조상의 출신지 또는 씨족의 거주지를 성 앞에 붙여서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본관이 곧 신분의 표시이기도 하였으므로 주로 지배층에 사용되었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성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신분질서의 유지와 효과적인 징세·조역의 필요상 일반 주민에게까지도 호적에 본관을 기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적제도가 정비된 고려시대부터는 성이 없는 천민층도 본관을 호적에 기입했던 것이다.

성의 분화와 같이 본관도 후대에 내려올수록 분관·분적이 늘어 시조의 발상지 외에 봉군지(封君地)·사관지(賜貫地) 또는 그 후손의 일파가 이주한 곳이 새 본관이 되었다. 한국의 본관체계가 최초로 확정된 시기는 고려 초이며, 그때부터 15세기 초까지 본관의 구체적인 모습이 담긴 기본자료는 『세종실록』 지리지 성씨조이다.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발전에 따라 기존의 대성과 명문들의 본관은 우월시되고 무명의 벽관은 희성·벽성과 함께 천시하는 관념이 만연되어 갔다. 그래서 기성 사족(士族)이 된 본관은 그 성씨가 계속 증가해 간 반면, 관인이나 현조를 내지 못한 본관은 개관(改貫)하는 추세에 있었다.

이를테면, 조선 전기에는 본관수가 수십이 넘던 성 가운데 조(曺)는 창녕 조씨, 한(韓)은 청주 한씨, 심(沈)은 청송 심씨, 문(文)은 남평 문씨 하는 식으로 본관의 개변이 많았다.

한국의 성씨는 16세기부터 성을 바꾸는 행위는 극히 드문 반면 본관을 개변하는 경우는 많았다. 왜냐하면, 성보다는 본관에 따라 성씨의 우열과 가문의 품격에 차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의 행정실무를 장악하고 있던 군현 향리의 사족화에 따라 본관의 개변이 자행되었고, 왜란·호란 후 모화사상의 영향을 받아 주(朱)씨는 신안(新安), 공씨는 곡부(曲阜), 천씨는 영양(穎陽)으로 바꾸는 예가 있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귀족들의 성씨 독점→민주주의 확립 후 일반 서민들의 작성(作姓)을 거쳐서 성씨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상술한 한국식 성씨를 정하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래 주석에도 있지만 이는 한국의 성씨가 만들어진 배경에 기인하는데, 대개 시민 혁명이 일어난 이후거나 봉건제가 소멸된 이후 만들어진 다른 나라들의 성씨와는 다르게, 한국의 서민 중 부자들은 전근대에 조세를 피하고 군역을 면하기 위해서 족보를 사거나 위조했다. 당연히 새로운 성을 만들 순 없고 다른 양반의 성씨를 빌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 1909년부터는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노비와 천민계급까지 모두 성을 갖게 되었는데, 노비의 경우에는 주인의 성씨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성씨를 주제로 한 금호타이어의 CF. 영상에는 34번째로 많은 까지만 등장한다. 다만 5번째 자리에 실제 5위인 씨 대신 41위인 씨가 대신 들어갔다.[1]

1.2. 현황

다른 나라와 달리 전체의 10% 안 되는 성씨들이 전 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극히 독특하다. 다른 나라는 하나의 성이 인구 1% 넘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특별한 경우라도 10%를 넘지 않는다. 그나마도 한국처럼 성을 한 음절로 정하는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 성씨라는 김씨는 인구의 20%에 육박하고, 김이박 3성으로 인구 40%를 찍는다. 이렇게 성씨가 편중된 나라는 한국과 베트남 정도다. '한양에서 돌을 던져 누가 맞으면 김이박 중 한명'이라는 농담도 있고, 오죽하면 동남아시아에도 소문이 나서 동남아 여행하는 한국 사람을 본 현지인 행상꾼이 '김사장님, 물건 싸요 사세요'를 외워서 외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같은 철자와 발음의 성씨라도 본관으로 인해 더 불어나는 것 또한 독특한 요소다. 게다가 보학 문화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잘 발달했음에도 조선 후기에 족보 위조가 횡행했다는 점에서도 한국의 성씨는 기묘한 연구 대상이다.

귀화인을 제외한 한국 성씨는 2003년 기준 286개이다출처.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중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씨를 제외하면 전 국민의 절반 밖에 남지 않는다(...) 게다가 성씨 종류 자체도 매우 적다. [2] 많이 쓰는 성씨만 해도 중국은 100~200개[3], 일본은 약 2100개로, 한국이 얼마나 성씨가 적은지 알 수 있다. 아울러 286개라는 숫자도 발음은 같아도 한자가 다른 성씨를 따로 집계한 것이고, 성씨를 한글로만 적었을 때는 100개를 조금 넘는 정도다. 이보다 더 심한 사례는 응우옌씨만 전 국민의 40%나 되는 베트남밖에 없다.

성씨 통계에 500개도 잡히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시 기준으로 그때부터 존재하고 있던 성씨만 조사에 넣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귀화계인 '존슨씨' 같은 것은 통계 순위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다만 조선족이나 재일 등의 한국계 외국인이 한자 성씨를 가지고 귀화할 경우 이런 경우는 귀국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통계에 새로 추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성씨가 같은 사람이 자주 나타나며, 성만으로는 희귀 성씨가 아닌 이상 사람을 구별하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라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따라서 성만으로 사람을 부르거나 지칭하는 경우는 뒤에 계급이나 직함이 붙는 경우(김 일병, 박 선생 등)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에 비하면 거의 없다. 게다가 기존 한국인의 창성을 금지하는 법이 성씨의 희소함에 한몫을 하기도 한다. 뭐 덕분에 성을 뺀 이름이 일종의 대물림되지 않는 성씨(?) 같은 역할을 하기는 한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부문에 따르면 5,582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지난 통계에 비해 급증하였는데[4], 이는 한자가 없는 성씨 4,075개까지 통계에 넣어 귀화성까지 추가된 것 때문이다.[5] 한자가 있는 성씨만 따져도 1507개로 5.27배로 폭증하였는데, 이는 중국, 일본계 귀화인이 원래의 성씨를 그대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성씨본관의 경우 36,744개로 김해 김씨가 전체 국민의 9%를 차지했고, 상위 10개 성씨가 전체 국민의 63.9%를 차지했다.#

북한으로부터의 월남, 6.25 전쟁, 그리고 산업화에 따른 인구이동으로 그 정도는 약해졌지만, 한국에서도 어느 지방에서는 흔한 성씨가 다른 지방에서는 드물어지기도 한다. 특히 본관별로 본다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북 지역으로 차(車)씨, 강(康)씨는 대부분 황해도 지방, 계(桂)씨, 선우(鮮于)씨는 대부분 평안도 지방, 동(董)씨는 대부분 함경도 지방에 많으며, 이남 지역으로 권(權)씨, 박(朴)씨는 경상북도, 곽(郭)씨, 하(河)씨는 경상남도, 신(辛)씨, 함(咸)씨는 강원도, 가(賈)씨, 임(任)씨 맹(孟)씨는 충청남도, 변(卞)씨 어(魚)씨는 충청북도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소(蘇)씨, 온(溫)씨는 전라북도, 정(丁)씨, 국(鞠)씨는 전라남도, 고(高)씨, 부(夫)씨, 현(玄)씨는 제주도에 많다.

2. 문화적 수입품으로서의 한국 성씨

전부 중국 성씨 아니냐는 태클을 종종 받기도 하지만, 일단 한국에 있는 주류 성씨들은 대부분 고유 계통이 맞다.

이를테면 신라왕성김씨박씨[6], 그리고 신라 건국 6성인 이씨, 최씨, 정씨(鄭), 손씨, 배씨, 설씨(薛), 그리고 허씨 등은 시조가 분명히 한인(韓人)이다. 하지만 시조가 한인이라고 그 성씨 자체가 한반도에서 유래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사람의 이름은 스페인식, 아이티 사람의 이름은 프랑스식 이름이나 성씨가 많다. 필리핀 사람이 고대부터 스페인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원주민들이 멸종하여 스페인인만 남게 된 것도 아니다. 라모스·에스트라다·아키노 같은 스페인식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어쩌면 스페인 귀족 가문의 후예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토종 필리핀 사람이 단순히 성씨만 차용하였을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지금의 한국 성씨도 비슷하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중국 성씨의 문화적 수입품이거나,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중국화한 결과물이다. 물론 초기 삼국시대에도 가문의 개념은 있었지만, 삼국시대 중반에 중국 문화를 차차 받아들이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후대에 점차 일반화·토착화한 게 한국의 성씨이다.

인명기록을 찾아보면 알 수 있지만 1자 성씨는 중국과 가까워 문화적 영향을 받기 쉬웠던 고구려에서 우선적으로 시작하여 신라에 전파되었고, 백제의 경우는 1자와 2자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특히 신라의 경우는 초기 비문에서는 부족명이나 존칭어까지 모두 이름에 합산하여 기재하는 등 좀 복잡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야의 경우와 비슷한 케이스.

물론 이는 일부 귀족층 한정이었고, 본격적으로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본관, 성씨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중국화하게 된 건 다양한 호족들의 출신과 가문을 본관성씨 체계를 통해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고려시대부터였다. 발해의 경우는 말갈족이나 피지배층은 몰라도 사절단의 인명을 볼 때 지배층은 중국식 성씨 및 3자 이름을 사용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그 중에는 박씨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 발해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도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현대 한국인의 성명은 (한자 번체로 써놓으면) 글자만 갖고는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국인과 닮게 되었다. 물론 이는 일본, 베트남 같은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들도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사항이기는 하다.

현재 한국의 성씨가 중국발 수입품이라는 것은 성씨가 거의 일반명사로서의 뜻이 없거나 알기 힘든 데서도 나타난다. 성씨도 결국 언어(굳이 한정하자면 낱말)이므로, 대개 일반명사에서 발전하거나 특수하게 한정되어 성씨로 쓰이기 마련인데, 한국의 성씨는 고유어 일반명사에서 나온 예가 극히 드물다.

"고허촌장 소별공이 양산의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에서 웬 말이 꿇어 앉아 울고 있었다. 다가사서 보자 말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고 큰 알만 하나 남았다 (중략) 커다란 알이 마치 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으므로 그의 성을 ‘박’으로 한 것이다."라는 삼국사기의 기사는 박씨가 박(식물) 모양의 알에서 박이라는 성씨를 지었다는, 한반도의 고유성이 틀림없음을 증명해주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7]

그러니까 배(裵)씨가 '배(梨)'나 '배(舟)'나 '배(腹)'와 관계가 있다거나, 이(李)씨가 '이(齒)'나 '이(蝨)'와 관계가 있는 게 확인되면 한반도 토착어에서 발전한 고유 성씨가 틀림없겠는데, 아무리 봐도 절대다수는 성으로 쓰인다는 것 이상의 언어적 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아 이거 중국에서 복붙해 온 모양이네" 하는 것이다.[8] 그 이상의 의미적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이들 글자가 어떤 일반적인 뜻에서 성으로 전이되었는지를 한문(중국어)를 통해 알아야 한다.[9]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한반도의 토착 인명은 지금과 너무나도 달랐다. 우선 고려시대에 작성된 삼국사기·삼국유사 같은 사서를 봐도 고대의 한반도 인명은 이름만 있거나, 성과 이름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오늘날 생각하는 성씨가 생각만큼 많이 쓰이지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당대의 인명을 보여주는 1차 사료(신라 금석문)를 보면 사람 이름이 성씨 없이, '출신지명 + 관등명 + 이름' 순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출신지명이나 관등명이 부분적으로 성씨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근대 이전에 성 없이 이름만 쓰이던 문화권은 얼마든지 있었고(터키페르시아가 비슷한 예) 여기에 그 사람의 직업이나 출신지를 덧붙여 동명인을 구별했던 걸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나마 백제의 경우에는 대성팔족이라는, 성씨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음이 기록에 남아 있다.

아무튼 삼국시대~남북국시대 때 성씨란 기껏 귀족들이 중국물 먹은 티를 내기 위한 과시용 정도였으나, 고려 조에 들어서 과거제가 도입되면서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어서 성씨제도가 꾸준히 정착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호족들의 출신과 가문을 본관성씨체계를 통해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본관성씨체계가 빠르게 정착했다.

고려 중후기로 넘어가면서 각종 전란과 이로 인한 유망민의 증가 때문에 의미가 없어졌지만, 고려 초기만 해도 본관이라는 건 그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으며 함부로 이동하는 것이 금지될 정도였다. 물론 양인, 천민 같은 경우는 토착인명을 줄곧 유지했으며, 조선말기까지도 그러했다.

물론 사람 이름이 중국화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만 보이던 현상은 아니다. 인명, 지명이 한화(漢化)된 대표적인 예는 유교 문화의 세레를 받고 과거제를 실시했던 베트남이 있으며(여기 왕족은 리(李), 레(黎), 쩐(陳)같은 성을 칭했다.), 과거 중원을 지배하거나 할거했던 이민족 왕조인 요나라, 금나라, 서하와 멀리는 류큐 왕국도 왕족, 귀족층에서 중국풍의 이름을 썼던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청나라처럼 특수한 사례도 있다. 청나라 멸망 이후 만주족들은 한족 치하에서 역관광당하며 살면서 중국식 이름을 지을 때 성을 금(金)으로 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것은 청나라 황족의 성인 아이신기오로에서 아이신이 금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여진족이 세운 나라 이름이 금나라였던 것도 이 때문. 이것은 나름 창씨개명할 때 조선인들이 보였던 작씨법(作氏法)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비한족의 이름이 한문으로 적히면서 멋대로 잘리거나, 외국인이 편의상 중국식 이름을 짓기도 했다. 중국인으로서는 2~3음절의 짧은 인명을 선호했으므로, 익숙치 않은 외국인의 이름을 적을 때는 처음에는 한자로 음역하다가, 점점 줄여서 쓰는 것이 흔했다.

중국의 무슬림이나 유대인의 경우 셈어 계통 인명의 첫 글자를 따서 성씨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무함마드에서 나온 마씨, 하산에서 나온 합哈씨가 있다. 한국에서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를 '석호필'이라고 불러서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도 비슷한데, 이런 식으로 오언(Owen)은 오원(吳元)선생이 되고, 베델(Bethel)은 배설(裵說)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비교적 근대기 인물이라서 그렇지,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오언이 오원이 된 까닭을 알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에는 1음절에 중국과 겹치는 한자를 쓴 성이 주종이고, 두 글자 복성도(제갈, 남궁, 사공, 독고 등) 중국 귀화성이 주류이나, 역사적으로 성의 양상은 훨씬 다양했는데, 예를 들어 삼국시대 백제 인명에서는 독특한 복성 부여(扶餘)[10], 흑치(黑齒)[11], 사택(沙宅) 등의 사용이 보이며, 고구려 인명에 보이는 을지(乙支)나, 을(乙), 명림(明臨) 등 고구려 계통의 성도 보인다.

다만, 을지의 경우는 을+존칭의 접미사라는 설도 꽤 유력하며[12] 고구려 인명의 경우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음절 성씨를 사용하였다.[13] 따라서 복성을 가장 많이 사용한 건 백제였다.[14]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일본서기에 그의 이름이 "이리카스미"로 적혀 있어 연(淵)으로 적어놓고 훈독을 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러한 고구려, 백제계 성씨들은 신라가 병합한 이후로 거의 사라진 후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단, 남북국시대당나라의 문화가 동아시아의 표준 규범으로 자리잡으면서 발해 또한 중국식 문화를 수용하게 되어 중국식 1자 성씨를 지배층에서 주류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성씨의 대부분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세계를 세기 때문에[15] 사실상 고려시대부터 성씨제도가 정립되고, 이때 형성된 성씨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다만 오늘날엔 이 문제가 중국동북공정과 맞물리는 바람에 다소 피곤한 논제가 되어 버렸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동북공정의 '중한간 성씨 고찰'이라는 항목에서 한국의 성씨 대부분이 한족 계열이라는 내용을 실었다가, 2006년 9월에 뉴스 보도가 되었을 정도로 시끄럽다. 엄밀히 말해 한국 성씨, 정확하게 말해서 족보 상으로는 상당수의 한국 성씨의 시조가 중국인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술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시조들은 거의 대부분이 숭조사업의 결과물로 날조된 것이기 때문에[16][17] 크게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하플로그룹을 통해 보다 명확한 추적이 가능해졌는데, 특히 부계의 이동경로를 나타내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을 통한 연구결과는 이미 족보상의 내용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18]

3. 귀화성(歸化姓)

현존하는 성씨들의 족보에서는 상당수가 시조를 중국에서 넘어온 한족으로 하고 있지만 거품이 굉장히 많이 끼어있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믿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신라계열 성씨를 제외하면 한국의 성씨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시조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강했기 때문에 시조가 중국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집안의 품위를 높여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풍토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씨는 고려 시대에 들어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서 고려 이전에 중국에서 온 시조가 존재한다는 얘기는 뻥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조선 후기에 진행된 족보 위조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기에 사실상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는 족보는 거의 없다.[19][20] 대부분의 경우 무덤과 기록 등의 추적을 통해 위조 여부를 추적할 수는 있다고 한다. 관련 자료

그 외에 순한국계/한족계가 아닌 뿌리도 일부 존재한다. 화산 이씨(베트남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이 시조), 덕수 장씨(고려 충렬왕 때 한국에 귀화한 위구르계 장순룡이 시조), 김해 허씨(인도에서 건너온 허황옥이 연원이고, 시조는 가야 수로왕의 차남과 삼남이다.), 사성 김해 김씨(임진왜란조선으로 귀순한 일본의 무장 김충선(일본명 사야가)이 시조) 등. 이참(이한우)의 독일 이씨와 로버트 할리(하일)의 영도 하씨, 디디에 세스테벤스(지정환)의 임실 지씨도 근래에 이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외국에서 귀화한 사람들이 성을 그대로 보존하는 경우, 귀화 성씨라고 해서 한국의 성씨로 인정된다. 이 귀화 성씨는 총 442개로 토착 성씨보다 1.5배 많다. 동남아시아 계열(그중에서도 필리핀계가 압도적)이 가장 많고, 일본이나 중국의 귀화 성씨가 그 뒤를 따른다. 일본계의 귀화 성씨로는 망절(網切)씨나 ()씨, 황목(荒木)씨 등이 있다. 프랑스계 성씨도 있는데 도시씨가 있다.[21]

2000년대 이후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외국인들의 창성(創姓)·창본(創本)이 많아져 희귀성과 희귀본의 숫자가 늘고 있다. 다만 2009년도 모월 이전까지는 창성창본이 아닌 기존 본에 편입되는 식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창성 창본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관련 기사

천방지축마골피 성은 천민 출신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도 있었던 모양. 일단 한국의 성 중 음이 맞는 것이라도 노비 성이었다는 성의 한자는 다르다. 몇몇 성은 아예 있지도 않고.

3.1. 조상이 같다고 보는 성씨들

본관은 다르지만 같은 조상을 모셔서 명목상 동성동본으로 삼는(또는 그렇게 간주하는) 성씨의 일람. 이성동본(異姓同本)이라 하기도 한다. 이곳에 가면 자신의 본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동성동본금혼법이 있을 당시, 법적으로는 혼인이 금지되지 않았으나 인습에 의해 혼인을 하지 않았다.
  • 신라계 박씨
    신라의 박씨 왕조의 후손들. 중국에도 한족화한 신라방 출신의 후손들이 있다. 대부분 경명왕 계열, 그 중에서도 특히 밀양 박씨가 많지만, 경명왕의 다른 왕자나 혹은 경애왕계 등의 이본(異本)도 있으므로 일반화는 금물. 밀양 박씨는 단일파로 김해 김씨 다음으로 랭크되어 있는 것이 특이점[23]. 그리고 "朴"이라는 글자를 쓰는 성씨는 전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에만 존재한다. 중국인이 이 성씨라면 조선족이거나 귀화한 후 한국식으로 이름을 개명한 경우다.
  • 제주 양(梁)씨, 고(高)씨, 부(夫)씨
    세 성씨의 조상은 각각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라는 제주도 사람으로, 같은 성씨 안에서는 아무리 본이 달라도 동성동본으로 생각한다[26]. 참고로 고구려 동명성왕을 시조로 하는 횡성 고씨와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횡성 고씨는 대략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강원도 횡성과 영월 지역 주변에 많이 거주한다.
  • 충주 지(池)씨와 충주 어씨
    원래 지(池)씨였던 어씨의 시조 어중익이 나중에 사성(賜姓)받은 경우.
  • 영양 김씨와 남씨
    시조 김충은 중국에서 사신으로 일본으로 가다 안록산의 난으로 신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때 신라왕에게 남민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서 그 후손들이 남씨를 따랐으나 일행에 있던 맏아들 김석중은 사성 전에 태어났기에 김씨를 그대로 썼다.
  • 서촉 명씨창평 승(昇)씨
    고려 말기에 귀화한 명승은 중국 사천에 대하(大夏)[27]라는 나라를 세운 왕인 명옥진의 아들이었는데, 명나라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하자 명나라한테 망한 명씨 주원장에게 붙잡혀 고려로 유배당했다. 이 과정에서 명승의 아들 중 한 명인 명신이 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집을 떠나 성을 자신의 아버지의 함자로 바꿨다고 한다. 야사에 의하면 조선 용포의 디자인을 짠 사람이 바로 명승과 함께 고려로 유배온 명승의 어머니라고 한다. 흠좀무. 용재총화에 나온 이야기로, 명승의 어머니는 짧게나마 황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곤룡포는 항목에도 나오듯이 명나라에서 기본 디자인과 샘플 의상을 보내준 그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야사로 봐야 할듯.
  • 남양 제갈(諸葛)씨, 칠원 제(諸)씨, 남양 갈(葛)씨
    제갈규(제갈량의 아버지)의 20대손 제갈공순이 신라 흥덕왕 때 귀화를 했는데(신라 미추왕 때 제갈규의 5대손 제갈충이 귀화를 했다는 설도 있다.), 고려 고종 때 이들의 자손인 제갈홍(諸葛泓)과 제갈형(諸葛瀅) 형제가 분성을 해서 형인 제갈홍은 제씨, 동생인 제갈형은 갈씨로 서로 갈라졌다. 그리고 이들의 후손 중 일부는 조선 고종 때 성씨 복원 운동으로 다시 제갈(諸葛)씨로 복성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들의 족보를 보면 조상 중에 제갈량이 있기 때문에 국내에 무후사가 있다.
  • 진주 소씨와 경주 최씨
    신라 초기 6촌(후의 6부) 중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의 아들 최대벌리가 최씨를 사성받아 그의 후손 최치원이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다른 아들 소해리는 본래의 성을 이어 그의 후손 소알천이 진주 소씨의 시조가 되었다.
  • 문화 류씨와 연안 차씨
    류/차 논란 참조. 연안 차씨 족보에 따르면 연안 차씨의 시조는 신라 시대 귀족 차무일이며, 33대손 차승색이 신라 헌덕왕의 쿠데타에 반대하여 헌덕왕을 암살하려다 발각되자 체포를 피하기 위해 류씨로 변성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38대손 류차달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로로 원래 성인 차씨가 복원되어 첫째 아들에게는 차씨, 둘째 아들에게는 류씨를 물려주게 되었다고 한다연안 차씨측 주장. 반면에 문화 류씨 족보에 따르면 두 성씨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여문화 류씨측 주장 현재 두 가문 사이에 논쟁 중이다[28].
  • 청주 한(韓)씨 와 행주 기(奇)씨, 태원 선우(鮮于)씨
    청주 한씨 족보에 의하면 청주 한씨는 기자조선에서 연원한다고 하며, 마한 말기의 삼형제가 각각 성을 받아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계보는 실전되었고 실제로 각 성씨의 시조 기록은 고려 중기로 내려온다. 물론 이들이 진짜 기자의 후손인지는 미지수. 애초에 기자조선 자체가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3.2. 등록된 성씨 목록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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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꼴은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된 인구로 계산)
· · · · · 강전 · · ·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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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공 · · · · · 서문 · · · 선우 · · · · · 소봉 · · · · · · · · ·
· · · · · · 어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곡 · · · · · · 제갈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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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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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등록된 본관 목록(가나다순)

강릉 김씨 강릉 최씨 개성 왕씨 기계 유씨
경주 김씨 경주 빙씨 경주 이씨 가화 건씨
거창 신씨 경주 최씨 고령 박씨 고령 신씨
고창 오씨 곡부 공씨 광산 김씨 광산 이씨
광주 안씨 광주 이씨 김녕 김씨 김해 김씨
남양 홍씨 남평 문씨 능성 구씨 단양 우씨
달성 서씨 덕수 이씨 동래 정씨 무안 박씨
문화 류씨 밀양 박씨 밀양 손씨 반남 박씨
서흥 김씨 성산 이씨 성주 도씨 성주 이씨
수성 최씨 수원 백씨 순천 김씨 순천 박씨
순흥 안씨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양주 조씨
여산 송씨 여양 진씨 여흥 민씨 연안 김씨
연안 이씨 연일 정씨 영도 하씨 영산 신씨
예천 권씨 옥천 전씨 온양 방씨 우봉 이씨
울산 김씨 원주 원씨 인천 이씨 의성 김씨
이천 서씨 전주 김씨 전주 류씨 전주 이씨
전주 최씨 전의 이씨 진성 이씨 진주 강씨
진주 하씨 창녕 성씨 창녕 조씨 천안 전씨
청송 심씨 청안 이씨 청주 정씨 청주 한씨
청풍 김씨 충주 박씨 파평 윤씨 평산 신씨
풍산 홍씨 풍양 조씨 한양 조씨 함안 조씨
함양 박씨 함창 김씨 함평 이씨 해주 정씨
해주 최씨 해평 윤씨

4. 한국의 성씨 분포

한국의 성씨별 인구 분포, 한국의 지역별 성씨 순위 문서로.
2015년 기준 각 시/도별로 인구가 가장 많은 10개의 성씨는 다음과 같았다. 특정 지역에서 유독 많이 나타나는 성씨(전국 순위가 10위 밖이지만 특정 지역에서 10위 안에 들어간 성씨)는 볼드체로 표시했다.
/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7위 8위 9위 10위
서울특별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강(姜) 윤(尹) 장(張) 임(林)
인천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강(姜) 윤(尹) 장(張) 한(韓)
경기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강(姜) 윤(尹) 장(張) 한(韓)
강원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장(張) 윤(尹) 조(趙) 전(全) 권(權)
충청북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윤(尹) 장(張) 신(申) 강(姜)
대전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송(宋) 조(趙) 윤(尹) 오(吳)
세종특별자치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정(鄭) 임(林) 윤(尹) 강(姜) 조(趙) 오(吳)
충청남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윤(尹) 강(姜) 장(張) 한(韓)
전라북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임(林) 장(張) 오(吳)
광주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임(林) 윤(尹) 장(張) 오(吳)
전라남도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장(張) 조(趙) 서(徐) 윤(尹)
대구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권(權) 장(張) 윤(尹) 서(徐) 강(姜)
경상북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권(權) 장(張) 강(姜) 윤(尹) 황(黃)
부산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윤(尹) 조(趙) 장(張) 서(徐)
울산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윤(尹) 권(權) 장(張) 서(徐)
경상남도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조(趙) 윤(尹) 서(徐) 장(張)
제주특별자치도 김(金) 이(李) 고(高) 강(姜) 박(朴) 양(梁) 오(吳) 강(康) 정(鄭) 문(文)
전국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한편 (전국 기준)인구수가 가장 많은 10개 성씨의 지역별 인구 대비 비율은 다음과 같았다. (단위: %)
/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서울특별시 21.17 15.07 8.19 4.68 4.18 2.11 2.22 2.26 2.00 1.70
인천광역시 21.19 15.05 8.02 4.85 3.97 2.14 2.39 2.14 2.10 1.66
경기도 20.98 15.43 8.14 4.78 4.08 2.16 2.27 2.14 2.01 1.67
강원도 22.54 14.46 7.98 6.25 3.93 1.64 1.92 1.94 2.07 1.35
충청북도 20.40 15.36 8.09 4.42 4.16 1.88 2.28 2.19 2.18 1.73
대전광역시 20.36 15.16 8.36 4.25 4.07 2.36 2.21 2.18 1.74 1.84
세종특별자치시 19.75 15.25 8.04 4.38 3.80 2.25 2.05 2.38 2.02 3.14
충청남도 20.79 16.07 7.94 4.77 3.88 2.26 2.48 2.28 1.95 1.74
전라북도 21.19 13.94 8.14 5.45 3.97 2.66 2.22 1.50 2.03 2.05
광주광역시 22.84 12.13 9.40 4.62 5.01 2.43 1.81 2.02 1.95 2.04
전라남도 23.45 11.66 10.14 4.48 4.87 2.76 2.11 1.94 2.26 1.77
대구광역시 21.39 15.35 8.88 4.50 4.49 1.83 1.63 1.97 2.19 1.46
경상북도 23.00 14.92 8.62 4.86 4.49 2.03 1.69 1.94 2.27 1.71
부산광역시 22.24 13.79 9.22 4.48 5.09 2.90 1.86 1.96 1.83 1.44
울산광역시 23.05 14.71 9.34 5.03 4.65 2.23 1.66 1.97 1.89 1.42
경상남도 21.49 13.61 9.11 4.23 5.43 3.59 2.55 1.91 1.67 1.41
제주특별자치도 23.80 10.25 5.17 1.88 2.62 5.36 1.49 1.53 1.51 0.94
전국 20.66 14.12 8.10 4.51 4.16 2.27 2.04 1.97 1.92 1.59

5. 이름글자로 쓰는 경우

정, 윤, 한, 원, 현, 하, 민, 우, 서 등 상당수 성씨는 이름글자로 쓰기에 적합한 어감을 가져 이름에도 흔히 쓰이며[29] 이런 성씨 외에도 대부분의 성씨는 이름에 드물게나마 쓰인다. 김, 박, 최, 곽 등은 이름글자로 쓰기 부적절한 어감이므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윤박은? 박은 그나마 낫다.

6. 기타

몇 년 전에 롯데카드가 롯데DC카드를 런칭하면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롯데카드 회원의) 모든 성씨 한 명씩을 롯데월드로 초대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추첨 접수 이벤트 페이지를 보면 롯데카드 가입자의 성씨를 모두 작성해 놓았는데(해당 성씨가 두 명 이상일 경우 추첨), 김 씨는 당첨 확률이 로또였지만 일부 성씨(영어 성씨도 있었다)는 경쟁률이 1:1(…)이었다.

북한에도 현재 남한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희귀 성씨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을지'씨나 '치'씨 등. 전자는 국가과학원산하 기계공학연구소 실장 을지기호가, 후자는 평양시제2인민병원 산부인과 과장 치인옥이 있다. 오타 아닐까 싶겠지만 한 번만 나온 것도 아니고 2번 이상 반복해서 등장했으니 오타일 리는 없다.그보다 오타면 얘네 큰일난다 을지씨야 고구려 띄우기에 혈안이 된 북한 특성상 을지문덕의 후손인 목천 돈씨를 을지씨로 바꿔버렸다 해도, 치씨는 대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7. 본관에 따른 성씨 표기

*쓸 수있는 한자가 한개인 경우:고,곽,궉,권(안동,예천),김,나(라),남,대,낭(랑,양주,진주),동방(청주,진주),류,[30]
매(충주,해주),명(서촉,연안),문,미(재령,방산,유성)박,배,백,손,서,섭,성(창녕,강릉),송,심,아,안,애(한양,전주,영풍),야,어(함종,충주,경흥),엽(충주,경주),염(렴-파주,용담)
오,온,왕,윤,음(죽산,괴산),인(교동,연안),자(요양,해주,중원),점(괴산, 나주, 압해, 영광, 창원, 한산),제(칠원,의성,보성,고성),창,최,탄(해주,진주),
태(협계, 영순, 남원, 밀양, 통천),팽(용강,절강),피(홍천,단양,괴산),한[31],함(강릉,양근),허,현,형(장흥,진주),홍,화(진양,나주),황,황보(영천,황주)

*본관이 한개인경우(괄호칸이없는 경우에는 본관이 불분명한 성씨임):가(소주),간(가평),강전(일본계),감(회산),갈(남양),개(여주),계(수안),관,교(진주),군(남원),궁(토산),근(청주),금(봉화),기(행주),길(해평),난(란,충주),남궁(함열),뇌(뢰-교동),누(용궁),다,담(등주),당(밀양),독,독고(남원),
동(광천),등정(산성-일본계),만,망절(일본계),맹(신창),목(사천),묘(성산),무,무본(일본계),묵(광녕-중국계),
민(여흥),번,복(면천),부(제주),비(농서),빙(경주),사공(효령),산,삼(부여),상(목천),서문(안음),선(보성),선우(태원),소봉(공주-일본계),십(일본계),
어금(청도),엄(영월),예(의흥),요(수원),용(홍천),완(중국,베트남계),육(옥천),옥(의령),장곡(일본계),저 ,즙(일본계),제갈(남양),좌-준(청주),
차(연안),총(중국계),쾌(전주),춘(남양),탁(광산),탕(중국,베트남계),판(해주),평(충주),포(풍덕),표(신창),풍(임구),학(산동),환(평양),황목(일본계)

*복수표기:강,견,곡,공,경,구,국,내(개성,나주),노(로),도(성주,고성),돈(목천,청주),두(두릉-만경,고산),단,등(중국계),마,모(함평,광주),방,반(거제,남평,광주-창원,진주),
범(금성,안주),보,변,봉(하음,경주,제주),빈(대구,수성,담양,영광),사,석,설(순창,경주),소,수,순,승,시(태인,절강),
신,양,여,연,영,옹,우(단양,목천),운(전주,함흥-장흥-청주),원,위(장흥,강화),유(버들류 제외),은(행주,태인.고부),이(리),임(림),잠,장,전,정,조,종,주(나주,신안,상주,초계)
,증(연일,강화-부상),지,진,채,천(영양,영안),초[32],추(추계,전주,추나라),편(절강,희천),필(대흥, 여주, 배음, 추자,대만계),
하,해(김해,영암,풀해),호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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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련 문서




[1]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나, 정(鄭)씨는 범 현대계열 소유 가문이고, 구(具)씨범 LG계열 소유 가문이다. 그 와중에 댓글이 장난이 아니다. 야구선수 성씨 ㄷㄷ[2] 중국의 성씨는 약 1600~4100개, 일본은 12만~28만 개, 베트남은 700~800개 정도.[3] 상위 100개가 인구 85% 차지.[4] 2000년의 430개에 비해 12배 이상 증가.[5] 다만 여전히 귀화성은 각 성씨별로 몇 명 존재하는지 (5명이 넘어도) 공개되지 않는다.[6] 다만 신라의 왕가 중 석씨는 시조 석탈해가 바다를 건너온 외국인 출신이다. 그러나 '성씨를 만들었다'는 개념에서 볼 때는 석씨 또한 신라에서 만들어진 성씨이다.[7] 이렇게 중국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중국에는 박씨가 매우 드물고, 일부 있어도 한반도의 박씨와 부분적으로 연관된 조선족, 만주족이나 그 혼혈 등인 경우가 많다.[8] 비주류 성씨 가운데 어원이 본디 고유어였을 가능성이 있는 성씨는 앞서 설명한 박씨 외에 제주 양(梁 ← 良)씨·제주 고(高)씨·제주 부(夫)씨, 그리고 궉(鴌)씨가 있다. 양씨·고씨·부씨는 각각 탐라 건국설화의 삼성혈 전설의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를 시조로 하는데, 乙那는 소리값이나 표기한자를 보아 탐라어를 뜻과 관계없는 한자로 적은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양·고·부도 현재로선 어원이 불확실한 탐라어의 접두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중국에서 부씨는 극히 희귀한 성씨이기 때문에 박씨와 함께 한국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성씨이기도 하다.) 한편 鴌의 독음은 '봉'이고 뜻은 '봉황'인데 궉이라는 독음은 한국에서만 쓰는데다가 그 뜻이 '꿩'이다. 다시 말해서 '꿩'이라는 고유어가 '궉'이라는 한자음으로 굴절된 것이다. 현재 궉씨는 명나라에서 귀화한 중국인을 일단 족보상으로는 시조로 하고 있지만, 이런 사정을 따져볼 때 이것은 아래에도 나올 실제 혈통과 전혀 관계 없이 조상을 중국인으로 지어낸 대표적 사례로 볼 수도 있겠다.[9] 다만, 지금은 음독하여 중국화한 성씨가 사실 토착어 유래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도 있다. 소(蘇)를 쇠(鐵)의 변형으로 보아 소씨와 김(金)씨가 서로 통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쇠와 발음이 비슷한 최(崔)씨의 시조가 마침 김씨가 다스렸던 나라인 신라 초기의 인물인 소벌도리(蘇伐道理)라고 하는 걸 보면 뭔가 의미심장.[10] 왕성(王姓)으로 부여 대신 여(余)만 이용해 1음절로 쓰면서 이천 서씨가 되거나 일부는 의령 여씨로 남아있다. 여(餘)와 비슷한 한자인 서(徐)로 성을 바꾸었다.[11] 흑치의 한자 뜻을 그대로 해석해서 이를 검게 물들이는 동남아 및 일본의 풍습과 관련지어 남방민족 계통 성씨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견강부회일 뿐 사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12] ~지는 삼국시대고구려부터 가야까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보편적인 존칭접미사로 쓰였다.[13] 훈독을 했을 수는 있으나 한자 자체는 1글자인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중국과 거리가 가장 가까웠으며 중국의 여러 군현을 정벌하고 투닥거리는 과정에서 중국계 인구를 가장 많이 흡수했기 때문에 그런 문화의 흡수가 빨랐던 걸로 추정된다.[14] 이 때문에 백제의 복성이 일본의 복성에 영향을 주었다라는 추정도 있으나 실제 일본에서 복성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게 된 건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기존의 성(姓) 대신 영지명을 씨(氏)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오히려 헤이안 시대 일본의 최상위 귀족들의 성씨인 4대 본성 '겐페이토키츠(源平藤橘)'는 후지와라(藤原)氏를 제외하고 모두 단성이었다. 이는 미나모토(源)氏, 타이라(平)氏, 타치바나(橘)氏가 한문으로 단성이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성씨 제도가 완전히 정착하기 전의 일본 귀족의 이름은 관직명, 영지명, 존칭 등을 다 붙여서 굉장히 복잡한 모습을 보이며, 이는 백제보단 오히려 초기 신라가야의 이름 형태와 유사했다.[15] 이전은 세계가 실전되었으며, 따라서 중시조 누구부터 센다라는 식으로 기록된 경우가 많다.[16] 심지어 고유 계통인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조차도 삼국시대 당시에는 숭조사업의 일환으로 흉노의 소호금천씨나 김일제를 조상으로 날조한 흑역사가 있다.(흉노족 신라왕족설) 역사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병크를 터트렸던 사례로는 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부 날조 사건이 있다. 신라 때의 김일제야 까마득한 옛날 사람이지만 고려 왕실은 숭조사업을 통해 왕건의 증조부를 별로 시대차도 안 나는 당숙종 황제라고 날조했는데, 원나라 때 중국 학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대놓고 물어봤다가(당숙종은 안사의 난 때문에 당나라를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고려는 당숙종이 한반도까지 왔다고 날조한 것) 고려 측에서 간신히 얼버무리는(당숙종이 아니라 당선종이 그랬다고 얼버무렸다) 엄청난 외교 스캔들을 일으킬 뻔 했다.[17] 이런 숭조사업은 한국만 그랬던 게 아니라서 서양에서도 그 당시 기준으로 온갖 오랑캐 야만족들이 "엉 우리는 사실 알고 보면 그리스계 후손이야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에 나오는 XX가 YY지방으로 이주했다고 하지? 그게 사실 우리 조상이야" 식의 개드립을 치는 일이 빈번했다. 중국의 주장을 의미 있게 받으면 현재 수많은 서구인들이 곧 그리스다.[18] 한 성씨에서 여러 부계지표가 발견된다거나 족보에 따르면 조상이 중국에서 왔는데 정작 Y염색체 하플로그룹상으로는 중국에선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 부계지표가 발견된다거나.[19] 족보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절대 다수 이상이 위조된 (양반의)성씨다. 자연 증가의 경우 아무리 높게 쳐도 현재 양반 인구가 전체의 3%를 절대 넘을 수 없다고. 동성동본 결혼 금지법이 허황된 이유 중 하나다. 대한민국 국민들 중 상당수는 높은 확률로 조상님 중 누군가가 돈을 많이 벌어 족보를 구입하거나 별보로 우겨넣었다고 보면 된다. 제일 많은 경우는 조선왕조가 망할 때나 대한민국이 새로 건국될 때 호적을 새로 작성하면서 어거지로 끼어넣은 경우가 많았다.[20] 게다가 계급 제도가 폐지될 즈음인 19세기 말에는 아예 양반들이 자기 성씨를 노비들에게 직접 주는 일도 벌어졌다. 신분제 폐지 기념 선물. 우리가 남이가 어떤 집안은 집안의 노비 300명이 모두 같은 성을 받고 평민이 되었다고 한다.[21] 사실 이다도시 혼자만 쓰는 성씨다(...).[22] 안동 권씨, 수성 최씨, 광산 이씨, 감천 문씨 포함.[23] 보통 성씨의 랭크는 김, 이, 박 順이나 단일 성씨로는 밀양 박씨가 전주 이씨보다 많다. 상기한바와 같이 박씨의 거의 대부분이 밀양 박씨이다.[24]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두 집안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김수로왕 후예 김유신의 둘째아들 김원술을 시조로 한다. 김해 김씨 (법흥파)도 제외함[25] 항왜 김성인을 시조로 삼는다. 함박을 본관으로 쓴 건 대한민국 개국 이후고 그 전에는 김해 김씨를 사용했다. 그의 후손들 중 다수는 지금도 김해 김씨로 남아 있다.[26] 단, 한족계 성씨인 양(楊)씨는 제주(남원) 양(梁)씨와 다른 성으로 본다.[27] 명하(明夏), 혹은 촉하(蜀夏).[28] 문화 류씨 대종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미 종결된 논란이라는 입장이다. 차씨와 류씨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차씨가 류씨에 속하려 속였다는 증거를 찾아내어 전혀 다른 성씨라는 주장이 게재되어 있다.[29] 하지만 한자는 다른 경우가 많다.[30] 경우에따라 유로 읽지만 유씨는 따로있다.[31] 충주를제외한 나머지는 한국한[32] 조씨와 혼동을 줄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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