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09:48:39

능성 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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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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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 구씨 (능주 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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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시조 구존유(具存裕)
집성촌 경기도 광주시, 하남시
충청남도 공주시, 당진시
충청북도 보은군, 음성군, 옥천군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와리
전라남도 화순군
경상북도 김천시
인구 172,243명
1. 개요2. 역사3. 기원4. 항렬5. 실존인물
5.1. 25세손5.2. 26세손5.3. 27세손5.4. 28세손5.5. 29세손5.6. 30세손

1. 개요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고려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냈다. 능성 구씨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유력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속적으로 관직에 진출하고, 조선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현대에는 LG그룹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2. 역사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영검(具榮儉), 6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문정공(文貞公) 구위(具禕)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구흥(具興)과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구의(具義)가 있다. 고려 말 좌시중(左侍中) 7세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은 조선의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하여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능성 구씨는 무인의 명가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구사직(具思稷), 훈련대장 등을 지낸 구굉(具宏), 어영대장인 구인후(具仁垕), 총융사(摠戎使)인 구인기(具仁墍), 어영대장인 구문치(具文治), 총융사인 구감(具鑑), 훈련대장인 구성임(具聖任), 훈련대장인 구선복(具善復) 등이다. 이 중 구굉·구인후·구인기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또한 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구치관(具致寬),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낸 구치홍, 성종 때 상주목사를 지낸 구치명, 경상우도절도사를 지낸 구겸,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정국공신(靖國功臣)인 구현휘(具賢暉)·구수영(具壽永),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인 능원군 구문신(具文信) 등이 있다. 중종의 부마 구사안(具思顔), 인조의 외조부이며 이조판서·좌찬성·숭록공신(崇祿功臣)에 오른 구사맹(具思孟), 시문에 뛰어나고 관찰사·참판·대사헌을 지낸 구봉령(具鳳齡) 등이 있다. 조선의 왕족으로는 원종의 비 인헌왕후(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어머니)가 있다. 능성 구씨는 영조대(英祖代)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 권력의 핵심에서 가문의 세를 떨쳤다.

《능성구씨사료집》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총 56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진사 144명, 문과 55명, 무과 363명으로 무과 출신이 65%를 차지한다. 이를 파별로 보면 도원수파 359명, 판안동파 72명, 좌정승파 42명으로 역시 이들 3파가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무과 출신 가운데 영조 때까지 종2품의 장신급(將臣級)이 9명이나 배출되었는데, 이는 그때까지의 장신 총수의 12분의 1에 해당한다.

3. 기원

능성 구씨의 시조 구존유가 1224년 주잠과 함께 중국에서 도래하였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중국에 있는 신안 주씨의 기록에 구존유는 고려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224년 이전부터 호남 지방에 토착 구(具)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후백제가 멸망한 뒤 나주(羅州)에서 포로로 잡힌 후백제 장군 구도(具道)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고, 궁예의 태봉국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918년(태조 1) 나주도(羅州道) 대행대(大行臺)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1101년(고려 숙종 6년)에 탁라(乇羅) 성주(星主)인 배융부위(陪戎副尉)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씨(具氏)가 예로부터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대종회에서는 역사서를 근거로 중국 도래설을 반박하고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첫째, 고려 이전에도 호남 지방에 토착 구씨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둘째,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역사서에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로 기록된 점이다. 셋째, 중국 측 주씨의 기록에는 구존유가 고려인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편찬된 신안 주씨의 족보를 토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임을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은 역사 사실과 맞지 않다. 넷째, 현재 중국에는 구(具)씨 성을 가진 씨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은 모화사상에 기초하여 중국과의 관련성을 부각하고자 했던 시도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4.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보통 25~29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 특히 자(滋), 본(本)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서, 성이 '구본', '구자'씨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25세○서(書)
26세○회(會), ○선(善)
27세자(滋)○, 윤(潤)○
28세본(本)○, 동(東)○
29세○모(謨), ○휴(烋)
30세교(敎)○, 재(在)○

5. 실존인물

기업인인 사람들은 대부분 LG그룹 가문이다. 범 LG가 참고.

5.1. 25세손

5.2. 26세손

5.3. 27세손

5.4. 28세손

5.5. 29세손

5.6. 30세손


[1] 1948년에 데뷔한 원로 성우가 맞다. 현재 이 나이대의 능성 구씨 사이에서 항렬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2] 항렬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아 항렬자로 이름을 지은것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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