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13:06

순(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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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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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荀1.2. 舜1.3. 順1.4. 淳1.5. 筍1.6. 旬
2. 나무위키에 등재되어 있는 순씨 인물
2.1. 실존 인물2.2. 가상 인물

1. 개요

총 6가지가 있으며 다 합쳐도 넉넉잡아 2천 명이 안되기 때문에 굉장히 유니크한 성씨이다.

1.1.

시조는 순경진. 본관은 홍산, 임천, 창원, 연곡 4곳으로 전해지나 현재 홍산본이 순씨 인구의 80%가 넘는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홍산 단본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주나라 문왕의 아들중 한명이 순후(荀侯)에 봉해지자 그 후손이 자신들의 성을 순으로 삼은게 그 시초. 삼국지 덕후들에겐 의외로 익숙한 성씨일텐데, 바로 순욱순유가 이 성씨이기 때문이다. 즉 이런 성이 있다는건 아는데 그 성이 한국에도 있다는건 잘 모른다.

현재 대한민국의 순씨가 한반도로 이주한 시기 및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략 후삼국시대~고려 초 정도로 추측 가능하다. 시조 순경진은 고려 목종때 진사를 지냈다. 그러다가 현종때 순응이 왕의 이름[1]과 발음이 같다 하여 성을 손으로 고쳤고, 이것이 일직 손씨(안동 손씨)의 기원이 되었다. 목종의 다음 왕이 현종이니 거의 고려에 정착하자마자 성씨를 고친 셈이다. 아마도 일족 전체가 성을 고쳤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거부했거나 현종이 죽은 후 다시 순씨로 돌아온 사람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듯하다.

조선 세조때 순한양이 충청도 홍산현[2]에 정착하여 관향으로 삼았다. 그 후 조선 선조때 몇몇 일족이 이몽학의 난[3]에 가담했다가 일족 전체가 역적으로 몰려 참살되거나 성을 고치는 참사가 일어나며 크게 쇠락했다. 2015년 통계청 조사 결과 791명으로 집계되었다.

1.2.

시조 미상. 본관은 파주, 임천, 순흥

요순시대 순임금의 바로 그 순이다.[4]

마찬가지로 1930년 일제의 국세조사때 처음 나타난 성씨인데, 1924년 간행된 <조선씨족통보>에서는 중국 허둥[5] 지방에서 건너왔다고 기록되었으니 최소한 그 이전에 한반도로 이주한건 확실해 보인다. 당시 중국도 보통 난리통이 아니었으니...

그러나 당시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있던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가 당시 국세조사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조선의 성씨에 대한 연혁, 종류, 분포 및 집성촌 등을 분석한 보고서인 《朝鮮の姓》 중 '稀姓の所在'의 舜씨 항목에 따르면
1930년 10월 1일 당시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박리에 살던 순원오(舜元五)는 원래는 순(荀)씨였는데, 본인이 배운 것이 없어서 어느 시기에 지금의 순(舜)씨로 변하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으며, 같은 시기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대광리에 살던 순임순(舜任順)[6]은 4대 전에 충청남도에서 지금의 순천으로 이주해왔다고 증언한 바가 있다.[7]
이 두 사람의 증언으로 미루어 본다면, 舜씨를 이루는 구성원 중에는 중국 하동 지방에서 건너온 舜씨의 후예 뿐만 아니라 荀씨를 잘못 신고한 사람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통계청 조사 결과 147명으로 집계되었다.

1.3.

시조 미상. 본관 없음

역시 1930년 일제의 국세조사때 처음 나타났다.

2015년 통계청 조사결과 6명으로 집계되었다.

1.4.

시조 미상. 본관은 임천.

1930년 일제의 국세조사때 처음 나타났으며 전라북도 익산에 순창선(淳昌善), 순창옥(淳昌玉) 등 2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본관은 당시 금구(金溝 : 현 김제시)로 신고되었다.

2015년 통계청 조사 결과 71명으로 집계되었다.

1.5.

이 성씨는 荀씨의 오자로 추정된다.

실제로 시조, 본관도 荀씨와 동일하다.

2015년 통계청 조사 결과 217명으로 집계되었다. 대체 얼마나 오자를 낸 거냐

1.6.

시조 미상. 본관 없음

이 성씨도 筍씨 처럼 荀씨의 오자, 아님 위에 𥫗를 쓰기 귀찮았거나 혹은 중국계 성씨로 추정된다.

2015년 통계청 조사 결과 5명으로 집계되었다.

2. 나무위키에 등재되어 있는 순씨 인물

2.1. 실존 인물

2.2.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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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詢, 물을 순[2] 현 부여군 홍산면 및 그 일대[3] 난의 발생지가 바로 홍산과 임천이였다.[4] 애초에 한자 이름 자체가 순임금 순이다.[5] 河東,산시성 남서부[6] 본관은 파주(坡州)로 신고했었다.[7] 실제로, 荀씨의 주를 이루는 본관인 홍산(鴻山)과 임천(林川) 모두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지명이다.[8] 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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