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21:49:35

함(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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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楊根 咸氏
강릉-양근 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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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colbgcolor=#fff,#191919>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경기도 양평군
시조 함혁(咸赫)
집성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인구 80,659명(2015년) | 국내 60위
링크 함씨 대종회

1. 개요2. 실존인물3. 가상인물

[clearfix]

1. 개요

"咸" '다 함'이라는 한자를 쓴다. 강릉 함씨와 양근 함씨 2개의 본이 있지만 모두 함혁을 시조로 하며 사실상 단본이다.[1] 함혁(咸赫)은 경기 양평을 중심으로 소국(小國)(당시 마한 권역에 해당)을 세우고 다스렸다고 한다. 함씨의 선계인 함혁은 마한 소국(小國)의 왕이었다는 설, 중국 한나라의 대장군이었다는 설과 중국 당나라의 병부상서, 평장사였다는 설이 존재하는데, 용문사, 사나사, 함왕성과 함왕혈(咸王穴) 등 문화재와 지역 설화를 근거로 마한(소국)의 왕이었다는 설이 대체로 타당성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2]

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함씨는 호족 가문이었다. 본래, 함혁의 첫 세거지인 양근(楊根, 양평의 옛 지명)을 본관으로 하였으나, 함혁의 15세손 함신(咸信, 일명 함훈, 함규의 6세조)이 남북국시대 신라 원성왕과의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김주원을 보좌하여 강릉(江陵)에 살게 되면서 관향을 강릉으로 개칭하였다.[3]

함씨는 고려, 조선의 개국 당시 모두 활약하였는데, 고려 개국공신 함규(咸規)가 이 가문의 중시조(中始祖)이다. 그는 태조 왕건으로부터 왕씨 성을 하사 받고, 고려 왕실의 외척이 되었다. 그는 왕규의 난으로 잘 알려진 왕규[4]와 동일인이다. 그는 왕규의 난의 중심 인물로 혜종 지지파였던 개경파와 정종ᆞ광종 지지파였던 서경파 간 정쟁(政爭)의 장본인이다. 5대손 함유일(有一)은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뒤에 공부상서에 이르렀으며, 아들 함순(淳)은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강좌칠현(江左七賢)으로 일컬어졌다.

조선 개국 당시 함씨는 형제가 소신에 따라 길을 달리한다. 함부림(咸傅霖)은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에 올라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8도의 관찰사를 모두 지냈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우 함부열(傅說)은 고려 말에 예부상서, 홍문관 박사 등을 지냈으나 조선 왕조에는 동참을 거부한다. 특히 이들 형제의 후손들은 본관도 달리하는데, 부림(傅霖)계는 강릉, 부열(傅說)계는 양근을 쓰게 되었다. 부림의 아들 함우치(咸禹治)는 세조 때 4도(道)의 관찰사를 지냈고, 성종좌참찬에 이르렀다. 부호군(副護軍) 좌무(佐武)의 아들 함헌(軒)은 조선 중종 때 명나라에 갔다가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유상(孔子遺像)을 가지고 왔는데, 한국에 공자의 영상이 들어온 시초라고 한다.

특히 근현대에 들어와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제3대 대한민국 부통령을 지낸 태영(台永)은 한말(韓末) 한성재판소 검사로서 ‘독립협회 사건’ 당시 이상재(李商在)ᆞ윤치호(尹致昊)ᆞ신흥우 등의 무죄를 주장하고 석방했는가 하면, 대한제국일본 제국에 합병되자, 조선총독부의 법관 임명에 불응하고, 직을 던졌다. 그 뒤에도 계속 독립운동과 종교운동에 헌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정관계에는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병춘, 농림부 장관을 역임했고, 강원대학교의 설립자인 인섭, 각각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인 석재, 종빈, 종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전(前) 해군참모총장 명수, 역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재훈, 상공부(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초선 국회의원을 지낸 덕용이 있다. 학계에는 상공부 차관을 지내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인영, 한국인 최연소로 28세에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돈희, 경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인석, 아산정책연구원장 및 이사장을 역임한 재봉이 있고, 법조계에는 제39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정호, 대검 중수부 검사,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검사,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설립자, 정치인(16대 국회의원)으로 명망이 높은 승희가 있으며, 금융계 및 재계에는 장기신용은행장과 회장, 하나은행 회장을 역임한 태용, KEB하나은행장을 거쳐 하나금융그룹 회장으로 재임 중인 영주, 오뚜기 회장으로 재임 중인 영준이 있다.
  • 한(韓)씨와 발음 및 표기가 비슷하니 주의. 영문 표기는 보통 Ham으로 하지만, 이러면 (…)이 되기에 Haam 또는 Hahm이라고 적는 이들도 있다.
  • 아래아 한글에서 기본으로 탑재된 '함초롬바탕'이라는 서체가 있다. 그런데 서체 개발자의 이름이 '함초롬'이라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해당 서체는 ‘젖어 있거나 서려 있는 모양이 차분하고 곱다’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함초롬하다'에서 따온 말이므로 틀린 말이다.
  • 함소아 한의원, 함춘제통의원, 함인정 고시원 등의 상호가 있는데, 설립자의 이름이 아니라, 한자어 또는 역사적 유래가 있는 말이다.

2. 실존인물

1 함혁
咸赫
(미상)[5]
21 함규
咸規
(생략)[6]
31
32 석주
石柱
석동
石棟
33 승경
承慶
승필
承弼
34 부림
傅霖
부열
傅說
부실
傅實
35 동원군파
東原君派
죽계공파
竹溪公派
자예
子乂
자명
子明
36 영창
永昌
예판공파
禮判公派
37 필무
弼武
좌무
佐武
준무
俊武
예판공파
禮判公派
칠봉공파
七峰公派
[7]
  • 함규를 1세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20을 뺀다.
  • 항렬의 경우 짝수 세손은 이름의 가운데, 홀수 세손은 이름의 끝에 적용한다.
  • 강릉, 양근 함씨 통틀어 정평공(동원군)파, 죽계공파, 예판공파, 칠봉공파 등 총 4개 종파(宗派)로 이루어져 있다.[8]
이름 생몰년도 비고
근대 이전
함규
(規)
? ~ 945 선계 21세, 함씨의 실질적 시조,
고려 호족, 고려 왕실의 외척
함유일
(有一)
1106 ~ 1185 선계 26세, 고려의 문신,
고려 공부상서
함순
(淳)
? ~ ? 선계 27세, 고려의 문장가
함승경
(承慶)
? ~ ? 선계 33세, 조선의 문신,
조선 대제학
함부림
(傅霖)
1360 ~ 1410 동원군파 34세, 동원군파 파조,
조선 개국공신, 형조판서
함부열
(傅說)
1371 ~ 1410 죽계공파 34세, 죽계공파 파조,
고려 예부상서
함부실
(傅實)
? ~ ? 예판공파 34세, 예판공파 파조,
조선의 문신, 관료
함우치
(禹治)
1408 ~ 1479 동원군파 35세, 조선의 문신,
조선 좌리공신, 좌참찬
함헌
(軒)
1508 ~ ? 칠봉공파 39세, 칠봉공파 파조,
조선의 문신, 관료
정경 부인 함씨 1392 ~ 1480 ? 신사임당의 외고조모
48세
함태영
(台永)
1872 ~ 1964 동원군파 정치인, 법조인, 종교인,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제3대 부통령
49세
함병춘
(秉春)
1932 ~ 1983 동원군파 정치인, 학자,
제9대 대통령 비서실장
50세(在/基)
함홍기
(鴻基)
1895 ~ 1919 동원군파 독립운동가
함인섭
(仁燮)
1907 ~ 1986 동원군파 정치인, 교육인,
제6대 농림부 장관,
족보명 재인(在仁)
함재훈
(在勳)
1917 ~ 1984 동원군파 정치인, 국회의원
함기용
(基鎔)
1930 ~ 2022 예판공파 체육인
함재봉
(在鳳)
1958 ~ 동원군파 학자, 아산정책연구원장
51세(鎬/鍾)
함종빈
(鍾贇)
1928 ~ 2009 예판공파 정치인, 국회의원
함태호
(泰浩)
1930 ~ 2016 동원군파 기업인
함종한
(鍾漢)
1944 ~ 예판공파 정치인,
강원도지사, 국회의원
함종국
(鍾國)
1958 ~ 동원군파 정치인
함종호
(鍾浩)
1960 ~ 칠봉공파 경제인, 딜로이트안진 대표
52세(泳/溶)
함일형
(一亨)
1861 ~ ? 동원군파 독립운동가,
족보명 익상(杙祥)
함태홍
(泰鴻)
1892 ~ 1929 칠봉공파 독립운동가
함태호
(泰鎬)
1893 ~ 1942 동원군파 독립운동가,
족보명 용호(溶浩)
함영준
(泳俊)
1959 ~ 동원군파 기업인
함익병
(翼炳)
1961 ~ 동원군파 의료인, 방송인,
족보명 영병(泳秉)
함정임
(晶任)
1964 ~ 동원군파 문인
함덕선
(德善)
1964 ~ 동원군파 군인, 육군 제11군단장
53세(植/柱)
함석은
(錫殷)
1890 ~ 1929 동원군파 독립운동가
함석헌
(錫憲)
1901 ~ 1989 동원군파 독립운동가,
사상가, 사회운동가
함세만
(世萬)
1922 ~ 2012 동원군파 독립운동가,
족보명 세근(世根)
함종식
(鍾植)
1963 ~ 예판공파 법조인, 대전가정법원장
함운경
(雲炅)
1964 ~ 동원군파 정치인, 족보명 운식(雲植)
함연지
(延枝)
1992 ~ 동원군파 배우
54세(炯/熙)
함덕용
(德用)
1904 ~ 1977 동원군파 정치인, 관료, 국회의원
함명수
(明洙)
1928 ~ 2016 동원군파 정치인, 군인, 국회의원,
제7대 해군참모총장
함형구
(炯仇)
1948 ~ 죽계공파 정치인, 강원도 고성군수
함승희
(承熙)
1951 ~ 동원군파 정치인, 법조인, 국회의원,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사건
주임검사
함진규
(珍圭)
1959 ~ 칠봉공파 정치인, 국회의원,
한국도로공사 사장,
족보명 형진(炯珍)
함명준
(明埈)
1960 ~ 죽계공파 정치인, 강원도 고성군수, 족보명 형명(炯明)
함형건
(炯健)
1966 ~ 죽계공파 언론인, YTN 앵커, 기자
함돈희
(燉憙)
1974 ~ 죽계공파 과학자, 교육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
족보명 돈희(燉喜)
함소원
(素媛)
1976 ~ 동원군파 연예인, 족보명 소정(少媜)
55세(均/圭)
함병선
(炳善)
1920 ~ 2001 동원군파 군인, 기업인
육군 제2군단장
함성득
(成得)
1963 ~ 칠봉공파 학자, 족보명 성규(成圭)
함지훈
(志勳)
1984 ~ 죽계공파 체육인, 족보명 지규(志圭)
56세(錫/鉉)
함기호
(基浩)
1961 ~ 동원군파 기업인
함석천
(錫泉)
1969 ~ 동원군파 법조인,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함석민
(錫敏)
1994 ~ 죽계공파 체육인
함정혜
(晶惠)
1958 ~ 동원군파 교육인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57세(洙/泰)
함석재
(錫宰)
1938 ~ 동원군파 정치인, 법조인
국회의원, 국회 법사위원장
함인석
(印碩)
1950 ~ 칠봉공파 교육인, 의료인,
경북대 총장

3. 가상인물



[1] 구분없이 강릉, 양근 함씨로 부른다. 함씨는 본래 강릉 함씨(江陵 咸氏, 관향: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와 양근 함씨(楊根 咸氏, 관향: 경기도 양평군) 등으로 나뉜 한국의 성씨였다. 하지만 함혁(咸赫)을 시조(始祖)로 하는 동원분파(同源分派, 뿌리가 같지만 본관이 나눠진 가문)이므로 1936년 병자보(丙子譜) 편찬시 합보(合譜, 족보를 하나로 통합)했다. 그래서 본관을 구분하지 않는다.#[2] 함혁은 한반도 정주(定住) 세력이자 삼한 초기 한강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이 각각의 소국(小國)을 형성할 때 용문산 서록(西麓 : 현재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상곡)에 석성(石城)을 쌓고 웅거(雄據)한 군주로 세칭 함왕주악(咸王周鍔)이라 불리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 기슭에는 "함왕성"으로 불리는 석성의 윤곽이 남아 있다. 용문산 사나사 계곡에는 함왕혈(咸王穴)이라는 바위굴도 있다. 지금도 양평에는 함왕 또는 함씨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3] 본관에 대한 또 다른 설로는 조선 개국시, 고려에 충성하는 양근 함씨로부터 조선에 충성하는 강릉 함씨가 갈라져 나왔다는 설이 있다.[4] 중시조 규는 고려 초기 광주(廣州)의 대호족으로, 양근 함씨(咸氏)였으나 개국공신으로 왕씨(王氏) 성을 하사 받게 되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에 책록되었고,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대광(大匡), 광평시랑평장사(廣平侍郞平章事)를 지냈다.[5] 함혁과 함규 사이 19대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고증되지 않으므로 함규가 실질적인 1세이다. 다만 이 문서에서는 족보를 존중해 함규를 21세손으로 표기한다.[6] 함규부터 함제까지 단일 파계로 이어진다.[7] 예판공파 중 함좌무의 아들 칠봉 함헌(七峰 咸軒)의 후손만을 따로 칠봉공파라고 부르는데, 어찌 된 일인지 족보상에선 함헌의 작은아버지 함준무의 후손까지 칠봉공파로 분류하고 있다.[8] 정평공(동원군)파의 파조는 조선개국공신이자 형조판서, 대사헌, 8도 관찰사의 관직을 역임한 함부림(咸傅霖)이다. 정평(定平)은 그의 시호(諡號)이며, 동원(東原)은 그의 봉호(封號)이다. 죽계공파의 파조는 조선이 건국되었음에도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자 공양왕을 끝까지 모신 것으로 알려진 함부열(咸傅說)이다. 죽계(竹溪)는 그의 호(號)다. 예판공파의 파조는 조선 초, 예조판서로 추증된 함부실(咸傅實)이다. 예조판서라는 추증관직이 파의 명칭이 되었다. 칠봉공파의 파조는 삼척부사를 역임한 함헌(咸軒)이다. 칠봉(七峰)은 함헌의 호(號)다.[9] ##[10] https://www.jjan.kr/article/20100822366289[11] 50년대 재계 9위 기업 #[12] 코스닥 상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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