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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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손원일 | 2대 박옥규 | 3대 정긍모 | 4대 이용운 | 5대 이성호 | |
6대 이맹기 | 7대 함명수 | 8대 김영관 | 9대 장지수 | 10대 김규섭 | |
11대 황정연 | 12대 김종곤 | 13대 이은수 | 14대 오경환 | 15대 최상화 | |
16대 김종호 | 17대 김종호 | 18대 김철우 | 19대 김홍열 | 20대 안병태 | |
21대 유삼남 | 22대 이수용 | 23대 장정길 | 24대 문정일 | 25대 남해일 | |
26대 송영무 | 27대 | 28대 김성찬 | 29대 최윤희 | 30대 황기철 | |
31대 정호섭 | 32대 엄현성 | 33대 심승섭 | 34대 부석종 | 35대 김정수 | |
36대 이종호 | 37대 양용모 | ||||
※ 초대: 해방병단장/조선해안경비대총사령관 · 1대~2대: 해군총참모장 · 2대~현재: 해군참모총장 ※ 27대: 예비역 신분 박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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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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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80><colcolor=#FFF> 본관 | 강릉 함씨[1] |
출생 | 1928년 2월 15일 |
평안남도 평양부 (현 평양시) | |
사망 | 2016년 11월 23일 (향년 88세) |
경력 | 한국수산개발공사 사장 한영공업 사장 |
의원 선수 | 2 |
의원 대수 | 9, 10 |
군사 경력 | |
임관 | 해군사관학교 (1기) |
복무 | 대한민국 해군 |
1946년 ~ 1966년 | |
최종 계급 | 중장 (대한민국 해군) |
최종 보직 | 해군참모총장 |
주요 보직 | 충무공함 부장 충무공함 함장 PF-66 임진강함 함장 묵호경비부 사령관 묵호경비부 작전참모부장 한국함대사령관 해군참모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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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928년 2월 15일 평안남도 평양부(현 북한 평양시)에서 아버지 함광덕(咸光德, 1911. 1. 19 ~ ?)과 어머니 강릉 최씨(1913. 6. 25 ~ ?)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46년 해군사관학교 1기로 입학했다. 동기로는 전임 참모총장이었던 이맹기 제독과 후임 참모총장을 지낸 김영관, 장지수 제독, 한국전쟁중 전사한 이태영 해군 중령이 있다.[2]관련글 소위로 임관한 뒤 충무공함 부장을 지냈고, 충무공함 3대 함장, PF-66 임진강함장, 제1전단사령관, 작전참모부장 등을 거쳐 1961년에 한국함대사령관(지금의 해군작전사령관)에 올랐다. 해군본부 정보참모로서 1949년 몽금포 작전을 기획하고 직접 지휘하던 중 총상을 입기도 했고[3], 한국전쟁 당시 정보국장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첩보작전인 X-ray 작전을 위해 직접 공작대를 지휘하여 인천 지역의 정보를 유엔사령부에 전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4] 1963년부터 64년까지는 동기인 이맹기 제독의 러닝메이트로 해군참모차장을 지냈고 이맹기 제독이 퇴역하자 이어서 해군참모총장에 올랐다.
1966년 전역했고 후임자는 김영관 제독이었다. 해군참모총장 가운데 마지막 중장 전역자였다. 김홍열 제독이 여러 사정으로 인해 1년 정도 중장으로 참모총장 근무를 한 적[5]이 있긴 하지만 최종 계급은 대장이었다. 이후 한국수산개발공사 사장과 한영공업주식회사 사장 등을 지냈고 유신정우회에 들어가 제9대,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3. 여담
* 2010년에는 영국을 찾아 참전용사 행사에 참여했다.
[1] 동원군파 54세 명(明) 항렬.[2] 안타깝게 먼저 세상을 떠난 이태영 동기생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3] JMS-301 함장 공정식 소령, JMS-302 함장 김상길 소령 등이 해당 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공정식 소령이 그를 구출하였고, 2015년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함명수 소령은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4] 작전 중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5] 해군 중장급들이 하나회 문제 등으로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소장이었던 김홍열 제독이 중장으로 진급해서 해군참모총장을 맡았다. 최저 복무기간 때문에 1년간은 중장으로 근무하고 임기 나머지는 대장으로 근무했다.[6] http://www.theceluv.com/article.php?aid=1470921624118512012[7]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298&aid=0000196032[8]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214&aid=0000657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