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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時學
1924년 1월 3일 ~ 1989년 7월 18일 (향년 65세)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본관은 연주(延州)[1].민중신학자로 윤치호의 사위인 현영학(玄永學, 1921. 1. 6 ~ 2004. 1. 14)은 맏형이며, 흥남 철수 당시 미 제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의 통역 문관으로서 9만 8천여 명의 북한 주민들을 대피시킨 현봉학(玄鳳學, 1922. 6. 23 ~ 2007. 11. 25)은 그의 둘째 형이다.
2. 생애
1924년 1월 3일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신창리(현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강구역 서문동)에서 아버지 현원국(玄垣國, 1887 ~ 1937. 1. 30)과 어머니 평산 신씨 신애균(申愛均, 1899. 11. 12 ~ 1987. 6. 8)[2] 사이의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현원국은 일본 간세이가쿠인대학을 졸업하고 목사로 시무했다.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하던 1945년 8.15 광복을 맞았다. 이듬해에는 월남하여 같은 해 해군병학교 1기로 임관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각종 대·소규모 작전에 참여하면서 커다란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1950년 7월 첫 번째로 참전했던 서해안 봉쇄작전에서는 신병 70명을 출동 중에 훈련시켜 남하하고 있던 12척의 적 수송선단을 격퇴했다. 또한 통영작전에서는 배로 고성(강원도)에서 통영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맞아 백발백중의 함포사격으로 대한민국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을 지원함으로써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수호했다. 이로인해 경남지방은 3년간 전쟁피해가 거의 없었다.
목포항 소해작전 때는 북한이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였고, 원산만 소해작전 때는 3,000여 개 기뢰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황해도 피난민 구출작전도 수행하여 6만 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하는 데 기여하였다.
6.25 전쟁이 끝난 후에는 1전단사령관과 함대사령관, 해군사관학교 교장 등 해군 주요직을 맡았다. 1966년 해군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1969년부터 모로코 대사, 이란 대사, 멕시코 대사로 자리하여 외교관으로도 활동하였다.
1989년 7월 1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