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0 19:08:27

원산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원 뿔러스 원의 캐릭터에 대한 내용은 원산(원 뿔러스 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강원도(북한)의 시, 군
원산시 문천시
철원군 평강군 김화군 창도군 고산군
금강군 고성군 이천군 세포군 안변군
회양군 통천군 판교군 법동군 천내군

元山市 / Wonsan City

파일:external/www.nordkoreareisen.de/000006.jpg
[1]
파일:external/tv02.search.naver.net/%BF%F8%BB%EA%BE%DF%B0%E6.jpg
↑ '조선의 오늘'을 통해 공개된 원산 야경. LED 전등을 붙여 만든 모습.
파일:2016-10-30 00.11.44.png
↑원산항에 있는 크레인들.
원산시
元山市 / Wonsan City
국가 대한민국[2]/북한
면적 314.4㎢
광역시도 강원도
행정구역 45동 14리
시간대 UTC+9


1. 개요2. 지리
2.1. 지형2.2. 기후
3. 역사4. 인문5. 교통6. 관광&산업7.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8. 기타9. 출신 인물
9.1. 실존인물9.2. 가상 인물
10. 미래 전망
10.1. 북한 개방 후 전망
10.1.1. 행정구역10.1.2. 발전
10.2. 남북통일 후 전망
10.2.1. 행정구역10.2.2. 발전10.2.3. 수도권으로 편입?

1. 개요

북한 강원도에 위치한 항구도시. 면적은 314.4㎢. 강원도(북한)의 도청 소재지이다.

원래 함경남도에 속했으나 1946년 소련군정에 의해 강원도에 편입된 이후 현재도 강원도(북한) 소속이다.

다만 이북 5도 위원회 기준으로는 함경남도 소속이다.

2. 지리

2.1. 지형

해안선이 단순한 동해안의 다른 항구도시들과는 달리 원산만은 주변이 갈마반도(사진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반도), 호도반도 그리고 여도(麗島), 신도(新島), 웅도(熊島), 황토도(黃土島) 등의 여러 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선 때에도 천혜의 항구가 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원산과 평양을 잇는 평원선은 한반도에서 동서 거리가 가장 짧은 철도다.[3]

2.2. 기후

평양직할시와 비슷한 위도에 있지만 산맥과 바다의 영향으로 기후는 비교적으로 온화한 편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원산만에서는 이류(移流)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안개일수 자체는 적어서 안개가 끼는 날은 1년 평균 9일에 불과하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항구도시치고는 바람이 약하다. 1월 평균 기온 -2.3도, 8월 평균 기온 23.6도이다.

3. 역사

옛 이름은 덕원(德源)이었다.

동예의 일부였고 고구려에 복속, 진흥왕신라가 차지했고 이후 남북국시대에는 통일신라의 정천군, 산산현 지역이었다. 지금의 원산시 세길동인 구 덕원면 지역에는 신라가 탄항관문(炭項關門)을 만들어 발해와의 국경선 관문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엔 서쪽 의주군과 한자가 다른 의주(宜州)라고 불렀고 원나라가 점령했다가 공민왕이 되찾았다.

1437년(세종 19년)에 덕원군이 설치되었으며, 8년 후 덕원부로 승격되었다. 조선 후기 상업활동이 이전보다 발전하면서 장이 들어섰고, 덕원의 원산장은 조선의 상업중심지로 떠올랐다. 1880년에 개항했는데 러시아식 명칭은 포트 라자레프(Port Lazarev)로 불리기도 했다.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원산부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개항장 지역만을 원산부로 남기고, 잔여지역(면 지역)을 덕원군으로 분리시켰다. 이 때 안변군 영풍면이 편입되어 풍상면, 풍하면으로 분리 설치되었다. 이후 1942년 덕원군 적전면, 현면을 원산부에 편입하고, 덕원군의 남은 지역인 덕원면, 북성면, 풍상면, 풍하면을 문천군에 편입시킴으로서 덕원군은 폐지되었다.

사실 원산은 천혜의 항구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하기 전까지는 덕원부 원산'촌'이라는 작은 마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876년 일본이 강화도 조약으로 원산항을 강제로 개항한 3대 항구 중 하나가 되었으며, 경원선을 부설하고 공업지대를 조성해서 흥남과 함께 일제강점기 시절 관북지방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자 항구로 성장했다. 구한말에는 '방곡령 사건'의 무대이기도 했고 1929년에는 원산 노동자 총파업이 일어났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인 '원산 학사'가 설립된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한반도가 광복을 맞자 원산은 38선 이북 지역이어서 북한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한국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1950년 10~12월 사이 잠시나마 UN군의 세력에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다시 전세가 역전되어 북한이 원산을 재점령하게 되었고, 이후로도 현재까지 북한의 지배하에 남아있다. 원산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지역이며, 한국전쟁이 개전하기 전까지는 정유시설을 비롯한 각종 중화학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므로 한국전쟁이 개전된 다음부터 종전될 때까지 지속적인 폭격과 함포사격을 맞는 비극을 맞이하고 만다. 때문에 원산의 구시가지와 대부분의 시설은 사라졌으며, 원산의 철도시설도 완파되었다. 그래서 원산의 철도시설은 전후에 복구 및 이설된 곳이며, 원산역도 외곽으로 이전한 상태다. 자세한 내용은 원산폭격을 참조하기 바란다.

인구는 36만명 수준으로 남한 강원도 보다는 인구가 많은 편이다.[4][5] 한국전쟁이 휴전된 다음에는 사실상 완전한 공터에 다시 시가지를 조성하였으나 아직까지는 과거의 영화를 완전히 되찾지는 못 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 지역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김정은이 집권하게 되면서 원산은 도시부흥의 기회를 얻었다. 마식령 스키장의 건립이 이뤄졌고, 지금은 갈마해안관광지구가 조성 중이다. 북한의 보잘것없는 경제 수준을 감안할때 지금의 원산개발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벌이는 어마어마한 국책 사업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아니지만, 원산의 원도심인 중동 일대를 재개발하여 상업, 관광,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만들고자하는 거대한 규모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6]

아직 원산의 인구는 남포함흥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김정은 시대의 원산 개발이 순조롭게 진척된다면 평양의 위성도시일 뿐인 남포와 북한 정권의 은근한 견제를 받고 있는 함흥을 넘고 북한 제2의 도시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더 나아가 행정수도 평양, 경제수도 원산이 될 것이라 예견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4. 인문

1924년 당시 조사에 따르면 원산 토박이는 40%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외지 출신으로는 함경남도 외에 평안남도, 강원도, 경기도 출신자들이 많았다. 광복 당시 종교 상황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강원도 내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개신교 신자도 상대적으로 많았고, 천주교 신자도 많았다. 특히 천주교는 일제시대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베네딕토회 수도원이었던 덕원수도원과 부설 덕원신학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최초의 근대 사립 교육기관 중 하나인 원산학사가 세워지기도 했고, 1903년에는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루시(Lucy) 여학교가 세워져 공산화 전까지 여성교육에 큰 역할을 했다.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인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박정희의 애인 이현란 등이 루시여학교 출신이다. 교명은 학교에 건축 기금을 기부한 미국인 선교사 Lucy Armfield Cuninggim의 이름에서 딴 것.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학교가 있었는데, 화강암으로 지어진 건물이나 교정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원산학사 건물 일부가 남아 있으며, 원산학사 자리는 현재 원산교원대학이 되었다.

1949년 북한 정부의 대대적 천주교 탄압 전까지 베네딕토회 덕원수도원과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덕원신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일제시대 당시 덕원수도원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이었다. 북한 정부의 1949년 대대적 천주교 탄압 과정에서 외국인 주교와 수사신부들과 평수사들은 전부 체포되었으며 한국인 수사신부들도 체포되었고 한국인 평수사들은 강제 귀가조치되었다. 이후 건물은 북한 정부에 몰수되어 현재는 원산농업대학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도 북한 공인 종교단체의 지역조직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의 지역조직은 평양을 제외하고 활동이 아주 드물게나마 방북자에게 공개되기도 했던 곳이다.[7]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지역조직인 강원도그리스도교연맹 사무실과 조선가톨릭교협회의 지역조직인 동해지구가톨릭협회의 사무실이 원산에 위치해있다고 한다. 원산을 방문했던 종교인 방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산시 내에는 강원도그리스도교연맹 소속 가정예배처소가 8곳, 동해지구가톨릭협회 소속 공소 1곳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봉수교회의 전(前) 담임목사였던 고(故) 리성봉 목사는 원산가정예배처소 책임자와 강원도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5. 교통

다른 강원도(북한) 도시들과 다르게 원산은 제일 먼저 철도가 뚫리는 등 다른 강원도(북한) 도시들보다 교통의 혜택을 먼저 얻었다. 왜냐하면 강릉 같은 도시는 해안선이 단조로워서 항구가 발달하기 힘들고 험준한 태백산맥 동쪽에 위치해서 서울로 이동하는 교통이 불편할 수 밖에 없었지만, 원산은 항구가 발달하기에 알맞은 지형이었고 서울 방면으로 가려면 추가령구조곡을 통과하면 됐기 때문에 강원도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교통이 발달할 수 있었다.

철도는 경원선, 강원선이 통한다. 그리고 강원선평라선과 연결된다.

북한 정권 수립 후 평양과의 사이에 평양원산간 고속도로가 뚫렸다. 평양-원산 구간은 북한에서도 나름 고속버스가 흥했던 구간이기도 하다. 평라선 철도는 화물 물동량 처리하기에도 벅찬데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평양 - 원산 사이를 2시간만에 주파할 수 있으니까.... 한편 광복 당시의 원산역은 건물만 남긴 채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현재는 갈마반도에 원산공항이 있으며 이를 3,500m의 활주로를 갖춘 국제공항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 공항을 안변군으로 이전하려는 모양이다. 링크 링크

서울 기준은 약 230km, 속초 기준은 약 190km.

6. 관광&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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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광복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이나 평양에서 동해로 놀러 간다고 하면 으레 원산으로 가는 것을 생각했었다. 경원선을 타고 가면 되니까. 원산의 송도원(松濤園) 해수욕장은 분단 전에는 한국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했다. 갈마역의 명사십리 해수욕장도 유명하다.

지도를 보면 원산의 송도해수욕장이 중심지인 원산항 일대와 매우 근접하여 있는데, 당시에는 송도라는 이름을 가진 해수욕장들이 흥했으며, 각 지역의 송도해수욕장이 지금도 모두 항구도시 중심가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원산뿐만이 아니라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포항시에도 송도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셋 모두 도심과 너무 가까워서 심각한 난개발로 인한 수질악화, 매년 쓸려나가는 모래로 인해 현재는 부산을 제외하고 모두 폐장 상태이며, 포항 송도는 모래사장이 아예 사라졌고 인천은 매립 끝에 유원지로 재개발 중인 상황이다. 부산 또한 한동안 폐쇄 상태였다가 최근 들어 재개장 한 것이므로, 분단이 안 되었을 경우 원산의 송도원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산광역시의 주 해수욕장이 송도→광안리(또는 수영)→해운대로 바뀐 만큼 여기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기능이 옮겨갔을 것이며, 원산의 갈마는 부산의 해운대에 비견되는 관광도시로 명성을 떨쳤을 것이다.

1990년대 북한이 경제난을 겪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원산은 다른 도시와 달리 한국전쟁 이후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이기 때문에 일본산 중고 가전제품, 자전거, 자동차 등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이 시기 원산의 영화는 고작 중국산 식료품과 잡화류, 잘 해봐야 중국산 자전거나 자동차를 수입하는 정도인 신의주나 다른 국경 연선 도시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에 일본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보복으로 만경봉호의 니가타항 입항을 불허하면서 불황을 맞이하게 된다. 개인 사업차 원산을 자주 방문했던 한 탈북자는 당시 원산을 '유령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김정은 집권 이래 원산은 '김정은 (계획)도시'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이 원산을 제2의 평양으로 개발하라고 교시를 내렸다고 한다. 송도원에는 2013년 기준 김정은의 7성급 별장이 있으며, 송도원 청년야외극장과 1960년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가 있어 체제선전에 사용되고 있다.# 물론, 특권계급을 위한 곳이다. 데니스 로드먼이 놀러간 그 휘황찬란한 별장이 여기로 추정되었다.# 외국인 호스텔 구역을 지었다. 이처럼 김정은이 원산을 적극 밀어주는 이유는 대체로 김정은 혹은 생모인 고용희가 원산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어 일종의 우상화 작업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규모 관광단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인데 공사장에서 화재가 크게 나서 40여명이상이 사망했다.#

인근 문천군 덕원면(구 덕원군 덕원면)에는 베네딕토회 수도원과 수도원 소속 가톨릭 신학교(덕원 신학교)가 있었다. 베네딕토회한국 천주교 최초의 남자 수도회[8],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의 요청으로 1909년 독일에서 진출해 왔다. 처음에는 서울 백동[9]에 정착했다가, 함경남도 덕원으로 이주했다. 해방 후 북녘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종교들을 탄압했고,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많은 베네딕토회 독일인&한국인 남녀 수도자(수사, 수녀)들이 순교했다.[10]

원래 덕원과 원산 일대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원산교구에서 분리된 덕원수도원자치교구였다. 베네딕토회는 북한 공산당 정권의 종교 박해를 피해 월남하여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수도원을 재건했다. 원산에 남아 있는 당시의 수도원 건물은 원산농업대학으로 쓰이고 있다. 성당은 헐렸지만, 신학교 건물들은 개조된 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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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스키장(신풍리 스키장)이 생긴 곳도 여기였다. 1903년 개항 후 핀란드인 2명이 신풍리에서 스키를 탄 것을 시초로 1926년조선총독부의 철도국 국우회에 의해 원산 신풍리 스키장이 개발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대회 역시 1930년 2월 16일 원산 신풍리 스키장에서 개최된 제1회 전 조선스키선수권대회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마식령[11]에 대규모 스키장인 마식령 스키장을 세우고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10만 군중 대회#까지 벌이면서 김정은의 치적으로 삼을 모양이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는 스키장 자재 수출을 금지했다. #

조선에 골프가 처음 들어온 것도 여기. 1900년, 고종 37년 황실의 고문으로 온 영국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원산 바닷가의 세관 구내에서 6홀의 코스를 만들어 놓고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현재도 송도원엔 골프장이 있다.

명승지 일람
  • 송도원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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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사십리해수욕장 - (외국인용) 호텔 2개를 지었다고 한다.
  • 동방식(東方式)공원
  • 갈마호텔
한편 광복 당시까지는 한반도 유일의 정유시설인 스탠다드 정유공장, 철도차량공장 등이 들어선 공업도시이기도 했다.

7.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파일:Flag_of_Hamgyeong-namdo_little.png 함경남도의 하위행정구역 (이북5도위원회)
함흥시 원산시 흥남시
함주군 정평군 영흥군 고원군
문천군 안변군 홍원군 북청군
이원군 단천군 신흥군 장진군
풍산군 삼수군 갑산군 혜산군

  •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 명사동은 옛 덕원군 현면(縣面)에 해당된다.
  • 1939년에 덕원군 적전면(赤田面) 송하리·송흥리·와우리가 원산부에 편입됐으나, 1942년에 덕원군이 폐지돼 문천군에 병합되면서 송흥리와 와우리가 적전면에 환원됐다. 그러다 광복 직후 적전면 전체가 원산시에 편입돼 사라졌다. 행정동 적전동 중에서 장덕동을 제외한 나머지, 행정동 송도동 중에서 송흥동이 옛 적전면에 해당한다.
행정동 법정동·리
광산동 광석동(廣石洞)·산제동(山祭洞)[12]
남장동 남산동(南山洞)·장촌동(場村洞)
명사동 갈마동(葛麻洞)·견산동(見山洞)·내원산동(內元山洞)·두남동(斗南洞)·두방동(斗方洞)·두산동(斗山洞)·방하산동(訪霞山洞)·성라동(星羅洞)·성북동(城北洞)·세동(細洞)·용평동(龍坪洞)·장흥동(長興洞)·지경동(地境洞)·춘산동(春山洞)·춘악동(春岳洞)·포평동(浦坪洞)·현동(峴洞)·능도리(能島里)·려도리(麗島里)·신도리(薪島里)
명석동 명석동(銘石洞)·상동(上洞)·석우동(石隅洞)
상중동 남촌동(南村洞)·북촌동(北村洞)·상리1동(上里一洞)·상리2동(上里二洞)·중리동(中里洞)
송도동 송흥동(松興洞)·양지동(陽地洞)·철산동(鐵山洞)·평화동(平和洞)·해안동(海岸洞)
용산동 신흥동(新興洞)·용동(龍洞)·중청동(中淸洞)
적전동 관풍동(館豊洞)·낙수동(洛水洞)·당상동(堂上洞)·당중동(堂中洞)·당하동(堂下洞)·무라동(武羅洞)·삼태동(三台洞)·송상동(松上洞)·송중동(松中洞)·송하동(松下洞)·신동(新洞)·신풍동(新豊洞)·와우동(臥牛洞)·용계동(龍溪洞)·용주동(湧珠洞)·장덕동(長德洞)·중평동(仲坪洞)

아래는 광복 당시까지의 지명으로, 88개 동과 리로 구성되었다.
  • 춘일동(春日洞) - 시청 소재지
  • 해안로1가~6가동(海岸路一街~六街洞)
  • 욱1~3가동(旭一~三街洞)
  • 수1~2가동(壽一~二街洞)
  • 행동(幸洞)
  • 중1~3가동(仲一~三街洞)
  • 본1~5가동(本一~五街洞)
  • 천1~4가동(泉一~四街洞)
  • 영동(榮洞)
  • 경동(京洞)
  • 명치동(明治洞)
  • 녹동(綠洞)
  • 대화동(大和洞)
  • 명석동(銘石洞)
  • 상동(上洞)
  • 광석동(廣石洞)
  • 산제동(山祭洞)
  • 남촌동(南村洞)
  • 신흥동(新興洞)
  • 북촌동(北村洞)
  • 상리1~2동(上里一~二洞)
  • 남산동(南山洞)
  • 용동(龍洞)
  • 교하동(橋下洞)
  • 중리1~4동(中里一~四洞)
  • 하촌동(下村洞)
  • 장촌동(場村洞)
  • 신촌동(新村洞)
  • 포하동(浦下洞)
  • 와우동(臥牛洞)
  • 송흥동(松興洞)
  • 송하동(松下洞)
  • 신풍동(新豊洞)
  • 두방동(斗方洞)
  • 두산동(斗山洞)
  • 중청동(中淸洞)
  • 당상동(堂上洞)
  • 당중동(堂中洞)
  • 당하동(堂下洞)
  • 무라동(武羅洞)
  • 삼태동(三台洞)
  • 낙수동(洛水洞)
  • 중평동(仲坪洞)
  • 신동(新洞)
  • 송상동(松上洞)
  • 송중동(松中洞)
  • 용계동(龍溪洞)
  • 용주동(湧珠洞)
  • 관풍동(館豊洞)
  • 내원산동(內元山洞)
  • 세동(細洞)
  • 장흥동(長興洞)
  • 견산동(見山洞)
  • 지경동(地境洞)
  • 포평동(浦坪洞)
  • 사둔동(沙屯洞)
  • 춘악동(春岳洞)
  • 춘산동(春山洞)
  • 현동(峴洞)
  • 방하산동(訪霞山洞)
  • 용평동(龍坪洞)
  • 성라동(星羅洞)
  • 성북동(城北洞)
  • 두남동(斗南洞)
  • 여도동(麗島洞)
  • 웅도동(熊島洞)
  • 신도동(薪島洞)

8. 기타

소설가 복거일이 애용하는 북한 지역으로 여겨진다. 일제강점기가 1987년까지 지속된다는 설정의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주인공의 처가가 원산에 있었고, 송도원이나 근처의 금강산, 설봉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는 주인공이 2050년대 원산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육군사관학교평양에 있던 것으로 설정) "원산 괭이갈매기"라는 실업야구단의 팬이 되었다는 설정이 있다. 주인공이 조선으로 타임슬립후 위엄을 보일 때마다 쓰는 게 괭이갈매기의 빨간 모자.

대한민국 해군의 기뢰부설함인 원산함(MLS-560)은 이 도시에서 이름을 땄다. 함경남도 원산시민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9. 출신 인물

9.1. 실존인물

9.2. 가상 인물

  • 독고준: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의 주인공.

10. 미래 전망

남북통일을 가정한 전망과 남북이 통일하지 않고 북한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의 전망으로 나뉜다.

10.1. 북한 개방 후 전망

10.1.1. 행정구역

현재와 변함이 없고 미래의 행정구역 개편도 예측이 불가하다.

10.1.2. 발전

남북 간 교류가 증가하고 경원축 교통망 복원, 확충으로 원산을 관광하는 수요도 발생할 수 있고 북한이 비핵화와 함께 정상국가화되고 서방 세계와 관계가 개선된다면 동해를 통해 일본, 미국 등지로 통할 수 있는 원산 일대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10.2. 남북통일 후 전망

10.2.1. 행정구역

원래 원산은 함경남도 소속이었는데 소련군정 치하에서 강원도(북한)로 편입되었다. 원산은 오랫동안 함경도에 속했었고 이북 5도 기준을 따라서 함경남도로 환원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존치론을 택한다면 강원도 소속으로 남을 것이다. 실제로 원산은 일제강점기 때에 함경도뿐만 아니라 강원도, 서울이나 평양과의 교류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원산은 이미 일제강점기동북 방언이 아닌 중부 방언권에 속한 지역[13]이었으며 현재에도 표준어에 가까운 말투를 쓰는 지역이라고 한다. 즉 문화적으로 함경남도보다 오히려 강원도와 더 가까울 수 있다.

또한 남한이나 북한이나 강원도 자체가 상대적으로 무시당해온 곳이 때문에 강원도로 유지시키면서 강원도를 띄워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원산시의 위치나 위상이 발전하면 광역시로 격상될 가능성도 다소 있다. 물론 지금은 아무것도 확정된 것도 없고 따라서 아무것도 모른다.

10.2.2. 발전

남북통일을 전제로 원산은 인천에게서 수도권의 외항 역할을 분담하는 항구도시로 발전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왜냐하면 서해안인 인천항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적고 수심이 깊다는 점과 부산항보다 수도권과의 거리가 훨씬 가깝다는 점에서 우위을 지니고 있으므로 큰 항구도시이자 해군 기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항인천신항의 건설로 이미 조수간만의 차와 낮은 수심이라는 단점을 극복했다. 또한 수도권은 업무지구의 형성과 발전으로 공항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이는 첨단 산업, 서비스업의 발전과 과거 노동집약형 산업의 쇠퇴와 수도권 개발 가용지의 고갈이 주된 이유이다. 또한 수도권에서 공업이 발달한 지역은 경원축선에 위치한 서울 동북부-의정부시, 양주시 지역이 아닌 수도권 서남부 지역이며, 이쪽은 인천항과 평택항이 매우 가깝다. 더욱이 경기 동북부 지역과 원산은 DMZ로 갈라져 있고, 그마저도 평야가 아닌 좁은 구조곡으로 연결되어 있어 대규모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14]

또한 부산항이 갖는 미주, 일본, 유럽으로의 관문 역할을 뺏어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15] 통일 이후 동해선 건설과 개량으로 북한 지역의 부산항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며, 원산은 산간지대로 개발 가용지가 적은 강원도, 함경도임을 감안할 때 일정 이상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16] 물론 북한의 주요 인구 밀집지역인 평안도나 황해도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은 동해안 항구라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17], 일본이나 러시아 방면의 수출입은 계속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이후 공업도시로써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18]. 이미 원산이 북한 내 주요 공업도시로써 자리잡았기에, 통일 이후 정부가 국토 균형 발전 등을 명목으로 주요 산업기반을 이주시킬 수도 있다. 다만 인프라가 확충된다 해도, 대규모 해외자본 투자는 현실성이 적다고 봐야 한다. 통일 이후에 구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최저시급이 적용된다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비해 인건비와 노동 숙련도 모두 분명한 열세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 기업이 수도권과 인천을 두고 굳이 열악한 북한에 자본을 투자할 이유는 없다.

동해안 항만으로써의 어중간한 입지와 달리, 관광도시로써의 전망은 꽤 긍정적이다. 상기한 송도원, 명사십리 해수욕장 등 원산의 해변들은 분단 이전 경원선 덕에 서울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았던 동해안 피서지였다.[19] 때문에 통일 이후 접근성이 개선된다면, 여름마다 엄청난 관광객들이 몰리는 부산강릉/속초의 관광수요를 분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수욕장 외에도 문제의 마식령 스키장을 필두로 한 산악 관광자원 역시 충분하며, 적절한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북한 지역 내의 주요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10.2.3. 수도권으로 편입?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남북통일서울, 평양, 원산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을 통일 한국의 대수도권으로 설정하여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공교로운 것은 이들 대 수도권 삼각권역 안으로 황해도 사리원시개성특급시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결론은 이 대 수도권 삼각권역 개발에는 이 두 도시도 동시에 개발될 운명이라 엄청난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20].

하지만 원산은 서울에서 너무 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울에서 원산까지의 직선거리는 180km 정도로 서울에서 익산까지의 직선거리와 같다. 강릉보다 멀다. 현실적으로 수도권의 최대 마지노선은 천안, 원주, 춘천, 철원, 개성까지이며[21] 원산은 별도 경제권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1] 출처 이 도시의 모든 건물들은 다 1953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2] 남북 분단 이전[3] 실제 한반도에서 동서 거리가 가장 짧은 구간은 평안남도 평원군강원도 문천시를 잇는 선이다. 대략적으로 북위 39º 15′[4] 다만 남한 강원도의 경우 인구가 한 도시에 몰빵되지 않고 세 도시에 분산된 영향도 있다. 또 원주시의 경우 2018년 인구가 34만여 명으로 크게 차이도 안난다.[5] 여담으로 통일 이후 강원도함경남도와의 분쟁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만일 남한의 주도 아래 통일이 될 경우 한국 정부가 공식 규정한 이북 5도 체계 하에서 원산시는 엄연히 함경남도 소속 도시이므로 통일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하지 않는 한 원래대로 함경남도로 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저건 환원론의 예시이고, 존치론이 선택되는 순간 원산은 강원도의 도시가 된다. 둘 중 무엇이 선택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환원론과 존치론에 대해서는 이북 5도 항목과 남북통일/행정 문제/행정구역 개편을 참고하자. 하지만, 원산의 경제적, 지리적 이점을 생각하면 함경남도에 넘겨주는 것보다는 가져가는 것이 강원도 입장에서는 더 이득이다. 현재 강원도가 전략적으로 육성할 도시가 이미 개발되거나 개발되고 있는 도시를 제외하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애초에 통일부터가 멀었다.[6] 투자금액은 1억 9656달러로 외국투자를 통한 BOT방식으로 추진 중인데, 물론 이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비핵화를 통한 대북제재 완화 또는 철폐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7] 일례로 80년대 외국 국적을 가진 해외동포의 방북시에 강원도 원산 내에 있는 가정예배처소 예배를 공개한 적이 있다.[8] 한국 천주교 최초의 여자 수도회(수녀회)는 1888년 프랑스에서 진출해 온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이다.[9]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자리[10] 공지영 마리아 작가의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 한국 베네딕토회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11]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 문천군 덕원면~풍상면 사이에 위치하는 고개[12] 법령에는 '사나제동'이라 기재되어 있으나 오타로 보인다.[13] 대다수의 국어 학자들은 원산을 비롯하여 금야군 이남 지역을 동북 방언권이 아닌 중부 방언권으로 분류한다.[14] 일각에서는 이 지역이 통일이후 인구 폭등으로 골머리를 앓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북한 주민들도 생활 환경이 잘 마련된 지역을 선호할 것이고, 자연스레 남한으로 유입되는 인구들 중 상당수가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을 선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통일 이후 급변할 대한민국의 상황을 다소 간과한 분석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낮아 수도권의 첨단 산업,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순 경공업 역시 신체 조건이 외국인 노동자에 현격히 떨어진다. 더구나 통일 이후 북한 리스크가 사라진 서울과 인천이 외자 유치로 초거대 업무지구를 이룬다면, 지가 폭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이주 자체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저부가가치 산업의 지방 이전으로 지방으로의 인구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며, 기껏해야 일부 인원이 수도권의 빈민가 정도에 정착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마저도 지속적인 재개발로 큰 기대는 접어야 한다. 무엇보다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려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들의 이주를 달가워 할 리가 없으며, 오히려 통일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구 북한 주민들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일정 기간 통제할 수도 있다.[15] 그러나 현재 부산항은 세계 해운사로부터 이용료 인하를 거세게 요구당하는 중이고, 대한민국 해운사들이 세계 해운동맹에서 줄줄이 낙상하는 바람에 국제적인 항구로서의 입지마저 위협당하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오히려 미주, 일본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원산이 성장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결론 역시 도출된다.[16] 다만 부산항북한과의 거리가 멀다. 물론 남북통일/인프라 문제문서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시설확충과 도로확장을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부산과 라선시와의 거리가 1,000km가 넘고, 그 사이를 낭림산맥이라는 험산준령이 틀어막고 있어 도로 및 철도 개통이 더딜 확률이 크다. 물론 부산항대한민국의 해상의 관문임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의 수요까지 담당하기에는 거리나 인프라 확충 등에서 어려움이 많다. 더구나 지금도 포화상태인 부산항에 북한 수요까지 더해진다면 항만 확장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한 자금과 부지 마련 문제도 크다! 무엇보다 지역 균등 발전과 북한의 경제적 자립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북 소재 항만을 떨어지는 경제력 하나만으로 방치해 둘수만은 없는 일이다. 북한의 항구들을 놔두고 멀리 떨어진 부산항을 이용하라고 주장하면 북한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은 뻔하다.[17] 평양-원산 사이에는 북한에서 보기 어려운 고속도로가 건설된 지역이다.[18] 물론 인프라가 부족한 현 상황에서 짧은 기간 내에 폭발적인 성장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일단 통일이 되면 북한지역에 대한 개발은 당연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실질적으로 지리적 조건이 좋은 이북지역을 무시할 수가 없다. 당장 라선시신의주시는 각각 러시아와 중국과 가깝고, 특히 신의주시는 육로로도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과연 이런 곳을 두고 모든 인프라를 남한에다 두려고 할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왜 북한지역, 특히 원산과 같은 지역에다 항구나 공장을 지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온다. 물론 중국 침략의 일원으로 지은 것이긴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중국 역시도 원산의 좋은 지리적 조건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19] 6.25 전쟁 이전만 해도, 강릉보다 원산의 서울 접근성이 훨씬 뛰어났다. 서울과 강원 영동 지방을 잇는 태백선, 영동선은 1960년대 들어와서야 개통되었다.[20] 역설적이게도 통일로 인해 북한에서 가장 별볼일 없는 지역이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개성과 원산은 이들 지역의 대표급이다.[21] 이들 도시들은 대략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80~90km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