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8-17 19:23:24

동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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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濊)
동예
파일:external/www.gnedu.net/p6_01.jpg
존속기간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군주읍군, 삼로
위치함경남도에서 강원도까지
사건위만조선 복속
한사군 설치
기원전 82년 동예 독립
실직국 공격
고구려로 복속?
성립 이전부족국가
성립 이후고구려
1. 역사2. 가설
2.1. 고구려 복속설2.2. 자연 멸망설2.3. 기타 요인설
3. 문화4. 문제 출제 유형 및 사료

1. 역사

동예(東濊)는 기원전 3세기부터 3세기까지 오늘날 원산[1] 부근의 함경남도 남부에서 강원도 강릉시 지역까지 동해영동 지역에 걸친 영역에 퍼져 있던 부족 국가 집단이다. 강릉 이남으로도 동해안을 따라, 가장 남쪽으로는 포항시 신광면 마조리에서 출토된 '진솔선예백장(晋率善濊伯長)인' 유물로 미루어보아서 신라가 발원한 경주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포항까지 일정 수의 예인이 진출해 있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북으로는 고구려옥저, 남으로는 진한에 접하였다. 위만조선 멸망 후 전한에 의해 세워진 한사군 중 임둔군의 일부가 현도군과 합쳐졌고 이 중 7현을 낙랑군이 담당하였으나, 후에 한사군이 폐지된 뒤 7현이 독립하면서 부조현은 옥저로, 나머지 6현은 동예로 귀속되었다. 한사군에 의한 점령 시절 통치 제도의 변화가 나타났으며, 남쪽의 실직국 등 주변국을 공격하기도 하는 등 그럭저럭 지내다가 후한 말 시기에 멸망하였다. 옥저와는 달리 동예의 멸망에 관해서는 기록은 없으나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구려에 복속된 뒤에도 한동안은 주류 고구려인과는 구별되는 정체성을 유지했는지, 한참 뒤인 6세기에 일어난 사건인 독산성 전투 때도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할 때 동예인 병사 6천 명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백제 본기 성왕조에 나온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북명(北溟)을 동예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이곳 출신의 고구려 장수로 괴유[2]가 있었다.

2. 가설

2.1. 고구려 복속설

그 당시 강자로 부상하던 고구려가 옥저를 복속시킨 후에 공격했고, 이에 따라 동예가 멸망했다는 것이다. 57년 태조왕에 의해 옥저가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고, 244년 - 245년경 고구려에 의한 직접 지배가 실시되었으므로, 이때 옥저와 비슷한 위치에서 고구려에 조공하던 동예는 마찬가지로 고구려에 의한 직접 지배를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2. 자연 멸망설

동예는 왕권이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은 느슨한 연맹 왕국 체제였다. 이에 따라 내부 분열이나 내부에서의 혼란, 반란 등의 이유로 멸망했다는 설이다.

이 설이 맞더라도 어찌되었든 잔존 세력들은 차후에 고구려에 복속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늦어도 4세기 말에는 이 지역이 이미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2.3. 기타 요인설

북방의 유목 민족과 같은 다른 소수 민족들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는 설이다.

3. 문화

동해안에 해안을 끼고 위치한 까닭에 해산물이 풍부하며, 그 외에도 단궁(박달나무로 만든 ), 과하마(키 작은 조랑말), 반어피(물범 가죽) 등이 특산물이다. 그리고 산악 지형이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경이 발달했다고 한다. 제천 행사로는 10월의 무천(舞天)이 있었으며, 씨족 사회의 관습이 엄격히 남아 남의 마을을 침범하면 재물로서 보상하는 책화[3], 같은 부족 사람끼리는 혼인하지 않는 족외혼의 풍습이 남아있었다. 민족은 족 또는 예맥족으로, 역사서에는 그냥 '예'라고만 나와있다. 그리고 원삼국시대 관련 기록에서 강원도 지방에 말갈이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말갈족도 있는 다민족 국가였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4] 그냥 '예'였던 나라 이름을 민족 이름과 구별하기 위해 현대의 역사가들이 '동' 자를 붙였고, 그게 국사 교육에까지 그대로 적용되었다.

4. 문제 출제 유형 및 사료

대군장이 없고, 한 대 이후로 후, 읍군, 삼로 등의 관직이 있어서 하호(下戶)를 통치하였다(대통령 없이 시 도지사만 있었단 이야기). '풍속은 산천을 중요시하여 산과 내마다 구분이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고 고구려에 복속되었다'는 표현이 나오면 동예다. 약간 지엽적으로 출제될 경우 특산물인 반어피, 과하마, 단궁이 고구려나 부여 특산물이라고 치사하게 말바꾸기 형식으로 출제된 적이 있다. 동예의 무천 행사(10월)를 제천이나 영고로 표현해서 오답형으로 종종 출제된다. 옥저와 마찬가지로 동예는 연맹 왕국이 아니라 군장 국가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 대군장이 없다고 직접적으로 제시된 떡밥도 있으며, 조금 어렵게 출제될 경우 나올 수도 있으니 군장 국가임을 인식하자. 연맹 왕국은 부여, 고구려다(둘 다 5각 체계. 부여 - 5가, 고구려 - 5가 >> 5부).

2016년 계리직 공무원 한국사 시험에서는 '식구가 죽으면 살던 집을 헐어 버렸다'는 지문이 동예의 특징으로 제시되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에서는 지학사 교과서가 다루는 내용이다.


[1] 현재 원산은 북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인해 강원도에 속해있다.[2] 괴유는 북명 출신인데, 북명의 위치 비정이 매우 힘들어 단순히 동예 출신으로 단정짓기엔 오류가 있다.[3] 가축이나 노예를 주로 보상 대상으로 삼았다.[4] 단, 강원도의 말갈족은 숙신계가 아닌 가짜 말갈, 즉 동예를 가리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예맥족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옛날에는 국경이 발달했던 것도 아니었고, 숙신(말갈)도 떠돌아다니거나 남쪽으로 이동했기에 극소수의 말갈족은 아마도 강원도 지역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인 데다가 아주 극소수였을 가능성이 크기에 예맥이 아닌 "진짜 말갈"(숙신계)은 많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