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6 17:09:46

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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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
기원전 108 ~ 기원전 82 진번군 임둔군 *
기원전 82 ~ 기원전 75 낙랑군
기원전 75 ~ 1세기 현도군
-2 (흥경으로 이현)
1세기 ~ 204 -2 (무순으로 이현)
204 ~ 313 대방군**
313 ~ 404 -2 (요서로 이현) -2 (요서로 이현)
* -2 현도군은 기원전 107년 설치되었음.
** -2 대방군은 314년 한반도에서 축출되었음.

1. 개요2. 시기에 따른 이동
2.1. 제1차 현도군2.2. 제2차 현도군2.3. 제3차 현도군
3. 위치 논쟁

1. 개요

玄菟郡. 고조선(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漢)나라가 설치한 한사군 중 군현이다. 중국 본토 방면으로 이동하다 고구려에 의해 완전히 쓰러진다.

2. 시기에 따른 이동

2.1. 제1차 현도군

고조선이 멸망하고 기원전 108년에는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이 설치되고 이듬해 (기원전 107년) 설치되었다. 기원전 82년 진번군, 임둔군이 폐지되었을 때 임둔군의 군현 일부를 흡수했다고 한다.

2.2. 제2차 현도군

기원전 75년, 현도군의 치소(고구려현)가 혼하(渾河) 상류의 흥경(興京) 일대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원고구려 세력 등 토착민의 공격 때문이다. 당시 오환족을 상대하고 있던 한나라로서는 압록강 중, 상류의 지배를 강화할 수 없었고 이때를 노려 한의 압박 지배가 완화되자 토착민들이 공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신빈현(新賓縣) 영릉진(永陵鎭)으로 군치를 옮긴 현도군은 현도성을 수축하는 등 압록강 중, 상류의 이맥(夷貊, 토착민) 세력을 경계한다.

상은태현(上殷台縣), 고구려현(高句麗縣), 서개마현(西蓋馬縣)의 3현이 있었다.

2.3. 제3차 현도군

1세기 말, 후한은 갖가지 자연 재해와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된다. 성장하고 있던 고구려는 제2현도군과 요동군을 줄기차게 공격한다.

결국 내지 쪽인 무순(撫順) 지방으로 후퇴하였고, 이때 원래 있던 고구려현, 상은태현, 서개마현에 더불어 본래 요동군의 현이던 고현(高顯)현·후성(侯城)현·요양(遼陽)현 3현이 더해져 6현이 되었다.

후한 말에 요동 공손씨 정권 세력가의 지배를 받다가 위나라, 서진를 거쳐 315년에는 고구려의 침공을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미천왕이 313년 낙랑군, 314년 대방군, 315년 현도군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본격 한사군 레이드...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명색만 군현인 채로 전연후연을 거치다가 404년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공략하던 즈음 그 교두보로써 편입된 듯 싶다. 멸망.

3. 위치 논쟁

  • 압록강 중,상류 [1]
    <한서> 지리지와 <수경주>에 보이는 고구려현과 서개마현이 근거. (고구려는 지금의 졸본 - 집안 일대에, 개마국은 함경북도 개마 고원으로 비정되므로 그들의 원류인 고구려현과 서개마현은 압록강 중, 상류일 것이다.)
  • 함경도 방면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동옥저 편에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다"는 문장에 착안함.
  • 함경도 + 압록강 중, 상류
    청나라 말, 양수경의 『회명헌고(晦明軒稿)』중에 수록한 「왕사탁한지석지박의(汪士鐸漢地釋地駁議)」에서 주장됨.
  • 통구평야(通溝平野)
    이병도의 주장으로, 기원전 128년에 설치되었던 창해군의 땅에 설치되었다는 이야기다.(창해군은 예군 남려의 귀부로 설치된 곳으로, 예군의 "예"를 예맥으로 보고, 고구려도 예맥의 일원이었으므로 결국은...)
  • 무순 + 함경도 + 압록강 중, 상류 심한 듯
    일본의 사학자 와다 키요시(和田淸)의 주장이다.

어찌 되었든 집안(集安) 국내성지(國內城址) 아래층의 토축(土築) 성벽, 환인(桓仁) 하고성지(下古城址), 통화(通化) 적백송고성(赤柏松古城) 등 한대 토성지(土城址)들을 현도군이나 속현의 치소로 추정하고 있다.


[1] 위의 서술은 모두 이것에 기반을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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