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3 11:45:57

동북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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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국가의 역사왜곡
중국의 역사왜곡 한국의 역사왜곡 일본의 역사왜곡


1. 개요2. 상세3. 대응4.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이 얻고자 하는 것5. 근황6. 동북공정의 실상?
6.1. 반론
7. 발해 관련 논란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

공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东北边疆历史与现状系列研究工程)[1] 한국어로 풀어서 해석하면 '동북변강지역의 역사 및 현상에 대한 연구 사업'.

타국의 역사를 도둑질하려는 역사왜곡의 한 사례로 손꼽히며, 21세기 중국 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하고 있는 일종의 '정치적 역사 사업'이다.

2. 상세

[ruby(서남공정, ruby=티베트)], [ruby(서북공정, ruby=위구르)]과 더불어 중국에서 대표시되는 탐원공정[2]으로, 중국 정부가 행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벌이는' 역사 사업이다.

중국 주변의 작은 국가들이 사실은 중국의 고대 국가 중 하나였다고 주장하여, 그 나라를 시조부터 뿌리째 중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실로 고도하고도 병맛나는 작업이다.[3] 이미 '하상주단대공정'과 '중화문명탐원공정'을 통해 중국문화의 유서 깊음과 우월함을 입증한[4] 이후로는 위구르, 티베트, 몽골, 만주, 운남 지역처럼 한족의 정통성이 부족한 변경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 기준에서 현재 이미 삼켜진 나라는 위구르, 내몽골 자치구 지역과 티베트, 만주, 운남이다. 참고로 내몽골 북쪽의 러시아와 중화인민공화국에 둘러싸인 내륙국인 몽골은 엄연히 독립국가이다.

현재 동북공정의 '동북'은 '동북 3성'을 지칭하며, 중국은 그 중 특히 고구려발해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고자 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나름 유래가 깊다.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 동향 분석'[5]에 따르면 무려 1940년대에 김육불(金毓黻)의 저서'東北通史'에서 '고구려의 일족은 본래 부여에서 나왔고 우리 중화민족의 일부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력이 있고, 1985년 손옥량이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소수민족정권으로 보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근래에는 고구려에 이어 백제까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동북공정의 주요논리는 속지주의 역사관에 두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여기서 속지주의 역사관은 중국만 사용하는 역사관이 아니다. 항간에 속지주의 역사관이 마치 나쁘거나 잘못된 역사관인양 얘기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속지주의 역사관이나 속인주의 역사관이나 역사의 주체를 무엇으로 보느냐의 차이일 뿐 딱히 우열이 있거나 옳고그름이 있는 것은 아니다.[6] 중국인의 역사 의식은 민족보다는 땅에 중심을 두고 있기에 민족으로는 한족이 순수 중국인[7]이라고 하면서도 현재 중국 영토는 물론 중국화되지 않았던 여러 지역을 포함한 청 제국 영역에서 일어난 다른 민족의 역사도 중국 역사라고 본다. 동북공정은 이것의 연장선상으로, 이들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건 고구려의 발흥지와 고구려 영토의 일부 현재의 중국 땅이기 때문이고, 민족으로 따지면 몽골제국의 한 시기인 원나라를 자기네 역사라고 하는 것도 이래서인 걸로도 볼 수 있다.[8] 간단하게 말하자면 동북 3성 영토 내에서 과거와 현재 일어나는 일은 중국의 역사이다."가 동북공정의 핵심논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의 역사 의식인 혈통, 민족에 의한 속인주의 역사관으로 반박을 하기가 애매하다. 애초에 완전히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북공정이 순수하게 속지주의 논리에 기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중국에선 역사상 중국 동북지방 소수민족들이 본래부터 중국인이었다는 시대착오적 주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북 소수민족들을 황제(중국신화)에 연결시키며 신화시대부터 이들이 중국인이었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9] 즉, 중국인 다기원론을 긍정하면서도 그 융합의 시기를 고대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에 따라 동북지방 소수민족의 국가를 중국사에 편입시킨다. 이렇게 되면 사실 속인주의와 별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 또한 역사시대 기술에서도 동화되지 않은 주변 이민족들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복속관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동북아 국제질서의 특징상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음에도 중국은 이를 실질적 복속관계로 과대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중국의 전근대적 역사 기술의 답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순수하게 속지주의에 기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속인주의 논리나 전근대적 역사 해석까지 자신들 유리한 대로 끌어다 쓴다고 보아야 한다.[10]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단일민족국가 체제 하에서 중국인=중화민족으로 만들어나가려 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프로젝트의 일환이 동북공정이다. 저 '중국인'이란 현재 중국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며, 이는 다민족 국가인 중국이 중국내 모든 민족을 다 통합하겠다는 내부 집안단속의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이처럼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있기에 순수하게 속인주의적으로 중국사를 기술한다는 접근을 하지 않고 중국민족이라는 관념 형성에 유리해보이는 속인주의, 중원 제국 계승 의식 등도 모두 끌어다 쓰게 되는 것이다.

중국이 이런 역사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밑에 있는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이 얻고자 하는 것'에 있는 것처럼 중국은 기본적으로 다민족 국가이며, 중국 내에서 여러 다민족이 세운 나라들이 공존했던 시기가 길었던 탓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중국인 학자는 손진기가 있다. 손진기는 1994년 북한학자들이 1960년대 자신들의 관점을 공개 천명하고 1979년 '조선전사(朝鮮全史)'를 출판하여 집대성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손진기와 마찬가지로 현재 동북공정 주장의 기틀을 닦았으며, 그의 주장은 현재 동북공정의 기본 논리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손진기는 한마디로 말해 '북한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라고 주장하는 것.

당시 손진기가 문제 삼았던 북한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조선반도와 중국동북지역에는 고조선유형의 사람이 살았고, 이들이 고조선을 건립했으며, 고구려가 일어나 낙랑군 및 요동군의 한인세력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였다.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요동 및 조선반도 북부를 차지한 이후, 신라/고려/조선이 점차 반도북부를 수복하였다. 동시에 고구려 계승국인 발해국이 동북지구를 수복하고, 신라와 함께 남북조를 형성하였다. 비록 중국과 조선이 압록강과 도문강을 경계로 하고 있지만 조선에 귀속되어야 할 동북지구를 중국이 침략하여 차지하고 있다."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겠다는 숙원이 오래 동안 조선인민의 마음속에 묻혀있다."
-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 동향 분석
한편으로는 학계 일각의 주장과 달리 동북공정은 한국 내 환빠보다 그들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북한 사학계가 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환빠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어찌됐건 말하자면 그렇다. 참고로 당시 북한 학자들의 발언과 달리 1960년대 조중변계조약 당시 북한 측은 현재의 영토선에 만족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만약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려면 조중번계조약 때 고구려 영토도 주장했어야 했는데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조중변계조약에서 고구려 영토까지 올라가지 못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1700년대 숙종 집권기에 청나라와 조선이 국경을 정할 때, 청나라는 천지까지 채 올라가지 않은 백두산 중턱을 압록강과 두만강의 분수령이라고 착각했다. 이 때문에 그 위치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뻗어나간 지점을 국경으로 정하게 되었다. 그랬던 것을 1960년 대 조중 관계가 밀월에 있을 때 중국이 '대국적으로' 통 크게 천지의 반까지를 북한의 영토 상한선이라고 인정해서 끌어올린 것이다. 이미 중국의 호의를 받은 북한측에서는 그 정도도 괜찮다 해서 그냥 만족하고 현재의 영토선에 남게된 것이다.

한편 동북공정의 기원은 의외로 중국의 일본에 대한 방어적 외교에서 비롯되었다.[11] 중일전쟁만주를 무력점령한 일본이 역사적인 정당화를 위해 만주는 중국중원왕조와 역사적으로 관계없는 지역이라는 학술연구를 시도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중원한족왕조와 만주의 연결고리로서 등장한 것이 고구려인 것이다.[12]

현재까지 세계적으로는 동북공정이 부정을 받고 고구려 등의 중국 국토 내에서 전개된 역사들은 모두 해당 국가들의 입장대로 그들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별개로 동북공정은 과거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이고 날카로워지고 있다.[13] 일본 구글에서 동북공정을 검색해 나온 위키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외국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장을 하였으며 이에 반하여 한국 측은 아무래도 인력 면에서 밀리는 편이다.[14] 중국의 학문은 시간이 쌓여야 빛을 보는 분야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지,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당장 IMO 최대 강적이 중국이다. #, #, # 실제로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이두 백과에서도 고구려에 대한 생각에서 동북공정과 유사한 역사관을 볼 수 있으며, 고구려와 한국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일본 같은 경우는 이전에 이미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한국의 역사를 일부러 무시하는 보수 세력이 원래부터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설이라면 중국 것이라도 상관없이 이용하기도 하는 부분이 있다. 더욱이 위에 든 예시들의 출저 국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한국 관련 역사 왜곡은 특히나 중국, 일본이 주도해왔기 때문에 그 빈도 또한 대개 중국과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이 할 일은 이런 역사학계의 지원을 늘여 이런 왜곡이 통하지 않도록 대응하고 이러한 가설들을 파훼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심지어 중국은 고려왕건조차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적인 침탈 이 외에도 재중동포들을 이용해 한복, 장구무, 농악무, 널뛰기, 그네타기, 한국 전통혼례, 아리랑 등 다양한 한국의 문물을 자신들의 문화로 등록하고 이중 농악무 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Farmer’s dance of China’s Korean ethnic group'란 이름으로 등재하였다. 그런데 중국의 한국 민족의 것으로 등록되었다. 응? 단, 이것은 실체를 알아보면 다른 다문화 국가에서도 하고 있는 이민족 문화 인정에 더 가깝다.
  • 태조 왕건이 한족이라고? 중국 지린성 학술지 논문 파문 (기사링크)
    단, 이것은 중국 사학계의 주류적인 입장이 아니다. 구태여 비교하면 한국에서 환빠랑 비슷한 취급이랄까. 왕건이 한족이라는 주장은 중국 내에서도 광범위하게 인정받지는 못한다.
  • 中 단오절. 농악무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사링크)
    단오절이 최초 기원은 중국이라는 것은 국내에서도 인정하기 때문에 중국의 잘못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조선족 농악무는 이론의 소지가 많은 편이다. 참고로 한국이 유네스코에 등재한 것은 단오절 자체가 아니라 강릉단오제라는 공연이다. 한국의 단오절은 처음들여왔을 때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더라도, 한국 자체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중국의 풍습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의 강릉단오제 등재와 중국의 단오절 등재 모두 잘못이라고 하기 어렵다.
  • 한글공정 -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일본에서도 동북공정을 옹호하거나 동조하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

여기에 부수해 중국만주족, 거란족 등의 역사를 무작정 중국사로 편입하는 데도 혈안이 되어 있다.

또 중국은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고구려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들을 중국의 이름으로 등록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미 한번 퇴짜맞은 적이 있지만 중국은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다.

3. 대응

사실 대응하지 않아도 고구려의 경우는 한국사의 범위 안에 속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꾸준히 고구려를 한국사로 인식[15]했지만,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찬한 적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옛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만주에 사는 사람들을 동쪽에 사는 이민자들을 비하하는 멸칭, 즉 동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고구려를 전통적으로 중국사로 여기지 않았으나, 현대에 들어서서 자국사로 편찬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시 고구려의 지리적 측면에서 봐도 고구려는 만주보다 한반도에 가깝다. 고구려가 중국 동북지방의 일부분을 꽤 많이 차지한 것은ㅡ그리고 오늘날의 한반도 쪽 영토보다 중국 쪽 영토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은ㅡ 4세기 말까지 가서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한반도 쪽에 대부분의 영토를 두고 있었다. 건국 초기부터 함경도 쪽의 옥저, 강원도 쪽의 동예를 자국의 영역에 편입해 나갔었다. 바로 북쪽에는 부여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북쪽 땅은 춥고 척박했으므로 비교적 기름진 평안도 지방 등보다는 쓸모가 덜 했다. 때문에 후반기에 가서는 만주보다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 나라로 변모했고 주요 3경 중 2개가 평안도, 황해도에 있었다. 수도들 또한, 졸본과 국내성은 압록강과 거의 붙어있는 수준으로 가깝고(오늘날 중국 영토에 있긴 해도) 평양은 그냥 현재 북한의 수도다. 물론 발해야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이에 대응해 한국 정부에서 고구려 문화유산 중 하나를 유네스코에 등재신청했다고 하는데 등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이에 대응하여 고구려 연구재단(현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설되었으며, 반크 등에서 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 근데 반크도 동북공정급 억지를 부린다.

2006년도 후반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북공정 반대 운동이 있었으나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묻혀버렸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공식적인 역사 교육에서 동북공정에 대응하는데 발해에 대해 중국에서는 발해를 말갈의 나라이고, 고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라고 주장하나 한국 교육에서는 일본과의 외교 문서와 고려와의 연관성을 근거로 들어 동북공정을 비판하고 있다. 문왕과 무왕의 외교 문서에서 발해가 고구려 영토의 부여 민족이거나 발해왕이 고려 국왕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멸망 후 고려에서 발해 유민들을 그대로 수용하여 발해와 고려는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4.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이 얻고자 하는 것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하나의 중국을 위해 소위 중화민족으로 대표되는 소수민족 분쟁 단초 제거이다.[16]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중국의 대부분 역사가 북쪽 유목민에 의해 건설된 역사 북위(선비족), 수(북위), 당(북위), 요(거란족), 금(여진족), 원(몽골), 청(여진족)과 관련이 깊어서 한국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소련러시아와 기타 국가들로 분열한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 기존의 사회주의 패러다임을 대신해 국가동일성을 유지할 기제로 중화민족이라는 민족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 내 모든 민족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싶은 것. 이 부분은 하나의 중국 참조.

즉, 애초에 대외용이 아닌 대내용이었다. 왜곡을 당한다는 인식을 가진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의도가 대내용이나 대외용이나 차이가 없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애초에 시작점이 동북공정으로 타국과 마찰을 빚겠다가 아니라 다민족국가인 중국 내부 정리용이라는 차이가 있다. 즉, "외부로부터 무언가 얻어내겠다가 아니라 외부와 마찰이 있다해도 개의치 않겠다"라는 입장인 것이다.

이를 동북공정에 적용해보자면 만에 하나 한반도가 남북통일됐을 경우, 중국 동북부 영토에 있는 안 그래도 지금도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묘한 소속감을 가진 재중동포들이 한국 쪽으로 붙겠다고 나설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17] 특히, 한국에서 조선족 거주지인 간도를 자국의 영토라는 인식을 가지고 운동을 벌이고 있어서라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고구려의 중심지는 요동압록강 유역, 평양 일대였지, 간도는 아니기에 패스. 사실상 한국이 통일이 된 이후 상당기간이 지나면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즉, "고구려와 발해의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자"같은 것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주지했다고 볼 수 있다.[18] 당장 백두산부터 분쟁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큰 마당에[19] 이러한 옛 영토 수복운동은 중국에 있어서 당혹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 근본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중국 정부의 의도로 볼 수 있겠다.[20]

그러나 상술한 고토회복방지 운운은 사실상 현실성이 결여된 생각이다. 계속 얘기하지만, 애당초 동북공정은 대외용이 아닐 뿐더러 한국이 무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나 일본마냥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미쳐 돌아가지 않는 이상 이미 1천 년이 지난 시점에서 "여기가 1천 년 전 옛 조상 땅이니 우리 땅이다. 그러니 돌려달라"라는 국제적으로 씨알도 안 먹힐 얘기를 할 리가 없다. 인류는 그런 고토회복 논리로 이미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오가덴 전쟁, 걸프 전쟁 등을 겪었으며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대립은 현재진행 중이다. 만일 중국이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로 인정한다고쳐도 '''그냥 자기들이 갖고 있으니 여긴 우리 땅이라면 끝나는 이야기이다.[21] 일단 그런 얘기를 하려면 우선 통일부터 해야하고 한국이 통일된다 쳐도 애시당초 가능성 없는 이야기이다. 역사는 그냥 일개 학문일 뿐이지 영토, 혹은 민족사적 자존심을 되찾아올 전가의 보도도 아니고 외교상의 만병통치약도 아니며, 당연히 중국에게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미치지 않은 이상 통일조차 되지 않아 국경도 접하지 않은 국가의 발생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타국의 고토회복운동을 방지하겠다고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사업을 하겠는가? 고토회복운동 방지보다는 차라리 역으로 북한을 먹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쪽이 더 현실성이 있다.

동북공정의 문제는, 자국 위주의 역사관을 강조하였고, 외국의 역사관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이웃한 국가들과 마찰을 빚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인 사정을 내세우며 전혀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소수민족 융합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소수민족이 모두 독립할 시 구 소련꼴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강하다. 대표적인 예로 티베트 독립에 대해 중국정부의 입장을 보면 티베트도 현재 중국영토 안에 있는 지역이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은 '민족이 어떻든 중국인이다.' 라는 것이고 동북공정도 그런 소수민족 이탈, 독립을 막기 위한 사업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중국의 입장일 뿐 한국에서 그것을 수긍해줄 필요는 없다. 다만 막연한 아님말고 식의 비판이나 음모론식 오해는 동북공정을 대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비판하고 대비하려면, 동북공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만드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애시당초 처음부터 철저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동북공정을 순수 학문적으로만, 그것도 중공에게 대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논리적인 근거도 들으려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사람에게 하루종일 논리적인 근거를 읊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5. 근황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2006년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으나, 그와 관련된 문제는 종결 이후 10년이 지났음에도 현재진행형이다.현재 중국 바이두 백과 등에는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5호 16국 시기에 난립했던 국가들의 하나로 기술하고 있으며, 한국사 파트[22]에서도 삼국시대를 '삼국시대'로 따옴표쳐 기술하면서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바이두가 사실상 중국정부의 통제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의도적인 조치라 볼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우회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거대 사이트에서 이런 것을 메인으로 걸었다는 점에서 우리도 국가차원의 주목이나 조치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있다.아무래도 다양한 문서에 걸쳐 수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사로 분류해놓았던 것을 돌이켜보면 이러한 관점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주도로 역사왜곡이 이뤄지고 있다.#

中, 고구려에 이어 백제까지 중국사에 편입했다.

2016년부터 발간되고 있는 '동북고대민족역사편년(东北古代民族历史编年)에서는 현재 백제사까지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논거로 '백제의 발흥지는 과거 한사군의 영역이었고, 백제의 민족 기원은 중국의 동북방 소수민족정권[23] 부여에서 나왔으며, 백제 멸망 후 백제 고지에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고, 많은 백제 유민이 당나라로 유입되었음'을 들면서 백제 역사를 한국사인 동시에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킨 것이다.

이런 논리로 가자면 금나라와 청나라를 한국사로 볼수있다. 금나라는 발해의 구성원 중 하나인 말갈족에서 나왔고 고려 때 동북9성을 설치한적있으므로 여진족, 만주족의 역사는 한국사의 범위에 포함할수있으며 북송과 명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 청나라 모두 한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보통 환빠들이 자주 시전하는 논리에 속하며 당연히 말도 안되지만 중국은 시전하고 있다(...). 고구려가 북방 유목민족을 통제했으므로 그 일파의 후예인 몽골제국은 한국 역사라고 해도 할말이 없는 수준의 이야기이다.

이를 통해 동북공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특히 백제 역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중국 사학계의 역사 분류 동향이 '현재 중국 영토 안의 역사는 중국 역사'라는 속지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주변국의 역사를 자국사화하는 팽창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그런대로 먹이지만 국제정세나 한국에는 먹히지가 않는게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세력이 많은데다가 한국의경우 고려의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동명성왕을 시조로 삼고, 고구려의 역사를 고려본기에 포함시키고,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을 서경으로 바꾸어 제2의 수도로 삼는 등 고구려의 역사를 꾸준히 한국사로 인식해온 탓에 별로 영향은 크지 않다. 어느정도냐면 유네스코에서도 중국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했을 정도.

6. 동북공정의 실상?

하버드 대학 마크 바잉턴 교수에 의하면, 동북공정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중국 학계에서도 주류가 아니며 2002년~2007년의 기간 이후에는 사실상 끝났다고 한다. 그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국내의 반응은 다소 과잉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영상. 사실 중국 역시 자기들 역사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고구려나 발해 같은 나라들은 잠깐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하다.[24]

자율권이 있는 경우에는 다르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소수 민족들은 자율적으로 자기들의 역사를 중시하여 다르게 배우기도 한다. 물론 아무래도 시간과 돈, 인력이 부족하고 공산당이 주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외로 여간해서는 너희끼리 알아서 하란 식으로 신경 끄고 상당히 내버려 둔다. 그래서 정부나 학계 입장과는 매우 다른 주장도 많다.

실제로도 직접 확인을 해보면 중국 주류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일단 중국 역시 환빠적 세력은 있으며 소수민족 사람들도 모두 독립을 원하는 게 아니라 동화주의 세력[25]도 없지는 않다. 소수민족의 엘리트들이나 지도자들 역시 굳이 지리적[26]으로 딱히 유리하다고 보기 힘든 독립을 하기보다 우대 정책의 혜택을 받거나 과학기술적 교육, 기회를 받는 편이 더 낫다, 혹은 신생 독립 국가보다 중국에서 학자가 되거나 관직[27]을 얻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히 동화주의 세력들의 주장은 그들의 입장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질적인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동화를 원하는 몽골인들 중에는 칭기즈칸을 자랑스러운 중화의 대영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6.1. 반론

설사 위의 말이 맞다고 쳐도 진짜 큰 문제는 중국의 최고 독재자를 비롯한 정치 주류권이 그들 편을 든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위의 예시를 든 일본처럼 중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다면 이런 주장에 따라 동북공정이 별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중국은 엄연한 독재국가, 그것도 정권 스스로의 이득에 따라 국민들의 역사관을 적극적으로 왜곡하려고 드는 독재국가라는 사실이 문제이다.

특히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이나, 고구려와 백제가 자기네 역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하튼 시진핑을 비롯한 주류 정치인들이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게 문제이다.

7. 발해 관련 논란

발해의 한국사 귀속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발해는 고구려의 후손 대조영이 건국했지만 현재 나타난 사료로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말갈족'인 나라이며, 대부분의 영토가 '중국'에 있는 나라이고, 당나라의 문화와 고구려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니 이 부분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무턱대고 발해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발해를 '한국의 고유한 역사'로 주장하는 데 대해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학계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며 고구려에 대해서는 한국사로 포함시키는 데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많은 외국 학자들도 발해에 대해서는 "고구려는 그렇다쳐도 발해는 글쎄?"라 말하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발해사는 러시아 극동 민족라고 보는 견해까지 있고, 그래서 러시아에는 '발해의 별'이라는 보드카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국내에서도 이종욱 교수가 발해사를 한국사로 보는 것을 부정한 바 있다.

그리고 학술적으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생각이나 관점들도 상당히 많다. Encyclopedia of the Peoples of Asia and Oceania, A History of Korea: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같은 것들은 한국인의 시각에는 동북공정처럼 보이나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다양하게 참고하여 살피면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Michael J. Seth은 한국인들이 '발해'를 '순수 자국사'로 보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라고 얘기했다. 외국 대학들의 서적이나 논문들도 역사나 고대 언어 등에서 충분히 '학술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8. 기타

워낙 2000년대에 이슈가 된 화제라, 인터넷 등지에서는 특정 POV의 관점으로 과거문제를 과장하거나 왜곡/날조하는 짓을 ~공정이라는 접미어를 붙여서 속칭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사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며 일본 정부에서는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애초에 고구려와 발해에 관심도 없는 나라이다. 물론 고구려 유민들이 오늘날 사이타마에 코마라는 지역으로 집단이주한 것은 사실이고 코마 지역에서는 여전히 고구려도 기리는 행사[28]를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만 챙기는 경우이다. 정부차원에서 대놓고 역사조작을 하는 중국과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다.

9. 관련 문서



[1] 한 중학교에서 공식 명칭을 쓰는 것이 6점짜리 시험문제로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2] 국내에서는 흔히 서북공정이 신장(新疆) 위구르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사업으로, 서남공정은 시짱(西藏) 티베트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작업으로 알려진 듯하다. 그러나 이들 명칭은 동북공정에 의한 영향으로 국내에서만 통용되고 있는 개념이며, 중국에서는 이러한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대신 중국 정부는 일찍이 1983년 중국사회과학원(中国社会科学院) 직속으로 설립된 중국변강사연구중심(中國邊疆史硏究中心)과 1986년에 설립된 중국장학연구중심(中國藏學硏究中心)을 통해 서부지역의 경제·역사·문화 등을 중화민족이라는 틀 안에서 한족 중심으로 재편성을 시도해왔으며, 2000년대에 들어 서부대개발(西部大開發) 계획을 통해 이러한 통합정책이 더욱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3] 당연히 대놓고 역사왜곡을 하면 국제적으로 인정을 못 받으니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게 바로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역사서들에서 특정 부분의 앞뒤 다 짜르는 일종의 악마의 편집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교류하고 조공하며 친하게 지냈다는 내용이 있으면 조공했다는 내용만 인용하는 식이다.[4] 허나, 국제학계는 물론, 중국 자국 내에서도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실제로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성과가 없어서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정치권의 생각없는 행동으로 예산낭비만 했다며 지적을 받았다. 그나마 이 과정에서 나온 성과라고 해봐야 - - 의 이상적인 선양 과정이 이상적이라고 하기에는 대단히 수상하다는 것 정도뿐이다. 근데, 이게 하상주대단공정의 성과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게, '중국 정치권에서 하나라 실존 증거 찾음 -> 중국 및 국제 역사학계에서 프로젝트가 매우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음 -> 중국 역사학계에서 삼황오제와 하나라 관련 사료들을 찾다가 이상한 기록들을 봄 -> 요순우의 선양과정이 수상한 것 같다?'의 테크트리를 타서 연구되었기에 정계의 하상주대단공정과 무관하게 나온 성과다. 거기에다가 하상주대단공정은 하나라 유적들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점을 보면, 중국 역사학계 말대로 정계의 일방통행으로 인한 엄청난 예산낭비가 맞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5] 고구려연구재단(현 동북아역사재단) 저[6] 대표적인 예로, 현 터키의 강역인 아나톨리아 반도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하던 문명의 요람으로, '땅의 역사'인 아나톨리아 지방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인 투르크 민족의 역사를 나눠서 연구하고 있다.[7] 요즘에는 하나의 중국이 강조되면서 이런 얘기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냥 중국인은 중국인일 뿐 민족관련 얘기는 최대한 안 하려고 하는 게 현재 중국이다.[8] 단, 원나라와 고구려는 다르다. 원나라는 한족 문화에 동화되는 경향이 강했으나, 고구려는 중국 문화를 받아들였을지언정, 문화적으로 동화되지 않았다.[9] 이런 신화 연관짓기가 학술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일지 모르나 동북공정의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고려하면 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10] 예를 들어 러시아가 새로이 '러시아 민족' 개념을 만들고 자신들의 슬라브적 뿌리에 따라 폴란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의 역사가 자신의 역사라 주장하고 동시에 우랄어계 민족이 섞였으므로 핀란드와 헝가리사도 러시아사이며 퉁구스계 민족도 섞였으므로 청나라도 러시아사이고 투르크족도 섞였으므로 돌궐, 티무르, 무굴제국도 자국사라고 주장하는 셈이다.[11] 한술 더 떠서 동북공정의 모델이 구 일본의 역사왜곡을 모델로 삼았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이는 저자가 친일 의혹이 있다는 환단고기와 그것을 추종하는 국내의 소위 재야사학(=유사역사학)계가 일제의 만선사관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과도 궤를 같이 하는 면이 있다.[1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패망으로 신생 중국의 만주 지배는 확고한 것이 되었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13] 다만 일반적인 시각과 다르게 # 처음부터 괴이한 주장을 하고 다녔던 것은 아니다. 기실 이상한 주장들을 하고 다닌 사람들은 중국판 재야사학자들이라고 보면 된다.[14] 일본 위키의 고구려 항목을 보면 일본 학계와 일본인들의 역사관에 동북공정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5] 고려시대에 쓰인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16] 중국으로서는 한국이 훗날 통일되어 "잃었던 옛 우리영토를 되찾자"는 민족주의 운동의 발현때문에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기는 하다. 게다가 현재에도 소수민족의 독립운동 문제로(위구르, 티벳) 인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말뚝을 박아야겠다는 입장이어서 이에 더더욱 집착할 수 밖에 없다.[17] 더구나 한국경제가 부쩍 발전된 상황에서 조선족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어서 중국이 이 역시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지경이다.[18] 현재 북한문제가 당면한 큰 문제이기 때문에 잡시 접어둔 것일 뿐, 통일이 이뤄지고 어느 정도 안정기로 접어든 후에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소수이긴 하지만 고구려와 발해에 관한 한 한국의 입장은 확고하기 때문에 먼 훗날에는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크다.[19] 특히 백두산은 통일초기부터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20] 카더라이기는 하지만, 과거 덩샤오핑은 한국과 일본의 놀라운 경제 발전을 보고 훗날 한국이 고토를, 일본이 과거의 점령지를 되찾겠다고 중국을 위협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는 설이 있다.[21] 애초에 국제사회에서 영토분쟁을 해결할때 사용되는 근거로 실효지배하는 쪽이 어느 나라인가로 보는 경향이 크다.[22] 정확히는 조선반도의 역사라고 해놓았으며 한국사 항목은 48년을 건국을 기준으로 기술해놓았다.[23] 물론 한국에서는 당연히 이런 망언을 부정하고 있지만.[24] 유튜브에서 중국, 일본에서 한국사에 대해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해 각국 대학생들을 두고 중ᆞ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을 기준으로 답변하도록 시켜서 광개토대왕, 발해가 어떤 인물, 국가인지 등등을 물으며 시험해본 영상에서도 중국 대학생들의 답변은 하나같이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고 발해는 수ᆞ당과 교류한 것으로 잠깐 나왔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일본의 대학생들은 윤봉길이 누구인지에 대해 나오자 이름이 무슨 한자인지조차까지 전혀 몰랐다. 다만 한국전쟁 같은 현대사는 다 알고 있었다.[25] 기사 "한족의 문화에 대해서도 비교적 수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어중간한 입장을 가진 부류가 사실 제일 많은데 전체 위구르인의 60%정도가 이 부류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현실타협적인 부류가 약 30%, 첫 번째 민족주의적인 부류도 10% 정도는 될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필자가 현지에서 살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추정치이므로 객관적이지 못하며, 도시에 따라 또는 관점에 따라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밝혀 둔다."[26] 소수 민족들의 위치를 보면 해안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리한 편이다. 더구나 사실 자원의 가치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추정인 경우도 많고 셰일 혁명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용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27] 주요 요직을 얻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경제력, 학벌 수준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인구 대비로 보면 꼭 그렇다고 보기도 힘들다.[28] 2016년에 1300주년을 기리는 행사를 했다. 716년이 당시 일본 정부가 고구려 유민들을 위해 코마군을 창설한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