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6 15:01:07

대한민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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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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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근대 이전2.2. 일제강점기2.3. 현대2.4. 미래
3. 국제사회의 인식
3.1. 대한민국의 세계 인식3.2. 세계의 대한(對韓) 인식
4. 국가/지역별 관계5. 수교국가6. 미수교 국가
6.1. 승인6.2. 미승인
7. 단계별 우호 관계
7.1.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7.2.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7.3. 전략적 동반자 관계7.4. 포괄적 동반자 관계7.5. 동반자 관계7.6. 협력 관계
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1. 개요

한반도에 위치한 두 주권국가 중 하나이자, 한반도 남부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외교 관계.

대한민국동북아시아지역 강국이자 선진국으로, 정부수립 이래 현재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한반도 주권 및 한민족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냉전 동안 제1세계 자본주의 진영에 속했으며, 현재에도 친미·친서방 국가로 분류된다. 대한민국의 외교는 주로 동맹국인 미국을 포함하여 중국·일본·러시아·북한 등 주변 국가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접어든 이후에는 동북아시아 외 지역에서도 경제적 위상이나 한류를 바탕으로 문화 교류를 점차 확장시켜 나가는 추세이다.

2. 역사

2.1. 근대 이전

인구와 토지가 곧 국력이던 전근대 사회에서, 중국 대륙은 서유럽과 함께 언제나 세계 경제력의 3~40% 가량을 차지하는 문명의 요람지였다. 그러나 중국 대륙은 분열기를 거치면서도 유럽과는 달리 통일된 정체성을 형성하였으며, 한반도의 인구 부양력이나 생산력만으로는 단독으로 통일된 중원 왕조에 맞서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때문에 역사 속 한반도 국가의 최우선 외교 과제는 바로 막대한 인구 부양력과 생산력을 갖춘 중국 대륙의 위협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한나라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한 이후, 한반도의 삼국(三國)은 약 한 세기 가까운 투쟁을 거쳐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반면 중국은 고대 후한의 멸망 이후 오랜 분열기를 겪었으며, 따라서 동 시기의 고구려, 발해 등은 중원의 혼란을 틈타 만주를 장악하여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중국과의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당나라에게, 발해요나라에게 각기 멸망하고, 고구려의 계승을 주장하며 북진을 노렸던 고려마저 한족과 사이좋게 몽골 앞에 무너지면서, 이후 한반도 국가들의 대(對)중국 견제책은 독자적인 국력신장 대신 역내 외교에 의존하는 노선으로 전환된다. 개중 고려는 전기에는 거란, 여진 등 북방 이민족들과 송나라 사이에서, 후기에는 원나라 내부의 알력 다툼을 바탕으로 적당한 줄타기를 하면서 외교적 이익을 챙겼다. 반면 조선만주 진출을 포기하는 대신 명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안보를 보장받았고, 이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던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구명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사대외교는 점차 실리적인 본질을 잃은 채 중화 문명에 맹종하는 형태로 변질되어갔고, 북벌론 등 정치적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들 역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회·군사적 개혁을 이루는 데 실패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1]

근대에 이르러 한중일 3국은 각기 서구 열강의 개화압력을 받게 되나, 청나라가 부패한 관료들과 아편전쟁의 여파로, 조선이 시대착오적인 소중화사상과 쇄국정책으로 각기 자멸하는 사이, 일본 제국만이 빠른 근대화에 성공하며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열강으로 도약하게 된다. 일본 제국은 적극적으로 선진 문물을 수용함으로써 청일전쟁러일전쟁에서 국가 규모의 차이를 뒤엎으며 화려하게 국제 무대에 데뷔하였고, 초창기에는 조선과 중국에서도 상당수의 개화파들이 그들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며 롤모델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선전했던 아시아주의란 결국 주어만 바뀐 제국주의의 다른 버전이었음이 곧 드러났고, 한민족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결과 일제강점기라는 고난의 시기를 겪게 된다.

2.2. 일제강점기

20세기 전반기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는 패권주의 정책을 펼치던 일본 제국에 맞서 독립을 되찾고 한반도에서의 근대적 주권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초창기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열강으로 도약한 일제에 저항할 방법이 마뜩찮았기에, 미국, 유럽 등지에서 꾸준히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파리 강화 회담민족자결주의 원칙에 기대를 걸고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는 등 외교를 통한 독립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의 편에 서고, 서구 열강들이 동북아시아에서 일제의 우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20년대 말엽에 이르면 대부분의 평화적인 외교 독립시도는 실패로 판명나게 된다.

1920~30년대 일제는 러시아 적백내전에 대규모로 개입하고, 중화민국의 분열을 틈타 만주 사변을 일으켜 괴뢰국인 만주국을 설립하였으며, 노몬한 사건 등으로 소련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등 전방위적인 팽창주의 정책을 고수한다. 결국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교전 당사국인 중화민국·중국 공산당은 물론 반제국주의를 추구하던 미국·소련에게도 비난받으며 외교적으로 고립된다.[2] 이에 따라 한반도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반일 정서를 공유하던 중화민국, 소련, 중국 공산당 등과 연계하여 무장투쟁을 펼쳐나갔다. 개중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파 민족주의 진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중화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 광복군 등을 창건하였으며[3],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아나키스트 진영에서도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이 활약하였다. 소련 역시 공산주의 논리에 따라 코민테른의 이름으로 조선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였으며,[4] 국공합작 이후 항일운동을 벌이던 마오쩌둥중국 공산당 팔로군 휘하에도 상당수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였다.[5]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미합중국일본 제국의 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이승만 등을 필두로 재미 한인사회에서 펼쳐지던 독립운동 역시 외교적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카이로 회담에서 태평양 전선의 두 대주주인 장제스루즈벨트한반도일본 제국의 치하에서 독립시키는 것에 합의하였으며, 이는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현실이 된다. 그러나 소련이오시프 스탈린은 극동 전선에 개입하는 대신 38선 이북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였으며, 동북아시아의 이름모를 국가를 위해 새로운 세계대전을 감당할 마음이 없었던 미국과 중국은 이를 받아들인다. 한반도는 수없는 희생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주적인 독립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며, 외세의 손으로 이루어진 독립은 분단이라는 새로운 비극을 낳은 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외교 역량에 막대한 누를 끼치고 있다.

2.3. 현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한반도가 광복을 맞이하자, 한반도 이남 지역은 잠깐의 미군정기와 뒤이은 1948년의 총선거를 거쳐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적화통일을 꿈꾸는 북한김일성이 기습적으로 남침을 시도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으나, 미국을 위시한 국제연합이 신속하게 개입하면서 전황은 반전되었고, 최종적으로 1953년휴전선을 기점으로 정전협정이 맺어진다.[6] 이후 대한민국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경제·외교·군사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여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방어하는 동시에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동맹과 자유무역시장의 일원으로 포함되었고, 자연스럽게 미국, 일본, 서유럽과 가까워지는 한편 북한, 중국, 소련, 동구권과는 적대관계를 형성하였다.

대한민국은 전후 한국전쟁에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국가들, 즉 제1세계에 속하는 국가들 대다수를 전후 최우선 국교수립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에 따라 제1세계 역시 냉전기 외교에서 대체로 대한민국을 지지해 왔다.[7] 개중 특히 유럽의 열강이자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영국, 프랑스, 서독에는 유학생들을 보내 선진 문물을 익혀 오거나 간호사·광부를 파견하여 외화를 벌어 왔으며, 민간이나 기업 단위에서의 학문·기술적 교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리적으로 비교적 가까우며 살기 좋은 선진국으로 알려진 호주, 캐나다 등으로의 워킹홀리데이이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EU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영연방계 국가들과 사증면제협정, 상호 간 범죄자 인도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청년층을 중심으로 각종 교류 프로그램을 확장해가고 있으며, 이는 한류유럽 확산과 더불어 관광산업을 촉진하고 상호 간 관심을 증대시키는 등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 예외적으로 중화민국의 경우 30년대 항일독립투쟁 시기부터의 인연으로 냉전기 내내 미국에 버금가는 혈맹 관계를 유지했으나, 대만국부천대를 단행한 상태에서 데탕트로 국제 외교지형이 급변함에 따라 단교하면서 현재는 다소 미묘한 관계이다.

이외에 중동 지역에서는 각자 숙적 관계인 터키, 이란, 아랍, 이스라엘 모두와 무난하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터키의 경우 한국전쟁에서의 대규모 파병으로 맺어진 인연이 있는 데다, 서독과 함께 냉전기 공산권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닿는 방벽의 일원이었기에 군사적인 교류도 있었다. OPEC 국가들의 경우 한국 입장에서는 석유의 주 공급원이자 건설업계의 주 고객인지라 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반대로 현지에서도 제국주의의 원죄에서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제1세계 국가의 이미지에 더해 한국인의 근면성을 인정하여 고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스라엘은 중동을 통틀어 가장 서방세계와 밀접한 국가였으며, 냉전기에는 비슷하게 안보위협을 받던 처지라[8] 유대인들의 성공신화나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도 많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한국-이스라엘 관계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나,[9] 팔레스타인에서의 대민범죄가 알려지면서 민간 차원에서는 반감도 상당한 편이다.[10]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공산권이 해체되면서, 대한민국은 20세기 하반기의 최우선 외교 목표였던 북한에 대한 확고한 우위를 달성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중국이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고, 일본 역시 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무장을 시도하며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북한은 극단적인 국력의 열세를 타파하고자 핵무장을 강행하면서 역내 정세를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를 견제해야 할 미국은 연이은 경제위기 및 테러와의 전쟁으로 휘청이면서 확고한 힘의 우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 더해, 대한민국은 정치·안보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의존적이나 경제적으로는 막대한 구매력을 보유한 중국 시장에 크게 종속되어 있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파트너인 일본과는 안보나 문화, 정치의 측면에서 상당한 이해관계를 공유함에도 과거사 등의 문제로 인한 상호 불신이 심각하며, 중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북한과는 같은 민족이라는 역사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도발과 외교적 마찰로 인해 여전히 서로를 주적으로 인식하는 처지이다.

2.4. 미래


현재 대한민국은 지역강국으로 분류될 만큼 세계 수위권의 경제력·군사력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외교적 역량을 북한한반 주변 열강들에 쏟아야 할 만큼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11] 역대 정부들 역시 외교 문제에서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을 만큼 명쾌한 해결책을 내어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대부분 친일 외교종북 외교친미 외교니 하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12] 그러나 대한민국이 가진 외교 딜레마의 상당수는 결국 본질적인 국력의 한계에서 나오는 만큼, 당장 우리의 역량 부족을 인정하고 국민감정은 잠시 접어둔 채[13][14] 이해타산에 맞게 유연한 외교전략을 추구하는 편이 더 현명한 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주변국들을 견제하면서 자강할 수 있을 만큼 국력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15]하다고 볼 수 있다.

3. 국제사회의 인식

3.1. 대한민국의 세계 인식

3.2. 세계의 대한(對韓) 인식

북한 때문에, 외국인에게 "한국 하면 아시는 거 있어요?"하고 물어보면 대부분 판문점이라고 대답한다. 대체적으로 외국에서 보는 한국의 시각은 요즘은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쟁터'[16], '분단국가' 이미지가 강하고 그와 관련된 노래들(그리운 금강산)이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 세계적인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도 내한해 이 곡을 불렀다.

주변국 중에 세계에서 손꼽히던, 또 손꼽히는 대국이 많아 인지도에도 영향을 받았고, 역대 정권들도 항상 외교 문제와 함께 했다. 주로 관련되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있다.[17] 미국의 경우 해방이후 부터 얽혀 우호적 관계를 맺어왔다.

한국의 현재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정강정책과 국민의당 강령정책에 정확하게 딱 언급되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6자회담 이외 나라들은 정확하게 국명이 언급되있지 않다. (민주당은 일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외교, 통일 부문
강령정책집에서 글로벌외교, 북방경협 부문

일본과는 여러모로 복잡한데 경제, 문화, 지리 등 여러 요소들이 뗄레야 뗄 수 없을만큼 가깝게 있지만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 등, 크고 작은 것 들이 얽히고 섥혀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와도 같은 관계를 형성하고있다.

러시아, 중국과는 냉전 시대라는 대립기를 겪기도 했지만 9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는 많이 가까워진 편

한국인 개개인은 일반적으로 순혈적 민족주의 경향이 강하여 이방인을 배척하는 풍토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실제로 북한, 일본,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적대감은 상당하다. 과거엔 혼혈들을 튀기라고 비하하면서 준 이방인 취급했을 정도. 주변의 나라라고는 중국일본인데 사실 늘 대립각을 세워 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특히 일본은 식민지배까지 했으면서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나오는 데다가 독도까지 시비걸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더더욱 별로인데다가 다른 외국도 뜯어갔음 뜯어갔지 준 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북한에 대한 경멸/적대 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히 바뀐 것이 없으나, 과거 극심했던 반일 감정은 최근 THAAD 배치 관련 막무가내 행동이나 대북제재 반대 등의 이유 때문인지 중국 위협론이 대두되면서 반중 의식으로 상당 부분 대체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군 vs 자위대 구도 자체의 현실성은 한일 간의 적대감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기도 하다.

또한 늘어난 남아시아, 이슬람 계통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배척 의식이 높아져 이들에 대한 각종 비방이 횡행하고 있으며, 흑인을 열등 인종으로 취급하는 정서도 없지않아 있다. 단, 경제력이 한국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제1세계 국가, 특히 영미권의 백인들에 대해서는 반대로 동경을 나타날 때가 많다.

또한 유대인화교가 제대로 세력을 떨치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유대인이 아시아에 별로 살지 않고 다른 아시아국에서도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한국인의 호감도는 높지는 않은 편이다.# 14년도 BBC의 국가 영향력 평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17개 조사대상국 중 한국은 11번째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으며, 그 아래에 있는 국가들의 상당수가 소위 문제가 많은 국가들이 많은걸 생각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다만 이것은 북한과의 혼동에 기인하는 부분이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Korea라고 하면 북한부터 떠올리는 외국인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서방권에서는 일본에 대해 호감이 매우 높고 일본 제국 시절의 파시스트들의 후예들이 떵떵거리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지라 친일적 반한 감정과 일본 제국식 파시즘을 가진 악성 와패니즈 같은 경우도 굉장히 많다.

2013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외교부가 전세계 17개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6천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이 국가들 중에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경우 이미 기존 데이터가 있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 국가 이미지 지수는 5점 만점에 3.03점으로 보통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30% 정도는 한국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나머지 70%는 구분을 할 줄 안다고 했으니 예전에 비하면 사정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순서대로 기술, 삼성, 전쟁, 싸이/강남스타일이 가장 많았다. 한국의 이미지에 비해 긍정적이란 답변은 39%, 부정적이란 답변은 약 15%, 중립은 약 46%로 나타났다.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의 지지국가 중 절반이 아프리카 국가들로 밝혀져있었는데 선진국에서만 개최했던 올림픽을 이제는 개발도상국에서도 개최해야 한다는 범아프리카 국가들의 단결력이 모아진 결과였다. 이를 계기로 전직 대통령 전두환은 재임시절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교류를 모색하는 등 뒤늦게 가서야 대아프리카 외교에 총력을 기울였을 정도. 다만 일부 사회주의친북 성향 국가들은 한때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기도 하고 북한과의 친교를 앞세워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사회주의가 종식된 지금은 남북한 동시외교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소련동유럽 국가들과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로 사회주의 및 친북성향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이들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정확히는 197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이 외교관계를 맺어보려는 시도도 했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을 미승인국 취급하여 관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조그마한 민간 교류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소련동유럽 국가들이 참가하게 되었고[18] 당시 노태우 정부의 대동방 및 대동구권 유화 외교정책을 지향하게 되면서 1990년대 들어서 동유럽 국가들과도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고 1990년에 소련과도 외교관계를 맺어가면서 자유진영 중심의 이데올로기 외교를 정리하였다.

4. 국가/지역별 관계

4.1. 6자회담 당사국

  • 남북한관계: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한 관계는 상호 미승인국 관계이자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로 규정된다. 남북한 간의 특수성은 일반적인 외교관계를 벗어나있는 탓에 여러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남북 양자관계는 통일부가 다루고 6자회담외교부에서 다룬다.
  • 한미관계: 대한민국의 대외관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동맹국가이다.
  • 한러관계:남북한관계와 한미관계에 동시에 적용받는 특수성을 갖는 관계이다. 그러기에 남북한관계에 한러관계가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 한중관계
  • 한일관계: 과거사/독도 문제때문에 정치, 외교적으로 많이 충돌하는 관계.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으로서 문화, 인적 교류가 다른 나라들보다 가장 활발하다.

4.2. 아시아/태평양

4.3. 유럽

4.4. 남미

5. 수교국가

이 지도를 보면 대한민국이 극소수의 몇 나라들을 빼고 거의 모든 나라들과 수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간 중간에 누렁이(...)들[19]이 보이는데 이들은 대한민국이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있는 지역.

★표시는 한국전쟁 참전국 및 지원국.
☆표시는 1988 서울 올림픽 참가 및 파견국.
△표시는 해당 국가의 수도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설치된 국가.
▲표시는 서울에 해당 국가의 대사관이 설치된 국가.
◆표시는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즉 대한민국과 단독 수교한 국가.
◇표시는 한국인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국가

5.1. 아시아

5.2. 아프리카

5.3. 유럽

5.4. 아메리카

5.5. 오세아니아

6. 미수교 국가

6.1. 승인

승인하였지만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들이다. 현재 이 중에서 단교로 인해 미수교국으로 분류된 나라는 없다.
  • 북마케도니아
    원래 국호는 '마케도니아'였기에 국명을 둘러싸고 주변국인 그리스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시기에 6.25 전쟁의 참전 우방국인 그리스의 눈치를 본 한국으로서는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는게 명목상의 이유. 명목상 핑계란 말이 어느정도 맞는게, 그리스는 이와 관련해 한국에 직접적으로 눈치를 준 적이 없었고, 정작 분쟁의 당사자들은 이미 수교를 맺은 사이다. 한국이 북마케도니아와 수교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북마케도니아가 경제, 인구 다 포함해서 국력이 후달리는 약소국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그리스와 이른바 프레스파 협정으로 분쟁을 종식하고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북마케도니아로 바꾸자 한국 정부는 환영을 표했고,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무리없이 수교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할은 주 불가리아 대사관이 하는데, 당장 수교한다쳐도 북마케도니아의 주변국가들인 그리스 주재 대사관이나 불가리아 주재 대사관, 세르비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겸임할 가능성이 높다.
  • 시리아
    친북 성향의 국가로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대한민국과는 거리를 두는 상태이다. 탈냉전 이후 수교 얘기도 종종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시리아 내전 등으로 인해 나라 꼴이 말이 아닌 관계로 보류중이다. 현재 관할은 주 레바논 대사관이 대행한다.
  • 코소보
    2008년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코소보를 승인한 국가와 승인을 보류하는 국가의 비율이 거의 반반인 상태. 일단 한국은 승인한 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의 수교국 중에 코소보 승인을 보류 수준이 아니라 크게 반대하는 러시아, 세르비아, 중국의 눈치라는 명목적인 이유로 수교를 보류하고 있다. 현재 관할은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에서 대행한다.
  • 쿠바
    시리아와 비슷한 이유로 미수교 상태다. 2016년에 한국 외교장관이 전격 방문하는 등 수교가 빠른 속도로 준비되는 듯 하였지만, 한국에서 터진 대형 악재로 인해 중단되었다. 현재 관할은 주 멕시코 대사관이 대행한다.

6.2. 미승인

당연하겠지만 승인하지 않아 미수교 상태인 국가는 다음과 같다.
  • 북한
    6.25 전쟁 이후 적대 관계이고 상호 승인하지 않고 있다.
    현재 양측의 입장은 헌법 등에서 자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계승자로 자임하고 있기에 개헌 등으로 특수하게 설정된 관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승인은 어렵다. 서로가 UN 회원국이라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으며, 2018년 9월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됨에 따라 외교관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연락사무소가 작동하게 되었다.
  • 서사하라
  • 중화민국(대만)
    1992년까지는 우방으로 승인은 물론 수교까지 한 나라였다. 그러나 한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그 조건으로 중화민국과 단교하였고 승인도 철회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냉전 시절 중화민국과 매우 가까이 지내었다. 둘다 분단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 국민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해주었던 역사도 있기에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매우 친밀했다. 대한민국은 중화민국을 중국, 자유중국 등으로 부르며 중국 대륙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해주었으며 중화민국 역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해주었다. 비록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로 인해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지금도 대한민국은 중화민국을 중화인민공화국과 별개의 정치체제로서 암묵적으로[20] 그 존재를 인정하고는 있다. 대한민국은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두고, 중화민국 역시 서울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 팔레스타인
    대한민국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팔레스타인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대표부를 두고 있다. 다만 아직 팔레스타인은 대한민국에 대표부를 두고 있지 않으며, 한국 관련 업무는 주일 대표부에서 겸하고 있다. 한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끝날 때까지 팔레스타인의 승인을 유보하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표기구'로서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7. 단계별 우호 관계

일종의 수사적 표현이다. 총 6단계로 구분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각종 수사가 붙으면서 기준이 알 수 없게 되었다.

7.1.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


대한민국이 분류한 우호 단계 중 최상위 단계로 미국이 유일하다. 아예 명칭도 동반자 관계가 아니라 동맹관계다.

7.2.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이명박 대통령은 콜롬비아를 언급하며, "외교의 최고 관계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고 표현했다. 일반적인 국가 간의 단계에선 가장 높다.

7.3. 전략적 동반자 관계


여기서부터 상위 단계들에 전략적이라는 수사가 붙는다. "전략적"은 군사·안보적 협력관계의 필요성이 고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7.4. 포괄적 동반자 관계

7.5. 동반자 관계

  • 미래지향적 성숙한 동반자 관계
  • 21세기의 동반자 관계
  • 동반자 관계

7.6. 협력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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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병자호란 이후 북벌을 시도했다 한들, 당대 청나라의 황제가 강희제 같은 중국사 최고의 명군이었음을 감안하면 더 잔혹한 결과로 되돌아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후대의 일본 제국은 사회가 뒤집어질 정도의 개혁을 통해 선진 군사기술을 획득했기 때문에 청일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며, 그나마도 일본 열도는 한반도보다 본질적으로 약 1.5~2배 가량의 동원력·생산력을 가졌던 데다, 당시 청나라는 국가 멸망 테크를 타던 와중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한반도 국가가 만주 지역의 자원·생산력·동원력(전근대의 기병대는 현대전의 전차와 같은 위치였고 유목민족은 기마에 익숙했다)을 상실한 시점에서 중국 대륙과 전면 적대하는 것은 만용에 불과하며, 중국이 내란에 빠질 때를 노려 북방 지역을 조금씩 수복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굳히기를 반복하는 편이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보다 합리적인 전략이었을 것이다. 당장 만주 기반의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했던 과정이 그러했고, 원-명 교체기를 노렸던 요동 정벌의 논지가 그러했으며, 후대 중화민국의 분열을 이용하여 대륙으로 진출했던 일제 또한 이런 전략을 채택했었다. 물론 그 모든 시도들은 궁극적으로 무위로 돌아갔고, 이에 따라 오늘날에도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세력균형을 이루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2] 물론 일제는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등과 추축국을 결성하며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한 동맹을 확보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래 독일과 이탈리아 모두 아시아 영토가 없었다. 소위 대동아공영권에 해당하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 영토를 보유했던 모든 주요국(미국, 중화민국, 소련,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들이 일제를 주적 내지는 잠재적 적성국으로 간주하였다.[3] 이들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과정에 기여하였으며, 단교 이전까지 한국과 대만 간 맹방관계의 기틀이 된다.[4] 물론 대부분의 당대 열강들은 잠재적 적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경쟁국의 식민지 독립운동을 지원·유도하곤 했다. 당장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했던 논리도 서구 열강의 침략에서 아시아를 보호해 주겠다는 논리였고. 그러나 소련의 경우 어쨌든 전간기에는 식민지가 없는 유일한 열강이었으며, 피식민지 독립운동가들 입장에서는 설령 숨겨진 의도나 목적이 불순하다 할지라도 당장 돈 들어오는 창구가 코민테른밖에 없었기에, 소련의 반식민 노선은 제3세계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물론 공산주의자들을 "레닌의 방귀구멍을 꿀물 핥듯 핥는 자들!"이라고 직접적으로 디스한 김구처럼, 일찍부터 소련의 의도를 간파하고 경계했던 독립운동가들도 적지 않았지만.[5] 마찬가지로 이들은 광복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참여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북중 간 혈맹관계의 기틀이 된다.[6] 휴전선은 남북한 모두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들에 대한 주권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식적인 국경선은 아니지만,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이 실효지배하는 영토를 규정짓는 선으로 기능하고 있다.[7] 단, 같은 제1세계 주요국이 관련된 한일관계 현안에 대해서는 일본에 우호적이거나 기껏해야 중립이었고, 군사독재정권 치하이던 대한민국인권 문제들의 경우 예외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물론 대한민국 역시 동서독 간 갈등이나 동구권 등지의 문제에서 대체로 서방 세계에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동남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문제, 중동 지역에서의 이스라엘-아랍 갈등 등 일부 문제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중립을 지켰다.[8] 이스라엘이 건국 후 수십 년 동안 외교적으로 적대국에 둘러쌓인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던 것처럼, 대한민국 역시 한일수교 전까지는 외교적으로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일본은 미수교국에, 위로는 북한, 중국, 소련이 죄다 적성국가였으며, 대만은 실질적 도움을 주기 어려운 처지였으니.[9] 이스라엘은 대한민국독도 영유권을 단독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10] 사실 초창기 중동전쟁은 신생국 이스라엘이 거대한 아랍 동맹체에 핍박당하는 구도였기에 외교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도 별 부담이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서방세계의 일원인 유럽조차도 미국의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며 기권표 내지는 반대표를 던지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도 감안해야 하고. 남들 다 할때 하는 건 묻어갈 수 있지만, 남들은 안 하는데 혼자 극성스럽게 나서면 찍히는 이치[11] 제3세계의 지지를 두고 남북 간 외교전이 치열했던 80년대 한국 외교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고충이 잘 드러난다.#[12] 최근에는 바야흐로 종중주의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는 형편이다.[13] 일본일제강점기위안부 문제든, 북한기습 남침이든, 중국한국전쟁 개입이든, 결국 과거사는 과거사다.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한들 지금 당장 일본이 한반도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외교적 장치만 있다면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북한이 내부에서 아무리 반인륜적인 학살을 저지른다 한들 지금 우리 국민에게 피해가 없다면 현실적인 논리로 유화책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드 문제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야욕이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필요하다면 최후의 순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비책 하나를 확보한 채 비위를 맞춰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소련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자 이념적으로 상극이던 나치 독일과도 손을 잡았고, 처칠 역시 그 나치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 했다. 루즈벨트소모자를 두고 '우리 개새끼'라고 했고. 외교 무대에서는 힘의 논리가 정의를 앞서며 오월동주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기에, 분노를 감정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꾹 눌러담았다가 현실적인 '딜'을 위한 카드로 남겨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물론 도의적인 측면에서 반인륜적인 범죄들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그건 민간 차원에서 할 일이며 외교적으로는 그렇게 "우리나라 민간 차원에서 순수한 분노가 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14] 대체로 좌파는 북한중국과의, 우파는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조금 더 관대한 경향이 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 조금이라도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덮어놓고 종북이니 친일이니 비판하기 전에 서로가 나름의 접근법대로 현실을 타개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로의 '의도'에 대해서는 신뢰하되, 서로의 '목적'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두고 평가해야 보다 발전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15] 예컨대 대한민국의 핵무장 주장 역시 본질적으로는 이러한 국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이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일본에게 느끼는 위협의 크기가, 북한미국 및 그 동맹인 대한민국에게 느끼는 위협의 크기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북한핵무기로 한미동맹, 미일동맹에 맞서 비대칭전력을 확보하려 한다면, 마찬가지 논리로 한국 역시 핵보유를 통해 주변 열강들-특히 중국-과의 힘의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물론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핵우산이 확고하다면 자체적인 핵무장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반대로 핵우산이 철회된다면 거의 확정적인 확률로 핵개발에 들어갈 것이다. 때문에 핵무장 찬반론은 그 가운데 지점 어딘가를 상정한 이야기. 자세한 논의는 훨씬 더 복잡하니 관심이 있다면 문서 참고.[16] 장기 휴전 상태로 평시 상황으로 사회가 작동하기 때문에 점점 전쟁을 체감하지도 못하는 국민 비율이 늘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전쟁이 지속중인 괴상한 사례. 그래서 실제로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은 한국이 아직도 전쟁터인줄 아는 경우가 많다.[17] 혹자는 이를 남북이 갈라진 태극과 함께 4괘라면서 태극기를 비꼬기도 한다. 물론 우연의 일치겠지만 실제로 태극기의 중앙선을 보면 강원도쪽이 올라가있고 경기도 쪽이 내려가있는 휴전선과 닮았다…….[18] 알바니아는 불참[19] 북한을 비롯하여 아르차흐 공화국, 남오세티야, 대만, 북키프로스, 서사하라, 소말릴란드, 압하스, 트란스니스트리아, 팔레스타인이 누렁이로 표시되어 있다.[20] 어디까지나 암묵적이다. 대한민국 정부 공식 입장은 '타이완섬은 중화인민공화국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