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7 22:27:45

미수교국

1. 개요2. 대한민국의 경우3. 목록

1. 개요

국가 간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를 지칭한다.

보통 두 가지로 나누는데 처음부터 일방 또는 쌍방이 상대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부류와, 국가로 인정하기는 하되 여러 가지 외교적 문제로 수교를 하지 않는 부류이다. 수교를 맺지 않는다고 해서 교류 자체를 완전히 금하는 것은 아니며, 미수교국이더라도 경제, 문화적인 교류는 활발한 사례도 있다. 또한 미수교국에도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직접 방문이 가능하다.

미수교국에는 정식 대사관/영사관을 설치하지 않는 대신,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자국민의 보호 및 대표를 위해 대표부를 설치할 때가 많다. 이 대표부는 공식적으로는 대사관이나 영사관과 같은 외교적 특권을 가지지 못하나, 대표부의 성격상 암묵적으로 특권을 상호존중해 주고 있다. 해당 미수교국과 인접한 국가의 대사관/영사관에서 필요한 업무를 대행하기도 한다.

2. 대한민국의 경우

대한민국도 과거에 많은 미수교국이 있었는데 크게 세가지 경우였다.
  • 공산권
    냉전 시기에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한 공산권 국가들은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만을 정식국가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유지하였다. 냉전시대에도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교류를 이어갔지만, 남북한은 분단후에 서로 전쟁까지 치루면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서 대한민국과 자본주의 진영은 북한을 부정했고, 북한과 공산진영은 대한민국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공산진영 국가들도 북한만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적대시하고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1] 현재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서 대만과는 단교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제3세계의 친북 성향 국가들
    냉전 시기 남과 북은 서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다방면에서 극한의 체제대결을 이어갔고, 이것은 국제적인 외교전으로도 나타났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해서 UN에 가입한 1960년대 부터는 남북문제가 유엔의 단골 주제가 되었고, 남과 북은 유엔총회에서 표대결을 불사하게 되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숫자의 우호국가를 확보하는 너무나도 중요해졌다. 이게 극단적으로 흐르면서 남과 북사이에는 수교국가 경쟁이 붙게 된다. 지금보면 웬 병림픽이냐고 하겠지만, 1980년대 까지는 가위바위보도 북한한테는 지면 안된다고 할 정도로 남과 북 사이에는 살벌한 경쟁의식이 넘쳐 흐른데다가 유엔총회에서의 표대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기도 했다.[2] 이게 지금까지도 미묘한 기류가 있지만 당시엔 남북이 유엔 회원국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유엔 회원국들의 우호표가 절실했었다. 남과 북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서로 상대와 외교관계를 끊고 우리하고만 수교하라고 설득했고, 이 과정에서 (없는 살림을 쪼개서) 각종 물자를 퍼주기도 했다.[3] 이런 외교전 속에서 이집트, 시리아 같은 국가들은 친북노선을 명확히 하고 북하고 군사/경제 교류를 하면서 대한민국을 적대시했다. 당연히 이런 국가들과는 미수교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
  • 기타
    대표적으로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국제 사회의 왕따가 된 남아공이 있다. 대한민국도 수교했다가 남아공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대세를 따라서 단교했었다. 보츠와나는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라 자발적으로 비인권적인 북한을 규탄하며 단교한 바 있다.

그러다가 1985년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소련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냉전 분위기가 완화되었고 국내에선 노태우 정부가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북방정책을 내건 것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부터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급진전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1990년 한-소련 수교, 1992년 한-중국 수교, 1995년 한-베트남 수교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남아공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하고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자 1992년 다시 수교를 맺었다.

냉전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남북간 체제대결도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서울올림픽 이후 미수교국의 숫자는 급속하게 줄어들어서 2018년 현재 UN가입 191개국 중에서 미수교국은 쿠바, 시리아, 북마케도니아 3개국 뿐이다. 그외에는 대부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미승인국들이다.[4]

대한민국 출입국관리법에는 한국에 입국하고자 하는 미수교국 국민에게는 비자가 아니라 별지 형태의 외국인입국허가서를 발급하고 미수교국 국민으로서 외국인등록증이 나온 거주자들에게는 여권에 날인/스티커 부착하는 형식의 재입국허가증이 아닌 별지 책자 형태의 재입국허가서를 발급하도록 되어 있다. 실무에서 어떤지는 추가바람.

3. 목록

현재 대한민국이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는 다음과 같다.
  • 북마케도니아: 북한 단독 수교국이긴 하지만, 딱히 친북 국가라거나 공산 국가인 것은 아니다. 그저 그리스와의 관계를 눈치보며 아직까지 수교하지 않고 있을 뿐.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는 국호와 역사 의식 때문에 대립이 있는 상태라 한국은 북마케도니아와 수교하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가 딱히 하나의 그리스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정작 그리스는 북마케도니아와 수교 관계다. 경제 위기 등으로 국제 사회에서 그리스가 안습 상태에 빠진 상태라서 그리스의 눈치를 볼 이유가 적어진 편이긴 하다. 그래서 한국 정부도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 관계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수교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북마케도니아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 일방적 비자 면제조치를 시행하고 있어서, 미수교국인데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 2019년 1월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이 드디어 막을 내리면서 한국과의 수교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 시리아: 6.25 전쟁 때는 우리나라에 물자 지원을 했었으나 사회주의 계열의 바트당 정권 수립과 하페즈 알 아사드의 쿠데타 이후 친북 국가로 변모하여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았다. 그래도 경제 투자나 관광 등의 민간 교류는 활발했으나 2011년부터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여행금지국가가 되었다. 이전엔 냉전 이후 대한민국이 시리아에 수교를 제안했으나 시리아는 북한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를 보류해 왔다.
  • 코소보: 코소보 독립 이후 국가로 인정했으나, 수교는 맺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세르비아와 세르비아의 우방국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눈치보며 아직까지 미수교로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마케도니아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은 무비자로 입국 가능하다.
  • 쿠바: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나라 중 하나였으나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정부 집권 이후 친소 정책을 펴면서 1964년에 북한과만 수교하였다. 현재는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친북 성향이 강해서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하지만 탈냉전 이래 양국의 상대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고 민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다에쉬 같은 테러 집단도 없고 시리아 내전처럼 심각한 내전도 없는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2015년 쿠바의 대표적인 적대국으로 여겨졌던 미국과도 공식 수교를 맺었다. 그리고 쿠바 고위층들도 대한민국과의 수교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진짜로? 쿠바의 최고 권력자인 라울 카스트로(피델 카스트로의 동생)만 결단을 내리면 머지않아 수교가 맺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 중. 2016년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했을 때 일종의 '조문 외교'를 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 때 바로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서 대한민국은 도저히 쿠바와 외교 접촉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 팔레스타인: UN에서는 엄연한 옵저버 국가이나, 대한민국 입장에서 아직 미승인국이다. 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대표부는 두고 있다.
  • 소말릴란드: 수교를 해도 안 해도 어떤 실익이 없는 국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을 않는지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다 마찬가지다. 승인할 필요도 못 느낄 정도인 듯. 물론 다수의 국가가 승인을 피하는 이유는 아프리카의 종특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여기서 한국만 튀어보여 좋을 일 없으니 교류가 없다.


[1] 당시 분단상태였던 서독동독도 초기에는 한국과 비슷했다. 서독도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 공산권 국가들과는 일체의 외교관계를 거부하는 할슈타인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러다가 1969년 총리로 취임한 빌리 브란트가 공산권과 관계를 개선한다는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유럽 국가들과 수교하였고, 이런 외교적 노력이 훗날 독일통일로 이어진다.[2] 이떄는 매년 언론에서 북한의 수교국 몇개, 대한민국의 수교국 몇개 이런식으로 도표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특히 새로운 국가와 수교를 맺게 되면 무조건 9시뉴스에서 표로 보여주면서 꼭 앵커가 "대한민국은 XX개국가와 수교중이고, 북괴는 우리보다 한참 뒤쳐진 **개 국가와 수교중으로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격차를 벌리면서 앞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같은 멘트를 날렸다.[3] 이런 수교경쟁 때문에 특별한 경제적 이익이 없는데다 거액을 투자한 나라가 바로 아프리카의 가봉이다.[4]코소보는 다소 미묘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로 승인했지만 미수교 상태이며, UN 회원국 중 과반 이상의 승인을 얻었지만 승인을 거부하는 국가들 수도 만만치 않아 아직 국제사회에서 완벽한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코소보, 코소보/독립 인정 국가 목록, 미승인국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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