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4 02:41:09

한국의 무기

  • 한반도만주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즉, 한민족)이 썼던, 또는 쓰는 무기들의 통칭. 이 문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쓰였던 무기들을 종류별, 시대별로 나눠서 분류합니다.

1. 시대별 분류2. 종류별
2.1. 전근대
2.1.1. 활 또는 궁류2.1.2. 도검류2.1.3. 둔기류2.1.4. 창류2.1.5. 방패보호구2.1.6. 총기류2.1.7. 폭탄류2.1.8. 대포류2.1.9. 로켓무기2.1.10. 함선
2.2. 근대
3. 관련 문서4. 둘러보기

1. 시대별 분류

1.1.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야외, 강가언덕, 바위그늘, 동굴 등에 살림터를 마련하고 수렵, 자연물 채집 등으로 식량을 마련하였으므로 작은 집단, 곧 혈연관계로 맺어진 20~30명 정도가 성원인 무리를 이루어 공동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들은 여러 가지 재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생각되는데, 특히 생업의 도구인 석기는 사나운 맹수라든가 다른 집단의 성원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자기를 방위하기 위한 무기로 전용하기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렵용 도구로 쓰인 석기 중 무기로 전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석기는 다음과 같다.

(1) 주먹도끼: 다목적 석기로서 찌르고 자르고, 짐승가죽을 벗기고 깎는 등 공격용 도구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자갈돌의 자연면은 손잡이로 쓰려고 원래의 상태로 두고 날에만 예리한 잔손질을 하였다.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타원형의 쌍날 주먹도끼로 발전한다.

(2) 찍개: 상대를 찍어서 타격을 주거나 자르는 등 당시로서는 가장 힘있는 무기였다. 밑이 편편하고 위가 둥근 자갈돌로 만들었고 톱니모양의 날을 만들었다. 손바닥에 쥘 수 있는 부분은 자갈돌의 자연면을 그대로 두었다.

(3) 찌르개: 상대방을 찔러서 잡거나 구멍을 뚫는데 사용하였다.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나무몽둥이에 꽂아 창처럼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냥이나 공격용 무기로 큰 역할을 하였다.

(4) 골제 창: 큰뿔사슴의 뿔로 만든 것, 야생마의 다리뼈로 만든 것, 큰뿔사슴의 정강이뼈로 만든 것 등이 있다. 큰뿔사슴의 뿔로 만든 것은 양쪽 면에 엇갈린 손질로 양쪽 날을 냈다. 야생마의 다리뼈나 큰뿔사슴의 정강이뼈로 만든 것은 끝이 뾰족하고 예리하며 밑은 창자루에 꽂게 되어 있다.

1.2. 신석기 시대

신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움집에 살면서 어로, 수렵, 채집 등을 하는 생활을 하였고, 후기에 들어서서는 원시적이나마 농경도 하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역시 개개인 상호간 또는 집단과 집단 간에 싸움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때는 수렵도구인 활, 돌도끼, 돌창 등이 무기로 전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 무기로 전용되었으리라 여겨지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 활은 나무나 뿔, 뼈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졌던 관계로 출토되는 유물이 없다. 다만 이웃인 일본에서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다만 활촉은 많이 출토되고 있어서 활이 사냥이나 전투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활촉은 돌이나 짐승의 뼈, 이빨 등으로 만들었다.

(2) 돌창: 원시사회에서 가장 위력있는 무기의 하나가 돌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타제석창, 마제석창이 있었고 형태도 뿌리가 있는 석창, 뿌리가 없는 석창, 유엽형 석창 등이 있었다.

(3) 돌도끼: 원시사회에서는 여러 가지로 쓰인 생산도구이지만 적과 싸울 때에는 육박전투의 무기로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작기술상 타제와 마제 혹은 반마제 등이 있었다.

(4) 골각제무기: 동물의 뼈, 뿔, 이빨 등을 가공하여 만든 무기이다. 화살촉, 창, 단검 등이 있다.

1.3. 청동기, 철기 시대

이 시기는 고조선부여, 삼한을 비롯한 초기 국가시대에 해당되는데 생활용구의 일부가 무기로 전용되던 전시대와는 달리 사람을 상대로 하는 독립된 무기가 제작, 사용케 되었고 일부 무기는 대규모 전쟁이 성행한 삼국시대의 무기로 이어지게 된다.
(1) 고조선의 전차: 고조선 유물에는 전차의 바퀴가 대량으로 출토가 된다. 말이 끄는 전차이며 고조선의 주력 무기라고 할수 있다.

(2) 원거리 무기: 원거리 무기에는 쏘는 무기인 활과 쇠뇌가 있다. 활은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화살촉을 살펴볼 때 단면이 능형인 양익유경촉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전투용 무기로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익유경촉은 촉신이 좁아서 뚫는 힘이 세고, 미늘이 있어서 다시 뽑아내기가 힘들므로 사냥에서는 경제적이지 못하지만 전투에 있어서는 살상력을 높여주었다. 또한 화살촉이 크고 무거워지는 점으로 미루어 강화궁 같은 강궁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쇠뇌는 활보다 화살이 날아가는 힘이 매우 강한 무기이다. 전체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고 그 부속인 금속제 발사장치인 아(牙)가 출토되고 있다.

(3) 근거리 무기: 근거리 무기에는 베는 무기인 마제석검, 청동단검, 골제단검, 청동도자, 철검, 철제대도, 철제단도 등이 있었고 찌르는 무기에는 동모, 철모, 착형무기 등이 있었다. 걸어당기는 무기에는 동과, 유자무기, 철겸 등이 있었고 내려치는 무기에는 환상석부, 다두석부, 성형석부, 청동부, 철부 등이 있었다. 특히 유자무기는 우리 조상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무기의 하나다. 유자무기는 몸의 한쪽에는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통형의 착병부를 만들고 평면 장방형의 몸에는 가시모양의 돌기가 나오게 만든 무기다. 이것은 가시모양의 돌기에 무엇인가를 걸어서 끌어당기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말에 탄 적병을 말에서 끌어내리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1.4. 삼국시대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시기는 삼국시대다. 따라서 무기도 여러 가지가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기는 기능과 용도에 따라서 공격용무기와 방어용무기 전투용구로 나눌 수 있다. 공격용 무기는 적의 병력과 전투기재를 소멸하는 데 쓰이는 무기이고, 방어용 무기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기 병력을 보존하는 데 쓰는 무기이고, 전투용구는 전투를 보조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재 즉 통신기재, 수송기재 등을 말한다. 삼국시대는 이렇게 기능과 용도에 따라 무기가 분화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나라별로 사용한 무기는 다음과 같다.

1.4.1. 고구려

고구려는 일찍부터 중국의 강한 나라들과 수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렀으므로 뛰어난 전략 전술과 함께 발달된 무기를 보유하였다. 대량의 철갑과 말찰갑,마구들이 출토되며 말을 탓을 때 사용한 창과 극이 출토된다.

고구려 무기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에는 원거리 무기인 활과 근거리 무기인 대도, 환두대도, 단도, 손칼, 쇠창, 갈고리, 쇠낫, 쇠도끼 등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독창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보는 유자무기는 출토된 것이 없다. 따라서 유자무기는 신라, 가야 등에서 창안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4.2. 백제

백제의 무기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에는 공격용 무기 중 원거리 무기인 활과 근거리 무기인 대도, 환두대도, 단도, 도자, 철모, 착형무기, 철구, 철겸, 철부 등이 있으며, 신라, 가야 등에 있는 유자무기는 알려진 바 없다.

1.4.3. 신라

유명한 것은 고구려군이나 당나라군과 싸울 때 사용한 길이가 매우 긴 창이 있으며 3~6명이 일렬로 서서 긴 창을 들고 다가오는 말에 공격을 하였는데 이 부대를 장창당이라고 한다. 창에 끼우는 창 손잡이가 대량 출토된다.창을 주무기로 사용하며 환두대도와 방패, 마구 등이 발굴된다.신라의 무기에는 공격용 무기로 쏘는 무기인 활이 있고, 베는 무기인 검과 도, 찌르는 무기인 철모, 철창, 착형무기가 있으며, 걸어당기는 무기인 유자무기, 철겸이 있고, 내려치는 무기인 철부 등이 있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공성, 수성 등의 전투에 사용된 무기에 대한 기록이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의하면 포노 또는 노포라 하는 대형의 쇠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구진천 일화에서 보이듯 신라의 노병기는 당나라에서도 뛰어난 품질을 인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1.4.4. 가야

가야는 서기 562년에 대가야가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 등과 같은 통일된 고대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일종의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나 고분을 통해 드러나는 각종 무기를 살펴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무기와 비교하여 손색없는 매우 우수한 무기를 제작,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철의 산지인 만큼 철제 칼과 마구와 철갑등이 대량 출토되며 제철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

가야 무기에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공격용 무기로 쏘는 무기인 활과 베는 무기인 검, 도, 찌르는 무기인 철모, 철창, 착형무기 등이 있었고, 내려치는 무기인 철부 등이 있었다.

1.5. 남북국시대

1.6. 고려시대의 무기

고려시대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를 이른다.

고려시대 철검은 금입사풀꽃무늬철검이 유명하며 최무선이 만든 화약 철대포가 유명하였다.

고려시대는 동아시아에서의 민족 이동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고려는 국방관념과 외교관계에 대한 무관심으로 전란의 와중에서 국가 보존을 지상과제로 삼고, 정권유지에만 힘을 쏟은 관계로 국가 방위력은 극히 약화되었다. 따라서 무기의 생산과 개발은 소극적이었으며, 특히 몽골과의 장기전쟁에서 패한 뒤에는 군비를 강화할 수 없었다. 다만 몽골군과 함께 일본원정군을 편성하던 시기에 일시적으로 무기제조가 활기를 띠었다.

기록에 보이는 무기제작은 1032년(덕종 1)에 혁차, 수질노, 뇌담석포 등을 제작한 것, 1040년(정종 6)에 수질구궁노를 제작한 것, 묘청의 난 때 포기를 제조한 것 등이 있다.

고려시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화약의 개발이다. 몽골과의 전쟁에서 화약의 존재와 화약병기의 효용성을 인식하고는 있었을 것이지만 몽골의 지배하에서 이를 개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1377년 마침내 최무선에 의해 흑색화약이 제조됨으로써 일약 화약무기 소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다양한 화약무기를 개발하게 된다.

고려시대의 정규군이 사용한 일반무기는 장병기로는 모, 단병기로는 장도, 투사병기로는 활과 쇠뇌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무기발달과는 크게 달랐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때 전차전에서 주요 무기로 사용되었던 과는 극이 등장하면서 도태되었고, 모 역시 창이 등장하면서 주요 병기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여전히 과와 모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성곽 위주의 요새전이나 북방 기마민족을 상대하기에는 다른 무기보다 효과적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최무선에 의하여 제작된 각종 화약무기는 크게 발사기, 발사물, 폭탄, 로켓형 화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 발사기: 각종 총통과 포에 해당되는데 대장군포, 이장군포, 삼장군포, 육화석포, 화포, 신포, 화통, 총통 등이 있었다. 육화석포는 석환을 발사하는 완구이고, 신포는 신호하는 데 사용한 포로 여겨진다.

(2) 발사물: 철령전, 피령전, 철탄자 등이 있다. 철령전은 철로 만든 날개를 단 화살이고, 피령전은 가죽으로 날개를 만들어 부착한 화살이다. 철탄자는 철로 만든 환의 일종으로 추측된다.

(3) 폭탄: 질려포가 있었다. 이것은 나무로 만든 반구형의 통에 쑥잎, 화약, 끝이 날카로운 철조각 등을 넣어 적에게 던져서 폭발시키는 폭탄의 일종이다.

(4) 로켓형 화기: 주화, 오룡전, 화전, 독천화, 유화, 천산 등이 있었다. 주화는 스스로 날아가는 로켓형 화기이고, 오룡전은 긴 막대의 상부에 통을 만들고 이 속에 주화와 같은 로켓형 화살을 다섯 개 넣고 발사하는 무기로 추정된다. 화전은 화약을 붙여 만든 화살로 불을 붙여 발사하면 목표물에 도착하여 화약이 폭발되고, 이로 인하여 방화시키는 무기다.

고려말 이전 화약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되기 이전의 전쟁에서 동원된 일반무기는 도, 검, 모, 극, 시 등의 오병으로 대표될 수 있었다. 그러나 화약무기의 출현과 더불어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체계에 변화가 왔다. 전투에서의 화약무기의 비중이 점차로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궁시류 및 창검류와 같은 일반무기류의 비중은 감소되는 추세였다.

1.7. 조선시대의 무기

파일:Jwadokgi_mini_white.png 조선의 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백병 도검 환도, 월도, 왜검, 협도, 인검, 창포검
당파, 장창, 낭선, 기창
둔기 편곤, 철편, 철퇴, 육모방망이
발사
무기
궁시 국궁, 편전(애기살), 각궁, 쇠뇌
화기 화포/폭•포탄 천자총통, 현자총통, 대완구, 총통기, 불랑기포, 홍이포 비격진천뢰, 대장군전
개인화기 조총, 천보총, 승자총통, 세총통
화전/로켓 신기전, 화차
방어구 갑주/군복 두정갑, 찰갑, 쇄자갑, 경번갑, 면제배갑, 어린갑 철릭, 구군복, 포졸복
방패 등패, 장태
군장 띠돈, 동개, 활집, 광다회, 전대
전차/육상병기 화차, 비거 마름쇠
전선(戰船) 판옥선, 거북선, 해골선, 맹선, 과선 }}}}}}

조선 시대는 활을 애용한 시대였다. 조총의 전래 이전까지 중국, 일본과 비교해 궁병의 비율이 매우 높았으며 조선 내부에서 타국과 비교해 우리가 활을 잘 쏜다고 자부하는 문서가 많이 발견된다. 조선 전기의 화약 무기는 북방의 여진과 남방의 왜구에 대해 신무기이자 위력이 컸던 대표적인 병기였다. 조선 시대의 화약 무기는 한편에서는 실전을 대비하기 위한 주요 병기로 개발에 적극적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주변 민족에 대한 금비책[1]으로 인해서 화약 무기 발달에 크게 저해되는 요인으로 작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조선에서 유황과 염초를 확보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조선은 화약의 재료를 확보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염초의 경우 명에게서 수입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명이 별로 팔고 싶어하지 않았고 유황의 경우 일본에서 상당한 양을 수입해왔다. 염초의 경우 생산량 자체도 많지 않은데 소모량이 적지 않아서 세종 시기에 염초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고[2], 생산량이 부족하여 명의 사신에게 염초의 생산량이 부족함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당시 염초의 생산량은 연간 1천 근이 안 되었다고.[3] 문종 때도 신하들이 염초는 화포에 사용하는 거지 채옥을 굽는 데 낭비하면 안 된다고 상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4] 선조 때에도 염초를 굽는 방법을 확보하기 위하여 생포한 왜인에게 그 방법을 알아내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5] 이런 노력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어서 화약 생산량은 제법 증가하였다. 재료의 경우도 현종 무렵에는 유황 광산을 개발하여 자체적으로도 수급이 가능해졌다.[6]

한편 이렇게 화약 무기를 사용하다보니 사고가 안 생길 리가 없어서 화약고 화재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실록에 기록된 최초의 화약고 화재는 세종 시기로 화약고에 화재가 발생하여 22명이 피해를 입었고 그중 11명은 치료를 받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다.[7] 그러나 중기까지는 (기록상으로는) 별로 언급이 없다가 영조 시절부터 슬슬 본격적으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영조 4년에 화약 4,213근(2,528kg)이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했고[8] 순조 7년에 자모산성의 화약고 화재로 화약 38,470근(23,082kg)이 소실되고[9] 순조 19년에는 어영청 남소영의 화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화약 93,280근(55,968kg)이 소실되고 20명이 사망하였다.[10] 그 외에도 화약을 훔쳐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현종 3년에 임창혁이라는 자가 화약을 빼돌리가 걸려서 효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11] 그러나 그중 가장 큰 스케일의 도둑은 정조 1년에 발생했는데 도난당한 화약의 양이 7,000여 근(...)이나 되었다.[12]

새로운 화약 무기의 장점은 관통력과 사거리가 길어서 전투에 있어서 살상력이 높았으며, 또한 병사들이 단기간의 훈련에 의해서 어느 정도 사격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화약 및 화기의 제조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발사 시간의 지연 및 우천시의 발사 곤란 등은 문제점이 되었다. 이리하여 이를 보완시켜 줄 재래의 일반 무기도 전투에 병행하여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화약 무기와 상보 관계가 되었던 일반 무기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궁시류였다.

성능이 우수한 궁시류를 제조하는 데는 재료의 습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화기의 제조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낮았다. 궁시는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상당한 훈련을 필요로 하는 반면에 일단 기술을 익히면 사격 속도와 사거리를 증진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특히 궁시는 훈련 여하에 따라서 적에게 단시간 내에 연속적인 집중 사격이 가능하며, 그 중량이 비교적 가벼워서 개인 행동에 유리하고 매복 작전시에는 기습의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궁시는 여름과 장마철에는 그 탄력이 약해져서 성능이 저하되는 결점이 있었다. (물론 장마철에는 총기류의 위력 또한 저하되었으나 조선에서 주로 사용하던 활인 각궁은 특히 더 습기에 약했다.) 또한 갑주를 착용할 경우에는 살상효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결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궁시는 조선 후기까지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었는데, 양반이나 지배층의 심신 단련뿐 아니라 전 계층의 오락거리로 발전해 여자들도 궁시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 시대 일반 무기류 중에서 창검류가 차지하는 전술상의 지위는 전체적으로 저하되었지만 근접전에 있어서는 그 기능과 역할은 무시될 수 없었다. 창검류 중에서 창류는 무과 시험에 있어서 궁시류 다음으로 중요한 과목이었기에 전술상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도검류는 병사들의 중요한 휴대 무기였음에도 무과 시험의 과목 대상이 아니라는 현실의 반영이 도검의 제조술과 검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도검류의 전술적 기능과 위치가 약화 내지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선 시대의 주요한 무기 중의 하나이자 도검류 중의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환도였다. 환도는 전통적으로 전술상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그 기능과 위치를 회복하기 위하여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변화를 모색하였다.

도검류로는 이인검, 삼인검, 사인검, 이진검, 삼진검, 사진검 등의 검과 패검, 운검, 별운검 등의 환도류, 장도 등이 있었다.

창류로는 창, 모, 극, 기창 등이 있었고 궁시류로는 정양궁, 예궁, 목궁, 철궁, 철태궁, 고, 각궁 등의 활과 목전, 철전, 예전, 편전, 동개살, 장군전, 세전, 유엽전, 노 등의 화살이 있었다.

공성무기류로는 차전이 있었다.

보병용과 기병용의 방패가 이런 방패를 든 팽배수가 초선 초기 주요 병종이었다. 또 철질려가 있었다.

조선의 무기가 자주 묘사되는 사극이나 영화가 인기를 끌수록 당시 무기를 재연하려는 시도도 ADD 주도로 실시된 적이 종종 보인다. 당연히 화약을 다루는 만큼 ADD가 관여돼있으나 재연품을 제작시에 당시의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당시의 설계만을 본딴 현대 소재(...)로 만들어서 재연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를테면 강철 포신을 만들어서 무연 화약을 썼다는 소리. 다만 이 경우에는 당대 폭발력에 맞게 화약의 양을 줄였고, 현대 기술로 만든 화포라도 당대의 화포처럼 포신이 꽉찰 정도로[13] 탄환을 채우는 실험도 위험하다는 판단에서 하지 않았다. 아무튼 현대의 소재가 너무 좋다 보니, 비격진천뢰의 경우에는 기록된 대로 탄체는 깨지지 않고, 화약과 함께 넣은 철편만 날리고 끝나기도 했다.[14]

1.8. 근대의 무기

한국사에서 근대는 갑오개혁이 종료된 1895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의 시기를 이른다.

한국 근대에 있어 무기는 크게 진보되지 못한 분야였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일본과 청의 침입을 받은 뒤 조선 정부에서는 무비강화와 신무기제조에 국가적 차원에서 진력하였다. 전란을 통하여 중국과 일본의 화기가 유입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모방한 무기의 제작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조총을 비롯하여 불랑기포, 호준포, 삼안총, 홍이포 등과 같은 화약무기를 제조하였으며, 화약의 제조에도 진력한 바 있었다.

이처럼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무기와 화약의 제조 및 기술 개발에 상당한 노력이 경주되었으나, 획기적인 발달은 이루지 못하였다. 그것은 같은 시기에 서양에 있어 무기발달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비교되는 일이었고, 나아가 근대에 들어서 무기 발달이 정체되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 청국의 한역서나 물품을 통한 서양과학의 유입이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무기부분에 있어서는 별다를 수용이 없었다.

예컨대 여러 차례에 걸쳐 서양의 소화기류를 접한 바 있던 조선에서는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무기를 제작하지는 못하고 계속 재래식 화승총의 사용에 머무르고 말았고, 다만 숙종 연간에 조총보다 성능이 뛰어나게 개발된 천보총이 영조 때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1860년대에 고종이 즉위하면서 무기발달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이 시기에 조선이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열강의 직접적인 침략을 받게 되었던 사실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와중에서 대원군은 신무기 개발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서양무기를 모방[15]하는 등 부분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1876년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조선 정부의 관심은 신무기 개발보다 발전된 형태인 서양무기의 제조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정부에서는 무기 제조보다도 무기 구입의 방법으로 무비강화를 도모하였다. 무기구입은 외형적으로 무비강화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나 거기에 수반되어야 할 탄약의 구입이나 수리, 교육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실 자금부족과 방해가 크다. 중년잡설의 블로그를 보면 강선은 수공업으로 파는 것이 가능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장간에서 강선을 판다. 사실 1850년대까지 강선 라이플은 머스킷에 강선 파고 뇌관으로 개조하기만 하면 되었다. 조총은 이미 민간에서도 판매하고 제작하던 상황에서 기기창을 세웠음에도 무기제조를 못 할 리는 없다. 대포라면 해국도지에 전래된 철모로 계랑하기도 했기에 (여러 번 쓸고 있고 규격화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왜 무기강화를 못했는지 의문이다. 19세기 무기 개발은 이런 면에서 미스터리다.)[16]

1.9. 현대의 무기

한국사에서 현대는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1945~현재)를 이른다. 당시 일본을 제외한(일본도 막 근대화를 했을 때라 미국/영국의 무기를 그대로 분해해 베낀 것들로 2차 전쟁을 수행했을 정도의 시기) 아시아 국가들이 근대화가 안 되었듯이 한국은 한국 전쟁이 터진 즉시에도 미국의 무기를 사용해 전투를 벌였다. 북한의 경우 일본 치하에서 일본의 중국/러시아 견제 계획 탓에 나름 공업화가 잘 되어있었기에 소련제 무기를 복제 생산하긴 했다. 한국이 국산 무기의 필요성을 느낀 건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기에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의 무기를 참고하며 국산 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그 후 계속해서 국산 무기 개발이 진행되며 무기뿐 아니라 전투기, 전차, 전함 등까지 자체 개발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이로써 웬만한 무기는 독자 개발이 가능한 국가 중 후발주자로서 자리를 맡게 되었다.

국산무기 참조.

2. 종류별

2.1. 전근대

2.1.1. 활 또는 궁류

  • 죽궁, 목궁: 민간이나 사냥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활.
  • 철궁, 철태궁: 강력한 궁력을 가진 활로서 주로 수비용 무기.
  • 동개궁: 주로 기병이 사용했다.
  • 각궁
  • 신기전
  • 애기살
  • 힝그럭: 유엽전(柳葉箭 - 버들잎 모양의 화살촉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이라는 화살의 촉. 1798년 이만영이 편찬한 재물보(才物譜)에 따르면 19세기 초에는 단면이 사각형이며 가느다란 형태의 촉을 일컫기도 했다 한다. 조선시대 때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평시에는 화폐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전시에 대비해 화살촉 모양으로 화폐를 주조했다고. 사진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세조때 발행한 팔방통보라는 물건이지만 당시 유통에는 실패하면서 결국 사라진 화폐 체계다.

2.1.2. 도검류

2.1.3. 둔기류

2.1.4. 창류

  • 당파
  • 장창
  • 낭선
  • 기창
  • 요구창 - 창날의 옆구리에 위쪽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뻗은 날이 붙어있는 창이다. 실전보다는 주로 임금을 호위하는 군사들이 위엄을 보이려는 목적으로 사용했다.

2.1.5. 방패보호구

2.1.6. 총기류

조선에서 화포류는 죄다 총통으로 불렀다. 일반적으로 개인화기처럼 다루어진 쪽을 분류.
  • 일총통, 이총통: 승자총통 이전에 사용된 핸드건 형식의 총통. 이총통의 경우 포구가 삼각형이며, 크기도 개인이 쏘는 핸드건류에서 가장 크다.
  • 세총통
  • 삼안총: 삼혈포라고도 하며, 초기에 사용된 개인용 연발총통. 원시적인 총통의 일종이다.
  • 승자총통
  • 조총
  • 천보총
  • 비몽포: 원시적인 독가스 무기. 수은과 독초등을 조합해서 인마 살상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중국의 무기다.# [17]

2.1.7. 폭탄류

2.1.8. 대포류

2.1.8.1. 총통(무기)(銃筒)
총통은 조선시대에서 화포를 의미한다. 명칭은 크기·화약의 중량·탄환의 수·사정거리 등에 따라 큰 것부터 차례대로 천자문(千子文)의 순서대로 천(天)·지(地)·현(玄)·황(黃)으로 구분한다.
  • 천자총통: 가장 대표적인 화포. 임진왜란이 일어난 조선중기에는 현자총통급이, 이후에는 불랑기나 후기형 화포들이 주력이 되었다.
  • 불랑기포
  • 총통기

2.1.9. 로켓무기

2.1.10. 함선

2.2. 근대

2.2.1. 권총

  • 뇌관식 권총 #
  • 마우저 권총
  • 독/영/러/프/일/미 각국에서 리볼버 권총들을 들여왔다.
  • 노흭 일본제 권총들
  • TT 권총

2.2.2. 소총

2.2.3. 기관총

2.2.4. 폭탄류

2.2.5. 대포류

  • 소완구 / 소소완구(박격포)
  • 중완구(박격포)
  • 대완구(박격포)
  • 84mm 청동제 소포
  • 120mm 청동제 중포
  • 암스트롱포
  • 크루프 75mm M1903 곡사포

2.2.6. 함선

3. 관련 문서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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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약을 만들고 다루는 기술은 철저하게 기밀로 붙여졌다. 일본은 16세기 중반 명종 대에 이르러 화약 제조 기술을 얻게 된다.[2] 세종실록 1권, 세종 즉위년 9월 19일 병인 4번째 기사[3] 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 12월 24일 을묘 5번째 기사[4] 문종실록 1권, 문종 즉위년 3월 5일 기유 2번째 기사[5] 선조실록 36권, 선조 26년 3월 11일 병인 6번째 기사[6] 현종실록 18권, 현종 11년 1월 3일 신묘 1번째 기사, 현종개수실록 22권, 현종 11년 1월 3일 신묘 1번째 기사[7] 세종실록 118권, 세종 29년 10월 3일 신유 2번째 기사[8] 영조실록 15권, 영조 4년 1월 27일 무인 4번째 기사[9] 순조실록 10권, 순조 7년 4월 20일 임진 2번째 기사[10] 순조실록 22권, 순조 19년 3월 28일 경신 1번째 기사[11] 헌종실록 4권, 헌종 3년 8월 19일 갑자 1번째 기사[12] 정조실록 3권, 정조 1년 2월 7일 계묘 2번째 기사[13] 천자총통의 경우, 격목 넣고 포탄 넣고, 격목 넣고 조란탄 넣고, 또 격목 넣고 포탄을 채우는 식으로(...) 쏘았다. 그만큼 포신이 튼튼했기 때문에 한 짓이라지만...[14] 근데 이렇게 날아간 철편도 바위에 박혔다![15] 이 시기 생산된 화포들을 보면 포가의 형태가 서양식 화포들과 거의 똑같다. 다만 사용하는 포탄이 퍽탄 수준이다.[16]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되는건 조선을 500년간 괴롭힌 예산부족으로 추정된다. 조선의 세금제도는 전근대 기준으로 대단히 관대하였다. 비슷한 세금제도를 가진 청나라는 엄청난 체급에서 오는 경제력으로 적은 세율로 근대화를 이룰수 있었지만 조선의 체급으로 성리학적 관대한 세금제도는 조선을 500년 내내 예산 부족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조선이 얼마나 예산 부족에 시달렸냐면 운산금광을 개발하기 위해선 조선의 1년예산이 필요하였고 결국 조정은 개발을 포기하고 외국에게 개발을 넘기는 대신 개발이익을 나누기로 하였다. 그리고 일련의 근대화 과정에서 필요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선 백성에 대한 착취가 필요했지만 부정부패로 인한 수탈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그과정을 견딜수 없었을 것이다.[17] 살상력은 좋았던 거 같지만, 제작비용이 많이 들고 아차 하면 팀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