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27 01:08:53

국궁

파일:Jwadokgi_mini_white.png 조선의 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백병 도검 환도, 월도, 왜검, 협도, 인검, 창포검
당파, 장창, 낭선, 기창
둔기 편곤, 철편, 철퇴, 육모방망이
발사
무기
궁시 국궁, 편전(애기살), 각궁, 쇠뇌
화기 화포/폭•포탄 천자총통, 현자총통, 대완구, 총통기, 불랑기포, 홍이포 비격진천뢰, 대장군전
개인화기 조총, 천보총, 승자총통, 세총통
화전/로켓 신기전, 화차
방어구 갑주/군복 두정갑, 찰갑, 쇄자갑, 경번갑, 면제배갑, 어린갑 철릭, 구군복, 포졸복
방패 등패, 장태
군장 띠돈, 동개, 활집, 광다회, 전대
전차/육상병기 화차, 비거 마름쇠
전선(戰船) 판옥선, 거북선, 해골선, 맹선, 과선 }}}}}}


1. 개요2. 국궁의 사법(쏘는 법)3. 형태4. 국궁의 역사
4.1. 고대의 국궁4.2. 조선시대의 국궁
5. 국궁의 재료6. 국궁의 종류
6.1. 시대/재료별
6.1.1. 맥궁6.1.2. 단순궁/환목궁6.1.3. 죽궁/목궁6.1.4. 동개활(?)6.1.5. 합성궁/각궁6.1.6. 복합궁/목제장궁6.1.7. 철궁6.1.8. 철태궁6.1.9. 동궁/칠궁
6.2. 용도/명칭별
7. 외국의 활들과의 비교?8. 국궁의 현대적인 분석9. 현대의 국궁10. 배우는 단계
10.1. 국내 사극에서의 잘못된 사법10.2. 국궁장비와 각종 가격 일체
11. 현대 국궁의 논쟁거리
11.1. 대한궁도협회 관련 문제11.2. 사법 논쟁11.3. 사풍 논쟁
11.3.1. 궁도라는 용어에 대한 논쟁11.3.2. 대한궁도협회의 입승단제도
12. 국궁을 이용하는 대회13. 관련 문서14. 둘러보기

1. 개요


[1]

한국인의 전통 궁술. 또는 전통 활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제의 영향으로 궁도라는 명칭으로도 부르지만 현재에는 궁술 등의 명칭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다.

2. 국궁의 사법(쏘는 법)

별절사법 [2]
위 움짤은 국궁의 사법 중 앞손과 뒷손을 크게 떼면서 활을 엎어 쏘는 '별절'이라는 궁체다.[3] 이는 화기의 발달과 근대화의 영향으로 군용궁술이 사장되고 민간궁술이 주를 이루면서 사라진 옛 군용사법이다. 국궁의 쏘는 방법은 수백 년 역사가 말해주듯, 민간궁술, 군용궁술의 큰 틀이 나뉘고, 그 안에서도 꽤나 다양하게 나뉘기 때문에 무엇이 국궁의 전통사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매우 어렵다.[4]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를 열람하기 쉬워진 요즘 국궁계의 궁사들 사이에서 전통사법 논쟁이 매우 치열하다. [5]

어떤 사람들은 일본 궁도의 획일화된 사법을 예로 들며 한국 국궁계는 사법이 통일되어 있지 있다면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법이 다양하다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획일화된 사법은 굉장히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며 실제 옛 궁술과도 맞지 않을 것이다. 고구려 시대나 조선 시대 때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사법만 옳다고 하면서 활을 쏘았을까 생각해보면 스스로 답을 알 것이다. 지금 현재 국궁계에 필요한 것은 활터마다 다양한 사법을 존중하고 그 사법의 특징을 정리하고 체계화하고 비교해보며 연구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지, 무작정 한가지 궁체나 사법을 놓고 이것이 전통 사법이다라고 하면서 다른 사법을 깎아내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활을 처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활터에 등록해서 사범이 하라는 대로 배우는 게 가장 빠르고 기본기를 익히기도 편하다.

3. 형태

앞서 아래에 있는 사진들을 포함해, 현대 활터와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국궁은 전부 조선후기 민간용 각궁을 기본으로 한다. 조선군과 무인들이 사용하던 전투용 각궁과 비교해서 활의 폭도 매우 얇고 고자[6]의 모양, 만드는 재료,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가 매우 다르다. 이 때문에 현대 활터에서 쓰는 개량궁이나 아래 사진 같은 민간각궁을 사극의 조선군이 사용한다면 말그대로 고증오류다. [7]

파일:88c1d93206d6ed75abe69653b47161c0_rml1mzDKeJzikelhSD77fSBfYXzRrcX.jpg
흔히 알려진 각궁의 모습이다.[8] 완전히 C자로 말린 것이 특징이다.

파일:sub3-c-image-1-4.gif

각궁과 화살의 부분 명칭을 설명한 그림이다.

4. 국궁의 역사

한반도에 대한 기록은 고대 중국의 기록에서도 '맥궁'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국궁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와도 같이 긴 편인데, 군주들 중에도 명궁이 많아서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9], 조선을 세운 이성계[10], 그리고 정조도 명궁이었다고 전해진다.[11] 심지어 후삼국 시대의 폭군 궁예도 활을 잘 쏜다는 이름일 정도인 걸 보면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활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군주는 아니나, 오늘날 해상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장보고 역시 본명은 궁복으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궁복'의 '궁'은 말그대로 弓, 즉 활이고 '복'이 먹보, 심술보 할 때 우리말 접미사 '-보'의 음차라는 것이다.

한민족이 활을 중시하는 풍습이 더욱 심화된 시기는 조선시대 이다. 태조 이성계만 봐도, 활을 들고 전장을 휩쓸던 희대의 명궁이었고, 공자의 가르침인 육예[12]에서도 활쏘기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유교를 공부하는 선비들 또한 활쏘기를 정신수양의 도구로 사용했다. 또한 조선군의 군사교리도 활을 중시하였기에, 무과시험에서도 활에 대한 과목만 5가지를 훌쩍 넘어간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무사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모두 활을 쏘는 사람들을 칭했다. 당시에는 민간에서도 활이 유희용으로 발달하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활쏘기를 즐겼으며, 이 때문에 방태기 활, 탄궁, 교자궁처럼 다양한 민간용 활이 존재했다.

전통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전술을 설명할 때 '중국, 일본, 한국'이라고 했을 만큼 발달한 무기였다.[13]

4.1. 고대의 국궁

우리나라는 고대에도 중세와 흡사한 개념의 합성궁/복합궁을 사용했다.[14] 하지만 처음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합성궁을 사용한 것은 아니며, 극소수 발견되는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 중에는 단순 목궁도 많이 발견된다.

파일:attachment/국궁/c0036507_4a43a0914ff30.jpg
파일:attachment/국궁/c0036507_4a43a6a13e935.jpg
좌측부터 환목궁(신창동 저습지 출토), 삼한시대 목궁. 두 사진출처

파일:attachment/국궁/c0036507_4a439ccb879b9.jpg

삼국시대에는 소갈비뼈를 사용해 만들기도 했다. 위 사진이 고구려 골제 활고자(긴것 4개)와 줌통(짧은 것 2개). 평양 영화9년명 고분 출토품으로, 일반적인 고자와 달리 길이가 길어 활채까지 이어진다. 저 길이와 형태 때문에 학계 일각[15]에서는 활고자가 아닌 궁간(弓幹)으로 보고 있으며, 고분벽화 그림에 근거해 활 중간중간 마디에 탄성력 강화를 위해 추가로 다른 부재를 덧붙였다고 보고 있다. 사진출처

4.2. 조선시대의 국궁

사예(射藝)는 곧 우리 집안의 법도이니, 다만 내가 천성으로 활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매번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음을 생각하여 더욱 노력하였다.
- 정조, 일득록 #

조선시대에도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에는 평민들까지 활쏘기를 즐겼다. 활쏘기는 유교의 육예[16]에 들었기 때문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 보았다. 또 군사적으로도 갑오개혁 이전(1894년)까지 군대의 제식무기였다. 따라서 무과시험에도 멀리 쏘기와 기사(騎射: 말 타고 활쏘기)가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서 첫 실패를 경험한 과목도 기마사격이었다.

구한말 외국인의 기록에는 어린아이나 여자들도 활쏘기에 능했다고 적고 있다. 기록에는 활터에서 활쏘기로 돈내기를 자주 했다.[17] 중국의 기록에서도 한민족은 활을 잘 다룬다고 평했으며, 조선 말기에는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조선사람들은 활을 잘 쏜다는 기록을 남겼다. 미국에서는 조선 병사가 활을 쏘는 그림이 그려진 우표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의 후손들이 올림픽에서 양궁을 잘 하는 것도 선조들의 덕이라는 말이 있다.[18]

전투용 활의 맥이 남아 있었던 17세기 이전의 국궁은 연사속도, 사정거리에서는 화약무기를 성능에서 앞서기도 했다.[19] 특히, 병졸들의 승자총통보다는 조선 무관들이 쓰는 각궁의 성능이 우수했다. 물론 조선군에서도 화승총을 빠르게 받아들였는데, 활의 중요성이 감소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활은 숙달하는 데에 평생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2. 총에 비해 살상력이 압도적으로 약하다.
3. 활을 숙달한 군대를 만들고 관리하는 비용이 더 비싸다.
4. 각궁의 재료인 물소뿔이 비싼 수입품이었다.[20][21]

심지어, 조선 초기부터 승자총통류 핸드캐논조차 국궁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국궁은 보편무기로서 평가함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 종종 올라오는, 국궁을 조총의 보조용으로 사용하는 사법은 활의 중요성이 감소한 조선 후기의 방법이다. 이때는 직접적인 살상력에 집착하기보다는 무예로서 편의성을 강조하는 편이었다.

조선시대 활쏘기는 사대부들이 육예로서 연마하던 사정 위주의 활쏘기와 일반 백성들이 무과 시험 응시를 위해 연마하던 벌터질 위주의 활쏘기 등 여러 양상으로 유행하였다.

양반들, 특히 문반 사대부들은 육예라고 부르는 군자가 되기 위한 6가지 기예, 예절禮, 음악樂, 활쏘기射, 마차몰기御, 글쓰기書, 셈하기數를 연마하는 것이 이상적 군자의 길이라 보았기 때문에 활쏘기를 연마하였다. 이들은 양반들만 출입할 수 있는 사정이라 불리는 활터에서 주로 유엽전 활쏘기를 즐겼다. 사정은 무과시험의 유엽전 규격과 유사한 약 120보 거리에 과녁을 설치하여 사용했다. 사대부들은 마을 단위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사계(射契)라 부르는 일종의 동호 모임을 구성하여 다른 사정이나 사계와 활쏘기 기량을 겨루어 술이나 음식을 내기하는 편사 등 시합을 하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도 활쏘기를 즐겨 하였는데, 사대부만이 응시할 수 있는 문과와는 달리 몰락 양반이나, 서얼, 평민도 응시할 수 있는 무과 시험을 입신양명의 기회로 보았기 때문에 3년마다 시행되는 식년시와 나라에 난리가 날 때마다 부정기적으로 실시된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서 활을 연마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야생동물이나 산적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실리적 이유로도 활쏘기를 하였다. 신분이 낮은 백성들은 사대부들이 활을 연마하는 사정에서는 활쏘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너른 벌판에 나뭇가지 두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솔포라 부르는 오늘날의 현수막과 같은 두꺼운 포목을 매달아 걸어놓고 활쏘기를 연습하였는데 이를 벌터질이라 하였다. 무과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각궁과 정량궁 등 규격에 맞는 활을 준비하여 연습해야 했지만, 실용적인 사냥이나 평시 습사용으로는 고가인 활보다 목궁 등 값싸고 성능이 떨어지는 활도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의 무과시험은 경국대전에 이르러 완비되었는데, 6개 실기 시험과 병서 1개 과목으로 구성되었고, 그중 6개 실기 시험 중 활쏘기가 4개에 이를 정도로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무과 급제를 위해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활쏘기에 투자해야 했다. 무과 시험과목은 첫째로 나무로 만든 뭉툭한 박두전을 멀리 쏘는 과목으로, 3발 이내에 240보 이상을 보내어야 합격이었다. 둘째로는 애기살로도 불리는 편전이라 하는 일반 화살보다 약 3분의 2정도로 짧은 화살을 통아라고 부르는 일반 화살과 같은 길이의 옆이 트인 대롱에 걸어 쏘는 것으로 130보 거리에서 쏘아 과녁에 맞는 개수로 점수를 매겼으며, 셋째로, 철전 혹은 육량시라고 하는, 일반 화살보다 7배 이상 무거운 화살을 정량궁이라 부르는 크고 강한 활로 쏘는 시험으로 최소 80보 이상을 보내야 합격이었다. 넷째는 기사로서,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 목표물을 맞히면 점수를 주어 평가하였다. 다섯째는 말을 타고 달리며 창으로 목표물을 찌르는 기창이 있었고 여섯째는 말을 타고 작은 공을 다루는 격구 과목이 있었다. 조선 후기 속대전이 간행되면서 전투용 화살인 유엽전 쏘기와 편곤(쇠도리깨) 등이 과목에 추가되었다. 유엽전 쏘기는 각궁으로 무게가 8돈인 촉 모양이 버드나무 잎 모양인 화살을 120보 거리에서 쏘아 3발 중 최소 2발을 맞추어야 하는 과목으로, 유엽전 쏘기가 유일하게 조선시대로부터 전해져서 오늘날 활터에서 사용하는 145미터 거리에서 과녁을 쏘게 된 유래가 된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서 무관이 되기 위해 무과를 준비하려면 가장 중요한 과목이 활쏘기와 말타기였다.

위에서 언급한 목전, 철전, 편전, 기사는 조선 후기 무과가 폐지되고 활쏘기가 쇠퇴하면서 그 장비와 쏘는 법이 맥이 끊어졌고 사대부들이 취미로 해오던 유엽전 활쏘기만이 전국 각지의 사정에서 전해온다. 일제시대에 조선궁술연구회에서 간행한 <조선의 궁술>에서 소개된 궁술의 교범도 유엽전 활쏘기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 서문에서 언급한다. 오늘날 국궁장 혹은 궁도장이라는 곳에서 배우게 되는 활쏘기는 이 120보 유엽전 활쏘기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진압된 후 구식군대가 사실상 없어지다시피 하면서 군사기술로서의 궁술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1894년 갑오개혁에서 과거제가 폐지됨으로써 무과 또한 폐지되어 활쏘기를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연마하는 한량은 사라지고 민간에서만 간간이 전해졌다. 1899년 6월 독일에서 하인리히 친왕이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고종황제는 장안의 이름난 궁수 여섯을 불러 덕수궁 후원에서 활쏘기 시범을 행했는데, 하인리히 친왕[22]이 조선 활쏘기에 큰 관심을 보여 극히 유쾌하게 끝나자, 고종은 궁술을 장려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 결과로 궁술 장려를 위해 경희궁 북쪽에 활터를 짓고 황학정이라 이름 붙여 조선의 대표 수사정으로 삼았고 초대 사두로 하인리히 친왕 방문시 시범을 보였던 1894년 마지막 무과 급제자 성문영사진참조이 임명되었다. 이로부터 군사기술보다는 체육활동과 취미로서 맥을 이어 오던 활쏘기는 1928년 일제강점기 문화정치의 상황에서 황학정을 기반으로 궁술의 맥을 잇고자 조선궁술연구회가 발족되었으며 각종 궁술 대회를 주최하여 활쏘기를 장려하였고 1929년에는 조선의 활쏘기 역사와 제도, 궁시의 규격과 궁술의 교법을 국한문 혼용으로 정리한 조선의 궁술국궁신문기사참조이라는 책을 내놓게 되었다. 조선의 궁술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근세의 활쏘기 관련 서적인데, 특히 한글로 집필되된 궁술의 교법 부분에는 현재도 활터에서 사용되는 중구미, 불거름 등 순 한글 용어가 적혔다. 일제강점기에서 다시 군국주의 색채로 돌아선 민족말살기가 시작된 1932년, 조선 궁술 연구회는 일제의 강압으로 일본식 무도 정신이 깃든 궁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조선 궁도 연구회로 개칭했고, 광복 후 조선궁도협회로 바뀐 채 근세사의 여러 질곡을 겪으며 현재까지 내려왔다.

화포가 발달한 이후에도 국궁은 기본적인 무예로 중시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중후반기에는 치안을 핑계로 전통 궁술의 맥이 위협받기도 했으나, 고종이 세운 황학정 등 활터에서 꾸준히 활쏘기가 계승되는 데 성공했다. 허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단체의 이름과 공식 명칭이 대한궁도협회궁도로 바뀌었고, 국궁계도 사회의 격동을 견디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난립하여 일본의 궁도처럼 통일된 규격을 정하지 못하며 분열되었다.

5. 국궁의 재료

국궁의 초기 재료는 나무, 대나무, 뼈 등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목재 합성궁, 뼈를 이용한 합성궁이 사용되었다. 한반도 특유의 C자형 각궁은 고대의 맥궁으로부터 이어진 합성궁 제작기술이 조선시대에 극단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활들이 공존했을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 단순궁 형태의 활은 민간에서만 사용되었다.

국궁은 각궁, 특히 물소뿔로 만든 흑각궁을 중시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물소가 없다. 이 때문에 재료를 중국, 일본, 류큐에서 전량 수입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조선을 견제하려고 수량을 제한했고, 류큐 왕국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사츠마 번에게 점령당했으므로, 일본에서만 수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중국과 일본의 물소를 남부지방에서 번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기후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참고로, 물소 뿔은 약재나 화각공예품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어찌되었든, 흑각궁은 조선후기에도 많이 만들었는데, 후기의 활 보유량에 대한 기록을 보자.
하지만 각궁은 장마철에 약화되거나 심하면 망가지기도 했다. 따라서 장마철은 총이나 말을 다루기에도 좋지 않은데도 국경으로 침입하는 유목민족들에게 유리한 계절이라고 인식했다. 궁사들 사이에서는 "마누라는 윗목에 재워도 활은 아랫목에 재운다." 하는 말이 있었다. [23] 그래서 조선시대 궁사들은 여름을 대비하여 합성장궁, 철궁, 간각칠궁[24] 등을 준비해두어야 했다. 관련 융원필비 기록 링크.

6. 국궁의 종류

6.1. 시대/재료별

6.1.1. 맥궁

파일:고구려각궁보관.jpg

역사 항목에서도 가장 먼저 확인되는 고구려 시대의 각궁. 맥국[25]에서 생산되었다 전해지며, 중국에도 수출할 만큼 품질이 좋았다 전해진다. 온전한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고구려의 벽화에 그려진 활일 가능성이 높으나 자세한 사항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6.1.2. 단순궁/환목궁

한반도에서는 선사 이전에 확인되며, 삼국시대 이후에는 주력으로 쓰인 일이 적다.

6.1.3. 죽궁/목궁

민간용 단순궁. 대나무를 여러겹 포개놓거나 대나무 림에 각(角)을 붙이지 않은 것은 방태기활이라 불렀다. 목궁은 산간지방이나 민간에서 사냥용으로 썼다는 옛 어르신들의 증언이 있다. 전투시에도 이걸 사용할 정도면 '정말 갈 때까지 갔다, 졌다.'고 생각했다는 기록이 있다(...). 보편적으로 단순궁은 사낭용, 습사용, 유희용이었다. 전투용으로는 힘줄을 대거나 하는 식으로 각궁이랑 비슷하게 강화한 목제 강화궁이 쓰였다.[26] 따지고 보면 각궁의 제작기간이나 가격 등을 생각해보면 의병들이나 군수물자가 부족한 관군들도 어느 정도 사용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6.1.4. 동개활(?)

널리 퍼진 잘못된 오해를 설명하기 위해 남겨둔 항목.

파일:external/www.hornbow.com/woodbow6.jpg
박극환 궁장이 복원한 조선시대 동개활.(출처) [27]

동개활이라는 명칭 자체가 후대에 생겼고, 전 세계 모든 문화권을 통틀어 봐도 큰 활이건 작은 활이건 전부 동개일습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동개에 넣고 다닌다는 가정하에 붙여진 '동개활' 이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된 명칭이다.. 박극환 궁장이 복원한 동개활의 원래 유물은 제작 재료나 구조등을 보건대, 전투용이 아닌 의장품, 유품이다.

여러 무예단체에서 동개활을 수련, 공연용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태조 어궁이나 발굴되는 고자목 유물들만 봐도 조선군이 전투에서 그렇게 작은 활을 사용했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크면 컸지..

6.1.5. 합성궁/각궁

대표적인 국궁이다. 재료와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가 존재했다.

6.1.6. 복합궁/목제장궁

최근 연구로는 우리나라에서도 목제 복합장궁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기병들이 중요했던 고려시대와 조선초기에는 만주활과 비슷한 복합장궁이 많이 쓰였다. 조선시대에도 180cm 만주활에 버금가는 복합장궁들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일반적인 각궁이랑 비슷한 성격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교자궁 문서 참조.

6.1.7. 철궁

파일:철궁:1.jpg
파일:철궁2.jpg파일:철궁3.jpg
놋쇠로 만든 철궁.
파일:철궁4.png
철제 철궁. 놋쇠로 만든 것과는 달리 광택이 나지 않고 시꺼멓다.
쇠를 구부리고 열을 가해서 가공한 활. 장마철 대비용으로서, 무게에 비하면 비효율적이었다고 한다.

6.1.8. 철태궁

파일:철태궁.jpg
일반 각궁과 비슷하나 원래 각궁은 활몸 부분(간幹)을 대나무로 만드는데 철태궁은 이 부분만 대나무보다 훨씬 단단한 금속으로 만든 활이다.

6.1.9. 동궁/칠궁

동궁은 빨간 도료, 칠궁은 검은 옻을 칠해서 방수성을 높인 활이다. 굳이 이런 분류를 나눈 것은, 계절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활을 번갈아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6.2. 용도/명칭별

  • 예궁: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에 사용한 예식용 활. 엄청나게 체격이 큰 무관이나 기계를 써서 당겼다. 지배자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한 활이었다. 육군박물관에 소장한 18세기 예궁 유물은 길이가 무려 247 cm에 달한다. 참조링크
  • 교자궁: 민간용 강화궁의 대표. 조선후기에는 활의 중요성이 감소하여 군에서도 교자궁을 주력으로 편성했다. 한때 인터넷에는 우천시 사용한 목궁으로 보는 주장이 퍼졌지만, 교자궁 관련 기록 1, 기록 2들을 참조하자면, 이러한 복합궁도 각궁이랑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교자궁 뉴스
  • 탄궁: 돌 탄환을 쏘는 활. 민간에서 사냥용으로 썼다. 놀이용으로도 많이 쓰였다.
  • 육량궁/정량궁: 길이 165 cm 이상. 일반적인 활보다 훨씬 크고 두껍고 파운드 세기도 강한 활로, 김홍도의 활쏘기와 신윤복의 계변가화에 있는 커다란 활이 바로 육량궁이다. 무과시험에서 무관들을 선발하기 위해 사용했던 활로, 파운드가 최소 150파운드가 넘어가는 강궁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힘이 강한 사람은 몸을 앞으로 튕기면서 쏘고 [28] 힘이 약한 사람은 쏘면서 자빠진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활로 300g이 넘어가는 육량전[29]을 70보 넘어서까지 날려야 비로소 무과시험 합격 커트라인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지만, 육량궁은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활이 아니다. 전시에 사용했다거나 군영에 배치했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활을 얼마나 강하게 당기는지 눈으로 보기 위해 비치한 시험용 도구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전투용으로 썼을 것이다. 그런데 정량궁은 조선의 궁술이라는 책에는 전쟁용 활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27분 15초

7. 외국의 활들과의 비교?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애초에 활이라는 게 단순히 파운드가 세냐 안 세냐로 따지는 무기가 아니다. 조선도 무관들을 뽑을 때 사용하던 육량궁은 거진 150파운드 이상의 강궁으로, 힘이 약한 사람이 쏘면 앞으로 자빠진다고 서술이 되어있을 정도로 강한 활이지만, 막상 그 강한 활을 무관들이 전시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활이란 건 그냥 세게 만들고 싶으면 덜 깎아서 세게 만들면 되는 물건이라, 높은 파운드로 제작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활의 성능을 논할 수는 없다. 타국 활들과 비교하기 앞서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

현대의 각궁은 기본적으로 민간 각궁이 베이스고, 조선군이 사용하던 전투용 국궁과는 근본적인 재료 자체가 틀리기 때문에 타국의 전투용 활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음을 감안하고 문서를 읽기 바란다. 또한 이마저도, 개화기~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외형으로 보나 구조로 보나 전통 민간 활 유물들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장의 현대 각궁도 타국들의 활들과 비교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30] 일단 유럽의 경우는 영국의 롱보우가 매우 유명하다. 국내 매체에서도 롱보우와 각궁을 자주 비교하곤 한다. 동유럽에서는 훈족과 기타 유목민족들의 영향을 받은 헝가리의 각궁이 유명하다. 제작방식이 한반도의 각궁과 꽤 유사하다. 또한 역대 중국 왕조와 북방의 야만 민족들의 합성궁은 기본적인 제작방식이 한반도와 매우 유사성이 있다. [3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3px-Yumi-p1000624.jpg
일본의 화궁은 동북아 내에서 유독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는데, 2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활은 헤이안~가마쿠라 시기 사무라이들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였다. [32] 무로마치 말기 ~ 에도시대 나온 궁태궁(弓胎弓, 히고유미 [33])이나 중등궁(重藤弓, 시게토 유미[34] 은 성능 자체만 놓고 보자면 각궁에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다만 매우 길기 때문에 휴대성이 매우 떨어지는 매우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 중에 하나가 일본 활이 단일 목궁으로 제작하여, 각궁 같은 합성궁과 다르게 습기에 대한 내구성이 매우 강하다는 부분인데, 사실 일본 활도 아교를 이용해 여러 나무들을 잘라 조합해 만든 복합궁이다. 그래서 습기를 맞으면 아교가 녹아 활이 고장 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합성궁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각궁과 같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본 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심한 편이다.# 일본 활은 소형화에는 실패했지만 활의 상단을 늘리는 방식으로 기마 사격의 용의함등의 보완점을 얻었으며, 또한 일본 활의 특성은 현대적인 아름다움으로도 계승되었기에, 현재 전해지는 민간용 국궁의 성능에만 안주해서 외국의 활을 욕하는 행동은 국궁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라도 옳지 못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화궁(和弓, 일본 활)에 대한 오해는 종종 출신지인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35]

파일:external/classic-bow.com/turkish_bow_01.jpg
최고의 활을 꼽을 때 언급되는 터키 각궁. 시위를 당긴 모습도 검색해보자. 시위가 없을 때의 독특한 모양이 유명하다. 시위를 걸면 명나라 장궁과 비슷한 선을 그리고, 당기면 우리나라의 각궁처럼 탄성이 높은 모양을 보인다. 활을 자주 쓴 민족답게 이밖에도 다양한 활이 있었다.

파일:external/www.atarn.org/viable_for_stringing.jpg
북방 유목민족의 각궁. 가까운 한국, 중국, 몽골의 활보다 크고 두꺼워 내구성은 높지만, 탄성이 약해서 비거리가 짧은 편이다.

만주족의 만주 활은 유목민족의 활 중에서 가장 거대하며, 비거리는 짧지만 저장되는 운동 에너지(J)가 높아서 무거운 화살을 쏠 수 있었다. [36] 조선시대의 국궁은 약간 작지만 부려놓으면 만주 활과 비슷한 형상이 되며, 고려시대의 국궁은 만주 활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특히, 한반도에서 기병의 편성 비중이 높은 시대일수록 닮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국궁은 만주 활과는 정반대로 고탄성 활이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조상들은 만주 지방의 활을 비교한 예시가 많다. "만주 활들은 너무 투박해서, 크기에 비하면 성능이 웃음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습기에는 우리나라 활보다 훨씬 강하므로 단점만 보면 안 된다. 우리도 장마철에 쓸만한 활을 만들려면 본받을 점이 많다."라고 비평과 반성을 하고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다.

만주 활은 궁기병에게 중요한 짧은 Draw Length와 파괴력을 중시했고, 한반도의 국궁은 탄성이 높은 재료를 이용하여 비거리와 연사력을 중시했다. 즉, 국궁은 극단적인 탄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탄력이 매우 낮은 만주 활과는 정반대의 특성을 지녔지만, 목재 복합궁은 쌍둥이처럼 닮은 거대한 장궁을 병용해서 만들었기에, 서로 밀접한 교류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 고려시대 활이 만주 활과 매우 닮았던 것은 물론이고, 보병용 고탄성 활을 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조선시대에도 만주 활처럼 투박하고 큰 목궁을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요, 목제 강궁이 부족할 때는 만주 활을 수입해서 병용하여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국궁과는 형태적으로도 서로 유사하고, 여러모로 국궁과는 교류가 많았던 활이라고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archerynews.net/img_20100824170115.jpg
부탄 죽궁. 출처는 국궁신문. 2007년 국내에서 열린 세계민속궁축전에서 한국 각궁과 더불어 120m 떨어진 과녁을 맞히는 데 성공한 유일한 활이었다. 대나무 재질인데도 뛰어난 성능[37]을 보여줬는데, 이것은 부탄 지역의 특수한 대나무 덕분이다.

당시에 참석한 현대의 몽골, 터키, 헝가리 각궁은 부탄 죽궁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는 부탄에는 근대까지도 전투용 활의 맥이 남아있었으며, 현대까지도 활이 스포츠로서 발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활은 사용자와 필요성이 갖추어져야 발전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재질이나 형태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활의 성능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도 준다.

8. 국궁의 현대적인 분석

국궁에도 재미있는 특색이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국궁은 에너지 생성량이 매우 뛰어난 활이라고 한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탄성에 의지하는 만큼, 무거운 화살을 발사할 경우에는 장궁보다 불리하다. 또, 시위의 속력 에너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화살을 걸지 않고 빈 활을 쏘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일본의 화궁 명인의 글에 따르면, 145미터 거리의 한국 활터 비거리는 세계적으로도 먼 것이라 한다.

현대 전문가들이 분석한 국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높은 경량성과 휴대성.
2) 극단적으로 작은 몸체가 되돌아가면서 발생하는 폭발적인 에너지 생성량.
3) 'C'형 → '3'형으로 탄성이 집약된 활대가 에너지를 거의 손실하지 않고 전방으로 집중시켜줌.
4) 크기가 작아 다루기가 편함.
5) 당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빠른 정면 조준 및 연사가 이루어지는 디자인.

단점은 다음과 같다.
1) 습기에 약해서 장마철에 쓰기 힘듦. [38]
2) 활에 시위를 올릴 때 상당한 시간이 걸림.
3) 내구도가 약해서 지속적인 관리와 휴대 시 주의가 필요함.
4) 기마 사격 시 무거운 화살을 쏘기에는 불리한 구조.
5) Draw Length가 길다. 때문에 기마 사격 시에는 오히려 단순 궁보다 즉발 사격 시 어려울 수 있음.[39]

즉, 국궁은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최강의 활이었다기보다는, 중세 기준으로 섬세한 기술을 집약하여 만든 활에 가깝다. 특히, 고무줄에 가까울 정도로 휘어버리는 활대를 완벽한 C → 3자 모양으로 변형할 수 있는 국궁의 높은 탄성은 중세 기준으로 놀라운 연구가 집약된 것이다. 탄성밖에 모르는 바보 장점도 탄성, 단점도 탄성이다.

국궁의 특성은 고구려 시대부터 각궁을 극단적으로 소형화했던 성향과 맞물린다. 국궁은 2개의 손가락을 이용하는 속사형 단궁의 장점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약점은 상쇄하는 데 투자한 활이라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소형화에 성공하면서, 컨트롤의 폭이 넓으면서도 비거리가 길고, 전방을 겨냥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현대까지 전해지는 국궁의 특성이다.

종합하면, 국궁은 다른 활을 사용하는 궁수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면서,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분배하여 화살이 매우 멀리 날아가며, 빠르게 연달아서 조준이 가능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활이라고 볼 수 있다. [40]

현대의 컴파운드 보우식 양궁이 달성한 기술에는 못 미치는 분야도 있지만, 국궁의 장점은 위와 같은 '가볍고 뛰어난 에너지 생성'이라는 특성을 고대와 중세의 재료만 가지고 실현했다는 점에 있다. 또한, 현재 전해지는 국궁은 습사용이라서 군사용보다 활이 가늘고 약해져서 많은 기술이 손실되었다. 전투용 국궁은 활대를 길고 굵게 만들어서 장력을 키웠으며 이를 제대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예:정량궁, 예궁)

파일:attachment/국궁/c0036507_4cf9a82b51588.jpg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 중인 조선시대 전투용 활. 특별 전시회를 할 때 공개된 것으로, 큰 표지의 원군(元軍)이라는 글자는 해당 구역 전시물이 원의 일본 침입 당시와 관련된 것이고, 활 바로 앞에 조선 궁이라는 하얀 이름표가 있다.출처 참고로 이런 형태의 각궁은 현대의 국궁들과 여러모로 생김새가 다른데, 이는 군용 활과 민간 활의 모양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진의 각궁을 자세히 보면 현대의 각궁과 전체적인 구조가 매우 다르다. 활 안팎이 시꺼먼 것은 군용품인 만큼 내구도를 올리기 위해 겉에 옻칠을 해서이다.

그 밖에도, 일본 정창원에 소장 중이라는 최영의 신궁(神弓)이나 유인촌이 진행하던 역사스페셜에서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소개하는 에피소드에서 나온 고려시대 활들은 180 cm가 넘는 장궁이었다.참고. 초기에는 전통적인 각궁보다 터키나 유목민족의 각궁과 유사한 장궁들이 발견되는데, 이 시대 국궁 연구는 미비한 편이다. 조선시대 국궁조차 연구가 덜 한참 모자라니.


국내 궁사 연구인들이 유엽전과 착전 [41] 등 전투용 화살촉 유물들을 복원해 실시한 실험이다.

실험에 사용한 철판은 1.6 mm로 서양의 판금갑옷 기준이라면 재질도 무르고 얇은 편이다만 [42] 동북아 철갑옷 갑찰의 두께는 철제 기준으로 평균 0.6~1.5 mm 정도로, 생각보다 무르고 가벼운 재질의 철판인 경우도 많다. [43] 또한 당시에는 방호재의 재질 중에 가죽, 천, 종이 등이 철제의 비해 훨씬 비율이 높았다는 점을 감안해서, 국궁이 철판을 뚫네, 못 뚫네 같은 단편적인 결과를 보기보단, 저 정도 활이 당시 무장한 병사에게 어느 정도의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었는지 유추하기 위한 실험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50파운드 영국 장궁으로 판금갑옷을 향해 쏘는 영상이다.

보다시피 극단적으로 강한 파운드를 가진 활로도 판금갑옷에겐 유효한 타격을 주기가 매우 어렵다. [44]

9. 현대의 국궁

1899년 대한제국을 방문했던 독일 제국의 황자이자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인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45]는 한국의 전통 무술을 보여 달라고 고종 황제에게 요청하였다. 하인리히 황자는 그렇게 시연된 여러 무술 중 특히 궁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아예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국궁을 직접 쏴 보기까지 했다. 프로이센의 전통적인 군국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그는, 국가적으로 궁술을 장려해서 강한 국민을 만들기 위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이에 고종 황제는 그의 제안대로 궁술 클럽 결성을 지원하였다.

전국 체전, 육사배 국궁대회, 전국대회는 아직 존재하지만 일부 국궁 매니아들만 즐기는 마이너한 스포츠가 되었다. 국궁신문의 일본 규도장 견학문 중에 저자의 모교에도 국궁장을 도입하자고 건의했다가 "양궁을 수련하면 실력에 따라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아시안 게임, 올림픽 게임에도 나갈 수 있으며, 성적이 좋으면 국가로부터 평생 연금도 받으며, 양궁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대우를 받는데 아무 전망도 없는 국궁을 수련하여 세월을 낭비할 학생들이 있겠는가?"라면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씁쓸한 얘기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46] 물론 우리나라 학교 중에 국궁을 가르치는 곳이 전무하지는 않지만[47], 마이너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현재 국궁인구는 국궁신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3만 5천여명 가량으로 전국적으로 월에 1~2회 정도의 대회가 개최되고 지역대회까지 감안하면 매주 경기가 열릴 정도로 상당히 열성적인 취미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같은 계열의 양궁과는 달리 일반인의 취미로서의 접근성 자체는 더 좋은 편이라 아무래도 이쪽이 취미영역으로는 더 발전하기도했다.

다만 상술했듯 일제시대의 민족분열과 각종 근현대사의 풍랑으로 인해 통일된 규격을 갖춘 국궁의 표본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며, 각 활터마다의 전통이 모두 다르다. 현재 각종 단체, 수련의 방향이나 노선의 차이로 심하면 키배가 벌어질 정도로 분열이 심한 상태다. 대표적인 것은 사법 논쟁과 대한궁도협회의 부패 문제. 마음수양이 된다는 활을 배우는 기반 잡힌 성인들이 많은 단체에서 키배 벌이는 게 의외로 무시무시하다

10. 배우는 단계

국궁을 배워보고 싶다면 각 지역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국궁활터를 찾아가면 된다. 서울, 수도권부터 지방까지 웬만한 구, 군 단위마다 의외겠지만 활터가 존재한다. 이렇듯 배울만한 곳은 꽤 있지만... 실제로 쏘는 데에는 상당한 숙련이 필요하다. 보통 145m 사로에서 쏘기에 장력이 몇 십 파운드는 되기 때문에[48] 의외로 힘과 기술을 많이 요하기 때문. 세상에 안 힘든 일 없다지만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입문했다가는 생각보다 만만찮은 활에 좌절할 수도 있다.[49] 일단 원사가 가능한 40-60파운드대 활을 당길 수 있게 되어도 안전사고를 내지 않을 만한 실력이 되어야 사대에 설 수 있게 허락해주는 경우도 있다. 서울 내 활터로 예를 들자면, 황학정은 도서관 및 학교와 붙어있기 때문에, 황학정에서는 사대에서 안전하게 습사 가능한지 검증하는 시험을 따로 본다. 석호정은 원사하다가 삐끗하면 화살이 숲 속으로 그대로 사라져버리며, 육사 국궁장은 알다시피 엄연히 군사시설(...)인 사관학교 내부에 있어서 잘못 쏘면 상당히 골치아파진다.

사실 활터의 진입장벽이 높기때문에, 나이가 어린 학생등은 쉽게 접근하기는커녕 아예 회원 자체로 받아주질 않는다.
이 또한 현재 궁터문화의 문제 중 하나로, 국궁의 존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쳐나가야 할 문제다..
  • 집궁
    처음 활을 잡는 것을 국궁 용어로 집궁이라 한다. 집궁례를 치르는 활터도 있지만 보통은 생략하는 듯. 집궁을 한 신사[50]는 우선적으로 활줄 매기와 풀기 등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과 궁도구계훈[51], 집궁제원칙[52] 등 국궁의 기본부터 배우고 시작한다.
  • 빈활 당기기
    본격적으로 초보자용 활(대략 20 ~ 30파운드)을 사용하여 빈활을 당기는 단계를 시작한다. 아마도 시위를 끝까지 당기지 못하고 팔이 떨리는 자신을 보며 옛 궁수들의 마음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18~20 파운드 정도 되는 활은 초등학생들이 대회에서 사용하는 수준의 강도밖에 되지 않는데, 자세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성인 남성이라도 끝까지 당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국궁이 팔만을 써서 당기는 것이 아닌, 하반신의 지지와 등근육, 뱃심 등 포괄적으로 힘이 들어가야 하는 운동이기에 그렇다. 여하간 이런 식으로 겨우 궁력(활을 당기는 힘)이 길러지면 단계적으로 더 강한 새로운 활(40 ~ 50파운드)을 써서 다시 이 단계를 밟는다. 그동안 쓰지 않던 근육을 계속해서 써야 하니 팔과 등이 쑤시고, 깍지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엄지손가락에 걸리는 장력이 장난이 아닌지라 상당히 고달프다. 게다가 살을 직접 내지도 않고 설령 시험삼아 몇 발 쏴본다 한들 아직 자세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신사들은 과녁 가까이 살을 보내는 것 조차 어렵기 때문에 상당히 지루한 과정이기도 하다. 젊은 신사들은 이 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두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궁력을 완성시켰다 판단될 때, 사범[53]님의 허가를 통해 주살을 내는 단계에 들어간다.
  • 주살내기와 첫 습사
    주살이란, 줄+살의 합성어로 줄을 매달아 회수하기 편하게 만든 화살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사대에 오르기 전에 주살을 내게 되는데, 최초로 살을 매겨 쏴봄으로서 사대에서의 두려움을 줄이고 완전히 당겨 활시위를 놓는 연습을 하는 일종의 트리거 훈련 방식이 되기도 한다. 한번 쏘고 나서 회수가 편리하기 때문에 진짜 화살을 쏘게 된 때에도 자세 연습을 위해 한번쯤 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주살연습을 어느 정도 끝내면 드디어 첫 사대에서 습사(習射)를 실시할 수 있다. 기본 자세를 숙지하고 성실하게 연습에 임했다면 빠르면 한 달 안에 과녁 근처로 화살을 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과녁을 정확히 조준하고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시 연습이 필요하며, 적어도 수 개월은 꾸준히 습사를 실시하여 자세를 완벽히 몸에 익혀야 비로소 원하는 방향으로 살을 보낼 수 있게 된다.
  • 자기수련
    이후 습사를 시작하여 평균 1순[54] 중 2발 정도 맞추게 되면 자신과의 싸움 단계가 된다. 국궁은 대련이고 뭐고 없는 철저히 1인 무예기에 좀 외로울 수도 있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마음을 다스리며 호흡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며, 결국에는 계속 쏴보면서 연습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사다성(多射多省)이라 했다.
    그래도 한계의 벽에 부딪혀[55] 나아갈 길이 없다면, 선배 접장[56]님들이나 사범님께 여쭈는 편이 좋다. 경험자의 말을 따른다는 점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은 남이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연습하여 1순을 전부 명중시키게 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드디어 몰기[57]를 한 것이다. 몰기한 신사는 접장이 되어 승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58]활 수련에 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10.1. 국내 사극에서의 잘못된 사법

국궁은 기본적으로 몽골리안 사법이기에 깍지를 엄지 손가락에 끼고 사용하며,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의 쌍분(雙分)을 통한 균형의 힘을 갖춘 활쏘기 방식이다. 하지만 서양식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를 이용해 활을 당기는 우리나라 사극이 아주 많았고, 지금도 종종 보인다. 더불어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쏠 때 사수의 몸통이 활을 따라 비스듬함을 이루면 잘못된 자세다.[59] 제대로 배운 국궁의 경우, 겨냥 시 상체가 조금 앞으로 쏠리되 사수의 몸통이 정면을 향하며, 활과 사수의 양어깨가 삼각형을 이루는 모양새가 된다. 아예 서는 법을 배울 때부터 단전이 정면을 보게끔 서라고 배울 것이다.
주몽이나 추노 등에서는 깍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60] 몽골리안 사법을 나름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은 보였다. 이후 방송된 천추태후에서는 각지와 검지 보호대까지도 완벽히 갖춘 궁시일습을 묘사했고,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사극에서 성균관 유생들이 깍지를 끼고 정조 앞에서 활을 쏘는 장면이 등장했다. 발여호미라는 전통 사법의 특징 묘사도 이 사극에서 등장한게 최초인 듯.

마침내 최종병기 활에서는 적병의 육량전을 노획해 쏘는 장면에서 숫깍지를 사용하는 장면마저도 등장하게 됐다.[61]

그후 사극에서는 대체로 깍지까진 재현 못해도 엄지손가락을 쓰는 정도로는 고증을 맞추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10.2. 국궁장비와 각종 가격 일체

  • 활 / 화살: 국궁을 하는데 빠져서는 안 된다.'' 카본 등 합성섬유로 만든 개량궁과 전통의 각궁이 있으며, 대한궁도협회 공인 4단 이상부터는 대회에서의 각궁 사용이 의무화되며, 대회에서 동일 점수가 나올 경우 각궁/죽시 사용자를 우대한다. 각궁 산업의 시망을 막고자 함이라나? 마찬가지로 화살 또한 카본 개량살과 대나무살(죽시)이 있다. 가격대는 각궁/죽시 쪽이 넘사벽으로 비싸다. 개량궁/살은 각각 25만원/1만원대지만 각궁/죽시는 대략 65만원/3만원대.''' 개량궁의 경우는 공장제지만 각궁 메이커는 개인제작인 경우가 많기에 가격대와 퀄리티가 아주 다양하다. 활을 한 장 사면 메이커마다 다르지만 보통 활가방, 활을 싸는 궁대[62], 줌통피, 추가 활시위 등이 죄다 따라온다.
  • 깍지: 역시 국궁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엄지손가락에 껴 엄지에 집중되는 활의 압력을 줄이고 손가락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가격대는 대략 3만원 가량. 손에 끼는 물건이기 때문에 전국대회장 같은 곳에서 파는 깍지를 직접 껴 보고 맞추어 사는 것이 좋다.[63] 깍지 수급이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에[64] 신사들이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의외로 있다. 깍지의 종류는 깍지 참조.
  • 과녁: 현대에는 거대한 과녁이 유명하다. 과거에는 나무 사이에 천을 걸거나, 가죽을 씌우고 동물 모양의 그림을 그려서 썼다고 한다. 연구기사 당연히 국궁장으로 가면 설치되어 있다. 습사용이라고는 해도 국궁은 장력에 비해서 탄력이 상당하므로 아무 데서나 과녁을 놓고 쏘려고 하면 안된다. 절대로.
  • 입회비: 국궁장에 입회할 때도 대한궁도협회에 등록비 겸해서 내는 입회비가 있고, 국궁장 사용료로 내는 월회비 등이 있다. 국궁장 자치로 운영되고 있기에 회비는 각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11. 현대 국궁의 논쟁거리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근현대사의 풍랑 속에서 버텨낸 것이 신기한 국궁계는 현재도 중구난방으로 각종 논쟁을 쏟아내는 상태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11.1. 대한궁도협회 관련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전국의 국궁장(사정)을 관리하는 국궁계 최고위 기관으로, 궁시 장비의 공인이나 국궁 대회 주최 등 거의 모든 실권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으킨 병크 중 유명한 것이 공인 궁시 변경궁시 가격 제한이다. 이외에도 많은 병크가 있어 기성 활터를 혐오하는 국궁인들이 따로 떨어져나오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 공인 궁시 문제
    갑작스러운 공인 궁시의 변경으로 엄청나게 국궁계가 시끄러웠었다. 공인장비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장비로, 원칙적으로 공인필이 없으면 대회 출전을 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공인장비의 규격을 갑작스럽게 국궁인의 대다수 장비와 안 맞는 듣보잡 메이커에 맡겼다는 것. 궁시는 자주 바꾸기 힘든 고가품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번 쓰면 평생을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처사는 전국 국궁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공인궁시제도는 2007년도에 처음 도입되었고 취지는 소수의 궁시 공급 업체들의 담합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을 막자는 데 있었으나 결과는 다수 국궁인들이 선호하는 장비를 활터에서 추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3명밖에 없는 각궁 무형문화재를 공인 신청에서 배제하기까지 하여 큰 논란을 빚었다. 관련기사 2009년부터 이러한 공인궁시 가격제한에 반대하는 업체들의 반대 시위 및 통보결정 무효 청구 소송이 시작되었다. 2017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진행중이던 ‘공인신청제한통보결정 무효확인 청구’에 관한 1심 판결(2017.05.26)에서 대한궁도협회가 패소, 기존 업체 중 하나인 ㅅ 궁시업체가 재판에서 승소했다. 관련기사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문제로 공인이 금지되어 오랫동안 생업이 어려웠던 궁시업체들이 합동으로 가격담합에 대한 사과문을 대한궁도협회 및 각 사정 사두들에게 배포하며 화해를 시도하였다. 이에 2017년 7월 이후 대한궁도협회에서는 상기 송사의 항소를 포기하고 10년간 허용하지 않았던 주류 궁시업체들의 공인 규제를 풀고 공인표식을 모두 공급하여 판매할 수 있게 하였다. 몇 년만에 보는 대한궁도협회의 대인배스런 행보였다.
  • 궁시가격 제한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앞장서서 국궁장비 가격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개량궁은 20만원, 각궁은 60만원으로 못박아둔 상태.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이러한 행태는 공산당과도 같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제도다. 가격이 올라도 좋은 활을 쓰고 싶다는 이들의 욕구도 충족을 시켜줘야 국궁계가 발전이 있는 것이 아닌가?[65]

11.2. 사법 논쟁

고대-근대의 사법을 현대에 복원시키려는 고전사법 사용자와 현대의 사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논쟁도 대표적인 토론거리다. 이 논쟁은 정사론[66]이라는 옛 무인이 쓴 책에도 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논쟁거리며, 지금도 국궁신문 홈페이지에 관련 기사가 자주 나온다. 국궁 연구 단체에서 애기살, 명적 등을 내거나, 보사, 배사 등의 무인들이 쓰던 사법을 재현하기도 한다. 요점은 현대의 국궁 사법과 고대-근대의 사법 중 어느 것이 정통이냐 하는 내용. 이는 수많은 논쟁을 낳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옛 사법이 멋이 난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인듯. 주몽 이후의 사극에선 대부분이 뒷손을 크게 떼는 옛 사법을 사용한다.[67]

11.3. 사풍 논쟁

대다수 국궁장에서 빚어지는 활터 문화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첫번째로 일본 무도의 영향으로 왜곡된 활터 문화로서, 궁도, 사범, 승단, 사법팔절 등 일본 무도에서 비롯된 용어와 체계에 대한 논쟁이 있고, 둘째로 1970년대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나 어느새 그 근본을 알 수 없이 생겨나서 각 궁도장에서 엄청난 권위를 갖는 것으로 강요되고 있는 정간례[68]와 같은 풍습이 있다.정간에 대한 연구1. 정간에 대한 연구2 셋째로는 세계민족궁 대회 등에서 드러난 문제로서 현재 궁도장에서 145미터 위주의 습사만을 강조함에 의해 생기는 활쏘기 기량의 문제가 있다.

11.3.1. 궁도라는 용어에 대한 논쟁

한민족의 활쏘기를 요즘은 국궁(國弓) 이라 부르기도 하고 궁도(弓道) 라 부르기도 하지만 두 용어 모두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는 사용되지 않던 용어이다. 1932년 조선궁술연구회가 조선궁도연구회로 바뀌기 전까지는 한반도에서 활쏘기는 오래전부터 우리말로 활쏘기라 불렸고 중국 북송시대 사서 계림유사에는 “고려인들은 궁(弓)을 활(活)이라 부른다” 또는 “쏘기(射)를 활소아(活素)라 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자어로는 궁술(弓術), 사예(射藝), 궁예(弓藝) 등의 용어가 쓰였다. 일본에서 자신들의 궁술을 궁도로 부르게 되면서 강점기의 조선에서도 군국주의 일본의 무도정신에 부합하기 위해 궁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 그 유래이다. 해방이 된 후에는 다시 우리말 활쏘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각종 대회를 주최한 기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58년 전국남녀활쏘기대회 궁도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쓰이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용어의 유래를 생각해보면 사실 국궁(國弓)이라는 용어도 일제시대 때 생겨난 국가주의라는 개념에 의해 생긴 국민 國民, 국어 國語, 국기 國技 등과 같은 맥락으로 생겨난 것으로, 엄격히 생각하면 우리 민족의 활쏘기를 지칭하는 용어로 원래 사용되지 않았고 일본의 영향으로 생겨났다는 데서 자유롭지 않다. 의미상으론 그 나라의 대표적 활 기법이라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일본의 국궁은 규도(弓道), 중국의 국궁은 궁술(弓術), 영국의 국궁은 Longbow Archery 등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양궁 교본을 그대로 번역한 국내 서적에서 일본의 궁도를 국궁이라 기술한 용어를 그대로 번역하여 일본 규도 사진 옆에 우리 국궁 사진이라 설명을 붙여서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관련기사 우리 활을 대표하는 용어로 어떠한 논쟁에서도 자유로운 명칭은 “활쏘기” 하나이다. 씨름 태껸과 함께 3가지의 끊기지 않고 전승된 무예가 모두 순수 우리말 명칭이 있는데 활쏘기만 유별나게 한자어를 만들어 붙이려고 애쓰고 있는 꼴이다.

대한궁도협회, 전국생활체육궁도연합회 등 국궁을 배우는 활터에 영향을 미치는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궁도라는 용어를 채택하였고 우리 활에 대한 명칭으로 궁도가 옳다는 인식을 광범위하게 주입시켰다. 그러나 궁도라는 용어가 갖는 모순점에 대해 지적하는 소수의 의견도 존재하여 왔고, 이 배경에는 일본의 국궁인 규도와 같은 한자어를 쓴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가장 크다. 1983년도에 당시 양궁과 전승 활쏘기를 모두 주관하고 있었던 대한궁도협회는 양궁 분야를 대한양궁협회로 분리시켰고 이때 잠시지만 대한국궁협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정에서 활을 쏘던 한량들이 궁도라는 용어를 선호하였던 관계로 1987년에 다시 궁도라는 용어로 회귀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련자료
전국의 국궁장에서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궁도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으며, 이는 대한궁도협회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한편으로 대한궁도협회와 미묘한 경쟁관계에 있던 생활체육궁도연합회 등도 궁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70년대 ~80년대에 이들 단체가 성립될 당시에는 궁도라는 용어가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도 오랫동안 활을 쏘아온 한량들 사이에서 궁도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한편 소수의 몇몇 단체들은 궁도라는 용어에 대해 부정적이며 국궁이나 궁술이 옳다고 주장한다.

11.3.2. 대한궁도협회의 입승단제도

대한궁도협회가 주최하는 궁도대회에는 입승단 대회가 있고 이 대회를 통해 궁도 수련자들에게 초단부터 구단을 부여한다. 많은 궁사들이 우리 활터에 스며든 왜색을 경계하면서도 이 단급제도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별로 하지 않는데, 사실로 얘기하면 운동에 초단, 2단, 3단 순으로 경지를 매기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일본의 풍습이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탁구에도 1단부터 9단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한량들이 오늘도 입승단을 위해 열심히 습사를 하고 있고 또 이미 취득한 단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것을 없애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태권도 합기도 그밖에 많은 한국 무술들이 승단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저들 무도 단체의 승단제도에 비하면 대한궁도협회의 승단제도가 오히려 공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승단제도야 말로 대한궁도협회가 전국 각지의 국궁장에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다른 국내의 무도에 비해 대한궁도의 단수는 꽤 인정을 받는 편이다. 145미터 거리에 떨어진 폭 2미터, 높이 2미터 66센티미터의 거대한 과녁을 맞추는 능력에 있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 대한궁도 8, 9단 되는 분들이다. 심지어 5단 이상 승단하고 입단한 지 5년 이상 경과된 사람에 대해서는 대한궁도협회에서 명궁이라는 칭호도 내려 준다. 첫 몰기를 하고 난 뒤 열심히 145미터 활을 쏘게 만드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이 입승단 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2018년 현재 대한궁도협회의 승단 규정은, 궁도협회에서 주최하는 승단대회에 참가하여 9순 45발을 쏘아서 그중 25발을 맞히면 초단을 받고, 다시 다음 번 승단대회에 응시해서 28발을 맞히면 2단, 계속 승단대회에 응시해서 3단 29발, 4단 30발, 5단부터는 오직 각궁과 죽시로만 쏘아서 31발, 6단 33발, 7단 35발, 8단 37발 9단 39발을 맞히면 해당 단을 취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무도처럼 일정 기간 해당 운동을 배우면 거의 무리없이 초단을 주고 또 시간 지나면 단이 올라가는 그런 제도가 아니다. 수십년을 활을 쏘아도 단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수년 만에 9단을 취득하는 사람도 있다. 즉, 무슨 수를 쓰건 145미터 과녁을 반복적으로 잘 쏘아 맞히는 능력을 승단 대회에서 증명하여야 승단할 수 있다.

145미터 과녁 맞추기라는 것에 관한 한 대한궁도협회의 승단 규정만큼 철두철미하고 공정한 제도가 없다. 궁도협회에서 무슨 높은 직책을 맡았다고 공짜로 단을 올려 주지 않는다. 지역의 무슨 시 무슨 도 궁도협회장이란 분들도 단이 불과 1단, 2단이거나 아예 단 자체가 없는 분도 허다하다.

이렇게 궁도 승단제도에는 긍정적 모습이 있어 많은 한량들이 좋아하는 데 비해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첫째로 145미터 거리에서 폭 2미터, 높이 2미터 66센티미터 과녁을 맞추는 것으로만 경지를 측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활 잘 쏘는 사람과 대한궁도를 잘 하는 사람은 일치하지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한궁도 8단, 9단 명궁들이라 해도 오직 장거리 대형 과녁 맞추기에만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밖의 어떤 활쏘기도 할 줄 모른다. 20미터 앞에 있는 축구공을 맞추지 못한다. 현재의 궁도장에서 소위 궁도라는 것을 열심히 연마하신 궁사들은 그 상태로 다른 나라 궁사들과 실용적인 거리에서 사냥이나 전투를 가상한 목표를 향해 발시하면 화살이 전부 과녁 위로 넘어가 버리고 하나도 못 맞춘다. 표 내리면 된다고 호기롭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실제로 근거리로 쏘아 보라고 하면 목표물 근처에도 못 보낸다. 힘쓰는 방법, 미는 방법이 화살을 높이 띄우는 데 길들어져 있어서 줌손을 바닥에 처박고 쏴야 화살이 지면과 수평하게 날아갈까 말까다. 이렇게 쏘니 명중은 기대하기 어렵다. 근거리 활쏘기는 그 자체를 따로 연습을 해야지 145미터 열심히 쏘면 저절로 잘 쏘게 되는 게 아니다.

둘째, 문제점은 어쨌거나 145미터 과녁은 잘 맞춘다 치더라도 궁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활에 관련된 문화, 역사적 지식이나 우리 활에 담긴 철학에 대한 어떠한 탐구도 승단에 있어서는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인터넷 상에 떠 있는 오만 글들, 역사적 사실 하나도 모르고 안중에 없더라도 단수는 올라간다. 비교하자면 여타 무도단체에서는 실기적 측면에서는 좀 불투명한 승단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4단, 5단 등 고단자가 되려면 해당 무도에 대한 지식이나 소양에 대해 논문을 쓰라고 한다던지 선배 고단자와의 면접과 추천장 등을 통해 그 무예에 대한 이론적 소양도 검증을 하는 게 보통인데 대한궁도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간단히 말해 무식해도 145미터 육육팔팔 과녁 잘맞추면 명궁이다.

셋째, 문제점은 145미터를 잘 맞추면 되다보니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잘 맞추면 되어서 전승된 어떤 사법을 잘 배워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족보도 유래도 없는 기상 천외한 자세로 화살을 날리는 명궁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사법의 문제가 이것이다. 명궁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남다른 노력도 있지만 남다른 신체 조건도 갖춘 특별한 사람이다. 즉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보다 그 사람자체가 타고난 특별한 우월한 특성도 최대한 이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자신만의 사법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시수를 내는 것이다. 최근 공통적으로 대한궁도 명궁들에게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한 활을 가지고 가벼운 화살을 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수를 내고 명궁이 된 분들의 사법은 그분들처럼 특별한 신체조건을 안 갖춘 사람들은 따라 할 수가 없다. 노인들이나 여성, 어린이들에게 60파운드 활로 두자 일곱 치 화살을 당겨서 촉보기를 하라고 하면 따라할 수가 없다.(하지만 요즘 60파운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수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파운드는 50파운드 언저리이다.) 어느샌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활쏘기 방법이 활터의 유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활쏘기가 은퇴한 노인들이나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들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궁 경시 위주의 사법이 판을 치는 활터에서는 근력 떨어지는 노인과 여성들은 시수가 잘 나지 않아 신사들에게 무시당하기 쉽고 유소년들의 조기교육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무관 집안 자제분들도 그랬을까?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대한 궁도 고단자들은 본인들은 145미터 활쏘기에 통달한 특별한 사람들이지만 일반인들을 상대로 활쏘기를 지도하는 지도자로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평범한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사법을 배우지도, 연습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가르칠 수도 없다. 그런데 몇 단이니 하는 경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후배들에게 그 경지로 올라오게 가르칠 수 없다면.

그렇지만 소위 5단 이상 명궁으로 가기 위해서는 개량궁이 아닌 각궁과 죽시만 사용이 가능하며 각궁은 워낙 다루기가 까다로워 자연스럽게 활과 관련된 지식은 늘어나게 된다. 명궁들 중에는 스스로 각궁을 자가수리 할 수 있는 분들도 많으며 궁시이론에 대해서는 본인만의 뚜렷한 이론체계가 잡혀있다. 애초에 이것이 안되어있으면, 아무리 타고난 사람이라고 해도 각궁과 죽시로 45발 중 30발 이상 명중시키기가 힘들다.

그리고 요즘 활터에서 다시금 연궁중시(연한 활과 무거운 화살)가 유행 중이다. 실제로 60 파운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보통 강궁을 쓴다 하면 50-55파운드대를 많이 쓰며 가장 많이 보이는 파운드대는 45-50파운드 사이이다. (중고 매물 거래도 이 파운드 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인다.)

12. 국궁을 이용하는 대회

국궁만을 사용하는 대회로는 전국체육대회의 궁도 종목, 육사배 국궁대회, 전국대회 등이 있다. 다른 대회는 추가바람.

대한궁도협회 주도로 세계민족궁협회(World Traditional Archery Federation·WTAF)이란 단체가 설립됐는데, WTAF는 2005년부터 세계민족궁대축전(World Traditional Archery Festival)이라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1회 축전에서는 국궁을 포함해 각국의 전통 활을 시연하는 정도였지만 2회 이후로는 각국 선수들이 자국의 전통 활과 전통 복장을 가지고 대결을 펼치는 대회가 되었다고 한다. 외국 선수가 한국 국궁을 가지고 와서 경기를 치른다든가, 경기가 끝난 뒤 한국 국궁을 사서 귀국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상기 문단에서 세계민족궁대축전을 주최하는데 대한궁도협회가 주도하였다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 당시 민족궁 대회는 대한궁도협회가 아니라 생활체육궁도연합회에서 추진하여 성사되었으며 대한궁도협회는 이 대회에 대해 매우 적대적 입장을 고수하여 왔고 대한궁도협회 회원의 대회참석을 금지하는 공문을 각 사정에 내려 보냈으며 이를 무시하고 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된 한량들의 대한궁도협회 회원 자격을 박탈하고 대궁 주최 대회에 참석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하기까지 하였다. 1회 대회는 충남 천안 천안정에서 기존의 궁도장 시설에서 개최되었으나 이후 대회에서는 대한궁도협회의 영향을 받는 기존 활터 사두들이 시설 사용을 불허하여 종합운동장 등에서 대회를 주최하여 오고 있으며 민족궁 대축전에 참여하는 궁사들도 기존 사정이 아닌 학교 운동장 등에서 습사를 하여 참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한궁도협회는 민족궁대축전에 대해 초기부터 부정적 입장이었으나 2016년 대한궁도협회와 생활체육궁도연합회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체육단체 합리화 지시에 의해 통합됨으로서 형식상 민족궁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후 명확한 입장 표명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없는 상태. 세계민족궁대축전 행사는 2015년 청주에서 마지막으로 개최된 이후 중단되었으며 2019년 현재 부활할 징조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사(騎射, 말 타고 활 쏘기)를 전문으로 하는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69]라는 단체에서는 세계기사연맹(World Horseback Archery Federation, WHAF)라는 국제 단체를 설립했는데, 이 WHAF는 2004년부터 세계기사선수권대회(World Horseback Archery Championship)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각국에서 활동하는 기사 수련자들이 대거 참가한다고. 이 대회 역시 선수들이 한국 국궁(단 크기가 작은 동개활 사용) 등 자국의 전통 활을 가져 와서 쓴다.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파일:대한민국 국장.png 대한민국 관련 문서
{{{#!wiki style="margin:-1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folding [ 역사 ]
일반 한국사 관련 정보 · 한국 역대 국가명 · 한반도의 지도자 목록 · 깃발 · 틀:한국의 역사 · 대한민국의 역사
기타 통일 한국 · 간도 · 간도회복 ·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 · 한국의 역사왜곡 · 환국 · 환단고기
}}}}}}
[ 지리 ]
||<#0047A0><tablewidth=100%><table bgcolor=white,black><width=15%> 일반 ||<width=1000px>한국의 지명 ||
지리적 구분 한반도 · 경기 · 호서 · 호남 · 영남 · 관동 (영서 · 영동) · 해서 · 관북 · 관서 · 제주 · 남한 · 북한
주요 섬 및 암초 서해 5도 · 독도 · 울릉도 · 격렬비열도 · 이어도 · 가거초
행정구역 지방자치단체 · 광역자치단체 (특별시 · 광역시 · · 특별자치시 · 특별자치도) · 기초자치단체 (인구 순위 · 인구 밀도 순위 · 면적 순위) · 행정구역 개편
옛 행정구역 9주 5소경 · 10도 · 5도 양계 · 팔도 · 23부제
자연지리 산/고개 · · 강/하천 · 내륙 지역 · 동해 · 서해 · 남해 · 동중국해 · 100대 명산
도시권 · 생활권 수도권 · 부산·울산권 · 대구권 · 광주권 · 대전권 · 부울경 · 대경권
교통 한국의 교통 · 대한민국의 공항 목록 · 한국의 철도 환경 · 고속도로
생물 생물자원 · 포유류 · 파충류 · 담수어류 · 양서류 · 견종
과학기지 세종 과학기지 · 장보고 과학기지 · 다산 과학기지 · 옹진소청초 해양과학기지
[ 군사 ]
||<#0047A0><tablewidth=100%><table bgcolor=white,black><width=15%> 일반 ||<width=1000px>대한민국 국군 · 국방부 · 육군 · 해군 · 공군 · 해병대 · 주한미군 · 핵무장 ||
병역 병역의무
[ 정치 ]
||<#0047A0><tablewidth=100%><table bgcolor=white,black><width=15%> 일반 ||<width=1000px>한국의 정치 · 대한민국 훈장 · 법정 공휴일 ||
국가상징 국명 · 국기 · 국가 · 국화 · 국장 · 홍익인간 · 국새
정당 정당 · 민주당계 정당 · 보수정당 · 진보정당 · 극우정당 · 종교정당
정부조직 정부조직 · 행정부 (대통령 · 국무총리 · 국가행정조직) · 입법부 (국회의원 · 국회의장) · 사법부 (대법원 · 대법원장) · 헌법재판소
제도 헌법 · 10차 개헌 · 국민의 4대 의무
선거 대통령 선거 · 국회의원 선거 · 지방선거
외교 한국의 외교 · 남북통일 · 남북한관계 · 대통령 해외순방 일지 · OECD · G20 · MIKTA · 국제정세/동아시아 · 이웃나라/한반도 주변 4대 강국 · 혐한 · 반한 · 친한
[ 경제 ]
||<#0047A0><tablewidth=100%><table bgcolor=white,black><width=15%> 일반 ||<width=1000px>한국의 경제 · 소득 · 자원 · 예산 ||
산업 한국의 산업 · 농축산업 · 수산업 · IT · 과학기술력 · 대한민국 세계 1위 · 메이드 인 코리아
기업 한국의 기업 · 재벌 · 대기업 · 준대기업 · 중견기업 · 중소기업
무역 무역
지표 GDP · 경제성장률 · 환율 · 물가 · 물가지수 · 소비자 물가상승률 · 부채 · 가계부채
경제난 부정적 전망 · 실업 · 청년실업 · N포 세대 · 88만원 세대 · 수저계급론 · 86세대 책임론
기타 비자 · 여권 · 애국 마케팅
[ 사회 ]
||<#0047A0><tablewidth=100%><table bgcolor=white,black><width=15%> 일반 ||<width=1000px>사회 · 인구 · 세대 · 한국인의 이민 · 다문화주의 · 검은 머리 외국인 · 재한 외국인 · TCK · 출산율 · 생애미혼율 · 혼인율 · 사망률 · 자살률 ||
교육 틀:교육 관련 문서 · 한국의 교육 · 교육열 · 입시 위주 교육
민족 한국인 · 한민족 · 재외동포 · 중국계 한국인 · 일본계 한국인 · 한국계 중국인 · 한국계 일본인 · 한국계 미국인 · 화교
종교 한국의 종교 · 개신교 · 불교 · 천주교 · 원불교 · 유교 · 천도교 · 증산도 · 대순진리회 · 대종교 ·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사건 · 사고 사건 및 사고 관련 정보 · 범죄 통계
사회 문제 · 갈등 사회/문제점 · 헬조선 · 국뽕 · 니트족 · 열정페이 · 저출산 현황 · 고령화 · 인종차별 · 난민 수용 논란 · 외국인 노동자 문제 · 지역감정 · 젠더분쟁 · 성소수자 · 자국혐오 · 인터넷 검열 · 권위주의/병폐
[ 문화 ]
||<#0047A0><tablewidth=100%><table bgcolor=white,black><width=15%> 일반 ||<width=1000px>한국의 문화 · 한국의 관광 · 한류 · 문화 규제와 탄압 · 콘텐츠 · 한국의 성씨 · 한국의 성씨별 인구 분포 · 한국의 지역별 성씨 순위 · 대한민국 표준시 · 세는나이 · 예절 · 사회생활 · 문화재 · 한국 신화 · 요괴 · 무당 ||
언어 · 문자 한국어 · 한국어의 높임법 · 한글 · 한글만능론 · 한자 · 한국의 한자 사용
건축 한국 건축 · 한옥 · 온돌 · 홍살문 · 한옥/장단점 · 마천루
의복 · 무기 한복 · 백의민족 · 한국 갑옷 · 한국의 무기 · 한선
음식 한국 요리 · 한정식 · 전통주 · 한민족의 식사량
스포츠 한국의 스포츠 · 태권도 · 씨름 · 택견 · 국궁 · 족구
문예 · 출판 문예 관련 정보 · 베스트셀러 · 웹소설 · 한국 판타지 소설
미술 · 만화 한국 현대미술 · 한국화 · 고화/목록 · 한국 만화 · 웹툰 · 한국 애니메이션
게임 한국 게임 · 온라인 게임 · MMORPG · 게임계의 문제 · 게임규제
음악 한국 음악 · K-POP · 한국 아이돌 · 국악 · 판소리 · 사물놀이 ·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영화 · 연극 한국 영화 · 천만 관객 돌파 영화 · 뮤지컬
방송 한국 드라마 · 한국의 방송 · 예능 프로그램 · 웹드라마 · 웹예능 · 인터넷 방송
기타 한국형 · 한국적 · 고요한 아침의 나라 · 변질된 유교적 전통 · 한국기원설
}}}||



[1] 초반부에는 국궁 제작과정이 나오다가 2:54부터는 한 남성이 왜구와 맞서 싸웠다는 고려사의 기록을 연출한 영상이 나온다.[2] 출처는 대한궁술원[3] 9세기 당나라 왕거의 사법서 '사경'에서 별절이라고 언급한다. 별절사법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생소한 궁체인 만큼 '이러한 사법이 존재했다.'고 보여주기 위해 대표로 게시한 정도라, 반드시 이 사법만이 한민족의 전통사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길 바란다.[4] 현대의 활터에서는 대개 전통에서 조금 벗어난 양궁 사법에서 변형된 사법이 주를 이룬다라고 보통 주장하는데 이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 1900년대 초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현재 흔히 보이는 사법으로 쏘는 궁사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체성이 전통무술단체가 아니라 체육단체인 '대한궁도협회'가 전국의 활터를 통솔하기 때문이다.[5] 재미있는 건 명나라 말기 '고영'이 편찬한 사법서 무경사학정종에서는 상기한 왕거의 '별절' 동작을 금하라고 기술했다는 점. 사법논쟁 자체가 매우 역사가 오래되었고, 궁술도 무술인 만큼 여러모로 가지각색 유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당연하다.[6] 시위를 거는 끝부분[7] 사실 고증은 둘째 치고 군용 활이 따로 있음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국궁이라고 하면 그냥 다 똑같은 줄 안다.[8] 육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중인 고종황제의 호미명 각궁[9] 주몽은 이름부터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구려 건국 때 비류국 송양과 활쏘기 시합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10] 정사에서 공성전 70연속 편전 헤드샷 기록을 달성한 공인 괴물이다.[11] 정조가 활을 쏜 기록에서 보면 50발 중 41발, 45발, 46발, 47발 등 기록이 계속 늘어나다가 이후 49발이 10번 정도 나오는데, 일부러 50발을 다 맞추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는 신하들 기 죽을까봐 그랬다는 말도 있고, 자만심을 막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성에서 활쏘기를 하는데, 부친에 대한 예로 50시 중 한 발을 일부러 안 맞췄다는 이야기도 있다.[12] 六藝, 예(禮 : 예의), 악(樂 : 음악), 사(射 : 활쏘기), 어(御 : 말타기), 서(書 : 글쓰기), 수(數 : 수학(양. Mathematics가 아니다))[13] 정확히는 1614년 광해군 시절에 편찬된 지봉유설에 일본인들이 ' 중국은 창술, 조선은 편전, 우리는 조총이 천하제일이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와전되어 올라온 내용이다. 실제로 조선 편전의 위력에 대한 기록은 동북아를 통틀어 발견된다.[14] 합성궁과 복합궁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복합궁은 다른 종류의 나무들을 합쳐서 만든 활, 합성궁은 목재 외의 다른 재료를 추가로 사용한 활을 의미한다.[15] 동북아역사재단 저,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참고.[16] 예(禮: 예의), 악(樂: 음악), 사(射: 활쏘기), 어(御: 말타기), 서(書: 글쓰기), 수(數: 수학)[17]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말단 무관들이 술내기를 하다가 수백발을 겨뤘다는 기록도 있다. 10발을 쏴서 더 잘 맞춘 이가 승리하는 내기로 시작했으나, 양쪽 모두 계속 적중하는 바람에 승부를 낼 수가 없으니, 그때마다 술 한 잔 더하고 다시 10발을 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술 마시고 활을 쏘는 데도 양쪽이 모두 수백 발을 적중시켜서 승부가 안 나더라는 이야기(...).[18] 물론 용불용설도 아니고 그럴 리 없고(...) 한국 양궁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비인도적일 정도의 빡센 훈련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장궁으로 유명한 영국 양궁의 성적이 신통찮은 반면 활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미국 양궁이 한국 다음으로 성적이 좋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실제로 외국에서 한국 양궁을 따라해보려다가 훈련과정을 보고는 고개만 젓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외국으로 코치와 선수진이 수출되고 나서는 이전처럼 압도적인 양상도 줄어들었다고. 해외에서 돈을 더 주니깐 어쩔 수 없지.[19] 물론 당시 조선의 총화기 수준이 서양에 비해 뒤쳐진 상태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20] 이해가 안 된다면 나무위키 각궁의 2번 한국의 각궁으로 가보자. 조상님들이 별별수를 써서라도 대체용품을 만들려고 머리를 굴린 것이 느껴진다.[21] 영국 롱보우도 재료인 주목이 딸려서 총으로 전환했을 수준이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각궁의 숫자는 충분히 많았지만 도리어 그런 만큼 국가의 재정에 악영향을 끼쳤다.[22] Albert Wilhelm Heinrich, 1862 - 1929. 독일 빌헬름 2세의 동생이다.[23] 거의 모든 시대에서 국궁들은 장마기간을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다. 위화도 회군 당시에도 이성계가 장마철에는 아교가 풀어서 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4불가론 중 하나로 들었다. 이것은 비단 각궁뿐만 아니라, 목제 복합궁도 아교로 고정했기에 습기에는 취약했음을 드러낸다.[24] 겉에 옻칠을 여러 번 하여 내수성을 부여한 활.[25] 만주에서 한반도로 내려온 민족[26] 이런 식으로 섬유를 대어 강화한 강화궁은 이누이트족 활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의외로 흔하게 있다.[27] 목궁임에도 복원 결과 100파운드가 넘는 궁력이 나왔다. 동개활이란 동개에 화살과 같이 꽂는, 기병들이 쓰는 작은 활이다.[28] 고서에선 이를 '용약전진'이라고 한다.[29] 이름 그대로 무게가 6량이나 되는 매우 거대하고 두꺼운 화살이다. 현대 복원품을 보면 거의 몽둥이 수준이다.[30] 이로 인해 근래 들어 각궁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단체들의 움직임이 많다.[31] 고려시대의 복합식 장궁 유물도 만주나 몽골식에 가까운 형상이었다. 따라서, 한반도의 활은 고구려 시대부터 이어진 C자형 활에서 여러 나라의 양식을 연구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 연구될지는 미지수. 중국애들이 먼저 할 것 같다.[32] 사무라이 자체가 원래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싸우는 기마무사였다.[33] 에도시대에 등장한, 일본의 활 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형태다.[34] 전국시대의 상급 무사들이 자주 사용했던 활이다.[35] 다만 유의할 것은, 댓글에서 인용된 색스턴 호프 교수의 책(HUNTING with the BOW & ARROW)에서 비교되는 활들은 제대로 된 국가보단 아프리카나 알래스카, 아메리카 등지의 원주민들의 전통 활을 다루고 있다.[36] 기마 사격에는 비거리가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발달한 특색이다. 궁기병들은 속력을 이용하여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목표물을 정확히 쏘고 지나치는 공격 이탈 능력, 무거운 화살을 이용하여 일격으로도 확실히 살상력이 보장되는 '빠른 단발 사격'이 가능한 활을 선호했다. 한반도에서도 기마병을 많이 편성했던 시대에는 투박한 만주 활을 닮은 국궁이 사용되었다.[37] 본문 하단[38] 사실 동북아 내에서 단일 재료로 만든 활이 더 보기 힘들다.[39] 널리 퍼진 오해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서 존속시켜둔 항목. 실제 국궁 전문가들에 의하면, 실전용 활은 조금만 당겨도 충분한 위력을 낼 수 있도록 강력하게 조정해놓는 게 기본이었다. 국궁 역시 실전에서는 조금만 당겨도 살상력을 발휘하도록 궁력을 강화했으므로, 기마 상태에서 즉발 사격이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40] 특히, 국궁을 단련한 사람은 Target을 정조준하는 속도를 단축하기가 매우 쉽다. 활을 쥐고 끝까지 당기기만 하면, 전방 타깃이 바로 정조준되기에 겨냥이 매우 쉬운 디자인이다. 또한, 동북아시아식 깍지 덕분에 재조준과 연사도 빠르다.[41] 각각 브로드헤드, 보드킨에 해당됨[42] 애초에 판금갑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로, 그 정도 되면 사실 화살은 둘째치고 총알도 부분적으로 방호가 가능한 수준이다. 아래의 판금갑 관통 실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어지간한 갑옷을 갖춘 상대로 화살은 교란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43] 예로 동래성 해자에서 발견된 조선군 찰갑은 0.6 mm 두께 순철 재질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갑옷들이 화살과 냉병기에 쉽게 제압당할 수준의 갑옷들은 아니다. 애당초에 금속제 갑옷을 투사체로 제압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다.[44] 사실 풀 플레이트 아머가 아니어도 어지간한 철제 갑주는 동서양을 통틀어서 활로 제압하기가 매우 어렵다.[45] 프리드리히 3세의 차남이자 빌헬름 2세의 동생. 칭다오 조계지 키아우초우에 주둔하던 독일 제국 해군 아시아함대의 사령관이기도 했다. 후에 제국 해군 원수 지위에 오른다.[46] 근데 사실 양궁 문서에 나오듯이 양궁의 대접도 좋지만은 않다. 그나마 성공하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47] 대표적으로 민족사관고등학교. 이곳 외에도 클럽활동으로 하는 곳이 극소수 존재한다.[48] 숙련된 사람들은 40파운드대, 심지어는 38파운드 활로 원사를 할 때도 있다. 이쯤되면 건장한 사람은 깍지 없이 당길수도 있지만 이걸로 원사를 해서 맞추는 건 그야말로 테크닉의 정수라 할 수 있다.[49] 물론 활터에 찾아가 처음 찾아왔다고 하면 요식으로 30여 분 간단히 쏘는 법을 가르쳐 준 뒤, 실제 화살을 걸고 쏠 수 있게 해주는 곳도 더러 있다. 이 경우에는 양궁 과녁이나 스티로폼을 덧댄 훈련용 과녁이 있는 발시 및 근사 훈련장을 따로 만들어서 해결한다. 그러나 처음을 잘못 배울 경우, 자세가 잘못되어 손목 안쪽이 피멍투성이가 되는 등 금세 흥미를 잃을 수 있으므로 도전해보고 싶다면 인내를 갖고 배워보도록 하자.[50] 新射. 지역 국궁장에 입회한 신입회원을 의미한다.[51] 4자성어로 이루어진 9가지 원칙이다. 습사시엔 입을 열지 말것, 남의 활을 당기지 말 것 등 예절 위주의 내용이다.[52] 유명한 문구이며 최종병기 활에도 등장한 전추태산 발여호미라는 말이 여기 들어있다. 활을 잡았다면 어떻게 해야 바른 자세로 과녁을 맞출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다.[53] 보통 5단 명궁으로 구성되는 국궁장에서 유일하게 신사를 가르칠 수 있는 지위를 가지는 직책. 사두(射頭) 라고 부르는 국궁장도 있다.[54] 국궁에서의 1세트는 순(巡)으로, 5발을 1순으로 한다..[55] 이쪽 용어로 "활병"이 난다고 한다. 보통 자의식 과잉이나 자세 불량 등으로 인한 한계점이 생기는 경우가 잦다.[56] 동학당의 포접제에서 온 말로, 첫 몰기를 한 궁사에게 주는 명예 호칭. 처음 뵙는 국궁인들끼리 예의상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57] 무과 시험에서 1순을 모두 명중시킨 것에서 온 말로, 1순 5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킨 것을 의미[58] 승단을 하는 데 별다른 제한은 사실상 없지만 이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승단에 용이하다.[59] 양궁에서 보는 예의 그 자세.[60] 주몽에서는 수깍지가 등장한다. 11화에서 해모수가 주몽에게 활, 화살, 깍지를 주는 모습이 나오며 그 이후에도 맨손으로 당기거나 깍지를 껴서 당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61] 제작 단계부터 대한궁술원의 자문을 받았고 감독부터 주조연배우들이 최소 1회 이상 궁술원 주최의 습사에 참여한 바 있다. 심지어 문채원까지도.[62] 활을 싸서 보관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작은 주머니가 달려 있어 깍지 등 필요물품을 보관할 수도 있다. 활을 쏠 땐 허리에 매어 화살 1순을 고정시키는 역할도 한다.[63] 손가락은 인체 말단 부위기 때문에 아침의 굵기와 저녁의 굵기가 약간 다르다.(심하면 플라스틱 깍지 1호 정도.) 또 뿔 깍지는 날씨에 따라 사이즈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크기를 약간 달리해서 여러 개 갖춰두는 것이 좋다.[64] 손가락에 맞춰봐야 되는데 대회 때가 아니면 살 수도 없고, 대회는 맨날 하는 것도 아니므로.[65] 다만 2011년 충주무술축제에 전시된 송무궁의 각궁은 120만원이었고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비공인 궁방의 각궁으로 비공인 궁방은 궁도협회의 가격에 매이지 않는 것으로 대회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공인 궁방의 각궁은 여전히 55만원으로 동결되어 있다. 그러니 대회따위 관심없다면 비공인 궁방에서 본인에게 맞는 제작을 웃돈을 주고서라도 제작하는 것이고 대회에 관심이 있다면 공인궁방으로 가서 맞춰야 할 것이다.[66] 내용은 대략 선비들이 활을 쏴 무인의 전투활쏘기가 실전되고 있다는 데 개탄하는 내용[67] 사실 뒷손을 크게 떼는것만이 전통 사법이라고 할수 없기에 조심해야 한다. 문서 초반부에 상기한대로 사법논쟁 자체가 의미가 없다.[68] 소위 한국의 궁도장이라고 하는 곳을 가게 되면 넓은 벌판에 활 과녁이 있고 과녁 반대편에 건물을 지어 놓았는데 이 건물을 들어가 과녁을 반대로 등지고 건물의 중간을 바라보면 나무판에 바를 정자 사이 간 正間을 새겨놓은 것이 벽에 매달려 있다. 많은 한국 궁도장에서 활터에 등정하는 궁사들이 오자마자 먼저 이 목판 앞에 가서 고개 숙여 절을 하도록 교육받는다.[69] 이 단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무예도보통지 문서 내 '현대의 무예도보통지' 단락을 참고할 것. 서술이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