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 손가락을 서로 엇갈리게 바짝 맞추어 잡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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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로 손깍지가 있다. 커플의 경우에는 가벼운 초기 스킨십으로서 손깍지를 끼고 걷기도 한다. 매체에서는 남녀가 서로의 손을 깍지 낀 모습을 보일 때 성관계를 은유하여 H신을 대신하는 장면으로 쓰이기도 한다. 특히 누운 상태에서 얽히는 모습을 보이면 100%.
반대로 전투씬에서 서로 정면에서 달려 들다가 손을 깍지 끼고 마주 본 상태에서 두 팔에 힘을 주면서 치열힌게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럽게 두 상대가 한 장면에 들어오기 때문에 적대 관계, 혹은 라이벌 관계를 강조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투씬에서 육탄전을 벌일 때 양손을 깍지 낀 채 상대를 내리치는 장면 등이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공격한다면 깍지 낀 손가락 뼈가 부러질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공격을 하려면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다른 손으로 감싸 쥐어야 한다.
이카리 겐도의 깍지 낀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는 자세도 여러 매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케이스. 작화 예산 절감의 꼼수가 캐릭터에 잘 어울려 의외의 시너지를 낳은 케이스 중 하나다.
과테말라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일부 문화권에서는 깍지를 끼는 것이 죽음을 뜻하는 제스처로 쓰인다. 그래서 어린이가 손을 맞잡는 것만 보아도 기겁을 하면서 손을 떼어 놓는다.[1]
잡기에 따라서 어느 손이 앞으로 나오는지가 달라진다.
2. 한국, 몽골, 중국 등 동양의 궁술에서 사용하는 도구
角指 / Thumb ring
활을 쏠 때에 시위를 잡아당기기 위하여[2] 엄지손가락의 아랫마디에 끼는 뿔, 금속, 나무 등(현대에는 플라스틱으로도)으로 만든 기구. 대롱을 엇비스듬하게 자른 모양으로 만든다. 각지(角指)라고 한자 음차하여 쓰기도 하지만 순우리말이다.
깍지는 한국, 몽골 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사용했다. 중국에는 엄지 뿐만 아니라 식지에 걸어 사용하는 깍지 역시 있었고 고대 은나라 시대 깍지 등 다양한 유물이 내려오고 있다. 쾌(夬)라는 한자가 엄지손가락에 깍지를 끼운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이다.
한국의 깍지 종류는 다음과 같다.
2.1. 암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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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암깍지 형태. 턱이 없는 매끈한 반지형태이며, 넓은 부분으로 엄지 지문부분을 감싼다. |
반지의 형상을 한 깍지로, 기마궁술 등 활 말고도 다른 병기를 쓸 때에 걸림이 없고 손가락에 시위가 닿는 느낌이 확실해 정밀한 조절이 편하면서 화살을 시위에 빠르게 걸고 사격할 수 있음은 장점이지만, 강궁을 쏘기에는 어려움이 단점이다.[3]
조선시대엔 무혈깍지라고 불렸다.
2.2. 숫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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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둘쨋마디까지 넣고 가죽끈을 이용해 빠지지 않게 고정하는 방식이다. 돌출된 부분이 엄지를 대신하게 된다.
강궁을 쏘기 위해 만든 깍지. 반지 형태인 암깍지와는 달리 크게 돌출된 부분을 엄지 대용으로 사용한다. 엄지가 검지와 시위 사이에서 압박당하지 않기 때문에 강궁을 쏘기 적합하나[4] 빠른 사격이나 정밀한 사격이 힘들고 여타 다른 병장기를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상 전세계에서 한국만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는데, 사용법만 놓고 보면 그나마 만주 반지와 가장 흡사하지만[5] 만주 반지와는 달리 검지를 엄지가 아닌 깍지혀에 괸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기마궁술용으로 부적합하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이 필요한 정보로 보인다. 기병이 대부분이었던 동래읍성[6]에서도 숫깍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것이 소수의 보병이 쓰던 유물일 가능성도 있으나 어쨌든 확실히 맞다고 결론내긴 어려운 상황.
숫깍지가 기마궁술용이 아니었다고 보는 측은 숫깍지 턱 때문에 고삐를 빠르게 잡고 놓기 불편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7], 이에 반박하는 측은 고삐를 놓기 불편하단 것은 오히려 말 탈 때 큰 메리트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8]
또한 조선 후기엔 창이나 월도 등 양손으로 휘둘러야 되는 병장기의 비중이 늘어서 진짜 숫깍지가 불편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 전기엔 환도, 도끼, 철퇴 등 한 손으로도 충분히 휘두를 수 있는 근접병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활은 활집에 꽂고) 깍지 낀 손으로 고삐를 쥔 채 반대편 손으로 무기를 휘둘렀다면 큰 불편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9]
일단 효종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패배한 이유 중 근접병기의 스펙 차이도 있다고 보고 병장기를 적극 도입하기 위해 양손이 다 비교적 자유로운 암깍지를 도입하고자 의욕적으로 시도했지만, 무려 무관[10]들의 격렬한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선전관 삭시(朔試) 사급시험(射及都試)에선 다 함께 암깍지(無舌角指)를 썼던 고로, 이번 전시(殿試)에서도 암깍지를 써서 치룰 것을 거자들에게 분부했다. 그러자 거자들이 겸허히 아뢰길, "본디 숫깍지(有舌角指)로 습사했으며 암깍지를 이용하라는 지령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뜻밖의 일로 형(形)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장수들은 제성대곡하였습니다. 이런데도 암깍지를 사용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히 아뢰옵나이다." 임금이 말하길,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도다. 지금 치뤄지는 시험에선 숫깍지를 씀이 옳다."고 말했다.
승정원일기 효종 7년 8월 24일 기해 4/15 기사 1656년 順治(淸/世祖) 13년
승정원일기 효종 7년 8월 24일 기해 4/15 기사 1656년 順治(淸/世祖) 13년
그래도 결국은 깍지 개혁이 성공하긴 한 것인지 구한말 기준으론 무과에서 숫깍지 사용 금지였다는 증언이 있다.
병장기를 따로 쓸 일이 없는 현대에는 숫깍지를 쓰는 궁사들도 암깍지 다음으로 많이 보인다.
해외에선 Korean thumb ring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2.3. 턱깍지(덕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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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턱깍지의 모습. 턱이 있어 활시위가 걸릴 수 있게 했다. |
암깍지에 턱이 달린 깍지이다. 턱이 달렸기에 활시위가 이탈하지 않고 힘을 안배하기 편하다는 숫깍지의 장점을 일부 포용했지만, 역시 암깍지와 같은 단점이 있다. 현대 국궁인들이 많이 사용한다.
2.4. 가죽 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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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죽으로 만들었다 보니 활시위를 당길 때의 통증을 줄이는 정도는 여기서 설명한 4가지 깍지 중 가장 낮지만, 활을 쏘다가 깍지가 돌아갈 일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깍지들은 기마궁술을 하다가 깍지가 돌아가기 쉬운 데다가 돌아간 상태에서는 활을 쏠 수 없다. 그래서 손이 아파도 깍지를 다시 돌릴 필요가 없는 도구가 필요했으므로 헐겁지가 나왔다.
3. 콩 따위의 꼬투리에서 알맹이를 까낸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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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콩깍지#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콩깍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김나희의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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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깍지(김나희)#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깍지(김나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 출처: <웃기는 리더가 성공한다>, 김진배[2] 활 시위를 직접 당겨본 사람은 알겠지만 만약에 맨손으로 당긴다면, 자칫하면 손가락 나간다.[3] 연려실기술에 보면 효종이 만주족들이 쓰는 암깍지를 보고 와서 군사들에게 숫깍지 대신 암깍지를 쓰게 하고 활을 쏘지 않을 때도 손가락에서 풀지 말게 하였는데, 숙종 6년에 유혁연이 김석주와 함께 나서서 숫깍지를 쓸 것을 요청하면서 한 보고가 갑옷을 두 벌 겹쳐놓고 활을 쏘게 했더니 암깍지를 썼을 때는 활이 관통하지 못했는데 숫깍지를 썼더니 관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4] 조선 숙종대 기록에서 숫깍지를 이용하면 궁력이 증대된다는 연구 결과를 기술했다. 깍지의 차이만으로 갑주에 피해를 입히느냐 못 입히느냐를 결정하는 나름대로 중대한 문제였다.[5] 엄지 두 번째 마디에 끼운 채 엄지를 굽혀 눌러서 고정한다는 점이나, 힘이 엄지 쪽을 직접적으로 향하지 않고 깍지에 난 턱으로 비스듬히 가해진다는 점 등.[6] 임진왜란 직전의 경상좌도병영수첩에 따르면 동래성에 주둔했던 병력은 기병 800명 + 보병 2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7] 기마궁술에서 말을 컨트롤하는 요령은 활을 쏘고, 고삐를 잡아 말머리를 돌린 뒤 고삐를 놓고 다시 활을 쏘는 것이다.[8] 낙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제1철칙이 바로 절대 고삐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9] 다만, 이러러면 활을 당기는 당김손과 한손 무기를 다루는 손이 달라지게 된다. 양손이 각각의 무기를 모두 능숙하게 다루는 수준까지 안 바래도, 안 쓰는 손만 쓰는 무예에 익숙해 지는 것도 쉬운 기술은 아니다.[10] 다들 알다시피 무관들에게 있어서 기마궁술과 편전은 주력기나 다름없다. 이들이 숫깍지 철폐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것은 통념과는 달리 숫깍지가 기마궁술용으로 그리 부적합하지만은 않았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