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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República da Coreia Repúblika Koreia | 동티모르 민주 공화국 República Democrática de Timor-Leste Repúblika Demokrátika Timór-Les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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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과 동티모르의 관계. 양국은 2002년 동티모르 독립정부 수립과 함께 외교관계를 맺었다.동티모르내에도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되자 절반 이상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2. 역사적 관계
2.1. 2000년대
한국과 동티모르는 동티모르의 독립 운동 당시 집권하던 김대중 정부에 의해 인연이 깊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동티모르에서 일어나는 학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직접 칠레 대통령, 싱가포르 총리, 미국 대통령, 일본 총리 등 당시 아태 지역의 정부수반들에게 동티모르 상황을 인식시키고 해결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APEC과 유엔에 안건이 올라가 국제적인 이슈로 등장했다.[1]이는 동티모르에서 손을 때려고 했으나 현지군들의 이반으로 고심하던 하비비 대통령[2]과 후임 와힛 대통령은 아태 지역 국가와의 관계와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의 방향성을 생각하며 유엔 평화 유지군 파병에 동의하고 동티모르를 독립이라는 결과를 이끌었고 이런 과정 속에서 동티모르와 한국의 관계는 우호적인 시작을 끊었다.
2.2. 2010년대
2010년에 코이카는 2012년부터 동티모르의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나눠주는 사업을 동티모르측과 합의했다.#2017년 6월 6일부터 동티모르 여권이 전자여권으로 리뉴얼되었는데 한국조폐공사가 제작을 담당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8년 10월 23일부터 11월 2일까지 KOICA 연수센터 등에서 가나·나이지리아·동티모르 선거법제 개선지원 세미나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동티모르의 심각한 환경 문제인 폐플라스틱 처리를 위해 코이카와 미국, 국제 NGO 등이 뭉쳤다.#
2.3. 2020년대
2020년 6월 3일, 코이카는 동티모르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물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8월 31일, 가수 영탁이 동티모르 착한 고무신 보내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9월 10일, 코이카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에 태양광 에너지를 보급하는 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10월 8일, 군산 앞바다의 개야도에서 인권탄압을 받다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동티모르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국회에서 증언을 밝혔다.#1#2
11월 23일, 코이카는 유엔기구들과 함께 동티모르 여성 폭력 근절 사업에 나선다고 밝혔다.#
2021년 4월 13일, 외교부는 홍수 피해를 본 동티모르에 1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다.#
2022년 1월 14일, 코이카는 동티모르 청소년의 건강과 영양상태 개선을 위해 동티모르 재무부와 학교 중심 기초보건 시스템 개선 및 학교급식 역량 강화 사업 협의의사록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오르타 당선인은 한국의 투자를 원한다고 밝혔다.#
3. 파병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1999년 10월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인 상록수 부대를 파병했다. 동티모르에선 한국군을 '말라이 무띤'이라 불러 한 때 국내에 이게 '다국적군의 왕'이란 의미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냥 '얼굴이 하얀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동남아 출신의 피부가 상대적으로 검다고 생각하듯이, 동티모르에서도 한국인의 피부가 상대적으로 하얗다고 여긴 것이다.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동티모르가 출전하자 이 파병부대 장병들이 동티모르 응원단을 구성하여 응원했다. 2003년 3월 6일 시간당 100mm의 폭우가 쏟아져 작전 중이던 상록수 부대 장병 5명이 급류에 휩슬려 사망하기도 하였다. 2003년 10월에 한국군 상록수부대는 4년간의 파병활동을 마치고 철수를 했다. 장교 66명, 준사관 1명, 부사관 189명, 병사 163명이 참여하여 국위선양과 동티모르의 안전 및 평화유지에 힘을 썼다.
배우 하정우와 개그맨 강성범이 연예병사, 즉 군인의 신분으로 위문공연차 30일 가량 파견나갔다고 한다. 당시 왕복 32일이 걸리는 배편을 이용한 것으로 보아 해군 함정을 타고 갔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승조했던 배는 상륙함으로 함명은 고준봉함 풀네임 LST 681로 해군의 주력 신형 상륙함이였다. 1999년 당시 동티모르에서 태권도 및 섬 대민지원도 같이 병행해서 활동했으며 당시 승조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유엔평화유지군 자격으로 갔기에 유엔군 신분증과 해군 수병들도 수당을 당시 월급보다 몇 배 많게 받았다고한다.
동티모르 하면 주로 상록수 부대를 떠올리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2006년에 한국 경찰 5명이 파병되어서 PRT 및 치안 활동을 전개한바 있다.
당시 UN에서는 1개 경찰중대 규모를 요구했으나 한국경찰의 인력부재 문제로 5명을 파병하였고 PRT임무와 치안유지임무에 힘을 썼다. 따라서 동티모르는 한국 경찰 창설이래로 최초의 해외파견 사례가 되어있다.[3]
4. 문화/학술 교류
동티모르 국립대학교에는 2013년 7월 11일에 한국학센터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2020년까지 한국 정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2019년 동티모르국립대 한국학센터는 동티모르내 최초로 한국어능력시험을 시행했다. 2021년 주한동티모르 한국대사관과 동티모르국립대는 한국학의 진흥을 위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코리아코너를 개설하여 한국학센터의 토대를 지원했다. # 주동티모르 한국대사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2021년 한국학진흥재단은 동티모르내 한국학진흥을 위해 한국학씨앗형사업을 동티모르국립대 한국학센터에 지원 결정했다.한국 내에서는 동티모르의 테툼어가 배우기가 매우 힘든 언어였지만, 2018년 12월에 네이버 사전에서 테툼어 사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록되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동티모르국립대 한국학센터가 협업으로 출판한 테툼어 한국어 사전의 출판기념회는 2022년 1월 26일 제1회 한국학페스티벌의 부속행사로 개최되었다.
조선어학회의 후신 한글학회 기관지 <한글새소식>은 2022년 신년호(593호)에 '동티모르 말모이'란 최창원 교수의 투고글을 실어 테툼어 한국어 사전 출판을 기렸다.#
5. 대사관
수교한 해에 주 동티모르 대한민국 대표부[4]가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주한 동티모르 대사관은 2009년 2월 한남동에 설치되었으며, 현재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으로 이전했다.
6. 여담
유엔 하의 주민투표, 제헌 총선 감시 위원으로 한국인이 있었다.#독립 당시의 인연으로 안보면에서도 한국에 어느정도 의존하는 편이다. 국가정보원/문제점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2003년 당시 익명의 국정원 관계자가 한국의 독자적인 영향력으로도 정보 취득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로 공언했을 정도며 동티모르 여권 제작도 한국에서 분담할 정도다.
7. 관련 문서
[1] 김대중 대통령의 전달받은 정보는 인도네시아 군이 철수하면서 학살하려고 한다는 계획이었고 실행되지 않았을 때지만 유엔 안건에 상정될 시기에는 실제로 학살이 시작됐다.[2] 하비비 대통령은 독립 찬반 투표를 실시하였고 군대를 철수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동티모르에 잔류군들은 그럴 생각이 없이 독립 찬성파들을 학살했다. 문제는 이때 하비비 대통령이 강하게 잔류군들을 장악하지 못하며 학살을 방조하는 결과가 나왔고 유엔에 압박이 있고 국제적 문제로 질타 받기 시작해서야 현지 상황이 수습되기 시작했다.[3] 유일무이한 경우는 아닌데, 이후 한국 경찰이 아프간에서 오쉬노부대와 함께 파병을 보냈기 때문이다.[4] 2001년 6월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