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22:26:28

한국-아일랜드 관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6자회담 당사국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아시아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홍콩
파일:중국 원형 국기.svg
파일:마카오 특별행정구기.svg
마카오
파일:중국 원형 국기.svg
파일:티베트 국기.svg
티베트
파일:중국 원형 국기.svg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한국-인도네시아 관계|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파일:동티모르 국기.svg
동티모르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파일:미얀마 국기.svg
미얀마
파일:캄보디아 국기.svg
캄보디아
파일:라오스 국기.svg
라오스
파일:브루나이 국기.svg
브루나이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파키스탄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방글라데시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스리랑카
파일:네팔 국기.svg
네팔
파일:부탄 국기.svg
부탄
파일:몰디브 국기.svg
몰디브
파일:몽골 국기.svg
몽골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파일:투르크메니스탄 국기.svg
투르크메니스탄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키르기스스탄
파일:동튀르키스탄 깃발.svg
위구르
파일:중국 원형 국기.svg
파일:오키나와현 현기.svg
오키나와
파일:일본 원형 국기.svg
파일:사하 공화국 국기.svg
사하 공화국
파일:러시아 원형 국기.svg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파일:예멘 국기.svg
예멘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아프가니스탄
유럽
[[한국-우크라이나 관계|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
파일: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파일:몰도바 국기.svg
몰도바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슬로바키아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파일:몬테네그로 국기.svg
몬테네그로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룩셈부르크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파일:그리스 국기.svg
그리스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포르투갈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파일:몰타 국기.svg
몰타
파일:바티칸 국기.svg
바티칸
파일:키프로스 국기.svg
키프로스
파일:북마케도니아 국기.svg
북마케도니아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파일:덴마크 국기.svg
덴마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파일:모나코 국기.svg
모나코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에스토니아
파일:산마리노 국기.svg
산마리노
파일:슬로베니아 국기.svg
슬로베니아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라트비아
파일:알바니아 국기.svg
알바니아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리투아니아
파일:코소보 국기.svg
코소보
파일:리히텐슈타인 국기.svg
리히텐슈타인
파일:안도라 국기.svg
안도라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파일:북키프로스 국기.svg
북키프로스
아메리카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파일:파나마 국기.svg
파나마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엘살바도르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과테말라
파일:니카라과 국기.svg
니카라과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베네수엘라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콜롬비아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볼리비아
파일:페루 국기.svg
페루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에콰도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
트리니다드 토바고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자메이카
파일:아이티 국기.svg
아이티
파일:도미니카 연방 국기.svg
도미니카 연방
파일:수리남 국기.svg
수리남
파일:가이아나 국기.svg
가이아나
파일:세인트키츠 네비스 국기.svg
세인트키츠 네비스
파일:세인트루시아 국기.svg
세인트루시아
파일: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svg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파일:벨리즈 국기.svg
벨리즈
파일:바하마 국기.svg
바하마
파일:그레나다 국기.svg
그레나다
파일:앤티가 바부다 국기.svg
앤티가 바부다
파일:바베이도스 국기.svg
바베이도스
아프리카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에티오피아
파일:마다가스카르 국기.svg
마다가스카르
파일:말라위 국기.svg
말라위
파일:코모로 국기.svg
코모로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파일:케냐 국기.svg
케냐
파일:르완다 국기.svg
르완다
파일:모잠비크 국기.svg
모잠비크
파일:베냉 국기.svg
베냉
파일:감비아 국기.svg
감비아
파일:라이베리아 국기.svg
라이베리아
파일:세네갈 국기.svg
세네갈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파일:모리타니 국기.svg
모리타니
파일:콩고민주공화국 국기.svg
콩고민주공화국
파일: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파일:가봉 국기.svg
가봉
파일:콩고 공화국 국기.svg
콩고 공화국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파일:보츠와나 국기.svg
보츠와나
파일:짐바브웨 국기.svg
짐바브웨
파일:에스와티니 국기.svg
에스와티니
파일:우간다 국기.svg
우간다
파일:토고 국기.svg
토고
파일:잠비아 국기.svg
잠비아
파일:카보베르데 국기.svg
카보베르데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파일:지부티 국기.svg
지부티
파일:기니비사우 국기.svg
기니비사우
파일:기니 국기.svg
기니
파일:적도 기니 국기.svg
적도 기니
파일:시에라리온 국기.svg
시에라리온
파일:부르키나파소 국기.svg
부르키나파소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코트디부아르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공화국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파일:리비아 국기.svg
리비아
파일:튀니지 국기.svg
튀니지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파일:상투메 프린시페 국기.svg
상투메 프린시페
파일:남수단 국기.svg
남수단
파일:레소토 국기.svg
레소토
파일:앙골라 국기.svg
앙골라
파일:카메룬 국기.svg
카메룬
파일:차드 국기.svg
차드
파일:세이셸 국기.svg
세이셸
파일:나미비아 국기.svg
나미비아
파일:모리셔스 국기.svg
모리셔스
파일:말리 국기.svg
말리
파일:니제르 국기.svg
니제르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파일:부룬디 국기.svg
부룬디
파일:이집트 국기.svg
이집트
오세아니아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파일:피지 국기.svg
피지
파일:파푸아뉴기니 국기.svg
파푸아뉴기니
파일:솔로몬 제도 국기.svg
솔로몬 제도
파일:키리바시 국기.svg
키리바시
파일:팔라우 국기.svg
팔라우
파일:마셜 제도 국기.svg
마셜 제도
파일:투발루 국기.svg
투발루
파일:사모아 국기.svg
사모아
파일:통가 국기.svg
통가
파일:바누아투 국기.svg
바누아투
파일:미크로네시아 연방 국기.svg
미크로네시아 연방
파일:나우루 국기.svg
나우루
다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한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한미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북한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남북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한중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한러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대한민국·대만·일본
파일:ASEAN 깃발.svg
아세안
파일:아프리카 연합 기.svg
아프리카
과거의 대외관계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발해 · 고려 · 조선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아시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중국 대만 국기.svg
중화권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유럽|{{{#fff,#191919 유럽}}}]]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파일:영국 원형.png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아메리카 · 오세아니아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다자관계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Poblacht na Cóiré
아일랜드
Éire
Ireland

1. 개요2. 상세3. 역사적 관계
3.1. 20세기3.2. 21세기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법5. 대사관6. 재한 아일랜드인7. 한국과 비교8.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아일랜드의 관계.

한국아일랜드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중국 단둥에 있던 이륭양행(怡隆洋行)은 아일랜드인이었던 조지 쇼[1]가 세운 무역 선박 회사로 실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국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가의 중국 망명, 독립운동 자금 모집, 무기 구입, 연통제 운영 등의 역할을 했다. 의친왕의 망명 시도도 이륭양행을 통해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과 아일랜드와의 공식적인 관계는 1961년에 처음 외교 접촉을 했고, 한때 주영 한국 대사관에서 겸임해 왔다가 1983년에 와서 공식 외교 관계가 성사되었다.

워킹홀리데이 협약이 체결된 나라이다.

2. 상세

대한민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그동안 정부 간의 교류보다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통한 민간 교류의 비중이 높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유명 관광지인 성이시돌목장은 1954년 아일랜드인 신부들이 주축이 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담당 지역은 전라남도(천주교 광주대교구)이었는데, 제주특별자치도는 8.15 광복 이전에 행정 구역이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제주도(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사목했다.

아일랜드인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4.3 사건으로 인해 삶의 기반이 파괴되어 가난에 시달렸던 제주도 중산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목축업을 장려하기로 했고, 제주도 한림읍 금악리 일대에 농장을 건설했다.

뉴질랜드호주에서 면양, 소, 돼지를 들여와서 한때 가축 수백만 마리를 사육했던 동양 최대의 목장으로 성장시켰고, 제조 설비까지 들여 와서 우유치즈 같은 낙농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현재 성이시돌목장가톨릭 성지화되어 각종 종교 복지시설이 세워졌고, 말과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와 성 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 소속의 수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가톨릭교회와 비영리 단체를 통하여 6.25 전쟁 이후 여러 지역에서 교육과 빈민구호활동을 펼쳤다.

일제강점기 당시 전남-제주 지역에서 사목했던 아일랜드인 패트릭 도슨 신부, 어거스틴 스위니 신부,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신부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3. 역사적 관계

3.1. 20세기

아일랜드는 1988 서울 올림픽 때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가나다순으로 입장했기 때문에 ㅇ으로 시작하는 아일랜드는 중간 정도에 입장하였다.

3.2. 21세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본선에도 진출하여 E조 예선을 일본에서 치른 뒤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스페인16강전을 치를 때 선수단과 응원단이 방한한 바 있다.

2005년에는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이 아일랜드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방한하여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2018년 11월 14일에 한국 외교부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4개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 지난 8월부터 한국어가 선택과목으로 포함되었다고 밝혔고 아일랜드에서 한국어교육과정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동시에 11월 14일에는 양국간의 실질적인 협력강화방안을 두고 논의했다.#

아일랜드의 맥주 브랜드기네스도 한국의 마트, 편의점에서도 팔리고 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아일랜드 정부는 한국으로부터 마스크 1억 2,000만장을 확보했으며 물량은 수주 내 수송될 것이라고 밝혔다.#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법

현재 서울부산에서는 더블린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아일랜드로 가려면 환승해야 한다. 주로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등에서 환승하는 편이다.

5. 대사관

대한민국은 더블린대사관을, 아일랜드는 서울대사관을 두고 있다.

6. 재한 아일랜드인

아일랜드인은 영어가 모어이기 때문에 회화지도 비자 취득 가능 대상자로 현지 4년제 대학 이수한 후 지원할 수 있다. 재한 아일랜드인은 원어민 강사, 원어민 교사 등 영미권 출신이 차지하는 직업 외에도 가톨릭 신부, 수녀 등도 있으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못지 않게 한국 가톨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세인트 패트릭 데이이태원, 서면에 있는 에서 축제를 한다.

7. 한국과 비교

한 민족의 다른 민족에 대한 지배와 이에 저항하는 투쟁이라는 면에서 영국-아일랜드 관계와 한일관계와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2] 하지만 양국의 관계와 한일관계의 차이점도 상당히 많기에 1:1 대응이 불가능하다.

아일랜드는 80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잉글랜드-영국의 지배를 받은 탓에 문화적으로 앵글로색슨에 상당히 동화되었다. 또한 영국 내의 다른 켈트계 주요 세력이었던 스코틀랜드의 비중까지 고려하면 수많은 스코틀랜드 고지대와 서부 해안의 게일어클랜들은 아일랜드 쪽에도 가족과 세력이 있었고, 이런 지정학적 현실에 따라 아일랜드-영국 간 관계는 정치적인 적대적 종주 관계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문화적, 인구적 교류의 역사가 깊다.[3] 따라서 아일랜드와 잉글랜드는 교류가 몹시 활발하였고 민족의식 및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때문에 영국-아일랜드 관계를 한일관계에 투영하여 비교하는 것은 국제관계를 단순 도식화하는 단견에 불과하다.

게르만계 잉글랜드의 인구•경제적 비중이 워낙 압도적이지만, 영국은 게르만 잉글랜드인들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분리독립 이전 아일랜드의 켈트인들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형성한 국가 공동체이다. 영국의 역사를 보아도 잉글랜드계가 민족적,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켈트계 전반을 일방적으로 배제하고 탄압했다고 규정하기 어렵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의 토착 지역 유지들은 잉글랜드 지배세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네 권역에서 자치권을 존중받는 가운데 중앙으로도 적극적으로 진출해서 지배세력으로 편입되었고, 대영제국에 소속됨으로써 들어온 이익과 번영도 많이 누렸다.[4]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의 피지배 대중들 입장에서는 잉글랜드 지배세력이 수탈자로 여겨질 소지가 없지는 않았고[5] 실제로 그러한 인식 때문에 20세기 이후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게 되긴 했지만[6], 지배세력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잉글랜드 지배세력이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의 고유 전통문화를 탄압한 경우도 극히 드물고[7], 오히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를 자기네 체제에 편입시키고자 이들의 전통문화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러함에도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웨일스와 달리 끝까지 연합 왕국에 동화되지 못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아일랜드는 토착 지역 유지들이 지배세력이었던 스코틀랜드•웨일스와 달리 영국 본토에서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건너온 지주들이 지배세력이었고,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토착민들은 이들에게 지배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영국 지배세력의 수탈과 억압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극심했고, 그에 따른 원한이 쌓이고 쌓인 결과 무장투쟁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독자적인 민족 의식이 유구하고 일제의 지배는 20세기 초중반의 35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었다.[8] 역사적으로도 고대사 이래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대한 일방적인 침략 혹은 지배가 가능할 만큼의 국력 격차가 있었던 적은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조차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유의미할 정도의 통혼으로 인한 독자적인 한국 - 일본 혼혈인의 집단의식이 부재했고,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은 잘 섞여 지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한국 - 일본 혼혈인들은 대부분 한국에 잔류하여 한국인에 동화되거나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에 동화되었다. 또한 일본이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어 교육을 크게 강화했지만, 해방 무렵에도 식민지 조선 전체 인구에서 일본어가 유창한 사람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왜냐면 당시 한반도는 문맹률이 높고 소학교 진학률도 그리 높지 못했고, 적어도 1930년대까지는 농촌계몽운동가들이 문맹퇴치 사업으로 시행하던 한글 교육도 일제가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조선인들을 철저하게 노예 아니면 피지배인으로 보며 조선인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무작정 밀어붙이기만 하였기에 조선인들의 반감이 심하여 일본어를 배우려들지 않았다. '도래인', '항왜' 등의 이주민 집단이 없지는 않았으나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 일본/한국에 동화되어서 더 이상 독자적이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었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 자립적일 수 있는 한국(남한) 단독 혹은 남북한 합친 한반도의 인구(5,000만 내지 7,800만) 및 경제규모[9]와 달리, 아일랜드는 인구가 450만에 불과하며, 북아일랜드를 포함해도 600만에 지나지 않아, 6,000만 인구의 영국과 완전히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10] 경제규모(GDP)를 비교해보면 한국과 일본은 2.5배 차이지만 영국과 아일랜드는 10배도 넘는다. 군사적으로도 한국군과 자위대의 역량은 비슷한 반면, 아일랜드군은 중립국의 군대이기 때문에 나토 2위의 군사대국인 영국군에 비해 병력과 무기 등 여러 면에서 열세이다. 자세한 것은 아일랜드군 문서 참조.

또한 해당 문화권의 중심지인 중국에서 가까웠던 한국은 일본보다 역사의 시작이 빨랐고, 일본은 내부 영역 개척으로 인한 체급 증강을 통해 근세에 한반도를 역전했다. 반면 아일랜드는 문명의 중심인 유럽 대륙에서 영국보다 더 멀었기에 체급은 물론이거니와 역사의 출발조차도 늦었다.

군사사적인 관점에서 아일랜드는 오히려 영국의 식민지로서 다른 외부 세력에 동조해 내부 반란을 일으키거나 끊임없이 영국 본토 정계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테러리즘을 벌이는 게 차라리 영국에 더욱 안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독립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외세에 저항하는 자생적 비정규군으로서 이웃 강대국에 오히려 더 위협이 되는 세계사적으로 거의 유일한 경우이다. 그래서 독립 후에도 아일랜드는 영국과의 군사적인 분쟁을 극도로 자제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아일랜드계 이민자 사회에서 한국인 = 동양의 아일랜드인 비유는 적어도 1950년대부터 퍼졌는데, 양 민족의 음주 문화에 유사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권력적인 관점에서 주로 약소 민족으로 시작하여 억척스러운 근성으로 수많은 피눈물 끝에 나름 번영하는 이민자 사회를 건설하며, 이 과정에 생긴 집단적 스트레스를 강력한 종교성과 음주가무로 풀어 내는 문화와 역사를 통해 상당히 웃픈 스트레오 타입을 공유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1970년대에 일본 신문 기자가 아일랜드 역사를 홋카이도아이누족의 역사를 비교하며 칼럼을 쓴 것이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일본 신문 기자는 일본의 아이누족과 부라쿠민들의 차별에 대한 칼럼을 썼는데 도래인인 야요이들이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일본 선주민인 죠몬인들이 홋카이도로 이주하거나 부라쿠민이 된 것이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일본 기자들은 그것에 대해 잘못된 방향으로 창피함을 느꼈고 그래서 아일랜드와 역사가 비슷한 건 한국이라는 식으로 칼럼을 자주 썼으며 그것이 와전되어 한국 사람들도 한국 역사와 아일랜드 역사가 비슷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아일랜드 관계를 일본-한국 관계에 비유하는 건 어디까지나 양국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아일랜드인과 한국인, 아일랜드사와 한국사의 공통점을 찾아보다 보니까 나온 단편적인 이해일 뿐, 절대 대등하지 않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8. 관련 문서



[1] 1963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나 그의 후손을 찾지 못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보관하다 2012년 후손에게 전달하였다.[2]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도 모두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아일랜드의 경우는 이들 국가와 많이 달랐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북아메리카 지역 일부와 오세아니아의 일부에서 살던 원주민을 주류에서 완전히 끌어내린 영국계 이주민이 이들 지역을 언어, 문화까지 영국식으로 완전히 테라포밍하여 형성된 나라들이다. 반면 아일랜드는 독자적인 문화와 민족성이 그대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영국이 지배자로서 통치한 경우이다. 물론 세월이 엄청 흘러서 아일랜드에서도 영어와 영국식 문화, 이주민을 많이 받아들였지만 아일랜드의 독자적인 민족성만큼은 지우지 못했다.[3] 멀리갈 필요 없이 근대 이후 아일랜드의 독립운동 지도부 인사들조차도 상당수는 아일랜드에서 거주하면서 아일랜드와 동화된 잉글랜드계 개신교도였다.[4] 애초에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칭송받는 아서 왕부디카도 켈트족인 브리튼인이다. 아서 왕은 오히려 구 로만 브리튼 계열의 지도자로서 앵글로색슨과 대립하는 입장이었다.[5] 아일랜드 대기근과 같은 시기에 스코틀랜드에서도 하이랜드 클리어런스 사건이 일어나, 많은 하이랜더들이 고향에서 쫓겨나서 글래스고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살 길을 찾아 캐나다나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의 기반이 형성되었다.[6]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자체는 18세기부터 이미 존재했지만, 현대 스코틀랜드 민족운동은 대영제국이 무너지면서 과거 식민지에서 들어오던 떡고물이 줄어들던 마당에 북해에서 석유가 나온 사건(1969년)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마거릿 대처가 대놓고 스코틀랜드를 차별하면서 빠르게 자라나게 되었다.[7] 1745년에 하이랜더들이 주축이 되어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연합왕국 국왕으로 옹립하고자 일어난 재커바이트 항쟁 직후 잠시 킬트를 금지한 적이 있긴 하다.[8] 을사조약 직후부터 포함한다 해도 40년이 지나지 않는다.[9] 한국의 경제규모는 일본의 40% 정도이다.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지방 도시 하나 정도에 불과해서,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당장 한일 경제규모의 비율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10] 사실 전체 아일랜드 섬의 인구는 19세기 경에 900~1,000만 명에 달했으나,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거나 미주 등으로 이주한 여파로 인해 두 세기가 지난 현재 600만 명을 약간 상회한다. 여기에 현재 아일랜드는 저출산이다 보니 인구가 증가할수가 없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860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860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