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7 22:47:47

더블린

1. 개요2. 역사3. 지리4. 경제5. 문화6. 교통7. 그 외8. 창작물에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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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어: Baile Átha Cliath [1]
영어: Dublin
라틴어: Eblana, Dublinum
아일랜드의 수도. 아일랜드 섬 동부에 위치한 도시다.

리피 강 하구에 위치해 남북으로 도시가 위치해 있으며 아일랜드 해(Irish Sea)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영국 잉글랜드의 리버풀이 있다. 아일랜드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아일랜드 인구의 4분의 1이 사는 아일랜드 최대의 도시이다.

더블린 관광 안내 홈페이지(영어)

2. 역사

언제부터 더블린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대체로 아일랜드의 선주민인 켈트인들이 천년 전부터 살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지에 에브라나라고 언급된 곳이 더블린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에서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450년경에 성 성 파트리치오에 의해 더블린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고, 이후 독특한 켈트-그리스도교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9세기, 바이킹이 리피강을 거슬러 더블린으로 쳐들어와 켈트인들의 마을을 불태우고 새로 성을 쌓았는데 그때부터 더블린이 중심적인 도시가 되었다. 더블린이라는 말의 어원은 "검은 물웅덩이"를 의미하는 둘린(Dubhlinn)에서 왔다는게 거의 정설이다. 당시에 마을 안쪽으로 물길이 나있어 선박을 놓던 웅덩이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흔적은 지금도 더블린 성 뒷편에 남아있다. 바이킹이 점령한 후 더블린은 일대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번성한다.

이후 켈트인과 바이킹은 더블린을 놓고 300년 넘게 혈투를 벌이다가 1171년, 잉글랜드의 앵글로 노르만인들에 의해 완전히 추방되었다. 이듬해인 1172년, 잉글랜드의 헨리 2세는 더블린에 성을 짓고 잉글랜드 브리스톨의 속령으로 삼아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더블린은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지배 중심지가 되었다.

1534년, 아일랜드 사람인 피츠제럴드가 반란을 일으켜 더블린을 점령하면서 한때 아일랜드 섬은 독립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왕국헨리 8세는 결국 아일랜드를 다시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아일랜드 왕국을 세웠다. 영국 내전으로 다시 더블린이 독립세력에 점령되기도 했지만 올리버 크롬웰은 독립을 용납하지 않고 아일랜드 섬으로 쳐들어가 더블린을 포위한 끝에 함락시켰다. 이후 여러 차례[2] 아일랜드의 독립투사들이 잉글랜드에 맞서는 봉기를 일으켰고, 더블린은 늘 유혈의 장소가 되어야 했다.

결국 1922년 영국영국-아일랜드 조약으로 아일랜드자치령으로 지정해 아일랜드 자유국이 출범하고 더블린아일랜드 자유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분리 문제와 영국 국왕에 대한 아일랜드 의원들의 충성 서약 등 조약 내용이 문제가 되어 조약 찬성파와 조약 반대파로 나뉘어 1922년에서 1923년까지 약 1년간 아일랜드 내전이 발발하는데, 이때 더블린에서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져 약 400~500명 가량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또 이때 아일랜드 대법원인 포 코트(Four courts)의 공문서 자료실이 포격으로 파괴되어 약 1000년간 기록된 아일랜드의 공문서가 소실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이런 불행을 딛고 1937년 아일랜드는 완전한 독립국가를 수립했으며,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수도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3. 지리

아일랜드 섬 동쪽의 더블린 만과 리피 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내륙으로는 철도와 로열 운하, 그랜드 운하의 두 개의 운하로 연결되고 있다. 남부가 산지인 것을 빼면 더블린의 대부분은 넓은 평원으로 이루어져있다.

리피강에 의해 북부와 남부로 나뉘는데 북부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구역이며 주로 18세기 이후에 건축된 신시가지이다. 남부 지역에는 주요 정부기관, 문화시설, 고급 백화점, 중상류층의 거주구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유서깊은 구 시가지는 주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구 시가지에는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은데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총독부로 사용되던 더블린 성이나 시청, 아일랜드 성공회의 주교좌인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성 패트릭 대성당, 아일랜드 은행, 세관, 고등재판소, 국회의사당, 트리니티 대학교 등이 들어서있다.

더블린 시내에는 아일랜드의 애국자들이나 아일랜드가 배출한 위인들의 동상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데 애국자 오 코넬이나, 작가 골드스미스 등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고 서쪽 교외에는 피닉스 파크라는 큰 공원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 삼림공원과 동물원, 대통령 관저가 위치해 있다.

4. 경제

영국의 공업제한정책 때문에 산업혁명기에도 제대로 된 공업성장은 이뤄지지 못했다. 주로 가축, 맥주, 농산물들이 주 생산품이었지만 아일랜드 정부의 보수적인 정책과 이민으로 인한 인구유출, 경제 불황이라는 악순환으로 한동안 아일랜드의 경제는 침체일로에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IT 등 첨단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한 결과 현재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너무 급속한 경제성장 탓에 더블린은 이미 식민지 시절의 규모로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인구증가를 이루었으며 그로 인에 교통체증, 부동산 급등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며 최근에는 동유럽, 아프리카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고 있기도 하다.

5. 문화

아일랜드 출신으로 세계적인 문호가 된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 출신으로, 더블린 남쪽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기념관이 서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을 내기도 했다. 그 외에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 저명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또한 트리니티 대학 출신으로는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뮈엘 베케트드라큘라의 저자인 브램 스토커, 카르밀라를 쓴 조지프 셰리든 레 퍼뉴 등이 더블린 출신들로 주로 유명한 작가, 시인들이 더블린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이 덕분에 2010년에 유네스코 문학의 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배출되어 음악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U2, 밥 겔도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3], EDEN이 더블린 출신의 세계적인 뮤지션들이다.

시내에는 이라 불리는 술집들이 즐비하며, 실제로 더블린에서는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펍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심지어 브런치에도 맥주를 곁들이는 사람도 있다). 더블린 시내 중심인 템플 바는 한동안 황폐했으나 재개발 사업 이후 젊은이들의 명소로 거듭났다. 더블린에서 가장 유명한 펍인 The Temple Bar

남부의 구시가지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교는 아일랜드 최고의 대학으로 영어권 대학 중에서도 유수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으로 손꼽힌다. 트리니티 대학교의 구도서관(올드 라이브러리)에는 켈트 고서 사본 등의 희귀본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시내 중심부에 있는 국립 박물관에는 켈트족들의 훌륭한 미술 공예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6. 교통

더블린의 하늘 관문은 더블린 국제공항이 담당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앵글로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미주, 아랍에미리트를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인천)이나 부산으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없어서, 런던 등지에서 환승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캐세이퍼시픽 항공으로 홍콩 국제공항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을 간 후 다시 영국항공을 이용해 들어간다. 하지만 2018년 6월 2일부터 캐세이퍼시픽홍콩에서 더블린 노선을 주 4회 A350-900을 투입하여 신규 취항하였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더블린에 취항하는 첫 논스톱 노선이다. 며칠 후에 하이난항공이 베이징발로 취항하면서 두 번째 동아시아 노선이 탄생하였다.

더블린 항에서는 영국으로 가는 페리를 탈 수 있다. 웨일즈의 홀리해드까지는 고속선으로 채 3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 외에 리버풀이나 맨섬 여객선도 연결되어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상호통행 협정으로 두 나라를 오고 갈땐 원칙적으론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박의 경우 신분증을 요구할 때도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도착 항구에서 거의 100% 여권 검사를 한다. 한국 국적자의 경우 영국을 통해 페리로 아일랜드로 입국하게 되면 더블린 항구에서 여권을 보여주면 도장을 찍어주고 끝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나 영국 측이 심사를 좀 더 깐깐히 하는 편.

철도의 경우 더블린 코널리 역휴스턴 역이 주요 역이다. 코널리 역에선 벨파스트행이나 로슬레어행 열차를 탈 수 있으며, 그 외 서부 지역이나 로슬레어 행이 아닌 남부는 휴스턴 역을 이용해야한다.

시내 교통은 거의 버스가 담당하고 있다. Luas라 불리는 트램이 있고 노선망이 대단한건 아니지만, 휴스턴 역과 더블린 코널리 역을 연결해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7. 그 외

더블린을 처음 방문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바늘 모양의 철제 구조물이 있는데 이를 더블린 스파이어(Spire of Dublin)라 부른다.[4] 2003년에 완공되었으며 높이가 무려 121.2m인데다 밤이 되면 끝부분이 반짝이기 때문에 밤이든 낮이든 더블린 어디에서나 잘 보인다. 현재는 더블린의 랜드마크이자 만남의 장소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뜨개질 바늘처럼 생겼다고 놀림받는다. Pointless pointy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5] 폭은 좁고 높이만 높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저거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는거 아닌가" 할 정도로 불안한 모양새이지만, 웬만한 강풍에도 끄떡없도록 첨단 공학을 사용해서 건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가늘어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제일 아랫 부분의 지름은 3m 정도로 의외로 꽤 굵다. 반면 꼭대기 부분의 지름은 15c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일랜드로 여행을 갈 경우 대부분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이다. 더블린의 관광 필수 코스로는 위의 더블린 스파이어가 위치한 오코넬 거리(O'Connell Street) 외에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 더블린 성, 트리니티 칼리지 등이 꼽힌다. 그리고 밤에 펍에서 맥주를 즐기며 아일랜드 전통 음악을 듣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템플 바 거리는 술집들이 몰려있는 곳이기 때문에 왠만해선 밤 늦게 돌아다니지 않는걸 추천하며, 고가의 소지품(스마트폰, 지갑등)을 손에 들고 사용하다가 도둑맞는 경우가 흔하다. 그 외에 쇼핑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그래프톤 거리(Grafton Street)도 있다.

2010년 1월, 아일랜드의 RTE 뉴스 화면에 빙판에 넘어지는 행인의 모습이 그대로 나가면서 전세계를 웃음바다로 만든 일이 있었는데 그 무대가 바로 이 도시이다. 한국에는 "행인 꽈당"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영상이다. 물론 뉴스 화면이기 때문에 의도된 것은 아니고 어쩌다 찍힌 모습이지만 마침 "더블린의 보행자들에게는 아직도 (빙판길이) 위험합니다 (It's still dangerous for Dublin pedestrians)." 라는 멘트가 나가자마자 넘어졌다는 점에서 타이밍이 너무나도 절묘했다. 구글에는 It's still dangerous까지만 쳐도 검색어로 뜬다.

유로 2020 개최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쿠빌바오, 글래스고도 개최지 중 하나다.

8. 창작물에서

  • 언턴드 아일랜드 맵에 위치해있다.


[1] 발음기호는 [ˌbʲlʲaː ˈclʲiə\]. '울타리 쳐진 여울의 도시'라는 의미라고 한다.[2] 1798년 봉기, 1803년, 1847년, 1867년, 1916년(부활절 봉기), 1919-1921년(아일랜드-영국 전쟁)[3] 다만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더블린 내에서 인지도는 시망이였고 런던 넘어가면서 뜨기 시작했다.[4] 원래는 넬슨제독 기념비가 서있던 장소이다. 이 기념비는 1966년 IRA의 폭탄테러로 파괴되었다. 비유하자면 서울 한복판에 도고 헤이하치로의 동상이 서있던 격.[5] 직역하면 의미없는 바늘 정도가 되겠다.[6] 아일랜드 더블린 혹은 이라크 오아시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