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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Ankara (로마자) | آنقره (오스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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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 수도로 제2도시다.
2. 지리
강을 끼고 있지는 않지만 구시가지 남쪽으로 잘 정리된 계획도시인 신시가지가 있으며, 그 중간에는 헤이켈(Heykel: 튀르키예어로 '동상')이라 불리는 아타튀르크의 거대동상이 있다. 이곳 일대를 울루스(Ulus)라고 하는데 이곳이 앙카라의 중심지이며 이곳에 튀르키예의 국회의사당, 은행, 오페라하우스 등 현대적인 건축물들도 들어섰다.
3. 지명
'앙카라'의 어원은 닻을 뜻하는 그리스어 앙퀴라(ἄγκῡρα)라고 추측한다. 영어 anchor의 어원이기도 하고. 고대에도 이 도시는 '앙키라(Ancyra)'라 불렸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래 '앙고라(Angora)'란 명칭도 쓰였다.앙카라 지역 사투리로는 k같은 무성음이 유성화되는 현상이 발생해서 다들 '앙가라' 거린다.[2] 도시 마스코트는 과거에는 앙카라 대학교의 상징이기도 한 히타이트의 사슴 조각이었지만, 현재는 검은 앙카라 고양이(터키시 앙고라). 현재도 옛 히타이트의 사슴조각은 앙카라 대학교 앞의 스히예(Sıhhiye) 광장에서 볼 수 있다.
4. 역사
구도심 (울루스) 속 앙카라 성채 (악칼레)와 시가지 | 하즈 바이람 모스크(Hacı bayram camii)와 로마 시대의 아우구스투스 신전(Augustus tapınağı).[3] |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은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근대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앙카라를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앙카라를 근대에 새로 생긴 신도시로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4] 앙카라 역시 이스탄불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다. 아니, 오히려 거점도시 또는 대도시로서의 역사는 이스탄불보다 더 오래되었다. 사실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로 천도하기 전에 이스탄불은 소도시에 불과했으나, 그 당시의 앙카라는 이미 속주의 주도급 대도시였다.
기원전 2000년 무렵 히타이트인들이 앙키라 지역에 터를 잡았고, 기원전 1000년대에는 프리기아인들이 이주해왔다. 이후 앙키라는 리디아에 지배받고 나중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통치를 받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헬레니즘 제국이 들어서고, 알렉산드로스 사후 안티고노스 왕조가 앙키라를 통치하게 된다. 기원전 278년에 앙키라를 포함한 아나톨리아 중부를 켈트족이 점령하면서 이 일대는 갈라티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원후 125년 로마 제국의 갈라티아 속주 | 카라칼라 목욕탕 유적 |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가 갈라티아를 정복하면서 앙키라는 로마 제국 갈라티아 속주의 주도로서 통치를 받는다. 남아있는 로마 유적으로는 위의 사진에 나온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율리아누스 기둥, 목욕탕 등이 있다. 4세기에 앙키라에는 그리스도교가 융성하였다.
750년 동로마 제국의 아나톨리아 군관구 | |
Bucellarians | 부켈라리온 테마 |
동로마 제국에서 테마 제도가 실시되면서 7세기 앙키라는 옵시키온 테마의 수도가 되었다. 8세기 중반 옵시키온 테마가 분할되면서 앙키라는 부켈라리온 테마의 중심지가 되었다.
1071년 만치케르트 전투 이후 셀주크 제국은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앙키라에 오우즈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동로마 제국은 앙키라를 잠깐 수복하지만 얼마 안 가 룸 술탄국에 도로 빼앗겼다. 1243년 쾨세다으(Kösedağ) 전투에서 몽골 제국이 룸 술탄국을 이기고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1330년 아나톨리아 | |
Ahis | 아히 형제단 |
1290년 즈음 상공업 조합인 '아히 형제단(Ahiler)'이 앙카라에 국가를 세워 일 칸국에서 반독립을 한다. 동시기 베이가 군림하는 아나톨리아의 다른 베이국(Beylik)들과는 다르게 아히 형제단의 국가는 상인 공화국의 형태였다.
1356년 오스만 베이국의 군주 오르한이 앙카라를 합병하여 아히 형제단의 국가는 멸망한다. 1393년 아나톨리아 에얄레트(ایالت آناطولی, Eyālet-i Anaṭolı) 행정구역으로 세워지고 앙카라는 그 주도가 된다.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오스만은 아나톨리아 반도를 침공해 온 티무르에게 패배하여 앙카라를 잠깐 빼앗기지만 이듬해 되찾았다. 15세기 후반에 아나톨리아 성의 성도는 앙카라에서 퀴타히아로 천도가 되었다.
1861년 앙카라 에얄레트 | 1900년 앙카라 주 |
1827년 앙카라 에얄레트 (ایالت آنقره, Eyālet-i Ānqarâ)가 들어섰는데, 초기 주도는 요즈가트였다가 이후 앙카라가 되었다. 앙카라 성이 1867년 앙카라 주(ولايت آنقره, Vilâyet-i Ānḳara)로 개편되면서 앙카라 역시 앙카라주의 주도(州都)로 이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 왕국의 침공을 받고 있었는데,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 앙카라 근방의 사카리야 강에서 장장 21일간에 걸친 쉴 새 없는 전투 끝에 그리스를 물리치고 터키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 후로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 덕분에 앙카라는 인구가 불어나 급성장했다. 당시의 앙카라는 그냥 농촌이었다(구 튀르키예 리라 지폐를 보면 앙카라 의사당 앞에서 밭 가는 농부가 있다)
앙카라를 계획할 당시 중심지 이론으로 유명한 독일의 지리학자 발터 크리스탈러(Walter Christaller)에게 도시 계획을 의뢰했다. 당시에는 최종 인구 50만인 도시로 계획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가 급팽창해[5] 크리스탈러의 도시 계획이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도시 계획 초안에 의하면, 도시 내에 고차 중심지에서 저차 중심지를 두고, 중추관리기능 - 상업 기능 - 공업 기능 - 주거 기능 등과 같은 형식으로 분화된 도시 기능을 두었다. 아직도 이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앙카라 역을 중심으로 북쪽의 울루스(Ulus) 지역이 고차중심지이고, 울루스의 아타튀르크 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주요 관공서들이 모였으며 앙카라 대학이 있고, 남쪽의 크즐라이(Kızılay)는 상업지구로 형성되었으며, 그보다 아래에 위치한 발갓(Balgat)에는 공업지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무허가판자촌인 게제콘두가 메웠다.
5. 구경거리
울루스 (구도심)의 중심에 있는 앙카라 성채
튀르키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만큼 볼거리도 풍성한 편이다.
앙카라의 관광지는 서로 근접하게 붙어있기 때문에 구경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서쪽에는 이스탄불, 중앙에는 카파도키아라는 주요 관광지가 있다보니, 도중 경로에 해당하는 앙카라는 많은 여행객들이
버스를 타고 앙카라에 오게 된다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앙카라 시내가 산을 주위에 둘러싸고 혼자 떡 하니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간버스를 타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 동안 앙카라의 야경을 볼 수도 있는데, 튀르키예의 다른 관광도시와는 달리 서울과 비슷한 세련된 도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Anadolu Medeniyetleri Müzesi)
- 앙카라 성 / 악칼레[8] (Ankara Kalesi / Akkale) (옛 시가지)
아나톨리아 박물관을 가다보면 지나치게 되는 곳이며, 칼레시 공원(도성공원) 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앙카라 전체를 관망해볼 수도 있다. 또한 이 주변 인근의 조그만 골목들도 사진찍기에 좋은 곳.
이쪽은 앙카라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게제콘두(Gecekondu)가 여기저기 형성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제콘두란 튀르키예의 슬럼, 빈민가를 뜻하는 지역이다. 신시가지와 비교하면 마치 19세기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 애초에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 게다가 빈민촌이라 열악한 환경이다. 아무런 표지판도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새 성에 올라와 있게 될 지도 모른다. 오히려 현지 주민들이 길을 알려주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이 아침을 여는 풍경과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통 대장간이나 철물점, 빵집등을 구경하면서 시간 때우기에는 매우 좋다. 빈민가라는 편견만 버린다면 위험하지도 않고 마을사람들도 매우 친절하기 때문에 구경하면서 함께 사진도 찍어볼 수 있다. 심지어 운만 좋다면 동네사람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함께 밥을 먹는 경험도 해 볼 수 있다.
파일:터키 앙카라 10.jpg
앙카라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성탑. 전망 명소로 유명하다
2014년에 리모델링 및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깔끔해졌다. 2018년 이후로는 주변의 그득그득했던 게제콘두들도 싹 갈려버리고 그 자리에 토키(TOKİ, Toplu Konut İdaresi 공동주택공사)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과거 앙카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으며, 성 안에는 골목골목 시장이 들어서 있어 토산품들을 주로 판매한다. 앙카라 성 입구에 위치한 라흐미 코치 박물관(Rahmi Koç Müzesi)은 현재 터키에서 가장 큰 재벌인 '코치 그룹'의 회장 라흐미 코치의 생전 유품과 그의 컬렉션, 코치 그룹에서 생산한 옛 제품들을 볼 수 있다. 역시 재벌은 뭔가 스케일이 다른지 독일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들을 다 수집해놓았다. 라이벌 기업인 사반즈(Sabancı)도 마르딘에 박물관을 두었는데, 그곳도 기회가 된다면 가보자.
앙카라 성 서북쪽에는 로마 유적이 여럿 남아있다. 위성 사진 서북쪽은 목욕탕, 동남쪽은 아우구스투스 신전
- 로마 시대 극장
최근 정비된 극장 유적. 일부남아 잔존하던 관람석 위에 (현지산이기는 하지만)
- 카라칼라 목욕탕 (Roma Hamamı)
- 아우구스투스 신전 (Augustus Tapınağı)
- 공화국 박물관 (Cumhuriyet Müzesi)
- 독립전쟁 박물관 (Kurtuluş Savaşı Müzesi)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최초 수립 당시 각료들과 함께 기도을 하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튀르키예 전 대통령의 모습
1920년 4월 23일, 튀르키예 최초의 국회가 열렸을때 의사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위의 공화국 박물관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현재 공화국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공화국 수립 이후 1924년부터 사용된 의사당 건물이다. 내부에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과 관련된 물품, 자료들을 전시하지만 아늣카비르의 전시물과 어느정도 겹치기 때문에 시간이 급한 여행자들은 일반적으로 넘긴다.
- 아타튀르크 영묘, 아느트카비르 (Anıtkabir)
튀르키예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2대 대통령(겸 장군)인 이스메트 이뇌뉘가 잠들어있는 곳.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튀르키예에 방문하는 귀빈들은 반드시 한 번 거치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아타튀르크 전시관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돌무쉬를 타고 바흐첼리에빌레르 방향으로 가거나 아니면 지하철을 타고 아나돌루(Anadolu)역[9]에서 내리면 가깝다. 아늣카비르 안에는 아타튀르크의 유물과 터키 독립전쟁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으니 한번 가보자. 단, 여름에는 양산과 자외선 차단 크림을 미리 발라둘 것. 1 km나 되는 영묘에 아스팔트와 잘 닦아놓은 돌바닥을 걸어오는데도 그늘이 없다!!! 참고로 입장료는 무료. 또한 적시에 가면 박물관 입구까지 데려다주는 무료 셔틀버스(Servis)를 탈 수도 있다. 입구에 짐 맡기는 곳의 헌병에게 물어볼 것. 참고로 이곳은 튀르키예군에 있어서도 특이한 곳인데, 오로지 이곳만을 수호하기 위한 사령부가 하나 있다(...) 육해공 3군통합부대로 매일 짝수시간 정각에 위병교대식을 한다.
- 민족학박물관 (Etnografya Müzesi)
- 한국 공원 (Kore parkı)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튀르키예 방문을 할 당시 이곳의 상태가 영 안 좋아서 한국 대사관에서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하게 되고 '웬만하면 오는게 좋지 않겠냐' 정도의 발언을 해서 패키지에 끼어서 가게 된다. 대체로 새벽에 잠깐 보고 카파도키아로 가기 때문에 안까지 들어가기는 좀 힘들다.
서울특별시와 자매 결연을 맺은 도시이기 때문에 서울 여의도에도 앙카라공원이 있다. 영화 아일라의 실제 주인공 김은자와 슐레이만 터키 육군 대위가 해후한 곳도 이 곳 앙카라공원이다.
- 크즐라이 지구(Kızılay, 신 시가지 중심지)
여기는 서울로 따지면 명동, 신촌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실제로 쇼핑센터와 술집, 식당, 클럽들이 밀접해있는 곳이다. 다만 이스탄불의 중심가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국으로 치자면 웬만한 수도권 내 중소도시 역세권 정도 느낌. 기념품을 원한다면 이스탄불보다 싼 가격으로 이곳에서 쇼핑을 해도 괜찮다. 인근에 코자테페 사원(Kocatepe Camii) 지하에는 베엔딕(Beğendik)이라는 대형마트가 있는데 이곳에서 여행에서 사용할 생필품과 식량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관광객들을 배려해서인지 로쿰 같은 튀르키예 과자들이나 책, 기념품 같은 것도 파니까 한번 꼭 가보자. 정말 싸다.[11]
- 투즈 괼뤼 (Tuz gölü - 소금호수)
튀르키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앙카라에서 네브쉐히르(괴레메) 혹은 카이세리로 가는 경로에서 볼 수 있다. 족히 1시간을 달려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넓으니[12] 차 안에서 구경하는 것도 가능. (단, 좌석 오른쪽 창가에 앉아야 볼 수 있다.) 중앙 아나톨리아에 갇혀버린 바다로, 염도는 사해보다도 더 짠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얕아서 물에 둥둥 떠다니는 체험은 못한다고 한다. 건기에는 호수가 아니고 그냥 딱딱한 눈밭[13] 같으니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으면 우기를 노리는게 좋다. 튀르키예 소금의 7할이 여기서 생산될 정도로 품질도 괜찮다고.[14] 앙카라 버스터미널(Aşti)에서 1~2시간에 한대씩 출발하는 투즈괼뤼 세야핫(Tuzgölü Seyahat) 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데, 워낙 자가용이나 투어로 오는 곳이다 보니 기사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주의.
- 하투샤 (Hattuşaş)
하투샤 유적 근처에는 터키어로 '글자가 쓰여진 바위'라는 뜻의 야즐르카야(Yazılıkaya) 유적이 있으며, 히타이트 시절에 조각된 바위비석들을 볼 수 있다. 중요한 유물들은 거의 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있기는 하지만 현지에도 유적과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복원해놓은 히타이트 시절의 요새도 볼 수 있다. 초룸 인근에는 아마시아(Amasya)가 있으며, 이곳도 조용한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 고르디온 (Gordion / Γόρδιον)
6. 교통
앙카라가 명색이 튀르키예의 수도라서 그런지 오토가르(고속버스터미널)[15]에서 전국범위로 버스가 연결되어 있다. 이스탄불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서북쪽 끝에 있다보니 동부지방이나 조그만 시골마을로 가는 버스들은 잘 없는데 비해 앙카라로 가는 버스는 다 있다는 것.[16] Kamil Koç나 Metro, Özen turizm, Tatlıses 같은 쟁쟁한 버스회사들이 여러 노선들을 중복시켜서 운행하기 때문에 경쟁이 붙어서 고속버스 운임도 저렴한 편이다. 터키어 실력이 된다면 흥정해서 더 깎을 수도 있으니 참고할 것.철도의 경우 이스탄불과 고속철도인 YHT로 오고 갈수 있는데 앙카라 중앙역에서 열차를 탈 수 있다. 이스탄불까지 3시간 30분가량 걸린다.
개별로 앙카라를 방문하면 지하철과 버스가 있는데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버스는 이용하기가 많이 난감한 편이어서 지하철을 이용하게 된다. 어차피 지하철이든 버스든 EGO kart라는 교통카드로 통하며, 버스의 경우 행여나 개인버스(Özel halk otobüsü)에 타면 EGO카드가 통하지 않기때문에 안에 있는 차장에게 돈을 줘야한다.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 1호선 색깔에 가까운 버스는 에고카트로만 요금을 낼 수 있고 4호선 색깔과 비슷한 버스는 현금버스임) 오토가르(AŞTİ)는 종착역에 있으며, 유일한 환승역인 크즐라이를 중심으로 왕복하게 되는데 빈카드(보증금 5리라)를 사고 거기에 요금을 충전하는 식으로 개편되었다. 기본요금은 2.50리라이며, 학생요금은 1.75리라인데, 터키에 재학하는 학생들만 해당된다. 개인버스의 차장에게 학생이라고 말하면 학생요금으로 탈 수 있기는 하지만 진짜 유학생처럼 터키어를 하지 않는 이상은 무리.
그나마 과거에는 앙카라 오토가르에서 중심가까지 무조건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야 했지만 이젠 도착 터미널에서 밖으로 나가면 앙카라 곳곳으로 무료운행하는 시영 세르비스(셔틀)를 탈 수 있다. 크즐라이(Kızılay)나 울루스(Ulus)로 가고 싶다면 각각 앙카라대학, 오페라에서 내리면 된다. 한국대사관에 볼일이 있다면 크즐라이 백화점(Kızılay AVM) 건너편에 위치한 귀벤 공원(Güven Parkı)을 지나는 413번 버스를 타고 파라비(Farabi) 병원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참고로 정거장을 찾기는 힘들지만 울루스의 아타튀르크 동상 인근과 오페라, 스히예에서도 이 버스를 탈 수 있다.
조언을 주자면, 울루스나 스히예, 앙카라역 일대에서 오토가르로 가야할 경우 지하철보다 돌무쉬로 가는게 훨씬 더 빠르다.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갖고 있을 경우에도 엔간해선 돌무쉬에서 받아주니 타도 상관없다. 버스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울루스에서는 버스정거장 위치가 좀 애매한 곳에 있고, 크즐라이나 스히예에서 탈 경우 어차피 울루스를 지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더 잡아먹게된다. 크즐라이는 앙카라이라는 지하철 노선이 크즐라이와 아쉬티를 이어주기 때문에 그거 타고 한 방에 오토가르까지 갈 수 있다.
만약에 관광을 목적으로 앙카라에 왔다면, 지하철로 중요한 관광지와 숙소는 접근 가능하다. 저렴하지만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는 숙소들은 울루스에 몰려 있고, 언덕 위의 게제콘두지역만 가지 않는다면 치안도 나쁘지 않다. 고급 숙소들은 크즐라이에, 관광지들은 (아늣카비르를 제외하면) 이 두 역 사이에 몰려있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택시값이 상당히 저렴한 곳이다. 2018년 상반기 기준으로 택시 기본요금이 4.1리라였다. 앙카라 중앙역에서 언덕배기인 앙카라 성 입구 사이의 3킬로미터 길은 굉장히 언덕이 가파르고 오르기 힘든 곳인데 택시를 타고가면 비싸게 줘봤자 15-20리라 사이이다. 만약에 조금 더 걸어서 울루스의 아타튀르크 상을 지난 다음 재래시장 입구에 서있는 택시를 타면 6-8리라에도 갈 수 있다. 일행이 많거나 힘들면 주저하지 말고 택시를 타자. 다만 관광도시들과 달리 앙카라 택시기사들은 거의 영어를 못 한다.
항공의 경우 앙카라 에센보아 공항이 있다.
7. 문화
Ulus, Cebeci, Çankaya (울루스, 제베지, 찬카야)
Gardaş deriz kankaya (우리는 형제라고 부르지 친구들에게)
Bize her yol Paris değil (우리에게 모든 길은 파리가 아니라)
La bize her yer Ankara (임마, 우리에게 모든 곳이 앙카라라고)
2023년 현재 앙카라하면 튀르키예인들이 떠올리는 노래중 하나
Gardaş deriz kankaya (우리는 형제라고 부르지 친구들에게)
Bize her yol Paris değil (우리에게 모든 길은 파리가 아니라)
La bize her yer Ankara (임마, 우리에게 모든 곳이 앙카라라고)
2023년 현재 앙카라하면 튀르키예인들이 떠올리는 노래중 하나
앙카라인하면 공화국 수립 이후 수도가 되어 케말주의의 중심지의 역할을 했다. 때문에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서구화의 영향을 받아왔던 이스탄불과 비교해도 진보적이고 서구적인 터키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반면에 울루스, 제베지, 친친을 비롯한 옛 앙카라 지역들은 중부 아나돌루 지방 특유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잔존하여 앙카라인들끼리도 서로 디스한다.
이스탄불에 비해 앙카라의 이미지는 좀 더 시골같고 향토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앙카라 사투리로 '남자'를 bebe (베베)라고 부르는데, 특히 친친 베베시(Çinçin bebesi)라고 불리는 친친 동(Çinçin mahallesi)의 게제콘두 주민들은 성질 더럽고 사나운 상남자로 앙카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하다(...) 그리고 튀르키예에서 역대급 인기를 얻어 6편까지 나온 영화인 레젭 이베딕(Recep İvedik)도 설정상 고향이 앙카라의 이베딕인데, 덩치는 멀때같이 크고 장난기 가득하고, 하는 행동도 더럽고, 무례하지만 그러면서도 선은 넘지 않고, 애국심과 자기 사람들 챙기는 것 만큼은 철저한 캐릭터가 인기를 얻었다.
8. 기타
튀르키예 하면 이스탄불이 워낙 유명한데다 튀르키예에서도 정작 수도 앙카라보다 이스탄불의 규모가 더 커서 이스탄불이 튀르키예의 수도인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만큼 인지도 낮은 수도 중 하나. 게다가 관광지도 이스탄불에 많기에 더욱 그러한 게 크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드니와 멜버른 간 싸움으로 인해 중간 지점으로 중재된 원주민의 땅 캔버라와 달리, 앙카라는 이스탄불보다도 더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튀르키예를 여행한다면 앙카라도 함께 들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됐다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관광지나 유물이 많다고는 할 수 없어서 패키지 여행에서도 앙카라는 일정에 없는 경우가 많다.서울특별시의 두 번째 자매결연 도시. 1968년 대만 타이베이에 이어서 1971년 앙카라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자매결연 당시 한창 개발이 진행되던 곳이 여의도였기 때문에, 한쪽 끝에 이 도시의 이름을 딴 '앙카라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17] KBS 별관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가끔 KBS2의 아침프로그램에서 날씨 같은 것을 전할 때 앙카라 공원에 나가서 진행하기도 한다. 앙카라에도 한국 공원으로 한국과 관련된 공원이 있다. 또한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는 앙카라 학교 공원이 있는데, 한국 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이 전쟁고아들을 위해 설립한 고아원의 이름을 이곳에서 따서 "앙카라 학원"이라고 이름지었기 때문이다. 아일라의 실제 모델인 튀르키예군 장교 슐레이만 딜빌리이 옹과 할머니가 다 된 한국 소녀인 김은자(아일라)씨도 앙카라 공원에서 재회하였는데 김은자씨와 고아원 동료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앙카라 학교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앙고라 토끼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2015년에 뜬금없이 거대 자쿠 동상이 세워진 적이 있다. 몸통과 사지는 자쿠 II지만 어깨는 자쿠 I의 어깨를 양쪽에 달아놨고, 머리는 철인 28호를 닮았다. 건립 이유는 새로운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문제는 시 예산으로 시에서 세운거라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앙카라 시장은 '로봇을 존중하라' 라는 의미불명의 답변만 해 더욱 빈축을 샀다. 결국 티라노사우루스 동상으로 대체되었으나 이것도 항의를 받아 2017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고 한다.
해발고도가 상당히 높은 도시지만 하수시설문제로 과거 정의개발당의 멜리흐 괵첵(Melih Gökçek)이 도지사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비만 왔다하면 지하차도부터 시작해서 도시가 물바다가 되어버리는 기적이 빈번해서 멜리흐 괵첵의 오스만빠 성향과 결부시켜 사실 멜리흐 괵첵은 앙카라 도지사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해군대신이다(...)라며 해군대신 멜리흐 파샤(Kaptan-ı derya Melih paşa)라는 별명으로 조롱받기도 했다.
2021년 현재 앙카라 도지사인 만수르 야와시(Mansur Yavaş)가 현재 야당권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ASPAVA(아스파바)라는 간판을 단 식당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튀르키예내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고 유독 앙카라에만 많이 보이는 이름인데 대체로 여러 음식들을 준비해놓고, 손님은 거기서 먹고싶은걸 골라서 먹은만큼 돈을 내는 일종의 뷔페식당이다. 대체로 저렴하고, 가정식 위주라 튀르키예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참고로 ASPAVA는 Allah(알라여), Sağlık(신체의 건강과), Para(돈과) Afiyet(식사후 건강을) Versin(주소서), Amin(아멘)의 약자이다. 1959년 한 소설구절에서 인용해서 처음으로 ASPAVA식당이 열렸는데 그후 유행이 되어 앙카라 곳곳에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 구단으로는 겐츨레르비를리이 SK와 MKE 앙카라귀쥐가 있다.
9. 정치
공화인민당의 텃밭이다, 이즈미르 주에 비해서는 AK당의 지지율도 나오는 편이다[1] 광역권을 무시하고 행정구역으로만 따진다면 전세계에서 (베이징 다음으로) 가장 넓은 수도이다.[2] 튀르키예어를 배운다면 다른 지방 사투리는 접할 일이 많지 않겠지만, 앙카라 사투리(정확하게 말하면 중부 아나톨리아 방언)는 접할 일이 많을 것이다. 이 사투리는 문법도 조금 특이해서, yapacak mısın? (할 거야?)을 yapcan mı?라고 줄인다. 좀 더 설명하자면, 가지안테프를 중심으로 한 남동부방언에서는 yapıcın mı? 혹은 edicin mi?라고 하고, 에게 방언, 특히 이즈미르에서는 yapçan mı?라고 앞의 자음에 따라 무성음화된다.[3] 로마-오스만 시대에 번영한 앙카라의 역사를 상징한다. 사실 하즈 바이람 모스크 일대는 앙카라에서도 특히 낙후된 구역이었지만 2015년 이후 재개발로 깔끔해졌다. 하지만 재개발이 현재진행형이라 뒷골목으로 가면 아직도 낙후된 골목들을 볼 수 있다.[4] 다만 현대적으로 개발된 것은 튀르키예의 수도가 된 후가 맞다.[5]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 현상 때문에 도시로 가난한 서민이나 농민들이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6] 시밋은 일종의 빵으로, 1리라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원이다. 사실 그리스로 올라가면 물가가 치솟는데 튀르키예가 그나마 유럽에서 가장 싼 정도.[7] 그나마 현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 복제품을 세워놓아 구색은 맞추어 놓았으며, 하투샤의 일부 가옥들은 거의 완전히 복원되어 옛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8] 옛날에나 쓰던 지명이라 택시기사들에게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9] 예전 이름은 탄도안(Tandoğan)이었지만 2016년 바뀌었다.[10] 6.25전쟁 참전의 인연인지 튀루키예는 한국을 형제국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11] 2017년 7월 기준으로 닫혀있으며 운영을 안하고 있다.[12] 면적 약 1600 km². 제주도와 얼추 비슷한 크기이다.[13] 그래도 도구 같은 걸로 조금 파면 금세 물이 나오긴 한다.[14] 그래서인지 소금을 광고하는 간판이 언어별로 쭉 세워져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15]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앙카라에서는 AŞTİ라고 부른다.[16] 굳이 직통으로 동부를 가려 해도 도로 사정상 결국 앙카라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앙카라 오토가르가 이스탄불 오토가르보다 훨씬 낙후되었다. 수도가 아닐 뿐이지 상업, 공업의 중심지는 여전히 이스탄불이기 때문. 뭐가 생산이 되고 장사를 하고 해야 교통도 발달하기 때문에 그렇다. 결국 콩라인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스탄불에 비했을 때지 한국의 고속버스터미널보다는 훨씬 크게 발달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지간한 공항 터미널 수준.[17] 현재는 '자매근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