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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
14세기에 세워진 울루 자미 (대사원)
1. 개요
Muş튀르키예 동부의 도시. 비틀리스에서 서북쪽으로 50km, 바트만에서 동북쪽으로 90km, 에르주룸에서 남쪽으로 110km, 빈괼에서 동남쪽으로 70km 떨어진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9만으로, 무슈 도의 주도이다. 유서 깊은 도시로, 시내에는 중세 시기 모스크 등의 유적이 있고 동남쪽 외곽에는 하스페트 성채와 아라켈로츠 수도원 등이 남아있다. 동쪽 10km 지점에는 무쉬 술탄 알프 아르슬란 공항이 자리한다.
2천년간 아르메니아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후 현재는 쿠르드계 주민이 대부분이고, 수천의 개종한 아르메니아계도 있다. 인근 볼거리로는 북쪽 15km 지점의 셀주크 시기 유적인 무라트 다리와 동북쪽 50km 지점 에센릭의 울루 자미 등이 있다. 관할 읍 중에 말라즈기르트와 아흘라트 역시 유서가 깊다. 해발 1350m의 고지대에 입지했지만 분지라 여름에는 35도를 넘을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
2. 역사
누가 지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은 하스페트 성채
지명은 옛 아르메니아 시기의 무슈쉬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다시 님로드가 창조한 거대한 쥐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무쉬는 페르시아어로 쥐를 의미)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령 타론 지역의 중심지였고, 969년 동로마 제국령이 되었다가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아흘라트샤나 아이유브 왕조 등이 지배하였다. 10-13세기 인구 2만 5천에 이를 만큼 번영하던 도시는 몽골 제국의 습격 후 쇠퇴하였고, 1387년에는 티무르에게 항복하였다. 16세기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고, 1821년 그리스 독립 전쟁을 틈타 카자르 왕조가 침공했으나 일시 점령에 그쳤다.
2.1. 근현대
아라켈로츠 수도원의 파괴 전 모습과 현재 모습 |
20세기 초엽 2만의 주민 중 1만 1천이 쿠르드계 무슬림, 9천이 아르메니아계 기독교도였다.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 6-7월에 걸쳐 일대의 아르메니아 인들은 학살 혹은 징집되었다. 동시에 4세기 아르메니아의 기독교화를 이룬 성 그레고리오스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1천여년간 서부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중심지 중 하나이던 아라켈로츠 수도원 역시 습격당하고 버려졌다. 그나마 남아있던 수도원 건물 역시 1960년대 폭파되어 일부만 잔존한다. 1차 대전기인 1916년 2월 러시아 제국군이 점령했다가 이듬해 4월 30일 오스만 군이 수복하였고, 도중 카라반사라이 등의 유적이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