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27 15:50:04

빌레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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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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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바예지트 1세가 조부를 기리며 세운 오르한 가지 자미 (오르한 모스크)

1. 개요2. 역사3. 볼거리

1. 개요

Bilecik

튀르키예 북서부의 도시. 부르사에서 동쪽으로 30km, 부르사에서 남쪽으로 75km 떨어진 고원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7만 4천명이다. 동남쪽의 쇠위트와 함께 오스만 베이국의 초기 거점이었고, 오르한 모스크와 셰이흐 에데 발리 영묘 등 초창기 건물들이 남아있다. 근현대 시기까지 비단 생산 등 직물업이 발달했다. 큰 도시가 아님에도 고속철도인 YHT 역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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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흐 에데 발리와 발라 하툰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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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지크 일반 기차역

동로마 제국 시기 마을과 벨레코메 (혹은 벨리코미스) 요새가 있었고, 발칸 반도에서 이주된 세르비아 및 불가리아 슬라브 인들이 거주했다. 그러다 1299년경 오스만 1세가 점령하여 쇠위트와 함께 오스만 베이국의 주요 거점 중 하나가 되었다. 지명은 벨리코메가 튀르크화 된 빌레지크로 정착되었다. 1326년에 사망한 오스만 1세의 아랍계 동료이자 오스만 제국의 첫 카디 (법관)인 이마뒷딘 무스타파 빈 이브라힘 (셰이크 에데 발리)의 무덤이 빌레지크에 조성되었다. 또한 14세기 말까지 오스만 1세 모스크와 오르한 모스크가 세워졌다.

오스만 제국시기 빌레지크는 부르사와 함께 비단 생산지였고, 여러 공방이 있었다. 그외에 철광석도 생산되었다. 19세기 무렵 빌레지크는 휘다벤디가르 빌라예트 산하 에르투으룰 산작의 치소가 되었다. 1891년 아나톨리아 철도의 역이 생기며 1천여이던 인구가 급증했다. 1920년 12월, 빌레지크 역에서 앙카라 정부의 무스타파 케말이 이스탄불 조정 사절단과 만나 담판했으나 유의민한 결과는 없었다. 터키 독립 전쟁 당시 비단 공방이 모두 불탔고, 뒤이은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1만 2천에 달하던 인구는 4천여로 줄었다.

3.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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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가지 자미로도 불리는 파괴된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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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흐 에데 발리와 발라 하툰 부녀의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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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시대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퀴취크 하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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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그리스 군에게 파괴된 채로 남아있는 오르한 가지 이마레트 (구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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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세워진 하미디예 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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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세워진 시계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