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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수도 الرياض 리야드 | Riyadh | ||
지역 | 리야드주 | |
면적 | 1,913km² | |
인구 | 6,924,566 명 (2022년 인구 조사) | |
인구 밀도 | 4,015명/km² | |
1인당 GDP | US$ 32,372 | |
웹사이트 | 리야드 무역관 (KOTRA)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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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심가의 스카이라인. 가장 높은 마천루는 킹덤센터다. |
2019년 미국 타임스퀘어를 모방해 세워진 리야드 시티 대로 (بوليفارد رياض سيتي) |
원래 네지드 지방의 지방 도시였으나 1824년 사우드가의 투르키가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서 기존 수도인 디리야에서 리야드로 천도한 이후 계속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천도라 할 것도 뭐한 게, 디리야에서 리야드 구시가지까지는 겨우 20여 km 떨어져 있고 그마저도 현대의 도심 확장으로 인해 리야드 시가지와 이어져 있다.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브 운동의 본거지이며 1983년까지는 외국의 대사관 설치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 때까지는 제다에 각국 공관이 있었으며 제다는 홍해의 핵심 항구이자 메카의 창구 노릇까지 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관문 노릇을 하고 있다.[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동 지역이 석유로 급부상하자 떼돈을 벌게 된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에서 돈을 쏟아 부어 돈지랄의 향연이 넘치는 현대 도시로 급속히 바꿔 놓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사우디는 리야드에 지부를 두지 않은 외국 회사들과 거래하지 않기로 선언하면서 리야드에 더 많은 기업들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름만 걸어놓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다. 관문 공항은 킹 칼리드 국제공항이며 2030 리야드 엑스포, 2034 리야드 아시안 게임 개최 예정지다. 사우디 자체가 석유가 많은 나라답게 주요 교통수단은 자가용이었지만 리야드의 인구 폭증에 따라 교통 체증이 극심해지면서 2020년대에 도시철도가 개통될 예정이라고 하며 세계 최대의 녹지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 킹 파하드 거리 근처에 킹 압둘라 금융지구가 세워지면서 새로운 중심이 개발 중이다. 사우디 자체가 위낙에 돈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사막국가라는 이미지답지 않게 숲을 많이 꾸며놓았지만 그래도 사방에다가 숲을 가꿔놓은 수준은 아니라서 황량한 사막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구경할 곳은 킹덤 타워[3], 시계 타워 등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외곽의 디리야 유적지와 앗 다후 지구의 마스마크 성채, 압둘 아지즈 역사 센터와 국립박물관 등도 가 보면 좋다. 전시장으로는 구 왕궁인 킹 압둘아지즈 국제 컨퍼런스 센터와 리야드 국제전시장(RICEC)가 있다.
2. 역사
서북쪽 외곽 앗 투라이프 지구에 위치한 디리야 궁전(Old Diriyyah Palace) 또는 사드 빈 사우드 궁전(Saad ibn Saud Palace)
고대의 지명은 하즈르(حجر)였고 바누 하니파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하즈르는 아라비아 중앙부인 알 야마마의 중심지였고, 이슬람 제국 시대에 총독들이 파견되었다. 866년부터 일대는 현지 우카이다르 왕조의 지배 하에 놓였는데 이때 중심지가 동남쪽 60km 거리의 알 카라즈로 옮겨진 후 하즈르는 쇠퇴하였다. 다만 14세기 하즈르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야마마의 주요 도시이고 운하와 나무의 도시이며, 주민들은 대부분 하니파 부족이라 기록하였다. 이후 그는 그 부족장과 메카 순례 (핫즈)를 떠났다. 중세가 지나며 하즈르는 무그린, 미칼 등 여러 주거지로 분산되었다. 하즈르란 지명은 현지 문학에만 언급되었다. 그러던 17세기 연대기에서 '리야드'란 지명이 처음 언급되었다.
1737년 현재는 리야드 시가지 남쪽인 만푸하에서 온 피난민 데함 빈 다와스가 리야드를 장악하였다. 그는 일대의 여러 오아시스를 아우르는 성벽을 세웠다. '정원들'을 뜻하는 리야드는 그러한 여러 오아이스 마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1744년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이 리야드에서 서북쪽으로 20km 떨어진 디리야의 군주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동맹을 결성하였다. 두 무함마드는 아라비아 반도를 단일 이슬람 국가 하에 통합하려는 의도 하에 리야드를 침공하였다. 데함은 알 카라즈, 알 아흐사, 나즈란의 바누 얌 등과 동맹하여 이에 맞섰으나 1774년 패주하였고, 리야드는 사우디 군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디리야 토후국, 즉 1차 사우디 국가가 세워졌다. 아라비아 반도를 거의 제패했던 1차 사우디 국가는 1810년대 메흐메드 알리의 이집트 군에게 멸망당하였다.
- 2차 사우디 국가 = 네즈드 토후국 / 자발 샴마르 = 하일 토후국 (바누 라시드)
1818년 오스만-이집트 군대는 디리야를 파괴하였다. 그후 잔당을 규합하여 2차 사우디 국가를 세운 투르키 빈 압둘라는 명목상 메흐메드 알리에 충성하며 야마마 일대를 다스렸는데, 그는 1823년 파괴된 디리야 대신 리야드를 새 수도로 정하였다. 1834년 투르키는 암살당하였고, 그 아들 파이살이 암살자를 죽이고 집권한 후 이집트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이에 1838년 이집트 군대가 파견되었고 파이살은 포로가 되어 카이로로 끌려갔다. 5년 후 탈출한 파이살은 바누 라시드의 도움으로 리야드를 되찾고, 20여년간 안정적으로 네지드를 통치하였다. 하지만 1865년 파이살 사후 벌어진 내분을 틈타 바누 라시드[4]가 리야드를 장악하였다. 그의 리야드 총독인 아미르 압둘 라흐만 빈 술라이만은 구도심의 상징인 마스마크 성채를 지었다.
마스마크 성채 | 1925년 리야드 시가지 전도 |
사우드 왕가의 내분을 규합한 압둘 라흐만 빈 파이살은 1887년과 1889년 리야드를 수복하고 바누 라시드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러나 1891년 1월 압둘 라흐만은 물라이다 전투에서 네지드의 완전 정복을 목표로 남하한 바누 라시드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에게 대패하였다. 이로써 2차 사우디 국가가 멸망한 후 사우드 왕가는 쿠웨이트로 망명였다. 1880년 리야드에서 태어난 압둘 아지즈 빈 압둘라흐만 (이븐 사우드)는 1902년 1월, 마스마크 성채 앞에서 벌어진 리야드 전투에서 바누 라시드의 총독 이븐 아즐란을 전사시키고 도시를 수복하였다. 그가 재건한 네즈드 토후국은 193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명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리야드는 그 수도로써 오일머니의 수혜가 집중되어 발전하였다. 앗 다후 일대에 머물던 시가지는 동서남북 (특히 북쪽) 모든 방면으로 확장되었고, 옛 디리야까지 이르게 되었다.
3.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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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올라야 구역 (حي العليا)
- 맨해튼 타임스퀘어를 모방해 세운 불레바드 리야드 시티 (بوليفارد رياض سيتي). 새해나 국경일 등 행사 때마다 전광판을 활용해 기념한다. 최근에는 사우디의 정치나 외교 노선을 보여주는 곳으로 여겨진다. 위의 두번째 사진에서 보이듯, 2022년 중국 새해 (춘절)을 기념하며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의 친중 행보를 나타내었고 2022년 12월 시진핑의 방문 시에도 중국 오성홍기가 일대에 걸렸다.
3.1. 키디야 프로젝트
공식 홈페이지시설
- 식스플래그 키디야
- 키디야 스피드 파크
3.2. 앗 디리야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유산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문화유산 | 2008년 알 히즈르 고대유적 (마다인 살리흐) الحجر (مدائن صالح) | 2010년 앗 디리야의 앗 투라이프 구역 حي الطريف في الدرعية | 2014년 유서 깊은 제다, 메카로 향하는 관문 جدة التاريخية |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하일 지방 암각화 الفنون الصخرية في منطقة حائل (جبة والشويمس) | 2018년 알 아흐사 오아시스, 진화하는 문화 경관 واحة الأحساء، منظر ثقافي آخذ بالتغير | 2021년 히마 문화지구 منطقة حمى الثقافية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앗디리야의 앗투라이프 지구 | |
영어 | At-Turaif District in ad-Dir'iyah | ||
프랑스어 | District d’at-Turaif à ad-Dir’iyah | ||
아랍어 | حي الطريف في الدرعية | ||
국가·위치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10년 | ||
등재기준 | (iv)[6], (v)[7] (vi)[8] | ||
지정번호 | 1329 |
디리야 유적 지구
사우드 왕가의 본산지로, 적어도 16세기부터 디리야 오아시스에 웅거하다 18세기 초엽 와하비즘으로 무장하여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정복하고 디리야 토후국을 세웠다. 그렇게 한세기 가량 디리야는 네즈드 지방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하지만 1818년 메흐메트 알리 파샤의 이집트 군에게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았고, 동남쪽에 리야드로 대체되었다. 최근 사우디 정부는 제2의 네옴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여 '디리야 게이트'라는 관굉-휴양 도시를 인근에 조성하고 있다.
4. 출신 인물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대다수와 오사마 빈 라덴이 리야드 출신이다. 허나 사우디 왕가는 친미 성향이고 빈 라덴은 반미여서 서로 사이가 나빴다.5. 둘러보기
2030 월드엑스포 유치 입후보 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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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집트는 북아프리카 국가라 아랍권 서남아시아국가로써는 가장 큰 도시다.[2] 이런 역사로 인해 중동 건설 붐에 현지 진출했던 한국 및 외국 기업 대부분은 제다에 사무소를 두고 있었다.[3] 제다에 짓고 있는 제다 타워와는 다르다.[4] 파이살을 도운 대가로 하일의 영지가 주어졌음[5] 2002 ~ 2010년간 사우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7]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8]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