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01:01:21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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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 포스터.
박람회 / 世界博覽會, 萬國博覽會 / World's Fair[1] 또는 Expo
세계박람회기구(BIE)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한국과 엑스포4. 종류5. 역대 엑스포6. 원예전문 엑스포7. 여담8. 같이 보기

1. 개요

세계 여러 나라가 참가하여 각국의 생산품을 합동으로 전시하는 국제 박람회. 1851 런던 엑스포를 그 기원으로, 1928년에 파리에서 체결한 국제 박람회 조약에 따라 가맹국의 주최하에 5년마다 열리며, 주로 공업 제품ㆍ미술 공예품 따위를 출품한다.
-표준국어대사전-
Universal Exposition의 줄임말로 흔히 Expo라고 한다.[2]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는 일본의 명칭을 그대로 들여 온 만국박람회라고 불렀으나, 중간에 세계박람회라고 고쳐서 부르다가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엑스포 쪽을 일반적으로 더 널리 부르게 되었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과거 명칭 대신 국제박람회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1928년 설립된 국제박람회기구라는 국제기구에서 관할한다.

2. 역사

엑스포 초기의 시대상은 중세 유럽으로부터 내려오던 길드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지역적 폐쇄성이 사라지며[3] 각 지역의 산업 발전 정도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나게 되면서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한 데 놓고 비교하는 자리가 필요해졌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1756년에 '영국산업박람회'가 열렸고, 1798년 프랑스정부가 최초의 국영 산업전시회인 '제1회 산업박람회'를 개최했다. 이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박람회의 시초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1849년까지 총 11회 정부의 공식 국영박람회가 개최됬고 이후 더 큰 규모로 박람회를 개최하려다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서 개최가 늦춰지자 영국이 선수쳐서 유리궁전을 짓고 개최한 국영 박람회인 1851 런던 엑스포를 실질적인 세계박람회로서의 시초로 꼽는다. 이 때를 기점으로 자국의 선진 과학 문명의 산물을 통해 국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었다.

의외로 시작이 초라했던 올림픽월드컵과는 달리 엑스포는 초창기 부터 화려한 시작을 했다. 자국이 얼마나 발전되었고 선진화되었는지 과시할 절호의 기회였고 각 나라의 과학적, 예술적, 문화적인 걸작들이 출품되어 한 자리에 모이는 세계 교류의 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의 국가원수들이 직접 나서서 엑스포 개최를 도모했고 이것이 자존심 싸움으로 까지 번져 1937 파리 엑스포때는 독일[4]과 소련은 자국의 파빌리온을 서로 마주본 채로 상대방 보다 높고 거대하게 만들려 했다.[5]

1900 파리 엑스포 때는 무려 2천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는데 당대 인구로 미뤄볼때 엄청난 수준이다[6] 그리고 엑스포의 영향력은 막강해 와인 등급[7] 과 세계 도량형 기구가 엑스포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1904년 올림픽은 원래 시카고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나중에 세인트루이스로 변경했는데 이유가 세인트루이스에 엑스포가 개최 중이라 거기에 모인 관람객들에 편승하려고(...). 한마디로 세계박람회 근처 작은 운동회가 올림픽인, 지금의 위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자 너도나도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혼란[8]을 수습하고자 파리에 국제박람회기구(국제박람회사무국, BIE)가 설립되었고, 이에 의해 공인받은 엑스포만이 공식적인 국제 행사로서의 '세계박람회'가 되었다.[9]

파일:ParisIntExpo1937.jpg

엑스포는 화려했던 만큼 정치 선전의 도구로 너무나도 쉽게 악용되었다. 사진은 1937 파리 엑스포나치 독일 VS 소련으로 불리는 사진이다. 왼쪽이 독일이고 오른쪽이 소련이다. 독일소련은 호스트인 프랑스 국가관의 몇배나 되는 국가관을 짓고 자존심 경쟁을 벌렸다. 아돌프 히틀러이오시프 스탈린은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국가관을 통해 서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선전하였고, 그 끝은 1941년 독소전쟁으로 터져버렸다.

BIE가 설립되면서 엑스포의 명칭도 "등록박람회"는 World's Fair로 정해졌다. Expo는 약칭으로 쓰는 것이다. 인정박람회나 원예박람회는 Expo라는 단어만 쓸 수 있고 World's Fair를 못쓴다. 이 World's Fair라는 표현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이후인 1949년, UN 산하 기구로 BIE가 편입되면서 UN의 세계 표준 상표권으로 등록되었다. 따라서 등록박람회 World's Fair라는 표현을 다른 전시회에서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 Expo에는 이런 조치를 하지 않아서 지역의 박람회를 "엑스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엑스포가 창시될 당시에는 각국의 국력 과시의 장이자, 인류 문명의 성취를 확인하는 장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2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미국을 제외한 각국 경제의 피폐 및 과학 문명에 대한 회의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7 몬트리올 엑스포1970 오사카 엑스포의 성공으로 엑스포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새로운 중흥기를 맞게 되었다. 국력 과시의 장에서 대중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의 장으로서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된 것.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국식 상업주의의 영향은 세계박람회를 마치 흥행을 위한 테마파크인 양 변질되게 한 측면도 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의 많은 엑스포가 환경의 보호나 그 유사한 것을 주제로 삼고 있으나 실상은 엑스포 개최지 주변의 개발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10]이고, 빠르게 발전된 정보 통신수단으로 인해 엑스포의 의미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경우도 많고 극단적으로는 행사 개최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박람회는 관광객 유치 내지는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꾸준히 유치 경쟁이 존재하고 또 개최되고 있다. 특히 유럽 지역의 경우 박람회 문화가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교통이 편리하다 보니[11] 엑스포가 자주 유치되고 또 개최된다.

2017 아스타나 엑스포중앙아시아 지역 최초의 엑스포이다. 유치전 당시 라이벌이 벨기에의 리에주 밖에 없어서 수월하게 엑스포를 따냈다.

차기 2020 두바이 엑스포는 아랍권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다. 이 다음 엑스포 할 나라 돈 무진장 깨지겠네

차차기 2023 부에노스아이레스 엑스포는 개최하며 남미 대륙에서 처음 개최하는 엑스포가 되었다.

2025 엑스포에 월드엑스포로 유치 신청서를 제출한 입후보 도시는 일본 오사카,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아제르바이잔 바쿠이며 2018년 11월 23일 오사카로 결정났다.

3. 한국과 엑스포

한국은 조선 왕조시기인 1883년 최초로 서구로 파견된 사절인 보빙사미국을 방문했을 때 열린 1883 보스턴 기술공업박람회에 비공식으로 물품을 출품하였다. 이때 처음 보스턴박람회를 본 민영익은 “나는 암흑 속에 태어나 광명 속으로 갔다”고 감동하면서 다음해인 1884년한양에서 국제산업박람회를 열겠다고 발표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1889 파리 엑스포에는 민영찬(閔泳瓚)을 대표로 파견하여 참가하였으나 따로 전시관도 마련하지 않았고 그저 참가에만 의의를 둔것이었다. 그 후 본격적인 참가는 1893 시카고 엑스포로서 세계박람회위원회의 초청으로 정경원(鄭敬源)을 파견하여 '제조와 교양관'(Manufactures and Liberal Arts Building)에 전시관을 마련하고 물품을 출품하였다.
파일:1893 시카고박람회 한국관.jpg

국체대한제국으로 바뀐후 1900 파리 엑스포프랑스의 초청으로 참가하였다. 이번에는 전시관없이 참가만 한 1889 파리 엑스포1893 시카고 엑스포때 '제조와 교양관' 한켠에 전시관을 마련한것과는 달리 독립적인 국가관을 세워 훨씬 더 본격적으로 참가하였다. 민영환이 유럽대사로 임명되면서 대표로 갔고 사업가인 루리나를 파리주재총영사로 임명하여 진행시켰다. 대한제국관은 프랑스의 페레(E. Feret)가 설계한 것으로 경복궁 근정전을 모방한 것이었다. 정부 대리인으로 관립 불어학교 교사이자 한국 최초의 사진엽서를 찍었으며 불한사전을 써낸 프랑스인 샤를 알레베크(Charles Alévêque)가 있었다.

파일:1900 파리만국박람회 대한제국관.jpg파일:F20080304124607_tb_webzine.jpg
파일:1900 파리만국박람회 한국관 사진.jpg

이후 베트남에서 개최된 비공식 박람회인 1902 하노이 엑스포에 물품을 보내고 박람회 임시사무소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이후부터는 대한제국은 박람회에 참가 할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라가 없어진 경술국치 이후에는 일제의 주도로 비공식 박람회인 1910 영일박람회,1922 평화기념동경박람회(平和記念東京博覽會)등에 '식민지 조선'이 참가하였고 일제강점기시기 조선총독부가 일본에서 열린 박람회, 공진회에 참여한 것도 104차례에 이른다. 조선에서도 크고 작은 박람회와 공진회가 173개나 열렸다. 특히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오주년기념(始政五周年記念) 조선물산공진회 때에는 궁궐을 파괴하면서 전시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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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 광복후에는 1962년 시애틀 엑스포에 대한민국 국명으로 첫 참가 하였으며 이 때부터 계속 참가하고 있다. 한편 1967년 홍콩에서 한국섬유전시회를 개최한 뒤 1968년에는 국내 최초로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을 주제로 해외 10개국, 국내외 293개 업체 참가한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를 개최하였으며 1975년에는 75특별상품전(’75 Special Merchandise Show)을 개최하였고 그 후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매년 2회 봄, 가을에 서울교역전(Seoul Trade Show)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이 서울교역전을 모태로 하여 1982년부터 서울국제무역박람회(SITRA82: Seoul International Trade Fair 82)[12]를 열었으며 1993년에 대전에서 첫 인정박람회를 개최하였고 2012년 두번째로 여수 엑스포를 개최하였다.

4. 종류

세계박람회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세계박람회기구(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에 의해 개최 주기 및 품격이 관리된다. 1996년 이후 시행된 현행 규약에 의하면 세계박람회는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주제로 하는 등록박람회와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인정박람회, A1 박람회라 불리는 원예전문 박람회까지 3가지로 분류된다. 단, 원예전문 박람회는 BIE 주관이긴 하지만 자연을 소재로 하는만큼 분야가 다르다. 원예박람회는 엑스포 특유의 상업성을 철저하게 제한받는다.

등록박람회(Registered Exhibition, World's Fair)는 1800년대부터 존재하던 만국박람회의 전통을 계승한 엑스포이다. 5년 간격으로 '0'과 '5'로 끝나는 해[13]에만 개최되고 최대 6개월 동안 열릴 수 있으며, 전시규모는 무제한(!)이다. 주제가 있지만 일반적인 주제로 충분하며,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하게 된다. 또한 참가국이 각자의 비용과 설계로 전시관을 건립한다.
  • 사실 0년 규칙은 최근에야 정례화 된 것이다. 첫 등록박람회인 벨기에 브뤼셀 박람회는 1935년에 개최되었으나 1937년 파리, 1939년 뉴욕, 1949년 아이티, 1958년 브뤼셀, 1962년 시애틀, 1967년 몬트리올, 1992년 세비야의 7회는 규칙를 따르지 않았다. 1970년 오사카 박람회만 규칙 준수한 셈. 물론 이것은 1996년에 BIE가 해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과거의 박람회를 재분류한 것이기때문에, 지금 분류와는 맞지 않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1984 뉴올리언스 엑스포만 해도 등록박람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World's Fair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반면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ion, International Expo)는 등록박람회에 비해 규모가 작은 박람회이다. 즉, 등록박람회가 열리는 사이에 개최되며 최대 3개월만 개최가능하고, 전시규모는 25만㎡ 이내로 제한된다. 명확한 주제가 있어야 하며, 모든 전시는 그와 관련된 것에 한정된다. 각국의 전시관은 개최국이 건설하여 제공한다.

이처럼 엑스포를 두 가지 형태로 구별하게 된 이유는 결국, 돈 문제(...)이다. 새로이 엑스포를 개최하고자 하는 국가에서는 바로 전회 엑스포보다 더 큰 규모의 엑스포를 개최하고자 하게 되고 따라서 갈수록 엑스포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 규모가 커서 나쁠 것이 뭐가 있나 싶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규모에만 신경쓴 나머지 행사 자체의 품격(...)이 떨어질 수 있으며, 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는 나라가 한정되게 되는 사태에 이른다거나, 엑스포를 치르는 나라가 거덜나는(...) 일을 맞게 되어버려 장기적으로 엑스포 행사 자체의 운명에 약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대규모 박람회는 5년에 쿨타임 차면 한 번씩만 열 수 있도록 하되, 굳이 엑스포가 너무 개최하고 싶어 죽겠다면 엑스포 열게 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인정박람회로서 제한된 규모로 개최할 수 있도록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1993 대전 엑스포의 경우 세계박람회기구에서 인정박람회로 취급하고 있지만, 위의 개정된 규약 시행 전인 1993년에 개최었으므로 규모면에서는 위 분류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전시공간 규모가 현행 인정박람회에서 허용되는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하는 50만㎡이다. 2012 여수 엑스포의 경우 개정된 규약 시행 후에 개최되는 인정박람회로서 위 분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따라서 전시공간의 규모가 대전 엑스포보다 작다.

5. 역대 엑스포

파일:BIE_Logo.png 역대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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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2회 3회 4회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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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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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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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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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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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
6회 7회 8회 9회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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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
필라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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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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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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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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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
파리
11회 12회 13회 14회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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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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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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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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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세인트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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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브뤼셀
16회 17회 18회 19회 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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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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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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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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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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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바르셀로나
21회 22회 23회 24회 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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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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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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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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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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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헬싱키
26회 27회 28회 29회 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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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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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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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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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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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포르토프랭스
31회 32회 33회 34회 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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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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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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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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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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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나폴리
36회 37회 38회 39회 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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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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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헬싱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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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베이트다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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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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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브뤼셀
41회 42회 43회 44회 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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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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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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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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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몬트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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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샌안토니오
46회 47회 48회 49회 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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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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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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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스포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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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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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플로브디프
51회 52회 53회 54회 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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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녹스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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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뉴올리언스
파일:일본 국기.png
1985
츠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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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플로브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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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밴쿠버
56회 57회 58회 59회 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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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브리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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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플로브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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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제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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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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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대전
61회 62회 63회 64회 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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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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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하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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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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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사라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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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상하이
66회 67회 68회 69회 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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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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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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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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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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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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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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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의정서 이전 박람회 등록박람회 인정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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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E 기준 구분
등록박람회(World's Fair)
인정박람회(International Expo)
1933 BIE 의정서 이전 세계박람회

거의 다 빨간색이다...
엑스포 목록
회차 연도 개최국가 개최도시 비고
1 1851년 영국 1851 런던 엑스포 최초의 세계박람회, 유럽 최초 개최, 수정궁에서 개최
2 1855년 프랑스 제2제국 1855 파리 엑스포
3 1862년 영국 1862 런던 엑스포
4 1867년 프랑스 제2제국 1867 파리 엑스포
5 187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873 빈 엑스포
6 1876년 미국 1876 필라델피아 엑스포 유럽 이외 대륙에서 최초 개최, 북미 최초 개최
7 1878년 프랑스 제3공화국 1878 파리 엑스포
8 1880년 영국오스트레일리아 1880 멜버른 엑스포 오세아니아 최초 개최
9 1888년 스페인 1888 바르셀로나 엑스포
10 1889년 프랑스 제3공화국 1889 파리 엑스포 조선 국명으로 최초 참가, 에펠탑건설
11 1893년 미국 1893 시카고 엑스포 한국 역사상 최초 전시관 마련
12 1897년 벨기에 1897 브뤼셀 엑스포
13 1900년 프랑스 제3공화국 1900 파리 엑스포 대한제국 국명으로 참가하고 국가관을 마련
알렉상드르3세 다리 건설
1900 파리 올림픽의 주행사로 개최
14 1904년 미국 1904 세인트루이스 엑스포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의 주행사로 개최
15 1905년 벨기에 1905 리에주 엑스포
16 1906년 이탈리아 왕국 1906 밀라노 엑스포
17 1910년 벨기에 1910 브뤼셀 엑스포
18 1913년 벨기에 1913 헨트 엑스포
19 1915년 미국 1915 샌프란시스코 엑스포
20 1929년 스페인 1929 바르셀로나 엑스포
21 1933년 미국 1933 시카고 엑스포
22 1935년 벨기에 1935 브뤼셀 엑스포
23 1936년 스웨덴 1936 스톡홀름 엑스포
24 1937년 프랑스 제3공화국 1937 파리 엑스포 제2차 세계 대전(독소전쟁)의 리허설
25 1938년 핀란드 1938 헬싱키 엑스포
26 1939년 벨기에 1939 리에주 엑스포
27 1939년 미국 1939 뉴욕 엑스포
28 1947년 프랑스 제4공화국 1947 파리 엑스포
29 1949년 스웨덴 1949 스톡홀름 엑스포
30 1949년 아이티 1949 포르토프랭스 엑스포 개발도상국 최초 개최
중남미 최초 개최
31 1949년 프랑스 제4공화국 1949 리옹 엑스포
32 1951년 프랑스 제4공화국 1951 릴 엑스포
33 1953년 이스라엘 1953 예루살렘 엑스포 아시아 최초 개최
중동 최초 개최
34 1953년 이탈리아 1953 로마 엑스포
35 1954년 이탈리아 1954 나폴리 엑스포
36 1955년 이탈리아 1955 토리노 엑스포
37 1955년 스웨덴 1955 헬싱보리 엑스포
38 1956년 이스라엘 1956 베이트 다곤 엑스포
39 1957년 서독 1957 베를린 엑스포
40 1958년 벨기에 1958 브뤼셀 엑스포
41 1961년 이탈리아 1961 토리노 엑스포
42 1962년 미국 1962 시애틀 엑스포 광복이후 대한민국 국명으로 최초 참가
43 1965년 서독 1965 뮌헨 엑스포
44 1967년 캐나다 1967 몬트리올 엑스포
45 1968년 미국 1968 샌안토니오 엑스포
46 1970년 일본 1970 오사카 엑스포 동아시아 최초 개최
역대 최다 관람객 2위(6,420만 명)
47 1971년 헝가리 인민 공화국 1971 부다페스트 엑스포 공산권 최초 개최
48 1974년 미국 1974 스포캔 엑스포
49 1975년 일본 1975 오키나와 엑스포
50 1981년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1981 플로브디프 엑스포
51 1982년 미국 1982 녹스빌 엑스포
52 1984년 미국 1984 뉴올리언스 엑스포
53 1985년 일본 1985 츠쿠바 엑스포
54 1985년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1985 플로브디프 엑스포
55 1986년 캐나다 1986 밴쿠버 엑스포
56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 1988 브리즈번 엑스포
57 1991년 불가리아 1991 플로브디프 엑스포
58 1992년 이탈리아 1992 제노바 엑스포
59 1992년 스페인 1992 세비야 엑스포
60 1993년 대한민국 1993 대전 엑스포 대한민국 첫 개최
61 1998년 포르투갈 1998 리스본 엑스포
62 2000년 독일 2000 하노버 엑스포
63 2005년 일본 2005 아이치 엑스포
64 2008년 스페인 2008 사라고사 엑스포
65 2010년 중국 2010 상하이 엑스포 역대 최다 관람객(7540만 명)
66 2012년 대한민국 2012 여수 엑스포 대한민국 두번째 개최
67 2015년 이탈리아 2015 밀라노 엑스포
68 2017년 카자흐스탄 2017 아스타나 엑스포 중앙아시아 최초 개최
이슬람권 최초 개최
69 2020년 아랍 에미리트 2020 두바이 엑스포 아랍권 최초 개최
역대 최대 규모 엑스포
도시 전체가 엑스포장
70 2023년 아르헨티나 2023 부에노스아이레스 엑스포 남미 최초 개최
71 2025년 일본 2025 오사카 엑스포
72 2027년 미정 2027 엑스포
73 2030년 미정 2030 엑스포

6. 원예전문 엑스포

파일:BIE_Logo.png 역대 원예박람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bottom:-0px"
1회 2회 3회 4회 5회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60
로테르담
파일:독일 국기.png
1963
함부르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png
1964
파일:프랑스 국기.png
1969
파리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72
암스테르담
6회 7회 8회 9회 10회
파일:독일 국기.png
1973
함부르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png
1974
파일:캐나다 국기.png
1980
몬트리올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82
암스테르담
파일:독일 국기.png
1983
뮌헨
11회 12회 13회 14회 15회
파일:영국 국기.png
1984
리버풀
파일:일본 국기.png
1990
오사카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92
헤이그
파일:독일 국기.png
1993
슈투트가르트
파일:중국 국기.png
1999
쿤밍
16회 17회 18회 19회 20회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2002
하를레메르메이르
파일:독일 국기.png
2003
로스토크
파일:태국 국기.png
2006-07
치앙마이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2012
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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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안탈리아
21회 22회 23회 24회 25회
파일:중국 국기.png
2019
베이징
파일:카타르 국기.png
2021
도하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2022
암스테르담-알메레
파일:폴란드 국기.png
2024
우치
파일:랜덤 국기.png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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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예 박람회 목록
회차 연도 개최국가 개최도시 비고
1 1960년 네덜란드 1960 로테르담 엑스포
2 1963년 독일 1963 함부르크 엑스포
3 1964년 오스트리아 1964 빈 엑스포
4 1969년 프랑스 1969 파리 엑스포
5 1972년 네덜란드 1972 암스테르담 엑스포
6 1973년 독일 1973 함부르크 엑스포
7 1974년 오스트리아 1974 빈 엑스포
8 1980년 캐나다 1980 몬트리올 엑스포
9 1982년 네덜란드 1982 암스테르담 엑스포
10 1983년 독일 1983 뮌헨 엑스포
11 1984년 영국 1984 리버풀 엑스포
12 1990년 일본 1990 오사카 엑스포 원예박람회 역대 최다 관람객(2313만 명)
13 1992년 네덜란드 1992 헤이그 엑스포
14 1993년 독일 1993 슈투트가르트 엑스포
15 1999년 중국 1999 쿤밍 엑스포
16 2002년 네덜란드 2002 하를레메르메이르 엑스포
17 2003년 독일 2003 로스토크 엑스포
18 2006년-2007년 태국 2006-07 치앙마이 엑스포
19 2012년 네덜란드 2012 펜로 엑스포
20 2016년 터키 2016 안탈리아 엑스포
21 2019년 중국 2019 베이징 엑스포 역대 최대 규모 원예박람회
22 2021년 카타르 2021 도하 엑스포
23 2022년 네덜란드 2022 암스테르담-알메레 엑스포
24 2024년 폴란드 2024 우치 엑스포

7. 여담

부산광역시는 등록박람회 개최준비를 하고있다. 과거 여러 번 시도한 하계 올림픽 유치를 계속 나빠지는 제반 사정으로 사실상 포기하고[14] 2030년 엑스포 유치에 도전장을 내민 상황이다. 이전의 대전광역시여수에서의 엑스포는 인정 박람회였지만 부산이 도전하는 2030 엑스포는 등록 박람회다.[15] 만약 유치에 성공한다면 한국은 최초로 등록박람회를 개최하게 되며, 벨기에, 프랑스, 미국, 아이티, 캐나다, 일본, 스페인, 독일, 중국, 이탈리아, 아랍 에미리트(2020년 예정)에 이어 12번째로 등록박람회를 개최하는 국가가 된다.[16] 아시아 국가들로만 한정한다면 일본, 중국,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4번째. 현재 부산시는 엑스포가 서부산지역의 개발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된다는 것에 주목해 강서의 맥도 일대가 주목받고 있다. 주변에 김해국제공항이나 KTX 구포역, 남해고속도로가 인접해 접근성이 우수하고 에코델타시티, 항공클러스터 같은 대개발 사업과 시너지를 낼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또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로 일본인 관광객 유치도 수월하게 이루어 낼 수 있다. 2017년 현재 사업부지 선정을 위한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2016년 7월 20일, 부산시는 2030년 등록박람회를개최하기 위해 정부에 유치 계획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다고 밝혔으며[17] 2018년 5월 1일 국가사업화가 결정났다.

하지만, 2018년 11월에 발표할 2025년 등록엑스포 개최지라는 변수가 있다. 2025년 유력한 등록엑스포 유치 후보였던 프랑스 파리가 유치 계획을 철회하면서 일본 오사카가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 오사카는 70년 만국박람회 55주년인 2025년 등록엑스포 개최를 위해 정부까지 나서서 지원하고 있다.

다만 예카테린부르크 측도 정부차원에서 밀어주고 있다. 우랄산맥 인근 최대도시인 만큼 경제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엑스포를 유치하려 하고 있다. 2020 박람회 유치전 당시 3차 투표까지 갔을 정도로 두바이와 경쟁하던 후보가 예카테린부르크인 만큼 속단하기는 이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2018년 11월 24일 결국 2025 오사카 등록엑스포 유치가 확정되었다. 바쿠는 가장 먼저 탈락했고 예카테린부르크는 2차 투표에서 탈락, 오사카가 유치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최근 반러여론이 고조되는 구미의 표가 일본에 쏠린 것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 그렇기에 대륙안배개최 원칙에 따라 부산의 유치계획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전 대회가 중동인 두바이에서 열린 것을 감안하면 반대로 대륙안배원칙이 반드시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 즉, 완전히 가능성이 차단당한 것이 아니라서 부산시는 유리한 입장은 아니지만 강행추진하고 있다.

개최기간이 3주에서 6개월[18]로 제한되는 관계로, 커다란 비용을 들여 건설한 박람회 시설의 사후 활용이 중요하다. 대체로 임시시설물로 건축되어 철거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1993 대전 엑스포의 시설물의 경우 '엑스포 과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반 정도의 시설물을 영구시설물로 남겨 테마파크를 구성했으나 결국 대전광역시의 악성 적자 컨텐츠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교훈(?)을 살려 2012 여수 엑스포의 전시관들은 대부분 철거될 예정.현재는 주제관, 국제관, 스카이타워, 아쿠아리움만 남아있다. 그러나 아쿠아리움과 스카이타워는 그럭저럭 돌아가지만 주제관과 국제관은 영 아니올시다인 상황.

대한민국이나 일본에서는 1993 대전 엑스포1970 오사카 엑스포의 영향으로 열렸다 하면 흥행에 대성공하는 일종의 황금알 낳는 거위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4번의 공인 박람회[19]를 개최하였으나 1970 오사카 엑스포를 능가하는 흥행을 거둔 바는 없으며, 1985년 츠쿠바 엑스포의 경우 츠쿠바 학원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그야말로 초딩 눈높이 엑스포를 표방했다가 제대로 망했어요 루트를 타며 현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20]

일본의 만화에서는 1970 오사카 엑스포(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자주 등장한다.[21]

8. 같이 보기



[1] 등록박람회를 World's Fair라고 표현한다. 인정 박람회는 그냥 Expo다.[2] 다른 말로 World('s) Fair라고도 하는데, 엑스포 쪽이 워낙 유명해져서 이제는 거의 대부분 Expo라고 표기한다.[3] 1791년에는 "노동의 자유에 관한 선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4] 운수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함.[5] 소련은 특유의 선전 동상을 출입구 건물을 기단 삼아 올렸는데, 독일은 슈페어 특유의 고전주의 건축물을 동상보다도 높게 세우고 그 위에 국장인 독수리를 올려놓았다. 매우 활동적인 형태의 소련 동상과 그걸 내려다보는듯한 차가운 인상의 독수리가 인상적.[6] 당장 인구가 당시에 비해 훨씬 증가하고 열린 2012 여수 엑스포의 관람객이 약 800만이다. 1900 파리 엑스포가 관객을 약 2.5배 더 불러 모은 셈.[7] 프랑스 보르도와인을 박람회에서 홍보할 목적으로 1855년에 그랑크뤼클라세(등급제)를 제정하게 되었다[8] 올림픽은 참가자들의 비용을 주최 측에서 지원하지만 세계박람회는 원칙적으로 각 참가국에서 알아서 비용을 대야 한다. 그렇지 때문에 마구잡이로 엑스포가 열리게 되면 돈이 들어서 참가하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체면상 참가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9] 그 외의 경우는 아무리 '엑스포'나 '박람회'라는 명칭을 써도 그냥 지역 행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을 예로 들자면 고성군 공룡 엑스포 같은 경우[10] 1970 오사카 엑스포는 물론 심지어 미국에서 개최된 1982 녹스빌 엑스포도 마찬가지이다.[11] 박람회라는 것을 보러 가기 위해 돈을 쓰는 사람들이 주로 유럽인이고, 유럽에서 열리는 엑스포가 그들이 관람하기는 가장 편할 수 밖에...[12] 1982부터 1994년까지 2년마다 격년제로 시행하였으며 위치는 한국종합전시장 COEX였다. 이때는 아직 빌딩이 올라가기 전이었다.[13] 육십갑자로 치면 을(乙)과 경(庚)으로 시작하는 해이다.[14] 올림픽 개최 효과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강해졌는데, 엑스포는 개최장소를 개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하고 나서 남는 것도 많다. 그리고 올림픽은 어쩌다 보니 한중일에서 2018~2022년의 3번의 동하계 올림픽을 독식해버리면서 동아시아권에서 한동안 다시 올림픽을 유치하기 어렵게 되었다.[15] 등록 박람회가 곧 엑스포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여수도 등록 박람회를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뒤 인정 박람회로 전환했다.[16] 의외로 등록박람회는 1935년에 시작되어 영국과 소련(러시아)은 등록박람회를 한 적이 없다. 1970년의 오사카 박람회 이후로 1992년의 스페인 세비야 엑스포까지 22년간 만국박람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점도 특기. 독일도 2000년 하노버 엑스포가 첫 등록박람회다.[17] 부산시, 2030부산등록엑스포 유치, 정부에 공식 신청 관련 기사[18] 인정박람회는 3개월[19] 오사카(등록박람회), 오키나와(인정박람회), 츠쿠바(인정박람회), 아이치(인정박람회)[20] 참고로 1970년의 기록은 2010년상하이 엑스포에서 깨졌는데, 워낙 많은 인구의 내수시장이 든든히 받쳐 준 결과였다.[21] 일본 만화인 짱구는 못말려에서 시대 박물관에 70년대 전시관에 나오는데, 그 당시 딱히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박람회 행사가 없었기 때문에 국내판에서는 70년대 서울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로 얼버무려 나온다. 2000년대부터는 1993 대전 엑스포로 로컬라이징되는 경우가 많다. 2020년대 이후에는 2012 여수 엑스포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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