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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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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 전투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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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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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자크 전투 파일: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깃발.svg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공화국
이터 성 전투 파일:슈츠슈타펠 깃발.svg 항전파 무장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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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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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3월
라인란트 재무장 |
7월
스페인 내전 발발 |
12월
방공 협정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루거우차오 사건) · 제2차 국공합작 |
8월
상하이 전투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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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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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38년 황허 홍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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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뮌헨 협정
193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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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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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독소 불가침조약 |
9월
폴란드 침공(제2차 세계 대전 발발) · 가짜 전쟁 |
11월
겨울전쟁 발발
1940년
4월
노르웨이 침공 |
5월
프랑스 침공 · 됭케르크 철수작전 |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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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그리스 침공
194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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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바르바로사 작전(독소전쟁 발발) · 계속전쟁 발발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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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모스크바 공방전 |
12월
진주만 공습(태평양 전쟁 발발) · 말레이 해전 · 남방작전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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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청색 작전 · 미드웨이 해전 |
7월
엘 알라메인 전투 |
8월
스탈린그라드 전투 · 과달카날 전역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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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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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회담 |
2월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
4월
바르샤바 게토 봉기 |
7월
쿠르스크 전투 ·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 |
9월
이탈리아 왕국의 항복(이탈리아 내전 발발) |
11월
카이로 회담 · 테헤란 회담
1944년
4월
대륙타통작전 |
6월
바그라티온 작전 · 노르망디 상륙 작전 · 필리핀해 해전 · 사이판 전투 |
7월
브레턴우즈 회의 ·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
8월
바르샤바 봉기 |
9월
마켓 가든 작전 | 라플란드 전쟁 발발 |
10월
레이테 만 해전 |
12월
벌지 전투
1945년
2월
얄타 회담 · 드레스덴 폭격 · 이오지마 전투 |
3월
연합군의 일본 본토 공습(도쿄 대공습) · 연합군의 독일 본토 침공 |
4월
베를린 공방전 · 오키나와 전투 |
5월
나치 독일의 항복 |
7월
포츠담 회담 |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만주 전략 공세 작전 · 일본 제국의 항복(옥음방송) |
9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 매년 전황·추세 등 상세한 내용은 연표 해당 연도 참고 }}}}}}}}}
프랑스 침공
프랑스어: Bataille de France, Campagne de France
영어: Battle of France, Fall of France
독일어: Westfeldzug, Frankreichfeldzug
제2차 세계 대전서부전선의 일부
파일:InvasionOfFrance.gif
▲ 독일군의 기동전에 포위당하는 연합군[1]
파일:Adolf_Hitler_in_Paris_1940.jpg
1940년 6월 23일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은 아돌프 히틀러의 기념사진[2]
날짜
1940년 5월 10일 ~ 6월 25일
장소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교전국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나치 독일|{{{#!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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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치 독일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나치 독일}}}{{{#!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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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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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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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이탈리아 왕국|{{{#!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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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 )[3]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3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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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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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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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기 == null && 깃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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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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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기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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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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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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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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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기 == null && 깃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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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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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기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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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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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기 == null && 깃발 == null
[[빌헬름 리터 폰 레프|{{{#!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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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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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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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기 == null && 문서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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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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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폰 퀴힐러|{{{#!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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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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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폰 비츨레벤|{{{#!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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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틀:깃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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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롬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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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틀:깃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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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왕세자}}}}}}]]
#!if 기 == null && 문서 == null
[[틀:깃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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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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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모리스 가믈랭(~5.17)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막심 베이강(5.17~)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장 드라트르 드타시니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알퐁스 조르주(~5.17)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앙리 지로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조르주 카트루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수아 다를랑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조제프 비유맹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샤를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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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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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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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결과
독일 국방군의 승리
프랑스 제3공화국의 멸망
비시 프랑스 정부 탄생
서부전선의 붕괴
영국 원정군의 장비 손실
영향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제3공화국 멸망
프랑스 군정청. 네덜란드 국가판무관부, 벨기에-북프랑스 군정청, 비시 프랑스 수립
알자스-로렌오이펜-말메디, 룩셈부르크의 독일 본토 편입
영국 본토 항공전 발발
남방작전 및 그로 인한 태평양 전쟁의 시발점.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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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만 명
- 141개 사단
- 대포 7,378문
- 전차 2,445대
- 항공기 5,63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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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30만 명
- 144개 사단
- 대포 1만 3천문
- 전차 3,383대
- 항공기 2,935대
피해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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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자 12만 7,621명
- 항공기 1,236 ~ 1,345대 파괴
- 항공기 323 ~ 488대 파손
- 전차 795대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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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자 6,02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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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 36만 명
- 포로 190만 명
- 파손된 항공기 2,233대

1. 개요2. 경과3. 양측의 전력과 그 배치4. 패전 이후, 프랑스의 내부 상황5. 바르바로사 작전과 비교 분석6. 여담
6.1. 이 된 6주의 패전
7. 프랑스를 위한 변명
7.1. 내부적인 문제7.2. 가믈랭을 위한 변명
7.2.1. 가믈랭의 전쟁 준비7.2.2.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 가믈랭7.2.3. 가믈랭의 역량
7.3. 동맹 세력의 비협조
8. 전쟁 범죄9. 그 외

1. 개요

프랑스 침공의 전개[20]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우리프랑스에서 싸울 것이며,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이며, 우리는 넘치는 자신감과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 것이며,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며, 우리는 비행장에서 싸울 것이며,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이며, 우리는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랑스에서의 패배가 점쳐지던 6월 4일 당시 연설 중에서.
프랑스 침공1940년 5월 10일부터 시작하여 프랑스가 나치 독일과 정전협정을 맺은 1940년 6월 25일까지 46일 동안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 본토에서 진행된 전쟁급 전투다. 1939년 9월 3일 영국프랑스 제3공화국의 대독 선전포고, 가짜 전쟁, 그리고 프랑스 침공으로 이어지는 이 전역에서 230만 명의 육군[21]을 동원한 프랑스는 독일에게 단 6주 만에 항복해버렸다. 이는 독일의 과감한 작전 도입과 행운, 그리고 프랑스의 불안정한 내부 사정과 지휘부의 잘못된 판단 및 불운이 합쳐진 결과였고, 당사국인 독일과 프랑스 및 전세계가 경악했다. 이후 헝가리는 고토 수복을 위해 1940년 11월 추축국에 가입했고, 루마니아는 독 · 소 양국의 전방위 외교 압박을 견디다 못해 추축국에 합류했다. 그리고 프랑스 침공 이후, 일본은 독일과 삼국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프랑스 침공을 논하면, 일반적으로 독일의 전격전과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연상하나, 실제 양상은 이보다 복잡했다. 흔히 프랑스군이 마지노선을 지키는 동안 독일이 우회하는 바람에 프랑스가 망해버렸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사실이다. 프랑스는 독일군의 마지노선 우회를 예상하여 대응했고, 독일도 마지노선을 우회한 건 맞지만 그 이후 예상치 못한 루트를 통한 재빠른 기동전을 통해 연합군들을 포위시킨 뒤 치명타를 가한 것이 승기를 잡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2. 경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프랑스 침공/경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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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프랑스 침공/경과#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프랑스 침공/경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양측의 전력과 그 배치

3.1. 독일군 편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프랑스 침공/독일군 편제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프랑스 침공/독일군 편제#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프랑스 침공/독일군 편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2. 연합군 편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프랑스 침공/연합군 편제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프랑스 침공/연합군 편제#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프랑스 침공/연합군 편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패전 이후, 프랑스의 내부 상황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한 직후, 프랑스 국내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일반 대중들은 건물이나 버스에 나치를 조롱하는 낙서를 쓰거나 극장에서 나치 선전 영화를 볼 때 비웃는 등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던 반면, 일부 우익들은 페탱이 중심이 되어 나치 독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프랑스 우익들이 나치를 "함께 좌익 -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을 동지"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나치 독일은 강력한 반공주의 성향을 띄었고, 그런 이유로 공산주의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의 일부 자본가들은 나치 독일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프랑스 우익 인사들은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자크 도리오의 주도하에 나치 독일을 돕기 위해 '반볼셰비키 프랑스 의용군단'을 창설하였다. 이 부대에 자원한 자들은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공산주의자들을 더 혐오한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아울러 페탱은 "프랑스와 서구 문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위대한 반볼셰비키 십자군"에 참여하라고 연설했다.

비시 정권의 내각 수반을 맡은 정치인 피에르 라발은 "나는 독일의 승리를 원한다. 왜냐하면 독일의 승리 없이는 바로 내일 볼셰비즘이 도처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를 명분으로 삼아 나치 부역 행위를 옹호했다. 이 때문에 샤를 드골의 일파와 레지스탕스 활동과 저항 운동을 벌였던 일부 반독파 우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프랑스 우파들은 2차 대전 내내 나치 독일에 충실히 협조하였다. 심지어 나치 독일의 마지막 전투였던 베를린 공방전에서도 약 7천여 명의 프랑스인 나치 부역자들로 구성된 샤를마뉴 사단이 나치독일군 병사들과 함께 소련군에 맞서 최후까지 싸웠다.

SFIO나 급진당 같은 중도 좌파와 자유주의 정당들은 소극적인 저항을 펼치거나, 지방에서 소규모 파르티잔 레지스탕스들을 조직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전후 프랑스 사회당과 급진당에서 활동한 핵심 정치인 중에는 레지스탕스 출신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프랑스 공산당은 개전 초기에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방조하거나, 군수품 생산에 사보타주를 하는 등 나치를 도와주는 태도를 취했는데, 이는 나치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이 프랑스 공산당에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 대표인 모레스 토레즈는 반전 운동을 벌였고, 당 내부에서도 대독 저항 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었다. 그러다가 나치 독일이 1941년 소련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공격하자, 방침이 바뀌어 프랑스 공산당도 나치 독일을 적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레지스탕스 활동과 사보타주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엇갈린 행보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우익 진영은 드골주의자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정국의 주도권을 잃어버렸고, 중도 - 중도좌익 진영이 그 주도권을 쥐고 제4공화국 말까지 집권하게 되었다. 공산당은 임시정부 선거에서 제1당까지 차지했는데도 미국의 압력으로 내각에서 추방당했다.[22] 친독파 우익과 일부 기회주의적 우익들은 세력 보존을 위해 드골에게 압력을 행사해 부역자 청산을 적극적으로 저지했고, 그 덕에 나치 부역자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대부분이 살아남아 활동할 수 있었다.

5. 바르바로사 작전과 비교 분석

독소전쟁의 시작인 바르바로사 작전은 낫질 작전과 매우 닮아서 규모와 몇몇 세세한 차이점만 빼면 본질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소련은 프랑스보다 훨씬 큰 영토를 지니고 있었고, 국력도 프랑스보다 체급이 컸으며 무엇보다 초전의 숱한 패배에 후퇴를 계속 거듭하면서도 프랑스와는 달리 전의를 상실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웠다.

프랑스가 전의를 상실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수도인 파리를 조기에 점령당한 탓이 컸다. 사실 프랑스도 오늘날에도 유럽에서 본토가 3번째로 넓은 국가로 지구전을 치르기에 충분히 큰 공간을 지녔다. 국경부터 파리까지의 거리, 즉 군사학 용어로서의 '종심'이 소련에 비해 훨씬 짧았던 터라 발전한 기동전에 1차대전 때와는 달리 차단조차 하지 못하고 빠르게 주력부대가 돌파 및 포위되어 버린다. 또한 파리 및 근교에 거주하던 시민들이 매우 많았으며, 프랑스군의 붕괴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프랑스 정부와 국민으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영국도 자국 방어에 급급했기에 그 외 나라의 지원을 받기가 요원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본토만 기준으로 한다면 프랑스는 프랑스 침공이 끝나는 시점에서 국토의 절반 가까이를 독일에게 점령당한 후였으며, 비슷하게 국토의 절반 이상이 점령당했던 6.25 전쟁과는 다르게 됭케르크 철수작전으로 외부에서 올 지원군도, 상황을 뒤집을 병력도 없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프랑스와는 달랐다.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는 독일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스탈린도 모스크바에서 떠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실제로 독일군이 모스크바에서 30km 떨어져 있는 힘키에 도착했던 순간에도 스탈린과 소련 수뇌부는 크렘린 궁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유사시를 대비해 대부분의 정부 기관은 후방의 쿠이비셰프로 옮겼지만 정부 수반인 스탈린이 모스크바를 사수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러한 점이 결합되어 경이로운 전공을 세우면서 소련의 영토 깊숙히 진입한 독일군은 긴 종심과 기동전 특유의 약점인 기동 부대와 후속 부대간의 간격 사이를 위협하는 소련군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했고 소련군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나머지 월동장비를 갖추지도 않아 전쟁이 겨울까지 넘어가게 되자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에 주저앉고 만다. 물론 소련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만약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패하고 모스크바가 독일에게 넘어갔다면 소련도 프랑스의 전철을 밟을 확률이 높았다. 오히려 소련은 파리보다도 각종 물자 생산원 및 철도시설이 모스크바에 집중되어 있어 만약 점령되면 심리적 효과뿐 아니라 실질적 전력도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는 판국이었으나 결국 수도인 모스크바를 사수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독일군은 유럽 문명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 - 볼셰비즘의 본산인 소련을 멸망시키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아인자츠그루펜을 동원한 잔혹한 학살을 펼치며 러시아인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소련의 소수민족 지역에서 생존을 위해 독일군에게 맞서 싸울 유인을 제공해 버렸다. 독일군의 잔혹한 학살은 독일군을 해방자로 환영해주던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내부 반 소련 세력이 독일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를 일으켰던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전선은 그렇지 않았다. 막심 베이강과 필피프 페탱이 받아들인 것처럼 독일의 전쟁은 전멸전이 아닌 전형적인 유럽식 전쟁이었다. 독일군은 프랑스 침공 기간 동안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에 무차별 폭격을 날리긴 했지만, 전반적인 군기를 유지하며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제국군이 자행한 '벨기에의 강간' 같은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 때와 같은 독일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더 각인되어 있던 프랑스인들은 믿고 있던 우방이 자신을 져버리고, 주력군이 전멸한 상황에서 항복을 결정했다. 이는 결국, 전시에 프 · 소 양국의 전쟁에 영향을 미치던 여러 요소들이 국가의 전쟁 수행 동력을 어떻게 결정지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군 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면 프랑스 침공과 바르바로사 작전 시기의 독일군은 서로 전혀 다른 심리 상태에서 작전을 준비했다. 프랑스 침공 시기의 독일군은 굉장히 신중하고 전면전을 되도록 피하려 했으며 할더를 비롯한 일부 장성들은 가망이 없다며 히틀러를 죽이려고 들었다. 하지만 바르바로사 작전 시기의 독일군은 병사들부터 가장 냉정해야 할 OKH 작전 참모부까지 하나같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탄넨베르크에서 자신들이 압살해버린 러시아 제국군을 생각하며 4개월이면 소련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전 준비를 마쳤다.

1942년까지 독일군은 소련을 압도하며 크렘린에 칼끝을 들이밀었지만, 러시아의 양대 수도를 함락시키지 못해 소련을 끝장내지 못했고 내부적인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예컨대, 독일군은 표준궤가 아닌 광궤를 쓰는 소련의 철도 환경에 적응하느라 병참분야에서 일시적이지만 매우 큰 차질을 빚었다. 전선은 넓어지고, 보급선은 길어지는 판국인데 점령지의 경제력과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독일군은 차량과 말, 항공기까지 써가며 보급을 했지만, 겨울에는 폭설, 봄에는 라스푸티차로 애를 먹었다. 결국, 전선의 독일군은 점점 보급난을 겪으며 공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전선의 집중도 역시 크게 차이가 났는데 프랑스 침공을 위해 독일군은 전투가 아직까지 한창이던 노르웨이 침공에서 공수사단을 비롯한 정예사단을 차출하는 등 자신들의 주 전선이 어디인가를 명확히 구분하고 보조 전선의 경우 전선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전력만 유지했다. 그리고 이런 조치에 따른 일시적인 희생도 감수했는데 독일군이 정예사단을 차출하면서 나르비크의 독일군 방어선이 약화되었고 클로드 오킨렉의 영국군과 노르웨이군은 반격을 가해 5월 27일 독일군을 몰아내고 나르비크를 탈환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23]

하지만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독일군은 서쪽으로 영국 해협에서는 영국 본토 항공전을 약간씩이라도 지속중이었으며, 대서양 전투에서는 U보트를 활용한 통상파괴전을 벌이고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 전역지중해 전역에서 8만에 가까운 병력을 운영하고 있었다. 즉 나치 독일은 자신들 체급 이상의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의도하지 않았긴 했으나 사실상 3면 전선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독일군 측면에서 바라보면 독일이 프랑스 때와 달리 소련을 지나치게 쉽게 보고 준비를 허술하게 했다가 자멸했다고 볼 수 있다.

6. 여담

6.1. 이 된 6주의 패전

한때 영국과 식민지 경쟁을 벌였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대에는 수 차례에 걸쳐 유럽 연합군을 무찌르고 전 유럽을 호령한 데다, 제1차 세계 대전기에는 협상국방패로 통하던 프랑스였지만,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에서 어처구니 없이 독일군에게 패배하며 프랑스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군사 강국의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되어 버렸으며, 6주 만에 항복하는 종이 호랑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오늘날까지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사실 프랑스군은 유럽 전통의 강군으로서 프랑스를 '유럽 역사상 가장 군사적으로 성공적인 국가'[24]의 위치로 올려놓았으며, 세계사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얻은 군대 중 하나였다. 특히 대육군 시절의 활약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25]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전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해 굴욕을 씻어 내었던 프랑스군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더한 굴욕을 당하면서 오늘날까지 불명예스러운 평판을 듣고 있다.

해외에서도 제2차 대전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면, 반드시 프랑스 침공과 항복을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프랑스는 전 세계 해외 네티즌들에게 놀림거리가 된다. 전통의 호적수인 영국과 프랑스에게서 승리한 독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네티즌들에게 마지노선이나 6주 등의 주제로 정말 자주 놀림받고 있다.#[26]

국내에서는 가상의 교리인 엘랑 비탈에 빗댄 별명인 엘랑스라고 불리고 있다. 어떤 면에선 졸전의 대명사인 이탈리아보다 더 심하게 놀림받고 있는데, 이탈리아는 강대국의 최소라고 불릴 정도로 상대적으로 체급이 낮고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졸전을 치르는 등 이탈리아의 군사적 역량이 낮다는 평판이 있었던 반면, 프랑스는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이자, 유럽 전통의 군사 대국이었기 때문에 6주는 더욱 충격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하필 프랑스군이 졸전을 치른 전쟁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으니 그만큼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프랑스는 2차 대전 초반에 독일이 상대한 나라 중에서 가장 오래 버틴 국가였다. 하지만 프랑스보다 훨씬 더 짧은 기간에 항복한 덴마크,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노르웨이 등의 국가들은 프랑스와는 비교하는 게 어불성설인 약소국들이어서 독일에게 패배하는 게 당연했다.[27]

이들 약소국을 전부 다 합쳐도 1940년의 프랑스 인구보다 적으며 독일 인구의 3/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영국군과 벨기에군의 지원, 마지노선까지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6주만에 독일에게 쓰러지는 바람에 추축국들이 유리한 판세를 잡아 전쟁 초반부터 연합국들에게 큰 민폐를 끼쳤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프랑스군이 분전했지만, 따지고 보면 철수 작전 자체가 프랑스군의 졸전에서 비롯된 것이니 프랑스가 그렇게 쉽게 밀리지 않았다면 당연히 급하게 철수해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6주 패전의 과정에서 프랑스군 병사들의 분전과 별개로 상당수의 프랑스군 장성들은 1차 세계 대전에 머무른 고지식함을, 통신과 같은 분야에서는 거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일례로 위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랑스군 사령부에는 전서구 한 마리조차 없었고, 명색이 프랑스군 사령관이었던 가믈랭은 명령을 알아들을 수 없는 시적문구로 보내는 행태를 보였다. 거기다 스당 방면의 프랑스군이 무너진 이후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소수의 전차에 수백 명이 항복을 하는 등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예비 부대들이 무너진 덕에 프랑스의 패전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겨 오늘날까지 회자되며 두고두고 까이는 것이다.[28] 일각에서는 이러한 6주컷 놀림이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만행에 대한 업보 중 하나라는 농담도 있다.

국내에선 엘랑스라 불리는 반면 서방에서는 프랑스의 패전을 두고 'Cheese-eating surrender monkeys'라고 부르는데 대략 항복 잘하는 치즈 먹는 원숭이들 정도 된다. 다만 국내와 달리 서방권에선 2차 대전을 넘어 프랑스가 패전한 보불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알제리 전쟁을 묶어서 조롱할 때 주로 쓰인다. 'Cheese-eating surrender monkeys'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였다. 1995년 4월 방영된 심슨가족 시즌 6 에피소드 22편 '라운드 스프링필드'에서 스프링필드 초등학교 예산 삭감으로 스코틀랜드인 학교 관리인 윌리가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때 수업을 맡은 월리가 "Bonjourrrrrrrrr, you cheese-eating surrender monkeys!" 라고 말했다.해당 장면 프랑스 더빙판에선 'Rendez vous, singes mangeurs de fromage' 즉 '항복해라, 치즈 처먹는 원숭이들아'로 바뀌어 번역되었다.1995년 방영 당시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심슨 시리즈 특유의 블랙 유머 정도로 치부되었다.

한국의 앨랑스 밈처럼 그냥 일종의 밈을 지칭하는 용어로 남았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두고 미국과 프랑스간의 감정이 악화되면서 이른바 '항복 잘하는 치즈 먹는 원숭이들'이라는 용어는 프랑스를 비하하는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 이 단어가 프랑스를 비하하는 용도로 처음 사용된 것은 1999년 4월 16일 미국 보수성향 일간지 National Review에 실린 '지옥에서 온 항복 잘하는 치즈 먹는 원숭이들'이라는 칼럼이었다.1999년 기사 원문. 이후 조지 W. 부시이라크 전쟁 벌이는 과정에서 프랑스가 서방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미국을 비판하며 미국의 참전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고 이때 이 용어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 언론들은 프랑스는 배은망덕하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후 항복 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비난했고 프랑스의 패전 역사는 이른바 항복 잘하는 치즈숭이들이란 용어와 함께 일종의 밈이 되어 퍼져나갔다.# 당시 미국이 얼마나 살벌하게 프랑스를 비난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이라크 전쟁프렌치 프라이를 참조. 한편 21세기 초는 인터넷이 민간에 보급되던 때였고, 영미권 특유의 막강한 밈 전파력이 합쳐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해당 용어는 2000년대 초반 굉장한 인기를 끌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는 2003년 발간한 유머 모음집 3판과 2007년 현대 인용구 모음집에 이 용어를 등재했다. 어쨋든 당초 유머의 목적과 달리 다소 정치적인 비하 용어로 변질되어 사용되는 것에 대해 심슨 시리즈 총괄 프로듀서였던 알 진은 2005년 오디오 해설북에서 '이렇게 유명해질지도 몰랐고 정치적인 의도로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29]

물론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Cheese-eating surrender monkeys'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데 전술했듯 실제 역사적 맥락과 많이 다른 점이 존재하기도 하고 변질된 이후 비하의 의미가 더 강해졌기 때문. 그렇기에 역사 토론의 자리에서 해당 용어를 사용하거나 밈을 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사인 것마냥 주장하면 역알못 칭호부터 정치적 논쟁까지 가미되는 병림픽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7. 프랑스를 위한 변명

7.1. 내부적인 문제

애초에 프랑스의 패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내부 상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군 수뇌부가 독일군의 라인란트 재무장에 움직이지 않은 것은 영국의 지지가 없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의 독일군 상황은 영국 없이 프랑스 혼자만 나선다 하더라도 라인란트에서 다시 물러나야 할 만큼 나빴지만 괴벨스의 선전으로 프랑스는 독일군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영국 역시 1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프랑스를 도울 여유가 되지 않았고, 독일군이 독일의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30]

이러한 영국과 프랑스의 무관심 속에 고무된 히틀러는 재무장을 서둘렀다. 이것은 프랑스 하나의 문제가 아닌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등 집단 안보 체제를 맺은 유럽 각국이 나치 독일의 팽창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소극적인 대처를 했던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프랑스는 좌파 정권인 인민 전선이 집권 중이었는데 프랑스 제3공화국의 고질적인 정치적인 혼란 때문에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뒤에도 중립을 취했고, 영국 역시 프랑스가 움직이지 않자 중립으로 전환했다. 이는 안슐루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도 프랑스는 영국이 호응한다면 군사 행동에 나서려 했지만 영국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움직이지 않았다. 즉, 두 나라는 서로 개전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눈치만 보다가 적시에 대응하는 것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나치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합병하려 할 때 국방상 레노, 내무상 망델, 총사령관 가믈랭 등은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주장했다. 허나. 공군 사령관 비유맹은 공군의 준비가 미흡하다며 양보할 것을 주장했고 비유맹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프랑스는 독일의 주데텐란트 합병을 묵인했다.

1930년대 후반에도 프랑스의 내부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라발을 비롯한 친독일 인사들은 독일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했고, 24번이나 정권이 교체된 상황이었다. 프랑스가 내홍이 시달리자, 영국도 그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 대한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이에 프랑스의 총리 달라디에는 주 프랑스 미국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은 프랑스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프랑스 혼자 싸우게 놔둘 것이 분명하다. 영국은 프랑스의 사상자 목록이 가득차게 내버려 둘 것이다.'[31]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는 프랑스도 즉시 참전하려 했다. 허나, 모레스 토레즈를 위시한 프랑스 공산당은 9월 2일에 독일에 맞서는 전쟁 수행에 동의했다가 막상 프랑스와 영국이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하자 입장을 바꿔 반전을 주장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이 내린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

동시기 나치 독일, 영국이 그랬듯 군부의 갈등도 있었다. 가믈랭과 조르주는 계속하여 충돌했고 패탱은 독일과 싸우기보단 강화를 주장하였다. 프랑스는 전후에 이런 문제들을 들어 프랑스는 폴란드를 돕고자 해도 돕지 못했다고 주장했다.[32]

또한 폴란드가 너무 빨리 무너진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한달 만에 폴란드가 무너진 것은 영국과 프랑스 모두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폴란드는 소비에트 · 폴란드 전쟁의 승전국이었고 체코슬로바키아보다 더 우수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주라 전투에서 주력군이 전멸하며 사실상, 개전 2주만에 전쟁 수행 동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독 · 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폴란드의 동쪽 영토를 약속받은 소련이 참전하면서 폴란드는 영 · 프 양국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

두번째, 1차 대전의 엄청난 피해가 크게 작용했다. 1차 대전기 동안 프랑스군은 841만 명을 동원했고, 이중에서 132만 5천 명이 전사, 28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러한 피해는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중심으로 하는 방어 전략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마지노선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은 부적절하다. 프랑스는 마지노선 건설에 50억 프랑(약 1억 9500만 달러)의 자본을 투입했지만, 독일 역시 10억 라이히스 마르크(약 4억 달러)를 들여 지크프리트 선을 만들었다. 또한 마지노선에 투입한 것 때문에 일어난 군사 예산의 불균형 역시 1934년에 프랑스가 기갑 부대를 확장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변화했다. 이러한 상황은 1936년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워낙 독일군이 아르덴 숲을 통해 마지노선을 쿨하게 씹고 통과해버린 것이 임팩트가 커서 마지노선이 현대에선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지만 1940년 5월까진 독일-프랑스 국경을 통한 공격을 원천 봉쇄해버린 훌륭한 방어선이었다. 애당초 독일군이 베네룩스 지방으로의 공격을 결심한 이유 자체도 바로 이 마지노선 때문이었고 전술했듯 슐리펜 계획의 재현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에 진지하게 스위스 방면을 통해 남쪽으로 마지노선을 우회하는 작전도 고민해야했다. 따라서 마지노선은 과하다라고 비판받지만 독일-프랑스 국경으로의 공격 차단이라는 전략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독일군이 건립한 지크프리트 선 역시 1939년 9월 프랑스의 자르 공세 당시 영불 최고사령부가 중포 부족을 이유로 공세를 포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으니[33] 직접적으로 적 전력을 감소시키지 못했을 뿐 지역 방어라는 전략의 입장에선 그 목적을 충족했다.[34]

세번째, 대공황도 악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프랑스군은 1차 대전 시기의 기동전 교리를 발전시키코자 했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재무장이 어려워졌고 1930년대에 와서야 기동전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1931년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대공황 이전에 비해 크게 감축된 수준이어서 그 가믈랭조차 국방 예산의 감축에 우려를 표하며 사표를 낼 정도였다.

인민전선이 당선된 후 레옹 블룸이 국방 예산을 크게 늘렸지만, 인민 전선 정권도 경제 문제 때문에 국방 예산을 곧잘 감축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여전히 부족했다. 일례로 1938년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10억 달러 규모였는데 적국인 나치 독일의 국방 예산은 120억 달러였다. 게다가 프랑스는 식민지 수탈과 지중해 패권을 위해 해군 양성에도 예산을 써야 했기에 육군 예산은 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믈랭과 프랑스 군부는 예산 부족과 고령화 등 '현실적인 이유'를 명목으로 '선 방어 · 후 역습'을 골자로 하는 방어 중심의 전략 계획을 수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차라는 무기에 대한 생각을 보병을 도와서 참호를 돌파한다는 1차적인 개혁 개념으로만 생각한 것도 큰 문제였다. 사실 샤를 드골이 생각한 전차 운용 개념은 기병을 전차로 대체하면서 기병대의 개념으로 써먹자는 것이라서 본질적으로는 기병대의 근대화 개념이기 때문에 개념의 측면에서는 가믈랭같은 프랑스 군부의 수뇌부들이 가진 전차는 보병지원용 무기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퇴보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침공에서 전격전을 구사한 나치 독일 군부의 연령이 높고 생각이 구식화된 장군들이 실제로 기존에 운용하던 기병대 개념을 전차 운용에 적용해서 성공을 이끌어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사를 드골의 생각이 시대의 발전에 맞는 혁신적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개혁 개념이 1회성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개념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뱡향으로 간다는 것을 가믈랭을 비롯한 프랑스군의 수뇌부들이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독일군의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기동 전술에 대해 충돌이 있었다고 하나,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기갑 부대의 급속 기동에 대한 것이었지 기동전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프리드리히 대제 이래 독일군의 장기는 고속 기동을 통한 방어와 공격, 포위 섬멸이었고 이를 궁극적인 전술 목표로 삼은 건 보수파 장교단과 소장파 장교단 모두 동일했다. 프랑스나 독일이나 출발점은 별 차이가 없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프랑스는 잘못된 변화를 한 셈이 되었고, 독일군은 '퇴화'한 프랑스군의 약점을 파고들어 승리했다.

그리고 빠른 패전이 프랑스가 전쟁에 적응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세계 대전 이상으로 신병기와 신전술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항공기의 발전은 아주 빨라서, 2차 세계 대전사에 그 이름을 몇 번이고 자랑했던 Bf 109,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A6M, F4F 와일드캣같은 전투기의 개발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들 기종의 개량과 발전은 전쟁 중에도 거듭되었으며, 전시에도 새로운 기종이 개발되어 활약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그 발전은 매우 빠른 편이었다.

이는 전술적인 차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항공모함의 등장은 1917년의 일이었고 이들을 이용한 육상 기지 공격 또한 1918년 퓨리어스가 해낸 바 있었다. 그리고 항공어뢰의 발전은 그 발상을 바다로까지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타란토의 이탈리아 왕립 해군, 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그리고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는 뇌격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최신 과학 기술의 대명사인 미국 또한 신병기와 신전술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이들과 달랐던 것은, 그 패전이 너무 빨라서 군을 재건하고 신기술과 전훈을 채택함과 동시에 적의 신병기와 전술이 준 충격을 극복하고 그들의 특징을 분석하여 아군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할 시간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해군의 어뢰 스캔들이 있다. 전간기의 예산부족에 따른 비현실적 실험 및 자기신관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최신 기술의 도입 및 관계자들의 저항으로 인해 미국 해군이 운용한 구축함용 어뢰, 잠수함용 어뢰, 항공어뢰가 모두 큰 문제가 발생했으며 특히 항공 어뢰인 Mark.13과 범용 어뢰인 Mark.14가 완전 쓰레기라서 항공모함 기동대의 가장 강력한 창이 되어야 했던 항공어뢰를 쓸만한 수준으로 개선한 게 개전 이후,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시점의 일임을 고려해 보면, 전훈을 받아들이고 신기술과 교리를 적용하는 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비단 병기와 전술에 국한되지 않고, 전쟁을 이끌어 나가는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적에게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를 복기하고 패배를 분석하여 그것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이전보다는 나은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령부라는 집단 전체를 본다면, 개개인의 능력과 특기에 맞추어 인사를 개편시킬 수 있고 병력 전체를 보면 편제를 수정하여 보다 효율적인 집단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다만, 이 일은 1개 야전군이 갈려나간 상황에서 6주 동안의 벼락치기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게 아니었다. 당대 프랑스 군부는 드골, 드 라트르 드 타시니, 터치온, 델레스탱과 같은 유능한 장교들에서부터 그랑드, 코라프, 레퀸과 같은 평범하거나 무능한 장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평시에서 전시로 전환하는 다른 모든 군사 조직과 마찬가지로, 프랑스군에는 서류 작업과 평시 업무에는 탁월하지만, 전시 지휘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여러 장교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그나마 실수를 배우고 독일군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한 적색 상황 시기에는 이미 동맹군인 영국군이 영국 해협을 넘어 철수해버린 상태였고 이들을 엄호하던 4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병사들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남은 병력으로 방어전을 진행했으며 10여만 명의 프랑스군도 탈출한 후 다시 프랑스 본토로 돌아가서 주력군과 다시 합류하여 프랑스 침공이 끝날 때까지 저항했다.

또한 프랑스군의 붕괴 사례만을 가지고 프랑스 군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스당 전투에서 붕괴한 2개 사단이 프랑스의 230만 야전군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스당의 프랑스군은 슈튜카의 폭격에 압박을 받았음에도 독일군 2기갑사단과 10기갑사단의 도하 작전을 거의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독일군의 공세적 방어 전술에 말려들었다고 평가받는 스톤 고지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15일부터 17일까지 총 17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방어를 맡은 그로스도이칠란트 연대에 500명이 넘는 사상자를 안겨주며 일시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다. 해당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총 7번, 독일군은 9번 승리했고, 16일 야간 전투는 양측 모두 고지를 점령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드골의 몽코르네 역습은 일시적으로 19기갑군단 후속 제대를 붕괴시켰으며, 독일군이 장블루 갭 일대의 방어선을 돌파해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던 안뉘 전투에서도 프랑스군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강요하고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다.

7.2. 가믈랭을 위한 변명

1940년 3월, 30개에 달하는 연합군 사단들을 벨기에 영내로 진격시킨다는 딜-브레다 계획을 채택한 가믈랭의 결정은 적의 기습에 대응할 예비대 전력을 크게 감소시켜 독일군의 작전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가믈랭의 딜 - 브레다 계획 확장이 프랑스의 패배를 불러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또한 그때 확보할 수 있었던 최상의 정보를 기반으로 한 최선의 결정이었다.

게다가 가믈랭은 전선 중앙에 지나치게 부주의했고, 아르덴 숲을 통과하는 독일군의 기동은 프랑스군이 제때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느릴거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가믈랭의 이런 실수들조차 1934년 국방 장관으로써 유사시에 벨기에로 진격해야 한다 주장하며 아르덴 지역의 위험성을 일축한 필리프 페탱의 오판에 근거한 것이었다.

애초에 반대편에 있던 독일군 또한 아르덴 숲을 통과하는 기동이 성공할 거라 여기지 않았다. 독일군의 황색 계획은 슐리펜 계획의 재탕이나 마찬가지였고 아르덴 돌파를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벨기에령에 불시착한 소령 2명 때문에 독일군의 작전 문서가 통째로 넘어가 기존 작전의 변경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슐리펜의 재탕인 황색 작전에 불만을 품고 있던 히틀러가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기동이 가능해진 것이지, 원래의 독일군은 아르덴을 통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군부의 대다수가 만슈타인의 계획을 반대했고,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여겼다. 계획을 승인한 히틀러조차 아르덴 돌파가 성공한 것을 보고 기적이라고 인식할 정도였다. 최신 병기인 전차가 경전차라서 험지를 통과하기가 쉬운 1호 전차2호 전차든 간에 좁은 통로에 전차들을 집어 넣는다는 계획은 그 최신 병기인 전차를 보유하고 개발한 독일군 대부분이 미친 짓이라 여긴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리스 가믈랭이 저지른 과오는 엄청나며 프랑스 침공에서의 패전에 중대한 책임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전후에도 회고록인 Servir. Les Armées Françaises de 1940을 저술했는데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변명으로 일관했으며 당연하게도 프랑스 국민들의 비웃음만 받았다.

1958년에 가믈랭이 사망했을 때도 프랑스 정부를 비롯한 대중들의 인식은 변함이 없어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생루이데앵발리드에서의 미사 및 철야기도가 거부되었으며 무덤 주위에 의장대가 배치되지도 않았고 단지 석관 위에 훈장을 수여받았다는 표시만 허용될 정도였다.#2 한마디로 말해서 프랑스 침공의 패전책임을 모두 감당해야 할 사람은 아니지만 가믈랭의 책임은 매우 무겁기 때문에 제1주범 정도의 위치는 맞으며 아래의 변명 항목도 가믈랭이 진짜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도지 평가를 뒤집을 수준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7.2.1. 가믈랭의 전쟁 준비

독일과의 전쟁을 대비해 프랑스군을 준비시키고자 한 가믈랭의 10년간의 노력은 그가 적군의 역량에 대한 이해를 갖춘 계획가였음을 드러낸다. 프랑스 군수 산업은 가믈랭과 프랑스군 장성들의 추천에 기초해 소뮤아 S35 중형전차와 APX 47mm 대전차포와 같은 당시의 독일군 전차를 상대하는 데에 충분한 무기를 생산해냈다. 물론 해당 무기를 충분히 생산해내진 못했고, 따라서 그 활약도 크게 제한되었다.

가믈랭은 당시 프랑스군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고 새로운 기술의 가치를 알고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따라서 가믈랭과 다른 고위 프랑스군 지휘관들이 현대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1918년의 전술에 집착했다는 평가는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무기를 준비하기는 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조차도 가믈랭의 군사 관리자로써의 능력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가믈랭은 마지노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1935년부터 프랑스군 최초의 기갑 사단 창설을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드골이 기갑 사단을 살리기 위해 분투했다는 통설과는 달리, 가믈랭이 전차에 기울인 노력은 결코 무시당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믈랭이 구시대적인 사람임은 분명하다. 상대방인 나치 독일군이 이미 1939년에 전차전이 가능할 수준의 무전기를 모든 전차에 장착했고 영국도 순항전차의 시작인 A9 전차부터 무전기를 장착했으며 기존의 경전차Mk.6 경전차같은 기존에 배치된 전차들도 무전기를 추가로 장착했다. 미국도 전차 개발이 늦어져서 문제인 것이지 극초기 전차인 M3 경전차부터는 무조건 무전기가 있었다. 심지어 이탈리아군의 M13/40도 후기형부터 무전기 장착이 시작되었고 일본의 치하도 무전기가 있었으며 소련의 BT 전차T-26도 무전기가 있었다. 소련, 일본, 이탈리아의 전차들이 전차에 무전기를 대량보급하지 못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을 뿐이며 소련은 무기대여법으로 미국제 무전기가 들어오면서 T-34-76부터는 무전기 지급이 보편화되고 T-34-85부터는 모든 전차에 전차전이 가능한 무전기가 장착되었다. 심지어 중일전쟁으로 인해 국가가 파탄지경에 놓인 중화민국국민혁명군도 모든 전차에 무전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아서 소련에게서 전차를 공여받을 때 T-26RT라는 기종명을 가진 지휘전차급 무전기를 갖춘 T-26을 공여받아서 모든 전차에 전차전과 지휘가 가능한 무전기를 탑재했다.

애초에 전간기 시절부터 전차에 무전기를 달아야 한다는 것과 모든 전차에 무전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열강들 입장에서는 상식에 가까웠고 단지 돈이 없어서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은 기술력이 뛰어나서 처음부터 소형이며 출력이 좋은 무전기를 생산 및 전차에 탑재하는 것이 가능했고 독일은 무전기를 많이 탑재해서 대응했으며 소련은 무기대여법의 수혜를 받아서 모두 전차전이 가능한 음성통신방식 무전기를 사용했고 전차 승무원간의 교신도 원할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전차들은 심지어 최신예 전차인 소뮤아 S35도 지휘전차를 제외한 80%의 전차는 무전기가 없는 상태에서 운용되었으며 르노 B1도 지휘전차에만 무전기를 지급해서 75%의 전차는 무전기가 없었다. 그리고 지급했다는 무전기도 대부분은 모스 부호로만 송수신이 가능해서 전차전에는 써먹을 수 없는 기종이었고 극히 일부 전차에 지급된 음성 통신용 무전기는 성능이 조악해서 평상시에도 소리가 잘 안들릴 지경이라서 모스 부호 무전기에 의존해야 했다는 아이러니가 터졌다. 이러니 원래는 무전기가 고장났을 때나 어쩔 수 없이 수행하는 깃발 신호를 전차전 지휘에 사용해야 할 지경이었으며 이 정도쯤 가면 직무유기 소리를 들어도 무방할 정도다.

애초에 전차에 큐폴라라는 전망탑은 있지만 전망탑에 승무원 출입구인 해치가 없어서 전투시에 전차장이 해치를 열고 살짝 바깥을 관측하면서 전투상황 파악 및 지시를 할 수 없고 승무원 출입시에는 포탑 후부에 마련한 출입구로 나와야 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만들어졌으며 1인용 포탑을 고집해서 전차장이 포수와 탄약수를 겸임하는 1인 3역을 해야 하므로 프랑스군의 전차가 항상 반응속도가 늦고 주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항상 먼저 발견되고 적 전차의 우회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선제공격을 받는 사태가 일어났으며 이런 과정이 모두 원가절감을 위해서 제조업체가 저지른 일이었다. 애초에 이런 것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업체가 원하는대로 두루뭉실한 요구조건이나 보내주고 폐품을 만들게 된 것을 본다면 가믈랭이 전차의 카탈로그에 적힌 화력, 방어력, 주행력만 보고 실제 전차 승무원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구시대적 인물임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실제로 전차에 탑승해서 전투를 해보고 전차의 문제점을 지적한 샤를 드골이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설상가상으로 가믈랭 역시 전차의 기동성이 아닌 방어력에 치중하고, 전차를 보병 사단에 분산 배치해 독일군에 비해 기갑 운용 능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를 비교해 보자면, 독일군은 2,400여대의 전차를 10개 기갑 사단에 200대 이상 배치해 전차를 집중적으로 운용했다. 반면에 개전 시점의 프랑스군은 3천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3개의 기갑 사단(Division Cuirassée de Réserve, 이하 DCR)과 3개의 경기갑 사단(Divisions Légères Mécaniques, 이하 DLM)을 운용했다. DCR에 할당한 전차는 약 Char B 68대와 H39 90대(1re, 2e 기준이며 3e는 H39가 조금 더 적었다)였고, DLM에 할당한 전차는 2e DLM 기준 S35 48대와 H35 42대로 도합 750대에 조금 못 미치는 숫자의 전차를 기갑 사단에 배치해 운용했다. 이는 곧 7할 이상의 전차를 보병 지원용으로 전선 전반에 걸쳐 분산 배치했음을 의미한다.

7.2.2.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 가믈랭

패전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 위해 비시 정부가 개정한 리옴의 쇼 재판을 시작으로 가믈랭의 명성은 더럽혀지기 시작했다. 1940년의 패전뿐만 아니라 3공화국의 위험한 정치적 격랑을 헤쳐 나가야 했던 전문 군사 관료로써의 성향이 가믈랭의 발목을 낚아챘다. 프랑스군 내부는 물론 정치인들 사이에도 가믈랭에게 혹독한 비난을 가한 이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패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오롯이 가믈랭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분투했다.

여기에 더해서 1939~1941년의 독일군의 전술은, 예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도박적이기까지 한 위험한 것들이었음도 간과해선 안된다. 독일 군부에서도 이런 도박수나 기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상당했다.

다만, 가믈랭에게 스당 방면의 취약성과 독일군의 침공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는 보고서, 60시간 만에 아르덴을 돌파할 수 있다는 보고서들이 분명 전달된 점, 가믈랭 본인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점 또한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믈랭에게 죄가 없는 것이 아니며 중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책임질 죄가 있는데 가믈랭 혼자서 죄를 뒤집어쓰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비시 프랑스가 모리스 가믈랭에게 재판을 걸었고 전쟁기간중의 대부분을 투옥상태에 있었기에 반대급부로 모리스 가믈랭은 종전 후에도 계급 박탈도 당하지 않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여도 박탈되지 않은 채로 전후의 삶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변명만 하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을 수 있었기도 했다. 프랑스 침공에 대한 책임이 워낙 무겁기에 보통은 극형을 받아도 무방하겠지만 비시 프랑스 편도 아니고 친추축국 성향도 아닌 그냥 지독하게 무능한 군인으로 낙인찍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7.2.3. 가믈랭의 역량

가믈랭은 미국 남북 전쟁 시기, 연방군 장성으로 활약한 조지 매클렐런과 마찬가지로 군대를 조직하고 구축하는 데 있어서는 상당히 유능했지만, 실전에서 군대를 승리로 이끄는 데는 미숙했다.[35] 가믈랭은 어떻게 보더라도 전투를 좌우하는 전장 지휘관으로써의 재능은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작전을 부하들에게 위임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이러한 성향은 역사가들에게 가믈랭의 “나약하고 무능한” 행동으로 치부되었다.

물론 소련 연방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정도를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에서 최고 사령관이 모든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따라서 전장 지휘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한 가믈랭의 행동은 당대 고위 사령관들에게 허용된 표준적이고 상식적인 규범 내의 행위였다.

하지만 가믈랭의 문제점은 미리 훌륭한 부하들을 양성해놓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상황파악이 너무 늦었고 그것마져도 확증 편향으로 인해 계속 부정하다가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최고 사령관은 부하들에게 위임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병력을 배치하며 유사시에는 직접 지휘도 해야 하는 것인데 무전기도 전화도 없는 지하 벙커에서 가만히 지도판이나 보고 있는다면 존재 의미가 없다. 그리고 능력 없으면 빠르게 물러나는 것도 도리인데 전황이 악화하여 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절망하며 울먹이면서도 쫒겨날 때까지 끝까지 자리를 보존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그나마 1940년에 이뤄진 가믈랭의 지휘는 동맹과 협력하지도 않고 적을 이해하지도 못했던 영국의 육군 사령관 존 베레커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그러나 가믈랭과 프랑스 최고사령부가 1940년 연합군의 재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되면서 재앙에 대한 영국의 책임분은 역사의 그늘 저편에 묻히고 말았다.[36] 물론 당시 서부전선에 투입된 영국군보다 프랑스군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기에 프랑스군이 패배에 있어서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긴했다.

7.3. 동맹 세력의 비협조

프랑스의 패전 책임은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벨기에의 중립이었다. 벨기에의 중립은 연합군의 대독일 전략 수립에 큰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1차 대전 시기에 독일이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를 침공해 온 일은 누구나 알고 있던 일이었고, 프랑스 - 독일 국경에 마지노선이라는 요새를 쌓아놨으니 물어볼 것도 없이 벨기에 방면이 독일군의 주공이 될 터였다.

그러나 벨기에는 중립을 선언한다. 그렇다고 벨기에의 중립이 스위스처럼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벨기에는 대독일 안보 체제에 동참했고, 유사시에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군이 벨기에로 이동하여 독일군과 싸운다는 딜 계획을 입안했다.

이런 의미에서 브레다 변경 이전까지, 딜 계획은 굉장히 효과적이면서도 벨기에의 중립을 고려한 현실적인 계획이었다. 딜 계획의 골자는, "유사시 알버트 운하의 방어선(Albert Canal-Meuse line)에서 벨기에군이 버티며 시간을 버는 사이, 연합군 병력이 딜 강을 낀 방어선(K-W line)까지 진출해 수도인 안트베르펜과 벨기에 서부의 방어를 겸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효과적인 계획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딜 계획의 원안은 하천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강화해 방어선 전체의 길이가 짧았다. 하천 방어선은 클라우제비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단단하지만 깨지기 쉬운 소재로 된 도구"와 같은 성질을 지니는데, 이는 산악 방어 대비 방어를 위한 요소들을 활용하기에 용이한 한편, 한 곳이 뚫릴 시 방어선 전체가 붕괴하며 종심상의 잔류 저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높은 경도를 지니는 만큼 강도를 충분히 높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이 곳에 배치될 계획이었던 병력의 규모는 절대 부족한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프랑스 - 벨기에 국경(Franco-Belgian border)에 위치한 전 병력이 일종의 전략적 예비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방어선에 배치되기까지 어떻게 보면 불필요할 수 있는 기동을 해야만 했지만, 벨기에 영토만큼의 면적이 일종의 종심으로서 작용하여 독일군의 주공 방향에 따라 딜 계획을 발동하지 않는 대신 보다 결정적인 지점에 전력을 투입하여 수적 우위를 누리기 용이했다는 얘기다.

스핏파이어를 프랑스 전역에 투입하는 것을 거부한 영국 공군 사령부의 결정으로 인해 이미 파일럿 부족과 정비 미흡, 신형기 부족으로 인해 독일 공군에 비해 질적으로 열세였던 프랑스 공군은 절망적인 수적 열세에 놓였으며, 이는 독일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미 프랑스군이 보유한 대다수의 전투기 기종이 Bf 109에 뒤쳐졌음은 사실이나, D.520처럼 일단은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기종도 분명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상당히 신형기였기에 기종 전환에 시간이 들었고, 1940년 6월 25일까지 351대라는 나름 괜찮은 수량을 뽑아내긴 했으나 개전 시점에서는 30여대 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공군에 대한 도외시라고도 보일 정도였고 그러한 태도의 결과는 참담했다. 신기종을 개발할 능력이 있음에도 구식 기종의 양산을 계속했고 이것이 조종사가 신형기에 적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공군의 폭격과 공수부대의 공작으로 개전과 동시에 전선에 인접한 비행장 수 곳이 무력화되는 등 자체적인 대응 태세에도 문제가 있었다.

영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200대의 스핏파이어를 프랑스에 투입하는 것이 프랑스 전역의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을지언정, 독일 공군의 작전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은 분명히 가능했고 영국 본토 항공전을 늦추거나 루프트바페의 공세를 약화시켰을 것이다. 물론 스핏파이어의 숫자가 모자란데다가 영국 본토 항공전의 성과가 단지 기체의 성능이 아닌, 체인홈이라는 조기경보 및 지상 관제의 통합 체계에 의한 요격에 기반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방자로서 누린 우위는 확고했고, 해당 우위를 쥐어 짜내는 수준의 전략으로 싸웠기에 얻어낼 수 있었던 성과였다. 따라서 영국이 스핏파이어를 내주지 않은 이유는 분명했으나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해야 했을까는 의문이다.

결국 영국은 1939년 ~ 1940년 내내 프랑스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애초에 영국은 독일과 전투를 벌이겠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체임벌린 내각에게 있어 전쟁은 실제적인 행동보다는 히틀러가 국제 협약을 어겼다는 실수를 최대한 빨리 깨닫도록 만들 상징적인 행위였을 뿐, 그들은 유혈사태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파리의 달라디에 내각은 영국이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에 동의했을 때, 영국의 이러한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칠이 수상이 되었을 때, 그는 영국의 전쟁 수행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그 역시 1940년 여름에 영국이 보유한 군사 자원이 얼마나 제한적인 상태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병력의 완전한 투입을 자제했다. 최후의 순간, 레노는 영국군이 기꺼이 투입하고자 하는 병력이 얼마나 소규모인가를 알고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처칠이 전시 내각을 잡은 후에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려 했는데,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을 해협 너머로 보내려는 처칠과 그것을 뜯어 말리는 휴 다우딩의 일화는 나름 유명하다.

8. 전쟁 범죄

워낙 잔인했던 폴란드 침공독소 전쟁에 묻혀서 그렇지 프랑스 침공기간에도 독일군의 전쟁 범죄는 분명히 존재했다. 다만 그 규모는 앞선 제1차 세계대전동안 독일군이 저지른 벨기에 학살로 대표되는 여러 만행들에 비해 매우 적었을 뿐만 아니라 후에 있을 강조 명령과 같은 학살 장려 명령도 없었고 친위대는 아인자츠그루펜과 같은 학살 전담 조직을 운영하지 않았다. 즉 프랑스 침공 기간동안 벌어진 독일군의 전쟁 범죄 행각은 개별 부대 병사들의 소행이었다.

프랑스 침공 기간 독일군의 전쟁 범죄는 프랑스군 소속 흑인 병사들을 향해 집중되었다. 전쟁 기간동안 프랑스군은 총 10만명에 달하는 서아프리카 병사들을 프랑스 본토 방어에 투입하였는데 독일군의 흑인 포로 학살 행위에 대해 대대적인 연구를 실시한 라파엘 셰크는 이들 중 적어도 1500명에서 3000명에 달하는 프랑스군 흑인 병사들이 독일군에 의해 총살되었다고 적었다.[37] 라파엘 셰크는 독일군의 흑인에 대한 증오의 원인을 루르 점령으로 보았다. 라파옐 셰크는 루르 점령 기간동안 독일 땅에 진주한 흑인 병사들을 독일 민족주의 세력은 독일 인종을 오염시키는 야만인,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고 독일인과 프랑스군 흑인병사 사이에서 탄생한 독일인들을 이른바 라인란트 사생아라고 모욕한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1940년 5월 독일은 프랑스군 흑인 병사들을 인간 이하로 보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나치당 기관지 'Völkischer Beobachte'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Auch heute wieder hat Frankreich die grausamen schwarzen Bestien aus dem Urwald auf uns losgelassen und wiederum haben sie ihren tierischen Instinkten freien Lauf gelassen. Ein Teil dieser Untermenschen ist bereits in deutschen Gefangenenlagern untergebracht.
오늘날 프랑스는 다시 정글의 잔혹한 검은 짐승들을 풀어놓았고, 다시 한번 그들의 동물적 본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이 인간 이하의 존재들 중 일부는 이미 독일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1940년 5월 Völkischer Beobachte의 기사 중 일부#
앞서 소개된 '군복무 해보면 알거다'라는 말을 한 르네 타르디의 아들 자크 다르디가 아버지의 전쟁 포로 시절 경험을 그린 만화에서도 독일군이 세네칼 출신 흑인 병사들을 총살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한 프랑스 장교는 독일군 장교에게 프랑스 흑인 병사들을 백인 병사들과 동일하게 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독일군 장교는 매우 정중하게 저것들은 인간이 아닙니다라며 거절했다. 독일은 프랑스 백인 병사들과 달리 흑인 병사들을 신성한 독일 영토 안으로 들이는 것을 거부했고 프랑스에 별도의 수용소를 만들어 수용했다. 다만 전쟁이 종료된 이후 독일군의 흑인 병사들에 대한 처우는 비교적 누그러졌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괴벨스는 흑인 포로들과의 교류를 금지했다. 프랑스 침공 기간 사로잡힌 흑인 포로들의 이후 이야기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이 영상을 참고하라#

각설하고 독일군이 저지른 대표적인 흑인 포로 학살로 부아데렌 학살과 샤슬레이 학살이 있다. 적색상황이 한참이던 6월 11일 그로스도이칠란트 연대를 비롯한 독일군은 크레송삭에서 이른바 부아'데렌(Bois d'Eraine) 학살을 저질렀다. 베이강 선에 틀어막혀 극심한 저항을 받았던 그로스도이칠란트 연대는 6월 10일 제4식민보병사단을 격파했다. 그로스도이찰란트 연대 15중대 병사들은 항복한 4식민보병사단 16연대와 24연대 병사들 중 백인 장교와 부사관들을 분리시킨 후 흑인 병사 74명을 총살했다. # 이후 그로스도이칠란트 연대와 제3SS기갑사단은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벌어진 리옹 공방전 동안 50-100여명의 흑인 병사들을 총살했다. 이른바 샤슬레이 학살이라고 불리는 이 학살 동안 독일군은 총살뿐만 아니라 항복한 흑인 병사들을 끌고가 전차의 기관총으로 사격한 후 부상병과 사망자들을 깔아 뭉게는 방식으로 확인사살 했다. 이후 1942년 11월 8일 비시 프랑스 정부는 근방에서 발견된 흑인 병사 188명을 안장한 묘지를 건설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38] 한편 에르빈 롬멜의 7기갑사단 역시 흑인 포로들을 학살했다는 의혹이 존재한다. 6월 9일 15기갑군단이 루앙 북쪽을 점령한 이후 부대 미상의 독일군에 의해 루앙일대에서 붙잡힌 흑인 포로 50~100여명이 총살되는 일이 있었다. 다만 롬멜이 이끄는 제 7기갑사단이 실제로 이 학살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며 프랑스 흑인 포로 학살을 연구한 라파엘 셰크와 에르빈 롬멜의 전기를 쓴 다니엘 버틀러는 그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고 적었다. 라파엘 셰크는 롬멜의 사단이 포로 학살이 벌어진 구역에서 활동했던 것은 맞지만 롬멜의 사단이 그랬다는 근거는 없다고 적었고[39] 다니엘 버틀러는 다음날인 10일 롬멜의 7기갑사단이 디에프 인근 해안에 도착한 점을 들어 롬멜은 학살이 벌어지던 시점 자신의 부대원들을 닥달하며 디에프로 진격하고 있었고 루앙을 직접 점령한 5기갑사단이 학살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40]

무장 친위대의 경우 전술한 흑인 포로 학살외에 영국군 포로를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표적인 것이 헤르베르트 브루네거가 있던 토텐코프가 저지른 르 파라디 학살과 LSSAH가 저지른 보름호우트 학살이다. 무장친위대는 르 파라디 학살과 보름호우트 학살로 각각 80명과 97명의 영국군 포로들을 죽였다.

민간인 학살도 보고된 사례는 극소수지만 존재했다. 프랑스 침공 기간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연구는 타 지역에서의 독일군 학살에 비해 상당히 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양적 연구 센터(Centre de Recherche d'Histoire Quantitative) 장 뤼크 렐루는 프랑스 침공 기간 독일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420여명으로 추산했다.# 가장 많은 학살을 저지른 부대는 무장친위대 토텐코프로 이들은 전체 420명에 달하는 피해자 중 절반이 넘는 260여명을 죽인 것으로 파악되며 나머지 학살은 국방군과 기타 무장친위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파일:프랑스 침공 기간 민간인 학살.png
<rowcolor=white> 프랑스 침공 기간 일별 독일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수
검은색은 토텐코프에 의한 민간인 피해자 수이고 회색은 기타 부대에 의한 피해자 수이다.
대표적인 독일군의 민간인 학살로는 쿠리에르 학살과 빙크트 학살이 있다. 5월 26일 독일군 267사단 487연대는 데울 운하(Deûle)를 건너려했지만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사전에 교각을 모조리 폭파해버리면서 이들을 돌파하는데 상당한 고생을 해야했다. 이에 독일군은 이 지역 민간인들이 자신들의 작전 계획을 유출한 것이 분명하다며 와니(Oignies)와 쿠리에르(Courrières)에서 110여명의 민간인을 총살했다.[41] 벨기에에선 빙크트를 향해 진격하던 독일군 225보병사단 377연대 병력들이 벨기에 제1 아르덴 샤쇠르사단에 가로막히자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우기도 했고 27일 빙크트를 점령한 후 고생한 분풀이로 재판도 없이 86명을 총살했다. 다만 빙크트 학살의 경우 피해자 규모가 좀 들쭉날쭉하다. 전투 중 독일군이 인질로 잡혀있던 27명이 폭격을 맞아 죽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폭격을 가한 것이 독일군인지 벨기에군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전투 중 죽은 민간인까지 집계할 경우 피해자는 147명에 달한다.링크에 피해자 시신이 있으니 심약자는 주의하길 바란다. 한편 SS 토텐코프 사단은 아라스 전투 다음날인 5월 22일 아라스 인근 마을 3곳에서 124명의 민간인을 총살했고 5월 25일엔 뷰브히(Beuvry)에서 48명을 추가로 총살했다.[42]#
파일:독일군 프랑스 민간인 학살 지도.png
<rowcolor=white> 프랑스 침공 기간 민간인 학살 발생 지역도
됭케르크 인근에 점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것은 아라스 전투에서 패배한 토텐코프가 진격로마다 분풀이 학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장 뤼크 렐루에 따르면 프랑스 침공 기간 벌어진 독일군의 민간인 학살은 몇가지 특이점을 띄었는데 첫째, 학살의 대부분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직후 벌어졌다. 상단의 민간인 학살 날짜도를 참조하자면 학살이 벌어진 날은 모두 각각의 부대가 전날 전투로 매우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267보병사단의 경우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64명 전사, 203명 부상, 16명 실종의 피해를 보았고 토텐코프의 경우 아라스 전투를 비롯한 10일간의 전투로 누적 손실이 10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는 빙크트에서 학살을 저지른 267사단도 동일한데 225사단이 벨기에 제1 아르덴샤쇠르 사단에 의해 3일간 입은 피해도 수백명에 달했다. 둘째, 학살을 벌인 267사단이나 225사단은 모두 전투 경험이 없는 예비군 부대였다는 점이다. 267사단의 경우 편성 당시 현역 병사의 비중은 9%가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예비군 출신이었다. 이는 벨기에에서 학살을 저지른 225 보병사단도 동일했다. 압도적 비중을 자랑하는 토텐코프는 예비군 사단이 아니긴 했지만 전투 경험이 없는건 동일했다. 프랑스 침공 기간 동안 전투에 참여한 국방군 사단들 중 이들만 예비군 사단이었다가 전투에 투입된 것이 아니었으니 끼어맞추기가 아니냐고 반문 할 수 있지만 장 뤼크 렐루는 전쟁 개시 이후 토텐코프와 같은 작전 구역을 공유했던 32사단은 18일간 1480명을 잃었지만 민간인 학살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장의 잔인함'에 익숙했던 32사단과 달리 225사단과 267사단 그리고 토텐코프 사단은 영국군이 덤덤탄을 쏘았다거나 민간인들이 독일군 작전 계획을 누출했기 때문에 큰 손실을 입었다는 구실을 만들어 학살을 저지름으로써 자신들의 손실에 대한 좌절감을 해소했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앞서 진행되었던 폴란드 침공 기간동안 독일군에 의해 즉결 처분된 민간인 수는 1,6700명에 달했고 히틀러는 10월 4일 이른바 폴란드인의 잔혹 행위에 분노한 독일군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사면을 명령했는데[43] 이는 독일군 병사들에게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학살 사례가 극도로 적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장 뤼크는 독일인들은 프랑스를 베르사유의 치욕을 안긴 숙적으로 보았지만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립한 폴란드는 경멸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유념해야 할 것이 독일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대량 학살이 극소수라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프랑스가 항복한 6월 25일까지의 학살 기록이지 독일군은 프랑스를 점령하는 동안 레지스탕스의 저항을 소탕한답시고 민간인 총살을 자행했는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당시 프랑스측에서 제시한 민간인 피해자 수치는 2만 9천명에 달했다. 그 외에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이후 제2SS기갑사단이 저지른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은 나치 독일의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것이 다스라이히 사단 4기갑척탄병 연대 1대대 3중대 120여명은 6월 10일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 주민 643명을 살해했는데 이는 서유럽 단일 민간인 학살 사건 최대 수치이자 6주간 독일군이 총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치 42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편 프랑스군 민간인 학살 사례도 있었다.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해오자 벨기에 당국은 독일에 협력한 간첩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77명을 체포해 구금했다. 실제로 독일군 정보국 요원과 독일의 침략에 협조해온 파시스트들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독일어를 쓴다는 이유로 체포되거나 공산주의자라서 체포된 이도 있었다. 이후 벨기에는 독일군이 육박해오던 5월 15일 이들은 프랑스로 추방했고 프랑스는 이들을 아브빌에 수용했다. 5월 20일 구데리안의 제19 기갑군단이 아브빌을 향해 쇄도해오자 프랑스군 마르셀 딩종 대위는 이들을 끌어내어 모조리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문제는 여기서 총살된 사람 중 진짜 독일군 스파이는 4명뿐이었다. 총살된 벨기에인 3명은 공산주의자였고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의 Léon Hirschfeld 는 나치 독일을 피해 도망친 유대인이었지만 독일어를 쓴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헝가리인 Miguel Sonin-Garfunkel 역시 유대인이었지만 총살되었고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4명도 피해자 중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캐나다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독일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었던 로버트 벨은 전운이 드리워지자 감독직을 사임하고 고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벨기에로 도피했는데 스파이로 몰려 처형되었다. 학살은 28지역방위대 쥘 르끌라바르 중위가 군 규정을 들이대며 저지해 종식되었다. 이후 독일 군사 법정은 이후 이 학살 현장을 지휘했던 르네 카론 중위와 에밀 몰레 상사에 사형을 선고했고 1942년 4월 7일 총살되었다. 학살 명령을 내렸던 마르셀 딩종은 비시 프랑스로 도피한 이후 1941년 1월 21일 자살했다.[44]

9. 그 외

  • 독일군의 처참한 흑인 병사 처우와 별개로 프랑스도 파리 탈환을 앞두고 흑인부대는 빼고 백인부대만 파리 행진을 시키며 식민지군의 충성심을 날려버렸다. 다만 이 문제는 미국이 파리 행진에서 유색 인종을 빼달라는 요청을 프랑스 측에 전달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프랑스는 흑인 부대를 빼고 북아프리카인 부대를 배치했다.# 사실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 강력한 동화주의인 라이시테에 근거해 인종별 인구조사까지 금지시킨 반면, 미국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연상케 하던 짐 크로우 법이 1960년대까지 시퍼렇게 살아있던 국가였고, 양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도 경악할 수준으로 인종차별적인 국가였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미군들이 프랑스군 수뇌부에게 니그로들을 너무 대접하지 마라[45] 운운하는 정신나간 공문서를 보내며 내정간섭을 시도했지만, 1차대전은 프랑스의 지분이 가장 큰데다 1차대전 미군은 프랑스 보조전력 수준에 그치던 2류 군대였으므로 가볍게 무시당했지만, 미국이 프랑스의 구원자가 되어버려 입장이 완전히 역전된 2차대전 당시엔 프랑스는 미국의 인종차별식 정책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 영국과 프랑스가 방어 대신 공세를 펼쳤다면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그 정도로 전간기부터 영국과 프랑스도 엄청난 삽질을 해댄 것이다. 물론 전술했듯 독일은 라인란트 재무장 시기부터 영국과 프랑스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외교전을 벌였고 전쟁을 피할수 없게되자 영국과 프랑스가 공세에 나서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기만작전을 펼쳤다. 여기에 폴란드군이 너무 빨리 무너졌고 프랑스군의 자르 공세에 맞선 독일 제1군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자 영불 연합군은 오히려 자신들이 더 많이 죽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크게 작동했다. 또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동맹인 일본 제국은 프랑스의 식민지인 인도차이나(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손쉽게 점령했고[46] 프랑스가 무너지면서 영국이 유럽에서 홀로 고립되자 대다수가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47] 나머지 동남아시아 지역을 꿀꺽 삼키려 하고 이는 태평양 전쟁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프랑스 침공 당시에는 중립을 표방하며 나서지 않아왔던 미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하게 된다.[48]
  •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 제국 치하의 일본열도와 식민지 조선, 대만, 만주국 등에서는 전쟁을 유럽에서 일어난 난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상기한 일제의 동남아 침공은 1942년, 즉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에나 이루어졌고 일본 본토의 국민들이 전쟁을 체감하는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둘리틀 특공대의 도쿄 폭격 이후로, 실제로는 사이판 섬을 미군이 점령한 이후 B-29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마구 폭격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래서 프랑스 침공 당시 일본이나 조선의 식자들이 남긴 여러 기록을 보면 전쟁을 남의 일로 여기는 듯한 서술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물론 이 시점에도 일본군이 침공한 중국 대륙에서는 충칭 대공습, 난징 대학살 등 일본군에 의하여 처참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단지 일본 제국 권역의 사람들이 남의 동네 일로 여기고 있었을 뿐이다.
  • 프랑스 침공과 점령기는 라디오 방송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시 굴러가고 있던 프랑스의 라디오 방송이 폐국되고 새로 개국되었다가 프랑스가 해방된 뒤 다시 폐국되고 전부 새로 개국됐다. 그래서 라디오 프랑스에 있는 전국구 라디오 방송의 역사가 주변국에 비해 짧고 프랑스 블뢰의 일부 지역국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되었다.
  • 침공 당시의 독일군이 작전 기간 동안 계속해서 사기와 컨디션을 유지하게 만든 약물이 페르비틴(pervitin)인데, 필로폰으로 악명이 높은 메스암페타민이다.
  • 프랑스 전차들이 삽질하는 동안 의외로 라플리 W15 TCC라는 대전차차량들은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6륜 포병 트랙터에 47mm SA37 대전차포를 올린 게 전부였는데,[49] 이들 중 브뤼소(Brussaux) 대위의 54대전차중대는 불과 일주일(6월 5일~12일) 만에 독일 전차와 장갑차를 33대나 박살냈다.[50]
  • 1939년까지 히틀러 유겐트 단장으로 지냈던 발두어 폰 시라흐는 그로스도이칠란트 차량화보병연대 1대대 4중화기 중대 연락병으로 스당 전투를 비롯한 프랑스 침공 기간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 이때의 공을 인정받아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고 소위로 진급했다.[51]다만 시라흐는 프랑스 침공이 종료된지 2개월만인 8월, 전역 후 빈 관구 총독으로 부임했다.[52]


[1] 이 포위당한 연합군 병력은 됭케르크 철수작전때 장비들을 전부 버리고, 몸만 이끈 채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2] 프랑스 역사상 희대의 굴욕샷으로 꼽힌다. 좌측의 인물은 알베르트 슈페어 군수장관, 우측의 인물은 조각가 아르노 브레커다. 히틀러가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 했을 때, 프랑스 측에서 몰래 전기를 끊어놓는 바람에 당시 에펠탑의 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했고, 이 때문에 프랑스는 점령했어도 에펠탑은 점령하지 못했다는 재밌는 일화가 있지만 사실 에펠탑에는 계단이 있었고 6월 14일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은 이 계단으로 에펠탑을 올라 군기를 계양했다. 참고로 히틀러는 이미 과거 파리에 있을 때 에펠탑을 올라가 본 적이 있다고 한다.[3]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 문서로.[4] 독일 육군 총사령관[5] A집단군 사령관[6] A집단군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사령관[7] 제19기갑군단장[8] 제15기갑군단장[9] B 집단군 사령관[10] C 집단군 사령관[11] 제38 군단장[12] 제2 항공함대 사령관[13] 제18 군 사령관[14] 제1 군 사령관[15] 제7 기갑사단장[16] 영국 원정군(British Expedinary Forces) 총사령관.[17] 서부 폴란드군 사령관[18] 네덜란드군 총사령관[19] 벨기에 국왕이자 총사령관[20] 에스토니아 출신 제작자의 동유럽식 발음이 영국/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어색할 수도 있으나, 은근히 간과하기 쉬운 됭케르크 철수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기에 관심있다면 참고해 볼만 하다.[21] 총 병력은 400만 명 이상.[22] 물론 연정에서만 배제되었지 제4공화국 내내 줄곧 제1당을 차지했다.[23] 이 전투를 바탕으로한 영화가 2022년 12월 25일 개봉한 '나르비크'이다.[24] 참고[25] 대프랑스 동맹 연합군은 러시아 원정으로 대육군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치른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나폴레옹을 엘바섬으로 보낼 수 있었다.[26] 그도 그럴 게 영국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프랑스를 놀려먹을 만한 소재가 없는 데다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은 끝까지 본토를 지키며 싸웠다는 점에서 입지가 다르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의 연합군 내에서 영국이 프랑스보다 더 오래 항전하며 승리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독일 또한 나치의 전쟁 범죄와 패전국으로서의 입장 때문에 2차 대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지만, 프랑스를 굴복시킨 전적만큼은 확실하니 영 · 미 · 소 3국은 몰라도 최소한 프랑스에게만큼은 할 말이 있는 셈이다.[27] 애초에 군대 규모부터 독일과 맞먹는 나라와 일개 소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프랑스에게는 망신거리다. 어떻게 보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의 예시.[28] 이 패배로 인해 프랑스의 위신은 급락했고, 군대도 경제도 망가진 현실과 별개로 강한 프랑스를 원하는 강경론으로 베트남 전쟁(여기서도 그나마 주요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체적인 전황에서 훗날 미국의 베트남과 아프간 전쟁처럼 피해가 누적되었고 전후의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철수한 타 식민제국들과 달리 상호간 만 명 단위의 병력을 동원했던 대규모 전투인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정예 병력이었던 그 외인부대가 박살 나는 차원이 다른 굴욕을 겪었다. 아도와 전투에서 패배했던 그 이탈리아 군도 엄연히 2선급 부대였던 아스카리와 에리트리아 주둔군이 패배한 거였다!), 알제리 전쟁에서도 패전하며 패배 → 위신 하락 → 위신 회복을 위한 전쟁 → 패배⋯의 악순환을 겪어 제4공화국이 무너지고야 만다. 참고로 이 짓거리는 프랑스 제2제국 때도 해먹었던 짓이다. 결국 내실은 생각 안 하고 보여지는 것만 신경 쓰는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던 것.[29] Jean, Al (2005). The Simpsons The Complete Sixth Season DVD commentary for the episode "'Round Springfield" (DVD). 20th Century Fox.[30] 김용빈-제2차세계대전 시 프랑스의 위기관리 및 조치 실패원인 (2015) 군사연구 제141집. P.215[31] 김용빈-제2차세계대전 시 프랑스의 위기관리 및 조치 실패원인 (2015) 군사연구 제141집. P.217[32] 김용빈-제2차세계대전 시 프랑스의 위기관리 및 조치 실패원인 (2015) 군사연구 제141집. P.221-222[33] 물론 전술했듯 중포 부족은 한가지 이유였을 뿐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34] Case Red by Robert Forczyk 번역글[35] 제1차 불런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사기가 난장판이었던 연방군의 사기를 끌어올렸지만 야전에서 리의 기만전술과 기동전술에 낚여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놓쳐버렸다. 전쟁 초반엔 그만한 조직가도 없었고 병사들 사이에서 매클렐런의 인기는 굉장했기에 링컨은 참아넘겼지만 계속 남부군에 대한 공격을 머뭇거리자 폭발해 해임해버렸다.[36] Case Red by Robert Forczyk 번역글[37] check, Raffael (2006). Hitler's African Victims: The German Army Massacres of Black French Soldiers in 1940.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0-521-85799-4.[38] 안장된 188명이 전부 독일군 학살의 피해자인지 아니면 전투 전사자가 포함되어있는지 불명확하며 어느 부대 소속 전차가 학살에 가담했는지도 불분명하다.[39] Scheck, Raffael (2006). Hitler's African victims: The German Army massacres of Black French soldiers in 1940, P28[40] Butler, Daniel Allen (2015). Field Marshal: The Life and Death of Erwin Rommel, P172-174[41] Lieb, Peter (2007). Konventioneller Krieg oder NS-Weltanschauungskrieg? Kriegführung und Partisanenbekämpfung in Frankreich 1943/44. Munich: R. Oldenbourg. ISBN 978-3-486-57992-5.[42] 다만 이들 사건에 대해선 별도의 지칭이 존재하지 않는다.[43] Jochen Böhler (éd.), « Grösste Härte… » Verbrechen der Wehrmacht in Polen. September – Oktober 1939, Hambourg, Institut historique allemand de Varsovie, 2005, p. 140. Cf. aussi Idem., Auftakt zum Vernichtungskrieg. Die Wehrmacht in Polen 1939, Francfort-sur-le-Main, Fischer-Taschenbuch-Verlag, 2006. Kaus-Michael Mallmann, Jochen Böhler, Jürgen Matthäus, Einsatztruppen in Polen. Darstellung und Dokumentation,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2008.[44] Vlaemynck, Carlos H. (1977). Dossier Abbeville: arrestaties en deportaties in mei 1940 (in Dutch). Davidsfonds. ISBN 9789061522928.[45] 프랑스 군사 대표부 (기밀문서) 1918년 8월 7일 제목: 흑인 미군 병사들에 관하여 1. 흑인 미군 부대를 지휘하거나, 혹은 그들과 가까이 지내게 될 프랑스 장교들은 미국 내에서의 흑인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아래에 기술된 사항들을 숙지해야 하며, 그 내용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 군사 당국은 프랑스 민간 당국을 통해, 프랑스 국민에게 — 특히 흑인 미군 부대가 주둔한 지역의 인근 주민들에게 — 이 주제에 대해 알릴 책임이 있다. 2. 미국인의 “흑인 문제”에 대한 관점은 프랑스인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프랑스인에게는 이른바 ‘편견(prejudice)’이라 불리는 사안에 대해 논할 권리가 없다. 미국 여론은 이 문제에 대해 일치되어 있으며, 토론의 여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 내 약 1,500만 명의 흑인 인구는 백인 인종의 퇴화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공화국의 백인 사회가 퇴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 절대적인 분리가 필요하다. 프랑스인에게는 이런 위험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흑인을 친근하게 대하고, 흑인들이 자신들에게 보내는 관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대함과 친밀한 태도는 미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국가적 교리(national doctrine)’에 대한 타격으로 여긴다. 미국인들은 프랑스인과의 접촉이 미국 흑인들에게 백인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생각들을 불어넣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프랑스 장교들은 미국 여론을 심각하게 불쾌하게 만들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46] 정확히 말하면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지 총독부를 위협해서 주둔권 등의 권리를 얻은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점령과 마찬가지였다. 이후 비시 프랑스가 항복하고 나치 독일도 멸망 직전에 이르자 일본은 1945년 3월 총독부를 아예 해체시키고 괴뢰국들을 세워 잠시마나 인도차이나를 지배했다.[47] 동남아시아 자체가 1940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위협에 처하게 됐다. 인도네시아와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로 삼았던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본토가 독일에게 점령당했고 영국은 본토가 점령당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삽질로 인한 손실과 본토방어에 바빠 동남아시아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미국이 유일하게 건재했는데 일본이 워낙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필리핀을 방어할 수 없었다.[48] 미국은 당시 세계 대공황과 뉴딜 정책 등으로 인해서 국내 분위기도 혼란스러웠던 시기였을 뿐 아니라 유럽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 비유럽권 국가인 본국이 나설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프랑스 침공에 개입하지 않았다.[49] 초기 프로토타입은 그나마 장갑화라도 했지만 개전 직후 생산분은 그마저도 없었다.[50] 브뤼소 본인도 6월 7일 독일군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 4호 전차 3대, 장갑차 5대를 격파하고 퇴각했다.[51] 2급 철십자 훈장은 당시 가장 낮은 등급의 철십자 훈장이라 표창장 성격이 강했지만 독일 전군 통틀어 80여만명만 수여받은 만큼 아무렇게나 뿌린 훈장은 아니었다.[52] Helmuth Spaeter, The History of the Panzerkorps Gross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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