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01:44:34

제1차 돈바스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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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돈바스 공세
러시아어: Изюм-Барвенковская наступательная операция[1]
/Миусская наступательная операция[2]

독일어: Donez-Mius-Offensive
영어: Donbas strategic offensive
제2차 세계 대전동부전선의 일부
파일:제1차 돈바스 공세.png
▲ 6군을 포위하고 돈바스 공업지대를 탈환하려는 소련군
날짜
1943년 7월 17일 ~ 8월 2일
장소
소련 우크라이나 SSR 도네츠 강과 미우스 강 일대
교전국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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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 전선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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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톨부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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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전선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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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집단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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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데슬로
(제4항공함대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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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갑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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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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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네링
]]
(제24기갑군단 사령관)
결과
독일군의 승리
영향
쿠르스크에서 독일군의 공세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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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서 전선군
병력 202,430명
전차/자주포 1,10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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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 남부 전선군
병력 271,790명
전차/자주포 73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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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기갑군, 제6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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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제24기갑군단[3]
전차 223대
돌격포 145문
자주포 115문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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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 제4항공함대
항공기 250기[4]
피해 규모[5]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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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문서명
]]남서 전선군
전사/실종 10,310명
부상 28,380명
야포 144문
전차/자주포 363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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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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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남부 전선군
전사/실종 15,303명
부상 45,767명
전차/자주포 732대[7]
대전차포 522문[8]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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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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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 제1기갑군
전사 2,577명
실종/포로 1,889명
부상 10,030명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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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명칭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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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명칭
]][[틀:깃발|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문서명
]] 제6군
전사 3,298명
실종/포로 2,254명
부상 15,817명
전차/돌격포 약 300대



1. 개요2. 1943년 여름의 남부 전선3. 전투 서열
3.1. 소련군3.2. 독일군
4. 전개
4.1. 이지움-바르벤코보 공세 : 남서 전선군 vs 1기갑군4.2. 미우스 공세 : 남부 전선군 vs 6군4.3. 반격 : 2근위군,5충격군 vs 24,2SS기갑군단
5. 결과

[clearfix]

1. 개요

제1차 돈바스 공세는 성채 작전이 끝난 직후[9] 남서 전선군과 남부 전선군이 남부 집단군 우익의 1기갑군과 6군을 상대로 진행한 공세이다. 공세 자체는 규모로 보나 목적으로 보나 도네츠 분지 탈환과 6군 섬멸이었으나 독일군의 성공적인 대처로 목적 달성에 완전히 실패했다. 그래도 이 공세 덕분에 남부 집단군의 예비 기갑 전력이 전부 도네츠강 유역으로 투입되면서 쿠르스크 남쪽에서의 남부 집단군 공세가 실패했고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의 공세가 완전히 끝나게 된다.

2. 1943년 여름의 남부 전선

육군최고사령부가 쿠르스크 일대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부 집단군의 4개 야전군은 소련 4개 전선군을 상대하고 있었으며 이 중에서도 주요 기갑 전력을 보유한 4기갑군과 켐프 분견군은 남부 집단군의 담당 구역 중 약 70%를 담당학 있었으며 6군에 임시 배속된 16기갑척탄병사단을 제외하면 후방 예비대가 전무했다. 그나마 남부 집단군이 보유한 24기갑군단[10]이 유사시 투입될 수 있는 유일한 전력이었다. 그래도 이 전선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도네츠강-미우스강으로 이어지는 자연장애물 덕분이었다.

쿠르스크 일대에 거대한 규모의 전력이 집결했지만 전력의 집중은 독일이 더 심했기에 타 전역에서 독일군은 압도적인 열세가 되었다. 이 때문에 전력 대비 굉장히 긴 전선을 담당하던 남부 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은 여차하면 돈바스 일대를 포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련군이 당연히 도네츠강 유역에서 공세에 나설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예비 전력을 남쪽에 투입할 여유가 없을 만큼 성채 작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는 결국 이 공세가 쿠르스크에서 독일군의 공세를 끝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소련군은 나름대로 야심한 목표가 있었다. 소련군은 쿠르스크의 소련군 구원 정도가 아니라[11] 6군을 섬멸하고 돈바스를 탈환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엄청난 전력을 투입했다. 투입된 전력은 2개 전선군의 병력 474,220명과 1,864대의 전차/자주포였다.

3. 전투 서열

3.1. 소련군[12]

  • 남서 전선군 ( 사령관 : 로디온 말리놉스키 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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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개

4.1. 이지움-바르벤코보 공세 : 남서 전선군 vs 1기갑군

도네츠 강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할 남서 전선군은 1,3,8근위군과 17항공군을 배치했으며 202,430명의 병력과 1,109대의 전차/자주포를 투입했다. 주공은 이지움에서 공세를 시작해 바르벤코보로 진격할 1,8근위군이었고 3근위군은 전선군 좌익에서 보조 공세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최종 목표는 스탈리노까지 진격해 남부 전선군과 만나는 것이었다. 후방에는 12군과 23전차군단, 1근위기계화군단이 추가로 대기하고 있었다. 독일 1기갑군은 북쪽부터 57기갑군단, 40군단, 30군단을 배치했으며 이 중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야할 부대는 40군단과 30군단이었다. 후방에는 남부 집단군 직속의 17기갑사단이 1기갑군의 유일한 예비 전력으로 대기중이었다.

공세는 7월 17일부터 시작됐고 첫 날, 1근위군과 8근위군은 도네츠 강을 넘어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교두보를 유의미하게 확장시키지 못하면서 공세가 지지부진해졌다. 둘째날부터 1근위기계화군단과 23전차군단을 투입했으나 남부 집단군은 즉각 24기갑군단을 도네츠 유역으로 파견했다. 이 시점에서 군단은 17기갑사단과 5SS기갑척탄병사단 '비킹' 휘하에 작전가능한 84대의 전차/돌격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소련군은 추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전선군 좌익의 3근위군은 교두보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10일간의 참호전 끝에 27일에 남서 전선군의 공세는 전사/실종 10,000명을 포함한 38,000명의 사상자와 360대의 전차/자주포를 손실하면서 마무리됐다. 1기갑군의 인명피해는 전사/실종 4,500명을 포함한 15,000명의 사상자였다.

4.2. 미우스 공세 : 남부 전선군 vs 6군

남부 전선군 역시 남서 전선군과 동시에 공세를 시작했다. 남부 전선군은 미우스 강을 넘어 남쪽으로 진격할 예정이었으며 주공은 전선 중앙의 5충격군과 28군, 8항공군이었으며 후방에 2,4근위기계화군단을 배속받은 2근위군이 대기중이었다. 추가로 전선군 좌익의 51군과 우익의 28군도 보조 공세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남부 전선군은 주요 부대는 스탈리노로 진격하고 일부 부대는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타간로크에 29군단을 가두는 것이 목표였으며 271,790명의 병력과 737대의 전차/자주포가 투입됐다. 독일 6군은 북쪽부터 4군단, 17군단, 29군단을 배치했고 후방에 6군의 유일한 예비 전력인 16기갑척탄병사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17일부터 시작된 공세는 남서전선군의 공세에 비해서는 성공적이었다. 5충격군과 28군은 미우스 강을 건너 17군단을 밀어내고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이어서 2근위기계화군단을 투입하여 교두보를 확장해나갔다. 남부 집단군은 즉시 23기갑사단을 파견했지만 훌리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훌리트는 18일에 야전군 예비인 16기갑척탄병사단을 투입했으나 소련군은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나갔고 19일에는 23기갑사단도 합류했으나 역시 소련군을 강 동쪽으로 몰아내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소련군 역시 20일이 되자 더 이상 공세를 이어나가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2근위군과 4근위기계화군단도 강을 넘어 교두보에 합류해 21일부터 공세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역시 23일이 되자 교착상태에 빠졌고 25일에 최후의 공세를 펼쳤으나 역시 실패했다. 물론 51군과 44군 역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4.3. 반격 : 2근위군,5충격군 vs 24,2SS기갑군단

파일:1943 미우스 교두보.png
▲ 미우스 교두보를 제거하기 위해 진격하는 독일군

두 공세가 한창 진행중일 때, 동부 전선의 전황도 급변하고 있었다. 공세 시작 이전인 7월 13일에 히틀러는 성채 작전을 중단하면서 제2SS기갑군단이 동부 전선에서 철수하여 이탈리아로 이동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도네츠강과 미우스강에서 대규모 공세를 시작하자 철수 대신 1기갑군과 6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방어선은 도네츠 분지[20]를 지킬 마지막 천연방어선이었기 때문에 여기가 돌파당하면 드네프르강까지 소련군을 막을 방법이 없었고 쓸모없는 땅도 전혀 내줄 생각이 없던 히틀러에게 돈바스 일대라는 거대한 공업지역은 엄청나게 중요한 곳이었다. 우선 1SS기갑척탄병사단 'LSSAH', 2SS기갑척탄병사단 '다스라이히'가 급파됐고 이어서 3SS기갑척탄병사단 '토텐코프'와 3기갑사단이 파견될 예정이었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반격이 준비중이었으나 히틀러의 개입이 또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만슈타인은 1,2SS기갑척탄병사단이 내려가는 길에 어자피 도네츠강을 통과해야하므로 1기갑군의 공세에 투입하려 했으나 히틀러는 24일에 이동하는 기갑사단들이 1기갑군을 바로 통과해 미우스 강 지역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슈타인은 극렬하게 반대했으나 소용없었다. 심지어 26일에는 LSSAH 사단을 이탈리아로 이동시키면서 다스라이히 사단은 정작 미우스 강에 도착하고서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소련군 교두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작전술적 제대 규모의 전력이 모여야했기 때문에 30일까지 기다려야했다.

30일이 되자 24기갑군단과[21], 2SS기갑군단[22] 휘하에 4개의 기갑사단 및 기갑척탄병사단이 집결해 4항공군단의 지원을 받아 교두보 제거를 위한 공세를 시작했다. 공세 시작 시점에서 독일군은 작전 가능한 258대의 전차와 100문의 돌격포를 보유중이었다. 북쪽에서 공격한 2SS기갑군단은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특히 토텐코프 사단은 213.9고지에 사실상 멈춰버렸다. 공세 첫 날, 2SS기갑군단은 보유중인 233대의 전차/돌격포 중에 무려 91대를 손실했다. 반면 남쪽의 24기갑군단의 공세는 성공적이었고 31일에는 5개 사단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소련군은 포위 전력을 탈출시키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여전히 진격이 지지부진했고 31일 저녁이 되자 2SS기갑군단의 작전가능한 전차는 20대에 불과했다. 만슈타인은 공세 중단을 고려했으나 중단 대신 공세 주력을 옮겨 다시 공세에 나섰고 8월 1일에 마침내 213.9고지가 독일군에 수중에 들어오면서 소련군 방어선은 무너졌다. 남부 전선군 사령관 톨부힌은 스탈린의 허가를 받아 교두보를 포기하고 교두보의 부대들에게 철수를 명했고 8월 2일에 교두보가 완전히 제거되면서 미우스 공세도 마무리됐다.

공세 기간동안 남부 전선군은 15,000명의 전사/실종을 포함한 61,00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6군은 5,500명의 전사/실종을 포함한 21,00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독일군은 300대가 넘는 기갑차량을 손실했으며 소련 역시 700대[23] 가량을 손실했다.

5. 결과

소련군은 전술적, 작전술적으로 공세 목표 달성에 완전히 실패했다. 돈바스 탈환은 커녕 6군 섬멸에도 실패했다. 그럼에도 전략적으로는 성과가 있었는데 남부 집단군 예비였던 24기갑군단과 이제 막 쿠르스크 남부에서 철수한 2SS기갑군단을 끌어들여 쿠르스크에서 독일군의 공세가 완전히 끝나게 됐다는 것이다.[24]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절대 만족할 만한 성과가 아니었다. 애초에 쿠르스크 남부 전역에는 스텝 전선군이 기갑 전력은 지원했을지언정 본대는 투입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24기갑군단을 투입했다 할지라도 공세자체가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만슈타인은 이를 몰랐기 때문에 공세 중단을 반대했으나 어쨌든 두 기갑군단이 미우스 강에서 성과를 거둔 것이 차라리 나은 상황이었다.[25]

독일군의 피해가 전사/실종 10,000명을 포함한 사상자 31,000명과 전차/돌격포 400대인 것에 비해 소련군의 피해가 전사/실종 25,000명을 포함한 사상자 100,000명과 전차/자주포 1,000대인데 성과가 전혀 없었으므로 공세 자체는 완전히 실패였다. 24기갑군단과 2SS기갑군단은 공세가 마무리되자마자 다시 하리코프로 이동하여 7월 17일에 롤랜드 작전이 종료된 후 2주간 재편성한 뒤 8월 3일부터 벨고로드-하리코프 공세[26]를 진행중이던 소련군을 막아야했다. 돈바스 일대에서는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다 하리코프 일대의 독일군 전선이 무너지자 8월 13일부터 다시 제2차 돈바스 공세를 시작해 한 달 만에 돈바스를 완전히 탈환하고 드네프르강에 도달하게 된다.
[1] 이지움-바르벤코보 공세 작전[2] 미우스 공세 작전[3] 공세 시작 시점에서 남부집단군 예비[4] 7월 14일 기준, 대부분의 항공기가 하리코프와 오룔에서 작전중이었으며 그나마 남은 전력도 크림반도로 분산되어 있었다.[5] 양 측 인명 피해는 각 부대에서 올린 기록에 의거한 것이지만 역시 소련측 피해가 축소되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예를 들어 남부 전선군의 회복 불능 피해는 15,303명인데 독일군이 미우스 강 부근에서 잡았다고 보고한 포로만 17,762명으로 이는 소련 남부 전선군이 추산한 전사자+실종자인 15,303명보다도 많은 수치이다.[6] 완전 손실 266대[7] 독일 측 기록[8] 독일 측 기록[9] 쿠르스크 전투 자체는 쿠투조프 작전, 루미안체프 작전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10] 17,23기갑사단과 5SS기갑척탄병사단 '비킹'[11] 이 역할은 애초에 소련군이 후방에 배치한 거대한 예비 부대들이 담당해야 할 것이었다.[12] 7월 1일 기준[13] 7월 31일부터 게오르기 자하로프 중장[14] 7월 7일 기준[15] 7월 20일부터 4군단이 됨[16] 명목상으로는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원수가 사령관이었으나 6월부터 2항공함대 사령관이 되어 지중해로 이동한 상태였기 때문에 데슬로가 대리로 4항공함대 사령관을 맡다가 9월 4일부터 정식으로 사령관이 되었다.[17] 크림반도에서 17군 지원[18] 도네츠 분지에서 6군과 1기갑군 지원[19] 하리코프에서 4기갑군과 켐프 분견군 지원[20] 혹은 돈바스[21] 23기갑사단, 16기갑척탄병사단[22] 다스라이히, 토텐코프, 3기갑사단[23] 독일측 기록[24] 성채 작전은 13일에 끝났지만 남부 집단군 단독으로 롤랜드 작전을 진행중이었다.[25] 물론 성채 작전이 실패한 이상 남부 전선의 붕괴는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고 만슈타인은 이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의도가 강했다.[26] 루미안체프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