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2-27 20:46:16

프랑스 침공/연합군 편제

1. 프랑스군 총사령부2. 북동 작전구
2.1. 제1집단군2.2. 제2집단군2.3. 제3집단군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전역의 주역인 북동부 전구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알프스 일대 주둔군 등은 생략하도록 한다. 프랑스는 총 3개 집단군 규모의 병력이 독일과의 국경선 일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병력의 규모 및 질적인 측면에서는 독일군과 대등 혹은 우세한 전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상대하는 독일군 전력은 프랑스 침공/독일군 편제 참조.
사실 어떻게 해서 졌는지가 더 의문이다. 이걸 보면 알 수 있다

수적으로 주력이 되는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 대륙원정군/벨기에군/네덜란드군/자유 폴란드군 등이 연합전선을 이루어 독일의 침공에 대응하는 것이 연합군의 목표였지만, 전쟁 진행 과정은...

1. 프랑스군 총사령부

프랑스군 총사령부는 프랑스군 총사령관 겸 연합군 총사령관 모리스 가믈랭 대장을 수장으로 하고 있었으며 부사령관으로 알퐁스 조르주 대장을 두었다. 이후 가믈랭이 해임되면서 1차 세계대전의 영웅 막심 베이강 대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기존의 전략 계획 하에서는 최고의 전략 예비대 역할을 수행해야 할 7군이 1야전군 휘하에 들어가 딜 계획의 핵심 부대로 기능하게 되면서 프랑스군 총사령부 산하에 배치되어 있는 병력들은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예비병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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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군단[4]

2. 북동 작전구

프랑스 북부와 동부 전선 전역을 총 지휘한 사령부로 예하 3개 집단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령관은 알퐁스 조르주 대장.

2.1. 제1집단군

딜 계획의 주력부대로 예하 4개 야전군과 고트 백작 존 베레커의 영국 대륙원정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령관은 가스통 비요트 대장. 이후 비요트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제1군 사령관 블랑샤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실질적인 프랑스 육군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대가 바로 1집단군 산하 병력들이었다. 프랑스군은 마지노 선으로 프랑스군의 우익이 방호되고, 중부 전선은 마스 강과 아르덴 고원이라는 자연 장애물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독일군의 주공이 벨기에 방면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 하에 최정예부대를 좌익 일대에 대대적으로 집중 배치해 둔 상태였다.

본래의 계획대로였다면 프랑스군/영국군의 일부 부대가 플랑드르 일대일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군의 주공에 대응하여 벨기에군이 구축한 방어선에 합류하여 독일군의 주공을 방어하면서 단축된 전선을 통해 밀도 높은 방어전력을 확보하는 수준에 오르는 것이 1집단군의 기본적인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7군이라는 야전군 규모의 기동력 있는 예비대를 확보하여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대응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다.

문제는 프랑스군이 이 일대에 보유하고 있던 예비대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나 다름없었다는 것. 상술한 바와 같이 딜 계획이 브레다 계획과 결합/확대되면서 작전술 차원의 예비대로 랭스에 주둔하고 있어야 할 7군이 방어선에 직접 투입되었고, 북동부전선 전체가 전략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예비대가 사라진 상태였다. 북동부전선을 총괄하던 조르주 장군은 이에 거세게 반발하며 1개 군단만을 방어선에 추가 투입하고 7군의 주력은 집단군의 예비 병력으로 두어 기동성 있게 대응할 것을 제안했으나 가믈랭의 결단은 확고했다.
  • 제1군(조르쥬 블랑샤르 대장 → 르네 프리우 중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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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3보병사단
      제68보병사단

2.2. 제2집단군

2집단군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 사이에서 방어를 맡는 주력 부대로, 마지노 선 수비를 주 임무로 삼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황색 상황으로 연합군의 실질적 주력인 1집단군과 영국 대륙원정군 등을 제압한 이후 이후 적색 상황에서 쌈싸먹힐 예정이었던 목표물. 사령관은 앙드레 프레틀라 대장. 후에 3군 사령관이던 샤를 콩데로 교체된다.

2집단군의 경우 서부전선에서 5월 말에서 6월 초에 이르는 기간까지 사실상 잊혀진 부대처럼 취급되고 있는데, 마지노 선에 틀어박힌 2집단군은 후에 쌈싸먹힐 때까지 작전술적 차원에서 뭔가 한 일이 사실상 없다(...). 할 일도 없었겠지만. 마지노 선 일대에서 조공을 맡은 독일군 C집단군과 숨바꼭질만 하다 엉겁결에 대대적인 포위를 당하고 막대한 포로로 전락한 꼴.

만약 2집단군 소속 전력 중 한 개 야전군 정도라도 마지노 선에서 빠져나와 전선의 예비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 프랑스 침공이 고작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끝나는 일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결국 북동부전선 전체가 무너진 것이 선형 방어에 대한 고집과 상례를 벗어난 상황에 대응할 예비대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 제3군(샤를 콩데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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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3집단군

3집단군은 마지노 선의 극동단 및 남단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부대였다. 다만 개전 시점까지 3집단군이 완편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실질적으로 마지노 선의 수비를 보조하는 성격에 가까웠으며, 2집단군과 알프스 방어군 사이의 간격 메우기 및 마지노 선 일대의 예비대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게 가능할 것이다. 사령관은 앙드레 앙트완 베송 대장. 전격전의 전설에서는 3집단군 전체가 개전 이후 새로 편성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 제6군[12](로베르 투숑 중장)
    • 제45군단

      • 제57보병사단
        제63보병사단
        제2폴란드보병사단
  • 제8군(잔느 가르슈리 대장 → Émile Laure 중장)
  • 제7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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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스파히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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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4요새보병사단
      제105요새보병사단
  • 제44요새군단

    • 제67보병사단
  • 집단군 예비

    • 제506전차대대집단


[1] 이후 자유 프랑스군의 주요 지휘관 중 하나로 떠오르는 드라트르 드타시니가 지휘하고 있었다.[2] Division Cuirassée de Réserve. 엄밀히 하자면 예비를 붙여야 하지만 생략한다.[3] 제4흉갑기병사단은 개전 당시 아직 완편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참전했기에 기록한다. 당시 사단장은 샤를 드골.[4] 21군단과 23군단은 군단 사령부와 군단 직할부대만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예하에 배속된 사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사시 예비사단을 배속받아 전선에 투입되는 일종의 예비 사령부 역할을 하는 군단이다.[5] 본래 1군 예하 기병군단장이었다.[6] Groupe de Bataillons de Chars. 독립전차대대가 아닌 규모인 경우가 많다. 전차 1~3개 대대 정도 규모로 구성된다.[7] 본래는 기병군단 산하에 있는 부대였지만 원 소속 부대와 분리되어 있었다.[8] 노역을 위해서 파견되었다.[9] 소규모 분견군을 증원받아 프랑스군 식민지 군단 휘하로 들어갔다.[10] 1940년 5월달에서 6월달 중순사이에 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다.[11] 5월 16일 이후 2집단군 직할로 돌려짐.[12] 6군은 확실히 개전 당시에는 완편되지 않았으며, 스당 일대가 돌파당하는 시점인 5월 14일 기준으로는 완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2군과 9군의 전투지경선 일대에 투입되면서 2흉갑기병사단/14보병사단/36보병사단/41군단 등을 배속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