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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0><colcolor=#fff> 프랑스 제1집단군 총사령관 가스통 비요트 Gaston Billotte | |
| | |
| 본명 | 가스통 앙리 비요트 |
| Gaston-Henri Billotte | |
| 출생 | 1875년 2월 10일 |
| 프랑스 제3공화국 그랑테스트 레지옹 오브주 솜발 | |
| 사망 | 1940년 5월 23일 (향년 65세) |
| 벨기에 베스트플란데런주 이에페르 | |
| 국적 | |
| 직업 | 군인 |
| 학력 | 생시르 사관학교[1] (졸업) |
| 군인 경력 | |
| 복무 | 프랑스 육군 |
| 계급 | 대장 |
1. 개요
가스통 앙리 비요트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군인으로 제1집단군 총사령관을을 역임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2. 생애
비요트는 1896년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 후 임관해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여단 사령관과 참모 장교를 역임했다. 종전 이후, 그는 1919년~1920년까지 폴란드 제2공화국 주재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일하다가 1927년에 육군 대장으로 승진하고 1930년~1932년까지 프랑스 보호령 모로코, 프랑스령 튀니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등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64세의 나이로 은퇴를 앞두고 있던 그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벨기에 인근에 본부를 두고 있던 제1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이후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에 의해 패전을 겪고 사기가 크게 저하된다.[2] 1940년 5월 12일에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3세와 영국의 존 베레커 장군의 작전을 조정하는 일을 총괄하게 되었지만 능력 부족과 패전에 의한 충격으로 인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영국 정부는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 제국총참모장을 파견해 사기를 올리고자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결국 그는 그의 부대와 남부로 철수했고 5월 21일에 이에페르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후 복귀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2일간 혼수상태가 지속되다가 결국 사망한다.3. 여담
- 아들 피에르 비요트는 프랑스 침공 스톤 전투에서 독일 전차 13대를 격파하며 전차 에이스에 등극했고 생포되었으나 탈출해 자유 프랑스군 소속으로 독일군과 싸웠다. 전후 군무장관, 해외영토장관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