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38><colcolor=#fff> 영국군 제16대 제국총참모장 앨런 브룩 Alan Brooke KG, GCB, OM, GCVO, DSO&Ba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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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초대 앨런브룩 자작 앨런 프랜시스 브룩 Alan Francis Brooke, 1st Viscount Alanbrooke | |
출생 | 1883년 7월 23일 | |
프랑스 제3공화국 바그네르드비고르 | ||
사망 | 1963년 6월 17일 (향년 79세) | |
영국 햄프셔주 하틀리윈트니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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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군인 | |
학력 | 울리치 육군사관학교 | |
복무 | 영국 육군 (1902~1946) | |
최종 계급 | 원수 |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
재임기간 | 제16대 제국총참모장 | |
1941년 12월 25일 ~ 1946년 6월 25일 |
1. 개요
영국의 군인.2. 생애
바그네르드비고르 제3대 준남작 빅터 브룩의 태어나 대대로 군인집안이였다. 프랑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프랑스어가 영어처럼 유창했다. 또한 독일어, 우르두어, 페르시아어 또한 잘 구사할 수 있었다. 1902년 울리치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병 소위로 임관하려 했으나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아일랜드, 인도의 포병대에서 복무했다.1차 대전이 발발하고 왕립기마포병대 소속으로 서부전선에 배치되었고 제18사단 예하 포병대에 재배치되어 솜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프랑스군의 포병 전술인 탄막 사격을 도입하는데 기여했다. 1917년 캐나다군단 소속으로 배속되어 비미 전투에서 포격지원을 했으며 1918년, 중령으로 진급해 제1군 참모로 임명되었다.
전간기 당시 참모학교를 수료하고 교관으로 재직하다가 제50사단 참모에 임명되었다. 이후 참모학교 교관으로 복직했다. 차기 전쟁을 대비해 많은 장교들을 육성해야한다고 강조했고 1935년 기동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38년 중장으로 진급해 대공군단장이 되었다. 공군과의 협조를 강화해 그의 체계슨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공군의 휴 다우딩과 협력해 독일 공군을 저지하는데 공을 세웠다.
1939년 영국 원정군 제2군단장[1]으로 임명되어 벨기에 플랑드르에 배치되었으나 뫼즈강으로 배치가 변경되었고 독일군 공세가 시작되자 스당 전투에서 대패했고 됭케르크 철수작전 당시 영국으로 철수했다.
1940년 남부사령관이 되었고 예비군사령관을 거쳐 1941년 존 딜의 후임으로 총참모장이 되어 2차 대전 종전까지 영국군을 총지휘했다. 윈스턴 처칠과 함께 전장을 계획했으며[2] 북아프리카 전선, 이탈리아 전선 기본 전략을 구상한 인물이고 베테랑인 해럴드 알렉산더, 몽고메리와 젊은 장성 마일스 뎀프시, 올리버 리스, 브라이언 호록스를 기용했다.
전후 앨런브룩자작을 수여받았고 1946년을 마지막으로 예편했다. 이후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다가 1963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 둘러보기
[1] 제3사단장 버나드 로 몽고메리, 4사단장 더들리 존슨이 속해있었다.[2] 처칠과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아 서면이 아닌 오로지 전화 통화로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