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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일본 제국 제123대 천황 다이쇼 천황 大正天皇 | |||
출생 | 1879년 8월 31일 | ||
도쿄부 도쿄시 아카사카구 아오야마 어소 (現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 어용지) | |||
즉위식 | 1915년 11월 10일 | ||
교토부 교토시 교토어소 (現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 교토교엔) | |||
사망 | 1926년 12월 25일 (향년 47세) | ||
가나가와현 미우라군 하야마정 하야마 어용저(葉山御用邸) | |||
능묘 | 타마릉(多摩陵)[1] | ||
재위기간 | 제123대 천황 | ||
1912년 7월 30일 ~ 1926년 12월 25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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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부황 메이지 천황 모친 야나기하라 나루코 | ||
형제자매 | 5남 10녀 중 3남 | ||
배우자 | 데이메이 황후 | ||
자녀 | |||
학력 | 가쿠슈인 초등과 (중퇴) | ||
종교 | 신토 | ||
신체 | 162cm[2] | ||
어칭호 | 하루노미야([ruby(明宮, ruby=명궁)]) | ||
시호 | 다이쇼 천황([ruby(大正天皇, ruby=대정천황)]) | ||
연호 | 다이쇼([ruby(大正, ruby=대정)], 1912년 ~ 1926년) | }}}}}}}}} |
즉위식 당시 천황의 전통 관복 '고로젠노고호'(黄櫨染御袍)를 입은 다이쇼 천황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123대 천황.유년 시절 사용한 어칭호는 '하루노미야'였으며 휘는 요시히토(嘉仁)였다.
재위기간 동안 사용한 연호는 다이쇼(大正, 대정)였다. 연호 '다이쇼'는 《주역》(周易) <단전>(彖傳) '임괘'(臨卦)에 나오는
대형이정 천지도야(大亨以正 天之道也, "바른 것으로 크게 형통하니 하늘의 도라.")
라는 구절과 '다이쇼'는 《주역》(周易) <단전>(彖傳) '대축괘(大畜卦)에 나오는 강상이상현(剛上而尙賢) 능지건(能止健) 대정야(大正也). "굳셈이 위에 있어 현명한 이를 숭상하여 능히 강건함을 그치게 함이 크게 바르다.")
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아들 쇼와 천황이 87세로 장수한 것과 달리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천황이다.
또한 새 수도가 된 도쿄에서 태어나고, 그곳에 묻힌 첫 번째 천황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유년 시절
1892년의 다이쇼 천황 |
1880년 11월 1일(1세)부터 황실의 전통에 따라 부모와 떨어져서 메이지 천황의 외조부인 나카야마 다다야스의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동안 친부인 메이지 천황은 요시히토의 양육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기에 만나지 못했다.
1885년 3월, 다시 황거로 돌아왔으나, 역시 메이지 천황은 자식들을 거의 보지 않은 데다가, 생모인 야나기하라 나루코도 만나질 못했으며, 형제들도 대부분 어릴 때 죽고 없어서 요시히토는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6]
1887년, 메이지 천황의 정실 부인인 하루코 황후의 법적인 정식 양자가 되었고, 황실 예법에 대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어릴 때 생모를 만나지 못해서 하루코 황후가 생모인 줄 알고 자란터라, 몇몇 사람들이 생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말해도 좀처럼 믿지 않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1887년 9월, 가쿠슈인에 입학했으나,[7] 가쿠슈인의 엄격한 규칙에 적응하지 못했고, 건강도 안 좋았기 때문에 백일해에 걸려 휴학하고, 1889년부턴 아타미나 하코네에서 요양하며 건강 회복에 힘썼다. 동년 11월엔 《황실전범》의 제정과 동시에 황태자가 되었으나 가쿠슈인에서의 성적이 나빴고[8] 1894년에 결국 중퇴했다.
가쿠슈인을 중퇴한 이후, 아카사카 별궁에서 개인 교습을 받아 프랑스어, 한문, 국학(유교학)을 배웠다. 이즈음 모토오리 도요카이로부터 국서와 한시를 배웠는데, 문학에는 상당히 흥미를 보였으며, 와카(화가)와 한시를 취미로 즐겨 많은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 교습에서도 요시히토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메이지 천황은 이토 히로부미의 제안을 받아들여 요시히토의 양육과 교육을 담당할 인물로 방계 황족인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9]를 임명했다. 이후 요시히토는 다케히토로부터 학문을 배웠는데, 성적은 중하-하상 정도로 좋지 못했다고 한다.
1889년, 고작 10세의 나이에 일본 제국 육군 소위로 임명되었다. 15세 때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히로시마 대본영에 참여했고, 16세에 대위로 진급했다. 18세에는 귀족원의 의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러한 것들은 상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10]
이렇듯 다이쇼 천황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데다가 형제도 없었고, 또래와의 교류도 거의 없이 자랐으며, 9세부터 육군 중장 소가 스케노리로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매우 엄격한 규칙 아래 생활해야 했다. 이래서야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당연히 어리고 병약한 데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11] 다이쇼 천황이 이러한 생활을 버틸 리가 없었고, 결국 교육 계획 대부분이 폐기되었다.
2.2. 결혼 생활
다이쇼 천황과 데이메이 황후 |
일본 황실은 황태자를 최대한 빨리 결혼시켜 자식을 낳게 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답답한 궁중 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결혼 생활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메이지 천황과는 달리 첩을 두지 않았는데, 건강한 사다코 황태자비(데이메이 황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아서 첩을 둘 필요도 없었다. 다만 막내 다카히토는 늦둥이라서 즉위 당시 사다코 황후가 임신 상태라 즉위 이후에 태어났다.
이 무렵 그는 좀 병약하긴 했지만 이전에 비해 대단히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유년 시절이나 천황으로서 요시히토가 '모자란 인물'로 취급된 것과 대조되게 하라 다카시는 이 시절의 다이쇼 천황에 대해 인간미 넘치는 인물상으로 묘사했다. 독일 제국 출신의 의사였던 에르빈 폰 벨츠 또한 이 당시 요시히토에 대해 "유럽풍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며 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을 회복한 그는 메이지 천황을 대신해 12년간 9차례에 걸쳐 오키나와를 제외하고 홋카이도를 포함한 전국을 순행했으며, 그의 교육을 담당했던 다케히토와 함께 순행길에 오르면서 한시 짓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1907년, 그는 대한제국을 방문해 순종과 당시 황태자였던 영친왕 이은을 만났는데, 이때 이은을 마음에 들어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12] 이후 요시히토는 구미권을 방문하길 희망했으나 아버지 메이지 천황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2.3. 재위 기간
다이쇼 천황의 즉위식 |
14년에 불과한 짧은 치세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참가 - 시베리아 출병 - 쌀 소동 - 워싱턴 회의 - 관동 대지진 등 국내외 굵직한 사건사고가 있었다. 한국사에서는 일제강점기 무단통치 - 3.1 운동 -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문화통치를 겪었던 기간이다.
2.3.1. 다이쇼 데모크라시
의회 민주주의를 주도한 하라 다카시 수상 |
즉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이온지 내각이 실각했다. 사이온지 긴모치는 가쓰라 다로를 다이쇼 천황에게 후임으로 추천했고, 그대로 가쓰라가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가쓰라는 비입헌적인 입장을 취하고 긴모치와 하라 다카시 중심의 입헌 정우회와 제휴를 거부하며 대립했다. 이에 입헌정우회는 국민당과 함께 반가쓰라 족벌 타파', '헌정 옹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가쓰라 내각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가쓰라 다로는 이에 '절대적인 천황의 권위'를 빌려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다. 이에 다이쇼 천황은 사이온지에게 '정쟁을 중지하라.'는 칙허를 내렸다.
그러나 정당 세력들도 대중들도 이러한 천황의 명령을 무시했다. 심지어 정우회의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14]가 의회 질의 도중 가쓰라와 그의 관료 동지들을 가리켜 "천황을 방어벽 삼아 숨어있다."라고 비난했다. 이 연설에 대중이 크게 동조하여, 제1차 호헌운동이 일어났다. 결국 가쓰라 내각은 2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퇴진했고(다이쇼 정변), 절대적이어야만 했던 천황의 명령이 무시당하게 되었다. 이 일이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런 일은 메이지 시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다이쇼 천황이 즉위하자마자 천황의 권위가 급격히 약화되어버렸다. 무엇보다 다이쇼 천황은 메이지 천황과 달리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가 아니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나약한 인물이었다.
결국 재위 기간에 생긴 별명은 존재감이 없는 천황(影の薄い天皇)으로 정치인들은 천황을 무시했다고 한다.
2.3.2. 건강 악화
1917년 제국의회 개회식에 참석하러 가는 다이쇼 천황 |
1913년, 그는 재위 1년 만에 폐렴에 걸려 현재의 닛코 다모자와 고요테 기념공원에서 요양하게 되었고, 완치까지 1개월이 걸렸다. 이후 별장에서 요트, 승마, 한시 짓기를 즐기며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국제 정세가 급변했고, 이로 인해 공무량이 급격히 늘어나, 1915년부턴 말을 제대로 못하거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질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다.
1916년, 다이쇼 천황의 측근 오쿠마 시게노부가 가토 다카아키 입헌동지회 총재를 후임으로 추천했지만,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추천하고, 원로들이 야마가타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또다시 천황의 권위가 무시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게다가 도쿄제국대학의 잇키 기토쿠로 교수의 천황기관설이라는 주장[17]이 나오는 등, 갈수록 천황의 권위가 떨어졌다.
이러한 분위기와 공무로 받은 스트레스까지 겹치며 다이쇼는 1917년부터는 거의 공무를 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건강이 악화되었고, 1918년부턴 보행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1919년부터는 뇌질환으로 식사도 못하고, 칙어를 읽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1921년부터 야마가타를 중심으로 섭정 논의가 활발해졌고, 동년 10월에 궁내성에서는 천황이 건강을 회복할 가망이 없음을 인정했다.
다이쇼 천황은 섭정 논의에 불만을 표했다고 하지만[18] 더 이상 집무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건강이 악화되자, 20세가 된 장남 히로히토가 섭정을 맡아 천황 직무를 대행해야 했다.
이러한 사건 때문에 일본 대중에게 '병약한 천황'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2.3.3. 사망
다이쇼 천황의 대상례(大喪礼) |
1926년 5월, 건강을 다소 회복하여 보행이 가능해졌지만, 3일 만에 다시 발작하여 병상에 드러누워 하야마에서 요양했다. 이후 병세가 안정되었으나 9월에 재발작한 이후 갈수록 악화되어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데이메이 황후가 배려한 덕에 다이쇼 천황이 요양 중이던 하야마의 별장으로 생모 야나기하라 나루코가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25일 다이쇼 천황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곁에 있던 생모 야나기하라 나루코의 손을 잡은 채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사후 다이쇼 천황의 시신은 도쿄 서쪽 근교의 하치오지시에 있는 타마 어릉에 안치되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매년 12월 25일 기일이면 능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3. 개인사
- 생각나는 것을 바로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이야 솔직하다고 평가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아버지와 대신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그들에게 모자라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이 때문에 아버지 메이지 천황과 야마가타 아리토모 총리 등에게 항상 혼나야 했으나, 결국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했으며 그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19]
- 호기심과 질문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고 끊임없이 "이게 뭐야?"라고 물어보곤 했다.
- 보통 일본 황실이 와카를 즐긴 것과 달리 한시를 좋아해서 직접 한시를 짓기도 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평생 동안 무려 1,367수에 달하는 한시를 창작했다. 문학적 가치보다는 정경 묘사가 충실한 편이다. 평은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부황 메이지 천황보다 낫다고들 한다.
-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터라 규칙을 매우 싫어했으며 신분에 얽매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황태자 시절 교토제국대학 부속병원을 방문했는데 환자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어 환자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나 후쿠오카현 지사와의 대화 중 맞담배를 권한 일화, 구마모토현에서 학생들의 수영을 구경하던 중 물이 차가운 걸 확인하고 중지시키기도 했다. 또 다이쇼 천황을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그에 대한 호감이나 친근감을 드러냈으며, 다이쇼 천황 역시 신분에 관계없이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대인기피증이 심하며 무뚝뚝한 아버지인 메이지 천황과는 극도로 대비되는 부분이다.[20] 또 행계 중 정해진 일정과 코스를 무시하고 골목길로 갈 것을 명령하거나 아침에 숙소를 벗어나 혼자 산책을 하여 아랫사람들을 매우 곤란하게 하는 등, 경호라는 의미에서는 피곤한 사람이었다.
- 영친왕과 대화해보고 싶어서 황태자 시절부터 천황 시절까지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했는데, 죽기 얼마 전 영친왕이 자신과 대면할 당시 한국어로 말을 걸었으나 병으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였기에 한국어 같지 않은 한국어를 했다고 한다. 이를 보아 영친왕과는 그의 일본 유학 시절에도 사이가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 구 대한제국 황족들과 일본 황족들과의 결혼 당시, 다이쇼 천황과 사다코 황후 내외는 마사코 여왕을 영친왕의 신붓감으로 정하고, 마사코의 아버지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을 불러서 직접 명령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모리마사 왕은 "내 큰딸 마사코가 황태자비가 되는 줄 알고 기대했더니 그런 폭탄을 떠맡아야 하냐"고 멘붕했다고 한다.
- 애연가로 황태자 시절부터 담배를 즐겼으며 다양한 종류의 담배를 피웠다.
- 정략결혼이었음에도 아내인 데이메이 황후와의 부부관계는 매우 좋았다고 한다. 아들이 넷이라서 후궁이 필요없기도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황실에서 일부일처제는 법적으로 명시되지 않아서 후궁을 충분히 둘 수 있었음에도 하나도 두지 않았다. 황후 역시 남편인 다이쇼 천황을 사랑하여 남편이 요양 생활을 할 때 관례를 무시하고 직접 그를 돌보았고, 그가 사망하자 크게 슬퍼하며 영정 앞에서 시간을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장남 히로히토도 애처가였고, 손자 아키히토, 증손자 나루히토 역시 그런 선황을 본받아 애처가다. 히로히토는 아내 고준 황후가 오랫동안 아들을 못 낳고 있을 때 나온 후궁 논의도 모두 거절했다.
- 아버지로서도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후에도 아버지, 어머니와 거의 대면하지 못해 아버지가 애정을 주지 않는 등 쓸쓸히 자라서인지 부모가 되었을 때 다이쇼는 직접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황태자 시절 즉위 전까지 직접 자식들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거나 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으며, 황손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내 교육시키던 일본 황실의 전통을 싫어해서 4남인 다카히토는 끝까지 부부가 키웠다. 자식들을 거의 보지 않아 평생 자식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메이지 천황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래서 자식들과의 관계가 좋았으며 그가 사망했을 때 자식들이 크게 슬퍼했다.
- 기행으로 유명하다.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던지, 카페트 위에서 신발을 양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다닌다는 소문이 유명한데, 대부분이 사실 여부가 불확실하여 다이쇼 천황의 병약한 이미지 때문에 생긴 헛소문일 수도 있다.
- 다이쇼 천황은 병약하고 소극적이라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길 꺼렸다. 그래서 요양중에 한 번은 한 번이라도 국회로 행차하여 군주의 존재감을 나타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때 다이쇼 천황은 갑자기 공문서를 돌돌 말아 김밥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걸 망원경이라고 하며 제국의회 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로도 공적인 자리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와 달라는 요청도 다시는 없었다고 한다.
- 다만 이 사건을 다룬 기사들의 내용 중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고, 1950년대부터 갑자기 퍼진 소문이라, 진위는 확실하지 않다. 다이쇼 치세를 보면 알다시피 이 시기 천황의 권위가 추락하고 자기 명령이 무시되곤 했으며, 원래는 공무를 보고 싶었지만 몸이 안 좋아서 막 스무 살이 된 맏아들 히로히토에게 대리청정을 시켜야 했기 때문에 헛소문일 가능성도 높다.
- 황태자 시절부터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친한 사이였다. 종종 같이 사냥을 하러 가기도 했으며, '케이키씨' '전하'라고 부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4. 가족관계
왼쪽부터 히로히토 친왕, 노부히토 친왕, 야스히토 친왕.[21] |
- 장남 미치노미야 히로히토(迪宮裕仁) 친왕(1901~1989): 훗날의 쇼와 천황. 방계 황족 구니노미야 나가코 여왕과 결혼하여, 아키히토 천황을 포함한 2남 5녀를 낳았다. 히로히토의 맏이인 히가시쿠니 시게코는, 다이쇼 천황이 생전에 본 유일한 손주이다.
- 차남 아츠노미야 야스히토(淳宮雍仁) 친왕(1902~1953): 만 20세가 되던 1922년, '지치부노미야'(秩父宮)라는 미야고(궁호)를 받았다. 1928년, 아이즈 번의 마지막 영주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손녀 지치부노미야 세츠코[23]와 결혼했다. 세츠코 비는 한 차례 임신했으나 2.26 사건 당시 유산되었고, 이후 자녀를 낳지 못했다.
- 3남 데루노미야 노부히토(光宮宣仁) 친왕(1905~1987): 1913년, 대가 끊어질 위기에 놓인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을 계승,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라는 미야고를 받았다. 1930년, 에도 막부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녀이자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외손녀인 도쿠가와 키쿠코와 결혼했다. 자녀는 없는데, 노부히토 친왕이 동성애자라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1959년, 오랜 전통을 깨고 평민 쇼다 미치코가 황태자비에 책봉되자, 많은 황족들과 화족들이 반발하며 미치코 황태자비를 미워했는데, 다카마쓰노미야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세한 것은 미치코 상황후/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 항목을 참조. 전쟁을 극도로 혐오하는 반전 및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전쟁 중에도 적극적으로 평화론을 주장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미쳐 날뛰는 군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도조 히데키 암살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 4남 스미노미야 다카히토(澄宮崇仁) 친왕(1915~2016): 바로 위의 형인 노부히토 친왕보다도 10세나 어려, 데이메이 황후는 전통을 깨뜨리고 다카히토 친왕을 자신의 품에서 직접 키웠다. 만 20세가 되던 1935년 '미카사노미야'(三笠宮)라는 미야고를 받았고, 1941년 화족 다카기 마사나리(高木正得)[24] 자작의 차녀 다카기 유리코[25]와 결혼했다. 3남 2녀를 낳았으나, 친손자는 없다.[26] 그리고 장남 토모히토 친왕, 차남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 3남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 모두 아버지 다카히토 친왕보다 먼저 죽고 말았다. 히로히토의 장녀 히가시쿠니 시게코가 '다이쇼 천황이 살아 생전에 본 유일한 손주'라면,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는 '(다이쇼 천황의 아내인) 데이메이 황후가 살아생전 볼 수 없었던 유이한 손주'이다.[27] 2016년 10월 27일 오전 8시경, 급성폐렴으로 입원 중이던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만 100세.
4.1. 황실 가계도
(구황족 가계도 참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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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다카쓰카사 도시미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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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케다 다카마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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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마즈 히사나가 | 구로다 요시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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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노에 다다테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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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센 소시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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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센게 구니마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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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케이 | ||||||||||||||||||||||||||
==# 천황 계보 #==
초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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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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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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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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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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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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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대 | 제81대 | │ | 제82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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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대 | 제83대 | 제84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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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대 | 제88대 | 제85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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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대 | 제90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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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대 | 제91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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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대 | 제95대 | 제94대 | 제96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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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 초대 | 북조 제2대 | 제97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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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 제3대 | 북조 제4대 | 제98대 | 제99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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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대 | ||||||||||||||||||||||
5. 창작물
1990년작 KBS 3.1절 특집드라마 <왕조의 세월>에서 등장하나, 배우는 미상이다.6. 기타
순종과 같이 찍은 사진.
다이쇼 천황이 즉위하기 전 황태자 시절(1907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위는 방한 당시의 사진. 왼쪽의 육군 정복을 입은 사람이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훗날의 다이쇼 천황), 가운데는 당시 10세이던 한국 황태자 이은, 오른쪽의 해군 예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요시히토의 스승이자 일본의 방계 황족인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有栖川宮威仁). 당시 그의 방한은 이토 히로부미가 밀어붙여서 성사된 것으로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다. 어쨌든 역사상 일본 황태자의 해외 방문은 이게 처음이며[28] 그 후 지금까지 천황이나 황태자의 방한은 아직 성사된 바 없다. 다만 쇼와 천황이나 아키히토 천황이 방한하려고 몇 번 추진하기는 했고, 나루히토 천황의 황태자 시절에도 방한이 추진된 적이 있다. 또한 이 방한은 숭례문과 약간의 연관이 있다. 당시엔 아직 서울 성곽이 남모아 있어서 원래대로라면 요시히토 황태자는 숭례문 밑으로 들어가야 했다. 일본 측에선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숭례문을 철거할 계획도 세웠으나 무리라고 생각해 철회하고 대신 숭례문 옆의 성곽을 철거하고 교통로를 만들었다.
- 대한제국 황족과 관련된 일화가 약간 있다. 황태자 영친왕을 마음에 들어하여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는 내용이 일본의 교수 하라 다케시(原武史)의 저서 《다이쇼 천황》(大正天皇)에 언급된 바 있다. 요시히토(다이쇼 천황)는 번역관에게 "때때로 한국의 태자를 만나니까 조선어를 익혀보고 싶은데, 책 같은 것은 없는가. 있다면 시종에게 전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이은을 만날 때마다 "오늘 이야기한 문장을 조선의 언문으로 써서, 거기에 발음과 번역문을 달아서 제출하도록"이라고 (번역관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요시히토는 천황이 되어서도 한국어 학습을 계속했을 뿐 아니라, 시종에게 때때로 한국어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시종 구로다 나가히로(黒田長敬)는 다이쇼 천황의 사망 직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언젠가의 일이다. 무언가를 아뢰었더니 미소를 띄우시면서 묘한 말씀을 하셨다. 이상하다고 여겨 생각해 보니 그건 한국어였고, 앗 하고 몹시 놀랐다."
- 가쿠슈인 시절, 그는 당시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던 아리시마 타케오를 놀이친구로 삼았다고 한다.
- 일제강점기, 백두산의 최고봉인 병사봉(兵使峰)은 그의 연호를 따서 '대정봉'(大正峰)으로 불린 흑역사가 있다.[29] 병사봉의 수난은 이후 북한 정권하에서도 계속되어, 병마절도사의 약칭인 '병사'(兵使)를 '병사'(兵士)로 오해[30]한 무식쟁이 김정일이 자신의 백두혈통 절대권력도 강조할 겸해서 병사봉은 '장군봉'으로 개칭되고 만다.
[1] 도쿄도 하치오지시 소재[2] 출처, 아버지와 키가 비슷했다. 당시 일본 남성의 평균 키(161cm)보다 살짝 컸다.[3] 메이지 천황에게는 5남 10녀 중 5번째 자녀이자 3남이었고, 야나기하라 나루코에겐 2남 1녀 중 3번째 자녀이자 2남이었다.[4] 메이지 천황은 원래 5남 10녀를 두었는데, 그 중 1남 4녀만이 살아남았다.[5] 이때 보수적이었던 메이지 천황은 서양의학 대신 전통의학으로 치료할 것을 고집했다.[6] 4명의 여동생들이 있었지만, 그녀들은 전부 부황의 다른 측실인 소노 사치코의 자식들이었고, 떨어져 지내서 사이가 가깝지는 않았다.[7] 이때 요시히토는 군용가방을 매고 등교했는데, 이게 현재의 란도셀(ランードセル)의 유래라는 얘기가 있다.[8] 독서와 승마에는 능했으나 이해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 모두 떨어졌기에 특히 이수계 교과를 힘들어 했다고 한다.[9]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마지막 당주로 다이쇼 천황의 셋째 며느리였던 다카마츠노미야 키쿠코 비의 외할아버지였다.[10] 메이지 유신 이후 1945년 패전 이전까지 남자 황족은 자동으로 귀족원 의원이 될 수 있었고, 네임드 황족들은 일본군 장성을 겸했다.[11] 다이쇼는 집중력이 떨어진 데다가 침착함도 없었다고 한다. 또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바로 말하는 버릇도 있어서 항상 아버지에게 혼이 난터라 모자라단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12] 당시 대한제국은 형식적으로는 국가가 남아 있었으나 실제로는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심지어 고종마저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 퇴위 당해 반불구 국가였다. 결국 오래가지 못해 일제에 완전히 병합되었다.[藩閥]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사쓰마, 죠슈 등의 출신자들이 형성한 파벌[14] 오자키의 딸 소마 유키카(相馬雪香)는 덕혜옹주의 여자 가쿠슈인 동창이기도 하다.[15] 다이쇼의 건강이 나빠지자 1921년에 20세가 된 장남 히로히토 황태자가 대리청정을 수행했다. 히로히토가 천황에 즉위한 된 뒤 말한 바에 따르면 요시히토는 황태자 시절만 해도 매우 쾌활하고 잘 돌아다니는 성격이었지만, 즉위한 후 온갖 제약에 속박되는 생활을 하게 되자 괴로워했다고 한다.[16] 다이쇼가 애연가라서 담배를 자주 피운 것도 있었다.[17] 국가의 주권은 국가라는 법인 그 자체에 있고, 천황은 국가의 여러 하위기관들 중 정점에 있는 기관으로서 다른 기관들과 협치하여 다스린다는 주장. 이전까지의 주류 헌법 해석은 천황주권설로, 천황이 곧 국가로서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적인 주권을 갖는다는 해석이다.[18] 다이쇼 천황이 아직 괜찮다고 말한 이야기가 일본 인터넷에 상당히 있는데, 사실이라면 병세를 회복하고 계속 집무를 볼 생각이었던 것 같다. 즉위한 지 겨우 6년 만에 건강이 악화되어 맏아들에게 대리청정을 맡겨야 하고, 그 전에도 병으로 갑자기 쓰러져서 공무를 별로 못했음을 생각한다면 불만을 표할 만하다.[19] 데이메이 황후도 야마가타 아리토모 총리를 싫어했다고 한다.[20] 하지만 성격이 이랬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고, 갑갑한 궁중 생활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21] 다카히토는 이때 태어나기도 전이었다.[22] 일본 민법에 일부일처제가 확립된 것은 메이지 31년(1898년)이고, 일본 황실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황실전범》에 측실(후궁) 제도에 대한 특별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법을 준용하여 일본 황실의 측실 제도도 이때 폐지된 것으로 본다. 다이쇼 천황은 황태자 시절인 메이지 33년(1900년) 쿠죠 사다코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 전부로, 이후 일본 황실에서는 더 이상 측실을 두지 않았다. 다만 히로히토는 아내인 나가코 황후가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해 주위에서는 후궁을 들이라고 많이 권했지만 애처가라 모두 거절했고, 이후에 아키히토와 마사히토가 태어나면서 정서적으로도 완전히 없어진다.[23] 이방자 비의 이종사촌 여동생. 데이메이 황후가 가장 귀여워한 며느리이기도 하다.[24] 패전 후 화족 신분과 재산을 잃은 후, 1948년에 자살로 생을 마쳤다.[25] 유리코 비의 외삼촌 이리에 스게마사(入江相政)는 히로히토 천황의 시종장을 지낸 바 있다. 한편 스게마사는 야나기하라 뱌쿠렌의 언니 이리에 노부코(入江信子)의 아들이기도 하다.[26] 친손녀 5명에 외손자까지 따지면 손자, 손녀, 증손자까지 많다. 미카사노미야 궁가를 이을 친손자가 없어서 그렇다.[27] 다른 한명은 바로 자기 위의 친누나인 센 마사코이다[28] 일본 천황의 해외 방문은 쇼와 천황이 처음이다(1971년). 순서대로 미국, 영국, 대만(사실 중국에 방문하려 했지만 중국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서 무산되고 대만을 방문함.), 네덜란드 총 4개 나라였다. 이후 1992년에 아키히토 천황이 중국을 방문했다.[29] 이러한 천황 신격화, 우상화는 메이지 천황 때부터 패전을 맞이할 때까지 꾸준하게 유지된 정책 중 하나였다.[30] 김정일이 역사와 한자에 대해 매우 무식해서 생긴 촌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