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20:00:14

마사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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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 (常陸宮 正仁親王) 히타치노미야의 문장
1. 개요2. 성장3. 결혼4. 기타

1. 개요

일본황족. 쇼와 덴노(히로히토)와 고준 황후(나가코)의 차남이자 아키히토 상황의 남동생. 미치코 상황후에게는 시동생, 나루히토 덴노후미히토 친왕, 구로다 사야코에게는 작은아버지, 마사코 황후키코 비에게는 시숙부, 마코 공주, 카코 공주, 아이코 공주, 히사히토 친왕에게는 작은할아버지이다. 어릴 적 칭호는 요시노미야(義宮), 현재의 궁호는 히타치노미야(常陸宮).[2] 2019년 5월 1일 부로 현재 승계서열 3위이다.[3]

2.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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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1935년 11월, 히로히토 덴노와 나가코 황후의 차남이자 6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형인 아키히토 덴노와는 2살 터울. 덴노의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결혼 전까지는 칭호[4]인 요시노미야(義宮)로 호칭했다.

만 4살이던 1939년부터, 일본 황실의 오랜 관례에 따라 부모의 곁을 떠나 시종들에 의해 양육되었다. 이 무렵 아버지 히로히토 덴노는 "영국이나 유럽 왕실에서는 자녀를 부모가 직접 키우는데, 일본은 왜 이래야만 하는가?!"라며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5]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몸이 허약했다. 패전 후에는 마사히토 친왕 자신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만화 캐릭터의 이름인 '카세이(火星) 쨩'이라는 애칭으로 국민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었고, 형 아키히토 황태자와 함께 새로운 '열린 황실'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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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카세이 짱 귀여워

1958년 가쿠슈인 대학 이학부 화학과를 졸업했고[6], 도쿄대학 대학원 연구생으로 지내며 동물학을 전공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 명예박사, 미네소타 대학교 명예박사 등의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독일 암 학회 명예회원이기도 하다.

3. 결혼

1964년 9월 30일 지금의 아내인 츠가루 하나코와 결혼했으며, 결혼과 동시에 새로운 미야케(宮家)인 히타치노미야(常陸宮) 궁가를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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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히타치노미야 궁가는 전후(戰後) 처음 창설된 미야케(宮家)인데다, 결혼 다음날인 10월 1일에는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되고, 10월 10일에는 1964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전후 부흥을 실감케 하며 당시 일본인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식을 올렸다. 그러나 하나코 친왕비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을 얻지 못했다.[7][8] 특히 평민[9] 출신 미치코 황태자비를 몹시 미워했던 어머니 나가코 황후를 비롯한 황족 및 구황족 인사들은, 이번만큼은 화족 가문의 딸을 뽑아서 결혼시켰는데도 자식이 없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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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전범양자를 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10] 히타치노미야 부부의 애견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이후 연구를 계속하여, 1969년부터 재단법인 일본 암연구회 암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2001년 1월부터는 암연구회 명예총재로 있다.

4. 기타

  •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자식도 없어서 일본 황실의 마이너한 존재. 조카 후미히토 친왕은 말할 것도 없고, 승계서열이 밀렸던 사촌동생 이슈메이커토모히토(寬仁) 친왕[11]보다도 존재감이 없었을 정도.
  • 온화한 성격으로, 점심시간에 시녀가 냅킨을 준비하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시녀가 미안해할까봐 지적하지 않고 조용히 무릎에 손수건을 얹고 식사했다고 한다.
  • 아키히토 상황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듯 하다. 새해인사나 각종 황실관련 행사에서도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13], 온화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아키히토 천황도 마찬가지이다. 갈등의 골이 깊은 조카 나루히토후미히토 형제와는 대비되는 모습.
  • 일본 황가의 가장 가까운 방계 존속으로서 조카인 나루히토 신임 덴노의 3종신기 승계식 때도 옆에 휠체어를 탄 채 배석했다.


[1] 미국의 전설적 투수 샌디 쿠팩스, 인도 발리우드 영화배우 다르멘드라, 한국 정치가 이회창과 동갑[2] 궁호는 지명에서 따오는 게 일반적이다. 히타치(常陸)는 지금의 이바라키 현의 옛 이름.[3] 승계서열 1위는 나루히토 덴노의 동생인 후미히토 친왕, 2위는 후미히토 친왕의 아들인 히사히토 친왕이다.[4] 일본 황실에서 칭호란, 덴노와 황태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노미야' 형태의 이름을 뜻한다. (친왕의 자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5] 1959년 "최초의 평민 출신 비(妃)"로 화제를 모으며 아키히토 황태자에게 시집온 미치코 황태자비는, 관례를 깨고 2남 1녀를 직접 키우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일본 황실에서도 아이들을 친부모 곁에서 길렀다.[6] 히로히토 덴노의 2남 5녀 가운데서 유일한 학사학위 보유자이다. 아키히토 덴노는 가쿠슈인 대학 시절 1년간 외유했던 것 때문에 동기들과 함께 졸업할 수 없게 되자, 학교 수업만 듣고 졸업은 하지 않았다. 왕 노릇하는데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첫째 누나 히가시쿠니 시게코는 여자 가쿠슈인, 셋째 누나 다카츠카사 카즈코는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만을 졸업했다. 넷째 누나 이케다 아츠코는 가쿠슈인 여자단기대학(現 가쿠슈인 여대) 가정생활과를 졸업했고, 여동생 시마즈 타카코는 가쿠슈인 대학 영문과를 다니던 중 결혼 관계로 중퇴했다. 둘째 누나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는 생후 6개월 만에 요절.[7] 마사히토 친왕이 무정자증고자이라는 소문이 거의 정설.[8] 하지만 "마사히토 친왕과 하나코 비가 자녀를 출산했었다 해도, 장남이자 쇼와 시대 당시 덴노 승계 서열 1위에 있었던 아키히토 황태자와 미치코 황태자비 내외에게 상대가 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자세한건 미치코 황후/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 문서 참조[9] 말이 평민이지 대 재벌가의 딸이며 외가는 옛 화족 가문.[10] 현행 황실전범 9조에서는 '天皇及び皇族は、養子をすることができない', 즉 황족의 양자연조를 금지하고 있다. 당연히 양녀도 들일 수 없다.[11] 2012년 암으로 사망. 자유분방한 성격의 영향인지 언론노출이 꽤 잦은 편이었고, 구설수에 오른 적도 많았다. 특히 여성 덴노 논의에 강력히 반대하며, "을 두어서라도 아들을 낳아, 남성으로 황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도 두 딸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만 두고 있었다. 생전에 똑똑한 큰딸 아키코 공주를 자랑스러워했다.[12] 생 모르 수녀회(아기 예수의 애덕 교육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후타바(雙葉) 여학원 유치원과 초등과를 거쳐,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세이신 여학원 중등과와 고등과를 마친 후, 동(同) 학원의 세이신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생 모르 수녀회는 아직 한국에 진출하지 않았고, 성심수녀회는 1956년 한국에 진출하여 한국에서도 성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13] 다만 2019년 영상에선 걸어다니는 형과 달리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있는 걸로 보아 건강이 다시 안 좋아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