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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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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노미야(伏見宮)의 문장

1. 개요2. 후시미노미야의 서장자로서3. 일본 해군의 수장4. 말년5. 가족관계6. 평가

[clearfix]

1. 개요

伏見宮博恭王

일본의 황족이자 해군 제독.

4친왕가의 필두인 후시미노미야의 23대 당주다.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 친왕의 서장자로 태어나 원수해군대장 계급으로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군령부총장을 지냈다. 본래 이름은 나루카타(愛賢)였으나 가초노미야(華頂宮)를 계승하면서 히로야스(博恭)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러일전쟁 때 연합함대의 기함 미카사(三笠)의 분대장으로서 참전한 황해해전에서 부상을 당했으며 함장이나 함대사령장관직을 맡는 등 여타 황족들이 명예직에 그친 것과는 달리 실전 경험이 풍부해서 해군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2. 후시미노미야의 서장자로서

1875년 10월 16일 후시미노미야의 22대 당주 사다나루 친왕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사다나루의 측실이었던 가와노 지요코(河野千代子)가 낳은 서자였던 탓에 후시미노미야의 후계자 서열에서 일찌감치 밀려났다. 이것 때문에 나루카타의 장래는 불확실했고 당시의 일본 황실에 대한 태정관포고(太政官布告)에 의하면 머지않아 신적강하하여 화족이 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1876년 나루카타(愛賢)의 큰아버지인 가초노미야 히로쓰네 친왕(華頂宮博経親王)이 26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본래 신적강하 대상이던 가초노미야를 덴노의 특지로 세습궁가로 승격하면서 그의 아들 히로아쓰(博厚)가 계승했지만 8살의 어린 나이로 죽어서 당주 자리가 비는 일이 생겼다. 이에 가초노미야의 본가인 후시미노미야에서 후계자를 들이기로 하면서 나루카타로 하여금 가초노미야를 계승하게 했고 이와 동시에 나루카타는 가초노미야의 통자(通字)인 히로(博)를 넣어서 히로야스(博恭)로 개명했다.

가초노미야를 계승한 지 3년이 지난 1886년 4월 5일 히로야스는 일본해군병학교 16기 예과에 입학하면서 해군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3년 뒤 해군병학교를 중퇴하고 독일 유학길에 올라 독일해군사관학교 및 독일해군대학에서 1895년까지 수학했는데 이 사이인 1894년에 일본 해군 소위로 임관하였고 해군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귀족원의 황족의원이 되었다.

귀국 후에는 방호순양함 이쓰쿠시마(厳島)와 마쓰시마(松島)에서 근무하면서 황족과 다른 생활방식을 몸에 익혔다. 1897년에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의 9녀 쓰네코(経子)와 결혼하였고 중위로 진급한 뒤 전함 후지(富士)로 배치받았다. 1897년 연말에 대위로 진급한 후에는 장갑순양함 아사마(浅間)에서 근무했다가 포술 연습소(砲術練習所)의 교관을 지냈으며 장갑순양함 이즈모(出雲)와 전함 아사히(朝日)를 거친 뒤 1903년에 전함 미카사(三笠)로 배치받은 직후 소좌로 진급했다. 이듬해인 1904년에 본가인 후시미노미야(伏見宮)로 전격적으로 복적하면서 가초노미야는 그의 2살짜리 아들 히로타다(博忠)가 계승하게 되었는데 당초 후시미노미야를 계승하기로 되어 있던 적자 구니카(邦芳)가 정신박약자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후시미노미야로 복적한 뒤에도 해군에서 근무를 계속하여 해군성 군무국(海軍省軍務局)에서 근무했고 방호순양함 니타카(新高)와 해방함 오키시마(沖島)의 부장을 거친 뒤, 방호순양함 나니와(浪速)의 부장을 지내던 1906년에 중좌로 진급했으며 장갑순양함 닛신(日進)의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해군대학에서 공부한 뒤 영국에 주재하게 되었다. 일본으로 복귀한 1910년에는 방호순양함 타카치호(高千穂)의 함장을 지내던 중 대좌 진급과 함께 전함 아사히의 함장을 지내게 되었다. 순양전함 이부키(伊吹)의 함장을 거쳐 해군대학에서 공부하던 1913년에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요코스카 진수부 함대사령관(横須賀鎮守府艦隊司令官)으로 취임한다. 이후 해군대학교장(海軍大学校長)과 제2전대 사령관(第2戦隊司令官)을 지냈고 1916년에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장관회의 의원(将官会議議員)과 제2함대 사령장관(第2艦隊司令長官)을 거쳐 군사참의관(軍事参議官)으로 근무하던 중 1922년 말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이듬해인 1923년 초에 아버지 사다나루 친왕의 별세로 후시미노미야(伏見宮)의 23대 당주가 되었으며 대장으로 진급한 뒤에는 사세보 진수부 사령장관(佐世保鎮守府司令長官)에 이어 다시 군사참의관으로 근무했다.

3. 일본 해군의 수장

1931년 말 육군참모총장(陸軍参謀総長)에 황족인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이 취임한 데 대항하여 1932년 2월 해군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히로야스를 해군 최고의 군령권자인 해군군령부장(海軍軍令部長)에 취임시켰다. 원수 칭호를 수훈받은 히로야스는 해군군령부장을 육군참모총장에 대응하여 군령부총장(軍令部総長)[1]으로 바꿨고 히로야스를 찬양하는 노래[2]까지 만들어졌다.

그가 군령부총장으로 있던 시절은 군령부(軍令部)가 권한강화를 위해 움직이던 때로 히로야스 자신도 육군과 달리 전통적으로 해군성이 우위를 점한 데 대해 군령부의 권한강화를 위해 군령부령(軍令部令) 및 성부호섭규정개정안(省部互渉規定改正案)에 대해 “내가 재임하고 있을 때가 아니면 안 된다. 꼭 해내라.”고 다카하시 산키치(高橋三吉), 시마다 시게타로 군령부차장에게 지시하여 함대파견 정책을 추진해 결국 해군군령부(海軍軍令部)의 호칭을 군령부(軍令部)로, 해군군령부장의 호칭을 군령부총장으로 변경하였고 나아가 병력량의 결정권을 해군성에서 군령부로 이관하여 군령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해군성의 기능을 제도상, 인사상 약체화하는데 성공하여 군령부는 해군성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추축국 삼국 동맹 및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해군 최고실력자로서 커다란 발언권을 가졌는데 태평양 전쟁 중에도 각 장관, 총장급 인사에도 히로야스의 양해를 얻는 게 불문율이었다. 2.26 사건 당시에는 사건 발생일 아침 가토 간지(加藤寛治), 마사키 진자부로(真崎甚三郎)와 협의한 뒤 덴노를 예방했는데 이때 쇼와 덴노의 심기를 건드려서 이후 반란진압 쪽으로 선회했다.[3]

1944년 6월 25일 사이판 섬의 포기를 결정한 어전회의에서 '육해군 모두 뭔가 특수한 병기를 고안해내어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대책은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전황이 이처럼 곤란하게 된 이상 항공기, 군함, 소함정 모두 특수한 것을 고안하여 신속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들 특수한 병기들은 특공병기를 가리키는 것이란 주장도 있다. 사실 이런 식의 표현은 드물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진주만공습계획을 설명할 때 겐다 미노루는, 만약 진주만의 미군 전함이 방뢰망을 치고 있다면 선도기부터 차례차례 돌입해 방뢰망이 찢어질 때까지 자폭공격한 다음 후속기가 전함에게 어뢰를 먹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제독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못해서 특수한 공격을 할 것이라고만 말했고, 야마모토 등이 그것은 무슨 공격인가? 하고 묻자 그것은 기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법인데 이렇게만 말하면 조종사들은 다 압니다하고 얼버무렸고 제독들은 설명을 더 요구하지 않고 넘어깄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것에 비하면 카미카제 방식을 정식으로 상주한 오니시 타키지로가 솔직한 것.

4. 말년

1938년 10월 장남 히로요시(博義)가 수면제 남용으로 사망했고 1943년 8월에는 신적강하한 4남 후시미 히로히데(伏見博英)가 전사했다. 한동안 뇌출혈로 인한 우반신마비 및 심장병으로 인해 아타미(熱海)의 별장에서 요양생활을 했다. 패전 직후에는 병든 몸을 이끌고 도쿄로 돌아왔지만 후시미노미야의 본 저택이 전쟁 중에 소실되어 부근의 료칸에서 기거하다가 1946년 8월 16일 향년 70세로 사망했다.

1년 뒤인 1947년 구황족황적이탈하고 온갖 구설수에 휘말려서 살았던 걸 보면 때를 잘 골라서 갔다.

5. 가족관계


===# 구황족 가계도 #===
쇼와 22년(1947년) 직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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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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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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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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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라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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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시미노미야 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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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가

당시의 황족은 군인으로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명예직에 머무는 것이 관례였으나 실전, 실무경험이 풍부한 히로야스는 실제 권력을 행사했다는 특징이 있다. 솔선수범하는 자세 및 난코스로 유명한 칸몬해협(関門海峡)에서의 능수능란한 조타실력은 해군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왕자라기보다는 군인의 풍모가 돋보였다고 한다.

그는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와 함께 왕자님과 하느님(宮様と神様)으로 불리면서 해군에서 신격화되었으며 거함거포주의자여서 그의 위세를 등에 업은 함대파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이노우에 시게요시는 황족이 총장직에 오르면서 의견의 경직화를 부른 것을 두고서 메이지 시대의 머리로 쇼와 시대의 전쟁을 했다고 비판했다. 히로야스의 총장 퇴임 때 오이카와 고시로(及川古志郎) 해군대신에게 의견을 요청받은 이노우에는 '원래 황족들은 이런 중대사에 총장이 되도록 교육받지 않았다. 왕자님이 총장이라면 차장이 총장과 같은 권력을 갖게 되는 거'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해군 내에서 조약파를 추방하는 등 미일 개전의 원흉 가운데의 하나로 전후(戰後)에는 비판받는 경우가 많다. 해군반성회에서도 히로야스의 전쟁책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황족이라는 존재의 무게 때문인지 깊게 논의되지는 않았다.

반면 히로야스 자신은 '미일개전에 대해 일본에서 화평을 구하려고 해도 미국은 응할 일이 없을 터이다. 그렇다면 조기에 미국과의 전쟁을 개시해서 어떻게든 최소한의 희생으로 미국에 손해를 끼쳐서 일본에 유리한 조건으로 조기화평을 맺어야 할 것'이라는 조기결전 조기화평(早期決戦・早期和平)이라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함대파의 중진이었던 히로야스와는 반대의 입장에 섰던 구미협조파 또는 조약파인 야마모토 이소로쿠와는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들 말한다.

군령부의 권한강화를 노리고 히로야스가 주도한 군령부령 및 성부호섭규정개정안(軍令部令及び省部互渉規定改正案)에 대해 이노우에 시게요시는 자신의 직책을 걸고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짤렸고, 요코하마 진수부(横須賀鎮守府)에서 예비역 편입을 기다리는 처지에 몰렸지만 대령 승진 후 5년째에 연습전함 히에이(比叡)의 함장에 보하여 통상 1년 근무하는 함장 직을 2년 근무한 뒤 소장으로 승진했다. 이는 히로야스에게 있어서 이노우에는 비록 적대세력이었지만 그의 사나이 군인으로서 모습을 높이 사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해군에서의 생활이 몸에 익은지라 왕자라기보다는 군인에 가까웠던 그의 모습을 전하는 일화들이 있다. 황족들은 목욕을 하고 난 뒤 유카타를 여러 번 갈아입는 식으로 물기를 제거하지만 히로야스만큼은 일반 서민들이 하는 식으로 몸을 닦았다고 한다. 속옷 세탁 쯤은 본인이 알아서 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언제부터 그런 것까지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해군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옛 측근들에 의하면 함내에서는 주먹밥과 야채절임과 같은 간단한 식사를 선호했고 해군성 식당에서의 점심식사로는 덴푸라우동을 즐겼다고 하며 군령부총장으로 오래 재임한 것도 있고 그의 얼굴이 길쭉했던 걸 빗대서 쵸멘쿤(長面君)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히로야스의 장인은 도쿠가와 요시노부였는데 어느 날 함내 장교들이 에도 막부 말기에 대해 의론이 오가던 중 누군가가 요시노부를 격렬하게 비난한 적이 있었다. 히로야스는 말없이 자리를 떴고 후에 그 장교가 사죄하러 오자 '아니다. 신경 쓸 것 없다. 공부가 됐다.'고 대꾸했으며 신적강하한 4남 후시미 히로히데가 1943년에 전사했을 무렵 전사자 합동 장례식 때 히로히데의 위패를 가장 윗자리에 놓으려 한 해군의 움직임을 만류하였고 결국 계급순으로 놓았다.

종가인 후시미노미야의 당주로서 방계 미야케에도 관심을 쏟았는데 히로야스의 4촌 형제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 왕[4]이 장남인 아사아키라(朝融)와 사카이 키쿠코(酒井菊子)와의 약혼을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일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구니요시는 이전에 자신의 장녀 나가코(良子) 여왕히로히토 황태자의 결혼에 관해서는 주위의 반대를 누르고 밀어붙이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한 와중에 히로야스는 자신의 딸 토모코(知子)를 구니노미야에 시집보내면서 황실 내의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이후 아사아키라는 시녀와 사통하는 식으로 처와 장인을 배반해서 구니노미야의 대에 걸친 거듭된 부정(不貞)에 상당히 마음이 상했다.

[1] 육군과 달리 해군군령부총장이 아니라 그냥 군령부총장이다.[2] 伏見軍令部總長宮を讃え奉る[3] 참고로 2019년 확인된 해군 기밀자료에 의하면 쇼와 덴노가 그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한 말이 해군 장교들이 해당 사건에 가담하지 않겠냐는 우려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그는 그런 거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4]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3남. 구니노미야의 2대 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