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8 01:30:25

쇼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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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시대
1926. 12. 25.
~ 1989. 1. 7.
1. 개요2. 오래된 이미지3. 시대적 특징4. 미디어 매체에서의 쇼와5. 쇼와 시대의 인물들6. 기타

1. 개요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 일본에서 사용된 연호이자 시대 구분. 일본천황 히로히토가 제124대 천황으로 재위하고 있을 때 사용했던 연호로, 이 시기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간 사용된 연호이다. 연호의 의미는 '빛나는 일본'으로, 《서경(書經)》 요전(堯典)의 '百姓明, 協萬邦 (백성이 밝게 드러나고 만방이 화목하게 되었다)'에서 유래했다.

昭和,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으면 . 한국 한자음로는 '소화'. 쇼와 원년은 서기 1926년이다. 하지만 1926년 12월 25일까지는 다이쇼 15년이었으므로, 쇼와 원년이라는 연호가 쓰인 기간(12/26~12/31, 총 6일)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리고 쇼와 64년(1989년)도 1월 7일까지로 역시 며칠 되지 않는다.

서력(西曆)으로 바꾸려면 1925를 더하면 된다. 쇼와 연호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쇼와 10년대가 1935년~1944년이듯 메이지와 함께 서력기원에 바로 대입해서 적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나마 5년 단위로 딱딱 끊어지기에 쇼와 ↔ 서기 연도계산은 메이지다이쇼 시대보다 쉬운 편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라 연호를 사용해온 동양사 전반에 걸친 문제다.

2. 오래된 이미지

서기 1989년(쇼와 64년)에 히로히토가 사망하고 당시 그의 장남 아키히토 황태자가 일본 제125대 덴노로 즉위하여, 연호는 헤이세이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쇼와'는 흘러간 옛날 것을 뜻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한국에서의 쌍팔년도와 비슷한 쓰임새다.[1] 실제로 쇼와의 마지막 연도가 쌍팔년도와 같은 해인데다 단기로 해도 쇼와 시대 가운데에 있다.

사실 일본에서도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낡은 세대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만, 현재까지 일본인들의 대부분은 쇼와 시대 출생이고, 그다음으로 헤이세이, 다이쇼, 레이와 순서이다그야 헤이세이는 겨우 30여 년밖에 안되었으니깐 레이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지금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5개월이다[2]

식신의 성 시리즈의 주인공 쿠가 코타로가 아버지에게 불평할 때 "쇼와 태생 주제에!"라고 말하곤 한다. 국내로 따지면 '쌍팔년도에 태어난 주제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엔카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의 히트곡 〈쇼와의 꿈꾸는 제비(昭和夢つばめ)〉에는,"우리들은 쇼와 시대에서 날아온 제비들이지요(私たちは昭和から飛んできたつばめなのね)"라는 나레이션이 나오면서 그 시대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정서를 표현한다.

히로히토가 젊은 나이(25~26살)에 즉위했고, 워낙 오래 살았다보니 일제강점기 중후반부와도 겹치기 때문에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의 기억이 남아있는 노년층에게 옛날 일을 물어보면 '소화 몇 년'이라 말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혹은 소화 몇 년에 태어났는지 물어보면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는 '부용교'라는 교량이 있는데[3], 소화 6년(1931)에 건설되었다고 해서 '소화다리'라고 불린다. 또한 당시에 간행되어 지금까지 국내에 남아있는 서적에는 끝부분의 판권지에 있는 소화 간행년도가 먹칠로 지워지거나 칼질로 도려진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려 했던 흔적이다. 그 때 세워진 비석을 봐도 역시 건립년도를 깎아내서 없애버린 것이 많다.

히로히토의 사후 그의 생일인 4월 29일은 녹색의 날이었으나 2007년부터 5월 4일로 옮기고 쇼와의 날로 변경되었다.
"(패전 전)천장절->(패전 후)천황탄생일->(사후)녹색의 날->(2007년)쇼와의 날"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의 부제는 대놓고 "경성, 쇼우와 62년(1987년)"이다.[4]

3. 시대적 특징

한국에게는 일제강점기, 6.25 전쟁, 군부의 쿠데타와 군사반란으로 군부독재 등 여러모로 아픔이 많은 시대지만, 일본의 우익 세력에게는 영광의 시대 비슷하게 인식되기도 한다. 우선 쇼와 시대 초반에는 길진 않았으나, 각종 전쟁을 통해 제국이란 칭호에 걸맞을 만큼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 다만 많은 일본인들은 군부에 의해 지나치게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었던 데다 허구헌 날 전쟁만 터지던 1930년대 쇼와 초기 시대보다는, 바로 직전이던 1910~20년대 다이쇼 시대를 훨씬 더 살기 좋은 시절로 여긴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 진주만에 싼일로 미국한테 두들겨 맞아 해군 전력을 모두 잃고 제공권까지 뺏기는 등 패전 직전으로 몰락에 접어드는 듯했지만, 이후 한국전쟁 등의 호기를 살려 성공적으로 재기(ex.1960 도쿄하계올림픽, 1970 오사카 세계만국박람회 개최)하여 쇼와 시대 후반에는 미국 다음가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의 호황 덕택에 현재의 일본이 아직도 그럭저럭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함을 고려하면 영광의 시대라는 소리도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다. 일본 제국 시절의 소위 영광은 일본 제국주의를 기초로 한 주변국들의 피와 고통으로 이룬 측면이 있으니 문제지만,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은 주변국들도 딱히 태클 걸 이유가 없긴 하다. 이때 독일과 다르게 주변국들과 갈등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4. 미디어 매체에서의 쇼와

앞서 말했듯이 쇼와 시대는 '낡고 오래된 것, 구식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려 매체에서도 이 이미지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주로 '지금이 쇼와 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냐'[5]라는 뉘앙스를 품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 서브컬쳐에서 쇼와 시대 느낌을 내기 위해 쓰는 소품 중 특히 유명한 것이 기모노 위에 캇포기를 두른 종업원. 꼭 쇼와가 아니더라도 고풍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해 많이 차용한다.

영화 엠페러에선 직접 나오는 것은 회담 장면 뿐이지만 전반적으로 종전 이후 일본을 휘어잡은 외국인 쇼군에게 핍박받는 형세로 나온다. 문제는 맥아더가 전범 혐의 유무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백악관 입갤에 도움이 될만한 방향으로 수사판을 꾸렸다는 점. 결국 일본 본토 대공습으로 사망한 옛 일본인 여친을 잊지 못하는 와패니즈 주인공 보너 펠러스 준장[9]에 의해 전범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뒤 다 같이 평화와 일본의 재건을 추구하자는 결말이 나와서 많은 이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

5. 쇼와 시대의 인물들

쇼와 시대에 태어난 인물들은 쇼와 시대/출생 항목 참조.

6. 기타

1989년은 해의 첫 7일간이 쇼와 64년으로, 1월 8일부터는 헤이세이 시대가 된다. 즉, 쇼와 64년 1월 7일의 다음날은 헤이세이 원년 1월 8일인 것. 덕분에 많은 곳에서 새해 1주일만에 달력 등을 새로 장만해야 해서 인쇄업자들만 득봤다. 민폐 쩐다. 이는 연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일본에서는 즉위년칭원법을 사용하기 때문. 일본의 대학가에서는 헤이세이 연도에 태어난 대학생들이 1989년 1월 1일에서 7일 사이에 태어난 다른 학생들을, 비록 서력으로는 출생연도가 같더라도 쇼와 시대의 아저씨, 아줌마라고 놀리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비슷한 케이스로 마지막 국초딩세대가 있다. 1989년 항목 참조. 쇼와 원년(1926년)과 64년은 7일밖에 안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해 일주일 만의 연호 교체가 큰 혼란을 초래하였던지라 아키히토가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히자 퇴위 연월일을 2019년 1월 1일로 하고 연호는 새해가 오기 전에 미리 발표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우익들이 "금상(今上)이 멀쩡히 재위하고 있는데 연호를 먼저 발표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다", 쉽게 말하면 "한 하늘 아래 태양이 2개 있을 수 없다"라는 논리로 반대하였다. 그리고 나루히토 즉위가 해를 넘긴 5월 1일로 확정되자 아베 신조 총리가 국민 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신연호를 4월 1일에 발표하였을 때에도 반대하였다. 자신들이 그렇게 숭상하는 아베 총리에게도 정면으로 반대할 정도이면 정말 답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쇼와 시대가 여간 길지 않았기 때문에 연호 교체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호기심과 혼란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넘어가는 시기는 다이쇼에서 쇼와로 넘어가던 시기와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일본에서 다이쇼가 쇼와로 바뀌는 것을 생생히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쇼와가 헤이세이로 바뀌는 1989년 기준 70~90대의 노인들이었고 [10] 그 이하의 사람들은 연호 교체라는 것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1989년은 공문서 등 국가 운영 전반이 1926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연호 교체가 초래할 부작용도 매우 컸다.

쇼와 덴노가 언제까지 살아있을지 생전에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 1월 7일 이전에 발급한 공문서, 엽서, 각종 증명서 등에 발급된 곳에 있는 유효기간, 공사장 안내판의 공사기간 등의 날짜 표기를 보면 실제로는 히로히토가 죽고 난 뒤인 1990년, 1991년이 쇼와 65년, 쇼와 66년 등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했다. (쇼와 65년과 헤이세이 2년 표기 엽서, 유효기간 날짜가 쇼와 66년으로 표기된 운전면허증, 공사기간의 날짜가 쇼와 69년(1994년)까지로 표기된 공사장 안내판)

일본 엔화 동전에 찍혀 있는 연도는 1989년의 경우 쇼와 64년과 헤이세이 원년(1년)이 공존한다. 쇼와 64년 동전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액면가보다 약간 가치를 더 쳐준다고 한다.

한신 타이거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 이 시대에 이루어졌고, 쇼와 시대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팀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이다.

일본 특촬물의 전설인 가면라이더슈퍼전대가 처음 등장한 시기이다.

중국에서는 쇼와 시대 뽕을 비꼬는 단어로 招核가 있다.[11]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핵을 부른다는 뜻이 된다.


[1] 쌍팔년도는 사실 단기가 기준이라 1988년이 아니고 원래 1955년이다. 이 단어가 한국전쟁 당시에 만들어졌고 또한 원래 의미는 '현재 시국'이었다. 시간이 지나 1955년이든 1988년이든 모두 과거를 의미하는 단어가 됐지만.[2] 아키히토, 나루히토 모두 쇼와 시대 출생이고,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은 거의 다 쇼와 시대 출생이다.[3] 읍사무소 근처에 있는 부용교다. 철교 옆에도 부용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거기는 구별을 위해 '제2부용교'라고 부른다.[4] 이 작품에서 쇼와 덴노는 늘그막에 직접 쿠데타를 추인하는 방송을 하는 굴욕을 겪는다.[5] 한국식으로 로컬라이징하면 '쌍팔년도 혹은 군사정권도 아닌데 아직도 똥군기 잡고 있냐.'[6] 사실 2050년을 쇼와나 헤이세이 연호로 부르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해도, 레이와 연호로 부르게 될지조차 확실치 않다. 2050년이면 현 덴노나루히토가 90세 고령일 시점이라, 사망했거나 퇴위한 이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2050년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새로운 연호로 불리게 될 것이다.[7] 1기는 쇼와 41년(1966년) 작, 2기는 쇼와 63년(1988년) 작. 2기 42화부터는 헤이세이 시대에 만들어졌다.[8] 1기는 헤이세이 27년(2015년), 2기는 헤이세이 29년(2017년) 작.[9] 이 사람은 정보장교로, 태평양 전쟁 이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행적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아서 역사가들에게 많이 씹히고 있다. 종전 이후 대령으로 환원되어 예편한 뒤 CIA에서 근무했고, 훗날 준장 계급이 복권되었다. 본 영화에 나오는 사랑타령은 철저히 가공의 이야기로 영화가 혹평을 받은 가장 큰 원흉이 되었다.[10] 심지어 2019년 연호가 다시 바뀌는 지금은 그 연령대의 노인들조차 모두 쇼와 태생들이다.[11] 쇼와의 한자인昭和와 한자 발음(zhao he)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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