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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1985년/4월/17일

백스크린 3연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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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fefe01><colcolor=#fefe01,#000000> 모기업 관련 정보 한신 전기철도 · 한큐한신토호그룹
연고지 관련 정보 간사이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일대 · 오사카부 오사카시
일본시리즈 우승
★★
1985 · 2023
리그 우승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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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감독 후지카와 큐지 · 선수회장 나카노 타쿠무
주요 명장면 백스크린 3연발 · 일본프로야구 최장시간 소요 경기 · 201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 고의사구 끝내기 안타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경기장 1군 한신 고시엔 구장 · 고시엔 기간 교세라 돔 오사카 · 2군 닛테츠코한 SGL스타디움 아마가사키 · 과거 2군 한신나루오하마 구장 · 지방구장 머스캣 스타디움 · 춘계 캠프 기노자촌 야구장 · 추계 캠프 아키 시영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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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스코어보드3. 경기 진행 상황
3.1. 운명의 7회말3.2. 경기 종료까지
4. 이후

1. 개요

2023년 일본시리즈 우승 이전까지 한신 타이거스 팬들의 영원한 추억이자 안주거리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경기. 일명 백스크린 3연발(バックスクリーン3連発)로 잘 알려져 있다.

2. 스코어보드

1985년 4월 17일 18:00 , 한신 고시엔 구장
선발투수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R H E
요미우리 마키하라 히로미 2 0 0 0 0 0 1 0 2 5 9 0
한신 쿠도 카즈히코 1 0 0 0 0 0 5 0 X 6 9 1

3. 경기 진행 상황

한신 선발 쿠도 카즈히코[1]와 요미우리 마키하라 히로미의 선발 대결로 펼쳐진 전통의 일전. 7회까지 '한신 킬러'로 정평이 났던 마키하라의 호투에 힘 입은 요미우리가 3-1로 무난하게 앞서가고 있었다.

3.1. 운명의 7회말

7회말 투아웃 상황. 당시 요미우리의 선발투수였던 마키하라 히로미는 6회 2사까지 1실점을 했고, 랜디 바스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에는 주자를 1-2루에 두고 있었다. 당시 바스의 타율은 0.133홈런 0개. 누가 예상하더라도 마키하라가 무난히 이닝을 마무리하고 내려갈 줄 알았으나... 전설의 대역전극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3번타자 바스가 당시 마키하라 히로미[2]가 119구째로 던진 초구 실투를 받아쳐 중견수 뒤 배터스 아이[3]로 날아가는 쓰리런 홈런을 쳤다. 3-4로 한신 역전.

4번타자인 카케후 마사유키가 또다시 배터스 아이를 넘기는 솔로홈런[4]으로 3-5, 그리고 마지막으로 5번타자인 오카다 아키노부도 역시 배터스 아이로 넘기는 솔로 홈런을 날려서 7회말에 5점을 뽑아 3-6으로 한신이 앞서게 되었다.
백스크린 3연발의 전체 과정. 백문이 불여일견이자 한신 타이거스 팬들에게는 롯기도문급 필수 영상.[5]
물론 거인 및 마키하라 팬들에게는 금지 영상이기도 하다.
甲子園球場はもうお祭りです、甲子園はお祭りです!!
고시엔 구장은 이미 축제입니다. 고시엔은 축제입니다!![6]
훗날 당시 상대 허용투수였던 마키하라 히로미는 2015년 4월 NHK 토크쇼에 나와 이 영상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멘붕하게 된다. 본인이 말하길 다른 타자였다면 내야뜬공인 것을 카케후는 홈런으로 때려냈다고 하며, 세 번째 홈런을 맞을 땐 거의 멘붕 상태였다고 한다.

3.2. 경기 종료까지

요미우리는 9회초 워렌 크로마티하라 다쓰노리의 백투백 홈런으로 2점을 따라왔으나, 동점은 만들지 못하고 졌다.

4. 이후

참고로 당시 랜디 바스는 시즌 시작후 타율 0.133로 꽤나 막장(...)이었으나 이 시합에서의 홈런을 계기로 당해 타격삼관왕 등극에 시동을 걸게 된다. 그리고 한신도 질주하여 한신 타이거스 팬들의 숙원이었던 일본시리즈 우승도 달성한다.

랜디 바스 - 카케후 마사유키 - 오카다 아키노부로 이어지는 한신의 클린업 트리오는 이 시즌에 제대로 일을 냈다. 최종적으로 랜디 바스는 174안타, 54홈런, 134타점, 카케후 마사유키는 143안타, 40홈런, 108타점을 기록하였고, 오카다 아키노부는 157안타, 35홈런, 101타점, 타율 0.342란 기록을 남기며 리그 최강의 5번 타자라는 명성을 드높였다. 즉, 클린업 트리오 세 명이 474안타, 129홈런, 343타점을 한 해에 합작한 것이니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뿐인가, 1번 타자이던 마유미 아키노부 또한 말이 1번이지 타율 0.322, 34홈런, 84타점이란 웬만한 팀 4번 뺨치는 스탯을 수립했다. 이 경기가 기폭제가 되어, 한신은 리그 선두를 질주하며[7] 센트럴리그 우승을 하여 1985년 일본시리즈에 진출했고,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를 격퇴하며 1935년 창단 이후 최초로 일본시리즈 제패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리그 우승 후 기쁨에 도취된 일부 한신 광팬들은 도톤보리 강랜디 바스와 닮은 치킨집 마스코트를 던졌고, 1986년부터 한신은 일본시리즈를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8]...가, 2023년 일본시리즈에서 위의 5번타자였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의 지도 아래 디펜딩 챔피언오릭스 버팔로즈를 꺾고 오카다 1기 시절 당했던 18년 전의 굴욕을 떨쳐내면서 38년만에 우승을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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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6년생으로 1975년부터 90년까지 한신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통산 308경기 160선발 66승 63패 4세이브. 사실 이 시즌에는 선발보단 중계로 많이 나왔다(30경기 6선발 6승 3패).[2] 참고로 마키하라 히로미는 요미우리에서만 19년 통산 159승 통산 방어율 3.19라는 우수한 기록을 남긴 대투수로, 이 시점에서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구속 기록자였고(155km/h) 이후에는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적이 있어 '미스터 퍼펙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対 한신전의 통산 전적은 38승 10패 10완투의 절대우위인데 어째선지 이 날은 와장창 두들겨 맞았다. 여기에 더해 1999년에는 신조 츠요시에게 고의사구를 던지다 끝내기 안타를 허용한 적도 있는 등, 한신 상대 전체 성적은 좋았으나 한신 팬들에게 잊지 못할 명장면을 두 개나 선사해 주었다.[3] 일본어로 백스크린이라고 한다.[4] 사실 이날 카케후의 홈런은 배터스 아이가 아닌 바로 왼쪽 관중석에 떨어져서 엄밀히 말하면 백스크린은 아니지만 워낙 이 세 타자의 홈런이 임팩트가 커서 백스크린 3연발로 쳐주는 거다(...).[5] 오사카 아사히 방송테레비 아사히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한 영상이다.[6] 열광하는 관중석을 보고 한 아나운서의 멘트. 위 영상 4:14초에 나온다. 이 멘트도 유명해서 한신 타이거스가 홈에서 좋은 모습만 보이면 지금도 한신팬이나 관서 언론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그리고 일본 교진 팬들은 아나운서의 다음 멘트인 "3루 쪽 스탠드에서 빈 깡통이 던져지고 있습니다."(三塁側のスタンドから空き缶が投げられています)는 왜 안하냐고 깐다.[7] 중간에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中埜肇)가 죽는 비극이 벌어졌고, 이 때 6연패로 잠시 카프에 선두를 뺏기기도 했다. 심지어 사고기는 당시 죽음의 원정을 다니던 한신 선수단이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사고 당일 탑승한 항공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정신 차리고 다시 정상 질주를 시작했다.[8] 게다가 한신은 칸사이의 붉은 잉어 구단과 더불어 헤이세이 년간에도 우승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