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20 07:46:16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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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Korean Air Lines Flight 007 shootdown
파일:kal007_debris.jpg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0,#dcdcdc> 대한항공 007편의 잔해
발생일 1983년 9월 1일
유형 민항기 격추, 조종사 과실
발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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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SFSR 사할린주 모네론 섬 부근 상공
기종 보잉 747-230B
운영사 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 HL7442
출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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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국제공항
경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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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리지 테드 스티븐스 국제공항
도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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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국제공항
탑승인원 승객: 246명
승무원: 23명[1]
사망자 탑승객 269명 전원 사망
격추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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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편명
IATA KE007
ICAO KAL007
콜사인 KOREAN AIR 007
언어별 명칭
한국식 한자어 大韓航空 007便 擊墜 事件
일본어 [ruby(大韓航空機撃墜事件, ruby=だいかんこうくうきげきついじけん)]
러시아어 Катастрофа Boeing 747 над Сахалином
(Рейс 007 Korean Air Lines)

1. 개요2. 사고 기체3. 사건의 전개
3.1. 격추3.2. 외교적 해결
4. 사망자 국적5. 영공 침범 원인6. 영향
6.1. 대한민국의 반응6.2. 미국의 대응6.3. 소련의 대응6.4.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진 사례
7. 의문점 및 음모론8. 기타9. 관련 문서
9.1. 유사 사건
10. 외부 링크11. 둘러보기

1. 개요

1983년 9월 1일,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테드 스티븐스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 007편(기종 747-230B, 기체 등록번호 HL7442)이 사할린 근처 모네론 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 방공군의 Su-15TM(요격기)에 격추당하여 추락한 사건으로 한국 국적기가 당한 항공사고 중 최악의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사건 당시에는 세계 5위, 2026년 현재 기준으로도 세계 12위 규모로 인명 피해가 큰 사건이었다.

2. 사고 기체

HL7442
파일:fdc6fyyhset.png
사고 4개월 전, 카이탁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HL7442[2]
<colbgcolor=#f5f5f5,#2d2f34> 등록번호 HL7442
제조사 보잉
기종 보잉 747-230B
제작번호 20559/186
기령 11.5년
생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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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주 에버렛[3]
엔진 4 × PW JT9D-7A
최초 비행일 1972년 3월 17일
최초 인도 항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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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 항공 (D-ABYH)
대한항공 도입일 1979년 2월 3일
파일:D-ABYH.png
콘도르항공 시절의 사고기. 당시 등록기호는 D-ABYH[4]였다.

루프트한자의 자회사인 콘도르 항공에서 1972년 3월 17일에 첫 운항을 하다가(콘도르 항공 시절 기체 등록번호는 D-ABYH) 조기 퇴역한 기체인 30B를 1979년 2월 3일에 대한항공에서 중고로 들여온 기체이므로, 콘도르 항공도 루프트한자의 고객 코드(BCC)를 따른다. 루프트한자 역시 BCC가 30번이다. 사고 당시의 사고기의 기령은 11.5년이었다.

3. 사건의 전개

파일:KAL007.svg
대한항공 007편의 실제 비행항로(실선)와 비행 예정항로(점선)[5]

1993년 7월 16일 발표된 ICAO 최종보고서

대한항공 007편에는 총 246명의 승객과 2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 중에는 미국 하원 의원인 로런스 패튼 맥도널드(Lawrence Patton McDonald, 1935~1983)[6]도 탑승하고 있었다.

사고기는 1983년 8월 31일 오후 1시 5분(이후 서울 기준시) 뉴욕에서 이륙하였는데 당시 이미 3대의 관성 항법장치 중 한 대에 이상이 있었다는 말도 있었으나 이는 근거가 부족하며 본디 3대씩이나 탑재(triple redundancy)한 이유가 1대가 고장 날 것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이후 사고기는 8월 31일 오후 8시 30분에 경유지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후 오후 9시 50분에 예정보다 지연되어 출발하였고 오후 10시에 이륙하였다.[7]

오후 10시 02분에는 웨이포인트(이정표)인 베젤(Bethel) 공항[8]으로 향하기 위해 방위 245도로 선회했고 이후 방위는 계속 고정되었다. 잠시 후 오후 10시 27분에는 카이룽산 전파국 부근을 통과하여 레이더 권외로 빠져나갔다. 이때 이미 예정 항로였던 J501 항로에서 북쪽으로 11km나 이탈하였지만 항공관제사의 경고는 없었다.

오후 10시 49분, 앵커리지 센터의 관제사가 베젤 공항 통과를 알렸지만 007편은 베젤 공항보다 22km 북쪽에 있었으며 이때 미국 공군 소속의 킹 샐먼 레이더 기지[9]의 권역이었지만 민간 항공기에 대한 관제권이 없었기 때문에 경고는 없었다. 이후 가장 북쪽에 있는 북태평양 항로인 R20으로 향할 예정이었다.[10]

3.1. 격추

사고기의 CVR(Cockpit Voice Recorder). HF[11]라서 잡음이 좀 있고 음질도 나쁘다.[12]

1983년 9월 1일 0시 5분 무렵 007편은 소련 영토인 캄차카 반도 북동쪽 상공에 진입하였는데 이때 소련 방공군은 007편의 진입을 눈치챘고 미국 공군의 군용기라고 판단하였다. 오전 1시 30분에 007편은 소련의 영공에 진입하였지만 대응하기엔 007편이 캄차카 상공에 체공할 시간이 많지 않아 캄차카 반도에 배치되었던 소련 방공군 편대는 요격을 시도하지 않고 귀환했고 007편은 오전 2시 28분에 소련 영공을 통과하고 소련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13] 하지만 오전 2시 36분에 대한항공 007편이 오호츠크해를 지나 다시 소련 영토인 사할린 섬 상공에 접근하였고 이때 소련군은 경계태세에 돌입했다.[14]

오전 3시 5분에 007편은 뒤따라오던 로스앤젤레스발 대한항공 015편[15]과 교신했고 서로 바람 방향이 다른 것을 알았다. 015편은 정상적으로 소련 영공을 피해서 날고 있었으므로 그랬던 것이지만 007편 조종사는 비행계획서를 체크하고 오차 범위 안쪽이라고 판단하여 자신이 항로를 이탈한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곧이어 오전 3시 8분에 겐나디 니콜라예비치 오시포비치(Геннадий Николаевич Осипович, 1944–2015)가 탑승한 사할린의 소련 방공군 소속 Su-15TM 요격기가 007편을 확인했다. 새벽 시간이라 아주 어두웠기 때문에 기종 식별은 불가능했고 항법등과 충돌방지등이 점멸하고 있는 것을 보고했다. 그러나 이는 면피성 답변으로, 후일 오시포비치의 인터뷰에 따르면 꼬리의 민항기 마크 및 객실등 등을 식별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오시포비치의 Su-15가 007편을 추격하면서 경고사격을 했지만 야간이었던 데다 오시포비치가 탑승한 Su-15의 탄띠에 예광탄이 없는 채로 사격해 007편에서는 자신들이 위협사격을 당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KAL007: Korean Air 007 climb and maintain FL350 leaving FL330 at this time. (고도 35,000ft로 상승한 뒤 유지하겠습니다)
도쿄관제소: Tokyo Control Roger. (알겠습니다)

위 무전을 007편과 도쿄관제소가 나눴을 때 오시포비치의 Su-15는 007편의 바로 뒤에 있었다. 그런데 이때 도쿄와 무전을 마친 007편이 고도를 35,000ft(10668m)로 올리기 시작했다.[16] 기수를 들면서 속도가 조금 떨어졌기 때문에 오시포비치의 Su-15는 007편을 앞질러가게 되었다. 이렇게 경고사격 이후에 고도를 올린 것은 경고사격을 알아차리고 반응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Su-15TM의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007편이 자신을 인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고도를 높이며 속도를 줄이는 것이 공격적 행동이 되는 이유는 첫 번째로 대다수의 전투기의 무장은 전면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뒤에 있는 비행기가 항상 유리하다. 그리고 서로 속도가 동일할 때 앞에 있는 기체가 기수를 들어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속도를 빠르게 줄이면 뒤에 있는 비행기가 앞 기체를 오버슛하여 앞지르게 되는데 이러면 역으로 뒤를 잡히게 되는 것이므로 공군 조종사 입장에서는 자신을 따돌리려는 리버설, 즉 공수를 바꾸는 기동인 것이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두 번째로 전투기나 요격기는 그렇게 느려진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날기 어렵다. 전투기는 민항기에 비해 익면적도 작고 중, 고속 기동성을 중시하거나 아예 속도만을 추구하는 설계라 민항기보다 실속속도가 훨씬 빠르다. 즉, 요격기의 조종사에게 이 행동은 전투기의 실속을 유도하는 지능적인 행동으로 비쳤고 따라서 해당 항공기는 민항기 마크는 위장용으로 그려진 것이고 전투기의 특성을 꿰고 있는 군 관계자가 탑승한 모종의 군용기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우연이 없었다고 해도 007편이 오시포비치의 Su-15를 무시[17]하고 도주를 계속하는 이상 격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극동지방 소련 방공망의 대응이 그다지 신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시포비치의 Su-15가 007편과 조우한 것은 이미 007편이 소련군 기지 주변을 지나서 공해로 빠져나가려는 시점이었다. 격추시키지 않으면 눈 뜨고 그대로 놓치는 수밖에 없는 데다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당시 보잉 707과 유사한 미 공군의 전자정찰기인 RC-135[18]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말았다 하면서 약올리는 비행 방식[19]에 소련 방공군이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잔뜩 벼르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 이런 점 때문에 5년 전 일어난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과 너무 유사해서 음모론이 힘을 얻었고 지금도 이 사건을 다룬 외국어 위키백과의 문서들에는 902편 격추 사건 때문에 대한항공이 미국의 비밀 작전에 동원되었고 소련은 낚인 것 아니냐는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음모론성 서술이 있다.

007편의 속도가 줄어들면서 고도를 상승하며 오버슛을 하게 되자 명백하게 자신을 따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한 오시포비치는 다시 007편의 주위를 빙 돌아 007편의 8km 뒤편으로 날아가 오전 3시 25분 무렵에 R-98 공대공 미사일과 R-60 공대공 미사일을 1발씩 발사했다.
파일:kal007_hit.jpg

Su-15가 발사한 미사일 하나는 다른 곳으로 날아갔지만 나머지 하나는 기체 후방부 50m 부근에서 근접폭발했다. 어떤 미사일이 빗나가고, 어떤 미사일이 근접폭발하였는지는 불명이다.[20] 007편은 미사일에 피격된 여파로 기체 후부에 파편에 의한 구멍이[21] 뚫리면서 급격한 감압이 일어났고 이 충격으로 최소 1개 이상의 유압장치가 완전히 파괴되었다.[22] 피격 직후 007편은 오토파일럿이 해제되고 잠시 38,000ft(11582m)까지 급상승하였고[23] 이후 약 11분간 추락하며 활공하다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이때 10여 분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007편이 비상상황임을 알리고 MAYDAY를 하지 않았는지는 미스터리다.[24] 조종사들은 피격 직후 상승하던 불안정한 기체를 제어하기 위해 랜딩 기어를 내리는 시도도 했지만[25] 자동조종은 물론 정상적인 수동조종도 어려움을 느끼고 비상강하를 시작한다.

007편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처럼 꼬리부분이 손상[26]되어 유압을 상실한 채로 주변을 강하하며 비행하다가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ICAO 최종조사 보고서에서는 승객들이 추락 직전까지 살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으며 오시포비치는 모네론 섬 근처에서 007편이 나선선회를 하면서 추락하는 것을 확인하고 기지로 복귀했다. 007편이 최후의 순간 동안 급강하한 데다 바다는 땅에 비해 충격을 반사하므로 수면을 강타한 직후 생존자가 있었을 확률은 없다. 추락 직후로 추정되는 시점에 일본의 오징어잡이 어선 58치시마호가 폭발을 목격했다고 한다.

한편 007편과 무전이 되지 않자 015편과 도쿄관제소는 다급하게 007편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심지어 도쿄 관제소는 사할린에 있는 소련의 민간 항공관제소에도 연락을 했지만 007편이 마지막으로 보고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후 소련이 격추 사실을 시인하였고 부랴부랴 미국 해군과 미국 해안경비대, 해상자위대, 그리고 민간 트롤어선까지 동원해 공해상에서 구조와 수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으며 심지어 소련 해군과 해안경비대가 미일 구조대가 소련 영해로 진입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유력 추락 지점인 모네론 섬 근해는 수색하지도 못했다.
파일:attachment/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KAL007_3.jpg 파일:kal007_debris.jpg
<rowcolor=#000,#fff> 당시 소련 측에서 회수한 유류품들 회수된 007편의 수직꼬리날개 잔해[27]

이후 사고 현장과 인접한 일본 홋카이도 근해에서 일부 유류품과 13명분의 시신 일부분을 찾았다. 한편 007편이 추락한 직후 소련은 모네론 섬 근해를 수색했는데 원래는 RC-135의 잔해와 블랙박스, 컴퓨터 그리고 영공침범의 증거로 미군의 시신을 인양하러 간 것이지만 자신들이 격추한 것이 RC-135가 아니고 그냥 민간인이 탄 민간 항공사의 민항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안 뒤 경악했다.[28] 이때 007편의 파편과 블랙박스, 유류품이 수거되었다.

원래 소련은 자기들이 민항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을 은폐할 생각이었으나 미국의 정보 공개로 무산되었고 미국과 일본의 압박 때문에 1983년 9월 26일 소련은 유류품 213점을 전달했다. 그러나 블랙박스와 잔해들은 냉전이 끝날 때까지 유가족들에게 전하지도 않고 가지고 있었으며 소련은 007편 블랙박스의 존재를 부인했다.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했다.

3.2. 외교적 해결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년이 흐른 후에 1988 서울 올림픽에 소련이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소련의 올림픽 참여로 한소관계가 크게 개선되자 노태우 정부는 한소수교를 추진하면서 더 이상 007편 격추 사건을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한소정상회담 전날인 1990년 6월 3일 대한민국 정부는 "한소관계의 개선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보장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점에서 불행한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한소관계의 개선 노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고 이 사건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이전에 일어났음을 지적하면서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로 소련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도 1990년 한소수교 당시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비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였고 1991년 한 차례의 추가 수색을 벌여서 007편의 잔해와 유류품 일부분을 더 찾아냈다.

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에는 러시아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국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접 블랙박스와 일부 유류품을 반환하였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된 후 1990년대 중후반 러시아가 극심한 경제위기에 빠지고, 많은 귀금속, 유류품들이 러시아 내에서 도난당하거나 군 관계자들이 서방세계에 몰래 팔아치우면서[29] 그 뒤에도 희생자들의 귀금속 유품이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리는 문제가 남아 있다. 반면 사고 현장과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인 홋카이도 왓카나이시에서 수거된 유류품 371점은 시 당국이 한동안 보존했다가 참사 20주년을 맞은 2003년에 유족들의 동의 하에 해변에서 소각했다. 현재도 왓카나이시 최북단 소야곶에는 007편 격추 사건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4. 사망자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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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공 침범 원인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비로소 대한항공 007편의 블랙박스가 대한민국으로 전달되었다.[30] 이후 블랙박스는 ICAO에 제출됐고 남은 유품은 유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ICAO는 사건이 외교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최대한 공정성과 중립을 지키기 위해 NTSB를 비롯한 미국의 수사당국, 러시아의 AIC 그리고 피해자인 한국의 KAIB까지 배제한 뒤 007편의 블랙박스를 제3국인 프랑스의 항공당국인 BEA에 제출하여 분석했고 그 결과를 기본으로 하여 ICAO 직권으로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31] 007편의 블랙박스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현재와 같은 디지털 메모리가 아닌 오디오 테이프로 녹음되었는데, 오디오 테이프에 소련이 테이프를 덧대 놓아 블랙박스를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했지만 추락 시 충격으로 인해 파손된 부분을 복구한 것뿐이었고 조작은 없었다. 2024년 기밀해제된 3급비밀 외교문서 따르면 블랙박스를 두고 러시아, 미국, 한국 간의 알력 다툼이 있었다.#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007편 격추 사건의 단초가 된 가장 큰 원인은 조종사들의 과실이었다. 007편 조종사들은 이륙 이후부터 격추 시까지 비행기의 항법 옵션을 INS 관성항법유도로 설정하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나침반 모드(통칭 HDG(헤딩) 모드)로 비행했다. 즉 비행기가 통과해야 하는 지점(웨이포인트)을 사전에 입력하고 관성항법장치로 이를 찾아가며 비행하는, 현대적이고 통상 사용되는 운항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횡단할 때 사용했던 원시적인 수단 즉 나침반 방위만 보고 가는 방식 Dead reckoning & Pilotage으로 내내 비행했다는 것이다. 다만 보고서는 어째서 조종사들이 나침 방위각 모드를 INS로 변경하지 않았는지 알아내지는 못했는데, BEA[32]와 ICAO가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눈치를 봐서 알아내고도 모른 척한 것이 아니라 조종사들의 대화에 항법과 관련된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007편을 조종한 천병인 기장은 엘리트 중에서도 초엘리트 조종사였다.(관련 기사) 대한민국 공군 조종 간부후보생 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했고(관련 기사) 졸업 후 임관하자마자 공군 조종소위 계급으로 곡예 비행단인 블루세이버 팀원이 되었으며[33](관련 기사, 사진 자료) 공군 예편 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 부기장까지 했다. 관련 기사

이러한 대한민국 최고의 조종사가 수없이 다닌 항로를 어이없이 이탈하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비행 전 사전 체크에서 항법 모드를 'INS'(관성유도)로 설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 중 기본인데 007편은 이륙 때부터 격추 때까지 INS 모드를 아예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병인 기장이 왜 관성유도항법으로 가지 않고 칠흑같은 북태평양 밤하늘을 원시적인 나침 유도 방법으로 조종했는지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이며 다만 그 이유에 대해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대체로 '좌표 입력에 실수가 있었으며, 이를 재입력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비행 스케줄 지연과 이에 따른 징계를 모면하기 위해 그냥 이륙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가설이 유력히 제기되고 있다. 조종사들은 이륙 전에 관성유도항법을 위해 좌표를 입력하게 되는데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비행기를 정지시킨 다음 INS 스위치를 '스탠바이(대기)' 자리에 놓고 3대의 INS에 각각 출발지 위치를 입력한다. 보통은 부기장과 항공기관사가 입력하고 기장이 점검한다. 그 다음에 스위치를 '얼라인먼트(정렬)' 자리로 돌리고 통과 지점 위치를 입력한다. 그런 뒤 15~30분쯤 기다리면 표시등에 녹색불이 들어온다. 녹색불이 들어오면 INS 스위치를 '내비게이션(비행)' 자리로 돌리고 이륙할 수 있다.

문제는 녹색불이 들어오기 전에 비행기를 움직이거나, 스위치를 '내비게이션(비행)' 자리로 돌리면 입력된 자료가 흐트러져 INS를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실수로 잘못 입력했을 경우 이륙을 하지 않았더라도 수십 분에 걸친 항로 입력 및 정렬 작업을 다시 해야 하며, 이륙했다면 회항하는 수밖에 없다. 회항의 경우 말은 쉬워 보여도 착륙 전에 반드시 정해진 구역에서 착륙 허용 중량에 맞게 연료를 버린 뒤[34] 공항에 정지된 상태에서 좌표를 재입력하고 다시 연료를 급유한 뒤 이륙하는 아주 복잡하고 손실이 많이 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연료비용에 대한 손실뿐 아니라 지연에 따른 연결편 환승 문제 등이 발생하며 당시 대한항공 사내 규정으로는 조종사가 징계를 받게 되어 있었다.

기장은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징계를 피할 수 없는 데다 대통령 전용기장 심사에서 탈락할 수도 있고 대한민국 최고의 파일럿이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한 것을 감추고 싶은 심리였다는 분석이 있다. 관련 내용 또한 당시 대한항공은 공역 허가조차 받지 않고 비행하거나 계기가 고장난 항공기를 운용하는 등의 일이 빈번할 정도로 안전불감증이 극에 달했단 점, 수도 없이 다녔던 항로이기 때문에 쿠릴 열도, 캄차카 반도, 셰미야 섬과 같은 랜드마크를 이용한 나침 방위 비행으로도 충분히 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을 수 있다. 그러나 나침반 방위 비행은 방향만 잡아줄 뿐이지 관성유도항법처럼 잘못된 항로를 자동으로 수정해 주지는 못한다. 즉, 나침반 방위를 정확히 하더라도 해당 항로에는 편서풍으로 인하여 북쪽으로 계속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방위각이 가리키는 각도 수치는 일정하더라도 기장과 부기장은 지면에 고정된 상태가 아니므로 정확한 풍속과 풍향을 모르기 때문에[35] 외부 요인으로 발생하는 오차를 보정할 수 없었던 것. 나침반보다 정교한 자이로콤파스를 갖추더라도[36] 추측항법의 한계를 한밤중의 비행에선 극복하지 못하는 셈이다.

해당 가설을 정리하자면 조종사들은 INS에 좌표를 잘못 입력했거나, 정확히 좌표를 입력했더라도 녹색불(관성유도항법 준비완료)이 들어오기 전에 비행기를 움직였거나 스위치를 잘못 눌러 처음부터 항법장치 세팅을 다시 해야 했다. 정석대로 세팅을 다시 하면 이륙이 20분 정도 지연되고, 도착하면 기장은 지연 사유서를 쓰거나 심하면 징계를 받게 되니 지연을 피하기 위해 수동비행을 강행했다는 것. INS 입력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007편은 이륙 후 좌표의 잘못된 입력으로 인한 급격한 방향전환 등의 이상 징후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

15분 뒤 같은 항로를 뒤따르던 천병인 기장의 공군 선배인 015편 박용만 기장은 007편과의 교신에서도 뭔가 감추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증언했다. 관련 내용 체크포인트 별 도달 시간 보고가 비행계획과 차이가 컸는데, 일반적으로는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이고 추측일 뿐이며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다.[37]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확실한 것은 007편은 관성유도항법으로 가지 않고 자이로콤파스만을 보고 수동비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박용만 기장은 천병인 기장이 수동비행중 소련 섬(코만도르스키예 제도)을 미국 섬(니어 제도의 셰미야 섬과 부근 섬들)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다고 아래와 같이 증언을 하였다.[38]
......중략....
007은 앵커리지 관제센터에 나비(NABIE)를 통과했다는 보고를 하면서 다음 보고점인 니바(NEEVA)의 통과예상 시간을 한국시간 새벽 0시 49분으로 통보했다가 9분 뒤 0시 53분으로 4분 수정, 통보했다. 그러나 007이 나중에 보고한 니바 통과시각은 0시 58분으로 다시 5분이나 늦어졌다. 이 보고를 듣고 놀란 박용만 기장은 부기장을 시켜 늦은 까닭을 물어보게 했던 것이다. "그때 007의 손부기장이 응답을 머뭇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있다가 바람이 세다는 답이 나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손부기장이 천기장에게 뭐라고 대답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던 게 아닌가 추측되거든요." 약 10분뒤 박기장은 천기장을 직접 호출, "왜 늦었느냐"고 물었고, 천기장은 "바람이 많이 분다"고 답했다. "천기장의 대답은 짧고 급하게 끝났습니다. 무엇인가 숨기고 싶고 당황해하는 듯했습니다."

그런 대화가 오가던 바로 그 즈음 소련령 코만돌스키예 섬의 방공 레이다는 처음으로 007을 포착했다. 007의 위치는 R20항로상의 니바가 아니라 니바에서 북쪽으로 약 350km나 떨어진 소련 비행식별구역 안의 베링해 상공이었다. 이탈해도 너무나 벗어난 거리였다. 부산상공을 지나간다면서 실제로는 서울 위를 날고 있는 격이었다. 박용만씨는 말한다. "니바(NEEVA)는 이 항로에서 가장 중요한 체크포인트입니다. 베델(BETHEL)을 지나 캄캄한 망망대해상으로 들어서면 2시간 동안 섬 하나 볼 수 없는 암흑 속을 비행하게 됩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체크할 만한 지표가 없어요. 그러다가 나비(NABIE)를 지나 한 시간쯤 가면 기상 레이다의 왼쪽 끝에 섬 두 개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제(諸) 섬[39]인데 보통 두 개만 잡혀요. 그것이 암흑 속의 등대와도 같은 시미어 섬이죠. 시미어 섬에는 DME-VOR 시설이 있는데 이 전파도 포착됩니다.[40] 시미어가 기상레이다에서 9시 방향 135항공마일(250km)의 위치에 서게 되면 비행기는 정확히 니바를 통과중이란 얘기가 됩니다. DME-VOR, 그리고 레이다 포착, 이렇게 3중으로 비행기의 좌표를 체크하여 정상비행중임을 확인하면 그때부터는 안도합니다. 그런데 007은 북쪽으로 330km나 벗어나 날고 있었으니 시미어 섬이나 DME-VOR 전파가 잡힐 리가 만무하지요. 조종실에선, 이제 레이다에 시미어가 나올 때가 됐는데, DME가 잡힐 때가 됐는데...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10여분 늦게 007의 레이다에 왼쪽으로 섬 두 개가 나타났습니다. 야, 시미어가 저기 있구나, 이제 살았다,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007의 항적을 보면 정상 비행의 경우 시미어 섬이 레이다에 나타날 때와 엇비슷한 시각에 007의 기상레이다에서도 두 섬이 나타났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두 섬은 소련령 코만돌스키예였다. 그 섬의 방향과 거리는 R-20항로상에서 시미어 섬을 포착할 때와 흡사했다. 섬의 모습도 거의 같았다. 다 같이 두 개로 보이고 모양과 크기, 두 섬의 배열도 흡사했다. 레이다만 보면 누구나 코만돌스키예를 시미어로 오인하게 되어 있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007 조종사들은 곧 다시 불안해졌을 겁니다. 틀림없이 시미어인데 가까이 다가가도 DME-VOR 전파가 안 잡힌단 말입니다. 이상한데, 이상한데, 라고 생각했겠지요. 수신장치가 고장인가, 아니면 시미어의 시설이 고장인가, 그렇게도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DME-VOR이 안 잡혀도 레이다상의 두 섬이 시미어란 믿음은 바꾸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이 코만돌스키예라고 생각하기는, 또 007이 북쪽으로 300km 이상 빗나가서 날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도저히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믿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상황을 유리한 쪽으로, 즉 합리화 하는 쪽으로 해석해버렸을 겁니다. 저 두 섬은 시미어가 틀림없다. 다만 항법보조시설에 고장이 난 모양이구나..."[41] 007이 그 두 섬을 소련령 코만돌스키예라고 판단했다면 항로를 급히 남쪽으로 꺾었을 것이다. 항적을 보면 007은 코만돌스키예를 레이다로 포착한 무렵부터 완만하게 좌선회를 한다. 그리하여 이 섬이 9시 방향으로 약 135항공마일(250km)의 거리에 놓이도록 항로를 잡는다. 즉, 니바의 위치(실제로는 니바라고 착각한 위치)로 비행기를 갖다 놓은 것이다. 항적을 보면 천기장은 코만돌스키예를 시미어로 확신하고 그것을 기준점으로 하여 북쪽으로 기울어진 007의 항로를 남쪽으로 조정했다고 박용만씨는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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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장은 정확하게 니바를 통과하고 있다고 판단한 직후 좌선회를 멈추고 다시 약 246도 방향으로 자신있게 직진한다. 007이 니바를 통과하고 있다고 보고한 시간이 예상 시간보다 9분이나 늦어진 것은 코만돌스키예를 시미어로 오인했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박용만 씨는 말한다. "천기장은 바람 때문에 늦어졌다고 했으나 그때 보고한 바람으로는 그렇게 늦어질 수가 없었어요. 천기장이 니바를 통과하고 있다고 판단한 시각은 실제론 10분이상 늦어진 시각이었을 겁니다. 거리관계로도 그렇고, 선회 때문에, 또는 시미어 섬을 찾는다고 비행 시간이 더 걸린 거지요. 그러나 10분 이상 늦어지면 비행계획 전체를 수정보고해야 하는 등 귀찮아지니까 9분 늦은 것으로 한 게 아닐까요. 어쨌든 코만돌스키예섬 부근에서의 007항로 변경을 보면 그땐 INS를 작동시키지 않았음이 더욱 명백해지고 조종사들이 그때까지 이상상태를 의식하면서 비행하고 있었음도 확실합니다." ......중략.......

007은 코만돌스키예 북쪽을 지나서는 주저없이, 군사시설이 집중된 캄챠카반도 위를 횡단했다. 기상 레이다에 캄챠카의 해안선이 나왔을 터인데 차마 그럴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박용만씨는 "왜 캄챠카로 들어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면서 이런 생각을 피력했다. "코만돌스키예를 시미어로 믿어버린 다음에는 이와 배치된 증거가 나타나도 묵살해버린 것이 아닐까요. 또는 구름이 많이 끼었거나 레이다 상태가 좋지 않았을지도..." 소련측 자료에 따르면 그때 캄챠카 상공에는 권운과 안개가 여러겹 덮여 있었다고 한다. 운량은 하늘의 반을 덮을 정도였다. 이 정도에서 레이다에 나타난 육지와 구름을 혼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어느 고참 기장은 무르만스크 사고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황하면 바다를 하늘로 착각, 소형기일 경우엔 뒤집힌 상태에서 비행하는 수도 있어요. 무르만스크에선 707기가 거의 U턴하여 거꾸로 날았어요. 왼쪽으로 보이던 태양이 오른쪽으로 보이는데도 항법사는 제대로 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김창규 기장이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해도 항법사는 맞게 간다고 우겼다고 해요. 정상 항로에서 약간 이탈하면 눈에 익은 지표물을 근거로 쉽게 알아챌 수 있는데 터무니 없이 벗어나 전혀 생소한 곳을 날고 있을 때는 어떻게 벗어났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고 그러니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헤엄치다가 쥐가 난 것처럼 말입니다."

대부분의 항공사고는 그 원인이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예컨대 지난 83년 12월 23일에 앵커리지 공항에서 일어났던 대한항공 DC-10기의 활주로 사고가 좋은 예다. 안개 속에서 DC-10 기장은 유도로를 따라 엉뚱한 활주로의 중간에 들어와 이륙을 위해 활주하다가 맞은 편에서 대기중이던 경비행기를 들이받았던 것이다. 320도 방향으로 달려야할 비행기가 240도 방향으로 달렸는데 세 승무원 중 어느 누구도 눈앞의 나침반이 240도를 가리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캄챠카 반도에 접어들 무렵 007은 '이륙후 3시간 22분'이란 반환점도 지나버렸다. 이 반환점 이전에 중대한 사고가 생기면 앵커리지로 돌아가고, 반환점을 지나서 중대사태가 발생하면 도쿄로 가게 되어 있다. 007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007의 천기장이 캄챠카 위를 지나는 것을 알았는지는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비행기가 육지 위로 날아가면 기상 레이다는 반사파로 부옇게 되어 지형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무르만스크 사고때도 707기는 레이다를 갖고 있었으나 육지 위를 날면서도 바다위로 날아가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정상상태에선 생길 수 없는 일이 공황상태에선 생길 수 있다. 더구나 레이다는 손바닥만한 크기다. 지도를 보듯 할 수는 없다...... 이하생략

소련이 넘겨준 블랙박스 기록된 007편과 015편과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앞에 일부 실제 음성 동영상 참조) 박용만 기장은 니바(NEEVA, 셰미야섬 부근) 지점에서의 대화가 마지막이라고 증언했으나, 실제로는 노카(NOKKA, 홋카이도 부근) 지점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에서 풍향과 풍속차이가 심한데 이는 동일 항로를 근접비행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니바(NEEVA)지점을 정확히 통과했다는 잘못된 확신으로 항로이탈이라는 사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KAL015: 007편.
KAL007: 말씀하세요.
KAL015: 뭐 해?
KAL007: 뭐라고?
KAL015: 뭐 하냐구...
KAL007: 뭘 하긴 뭘... 재밌는 얘기하고 있지. 김선생(김의동 항공기관사)께서 재미있는 이야기하기 때문에...
KAL015: 허허... 글쎄... 서울 도착 후 자네가 전부 공부하는 게 낫겠네.
KAL007: 공부? 뭘? 다 그만둬..다 아는걸 가지구. 저 이제 가을인데 말이야, 하루 쉬어가지고 단풍구경이나 갔으면 좋겠어요.
KAL015: (계획을) 짜요. 짜요.
KAL007: 설악산 단풍 구경이나 한번 가요.
KAL015: 우리보다 한 저 3분 이른가?
KAL007: 네? 아...아...예정된 노카(NOKKA) 도착 계산치를 말하는 건가? 182...25 (18시 25분). 듣고 있는가?
KAL015: 아. 25(분). 우린 1829이면 어때? (18시 29분 도착이면 어때?) 1829.
KAL007: 1, 1분 이거든 (1분 늦네). 4분 빠르네요. 25 (분)가 될꺼야. 그건 세관인데... (도착 후 승객들이 세관을 통과하기가) 어려울 텐데... 빨리 올라가면 빨리 내려오고 늦게 올라려면 늦게 내려오게 마련이지... 말하자면 복잡해진다니까... 자 이제 그만.
KAL015: 난... 이거 갑자기 바람이 배풍이 많이 부는데... 그쪽은 얼마나 왔어? 풍속과 방향은?
KAL007: 206, 몇 노트인지 물어 볼까?
KAL015: 35노트.
KAL007: 저기 방향이 어떻게 되었지? 저 몇 도 방향에...[42]
KAL015: 040, 040.
KAL007: 30도요? 30노트(55.6km/h)요?
KAL015: 한 30도에서 40도 방향에 아... 아 35노트(64.8km/h).
KAL007: 그래서? 아! 많이 부는데. 그런데 우리는 여태까지... 평소와 같이 정풍, 정풍이 아... 방향215, 15노트(27.8km/h).
KAL015: 그래서? 그런데 여기는 저 비행계획에 나온 거 이렇게 본다면 어... 방향 360, 15노트가 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KAL007: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네.

KAL007: (015편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KAL007: 우리보다 앞서 있나요?
KAL007: (015편이) 빨리 가게 해야겠어. 015편 노카(NOKKA)지점 통과가 우리와 똑같이 29분이야. 빨리 가게 해야겠어.
KAL007: (015편이) 왜 이리 서두르죠?
KAL007: 배풍이 분다고 하네.
KAL007: 뭐라고요?
KAL007: 배풍이 35노트라고 하네.
KAL007: 어, 어...(이상한데)[43]

KAL015: 007편.
KAL007: 말씀하세요.
KAL015: 올라갈 수 있어? 350으로(10668m).[44]
KAL007: 올라갈 수 있어..
KAL015: 오케이. 우리가 370을(11278m) 요청할게.
KAL007: 오케이.

6. 영향

6.1. 대한민국의 반응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fff><tablebgcolor=transparent>
1983년 9월 2일 대한뉴스 제1452호 -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참사
1983년 9월 9일 대한뉴스 제1453호 -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참사 특보

비무장 민항기, 그것도 당시 초대형인 데다 매우 많은 승객을 태운 보잉 747 민항기가 전투기에 눈에 띄는 경고도 없이 요격당하고 모든 탑승객과 승무원이 살해당하는 초유의 사건(당시 항공사고 순위 5위)이 발생한 것에 전세계가 경악했다. 소련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미국 공군의 정찰기가 아닌 민항기를, 그것도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한 자유진영 국가의 민항기를 격추해 269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류품과 블랙박스는 소련 당국에 의해 회수되어 소련 붕괴 후 한국과의 외교 관계가 수립될 때까지 극비리에 보관되었다.
사건 당일 김포공항 사고대책본부에 있는 유가족들

9월 1일 오전까지는 사할린에서의 강제착륙 건과 같은 뉴스가 보도되며 1978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과 비교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나 11시 55분에 소련 전투기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은 KAL기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뉴스가 송출되며 전국은 아수라장이 된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발생 지역이 소련 영공이었던 점, 미국과 일본의 비행정보구역에서 일어난 사고였다는 점에서 도저히 대처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미국과 일본 등의 우방국에서 전달해 준 정보를 바탕으로 대한항공기가 소련 방공망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윽고 이진희 문공부장관이 '제3국'에 의해 대한항공기가 격추당한 것이 확실하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어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 후 전두환 대통령은 9월 2일에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83년 9월 1일, 대한항공 소속 보잉 747 여객기가 소련기의 공격을 받아 격추됨으로써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한 충격적인 참사에 접하고, 본인은 온 국민과 전세계 평화애호국민과 더불어 비통함과 분노를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민간항공의 안전은 어떠한 상황 아래에서도 보호되어야 함이 인도주의와 국제법의 대원칙이며, 소련은 우리 나라와 함께 세계민간항공기구의 회원국으로서 민간항공기의 안전운항을 위하여 모든 협조와 노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등의 적대행위도 하지 않고 비무장한 민간항공기에 대하여 무력공격을 가해 269명의 고귀한 인명을 앗아간 것은 천인공노할 잔인무도한 만행으로서,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인의 규탄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세계항공사상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최악의 이번 사건은 무절제한 어떤 강대국이 가공할 최신무기인 미사일을,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의 민간여객기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이 아니냐는 세계인의 준엄한 비판을 받더라도 소련은 그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경악과 분노 속에서도 이 민간여객기가 만일 강대국 소속 여객기였다면 소련이 감히 이같은 만행을 저질렀을까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국력을 더욱 알차게 키워 나갈 결의를 굳게 다짐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45]

본인은 소련 당국이 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여 전세계에 명백히 밝히고 사과하는 등 민항기에 대한 공격 격추에 따른 모든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음을 엄중하게 밝혀두는 바입니다.

우리 정부는 현재 이 사건에 따른 사후대책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우방국과 국제기구를 통하여 필요한 모든 외교적 조치를 강구하고 있읍니다.

본인은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승객과 승무원들의 명복을 비는 동시에 그들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외국인에 대하여는 그 국민과 정부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아울러 표하는 바입니다.
대한항공여객기 피격사건에 관한 특별담화
9월 7일 오전 10시 추모 사이렌을 울린 모습

9월 7일에 합동위령제가 서울운동장 주경기장[46]에서 진행되었다. 위령제에는 10만 인파가 운집했고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와 함께 각 부처 장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날 희생자유가족대표로 연단에 섰던 007기 교대조 부기장 김희철 씨의 장녀 김수지 양[47]이 고별사를 낭독한 것은 그날 언론 톱으로 다뤄졌다. 당시 김수지 양은 "소련놈들아, 우리 아버지를 살려내라!"라며 격양된 어조로 고별사를 낭독했다. 합동위령제는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주요 외신들도 취재를 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사였다. 당시에도 대통령 특별담화가 있었다.
어떠한 비극과 재난, 그리고 어떠한 폭력에서도 해방되는 최후의 비결은 튼튼한 힘을 기르는 국민 여러분. 평화로운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슬픔과 분로로 뒤덮여 있는 가운데 우리는 오늘 소련의 야만적 범죄행위로 유명을 달리한 열여섯 나라 269위의 영령 앞에 엄숙히 고개숙여 그 영혼을 위로하고 눈물로 애도하고 있읍니다. 특히 범죄자측의 음험한 방해로 인하여 시신을 거두기는커녕 한조각의 유품조차 없이, 고혼을 대해야 하는 우리의 통분과 단장의 비애는 필설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읍니다. 본인은 비탄과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애통해하는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이제는 불러도 말이 없고, 찾아도 그 모습을 대할 길 없는 영령들 앞에 삼가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아무런 방비가 없는 민간여객기를 미사일로 공격하여 격추시킨 것은 문명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명에 대한 반역이며, 야만적인 폭력인 것입니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그리고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읍니다. 그리고 국가간의 문제해결을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려는 전쟁에서도 선전포고라는 절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최소한의 양심은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최신과학기술을 자랑하는 강대국이 비무장여객기를 아무런 경고도 없이 뒤에서 미사일로 격추한 반이성과 반문명의 극치를 보았읍니다.

우리는 6,25라는 선전포고 없는 전쟁에 이어 사전경고 없는 민간항공기 격추라는 참극을 다시 경험하면서 솟구치는 전율을 금할 수 없읍니다. 특히 우리를 더욱 격분하게 하는 것은 사태의 전적인 책임이 있는 소련당국이 전세계가 분노로 지켜보고 있는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 전혀 해명을 함이 없이 오히려 허언과 궤변으로써 책임전가에 급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대한민국 전국민의 끓어오르는 분노의 절규와 전세계 평화애호국민들의 양심의 소리를 대변하여, 소련당국에 대해 진상해명을 비롯한 제반 책임을 전적으로 질 것을 엄중하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진실은 어떻게든 밝혀지기 마련이며, 그것의 해명을 천연시키거나 회피하는 것은 반도덕성을 배가시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소련당국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피격기의 항로에 관한 비행정보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관계국들의 자료는 소련기가 민항기 로 확인된 KAL기에 대하여 하등의 사전경고도 없이 미사일공격을 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읍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들은 우리의 민간항공기가 첩보활동을 하기 위해 영공을 침범했으며 영공침범에는 징벌을 할 수 있다는 억지를 쓰고 있읍니다. 70세의 노인과 4살난 어린 승객이 첩보활동을 위해 민간여객기를 타고 영공을 침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소련당국자를 빼고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민간항공기의 안전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법의 대원칙인 것입니다. 그것은 법을 따지기 전에 각자가 하나의 목숨밖에 갖고 있지 않은 인간세계의 기본 양심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우리의 영공을 침범한 중공여객기를 무사히 유도착륙시켜 그 승객을 안전하게 보살펴준 사실을 기억하고 있읍니다. 본인은 다시 한번 소련당국에 대하여 요구합니다. 소련은 더 이상의 농간을 버리고 전세계 인류 앞에 진상을 명백히 밝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적인 양민학살에 대하여 인류의 양심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에 공개 사과하고 피해배상과 범인의 처단, 그리고 재발방지책을 보장하는 등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정부는 모든 평화애호국가와의 긴밀한 협조 아래 적절한 대책을 세워 나감으로써 이러한 노력을 줄기차게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은 소련의 행위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절대 합리화 될 수 없다고 밝힌 「레이건」 미국대통령의 6일자 연설에 동감하면서 이를 지지하는 바입니다. 이와 아울러 우선 당장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과 기타 관계 당사국의 유해 및 유품수색활동을 방해하지 말고 또 수색된 시신과 유품은 즉각 인수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잃은 부모가 사할린 근해 공해상에서 “아가야 얼마나 춥겠니,” 라면서 차가운 바다 위로 쉐터를 던지는 모습은 같은 인류라면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는 애절한 정경인 것입니다. 슬픔에 젖은 우리의 유가족들은 유해를 거두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못함으로써 그 슬픔을 더욱 절절하게 하고 있읍니다. 소련이 인간이 사는 나라이고 소련당국자가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면 우리의 이러한 요구를 외면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이 모든 요구를 다 이행한다고 해도 고인의 목숨이 되살아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함으로써 뒤늦게나마 한을 품고간 혼령의 눈을 감게 해 줄 수 있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읍니다.

전세계의 평화수호 국민 여러분. 우리는 반이성과 반문명의 폭력을 서슴없이 휘두르고도 조금도 회개하지 않는 부류가 우리와 함께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분명 서글픈 현상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임을 우리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겠읍니다. 따라서 세계인 모두는 재천의 영령들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읍니다. 그리고 그 경고에 부응하는 일에 뜻을 모으지 않으면 안되겠읍니다. 그것은 인간성의 위기와 문명의 위기에 대한 경고이며, 평화와 안전에 대한 간절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영원한 평화와 완전한 안전을 하늘에서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도발을 저지른 위에 사실의 호도를 통하여 이중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소련당국에 대하여 평화애호 국민 모두는 힘을 합쳐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영령들이 남긴 뜻을 실현하는 데 어떤 세계인보다 앞장서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서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새겨야 하겠읍니다. 폭력과 불의에 투쟁할 줄 모르는 민족은 생명이 없는 민족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극한 슬픔과 분함을 한때만 터뜨리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를 망각해 버리는 것은 저력있는 현명한 국민의 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흘려 보내는 것은 인간의 미덕일 수는 있어도 역사와 민족의 미덕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극을 비극으로 끝나게 하지 않고 그것을 채찍으로 삼아서 더욱 분발하는 것이야말로 비극을 종국적으로 이기는 슬기로운 자세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 자신의 모습과 우리의 위치를 직시하고 여기에서 우리의 할 바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의를 응징하는 힘은 자탄과 패배의식이 아니라 불의와 맞부딪쳐서 이를 기어이 꺾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실천력에 의하여 길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을 길러 우리의 영공을 우리의 힘으로 지키고 우리 항공기의 안전을 우리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하겠읍니다.[48] 어떠한 비극과 재난, 그리고 어떠한 폭력에서도 해방되는 최후의 비결은 튼튼한 힘을 기르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민족의 자존과 국민의 안녕이 보장되는 튼튼한 나라, 힘있는 나라를 기필코 건설하지 않으면 안되겠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은 지금의 위치에서 두배 세배의 땀을 흘리고, 우리의 청소년들은 배움을 더욱 익혀 민족사의 건강한 주역이 되어야 하겠읍니다. 이 일에는 지도층과 일반의 구별이나, 남녀노소의 구별이 있을 수 없읍니다. 오직 와신상담, 우리를 괴롭히는 그 어떤 세력도 끝까지 쫓아가 추월하는 대열에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하겠읍니다. 지금은 바로 그길로 올라서는 고비인 것입니다. 이 고비에서 온 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쳐 일어선다면 우리는 반드시 「힘있는 나라」, 「힘있는 국민」의 영광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은 오늘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사할린 근해 어느 곳에서 또 다시 한을 품고 가신 영령들 앞에서 국민 모두와 함께 국운개척의 역사에 신명을 바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고인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고 유가족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위로와 애도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한항공여객기 피격희생자 합동위령제 거행에 즈음한 특별담화

당시 소련과 대한민국은 외교관계가 없었지만 소련이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접촉은 해 오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소 외교 접촉이 수개월간 중단되었으며 전두환 정부는 타슈켄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유네스코 회의와 키이우에서 열릴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를 보이콧하였다. 또 모스크바에서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있었는데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 불참했다. 하지만 소련 측이 희생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오는 와중에 88 올림픽을 앞두고 동구권과 척을 질 수는 없었으므로 1984년 10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IPU 70차 총회에서 소련 대표단의 입국을 거절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1984년 8월 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지질도편찬위원회 회의에 대한민국 대표의 참석을 소련이 승인하면서 비공식적 접촉도 재개되었고 결정적으로 1985년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개혁파인 고르바초프가 임명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소련과 공산권의 올림픽 참여를 설득하기 위해 대소 유화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소련 비난을 중단했다. 1985년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유도[49], 양궁 세계선수권대회와 복싱 월드컵에 소련이 참여했고 한소관계는 급격하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소련도 1986년 4월에 소련 국가스포츠위원장 마라트 그라모프를 서울에서 열린 세계올림픽연합회 총회에 참석시켰으며 사할린 한인의 대한민국 귀환 문제도 검토해 보겠다고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

이 사건 이후 대한항공은 사고기의 편명인 007편을 영구 결번했다. 대한항공의 뉴욕행 노선에서 007편이라는 편명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후속편명은 KE025/026편을 거쳐 1990년대 후반부터는 KE081/082로 변경되었다. 한편 뉴욕노선의 또 다른 편명도 이 사건 때문에 007대신 KE027/028을 사용했다가 KE081/082편으로 변경된 시기에 바뀐 편명이 KE085/086이다.

사고 이후 대한항공은 보잉사와 협력하여 1969년 민영화 이후부터 15년간 사용되어 오던 고니 로고를 대체할 새로운 태극 로고와 하늘색 도색을 개발하여 1984년 3월 1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새로운 도색으로(2025년 이전 대한항공 구도색) 처음 도입된 747기는 대한항공이 1984년에 운용을 시작한 보잉 747-3B5 버전인 HL7468이었는데 13년 뒤 또 다른 비극을 겪는다.

1984년에 이 사건으로 인해 시카고 협약이 개정되면서 민항기를 격추했을 경우 사유가 영공을 침범한 것이거나 정해진 항로를 이탈한 것에 의한 행위였더라도 반드시 당사국이 책임을 져야만 하게 되었다.

6.2. 미국의 대응

007편의 격추 사건이 벌어진 이후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한참 8번째 NAVSTAR GPS 위성을 만들어 올리려고 준비 중[50]이었던 미 국방부와 해군에선 (당시의 로드맵상으로도) 1990년대 초반에 완성될 예정이었던 GPS를 민간에게도 고작 100m 정도의 측위오차만을 발생하게끔 에러를 섞어서 제공될 것임을 공표하였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서방 국가에서 민항기 항법용으로 널리 채용된 INS에 GPS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더욱 완성된 형태의 항법 체계를 가능하게 했으며 냉전이 종식된 후 서방제 장비는 러시아제 민항기에도 널리 채용된다. 각 항공전자장비 제조사들은 CIVA INS보다 편안하게 항로를 비행 중에도 실시간으로 작성, 수정, 관리할 수 있는 FMC와 MCDU를 개발해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은 엉뚱하게도 레이건에게 엄청난 행운으로 작용했는데 레이건이 자신의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강조한 바 있는 국가 안보상의 위기가 현실로 입증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있었던 미국 국무부의 언론플레이와 진실의 시시비비를 가려보면 다음과 같다.
  • 소련 전투기 조종사 오시포비치가 환한 달빛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해당 비행기가 민항기임을 분명히 시인할 수 있었다.
    거짓 - 당시는 음력 7월 24일로 하현이었다.

    달빛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오시포비치는 007편을 보았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과장이었다. 대한항공이 격추당한 시간은 대한항공의 착륙 전 2차 기내식 서비스 시간이었다. 즉 불을 다 켰으며, 대한항공이 고도를 상승하면서 속도가 느려지자 전투기는 대한항공기 옆으로 왔고 훗날 인터뷰에서 오시포비치는 보잉 747 특유의 두 줄의 불빛[51]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두 열의 창문을 보았고 보잉기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민간 여객기였다는 것을 알았죠. 그러나 이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군사용을 민간 여객기처럼 바꾸기는 쉬운 일이니까요.



  • 소련 전투기가 KAL기 격추 전에 전혀 경고를 하지 않고 바로 격추했다.
    불명 - 조종사 오시포비치는 몇 차례의 경고사격을 행하고 반응이 없자(혹은 회피행동을 하자)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신기록에는 경고사격에 대한 언급이 전무한 채로 미사일 조준[52]부터 했으며, 교신을 안 했을 뿐 실제로 경고사격을 했다고 하더라도 야간에 예광탄을 장전하지 않은 채로 경고사격을 해 봤자 민항기 조종사가 그걸 알아차릴 리는 전혀 없고, 경고사격 후 고도를 올리고 속도를 늦춘 것도 회피행동이 아니라 단순히 우연이 겹쳐 발생한 일이었다. 즉 경고가 전혀 상대방에게 인식되지 않았으므로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은 맞다.

사실대로 논리정연하게 말했다면 후일 고개 숙일 일은 없었겠지만 냉전 시대의 복잡한 배경사정이 국무부의 이런 언론플레이를 불러온 것일 것이다.

한편, 레이건은 KAL기가 격추당한 몇 시간 뒤 조지 슐츠 국무장관 등 레이건의 각료와 보좌관들은 이 사건을 퍼싱 미사일(MGM-31)의 유럽 배치에 대한 국내외의 반대를 누를 수 있는 정치선전용으로 거론하고자 했다. 사건이 일어난지 단 4일만인 9월 5일에 16분의 담화 영상을 발표하여, 이 사건을 '소련의 대량학살'이라고 규정하고 그런 야만적 행위는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공격일뿐더러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에 대한 공격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소련에 대한 세계 각국의 국제적 제재 동참을 독려하고, 미 의회에 소련과의 안보 경쟁을 위한 여러 조치와 군비 증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미국 언론들은 소련의 행위를 규탄했다. 특히 <올랜도 센티널>은 '소련의 편집광적 행위', <뉴욕 포스트>는 '모스크바의 피 묻은 손'이란 기사 제목을 달았으며 <시카고 트리뷴>에서는 KAL기 격추를 '미리 계획된 살인행위', 뉴욕 타임즈는 '냉혈한 적 학살행위' 등의 제하를 달아 보도했다. 우주 유영 중이던 우주비행사들도 TV를 통해 소련 비난성명에 가담했고 전미에 반소감정이 확산되었는데 뉴욕의 UN 본부에선 소련기 화형식이 열리는가 하면 소련제 보드카 불매운동과 판금령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소련의 안드로포프를 암살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오락까지 등장했다.[53]

KAL기 격추사건은 대소 선전전에서 레이건에게 '열광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KAL기 격추 이전 MX 미사일과 '빅 아이'라고 불린 독가스 무기 생산에 대해서 미 의회는 아주 부정적으로 대했지만 해당 사건은 미국 의회의 반대를 무력화시킬 뿐더러 핵무기 감축에도 제동이 걸렸다.

레이건은 KAL기 격추사건을 이용해 미 의회로부터 거의 모든 것을 다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 의회는 MX 미사일 48억 달러, 퍼싱-2 미사일 4억 3,000만 달러, 레이저 무기 연구개발 자금 3억 4,000만 달러, 화학무기 1억 4,460만 달러를 포함한 총 1,875억 달러의 국방예산 자금을 통과시켰고 반군 게릴라 지원에 골몰했던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는 KAL기 격추사건을 이용해 2천 4백만 달러의 콘트라 지원금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레이건은 이 사건을 이용해 미국 해병대 1,600여 명의 레바논 파견도 의회로부터 승인을 얻어냈다.

그리고 미국의 소리, 라디오 프리 유럽, 라디오 리버티 등 대소선전방송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던 레이건은 1983년 9월 의회 연설에서 "진실만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류 최대의 희망"임을 강조해 소련인에게 진실을 알릴 명분으로 미국의 대소방송예산을 대폭 늘리도록 요청하여 의회도 순순히 대소방송의 설비확장을 위해 13억 달러를 확충시켰다.

미국 언론도 KAL기 격추 사건이 레이건에게 커다란 정치적 승리를 안겨 주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역시 KAL기 격추 사건이 레이건 행정부의 니카라과 정책에 대한 반대를 무력화해 서독, 영국, 이탈리아 등에 미국 핵무기 배치를 용이하게 해 주었다고 보도했다. <시카고 트리뷴>도 KAL기 격추 사건이 레이건에게 정치적 보너스이자 정치 선전의 승리라고 평했고, 레이건의 한 보좌관은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소련의 KAL기 격추가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시인했고 <월스트리트 저널>도 KAL기 격추로 정치적 이득을 보았으며 미국의 핵미사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고 평했다.

반면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 5주만인 1983년 10월 7일 뉴욕 타임즈에서는 1면에 미국 정보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소련이 KAL기 격추 당시 민간 항공기인지 몰랐다고 처음으로 대서특필했으나 레이건의 정보통제 정책으로 미국의 유력 언론들도 그 이상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워싱턴 포스트 10월 21일자에선 "KAL기 격추사건에 대해 양심적으로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레이건 행정부 안에는 없다는 말인가?"라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

한편, 007편의 유족들은 1993년 ICAO의 최종조사보고서가 나온 뒤 조종사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항공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헤이그 협약에 따라 정해진 손해배상채권 시효 2년이 지나 소송에 패소했으며 007편 사고 직후 아직 조종사 과실여부가 불분명한 시점에서 대한항공과 유족간 인당 10만 달러를 보상하는 대신 이후 발생하는 민형법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 패소에 큰 영향을 줬다. 1992년 LA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는 007편의 사고 원인이 승무원의 조종 실수라는 판결을 해 한 유가족이 1,0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받는 등 11명의 희생자 가족이 모두 2,100만 달러를 배상받았다.

6.3. 소련의 대응

당시 소련의 중앙정계는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사후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승계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하필 안드로포프의 건강이 매우 나빴기 때문이다.[54] 게다가 사건 당시 소련 최고 수뇌부에 접수된 최초 보고의 내용이 사실과 심각하게 동떨어져 있었던 바, 소련 정부의 초기 대응은 지리멸렬한 수준을 보였다.

안드로포프는 자택에서 아침 일찍 미국 군용기가 사할린 남부에서 격추됐다는 1차 보고를 받았다. KGB 의장으로 오래 근무하면서 첩보기 격추는 시인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하게 시신만 돌려보내는 것이 관행임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안드로포프는 사안의 심각성을 크게 오판, 평소 정찰기를 격추시켰을 때 하던 대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미국과 일본에서 사건에 대해 질의하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아는 바가 없다고 발뺌하였다. 프라우다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기가 캄차카 반도에 들어오자 소련 방공군들이 비행기를 착륙을 유도했으나 비행기가 무시했다는 짤막한 기사만을 송고하고 비행기가 격추되었다는 것과 수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했다는 것은 보도하지 않았다.

9월 1일, 안드로포프가 생애 마지막으로 주재한 정치국 회의가 소집되었는데 그날 제기된 안건은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소집, 최고회의 회기 결정, 컬러 텔레비전 모델 선정, 노동 생산성 제고 문제, 이집트와의 무역, 아프가니스탄 무역 등등이었으며 안드로포프는 첩보기를 격추했다는 잘못된 보고만을 받았다. 안드로포프가 막 회의를 시작하려는 순간 국방장관 드미트리 우스티노프가 남한 여객기가 추락했다고 보고하였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크림반도로 가서 요양을 계획하고 있던 안드로포프는 우스티노프에게 조사할 것을 지시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냉전 시대에 있었던 흔한 정찰기 추락 사건 정도로 여겼으며 그러다 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은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는데 국제사회가 들끓었고 미국이 증거를 제시했다. 미국 측은 KE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을 소련군 교신을 감청하여 알고 있었음에도 처음에는 침묵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소련이 계속 격추 사실을 부인하자 감청된 녹음을 공개하였다. 소련 측은 이를 통해 자국의 군사 통신망이 미국에 의해 감청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 군 교신용 주파수를 모조리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미국은 감청을 통한 소련군의 정보수집에 난항을 겪었다.

홋카이도에 있는 일본의 항공자위대 소속 왓카나이 감청기지에서도 소련 전투기와 지상 관제사 간의 대화를 듣고 있었으며 소련이 계속 변명을 하자 한국인 105명, 미국인 62명을 뒤로 28명의 탑승객이 희생되어 세번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일본 측이 감청사실을 폭로해[55] UN에 자료를 자세히 제시해 준 덕분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일본의 폭로 이후 소련은 왓카나이 기지가 감청하던 군기지들의 무선교신 주파수들을 전부 다 바꿔 버려 한동안 일본 역시 캄차카 지역에 대한 도감청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안드로포프는 크림반도에서 요양하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보고받았다. 사건의 여파는 심각했는데 서방뿐만 아니라 동유럽에서조차 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에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안드로포프는 국방부, KGB, 외무부로부터 사건의 실상을 보고받았다. 안드로포프는 먼저 체르넨코에게 정치국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고 현재의 태도를 유지하며 어떻게 소련에 대한 제재에 대처할지 준비하라는 노선을 결정지으라고 지시했다. 체르넨코는 여기에 대해 절대적인 동의를 표하며 9월 2일 자신의 주재 하에 긴급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였다.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들은 모두 철두철미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답게 비행기 격추는 정당했으며 미국의 반발은 대 소련 적대시 정책이라고 폄하하였다. 그 어떠한 유감이나 애도도 없었고 오로지 어떻게 격추를 정당화할 것인지만이 논의되었다. 심지어 농업서기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조차 비행기 격추는 적법했으며 공세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원수는 미국의 계획된 도발행위를 의심했다. 다만 외무장관으로 오래 재임했던 안드레이 그로미코만이 약간의 국제 감각을 발휘하였다.
사회주의 형제국들과 그 밖의 몇몇 정부에는 통보를 해야 합니다. 미국인들에 대해서는 고식적이고 확고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타스통신이 희생자들이 발생한 데 대해서 유감을 표시한 것은 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체르넨코는 의견 일치에 대한 만족을 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치국 결의를 통과시켰다.
  1. 남한 비행기가 8월 31일 소련 영공을 침범한 것과 관련한 문제의 해결책을 승인한다. 침범행위는 제국주의 세력의 고의적 첩보활동에 의해서 유발된 것이다. 이것은 소련의 평화적 주도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음모이다.
  2. 중앙위원회 각과들에 대해 선전, 선동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공격적인 노선을 취하도록 위임할 것이다.

이에 따라 9월 2일부터 소련 언론은 일제히 소련 정치국의 결의에 따라 정신승리성 보도를 시전하기 시작했고 9월 7일에야 소련 정부는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첩보 임무를 수행하던 비행기가 격추되었다고 밝혔다. 그로미코의 쿠바와 뉴욕 방문 일정도 전격 취소되었다. 블랙박스는 신속하게 인양되었지만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형식적인 수색작업이 계속되었다.

대한항공 007기를 격추시킨 Su-15의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방공군 대령은 007기가 민항기인 줄 몰랐으며 창문 사이로 어떠한 인적도 발견할 수 없었고 기체에 대한항공 마크가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이후 거짓임이 밝혀졌다.

그 거짓은 소련 붕괴 이후 007편을 격추한 전투기 조종사인 오시포비치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밝혀졌는데, 인터뷰 내용 중에는 '민항기인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데 아무 죄책감도 없었나?'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오시포비치는 당시 007편 꼬리날개에서 민항기 항법 등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찰기인 줄 알고 과감하게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에선 일반 여객기에 여러 가지 장비들을 달아 군용 정찰기로 써먹기도 했고 정찰기들을 민항기로 위장시키는 페이크를 자꾸 쳐 온 터라 격추 당시에는 민항기인 증거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나마나 또 민항기로 위장한 미군 정찰기겠지'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발사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때마침 소련 정보부로부터 '해당 지역에 민항기로 위장한 미군 정찰기들이 자꾸 정찰 중인 첩보를 입수했으니 그 지역 방공부대들은 제대로 정신줄 잡고, 걸리는 비행기들은 전부 조치해도 되오.' 라고 지시를 받은 터라 확신을 가지고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이후 사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본인이 일을 저질러놓은 비행기가 알고 보니 민항기로 위장한 군용기가 아니라 진짜 민항기였음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오시포비치는 "제가 일을 저지른 대상이 대한항공기였다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용서를 빌겠습니다" 로 사과했다고 한다. 가정형 사과라는 점에서 본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색이 역력하나, 의도적으로 격추한 비행기가 민항기였다는 진실을 인정했다간 죄책감이 상당할 테니 현실 도피를 하는 것도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관련 자료

6.4.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진 사례

고바우 영감은 사건 직후부터 참사를 다룬 연작 만화를 연재했는데 9월 2일자 8884호에는 불곰이 KAL기를 뜯어먹는 장면을 그렸으며 9월 3일자 8885호에는 사할린섬이 한국을 향한 칼날로 변하는 만화를 그렸다. 9월 4일자 8886호에는 안드로포프의 초상화를 축구공에 새겨 걷어차는 만화를 그렸으며, 9월 6일자 8887호에는 자꾸 책임을 회피하는 크렘린의 반응에 분격해하던 군중 사이에서 복권 당첨됐다고 웃던 행인이 넌씨눈 취급받고 몰매맞는 만화를 그렸다. 9월 7일자 8888호에는 소련 국기 화형식을 그렸고 9월 8일자 8889호에는 소련 국기의 낫과 망치가 전투기로 변화하여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격추하는 내용을 그렸다. 9월 9일자 8890호에는 유리 안드로포프 문서에도 소개된 유명한 에피소드인 전 세계로부터 왜 말이 없느냐고 비판을 받던 안드로포프를 고바우 영감이 찾아가서 마스크를 벗겨 보니 입이 없는 인간이라서 고바우 영감이 "앗! 입이 없어졌구나"라고 경악하는 내용이 나온다. 9월 10일자 8891호에서는 안드로포프가 왜 침묵하는지 의문을 표하는 고바우 영감에게 부인이 "이름부터 안들어포프"인데 들을 리가 있겠냐고 대답한다. 8892호에서 뇌물 사건을 다뤘다가 9월 13일자 8893호에서 다시 칼기 피격 참사를 다뤘는데 항공기 탔다가 미사일 맞을까 봐 떠는 고바우 영감에게 스튜어디스가 이 비행기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여객기인 줄 몰랐다는 거짓말을 못 할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내용을 그렸다. 9월 14일자 8894호에서는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소련 대표들이 희희낙락하면서 식당에 가자 고바우 영감이 웨이터로 대기하고 있다가 소련인 메뉴를 따로 주는데 상어 지느러미, KAL 꼬리, 원숭이골, KAL 날개만 적혀 있다.

길창덕 화백의 명랑만화 <고집세>에는 이 사건 때문에 소련을 이기자는 뜻으로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는 에피소드가 삽입되었다.

KBS 2TV에서 방영했던 SF 인형극에서는 갑툭튀한 외계인 집단이 지구의 여객기를 격추시키고 항의하는 지구인들에게 그 여객기는 우리를 정찰하려는 지구방위군의 스파이였다고 오리발 내미는 에피소드가 긴급 편성되기도 했다.

김수정 화백의 명랑만화 <아기공룡 둘리>에는 둘리가 우리 여객기를 격추한 소련 조종사를 잡겠다며 온갖 말썽을 부리다 얼떨결에 한강에 잠수정을 타고 침투한 간첩을 잡는다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었다. 계속된 말썽에 고길동에게 크게 혼난 둘리는 벌을 받고 울면서 "코나 깨져라."라고 말하고 둘리의 초능력에 의해 소련 파일럿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미끄러져 코가 깨지는 엔딩. TV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에피소드의 제목을 '둘리의 분노'로 내보냈고 1987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바꾸면서 소련이 아닌 북한 관련 에피소드로 각색되었다.

신문수 화백의 <신통방통이>에서는 외계인들이 지구로 와서 소련군 전함을 날려버리고 바다에 가라앉음에도 무사한 007편 여객기[56]를 구해준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방통이의 꿈이었다.

이 사건 이후 관련 반공 동화들이 양산되었는데 대부분은 소련을 비난하는 어린이들의 분노를 담아낸 세미 다큐멘터리 동화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 할아버지[57]에게 소련에 대한 복수를 해 달라는 편지와 레이건 할아버지, 낸시 할머니에게 사건 처리를 감사한다는 어린이들의 편지 모음집도 있었다. 사건 한 달 후 터진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과 엮어 북한과 소련을 동시에 비난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 나오기도 했다.

록 뮤지션 게리 무어는 이 사건을 소재로 Murder in the Skies라는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1984년 발표된 앨범 Victims of the Future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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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미국 NBC에서 TV 영화로 '돌아오지 않는 KAL 007'(비디오 제목/원제는 Shootdown)이 방영되었다. 이 영화는 1991년에 KBS에서 토요명화로 <007기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방영하고자 더빙까지 다 했지만 방영 금지된 바가 있다.

줄거리는 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과부 안젤라 랜스버리[58]가 사건 관련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음모를 밝힌다는 내용인데 처음 설정으로는 부기장이 CIA의 에이전트로서 실수를 가장한 소련 영공 침투 시험을 했다는 것인데, 당연히 비난을 받았고 약간 바꾸어 한국인 비행사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소련으로 넘어가려는 듯한 설정이 나와서 기장의 유족들이 반발했다.

당시 로드쇼 기사에 의하면 방송위에서는 고인(조종사) 명예훼손 및 한국에 대하여 부정적인 면이 커서 방송불가 결정을 내렸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당시의 통제된 기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는 방영하려던 1991년은 한소관계가 개선되던 시점이었고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이 사건을 꺼내는 것은 건설적이지 못하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높으신 분들의 외압에 의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영화적 완성도는 범작 수준이다. TV 방영은 당연히 금지되었지만 이미 1989년 대우전자가 '대우비디오클럽' 브랜드로 VHS(비디오테이프)를 출시했고 2000년대까지 케이블에서도 가끔 틀어줬다. 다만 사고 재현 부분은 꽤 긴박감이 있어서 한국 TV 뉴스시간에 소개될 정도였다. 극중 미국 뉴스 화면으로 당시 한국에서 일어난 소련을 규탄하는 시위의 실제 현장을 잠깐 보여준다.

중국의 모형 메이커 트럼페터에서 발매한 1/48 스케일의 Su-15TM 키트의 박스 아트가 이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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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오시포비치의 기체 번호는 17번이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동료기였다거나 일부러 번호를 바꿨다는 등의 의견이 난무했다. 사실 해당 킷 모델인 Su-15만 그려도 되는데 저 멀리 민항기로 보이는 기체를 그려넣을 필요가 없지 않냐는 게 가장 큰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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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오시포비치의 17번기

영국 BBC의 TV 시리즈 셜록의 시즌 2 에피소 드1 벨그레이비아 스캔들에서 추락 예정이던 민항기는 007편이었다. 대한항공 사건에서 미국이 소련군 교신의 감청을 통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감청 사실을 숨기기 위해 처음에는 이 사실을 숨겼다는 음모론 또한 드라마와의 유사점. 다만 셜록은 대한항공 사건이 아닌 코번트리 음모론을 언급한다.

1993년 발매된 '삶 사람 사랑'[59] 1집 수록곡 중 '할머니와 비행기'라는 곡이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곡이다. 노래의 내용은 미국에 계신 할머니가 손자의 선물로 줄 야구장갑과 모자를 사서 미국을 출발하여 한국으로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시신을 못 찾아 결국 간신히 수습된 할머니의 옷을 묻고 묘를 꾸몄고 '(내가 기다리던) 야구장갑과 모자는 이제는 잠기어 저 바다속 어디에 있겠지 할머니가 사주신 나의 것 보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할머니와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는 내용. 가사가 가사다 보니 노래 자체도 암울하고 어둡다.

김진명의 소설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다. 데뷔작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도 사건 조사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비던 권순범 기자가 문득 자기가 타고 있는 비행기의 운행 항로가 그 옛날 대한항공 007기가 그대로 운항하다 피격된 항로임을 자각하면서 혹시 여기에 무슨 국제적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상상하는 대목이 나온 이후 차기작인 《한반도》(훗날 《1026》으로 개작)에서는 좀 더 음모론적으로 강화되어서 주인공이 근무했던 에이펙스 로펌의 대표 케렌스키가 정보원을 통해 수집한 CIA의 기밀문서 중 하나로 이 사건 관련 문서가 소개되기까지 하였다. 그 내용은 미국이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항공기가 어떻게 되나 지켜보고 있었으며[60] 소련 측의 (정당한) 요격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이용해 소련을 악의 축으로 규정짓는 정보공작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 2017년에 이 음모론을 거의 정설로 채택하다시피 한 소설 "예언"을 쓰고 말았다.

미국 선댄스TV에서 방영된 도이칠란트 83(Deutschland 83) 시즌 1 에피소드 6 브랜디 스테이션(Brandy Station)에서 냉전 상황이 악화되는 계기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는 소련이 항공기 내에 미국 스파이가 승객으로 탑승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격추한 것으로 언급된다. 서독에 파견된 동독 스파이인 주인공 모리츠 슈탐(Moritz Stamm)이 서독으로 다시 파견되는 것을 거부할 때 상관이 NATO의 선제타격 가능성에 대한 첩보와 이 사건을 함께 언급하여 주인공을 설득해 다시 서독으로 파견시킨다.

존 J. 낸스가 집필한 소설 '판도라의 시계'에서는 아크바르라는 이슬람 테러단체의 파일럿이 소련 출신으로, 소련 공군에 있을 시절 KAL기를 격추시켰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작중 전투기가 민항기를 공격하는 장면이나 공격당한 민항기에 미국의 대사가 탑승하고 있다는 설정, 민항기 공격 사건의 배후에 정치적 이득을 꾀하는 미국 정부가 있다는 음모론적인 설정 등이 여러모로 이 사건을 연상시킨다.

사실과 완전히 동일하게가 아니라 다소 유사하게 묘사된 사례로는 장 끌로드 반담이 주연한 서극 감독의 헐리우드 데뷔 작품인 《더블 팀》에서 묘사되는 공식적으론 사망처리된 각국 정보요원들을 실제로는 피아 구분 없이 살려 쓰는 국제비밀첩보기관 '콜로니'의 정보력을 보여주는 한 예시로 나온 바 있다. 다만 영화상에서는 소련 영공에서 소련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북한 영공에서 북한이, 그리고 민항기를 군용/첩보기로 오인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북한 방공시스템의 테스트를 위해 미국이 민항기 근처에 전투기를 바싹 붙여서 비행시키다 그것을 감지한 북한이 미사일을 쏜 순간 전투기는 그 즉시 도피하고 애꿎은 민항기만 미사일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설정되었다.

애플TV+의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달에 착륙해서 우주 경쟁이 지속되는 대체역사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 2시즌 7화에서 이 사건을 다룬다. NASA의 국장인 톰이 동아시아 우주 동맹 협상을 위해 JFK 국제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KAL 007편이 소련의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극중에서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고조되어 달에서 소련과의 냉전을 고조시킨다. 레이건 대통령의 이전 연설문들이 다수 등장한다. 중간중간 미국이 대한항공을 소련 상공을 지나는 스파이로 심었다는 내용이 등장하지만 미국 국방성은 이를 말도 안된다며 부인하는 내용 또한 등장한다.볼 수 있는 곳 결국 달에서 미국 우주비행사가 소련 우주비행사를 오해로 인해 사살하고 이 보복으로 소련 우주비행사들이 미국 달기지를 공격해 미국 측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양국의 관계는 악화되어 전쟁으로 치닫는다. 이 드라마 속 대사에서도 일관되게 Sea of Japan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자막은 전부 동해로 번역해 놓았다.

7. 의문점 및 음모론

사건 당시 이 사건을 둘러싼 의문점은 여러 가지로 요약된다.
  • KAL기는 왜 3백 마일 가량 항로를 이탈했는가?[61]
  • 소련은 왜 아직도 CIA 첩보작전으로 믿고 있는가?
  • RC-135 미국 첩보기는 왜 비슷하게 정찰했나?
  • 코브라 볼 비밀작전의 정체
  • 미국 정보기관들의 의회 내 비밀 보고회의 내용
  • 레이건 대통령과 슐츠 국무장관이 자료조사 완결 전부터 신랄하게 대소공격을 서두른 이유
  • 국제민간항공기구 조사보고서의 골자는 무엇이었나?
  • 소련은 왜 캄차카 반도에서 격추하지 않고 사할린 섬을 지날 때까지 그 많은 시간을 기다렸는가?
  • 자동항로 추정기란 어떤 컴퓨터이며, 기장 천병인, 부기장 손동휘, 항공기관사 김의동의 실수라면 어떤 순서로 이루어졌을까?

냉전 와중에 벌어진 사건이고 적국 영공에서 벌어진 일인지라 당연히 음모론이 따라오게 되었다. 일단 고의 정찰설, 미국 방조설[62] 등이 주요 음모론이다. 5년 전인 1978년 일어난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과 너무 유사해서 대한항공이 미국의 비밀 작전에 동원되었고 소련은 낚인 것 아니냐는 음모론은 지금도 이 사건을 다룬 외국어 위키백과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항로 및 침범 영공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음모론이 말하는 것처럼 거의 완전히 똑같은 사건은 결코 아니다. 902편 때와 007편이 침공한 영공은 전략적 가치가 완전히 다른 영공이다.

사망한 탑승객 중 미국의 래리 맥도널드 하원의원이 있던 것도 음모론의 근원인데, 1983년은 6.25 전쟁의 휴전 30주년이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30주년이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국 상원 의원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 비행기에 탑승한 유일한 의원이 맥도널드 하원 의원인 것도 미국이 방조했다는 음모론의 불씨이다. 다행히 대표단은 10분 뒤 출발하는 다음편 항공기에 탑승한 덕에 주요 의원 몰살이라는 비극은 피했지만 하필이면 맥도널드 의원이 문제의 항공기에 탑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높으신 분들[63]의 암살 작전이라는 게 음모론의 요지이다. 음모론 총정리 하지만 맥도널드가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레이건 행정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소련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했고,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조지프 매카시를 공개적으로 찬양하고, 같은 당 소속이었던 케네디 형제의 추모도 거부할 정도의 극우주의자에 미국 극우단체 회장까지 역임했던 전형적(?) 남부 민주당원이었다.

추락이 아니고 사실은 캄차카에 착륙했고 탑승객들이 전원 살았으며 맥도날드 의원은 루뱐카에, 나머지 승객들은 시베리아에 위치한 굴라크에 수용되어서[64] 사망했다는 음모론도 미국에는 꽤 퍼져 있다. 이에 따르면 해상에서 발견된 파편은 소련이 비슷한 기체를 고의로 폭파시켰고 블랙박스는 소련이 당연히 입수해서 처리했다는 논지인데, 위에 서술한 대로 보리스 옐친이 블랙박스를 한국 정부에 넘겨주었고 그것에 따른 분석자료가 나온 후에는 거의 폐기된 음모론이다.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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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007 격추 사건 위령비(祈りの塔)
  • 사고 희생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앞에서 언급된 래리 맥도널드 하원 의원이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 3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지역구가 있는 애틀란타에서 한국으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당시에는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뉴욕 JFK 공항에서 대한항공 007편 일등석을 타게 되었다. 사실 그는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서울로 가는 팬암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다시피 007편을 탑승하여 결국 희생당했다. 사고 이후 보궐 선거가 열렸는데, 맥도널드 하원 의원의 아내 캐시가 뒤이어 출마하려 했지만 당 내 경선에서 조지 다든에게 밀렸다.[67]
  • 사고 희생자들 중에는 가족 단위 승객들이 많았다. 특히 힘든 동료를 위해 대신 비행기에 탑승하였다가 희생된 승무원, 병상에 있는 노모의 소원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하고 마지막 근무를 위해 이 비행기를 탔다가 희생된 승무원, 두 달 전 부부가 나란히 박사학위를 받고 시어머니의 생신잔치 참석을 위해 4년 만에 귀국하다 희생된 가족, 멕시코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남편의 임기가 끝났으나 짐정리가 늦어져 남편을 1주일 전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뒤늦게 오다 희생된 가족,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동생의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 참석하러 귀국하다가 희생된 형제, 손녀의 출산을 지켜보고 딸의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시어머니가 편찮다는 소식에 귀국하던 길에 희생된 어머니, 한국으로 배치되어 한 달 전 미리 떠난 미군 남편을 따라 귀국하다 희생된 가족들 등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68]
  • 사고 당시 007편의 탑승률이 기체 크기 대비 낮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시 대한항공의 보잉 747-200의 좌석 수는 1등석 12석, 비즈니스석 24석, 일반석 367석으로, 총 403석이었다고 하는데[69] 이에 반해 당시 007편에 승객으로 탑승한 전체 인원 수는 246명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항공권은 현재와 달리 소득 대비 상당한 고가였고,[70] 해외여행 역시 드물었기 때문에 전세계 항공사의 평균 좌석 점유율이 낮게는 50%대까지 될 정도로[71] 그리 높지 않았다. 현재와 티켓 가격도, 수익 구조도 달랐으니 동등한 비교는 어렵다.[72] 게다가 한국은 1989년에야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고, 그 이전은 해외여행 규제가 엄격하던 시절이었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순차적으로 자유화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나이 제한이 있었고 완전히 해제된 것이 1989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선 항공편값이 지금보다 고가였기에 해외여행 자체가 매우 드물었다.[73] 게다가 유학, 이민, 교포 친척 방문, 출장 등의 사유가 아닌 여행 사유의 출국은 허가를 거의 내주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다.
  • 승객으로 탄 사람 중 한 명은 비행 스케줄을 끝내고 귀국하던 대한항공 소속 기장 안인수 씨였다고 한다. 사실 앞의 링크에 나오듯이 안씨는 격추당하지 않은 015편의 기장 박용만 씨로부터 "내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겠느냐."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안씨는 "가족 생각이 나서 빨리 가야겠다."라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만약 박씨가 한 번만 더 붙들었거나 안씨가 그 제안을 수락했다면 참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아천미술관 설립자 류수택의 동생이자 승마선수인 류춘택도 이 비행기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74]
  • 당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던 권정달도 이 사고로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딸 권성희를 잃었다.
  • 2, 4, 5대 국회의원을 지낸 오위영의 딸인 오정주 서울대 음대 교수 역시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75] 오정주 교수의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김대진에 따르면 원래는 노스웨스트 항공으로 왕복 비행기표를 끊고 출국했다가 급하게 대한항공으로 표를 바꿔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 당시 KBS 제2라디오에서 이 사고의 7시간 추모 방송을 했던 성우 정경애는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남편인 성우 장세준과 장남 장성민, 차남 장재민과 함께 사망했다. # 그리고 또 이 사고로 희생된 한 승무원의 부인은 14년 후에 발생한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때 조카와 여동생이 희생되어 대한항공과 원치 않는 악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 1991년 3월 24일자 동아일보에 당시 도쿄 특파원이던 이낙연 기자가 이 사고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는데 이 기사에 따르면 닛폰 테레비의 시사 프로그램 <더 스쿠프>를 통해 희생자의 유해 일부로 보이는 것들이 공개됐다. 그런데 현장 수색에 참여했던 선장과 잠수부들은 이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유체는 완전한 게 발견이 안 됐으며 우리도 사진 500여 장을 찍었지만 당국에 압수됐다"고 했고 몇몇 잠수부들은 "누군가가 먼저 와서 유체를 치운 듯하다"거나 "수색현장에 온 냉동선은 유체를 운반하러 온 듯하다"고도 했다. 오시포비치도 KAL기가 민간기라는 것을 알고 격추했다고 하는데 1997년 동아일보 전화 인터뷰와 2003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는 몰랐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항공 사고 수사대 인터뷰에서는 아예 나는 아직도 007기가 스파이기였다고 믿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일단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 나온 전문가들은 자신이 수백 명의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서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월간조선이 이 사건에 대해서 기사를 여러 번 냈다.[76] 그리고 2003년에는 비행기를 격추시켰던 오시포비치와 인터뷰까지 했었다. 요지는 나는 잘못 없고 미국 정찰기를 잡은 것이고 여객기는 결코 추락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속으로는 후회와 죄책감이 너무 많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충격으로 현실이 너무 힘든 나머지 부정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77] 오시포비치는 소련 해체 이후 형편없는 대우를 받다가 결국 2015년 9월 23일에 향년 70세로 생을 마감했다.
  • 동년 1월 8일 007편은 폭탄 테러 미수를 겪은 적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기장이 나리타 국제공항에 긴급 착륙했으며, 샅샅이 수색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폭탄은 없었고, 범인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중국인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규탄 결의안에 중국이 기권하고 폴란드가 반대한 사실이 일본 정부가 공개한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결의안은 안보리 이사회 통과 직전에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 아일랜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가 자신의 1983년도 앨범 <Victims of the future>의 수록곡 <Murder in the skies>를 통해 이 사건을 비판하였다. "러시아인들이 한국으로 향하던 비행기를 격추시켰습니다(The Russians have shot down a plane on its way to Korea.)"라는 가사가 있다.
  • 1980~9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세대는 "소련에서 가장 악랄한 조종사 이름은?" 같은 넌센스 유머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답은 '카르기 쏘아노프'. 바로 이 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다.[78]
  • 007편 격추 사건이 모든 뉴스의 톱기사로 긴급 보도되어야 했던 그날 9시 뉴스에서 다룬 첫 기사는 황당하고 어이없게도 전두환이 서울 청진동에 가서 거리 청소를 순시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에는 보도지침에 따라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동정을 먼저 다루는 것이 보도국 간부들과 양대 방송사 임원진에게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지고 만에 하나 대통령 부부 동정을 9시 뉴스 톱에 올리지 못하면 기자에게 징계를 내리던 시대이기 때문에 007편 격추 사건이 그만큼 긴급 뉴스였음에도 전두환 소식을 먼저 다룬 것이다.[79]
  • 북한은 KAL 007기가 미국이 운용하는 정탐용 항공기이며 인공위성과 우주왕복선과 연계하여 소련 영공을 침범하다 격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박용만 기장은 유가족이나 언론에 한동안 증언을 하지 않았는데, 그때 증언했다면 원치 않는 거짓말을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정권 시기이기도 하고 민간인 한 명이 고문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시대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의 인터뷰에는 당시 대한항공의 부정부패와 안전불감증에 대한 내부고발 역시 필연적이었는데, 국적사는 단 하나뿐인 데다 항상 회사의 을이던 조종사에게 생계가 끊어질 수 있단 건 너무도 큰 위협이었다. 55세로 퇴직 후 인터뷰와 증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 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서방에서는 소련제 항공기 착륙을 금지시키고 국제조종사협회는 보복으로 60일간 모스크바 취항을 중단하기로 하는 등 소련에 대한 분노가 격앙되었다. 또한 앵커리지와 동북아 지역을 횡단하는 R-60 항로가 한동안 폐쇄되었다.
  • 2021년 3월 20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되었는데, 예고영상에서 위의 음모론이 잠깐 언급되었다. 다만 결론은 탑승자들의 생존 확률은 매우 희박했으며 이 사건은 그저 각국 높으신 분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되며 적대적 공생 비슷한 구도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사건 한 달 뒤 아웅산 사건이 터지며 한국 정부조차 이 사건에 제대로 관심을 두지 못했고[80] 약소국이었던지라 이후 처리에 있어서도 외교적으로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냉전 종식 이후에는 공산권에 대한 유화 정책, 이른바 북방정책으로 인해 소련에 다시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사후 대책이 흐지부지되어 가는 도중에 한국인 희생자들의 유품들은 제대로 환수된 것이 거의 없었고 돈이 급한 러시아인들과 호사가들에 의해 거래의 대상이 될 정도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음모론자들은 이런 유품들의 사진을 제멋대로 자신들의 주장 맥락에 꿰맞추어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 방송 내용의 요지였다.[81]
  • 이 사건 이후로 대한항공은 보잉과 협력, 1984년 6월부터 민항기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시인성이 높은 밝은 파란색 바탕의 신도색으로 바뀌었다.[82]기업의 아이덴티티 변화의 목적도 있었지만 이전 도색이 해당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비슷한 예시로 에어 프랑스도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 이후 로고를 변경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신도색을 적용하여 도입한 747[83]은 13년 후인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인해 파괴된다.

9. 관련 문서

9.1. 유사 사건[84]

10.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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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2일 ~ 3월 28일
28 파일:icon_fire.jpg
2024년 12월 29일
179 파일:icon_plane.jpg
2024년 6월 24일
23 파일:icon_fire.jpg
2022년 10월 29일
159 파일:icon_crowd.png이태원 압사 사고
2020년 4월 29일
38 파일:icon_fire.jpg
}}}}}}}}}
[ 20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2019년 5월 29일
28
韓 26
파일:icon_ship.png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2018년 1월 26일
51 파일:icon_fire.jpg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2017년 12월 21일
29 파일:icon_fire.jpg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2017년 3월 31일
22 파일:icon_ship.png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2014년 12월 1일
53 파일:icon_ship.png501오룡호 침몰사고 파일:black_circle.jpg
2014년 5월 28일
21 파일:icon_fire.jpg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사고
2014년 4월 16일
304 파일:icon_ship.png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10년 12월 13일
22 파일:icon_ship.png제1인성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2010년 3월 26일
46 파일:icon_attack.png천안함 피격 사건
[ 200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2008년 1월 7일
40 파일:icon_fire.jpg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003년 2월 18일
192 파일:icon_fire.jpg대구 지하철 참사
2002년 4월 15일
130 파일:icon_plane.jpg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2001년 9월 25일
25 파일:icon_suffocation.png제7호 태창호 사건
2001년 9월 11일
2,996 韓 28 파일:icon_terror.png9.11 테러 파일:black_circle.jpg
2001년 7월 24일
20 파일:icon_car.png진주시 판문동 관광버스 추락사고
2001년 4월 10일
28 파일:icon_ship.png홍해산요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2000년 10월 27일
22 파일:icon_car.png장수 88올림픽고속도로 추돌 사고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99년 10월 30일
56 파일:icon_fire.jpg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1999년 6월 30일
23 파일:icon_fire.jpg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1998년 10월 29일
27 파일:icon_fire.jpg부산 범창콜드프라자 화재 사고
1998년 7월 31일 ~ 8월 1일
103
1997년 9월 3일 65 韓 21 파일:icon_plane.jpg베트남항공 815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97년 8월 6일 228 파일:icon_plane.jpg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96년 7월 26일
60 파일:icon_landslide.png1996년 군부대 막사 매몰사고
1996년 4월 4일
21 파일:icon_car.png양평 버스 추락 사고
1995년 8월 21일
37 파일:icon_fire.jpg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건
1995년 6월 29일
502 파일:icon_structure.png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5년 4월 28일
101 파일:icon_explosion.png
1994년 10월 24일
29 파일:icon_fire.jpg충주 제5호 화재사고
1994년 10월 21일
32 파일:icon_structure.png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3년 10월 10일
292 파일:icon_ship.png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3년 7월 26일
68 파일:icon_plane.jpg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3년 6월 10일
20 파일:icon_explosion.png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1993년 4월 19일
34 파일:icon_fire.jpg논산 정신병원 화재
1993년 3월 28일
78 파일:icon_rail.png
1993년 1월 7일
28 파일:icon_structure.png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1992년 10월 22일
28 파일:icon_ship.png대양하니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91년 11월 3일
22 파일:icon_car.png인제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11월 4일
21 파일:icon_car.png소양호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9월 11일
23 파일:icon_landslide.png인천 송림동 산사태
1990년 9월 1일
25 파일:icon_car.png섬강교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3월 14일
22 파일:icon_ship.png알렉산더 P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89년 9월 17일
24 파일:icon_car.png전북 모래재 버스 추락 사고
1989년 7월 27일
79 파일:icon_plane.jpg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88년 3월 25일
22 파일:icon_fire.jpg안양 봉제공장 화재
1987년 11월 29일
115 파일:icon_terror.png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파일:black_circle.jpg
1987년 8월 29일
32 파일:icon_religion.png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1987년 6월 16일
29 파일:icon_fire.jpg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1986년 11월 26일
28 파일:icon_ship.png카페리2호 전복 사고
1986년 10월 8일
25 파일:icon_ship.png제3경양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86년 7월 30일
21 파일:icon_ship.png고창 거룻배 전복 사고
1985년 1월 11일
38 파일:icon_car.png양강교 버스 추락사고
1984년 3월 24일
29 파일:icon_plane.jpg영덕 시루봉 CH-53 추락 사고
1984년 1월 14일
38 파일:icon_fire.jpg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
1983년 10월 9일
25 파일:icon_terror.png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파일:black_circle.jpg
1983년 9월 1일
269 파일:icon_attack.png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파일:black_circle.jpg
1983년 4월 18일
25 파일:icon_fire.jpg대구 초원의집 화재 사고
1982년 6월 1일
53 파일:icon_plane.jpg청계산 C-123 추락사고
1982년 4월 26일
62 파일:icon_gun.png우순경 사건
1982년 2월 5일
53 파일:icon_plane.jpg제주 C-123 추락사고
1981년 11월 22일
33 파일:icon_car.png부산 금정산 버스 추락사고
1981년 5월 14일
55 파일:icon_rail.png경산 열차 추돌사고
1981년 2월 28일
24 파일:icon_ship.png대림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80년 7월 23일
29 파일:icon_ship.png해당화호 침몰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80년 6월 5일
23 파일:icon_fire.jpg광주 지하살롱 화재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79년 10월 27일
26 파일:icon_fire.jpg은성탄광 화재
1979년 6월 2일
24 파일:icon_car.png삼척 버스 추락사고
1979년 4월 14일
44 파일:icon_explosion.png함백 탄광 폭발사고
1978년 7월 23일
33 파일:icon_car.png한강대교 버스 추락 사고
1977년 11월 11일
59 파일:icon_explosion.png이리역 폭발사고
1976년 10월 28일 ~ 11월 4일
317~
325
파일:icon_ship.png대화퇴 해상 집단 조난 사고
1976년 5월 18일
23 파일:icon_car.png답곡리 버스 추락사고
1976년 2월 28일
32 파일:icon_car.png화천 버스 추락사고
1976년 1월 17일
37 파일:icon_ship.png
1974년 11월 3일
88 파일:icon_fire.jpg대왕코너 화재사고
1974년 6월 28일
28 파일:icon_attack.png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년 2월 22일
159 파일:icon_ship.pngYTL30호 침몰 사건
1973년 8월 12일
32 파일:icon_rail.png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고
1973년 5월 16일
22 파일:icon_rail.png영일 건널목 열차 추돌사고
1973년 1월 25일
61 파일:icon_ship.png한성호 침몰 사고
1972년 12월 24일
30 파일:icon_ship.png파크로버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72년 12월 2일
53 파일:icon_fire.jpg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1972년 8월 1일
26 파일:icon_car.png의암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12월 25일
191 파일:icon_fire.jpg대연각호텔 화재 사고
1971년 10월 13일
20 파일:icon_rail.png남원역 열차 추돌사고
1971년 8월 23일
45 파일:icon_attack.png실미도 사건
1971년 5월 10일
80 파일:icon_car.png청평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1월 7일
31 파일:icon_ship.png질자호 침몰 사고
1970년 12월 15일
326 파일:icon_ship.png남영호 침몰 사고
1970년 11월 5일
31 파일:icon_ship.png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1970년 10월 14일
46 파일:icon_rail.png모산 수학여행 참사
1970년 8월 21일
25 파일:icon_car.png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참사
1970년 4월 8일
33 파일:icon_structure.png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69년 9월 17일
37 파일:icon_ship.png창녕 기관선 - 남지교 충돌 사고
1969년 1월 31일
41 파일:icon_rail.png천안 열차 추돌사고
1968년 10월 30일
48 파일:icon_car.png산청 버스 추락 사고
1968년 1월 8일
41 파일:icon_car.png함양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10월 16일
42 파일:icon_car.png금릉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9월 15일
29 파일:icon_ship.png삼양수산 원양어선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67년 4월 8일
80 파일:icon_plane.jpg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1967년 1월 19일
39 파일:icon_attack.png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년 1월 14일
93 파일:icon_ship.png한일호-충남함 충돌 사고
1966년 1월 18일
22 파일:icon_fire.jpg중구 남산동 판자 아파트 화재
1964년 7월 29일
95+ 파일:icon_ship.png서해 어선단 실종 사고
1963년 12월 30일
21 파일:icon_ship.png제2지남호 실종 사고
1963년 10월 23일
49 파일:icon_ship.png여주 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
1963년 6월 25일
70 파일:icon_landslide.png거제 장승포 산사태
1963년 1월 18일
140 파일:icon_ship.png연호 침몰 사건
1962년 9월 7일
36 파일:icon_ship.png한남동 나룻배 침몰 사고
1961년 9월 2일
24 파일:icon_landslide.png장충동 축대 붕괴 사고
1960년 3월 2일
62 파일:icon_fire.jpg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
1960년 1월 26일
31 파일:icon_crowd.png서울역 압사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59년 7월 17일
67 파일:icon_crowd.png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1957년 6월 23일
38 파일:icon_fire.jpg부산 수정동 미군 송유관 폭발
1957년 2월 22일
21 파일:icon_plane.jpg한강 미 공군 C-124A 추락 사고
1956년 1월 12일
65 파일:icon_fire.jpg태신호 화재
1955년 3월 2일
42 파일:icon_fire.jpg부산역 열차 화재
1954년 4월 3일
37 파일:icon_fire.jpg부산 좌천동 송유관 화재
1954년 1월 31일
56 파일:icon_rail.png오산 건널목 추돌 사고
1953년 11월 27일
29 파일:icon_fire.jpg부산역전 대화재
1953년 1월 25일
66 파일:icon_ship.png행운환 침몰 사고
1953년 1월 9일
330 파일:icon_ship.png창경호 침몰 사고
1952년 11월 16일
25 파일:icon_plane.jpg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
44 파일:icon_plane.jpg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2년 6월 24일
46 파일:icon_attack.png장성군 남방 사거리-신흥리 열차 피습 사건
1951년 7월 11일
94 파일:icon_ship.png제5편리호 침몰 사고
1951년 6월 10일
30+ 파일:icon_ship.png제13호 침몰 사고
1950년 12월 16일
34 파일:icon_ship.png초춘호 침몰 사고
1950년 6월 30일
23 파일:icon_plane.jpg부산 미 공군 C-54G 추락 사고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49년 10월 5일
71 파일:icon_ship.png평해호 침몰 사고
1949년 8월 18일
51 파일:icon_rail.png대강 터널 질식 사고
1948년 9월 14일
53 파일:icon_rail.png내판역 해방자호 추돌 사고
1947년 8월 19일
23 파일:icon_ship.png태양환호 침몰 사고
1946년 11월 13일
42 파일:icon_rail.png영등포역 열차 충돌사고
1946년 10월 22일
59 파일:icon_explosion.png어청도 기뢰 폭발 사고
1945년 11월 30일
42 파일:icon_explosion.png군산 경마장 폭발 사고
1945년 9월 29일
73 파일:icon_rail.png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24일
549​~𔁳,000+
파일:icon_attack.png우키시마호 사건 파일:black_circle.jpg
1945년 8월 20일
118 파일:icon_ship.png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 사건
}}} ||

역대 일본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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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2022년 4월 23일
26 파일:icon_ship.png카즈 1호 침몰 사고
2021년 12월 17일
27 파일:icon_fire.jpg2021년 오사카 빌딩 방화 사건
2021년 7월 3일
22 파일:icon_landslide.png아타미시 산사태
2020년 9월 2일
43 파일:icon_ship.png걸프 라이프스톡1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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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2019년 7월 18일
36 파일:icon_fire.jpg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 200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2005년 4월 25일
107 파일:icon_rail.pngJR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
2004년 9월 7일
22 파일:icon_ship.png토리 아르디안트호 좌초 사고
2001년 9월 11일
2,996 24 파일:icon_terror.png9.11 테러 파일:black_circle.jpg
2001년 9월 1일
44 파일:icon_fire.jpg가부키초 빌딩 화재사건
2001년 4월 10일
28 파일:icon_ship.png홍해산요호 침몰 사고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96년 2월 10일
20 파일:icon_structure.png토요하마 터널 붕괴 사고
1994년 4월 26일
264 파일:icon_plane.jpg중화항공 140편 추락 사고
1991년 5월 14일
42 파일:icon_rail.png시가라키 고원철도 열차 충돌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88년 7월 23일
30 파일:icon_ship.png나다시 사건
1988년 3월 24일
29 27 파일:icon_rail.png상하이 열차 탈선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87년 11월 28일
159 47 파일:icon_plane.jpg남아프리카 항공 295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86년 2월 11일
24 파일:icon_fire.jpg호텔 다이토우칸 화재
1985년 8월 12일
520 파일:icon_plane.jpg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1985년 5월 17일
62 파일:icon_explosion.png미츠비시 유바리 탄광 사고
1985년 3월 31일
26 파일:icon_ship.png세토선 카이요마루 사고
1985년 2월 26일
20 파일:icon_ship.png제52 소 타카마루호 침몰 사고
1985년 1월 28일
25 파일:icon_car.png사이가와 버스 추락 사고
1984년 1월 18일
83 파일:icon_fire.jpg미스이 아리가케광 화재
1983년 12월 7일
93 34 파일:icon_plane.jpg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충돌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83년 9월 1일
269 28 파일:icon_attack.png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파일:black_circle.jpg
1982년 2월 9일
24 파일:icon_plane.jpg일본항공 350편 추락 사고
1982년 2월 8일
33 파일:icon_fire.jpg호텔 뉴재팬 화재
1982년 1월 6일
32 파일:icon_ship.png제28아케보노마루 침몰 사고
1981년 10월 16일
93 파일:icon_suffocation.png호쿠탄 유바리 신탄광 가스 누출 사고
1980년 11월 20일
45 파일:icon_fire.jpg카와지 프린스 호텔 화재
1980년 9월 9일
44 파일:icon_ship.png더비셔호 침몰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79년 11월 28일
257 24 파일:icon_plane.jpg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77년 9월 27일
34 파일:icon_plane.jpg일본항공 715편 추락 사고
1975년 1월 1일
24 파일:icon_car.png아오키호 버스 추락 사고
1974년 11월 9일
33 파일:icon_ship.png다이쥬오요마루 침몰 사고
1974년 3월 3일
346 48 파일:icon_plane.jpg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
1973년 11월 29일
103 파일:icon_fire.jpg다이요 백화점 화재
1972년 11월 28일
61 파일:icon_plane.jpg일본항공 446편 추락 사고
1972년 11월 16일
30 파일:icon_fire.jpg호쿠리쿠 터널 화재
1972년 6월 14일
86 파일:icon_plane.jpg일본항공 471편 추락 사고
1972년 5월 13일
118 파일:icon_fire.jpg센니치 백화점 화재사건
1972년 3월 19~20일
24 후지산 대량 조난 사건
1971년 10월 25일
25 파일:icon_rail.png킨테츠 오사카선 열차 충돌사고
1971년 7월 30일
162 파일:icon_plane.jpg전일본공수 시즈쿠이시 공중충돌 사고
1971년 7월 3일
68 파일:icon_plane.jpg동아국내항공 63편 추락 사고
1970년 4월 8일
79 파일:icon_explosion.png덴로쿠 가스 폭발사고
1970년 1월 24일
24 파일:icon_ship.png캘리포니아 호 침몰사고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69년 4월 15일
31 파일:icon_plane.jpg미 해군 C-121 추락 사고
1969년 2월 5일
31 파일:icon_fire.jpg반코 호텔 화재
1969년 1월 4일
31 파일:icon_ship.png보리바아마루 침몰 사고
1968년 11월 2일
30 파일:icon_fire.jpg이케노보만게츠죠 화재 사고
1968년 8월 18일
104 파일:icon_car.png히다 강 버스 추락사고
1966년 11월 13일
50 파일:icon_plane.jpg전일본공수 533편 추락 사고
1966년 3월 11일
30 파일:icon_fire.jpg키쿠후지 호텔 화재
1966년 3월 5일
124 파일:icon_plane.jpg영국해외항공 911편 추락 사고
1966년 3월 4일
64 파일:icon_plane.jpg캐나다 퍼시픽 항공 402편 착륙 사고
1966년 2월 4일
133 파일:icon_plane.jpg전일본공수 60편 추락 사고
1965년 10월 7일
209 파일:icon_ship.png마리아나 해역 어선 집단 조난 사고
1965년 6월 1일
237 파일:icon_explosion.png야마노 탄광 가스 폭발 사고
1964년 2월 27일
20 파일:icon_plane.jpg후지 항공 902편 활주로 이탈 사고
1963년 11월 9일
458 파일:icon_explosion.png미이케 탄광 폭발사고
1963년 11월 9일
161 파일:icon_rail.png츠루미 사고
1963년 2월 26일
47 파일:icon_ship.png토키와마루 침몰 사고
1962년 11월 18일
41 파일:icon_fire.jpg타이치치무나카타마루호 화재
1962년 5월 3일
160 파일:icon_rail.png미카와시마 사고
1961년 3월 15일
71 파일:icon_fire.jpg도요슈 탄광 화재 사건
1960년 7월 24일
28 파일:icon_car.png히에이산 버스 추락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58년 8월 12일
33 파일:icon_plane.jpg시즈오카현 전일본공수 추락 사고
1958년 3월 7일
26 파일:icon_plane.jpg미 해병대 C-119C 추락 사고
1958년 1월 26일
167 파일:icon_ship.png난카이마루 조난 사건
1957년 4월 12일
113 파일:icon_ship.png제5 키타가와마루 침몰 사고
1956년 10월 15일
42 파일:icon_rail.png롯켄 열차 충돌 사고
1956년 1월 1일
124 파일:icon_crowd.png야히코 신사 사건
1955년 11월 1일
60 파일:icon_explosion.png아카다이라 시게지리 광업소 폭발 사고
1955년 7월 28일
36 파일:icon_ship.png쿄호쿠 중학교 수난 사건
1955년 5월 11일
168 파일:icon_ship.png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1955년 4월 16~17일
73 파일:icon_structure.png아베 광업 보타산 붕괴 사고
1955년 2월 17일
99 파일:icon_fire.jpg성모의 양로원 화재 사건
1954년 10월 8일
22 파일:icon_ship.png우치우마루 침몰 사고
1954년 9월 26일
1159 파일:icon_ship.png토야마루 침몰사고
1954년 9월 26일
35 파일:icon_fire.jpg이와나니 화재
1954년 2월 1일
35 파일:icon_plane.jpg홋카이도 미 해병대 C-46D 추락 사고
1953년 8월 15일
107 파일:icon_structure.png다이쇼이케 댐 붕괴 사고
1953년 6월 18일
129 파일:icon_plane.jpg타치카와 미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1953년 2월 14일
21 파일:icon_explosion.png오카츠타마 화학공업 폭발 사고
1953년 2월 4일
80 파일:icon_ship.png신세이마루 침몰 사고
1952년 9월 24일
31 파일:icon_ship.png다이고타이요마루 조난 사고
1952년 4월 9일
37 파일:icon_plane.jpg일본항공 301편 추락 사고
1951년 11월 3일
32 파일:icon_fire.jpg오즈행 버스 화재
1951년 7월 15일
28 파일:icon_car.png텐류가와 버스 추락 사고
1951년 7월 11일
114 파일:icon_structure.png헤이와 저수지 붕괴 사고
1951년 5월 19일
42 파일:icon_fire.jpg오하라 극장 화재
1951년 4월 24일
106 파일:icon_fire.jpg사쿠라기초 사고
1950년 11월 7일
34 파일:icon_car.png하시가와노 버스 추락 사고
1950년 9월 26일
23 파일:icon_plane.jpg미 해병대 C-54D 추락 사고
1950년 7월 26일
25 파일:icon_plane.jpg미 공군 C-47D 추락 사고
1950년 6월 8일
50 파일:icon_landslide.png쿠마노타이라역 토사 붕괴 사고
1950년 4월 21일
35 파일:icon_plane.jpg카타가와현 미군 C-54기 추락 사고
1950년 2월 11일
22 파일:icon_car.png구마모토 버스 추락 사고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1949년 9월 22일
29 파일:icon_structure.png이노타니 대교 붕괴 사고
1949년 4월 30일
63 파일:icon_explosion.png나타치 기뢰 폭발 사고
1948년 8월 6일
107 파일:icon_explosion.pngUSS LCT 1141호 폭발 사고
1948년 6월 18일
58 파일:icon_explosion.png카츠타 탄광 폭발 사고
1948년 3월 31일
49 파일:icon_rail.png킨테츠 나라선 열차 추돌 사고
1948년 1월 28일
188 파일:icon_ship.png죠오마루 조난 사고
1948년 1월 5일
36 파일:icon_rail.png메이테츠 세토선 열차 탈선 사고
1947년 5월 29일
41 파일:icon_plane.jpg미 공군 C-54 추락 사고
1945년 8월 24일
549​~𔁳,000+
25
파일:icon_attack.png우키시마호 사건
}}} ||

역대 미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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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class=nopad>발생일<colcolor=#000>사망종류사건명국외
2025년 7월 4일 ~ 7월 5일 136+ 파일:icon_flooding.png 2025년 텍사스 폭우 사태
2025년 1월 29일 67 파일:icon_plane.jpg 포토맥강 상공 공중 충돌 사고
2025년 1월 7일 ~ 1월 31일 30 파일:icon_fire.jpg 2025년 남부 캘리포니아 산불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101 파일:icon_fire.jpg 2023년 하와이 산불
2022년 6월 27일 53 파일:icon_suffocation.png 샌 안토니오 이민자 집단 사망 사건
2022년 5월 24일 22 파일:icon_gun.png 롭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2022년 1월 23일 39 파일:icon_ship.png 플로리다 밀항선 전복 사고
2021년 6월 24일 98 파일:icon_structure.png 플로리다 챔플레인 타워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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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class=nopad><tablewidth=100%><tablebgcolor=transparent><width=33%>'''{{{#373a3c,#ddd 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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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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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 2019년 9월 2일 ||<bgcolor=#f1f1f1> '''34''' || [[해상 사건 사고|[[파일:icon_ship.png|width=25]]]] || [[컨셉션호 화재]] || ||
|| 2019년 8월 3일 ||<bgcolor=#fcfcfc> '''23''' || [[총기 난사|[[파일:icon_gun.png|width=25]]]] || [[텍사스 월마트 총기 난사 사건]] || ||
|| 2018년 10월 6일 ||<bgcolor=#fff> '''20''' || [[교통사고|[[파일:icon_car.png|width=25]]]] || [[쇼하리 리무진 충돌사고]] || ||
|| 2018년 11월 8일 ~ 11월 25일 ||<bgcolor=#bcbcbc> '''85''' ||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 || [[캘리포니아 캠프 산불]] || ||
|| 2018년 1월 9일 ||<bgcolor=#fcFCFC> '''23''' || [[산사태|[[파일:icon_landslide.png|width=20]]]] || [[https://news.caloes.ca.gov/montecito-mudslides-anniversary-reflections-through-images/|몬테시토 산사태]] || ||
|| 2017년 11월 5일 ||<bgcolor=#f8f8f8> '''27''' || [[총기 난사|[[파일:icon_gun.png|width=25]]]] || [[텍사스 제일 침례교회 총기 난사 사건]] || ||
|| 2017년 10월 8일 ~ 10월 31일 ||<bgcolor=#fcFCFC> '''22''' ||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 || [[https://en.wikipedia.org/wiki/Tubbs_Fire|캘리포니아 텁스 산불]] || ||
|| 2017년 10월 1일 ||<bgcolor=#c8c8c8> '''61''' || [[총기 난사|[[파일:icon_gun.png|width=25]]]] || [[2017년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 ||
|| 2016년 12월 2일 ||<bgcolor=#efefef> '''36''' ||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 || [[고스트 쉽 창고 화재]] || ||
|| 2016년 6월 12일 ||<bgcolor=#D1d1d1> '''50''' || [[총기 난사|[[파일:icon_gun.png|width=25]]]] ||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 || ||
|| 2015년 10월 1일 ||<bgcolor=#f2f2f2> '''33''' || [[해상 사건 사고|[[파일:icon_ship.png|width=25]]]] || [[엘 파로호 침몰사고]] ||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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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2월 12일 ||<bgcolor=#cdcdcd> '''50'''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콜간 항공 3407편 추락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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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2월 20일 ||<bgcolor=#b4b4b4> '''100''' ||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 ||[[스테이션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 ||
|| 2003년 2월 17일 ||<bgcolor=#fefefe> '''21''' || [[압사|[[파일:icon_crowd.png|width=25]]]] ||[[E2 나이트클럽 압사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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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class=nopad><tablewidth=100%><tablebgcolor=transparent><width=33%>'''{{{#373a3c,#ddd 발생일}}}'''
||<colcolor=#000>'''[[사망|{{{#373a3c,#ddd 사망}}}]]'''
||'''종류'''
||<width=2000>'''{{{#373a3c,#ddd 사건명}}}'''
||'''국외'''||
|| 1999년 10월 31일 ||<bgcolor=#8e8e8e><color=#fff> '''217''' ^^'''美100'''^^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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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9월 2일 ||<bgcolor=#8c8c8c><color=#fff> '''229''' ^^'''美132'''^^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98년 8월 7일 ||<bgcolor=#8c8c8c><color=#fff> '''224''' ||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97년 8월 6일 ||<bgcolor=#8b8b8b> '''228'''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
|| 1997년 3월 26일 ||<bgcolor=#ececec> '''39''' || [[사이비 종교|[[파일:icon_religion.png|width=20]]]] ||[[헤븐즈 게이트#s-1|헤븐즈 게이트 집단 자살 사건]]|| ||
|| 1997년 1월 9일 ||<bgcolor=#f6f6f6> '''29'''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컴에어 3272편 추락 사고]]|| ||
|| 1996년 11월 21일 ||<bgcolor=#f2f2f2> '''33''' || [[폭발|[[파일:icon_explosion.png|width=25]]]] ||[[푸에르토리코 가스 폭발 사고]]|| ||
|| 1996년 7월 17일 ||<bgcolor=#8b8b8b><color=#fff> '''230'''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
|| 1996년 5월 11일 ||<bgcolor=#afafaf> '''110'''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밸류젯 592편 추락 사고]]|| ||
|| 1996년 4월 3일 ||<bgcolor=#f0f0f0> '''35'''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미 공군 CT-43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95년 12월 20일 ||<bgcolor=#999999><color=#fff> '''159'''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아메리칸 항공 965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95년 9월 22일 ||<bgcolor=#fbfbfb> '''24'''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E-3#s-6|알래스카 보잉 E-3 추락 사고]]|| ||
|| 1995년 4월 19일 ||<bgcolor=#979797><color=#fff> '''168''' ||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
|| 1994년 10월 31일 ||<bgcolor=#c4c4c4> '''68'''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아메리칸 이글 4184편 추락 사고]]|| ||
|| 1994년 9월 8일 ||<bgcolor=#a4a4a4> '''132'''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US에어 427편 추락 사고]]|| ||
|| 1994년 7월 2일 ||<bgcolor=#eeeeee> '''37'''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US에어 1016편 추락 사고]]|| ||
|| 1994년 3월 23일 ||<bgcolor=#fbfbfb> '''24'''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그린 램프 참사]]|| ||
|| 1993년 9월 22일 ||<bgcolor=#e4e4e4> '''47''' || [[철도 사건 사고|[[파일:icon_rail.png|width=25]]]] ||[[빅 바유 캐넛 탈선 사고]]|| ||
||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bgcolor=#bbbbbb> '''86''' || [[사이비 종교|[[파일:icon_religion.png|width=20]]]] ||[[웨이코 포위전]]|| ||
|| 1992년 3월 22일 ||<bgcolor=#f8f8f8> '''27'''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US에어 405편 추락 사고]]|| ||
||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 ||<bgcolor=#fbfbfb> '''25''' ||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 ||[[https://en.wikipedia.org/wiki/Oakland_firestorm_of_1991|오클랜드 대화재]]|| ||
|| 1991년 10월 16일 ||<bgcolor=#fbfbfb> '''24''' || [[총기 난사|[[파일:icon_gun.png|width=25]]]] ||[[루비스 카페테리아 총기난사 사건]]|| ||
|| 1991년 9월 3일 ||<bgcolor=#fbfbfb> '''25''' ||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 ||[[햄릿 닭고기 가공 공장 화재]]|| ||
|| 1991년 4월 5일 ||<bgcolor=#fbfbfb> '''23'''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애틀랜틱 사우스이스트 항공 2311편 추락 사고]]|| ||
|| 1991년 3월 3일 ||<bgcolor=#FAFAFA> '''25'''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유나이티드 항공 585편 추락 사고]]|| ||
|| 1991년 2월 20일 ||<bgcolor=#ffffff> '''20'''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LAN 칠레 항공 1069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91년 2월 1일 ||<bgcolor=#f0f0f0> '''35'''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지상충돌 사고]]|| ||
|| 1990년 3월 25일 ||<bgcolor=#bababa> '''87''' ||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 ||[[해피랜드 나이트클럽 화재]]|| ||
|| 1990년 1월 25일 ||<bgcolor=#c1c1c1> '''73''' ||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 ||[[아비앙카 052편 추락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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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class="folding"
{{{#!folding [ 1980년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tableclass=nopad><tablewidth=100%><tablebgcolor=transparent><width=33%>'''{{{#373a3c,#ddd 발생일}}}'''
||<colcolor=#000>'''[[사망|{{{#373a3c,#ddd 사망}}}]]'''
||'''종류'''
||<width=2000>'''{{{#373a3c,#ddd 사건명}}}'''
||'''국외'''||
|| 1989년 10월 23일 ||<bgcolor=#fcfcfc> '''23''' ||[[폭발|[[파일:icon_explosion.png|width=25]]]]||[[필립스 정유 회사 폭발 사고]]|| ||
|| 1989년 9월 21일 ||<bgcolor=#fefefe> '''21''' || [[교통사고|[[파일:icon_car.png|width=25]]]] ||[[알톤 버스 추락사고]]|| ||
|| 1989년 7월 19일 ||<bgcolor=#aeaeae> '''111'''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착륙 사고]]|| ||
|| 1989년 4월 17일 ||<bgcolor=#e4e4e4> '''47''' ||[[폭발|[[파일:icon_explosion.png|width=25]]]]||[[아이오와급 전함#s-4.1|아이오와급 전함 주포 폭발사고]]|| ||
|| 1989년 2월 8일 ||<bgcolor=#9E9E9E> '''144'''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인디팬던트 에어 1851편 추락 사고]]|| ||
|| 1988년 12월 21일 ||<bgcolor=#838383><color=#fff> '''270'''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8년 5월 14일 ||<bgcolor=#f8f8f8> '''27''' ||[[교통사고|[[파일:icon_car.png|width=25]]]]||[[캐롤튼 버스 충돌 사고]]|| ||
|| 1987년 12월 7일 ||<bgcolor=#e8e8e8> '''43'''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퍼시픽 사우스웨스트 항공 1771편 추락 사고]]|| ||
|| 1987년 11월 15일 ||<bgcolor=#f7f7f7> '''28'''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컨티넨탈 항공 1713편 추락 사고]]|| ||
|| 1987년 8월 16일 ||<bgcolor=#9a9a9a><color=#fff> '''156'''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노스웨스트 항공 255편 추락 사고]]|| ||
|| 1987년 5월 17일 ||<bgcolor=#f0f0f0> '''37'''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USS 스타크 피격 사건]]||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7년 4월 23일 ||<bgcolor=#f7f7f7> '''28''' ||[[붕괴|[[파일:icon_structure.png|width=25]]]]||[[람비안스 플라자 붕괴사고]]|| ||
|| 1986년 12월 31일 ||<bgcolor=#b2b2b2> '''97'''||[[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듀폰트 플라자 방화 사건]]|| ||
|| 1986년 9월 5일 ||<bgcolor=#ffffff> '''20'''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팬 아메리칸 항공 73편 납치 사건]]|| ||
|| 1986년 8월 31일 ||<bgcolor=#bbbbbb> '''82'''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세리토스 상공 공중 충돌 사고]]|| ||
|| 1986년 6월 18일 ||<bgcolor=#ffffff> '''25'''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1986_Grand_Canyon_mid-air_collision|그랜드 캐니언 공중충돌 사고]]|| ||
|| 1986년 5월 30일 ||<bgcolor=#fefefe> '''21''' ||[[교통사고|[[파일:icon_car.png|width=25]]]]||[[https://www.nevadaappeal.com/news/2014/sep/25/remembering-deadly-sierra-bus-crash/|캘리포니아 워커 버스 사고]]|| ||
|| 1985년 12월 12일 ||<bgcolor=#868686><color=#fff> '''256'''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5년 9월 6일 ||<bgcolor=#f4f4f4> '''31'''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Midwest_Express_Airlines_Flight_105|Midwest Express 105편 추락 사고]]|| ||
|| 1985년 8월 2일 ||<bgcolor=#a1a1a1> '''137'''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델타항공 191편 추락 사고]]|| ||
|| 1985년 6월 25일 ||<bgcolor=#fefefe> '''21''' ||[[폭발|[[파일:icon_explosion.pn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Aerlex_Fireworks_plant_explosion|오클라호마 폭죽공장 폭발 사고]]|| ||
|| 1985년 1월 21일 ||<bgcolor=#c3c3c3> '''70'''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Galaxy_Airlines_Flight_203|갤럭시 항공 203편 추락 사고]]|| ||
|| {1985년 1월 1일 ||<bgcolor=#F6F6F6> '''29'''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Eastern_Air_Lines_Flight_980|이스턴 항공 980편 추락 사고]]|| ||
|| 1984년 12월 19일 ||<bgcolor=#f8f8f8> '''27'''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Wilberg_Mine|윌버그 탄광 화재 사고]]|| ||
|| 1984년 9월 20일 ||<bgcolor=#fbfbfb> '''24'''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1984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4년 7월 18일 ||<bgcolor=#fefefe> '''21''' ||[[총기 난사|[[파일:icon_gun.png|width=25]]]]||[[샌 이시드로 맥도날드 총기난사 사건]]|| ||
|| 1983년 10월 23일 ||<bgcolor=#7c7c7c><color=#fff> '''307'''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베이루트 미국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3년 9월 1일 ||<bgcolor=#838383><color=#fff> '''269''' ^^'''美62'''^^ ||[[공격|[[파일:icon_attack.png|width=25]]]]||[[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3년 6월 2일 ||<bgcolor=#fcfcfc> '''23'''||[[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에어캐나다 797편 화재 사고]]|| ||
|| 1983년 4월 18일 ||<bgcolor=#c5c5c5> '''64''' ||[[테러|[[파일:icon_terror.png|width=25]]]]||[[1983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3년 2월 10일 ||<bgcolor=#f4f4f4> '''31''' ||[[해상 사건 사고|[[파일:icon_ship.pn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SS_Marine_Electric|SS Marine Electric 침몰 사고]]||
|| 1982년 9월 11일 ||<bgcolor=#e5e5e5> '''46'''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만하임 미 육군 CH-47C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2년 9월 4일 ||<bgcolor=#fafafa> '''25'''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Dorothy_Mae_Apartment-Hotel_fire|Dorothy Mae Apartment-Hotel 방화 사건]]|| ||
|| 1982년 7월 9일 ||<bgcolor=#9a9a9a><color=#fff> '''153'''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팬 아메리칸 항공 759편 추락 사고]]|| ||
|| 1982년 1월 13일 ||<bgcolor=#bfbfbf> '''78'''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 사고]]|| ||
|| 1981년 7월 17일 ||<bgcolor=#adadad> '''114''' ||[[붕괴|[[파일:icon_structure.png|width=25]]]]||[[하얏트 리젠시 호텔 고가 통로 붕괴 사고]]|| ||
|| 1981년 1월 9일 ||<bgcolor=#f6f6f6> '''29'''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www.upi.com/Archives/1981/01/11/Death-toll-rises-to-29-in-nursing-home-blaze/5710348037200/|뉴저지 요양병원 화재 사고]]|| ||
|| 1980년 12월 4일 ||<bgcolor=#f9f9f9> '''26'''||[[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스토퍼스 인 호텔 화재]]|| ||
|| 1980년 11월 21일 ||<bgcolor=#bbbbbb> '''85'''||[[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MGM 그랜드 호텔 화재]]|| ||
|| 1980년 9월 12일 ||<bgcolor=#f1f1f1> '''34''' ||[[교통사고|[[파일:icon_car.pn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Florida_Commuter_Airlines_Flight_65|Florida Commuter Airlines 65편 추락 사고]]|| ||
|| 1980년 7월 27일 ||<bgcolor=#fcfcfc> '''23'''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politics/1980/07/28/blaze-blocked-escape-route-of-23-killed-in-nj/311092a3-e45c-43b4-802b-47aba2f0a292/|브래들리 인 요양원 화재]]|| ||
|| 1980년 6월 5일 ||<bgcolor=#ffffff> '''20''' ||[[교통사고|[[파일:icon_car.png|width=25]]]]||[[https://cdnc.ucr.edu/?a=d&d=DS19800606.2.42&|아칸소 재스퍼 버스 사고]]|| ||
|| 1980년 5월 9일 ||<bgcolor=#f0f0f0> '''35''' ||[[붕괴|[[파일:icon_structure.png|width=25]]]]||[[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붕괴사고]]|| ||
|| 1980년 3월 14일 ||<bgcolor=#bcbcbc> '''87''' ^^'''美28'''^^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LOT 007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80년 1월 28일 ||<bgcolor=#fcfcfc> '''23''' ||[[해상 사건 사고|[[파일:icon_ship.pn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USCGC_Blackthorn|USCGC 블랙손 침몰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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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1970년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tableclass=nopad><tablewidth=100%><tablebgcolor=transparent><width=33%>'''{{{#373a3c,#ddd 발생일}}}'''
||<colcolor=#000>'''[[사망|{{{#373a3c,#ddd 사망}}}]]'''
||'''종류'''
||<width=2000>'''{{{#373a3c,#ddd 사건명}}}'''
||'''국외'''||
|| 1979년 11월 28일 ||<bgcolor=#848484><color=#fff> '''257''' ^^'''美22'''^^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79년 10월 31일 ||<bgcolor=#c1c1c1> '''73'''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웨스턴 항공 2605편 착륙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79년 5월 25일 ||<bgcolor=#828282><color=#fff> '''273'''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
|| 1979년 4월 3일 ||<bgcolor=#fafafa> '''25'''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www.thecrimson.com/article/1979/4/3/25-dead-3-injured-in-boarding/|스르라우한 웨이사이드 요양원 화재]]|| ||
|| 1978년 11월 18일 ||<bgcolor=#353535><color=#fff> '''918''' ||[[사이비 종교|[[파일:icon_religion.png|width=20]]]]||[[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78년 9월 25일 ||<bgcolor=#9e9e9e> '''144'''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샌디에이고 상공 공중충돌 사고]]|| ||
|| 1978년 4월 27일 ||<bgcolor=#cccccc> '''51''' ||[[붕괴|[[파일:icon_structure.png|width=25]]]]||[[윌로우 아일랜드 참사]]|| ||
|| 1978년 1월 28일 ||<bgcolor=#ffffff> '''20'''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Coates_House_Hotel|코트스 하우스 호텔 화재 사고]]|| ||
|| 1977년 12월 13일 ||<bgcolor=#f6f6f6> '''29'''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에어 인디아나 216편 추락 사고]]|| ||
|| 1977년 11월 6일 ||<bgcolor=#ececec> '''39''' ||[[붕괴|[[파일:icon_structure.png|width=25]]]]||[[켈리 반스 댐 붕괴사고]]|| ||
|| 1977년 7월 19일 ||<bgcolor=#e9e9e9> '''40''' ||[[붕괴|[[파일:icon_structure.pn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Laurel_Run_Dam|로럴 런 댐 붕괴 사고]]|| ||
|| 1977년 6월 26일 ||<bgcolor=#e9e9e9> '''42'''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www.tennessean.com/story/news/local/2018/06/26/columbia-tn-jail-fire-maury-county-1977/731145002731145002/|모리 카운티 교도소 화재 사고]]|| ||
|| 1977년 5월 28일 ||<bgcolor=#989898><color=#fff> '''165'''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 화재]]|| ||
|| 1977년 3월 27일 ||<bgcolor=#575757><color=#fff> '''583'''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테네리페 참사]]||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76년 10월 24일 ||<bgcolor=#fafafa> '''25''' ||[[화재|[[파일:icon_fir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Puerto_Rican_Social_Club_fire|푸에르토리코인 사교 클럽 화재]]|| ||
|| 1976년 10월 20일 ||<bgcolor=#bfbfbf> '''78''' ||[[해상 사건 사고|[[파일:icon_ship.pn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MV_George_Prince_ferry_disaster|MV 조지 프린스호 침몰 사고]]|| [[파일:black_circle.jpg|width=10]] ||
|| 1976년 7월 31일 ||<bgcolor=#adadad> '''114''' || [[홍수|[[파일:icon_flooding.png|width=20]]]] || [[빅 톰슨 홍수]] || ||
|| 1976년 6월 4일 ||<bgcolor=#e5e5e5> '''46'''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https://en.wikipedia.org/wiki/Air_Manila_Flight_702|에어 마닐라 항공 702편 추락 사고]]|| ||
|| 1976년 5월 21일 ||<bgcolor=#f6f6f6> '''29''' ||[[교통사고|[[파일:icon_car.png|width=25]]]]||[[유바 시티 버스 추락사고]]|| ||
|| 1976년 4월 27일 ||<bgcolor=#eeeeee> '''37''' ||[[항공 사건 사고|[[파일:icon_plane.jpg|width=25]]]]||[[아메리칸 항공 625편 활주로 이탈 사고]]|| ||
|| 1976년 3월 9일, 3월 11일 ||<bgcolor=#f9f9f9>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