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4:05:47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 화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비버리힐즈 서퍼 클럽 화재.jpg

1. 개요2.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3. 사고의 전개4. 사고 이후

1. 개요

1977년 5월 28일 켄터키주 사우스게이트의 비버리 힐즈 서퍼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화재.

2.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

비버리 힐즈 서퍼클럽은 1937년에 지어졌다. 헐리웃이나 내쉬빌, 라스 베가스, 뉴욕 등지에서 온 가수들이 공연을 펼치고 그걸 구경하면서 식사하는 일종의 레스토랑이었으며 안에선 도박장이 열리기도 했고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같은 유명 가수들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50년대 후반, 그리고 60년대 초반에 보안관 George W. Ratterman이 켄터키 북부 나이트클럽 및 카지노 지역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1961년 문을 닫았다.

클럽은 1969년에 새 주인과 함께 새로 오픈했지만 2달만 가다 다시 닫았다. 이후 사업가 Richard Shiling이 비버리 힐즈 서퍼클럽을 3백만 달러에 구입해 1971년 규모를 더 키워서 재개장했는데 무대가 더 많아졌고 식사공간과 이벤트 룸도 많아졌으며 내부엔 멋을 내려고 고급 샹들리에와 나무 패널, 커튼, 레드 카페트 등으로 장식했다. 덕분에 클럽은 사람이 항상 붐비는 인기 장소가 됐는데 때로는 사람이 너무 붐비는 바람에 웨이터들이 음식 서빙을 못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부에는 스프링클러방화벽, 화재감지기가 없었고 증축한 공간에 비상구를 설치하지 않는 등 안전불감증이 도사리고 있었다.

3. 사고의 전개

1977년 5월 28일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에서 유명 가수 존 데이빗슨이 공연을 열었는데 때마침 메모리얼 데이 주말이라 사람이 많이 몰렸다. 무려 3,5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해당 건물의 최대 허용 인원이 1,500명임을 생각하면 2배가 넘는 인원이었다. 직원은 당시 182명이 근무 중이었다. 존 데이빗슨이 공연을 하던 카바레 룸에는 최대 허용 인원이 600명임에도 불구하고 1,300여명이 몰렸다.

그러던 중 오후 8시 30분 경 결혼식 접수처로 쓰이던 지브라 룸이 너무 따뜻하다, 뭔가 이상한 게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천장에 있던 전선에서 합선이 일어나 불길이 시작됐으며 사람들은 지브라룸을 벗어났다. 오후 8시 56분 같은 곳에서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문을 열었는데 산소가 공급되는 바람에 불이 미친듯이 커졌다. 9시 1분 사람들은 재빨리 911에 신고했고 버스보이 월터 베일리가 존 데이빗슨이 공연을 펼치던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로 사람들에게 불이 났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알렸다. 건물에 화재경보기가 없어서 다른 직원들도 방을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화재가 난 것을 알려야 했지만 아직 연기가 들이닥치지 않은 방도 있어서 불이 났단 사실을 안믿고 버티는 사람들이 많았다. 9시 10분 화재로 전기가 끊기고 조명이 다 꺼졌다.

9시 4분 소방대가 도착했는데 구조대까지 포함해 무려 500여명이 지원을 왔다. 불이 너무 커져서 출입구 3개 중 2개는 이미 못 쓰는 상황이었고 클럽의 사람들은 급히 유일하게 남은 출구로 달려나갔으나 사람이 너무 몰리는 바람에 출구에서 사람들이 낑겨 버렸다. 거기다 증축을 너무 생각 없이 하는 바람에 건물 자체가 미로처럼 변해 조명 없는 내부에서 길을 잃어 쓰러지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소방대는 계속해서 불을 끄려고 시도했으나 11시 30분 경 건물 지붕에서 붕괴 조짐이 보이는 바람에 잠시 철수했다. 결국 건물은 화재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결국 이 화재로 165명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의 대부분은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였다. 사망자 대부분이 카바레 룸에서 나왔는데 무려 162명이 이곳에서 나왔다. 부상자는 총 200명이었다.

4. 사고 이후

이 화재와 관련해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의 점검을 맡았던 소방공무원 3명이 입건됐으며 유가족들의 소송전이 있었다.

전선을 잘못 설치해 화재를 일으킨 회사는 유가족들에게 1천만 달러를 보상했다.

사고가 일어난 장소는 한동안 공터로 남았다가 2020년에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짓고 동시에 화재 추모 시설을 짓기로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