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05:24:45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붕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3. 사고의 전개4. 사고 이후


파일: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붕괴.jpg

1. 개요

Sunshine Skyway Bridge Collapse

1980년 5월 9일 플로리다주의 탬파베이에서 강한 해무로 길을 잃은 화물선 써미트 벤처(Summit Venture)호가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와 충돌해 대교가 무너진 사고.

2.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파일: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이전.jpg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는 세인트 피터스버그와 테라 세이아를 잇는 대교로, 이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두 공간 사이의 큰 바다를 건너려면 페리선을 타러 기다려야만 했다. 1920년대에 시작한 페리선 서비스는 지역내에서 유명해져 관광명소가 되기도 했지만 주민들에게는 더 빠르고 더 나은 교통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에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가 지어졌다.

그렇게 2200만 달러를 들여 7.2km 길이의 2차선 다리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가 지어져 1954년 9월 개통됐다.[1] 다리를 만든 회사는 파슨스 브링커호프(Parsons Brinkerhoff)와 호건 앤 맥도날드(Hogan & Mcdonald)였고 이름은 지역 주민들이 낸 이름들 중 하나를 뽑았다. 개통됐을 당시에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긴 다리였다. 다리의 높이는 해수면으로부터 45.7m여서 웬만한 배들은 다리 밑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 다리로도 많은 교통량을 감당하기 힘들자 같은 구조의 다리가 바로 옆에 새로 지어졌다. 서쪽 다리는 북쪽, 동쪽 다리는 남쪽으로만 갈 수 있는 일방통행 다리였다.

3. 사고의 전개

당시 써미트 벤처호는 인산염을 실고 남아프리카로 향하던 중이었으며 선장 루 성 추(Loi Shung Chu)와 도선사 존 레로(John Lerro)가 탑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무가 너무 심했고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상태라 시야가 굉장히 줄은 상태였다. 거기다 예고에도 없던 스콜마이크로버스트까지 발생해 시속 110km의 강풍이 부는 상황이었다. 시야가 150m 정도로 줄어들자 선장은 선원 2명에게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피고 보고하라고 했다. 그런데 배가 점점 다리와 가까워지는 상황이었고 선원들은 선장에게 경고했다.

도선사 존 레로는 급히 배를 멈춰 보려고 했으나 바람이 배를 옆으로 밀었고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의 기둥과 부딪힐 위기에 처했다. 파일럿은 빨리 배의 엔진을 최대한 가동하고 을 내려 배를 멈추려 했지만 이미 늦었고 오전 7시 34분 써미트 벤처호는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의 2S기둥과 충돌했다.

이전에도 화물선이나 배가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와 부딪히는 사고는 있었지만 보통은 대교에 약간의 수리를 하는 정도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엔 배가 너무 크고 19,734톤에 달하는 무게에 다리가 버티지 못했고 결국 부딪힌 다리는 무너졌다. 무너지면서 370m 가량의 상판이 추락했다. 존 레로는 다리가 무너지는 걸 목격하고 인근 해안 경비대에 급히 메이데이를 부르며 차량 이동을 멈춰 달라고 했다. 하지만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한 도선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용차 6대와 26명이 탑승했던 그레이하운드 버스 1대, 픽업 트럭 1대가 추락했다.

픽업 트럭에 탔던 웨슬리 맥킨타이어(Wesley MacIntire)는 추락할 때 배에 떨어진 뒤 강에 떨어지면서 그나마 충격이 줄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배 승무원들이 배에 떨어진 차량을 보고 웨슬리를 구조했다. 리처드 혼버클(Richard Hornbuckle), 위의 무너진 대교 사진에 나온 차량에 탄 운전자는 30cm 차이로 간신히 휘말리는 것을 피했다. 리처드 혼버클과 동승자들은 겁에 질려 엔진도 끄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웨슬리 맥킨타이어를 제외하고 다리가 무너진 걸 못 보고 떨어진 35명은 목숨을 잃었다. 가장 어린 사망자는 아기였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망자는 92세였다.

4. 사고 이후

유일한 생존자였던 웨슬리 맥킨타이어는 써미트 벤처호의 회사를 부주의 혐의로 고소했고 175,000달러의 보상금을 받게됐다.

존 레로는 사고 이후 도선사로 복귀했으나 다발성 경화증을 앓게 되면서 근무가 불가능해져 은퇴했다. 이후 교수가 되어 해양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은퇴 후 상담가로 일했다.

파일: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jpg

다리를 다시 짓는 동안 멀쩡했던 옆의 다리는 일방 통행에서 양방 통행으로 바뀌어 운영됐다. 이후 배들이 충돌하지 않을 더 안전한 위치에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는 다시 지어졌고 기존의 다리는 철거됐다. 새로 지어진 다리는 1982년에 착공해 1987년에 개통됐고 피넬러스 카운티의 세인트 피터즈버그 남쪽 지역과 매너티 카운티의 브레이든턴 북쪽 지역을 이어주고 있다. 길이는 8,861m, 너비는 29m, 높이는 131m다. 새로 지어지면서 배가 다리 기둥에 부딪히는 걸 막는 충돌 방지공, 일명 '돌고래(Dolphin)'가 설치됐다. 2007년 다리는 전 상원의원의 이름을 따 '밥 그래햄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Bob Graham Sunshine Skyway Bridge)'가 됐다. 한때 다리가 자살명소로 유명해져 수많은 사람들이 투신자살을 시도하자 다리 인도 쪽에 높은 울타리를 설치해 사람들이 쉽게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게 했다.

1997년엔 스티브 트로터(Steve Trotter)라는 스턴트맨이 사람들을 모아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에서 5명이 대형 그네를 타는 스턴트를 했으나 줄이 끊어지면서 추락해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도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행위를 한 죄로 7만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전 다리는 완전히 철거되지는 않았고 가운데 구간만 크게 철거했다. 양쪽의 세인트 피터스버그와 테라 세이아 구간에 남은 대교 부분은 "스카이웨이 낚시 기둥(Skyway Fishing Pier)" 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낚시꾼들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써미트 벤처호는 이후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이름이 바뀐 채 활동하다가 2010년 남중국해에서 침몰했다.

현재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인근에는 사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1] 원래는 1926년부터 계획됐지만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까지 겹치는 바람에 많이 늦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