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1 07:17:14

와인코프 호텔 화재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호텔 건물3. 화재의 전개4. 사상자와 생존자, 그 외5. 화재 이후
5.1. 당시 현장 취재와 퓰리처상 수상작

1. 개요

Winecoff Hotel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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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2월 7일 미국 조지아애틀랜타에 있던 와인코프 호텔(Winecoff Hotel)에서 일어난 화재. 119명의 사망자를 낸 큰 사고다.

화재의 확산 과정에서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25년 후에 일어난 한국의 대연각호텔 화재와 많이 비교되며 2017년 6월 영국에서 흡사한 사건이 터졌다.

2. 호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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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코프 호텔 건물은 1913년에 지어진 15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건물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2대 있었고 계단은 개방되어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이었지만 화재에는 많은 취약점을 드러냈는데 내장재가 대부분 가연성인 데다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계단이 개방되어 있던 데다 비상계단도 없었으며 화재 경보도 수동으로 울리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화재에 취약하게 지어진 이유는 건축 당시 법률의 취약점 때문이었다. 층당 5,000ft²(약 464.5m²) 이상의 건물에만 소방시설을 의무화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와인코프 호텔은 층당 4,386ft²(약 407.5m²)이라 소방시설을 의무화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3. 화재의 전개

이 화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든 시간인 새벽 시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희생자가 더욱 많았다. 침대와 나무의자가 쌓여 있던 3층 서쪽 복도에서 화재가 일어났는데 그곳은 계단이 가까운 곳이었다. 원인은 담뱃불로 추정되고 화재가 일어난 시각은 새벽 3시 15분경으로 추정된다. 처음 화재를 발견한 것은 5층에 올라갔다 내려오던 호텔 보이였는데 화재 경보를 울린 것은 3시 42분이었고 이미 불이 크게 번진 후였다.

불은 개방된 계단과 건물 곳곳에 있는 개구부를 타고 위로 올라갔고 마침내 꼭대기 층인 15층까지 불이 붙어 타올랐다. 유일한 탈출구인 계단은 불이 타올라오는 통로가 되어서 탈출구가 꽉 막힌 상태였다.

물론 소방대가 출동했지만, 화재 신고가 너무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호텔은 전 층에 불이 번진 상태였다. 당시 고층까지 닿는 사다리차가 없었기 때문에 양옆에 붙어 있는 12층 건물과 6층 건물 사이에 사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구출했지만 도로 쪽에 면해 있는 쪽의 방에 묵고 있던 사람들은 달리 구출할 방도가 없었다.

4. 사상자와 생존자, 그 외

화재 당일 304명의 투숙객들이 있었는데 119명이 죽었고 65여명은 부상을 당했지만 구출되었으며 120여명은 별 상처 없이 구출되었다. 호텔의 소유주였던 윌리엄 플레밍 와인코프(William Fleming Winecoff, 76)는 아내인 그레이스 스미스 와인코프(Grace Smith Winecoff, 76)와 함께 이 호텔의 스위트룸 1011-1012호실에 31년간 살았는데 남편은 근처 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아내는 호텔이 있던 피치트리(Peachtree)의 인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32명은 추락사했는데 화재를 피해 건물 밖으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지만 침대 시트 등을 묶어 만든 줄로 탈출하다가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투숙객들 중에는 조지아주립 YMCA가 후원한 청소년 정부 입법 체험 프로그램(a state youth-in-government legislative program)[1]에 참석한 중고생들도 있었는데 그 중 32명이 사망했다. 그 중에는 당시 14살이었던 패트리시아 앤 그리핀도 있었는데 926호실에서 다른 학생과 보호자 한 명과 함께 질식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인도에 접한 호텔의 뒤편의 방에 두 명씩 투숙했는데 문제는 그쪽의 창문은 투숙객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미늘창 형태의 셔터로 막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막힌 방들 중 5층 위의 방에 투숙한 사람들은 모두 화재로 인해 죽었다.

당시 3백~4백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이 호텔 소유주에게 제기되었지만 화재로 나온 보험금은 전부 약 35만 달러에 불과했다.

5. 화재 이후

이 화재는 1946년의 라 사르(La Salle) 호텔 화재 사건[2]과 더불어 고층 빌딩의 화재 취약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둘 다 개방된 계단이 불과 연기가 번져 올라가는 통로가 되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결국 소방 관련법이 개정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연방의회는 화재예방법을 1947년에 개정하였고 안전장치가 없는 계단 통로 문제의 개선이 강조되었다. 이는 라 사르 호텔 화재 때는 연기의 확산 통로, 와인코프 호텔 화재 때는 불의 확산 통로가 되었고 대피 통로를 막아 버리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와인코프 호텔은 전소(全燒)되었지만 콘크리트 건물이었기 때문에 골격은 그대로 남았고 건물을 수리하여 1951년 4월 피치트리 호텔(Peachtree Hotel)로 재개장했다. 재개장한 호텔은 건물 외부에 비상계단을 마련하고 전 층에 화재경보 시스템을 채택하는 등 안전장치를 최대한 갖췄다. 이후 건물이 너무 오래되자 2006년 4월부터 리모델링하여 2007년 10월 1일 엘리스 호텔(Ellis Hotel)로 재개장했다.

5.1. 당시 현장 취재와 퓰리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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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재는 1947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이 사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지아 공과대학에 다니던 24살의 아놀드 하디는 당시 파티에서 집으로 가던 중에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소방서에 전화해 화재현장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현장으로 갔다. 애틀란타 저널 사진기자 잭 영은 당시 늑막염으로 고통받다가 12월 7일 새벽 3시 30분에 그래디 메모리얼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는데 많은 사상자가 난 화재 사고 소식을 듣고 후다닥 차려입고 현장으로 바로 갔다고 하며 AP 사진기자 루디 페어클로스와 호레이스 코트도 현장에 도착했다. 화재 이후 하디가 AP 사무실에 나타났다. 하디가 찍은 사진들 중 세 장은 쓸 수 없었고 한 장만이 괜찮게 나왔는데 그게 바로 저 사진으로, 호텔에서 불을 피해 아래로 떨어지는 데이시 매쿰버(Daisy McCumber)라는 여성이 찍힌 것이다. 이 여성은 3층 창문에 있던 차양에 떨어졌고 이게 충격을 완화시켜 목숨을 건졌으나 심각한 골절상을 입어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당시 AP 통신은 그의 사진에 300달러를 지불하고 사들였으며 194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 미국 YMCA의 프로그램들 중 하나로, 청소년들이 가상으로 지역, 주, 국가, 국제적 규모로 만들어진 행정부에서 입법부를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현장 학습.[2] 1946년 6월 5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라 살르 가와 매디슨 가 북서쪽에 위치한 라 셀르 호텔에서 난 화재. 61명이 사망하였는데 그 중에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호텔 내부의 실버 그릴 칵테일 라운지에서 불이 시작되었는데 위치가 계단통, 즉 계단으로 이뤄진 우물 모양의 수직공간과 그 기둥 앞이었다. 시카고 소방서에 따르면 화재는 오전 12시 15분경에 그 라운지의 벽이나 지붕에서 시작되었지만 오전 12시 35분까지 신고를 받지 못했다. 불은 라운지와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의 듬뿍 니스칠이 된 목재 벽을 타고 위로 치솟았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불에 타죽거나 연기로 인해 질식사했고 900여명 정도는 스스로 탈출할 수 있었으나 150여명은 소방대원들과 몇몇 영웅적인 시민들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그때 선원 두 명이 저 화재 당시 27명을 구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시카고 시의회는 관련 법규를 개정했는데 자동경보장치의 설치와 객실 내부 화재안전장치 등이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