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2:36:50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


1. 개요2. 전개3. 결말

1. 개요

1986년 3월 21일 당시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대한민국 육군 수뇌부들이 임시국회[1]를 마치고 서울특별시 회현동 소재 요정 회림에서 폭탄주 술자리를 벌이던 중 일어난 국회의원들과 대한민국 육군 수뇌부들 간의 집단 난투극 사건을 말한다.

당시 폭탄주 술자리에 참석한 주요 인원은 다음과 같다.

2. 전개

당시 대한민국 육군 수뇌부들은 국방위원회 회식 모임 자리에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늦게 온 신한민주당 김동영 원내총무가 늦게 왔음에도 미안한 표정은커녕 "거 힘있는 거물들은 하나도 없고 똥별들만 죽 앉아있구만.." 이라고 말해 일순간 갑분싸가 되어버렸다.[3] 확실한 것은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먼저 온 사람이 김동영이었고, 다른 국회의원들은 다 그보다도 늦었다는 점이다.

이후 김동영은 자신의 말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주를 몇 잔 마셨다. 그리고 나서는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에게 "이봐! 박 총장! 이세기 원내총무는 왜 안 오는 거야? 빨리 가서 불러와!"라며 시비조로 고함을 쳤다.[4] 얼마 후 다른 의원들이 차례로 오고, 문상을 갔다 오느라고 늦었던 이세기가 자리에 참석하였는데 그도 문상 자리에서 술을 조금 마시고 와서 약간 취한 상태였다.

가뜩이나 김동영의 똥별 발언으로 열받아 있던 정동호 참모차장이 늦게 와서 사과의 뜻으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려던 이세기를 보자 "이 새끼 총무’가 왜 이렇게 늦고 그래, 야당한테 똥별 소리나 듣게 만들고!"라고 타박하면서 술을 권하였다.[5] 그런데 다른 장성들 몇 명도 이세기 원내총무가 늦게 온 데 대한 벌주로 술을 권하고 춤을 추게 시키고 훈수를 두는 등의 행보를 벌이는 바람에 이세기 또한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으며 이후 정동호가 이세기를 김동영에게 억지로 끌고 가서 “자, 여당 총무 왔는데 정치 좀 잘해야지. 둘이서 손잡고 잘 할 수 있잖아? 정치를 잘해줘야 바깥에서도 안 떠들 거 아닌가?” 같은 말을 하면서 횡설수설했다.

이 광경을 보다 못한 민주정의당 남재희 의원이 "손님으로 초대해놓고 이 따위 짓들이야!"라며 고함을 지르면서 갖고 있던 술잔을 벽을 향해 던졌다.[6] 이에 유리컵 술잔이 깨져 그 파편이 이대희 장군의 눈에 튀어[7] 그의 왼쪽 눈이 피범벅이 되었다. 피를 본 이대희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술을 쳐먹으려면 똑바로 쳐먹어!"라고 소리치고 이단옆차기로 남재희의 안면을 향해 발길을 날렸다. 정통으로 맞은 남 의원은 일순간 실신했다. 결국 폭탄주 술자리는 국회의원들과 군인들 간의 난투극으로 변질되었다. 입술이 터진 남재희 의원은 정신을 차리고 “국회의원을 이렇게 때리라고 위에서 시키더냐, 청와대에 가서 물어보자”고 소리를 쳤다. 결국 여러 사람들이 이를 진정시키고, 군부에서는 새로 술 자리를 마련하여 화해하고 끝나는 듯 싶었으나......

3. 결말

그 여파로 다음날 김용철 대법원장 지명자의 국회 인준 표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세기와 김동영은 국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김동영 측의 해명은 술자리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것인데, 주변에서는 군 쪽에 의해 집단구타를 당해 그리됐을 것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이는 엄청난 정치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당사자인 남재희 의원은 침묵했다.[8]

이기백 국방부 장관[9],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이 국회의사당에 나와 머리 숙여 의원들에게 사과하였다. 정동호 육군참모차장은 예편 조치[10], 이대희 인사참모부장은 좌천 조치됐다.[11][12] 또한 남재희 의원은 조선일보 시절 함께 했던 김윤환 의원의 권유로 상임위를 옮겼다.

그나마 여당 의원과 직접적으로 쌈박질을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초장부터 김동영이 당했더라면 아마 더한 난리가 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제1 야당으로 오르면서 기세가 엄청나게 올라있었기 때문.
[1] 한 예비군이 훈련장에서 ‘반정부 언행’을 했다는 이유로 군 수사기관과 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구타당하고 숨진 사건을 다루기 위해 임시국회가 열렸다. 그래서 담당 상임위였던 국방위원회가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2] 이 중에서 천영성 의원은 예비역 공군 소장이었고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김용채 의원은 예비역 소령이었으며, 5.16 군사정변에 참가한 인물이다.[3] 김동영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김동영 의원은 5.17 쿠데타 때 계엄군에게 끌려가 죽을만큼 고문당하고 김영삼은 최측근이었던 김동영을 살려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계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정치제한이 해금되며 국회에 복귀했다고는 하지만 김동영 입장에선 당시 쿠데타 핵심주역들군 지휘부랍시고 앉아있는데 좋게 보였을 리가 없다.[4] 참고로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이 김동영보다 2살 연상이다.[5] 남재희 전 장관의 회고에 따르면 어지간히 빡돌았던 정동호 참모차장이 이미 술에 취해 드러누워있던 김동영 의원 쪽으로 목덜미를 잡고 이세기 의원을 질질 끌고갔다고 한다.[6] 그것도 두 번씩 던졌다. 이를 다룬 신문기사에서 나온 내용[7] 눈꺼풀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8] 동료 의원들이 진상규명을 부탁했지만, 술자리의 일은 술자리에서 끝나면 그만이라며 끝내 함구했다.[9] 이기백 장관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그 날 밤에 남재희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에게 사과 전화를 돌렸다.[10] 군사정권 시절에 참모차장 다음은 대장 진급에 가까웠다. 사실상 술 먹고 사고쳐서 대장 진급이 엎어진 것.[11] 다만 이대희 장군은 하나회 버프에 힘입어 이후 중장진급에 성공해 초대 제8군단장을 지냈고, 노태우 정부에서 병무청장을 지냈다. 정동호 장군도 전역조치가 되었지만, 대신 2년 뒤 총선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내리 재선을 지냈다.[12] 이래저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는 이 일로 앙금이 있었는지, 같은 당 남재희 의원에게 “너 한번 맞아볼래”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훗날 남 의원은 아끼던 후배가 그 사건으로 인해 출세길이 막힌 데 대한 노여움을 자신에게 풀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다만 남 의원은 이 일로 특별히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