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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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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문서는 2003년에 일어난 화재 참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1995년에 상인동에서 발생한 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에 대한 내용은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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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white>대구 지하철 참사
Daegu Subway Accident
大邱 地下鐵 慘事
(2003)
<color=white>철도사고 요약도
파일:대구 지하철 참사.png
발생일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2분
유형 화재
원인 방화
범인 김대한
발생 위치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color=#373a3c> 탑승인원 471명
<color=#373a3c> 피해 인명 사망 192명[1]
실종 68명[2]
부상 151명
차량 전동열차 12량 반소
시설 중앙로역 구조물 손상
기타 2003년 10월 21일까지
교대역 ~ 동대구역 구간 운행 중지[3]
운영기관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4]
사고열차A 열차번호 #1079
열차종별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1000호대 전동차
출발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곡역
종착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
사고열차B 열차번호 #1080
열차종별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1000호대 전동차
출발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
종착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곡역

1. 개요2. 사건 진행
2.1. 사건 발생2.2. 사건 규모 확대2.3. 결과
3. 사고 이후 조치4. 관련 이야기5. 사고의 후유증6. 여담
6.1.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6.2. 현장 사진과 추모 메시지6.3. 기타
7. 유사 사례8. 관련 문서9. 관련 문헌10. 둘러보기

1. 개요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사고.

#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한 연합뉴스의 유일한 1보 기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라는 말만 봐서는 흔하디 흔한 단순 화재같아 보이지만...[5]

대한민국에서 철도 관련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참사로, 192명이 사망했다.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사고, 304명이 사망[6]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92명이 사망한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다음으로 많다. 이것은 165명이 사망한 대연각호텔 화재보다 많다. 1995년에 289명이 사망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벌어진 지하철 화재 사망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지하철 화재 희생자를 낳은 불미스런 비극이자 216명이 살해당한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사고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큰[7] 대량살인[8]사건이다. 이 참사가 하필이면 유동인구가 많은 봄 방학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2. 사건 진행

  • 9시 30분: 방화범 김대한방화를 목적으로 인근 주유소에 방문하여 휘발유 7500원어치 상당을 구입한 뒤 1호선 송현역 안심방면 승강장에서 안심행 1079열차에 탑승했다.
  • 9시 52분 32초: 안심행 1079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하였다.
  • 9시 53분: 김대한이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휘발유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불이 붙자 놀란 김대한은 휘발유 통을 전동차의 바닥에 던졌고 수 초만에 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 불에서 나온 검은 연기, 유독성 가스가 승강장과 지하 1~2층 대합실에 급속히 확산됐고, 승객들이 주출입구 쪽의 계단을 통해 대피하기 시작하였다.[9] 1079열차 기관사는 소화기로 초기 화재 진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화재발생 사실을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은채 대피했다. 종합사령실 기계설비사령 주컴퓨터에 중앙로역 화재경보 문구가 뜨고 경보음이 울렸으나, 종합사령실에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 9시 53분 35초 ~ 9시 54분 40초: 1079열차에 타고있던 40대 남성이 전동차 안에서 화재가 발생되었다는 내용을 최초로 대구소방안전본부 종합사령실에 신고하였고, 이후 역사 밖으로 탈출한 일부 승객들, 전동차 안에 갇힌 승객들과 휴대전화 통화를 한 가족 등이 현장의 상황을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 신고하였으며,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서는 삼덕파출소 등 8개 출동대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삼덕소방파출소 등 8개 소방대가 출동했다.
  • 9시 55분 ~ 9시 55분 30초: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중앙로역 실제 화재입니다. 전혀 앞이 분간이 안 됩니다. 신고 좀 부탁드립니다."라며 급히 보고했으나, 종합사령실이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한편 1080열차가 대구역에서 중앙로역으로 출발하여 종합사령실에서 전체 열차에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하여 운전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라고 알렸다. 중앙로역 역무원이 초기 소화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부 직원이 승객 대피를 유도하였다.
  • 9시 55분 36초: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이 전체 열차에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하여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했습니다."라고 열차무선 전체 호출을 통하여 통보하였다.
  • 9시 56분 45초: 대곡행 1080열차가 이미 검은 연기가 가득 차 있던 중앙로역 승강장에 도착하여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으며, 승강장에 있던 연기가 전동차 안으로 밀려들자 기관사가 즉시 출입문을 닫았다.
  • 9시 57분 07초: 전동차의 전원이 끊어지며 이에 따라 전동차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 9시 57분 32초: 1080열차 기관사가 운전사령에게 열차무선을 통해 "엉망입니다. 빠른 조치 바랍니다."라며 적절한 지시를 내려주도록 요구하였다. 운전사령은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 채 "대기하고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하라"고 지시하여 1080열차 기관사는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안내방송을 하였다. 그리고 곧 중부소방서 서문로파출소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하여 인명구조를 신속히 시작하였다.
  • 9시 57분 40초: 중앙로역 역무원이 화재 사실을 119에 신고하였다.
  • 9시 58분 28초: 1080열차 기관사가 종합사령실에 연락하여 승객 대피 여부를 결정하여 줄 것을 요구하던 중 전동차에 잠시 전력이 공급되어 출발시도를 하였으나, 1080열차에 전력이 공급되어 기관사가 출발을 시도하면 전력이 다시 끊기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승객대피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1080열차 기관사는 전동차가 곧 출발할 예정이므로 전동차 안에 대기하도록 승객들에게 방송을 하였다. 이때쯤 1079열차에서 1080열차로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사이 종합사령실과 1080열차간 열차무선 통화가 두절되었다.
  • 10시 2분 48초: 종합사령실에서 1080열차에 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중앙로역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고 1080열차 기관사에게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하였으며, 1080열차 기관사는 출입문을 개방하고 승객대피 안내방송을 실시하였으나, 일부 차량에서는 문이 열리지 않았고 승객들이 수동으로 출입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 전동차 안에 갇혀 있게 되었다. 이때 소방파출소 및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여 구조 활동을 시작하였다.
  • 10시 4분: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서 복현파출소 등 16개 파출소, 달서구조대, 동부구급구조대 등에 구급차와 물탱크차 출동을 요청하였으며, 지하 1층과 지하 2층 대합실에서 인명구조를 계속 실시하였다.
  • 10시 10분: 1080열차 기관사는 운전사령의 "전동차 판 내리고 차 죽이고 가라"는 지시를 받고 승객들의 안전과 대피를 확인하지 않은 채 전동차의 주간제어기 키(마스터 키)[10]를 뽑아 역사의 출입구를 통해 탈출하였다.[11]
  • 10시 12분: 소방본부 종합사령실에서 대구시내 병원 구급차 동원을 요청한다.
  • 10시 17분: 종합사령실에서는 다른 전동차의 운행을 통제하면서 모든 전동차의 운행을 정지시켰고, 중앙로역 역무원들은 탈출후 모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때, 중부소방서장이 자체 비상소집 명령을 내렸다.
  • 10시 25분: 소방본부장이 경북소방본부에 구조대 및 구급대 지원 요청을 하였다.
  • 10시 28분: 종합사령실에서 전 전동차 운행중지 및 승객하차를 지시하였다.
  • 10시 52분: 소방본부장이 소방본부 전 직원 비상 소집을 명령하였다.
  • 11시 11분: 경북소방본부 6개 대의 구급차 12대가 지원 출동하였다.
  • 오후 1시 38분: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었으며, 살아남은 승객들은 밖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2.1. 사건 발생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당시 56세)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9시 30분 경,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송현역에서 1079열차 지하철에 올라탔다.

한국어 위키백과, 당시 현장 검증 기사.

9시 53분 경, 그는 성내동 중앙로역에서 열차가 서행하자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다. 불이 그의 옷에 옮겨붙자 놀란 김씨는 휘발유통을 바닥에 던졌고, 결국 수 초만에 큰 불이 발생하였다.

다행히 당시 1079열차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1079열차에서는 비교적 큰 피해가 나지 않았다. 또한 1079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이 119로 신고를 했다.

2.2. 사건 규모 확대

1079열차 기관사는 초기 진화에 실패하자 중앙사령실에 신고하지 않은 채 대피했고, 결국 이로 인한 지하철 사령실의 오판으로 9시 55분에 원래 역을 통과해야 했던[12] 1080열차가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했다.

게다가 중앙사령실에서 119에 신고를 늦게 했고,[13] 1080열차 기관사가 출입문을 열어주었지만, 이후 마스터 콘트롤 키를 뽑고 탈출하였다. 기관사가 일부러 마스터키를 뽑고 탈출한 것이 아니고 사령실의 지시였다. # 1080열차 기관사는 역사내 연기로 인해 1079열차에 불이 붙은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지하철은 가연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배웠기에(불량 내장재로 인해 화재가 커졌다) 이렇게 심각한 화재였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기에, 안전 관리 문제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마스터키가 뽑히는 바람에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혔고 거기다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14] 많은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방화 셔터가 일찍 닫히면서 나오려던 사람들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15] 화재가 난 1079열차에 비해 훨씬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대구지하철공사의 거듭된 인력 감축 때문에 안전요원이 없고, 역사 상주 직원이 4~5명 뿐이며 안전 교육을 제대로 이수받지 못했다.

다행히도 탈출 방법을 알고 있던 사람이 몇몇 객차에 타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예컨데 많은 인명피해가 난 1080열차의 경우 4호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 중에는 당시 철도청 직원이었던 권춘섭 씨가 사태를 직감하고 비상 코크를 취급하여 출입문을 수동개방하였다. #

2.3. 결과

결국 사건이 일어난지 약 3시간 이후인 오후 1시 38분경에 화재는 진압이 되었지만, 사망 192명, 부상 151명, 실종 21명이라는 엄청난 피해가 났다.

이 참사의 여파로 약 8개월간 중앙로역뿐만 아니라 명덕역부터 신천역까지 6개 역의 영업이 중단되었으며, 전 구간이 영업을 재개할 때까지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걸렸다. 이 때문에 약 1~2년 동안 대구 지하철의 이용객은 반 이상 감소했다. 또한 중앙로역 구조물 안전문제가 제기되어, 중앙네거리 국채보상로 교차점을 제외한 중앙대로 대구역 - 반월당 구간이 전면 통제됐다. 이로 인해 시내버스들은 계산오거리 혹은 봉산육거리로 우회 운행했으며, 402번같은 경우는 아예 북성로 구간을 포기하고 한때 한일극장으로 다녔다.

파일:attachment/대구 지하철 참사/info0031.jpg

또한 이 사고로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녹아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사고 뒤 공개된 차량 내부는 시꺼먼 재와 철골만 남아있어 사고 당시의 참상을 잘 대변한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화상보다는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되지만, 그렇다 해도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유해들은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심지어 뼛가루조차 못 찾아 들고 있던 지팡이 하나만으로 사망이 인정되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대구 지하철 참사/info0051.jpg

3. 사고 이후 조치

사고 다음날 정부는 대구를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고, 당월 25일 대구시 당국은 윤진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을 해임시키면서도 그 다음날 시청 공무원, 지하철 종사자, 군 병력들을 동원해 현장 및 월배차량기지로 실려온 사고 열차들을 물청소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해 유족들과 주변인들을 기겁하게 만들고 분노케 하였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도 사건 현장을 인간 띠로 둘러싸기도 했고, 안심차량기지 쓰레기 더미까지 뒤져 유해 14구의 일부와 유류품 146개를 수거했다. 한편 대구시는 이 논란에 대해 "물청소 안 했다"던가, "청소는 유가족이 동의했다"라고 둘러대듯 해명했지만, 전부 거짓이었다.

이에 여론은 조해녕 시장의 퇴진을 요구했으나, 그의 소속 정당이자 자성론을 내세우던 한나라당은 이를 '마타도어(흑색선전)'로 일축했고, 지역 유력 일간지 매일신문도 칼럼 <잃어버린 8년>을 통해 대구 유니버시아드까지 들먹이며 참사 책임소재 및 구조적 문제 규명을 '진보적 시각'이라고 보며 철 지난 색깔론을 주장했으며, 매일신문 사장 정재완 신부(니꼴라오)까지 유가족 농성에 대해 "미국 같았으면 총 맞아 죽었다"고 비난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또한 방화범 및 열차를 버린 기관사, 종합사령실 직원 등 지하철 관련자 8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게다가 이 당시 비상시 메뉴얼조차 장식밖에 안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이에 대해 각자 책임질 건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참사에 직접적인 이들만 처벌됐을 뿐, 안전에 취약한 역사를 건축하고 인력을 감축시킨[16] 시 당국 및 대구지하철공사는 처벌을 비껴갔다. 참사 당시 중앙로역 통신근무자 등 현장근무자 7명이 숨졌음에도 말이다. 그나마 윤진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이 시설 청소로 인한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04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대구지하철노조는 지하철 시설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역사상 첫 파업을 벌여 안전요원 확충, 전동차 내장재 교체, 안전방재시설 확충 등 특별단체교섭을 달성해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의 반응은 부정적이었고, 검찰은 해당 파업이 노조의 본래 목적과 무관했다며 이원준 노조위원장을 붙잡아 형사처벌했다. 2004~2005년에도 2호선 인력감축이 안전에 역행한다 하여 두 차례 파업을 전개했다가 이후 조합원 13명이 해고되었다. 다행히 2014~2015년에 8명이 복직됐지만 4명은 아직 복직되지 못하고 있고, 나머지 1명은 2012년에 이미 폐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동시에 부산, 인천지하철노조도 지하철 안전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자 서울지하철이고 부산지하철이고 할 것 없이 부랴부랴 차량과 시스템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당시 굴러다니던 차량들은 유독성 가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연재 시트를 전부 뜯어내고 알루미늄 시트로 바꾸었으며 그 이후로 제작하는 신형 차량들의 경우에는 난연재가 사용된 시트가 채택되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나중에 난연재 모켓 시트를 알루미늄 시트 위에 덧붙였다.[17]

전국 지하철 내의 '테마열차' 투입이 거의 없어졌다. 이전만 해도 지하철에서는 가끔 특수하게 책을 끼워서 이동하는 도서관 열차나 불교 장식을 한 봉축열차를 운행한다거나 하여튼 별의별 신기한 한정 열차를 굴렸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 이쪽도 불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 탓인지 사건이 일어난 뒤 한동안 테마열차 운행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경의중앙선도서관 열차와 같이 테마열차가 재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건 이전만큼은 못하다. 주로 외관이나 내부에 간단히 스티커만 붙이는 정도다.

역사 내에 인공암반 소재를 사용한 모든 도시철도역((예)충무로역)의 인공암반을 철거 리모델링 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력이 컸다. 인공암반이 화재 시 유해물질을 발생 시킨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고 울퉁불퉁한 구조로 인해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우왕좌왕하며 머리를 부딪혀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다.

유사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객실 내, 역사 내 안내 방송과 안내 영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승객들의 인식 수준도 높아졌고 출입문 수동 개폐 요령이나 소화기 사용 방법등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전에 매우 작게 안내되어 있던 비상시 문 개방 방법도 크게 문이나 문 바로 옆 좌석 위에 붙게 되었다. 서울지하철에서는 운행 시간 중 일부를 할애하여 특정 역에 지하철을 멈추고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 수동 개방 방법을 시연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18] 이후 설치되는 스크린도어에도 비상 개방 레버를 크고 눈에 띄기 쉬운 색으로 만들고 비상시 사용할 수 있음을 알리는 문구를 붙였고 화재를 대비해 방독면과 산소통, 손전등이 다수 비치되었다. 화재시 비상 탈출 경로 안내문도 추가로 역마다 부착되었다. 플랫폼의 영상장비에는 역에 비상 정차했을 때나 터널에서 비상 정차했을 때 탈출하는 방법 영상을 주기적으로 상영해주고 있다.

한편, 참사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은 역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승객들이 승강장의 안전선 밖으로 넘어가거나 안전펜스에 손을 대는 행위를 엄금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승강장을 순찰 중이던 공익근무요원이 즉각 제지한다. 공익근무요원이 없을 경우 역무실에서 방송을 통해 제지한다. 그러나 작정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19]은 즉시 제지할 수 없기 때문에 스크린도어 확충이 필요하다. 2017년 현재 대구 도시철도의 전 역사에 모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다.[20]

지하역사의 스크린도어의 경우 우리나라의 역사들이 건설된 것이 스크린도어가 도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제연(除燃)설비가 승강장 상부에서 공기를 공급하고, 하단의 선로 쪽에 공기를 빨아들이고 외부로 배출하는 방식[21]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게 되면 연기를 승강장과 선로로 분리, 격리는 가능하게 되지만 승강장에서는 외부 공기를 공급하기만 하고 발생하는 연기를 역사 외부로 배출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반대로 선로에서는 공기를 그냥 빨아들이기만하는데 흔히 생각하기에는 공기를 외부로 빨아당기면 끝인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되면 공기의 압이 낮아져서 연기가 외부로 빨려가는 양이 적어지므로 비효율적이며, 정상적인 제연설비는 효율성을 위해 외부공기를 공급하고, 연기를 배출하는 두 개가 한 세트로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 역사의 스크린도어의 경우 상단부가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22] 이 점이 사쿠라기초 사고를 겪은 일본이 스크린도어를 적극적으로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하더라도 난간형 형태만 고집하는 이유라고들 한다.

이 점을 감안했는지 대구지하철의 스크린도어 내부(열차측) 비상개폐 레버는 어두워진 상태에서도 식별이 쉽도록 형광색으로 되어있고 비상 개방 방법에 대한 표지가 A4 반절 수준으로 일반 종이 형태로 손잡이 옆에 작게 붙어있는 서울교통공사 등지와 달리 상당히 눈에 잘 띄고 형광색으로 비교적 크게 붙어있다.

그리고 화재 발생시 역사 내가 정전으로 앞이 안보인 점을 감안하여 출구 계단마다 축광(야광) 유도 표지판을 붙여 놓아서 화재와 같은 비상시 정전으로 모든 등이 소등 된 상태에서도 쉽게 탈출할 수 있게 하였다.
현재 운영중인 모든 철도 회사들에는 '잊지말자 대구 지하철 참사'라는 글이 사무실, 공문, 포스터 등에 항상 들어가 있다. 그야말로 대형 참사에다가 승무원이 도주한 것까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항상 교육시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4. 관련 이야기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구 지하철 참사/관련 이야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사고의 후유증

살아남은 사람들도 가스 노출에 의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 가스 자체의 유독 성분도 문제지만 고열의 가스로 인해 피부와 호흡기에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사 몸에 아무런 이상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들이라 해도 후일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목숨이 왔다갔다 했던 당시의 충격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생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고 희생자들과 그에 관계된 유족들은 지금도 이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자들은 대부분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이 발생한 사람, 울화병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 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아닌 대구 시민들 중에서도 지금도 대놓고 도시철도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23]

6. 여담

  • 이 사고 이후 대구광역시에서는 사고일인 매년 2월 18일추모 행사를 하고 있는데, 20[age(2000-01-01)]년 현재는 [age(2003-02-18)]주기가 되었다. 9주기인 2012년에는 한겨레21에서 특집으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이후의 삶을 기사화했다.("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 반면 추모 사업은 국민성금으로 조성된 특별위로금 운영과 유족회 출연기금 등을 두고 유족들이 갈등하는 등 한동안 난항을 겪다가 2016년 '218안전문화재단'이 세워졌다.
  • 사건 이후 전 국민이 발벗고 나서서 참사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금을 수없이 보냈으며, 인터넷에서는 전년도에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 마크를 이 사건에서도 추모의 의미로 많이 사용했으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노란 리본처럼 그 당시에도 추모의 의미로 많은 시민들이 '근조'(謹弔)라고 새겨진 검은 리본을 달았다.
  • 대구지하철 사고 유족 중 한 명은 2017년 다음 스토리펀딩 <재난참사 없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이후 책 <재난을 묻다>로 출판)에서 해당 사고에 대해 '인간사회는 서로간 신뢰가 중요하다'고 전제하며 국민들을 속게 하는 행정 및 정치가 계속되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뼈 아픈 교훈을 전했다.
  • 당시 뉴스를 보면 사고가 난 후 다른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지하철 창문을 깨고 나가거나 선로를 따라 인근 역으로 가서 나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쪽은 거의 모두 부상 하나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24] 사고가 일어난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은 화재 흔적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상태지만[25] 사고 당시부터 2년 6개월을 넘는 시간 동안 해당 역 근방의 지하도 전체에 굉장한 어떻다고 표현을 하기 힘든 냄새가 흘러넘쳤으며 그와 함께 통행인의 수는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 있다고 추정된다.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같은 것은 당연하고 지하도는 상당한 시간 동안 스산한 분위기에 유동 인구마저 상당히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로 참사의 흔적이 이어졌다.
  • 피의자 김대한은 당시 화상을 입어 달아나던 중 북구 노원동3가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범죄 사실이 드러나 검거, 구속되었다. 그는 마치 정신 이상처럼 굴려는 듯 진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사고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 우려도 나왔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에 의하면 정신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심신장애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1심에서 현존전차방화치사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하여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상고는 포기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가, 2004년 8월 30일 지병인 호흡 곤란과 뇌졸중으로 급사했다.
  • 김대한은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반신, 하반신 모두 장애가 와서 지적장애 2급[26]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의 방화 사유는 심한 우울증 후 정신 질환이 심해진 데 따른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 중부경찰서에 출두하여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병인 뇌졸중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 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김대한의 직계 가족은 사건 이후 곧 경북 지역을 떠났다. 친척들도 이쪽 집안은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 2013년 2월 15일, 김범일대구광역시장은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도시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
  •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인 2013년 2월 18일, 대구 각지에선 추모 행사가 열렸다. # #

파일:external/www.idaegu.com/01010100101.20151228.000149308.02.jpg
  • 참사 12주기 추모벽이 중앙로 역 지하 2층에 마련되었다고 한다. 국민성금 5억 2000만원을 들여 길이 27m, 폭 3m, 340㎡ 넓이로 조성되었으며, 추모 공간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벽과 사건 당시 불에 그을린 벽과 그리고 화재의 열기에 수화기가 녹아내린 공중전화, 당시에 있었던 매점, 혈압측정기, 지하철 사물함, ATM기와 희생자의 유류품 등도 전시하고 있다.
  • 이 사고로 인해 PTSD라는 질병이 양지에서 공론화되었다. 물론 5.18 민주화운동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처럼 PTSD 환자가 많이 발생한 사건사고는 많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당시 신경정신과) 상담 자체가 터부시되고 의지드립이 난무하던 분위기상, 피해자는 상처를 숨겨야 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해 PTSD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여 후대의 참사 처리에 있어 PTSD 치료는 외적 부상 치료 이후에 반드시 행해지는 치료로 자리잡았다.
  • 2007년 감우성, 최강희 주연의 옴니버스 영화 내 사랑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사고 장면이 나온다.
  • 홍승우비빔툰에도 이와 관련된 8행시를 그리는 에피소드가 연재되었는데 단행본으로는 5권에 실려있다.
  • 윤인완이 스토리를 쓰고 김지혁, 유현, 변병준, 최경아, 서문다미, NANO, 요요 등이 작화를 맡은 단편집 문화 컨텐츠의 이해 (2010) 2부 "동화" (작화: 변병준) 편은 최면 치료를 받고 당시의 기억을 지워버린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작품을 통해 실제 사건을 컨텐츠화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네이버 웹툰 기타맨 59-마지막화에 이를 소재로 한 내용이 나온다.#
  •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에서도 대구 지하철 탈출이라는 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학교 탈출 같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뒤에서 방화범(파이어뱃) 역할의 플레이어가 쫓아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건물과 미네랄을 뚫고 도착 지점까지 가는 것(...)으로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제작 의도가 고인드립이 아닌 본 사건에 대한 분노감이기도 하여 굳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맵에 따라서 마지막에 방화범(김대한)과 방화범 어머니까지 죽일 수 있게 되어있다.[27]
  • 국산 쯔꾸르 게임 동결세계의 주 배경이기도 하다.
  • 2014년 8월에 대구광역시의 한 취객이 문재인 당시 의원을 죽이러 간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가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해선 열심히 뛰면서 정작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에도 유족들을 비밀리에 도왔음이 유족 중 한명인 박성찬 씨에 의해 알려졌다.기사 1 기사 2
  • 이 사고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가사에서 이 사고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30] 한 때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 행사에도 추모곡용도로 쓰여서 유명해진 노래가 지금도 가끔 추모곡 용도로도 들리곤 하는 M.C The Max1집 음반의 후속곡인 <마지막 내 숨소리>라는 곡이다.
  • 이 사건으로 금고 5년형을 받은 기관사는 2008년 출소 후 설령 그 때로 돌아간들 다시는 전동차에 오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기사

6.1.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

1990년대 중후반부터 휴대 전화가 많은 대중들에게 보급되던 시기라 각종 매체들을 통해 희생자들이 휴대 전화를 통해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대화하던 내용들이 알려져 눈시울을 적셨다.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오늘 하루 보고 싶어도 쬐금만 참아요.」
  • 사고 발생 7분 전(오전 9시 46분) 예비 신부 송혜정 씨가 예비 신랑 이호용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 오전 9시 50분, 서동민씨가 선배 송두수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
  • 사고 발생 4분 전(오전 9시 49분) 김인옥 씨가 남편 이홍원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 사고 발생 8분 후(오전 10시 01분) 통화기록 중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 개신교 모임 강사 허현 씨가 강사 강지현 씨에게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 오전 9시 54분(사고 발생 1분 후), 대학생 딸이 어머니 김귀순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아... 안 돼... 안 돼!"
  • 오전 9시 58분(사고 발생 5분 후), 이현진 양이 어머니에게. [31]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 간다."
  • 김창제 씨가 부인에게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 장계순 씨와 딸 이선영 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 아들 박정순 씨가 노모 황점자 씨에게. 이날 그는 직장을 얻으러 가는 중이었다.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 어머니 최금자 씨가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오늘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오빠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냐. 그리고 기다리지마 나 안간다."

"너 정떨어진다ㅋㅋ 우리 그냥 헤어지자 ㅋㅋ"
  • 죽음을 예감한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걸 연인이 알면 슬퍼할까봐 일부러 기분 나쁘게 이별 메시지를 보낸 것.

6.2. 현장 사진과 추모 메시지

팔공산에 위치한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당시 불에 탄 1079열차 전동차 몇 량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건을 가정해서 인체에 무해한 짙은 연기를 뿌려놓고 당시의 사건을 체험할 수 있다. 사족으로 대구경북지방병무청 소속의 사회복무요원소양교육을 받을 때 두 반 중 한 반이 이 곳으로 견학을 갔었고 나머지 반은 포스코로 견학을 갔었으나 2016년 3월부터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에 위치한 사회복무연수센터에서 4박 5일(3박 4일) 합숙 교육으로 변경되어 더 이상 견학은 가지 않는다.

2013년 2월 7일에는 대구도시철도공사 임직원들이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방문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지난 10년간 중앙로역 화재 참사와 관련된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한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관련 기사

파일:attachment/대구 지하철 참사/info00716.jpg

6.3. 기타

  • 일간베스트 저장소디시인사이드 등지에서는 대구를 비하할 의도로 불에 탄 사건희생자들을 통구이로 빗대거나, 사건용의자인 김대한을 통구이요리사인 머한셰프라 지칭하는 고인 모독 발언과 지역 비하 발언을 했었다.
  • 2014년 극우 유튜버 윾튜브로 잘 알려진 극우 페이지 유머저장소가 과거 일베의 통구이 발언에 동조하여 타요전철 드립을 친 것이 밝혀져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내용 보기】
파일:풍동(윾튜브) 대구 지하철 참사 비하.jpg

타요전철의 의미는 '전철이 (불에) 타요'라는 의미며, 참고로 사진 속 셰프복을 입고있는 사람은 대구 지하철 참사의 범인 김대한이고 그의 얼굴에 셰프복을 합성하여 그가 대구 시민들을 통구이로 요리해 버렸다는 의미의 조롱을 하고 있다.

7. 유사 사례

2004년 1월 5일 홍콩 MTR 췬완선 열차가 진중역 진입 도중 유사한 화재가 났으나, 불길은 10여분 만에 꺼지고 부상자 14명을 빼곤 인명피해가 없었다. 과거 대구지하철과 달리 1973년 개통 시기부터 차체를 일찍이 불연/난연재로 한 덕이라 피해가 적었다.

2014년 5월 28일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이 있었고, 2017년 일본 오다큐 전철 오다와라선에서 비슷한 사고가 날 뻔 했다. 다행히도 전원 무사히 대피하였고, 조기대응에 성공하여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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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중 186명은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에게 유해를 전해 줄 수 있었지만, 시신이 완전히 소실된 3명, DNA는 확보했으나 연고자를 찾지 못한 3명은 미신고자로 남아있다.[2] 사망자는 시신이 없더라도 사망이 인정되었지만, 이때는 사망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다. 시체를 찾지 못하는 사망자인 셈이다. 그리고 시신은 있는데 훼손 상태가 심하여 신원 확인은 물론이요, 더욱 심한 경우에는 성별마저 판별이 불가능한 시신도 존재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신원 확인이 안 되어서 코드명으로 있다.[3] 10월 21일 이후로는 중앙로역은 무정차 통과하는 식으로 운행을 재개 했으며, 완전 복구는 동년 12월 31일이다.[4]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해 추락한 기업이미지 쇄신을 위해 2008년부로 상호명을 대구도시철도공사로 변경한다.[5] 보통의 단순 화재도 이런 1보는 거의 매일 나온다. 검색되는 기사 중 가장 빠른 기사이자 1보 자체도 연합뉴스뿐이다. 그러기에 더욱 역설적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1보 기사.[6] 당시 현장에서 구조된 172명을 뺀 나머지.[7] 239명의 희생자를 낸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추락사고의 진실에 따라 그나마 하나 정도 내려갈 수 있다.[8] 테러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 방법으로 다수에게 상해나 공포심을 가하는 경우에 테러로 봐야 하며, 대구 참사의 경우에는 애초에 살인 등의 상해행위가 직접적 목적은 아니었다.[9] CCTV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이 상황에서도 전동차 선두부에 있던 사람들만 긴급히 대피를 하고, 전동차 후부에 있는 사람들은 화재를 전혀 짐작하지 못해, 계속 전동차 안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방화범이 탈출을 시도하고, 시민들이 초기 화재 진압을 시작하려던 시각이 53분 12초고, 전동차 선두부의 화재로 중앙로역의 1번 CCTV가 작동을 멈춘 시각이 53분 30초다. 하지만 전동차 후미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53분 35초 부터 대피를 시작했다. 나중에 이 문제는 큰 지적을 받고, 전동차의 객차간 연결통로를 완전 개방형으로 설계해 다른 객차의 상황을 최대한 빨리 알 수 있도록 만들 것을 권고해 이후 전동차 설계가 완전 개방형 연결통로를 지향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된다.[10] 자동차로 치면 시동 키다. 차키를 뽑으면 엔진이 꺼지고 라이트, 오디오, 에어컨 등등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11] 원칙상 타인이 운전실에 들어가 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기관사는 비상상황 발생시 마스터키와 제동핸들을 가지고 나가게 되어있다.[12] 원래 지하철령에 화재가 일어나면 무정차 통과를 해야 한다.[13] 중앙로역 역무원이 신고를 한 시각이 사고 4분 후인 9시 57분이였다.[14] 보통 문 옆 의자 아래나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그 안의 레버를 당기면 손으로 열 수 있는데 사고 전에 이 방법이 시민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레버 위치와 사용법에 대해서 아주 조그맣게 써놨기 때문에 관계자나 철덕, 지하철 타면서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 당시에는 비상레버 사용법이 지금처럼 전동차 문짝과 의자 옆면에 크게 적혀있지 않았고 레버 주변에만 작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당시에 국내에서 운용되던 전동차들은 유압식 문으로, 밸브 코크가 모두 의자 밑에 위치해 있어서 진짜로 방법을 아는 사람 아니면은 문 여는 비상코크가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도 드물었고 공기가 모두 빠지기 전까지 몇 초 정도의 대피 지연이 불가피했다. 참사 이후 이런 심각한 문제가 지적 받으면서, 이후엔 개방 레버가 출입문 바로 옆으로 옮겨지고 전자식 도어의 보급이 확산됐다.[15] 물론 방화 셔터에는 화재가 발생한 쪽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닫히는 경우를 대비해 문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찾는다 해도 좁은 문으로 다수가 나오기는 힘들다. 무엇보다도 화재 연기가 발생하면 시야가 극도로 차단되는데다, 사건 당시 중앙로역은 단전 상태였기 때문에 전등까지 모두 나가 문 손잡이를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다.[16] 1998년 1호선 개통 후 외환위기 등의 여파로 적자만 계속되어 2002년 기준 부채가 1조 3,316억 원에 달했으며, 공사측은 재정 적자를 해소시키기 위해 인력을 줄였다.[17] 겨울에는 이 알루미늄 시트를 열로 데워서 지나치게 차가워지는 걸 막는다. 이게 또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들한테는 엉덩이 난방으로 불리며 또 다른 민폐로 취급받는 모양이다.[18]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 행해졌다. 지하철이 늦어진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19] 예를 들어 투신자살하는 사람[20] 먼저 1호선 반월당, 중앙로, 동대구역, 2호선 문양 ~ 대실, 반월당, 정평~영대역에 설치했고, 이후 2단계에 나눠서 설치되었다. 3호선은 처음부터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되어 있었다.[21] 평상시에는 선로에서 차량이 역에 정차하며 발생하는 마찰열로 인한 더운 열기를 빨아들여 외부로 보냄으로써 승강장에 그 열기가 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겸한다.[22] 단, 이 경우 열차풍과 미세먼지, 소음을 감소시키는 기능은 하지 못하게 된다.[23] 비슷한 이유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안산 시민들 또한 해당 사고와 무관한 사람이면서도 여객선을 타는 걸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24] 이것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으로 화재가 나면서 생기는 열 때문에 공기가 데워지면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 연기도 그 바람을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화재 사고 매뉴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을 아래로 최대한 숙이고 저지대로 가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실제 사고 사례를 보면 연기가 많은 화재 사고 현장에서는 저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이 고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들보다 생존률이 높다.[25] 역에 통곡의 벽이라는 벽 너머엔 아직 일부가 남아있다.[26] 등급제가 철폐된 2019년 7월 기준으로 중증 지적장애에 해당함.[27] 다만 당시 피해자 측이 몰라서 고소하지 않았을 뿐이지 추모의 의미가 담겨 있더라도 피해자 측이 불쾌하게 여기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범인이 죽인다는 내용이 담겼더라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게임 소재로 쓰이는게 좋다고 여길까? 전쟁 참전 용사들이 괜히 전쟁 영화 안본다고 하는게 아니다.[스포일러1] 김해관의 딸 유주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이 대구 지하철 참사에 휘말려 사망했다.[스포일러2] 철수가 쓰러진 샛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장면 다음에 잠깐 나온다.[30] 원래 가사는 한 남자가 큰 사고를 당해서 곧 죽음을 앞두는 상황에서 자신의 애인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는 분위기인데, 이게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들의 당시 상황과 미묘하게 매치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노래는 참사 이전에 발매되었다.[31] 이현진 양은 이해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 계열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해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는 식전에 추도 의식을 가지고 예정된 신입생 환영 행사를 취소했고 유족은 보상금으로 서울대 측과 협의하여 장학 기금을 조성하였다. 여담이지만 이현진 양은 사망 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동생에게 '누나가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도 남겼다.[32] 現 롯데백화점 상인점이다.[33] 제작진 중 한 명이 대구에 거주했었을 때 참사가 일어나서 지하철 역인 송릉역 스테이지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고 했다. 만약 이 게임의 배경이 2018년이라 가정했을 때 15년 전이면 정확히 참사가 일어났던 해인 2003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