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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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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에 대한 내용은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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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大邱 地下鐵 慘事
Daegu Subway Incident
파일:201406102121377277_1.jpg
발생일 <colbgcolor=#fff,#191919>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2분
사고일로부터 [dday(2003-02-18)]일
유형 화재
원인 방화
범인 김대한
발생 위치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탑승인원 471명
피해 인명 사망 192명[1]
실종 6명[2]
부상 151명
차량 전동열차 12량 반소
시설 중앙로역 구조물 손상
기타 2003년 10월 21일까지
명덕역~신천역 구간 운행 중지[3]
운영기관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사고열차A 열차번호 #1079[4][A]
열차종별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1000호대 전동차
출발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곡역
종착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
사고열차B 열차번호 #1080[6][A]
열차종별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1000호대 전동차
출발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
종착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곡역

1. 개요2. 사건 발생
2.1. 사건 진행2.2. 지하철 공사 직원의 초동 대응2.3. 사건 규모 확대2.4. 결과
3. 피해가 컸던 원인4. 사고 이후 조치5. 관련 이야기6. 사고의 후유증7. 여담
7.1. 대중매체에서7.2.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7.3. 사건 이후7.4. 기타
7.4.1. 고인비하
8. 유사 사례9. 관련 문서10. 관련 매체11. 관련 문헌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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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downloa.jpg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손꼽히는 대형참사로, 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한 철도 사고이다.[8]

대한민국의 건축 안전을 성수대교 붕괴 사고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바꾸었다면, 대한민국의 철도 안전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크게 바뀌게 된다.

#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한 연합뉴스의 유일한 1보 기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라는 말만 봐서는 흔하디 흔한 단순 화재같아 보이지만 이후 방화범이 잡혔다.[9]

대한민국에서 철도 관련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사고로, 192명이 사망했다.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사고, 304명이 사망[10]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으로 많은 수치이다. 또한 이것은 191명이 사망한 대연각호텔 화재보다 많다.

지하 공간에서 불이 날 경우 정말 답없는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2. 사건 발생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당시 56세)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09시 30분 경,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송현역에서 1079열차 지하철에 올라탔다. 김대한은 송현역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 2L를 구입한 상태로 열차에 승차했다. 현재는 철도안전법 상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물질을 열차에 소지하고 탑승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그런 법이 없었기 때문에 김대한은 아무런 제지 없이 열차에 승차할 수 있었다.

한국어 위키백과, 당시 현장 검증 기사.

9시 51분 경, 1079열차가 전역인 반월당역을 출발하자 김씨는 라이터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반대편에 앉아있던 승객이 "왜 자꾸 라이터를 키는 거예요!" 라고 큰 소리로 항의하자 김 씨는 행동을 멈추려는 듯 했다.

09시 52분 경, 1079 열차가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에 있는 중앙로역에 정차하는 순간, 김대한은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다. 주변 승객들은 당황해하였고, 승객들이 그를 제지하려는 찰나, 불이 그의 옷에 옮겨붙자 놀란 김씨는 휘발유 통을 바닥에 던졌고, 불이 삽시간에 전동차 의자와 바닥 천장에 옮겨붙어 결국 수 초만에 큰 불이 발생하였다. 당시 열차는 의자부터 바닥까지 전부 불에 타는 가연재 소질이었기 때문에, 불이 번지는 데는 크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11]

다행히 당시 1079 열차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독가스가 워낙 심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승객도 많아, 1079 열차에서도 전체 사망자 192명 중 49명이 사망했다.[12]

2.1. 사건 진행

  • 09시 30분: 방화범 김대한방화를 목적으로 송현역 인근 주유소에 방문하여 휘발유 7,500원 (약 4L ~ 5L) 상당을 구입한 뒤 1호선 송현역 안심방면 승강장에서 안심행 1079열차에 탑승했다.[13]
  • 09시 52분 ~ 09시 53분: 안심행 1079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하였다. 김대한이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휘발유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불이 붙자 놀란 김대한은 휘발유 통을 전동차의 바닥에 던졌고, 수 초만에 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 불에서 나온 검은 연기, 유독성 가스가 승강장과 지하 1~2층 대합실에 급속히 확산됐고, 승객들이 주출입구 쪽의 계단을 통해 대피하기 시작하였다.[14] 1079열차 기관사는 소화기로 초기 화재 진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화재발생 사실을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은 채 대피했다. 종합사령실 기계설비사령 주컴퓨터에 중앙로역 화재경보 문구가 뜨고 경보음이 울렸으나, 종합사령실에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 09시 53분 ~ 09시 54분: "1079열차에 타고 있던 40대 남성에 의해 전동차 안에서 화재가 발생되었다"라는 내용을 최초로 대구소방안전본부 종합사령실에 신고하였고, 이후 역사 밖으로 탈출한 일부 승객들, 전동차 안에 갇힌 승객들과 휴대전화 통화를 한 가족 등이 현장의 상황을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 신고하였으며,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서는 8개 소방파출소[15]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삼덕소방파출소 등 중부소방서 및 북부소방서 휘하의 8개 소방대가 출동했다.
  • 09시 55분: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중앙로역 실제 화재입니다. 전혀 앞이 분간이 안 됩니다. 신고 좀 부탁드립니다."라며 급히 보고했으나, 종합사령실에서는 119에 신고 하지 않았다. 이후 종합사령실에서 전체 열차에 "전 열차에 알립니다.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히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 발생했습니다." 라고 열차무선 전체 호출을 통하여 통보하였다.[16] 중앙로역 역무원이 초기 소화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부 직원이 승객 대피를 유도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사건을 대형참사로 만들게 된 장본인인 안심발 대곡행 1080열차가 대구역을 발차하여 중앙로역으로 이동한다.하지만 종합사령실에서는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는 1080호 전동차 기관사에게 열차가 진입하지 못 하도록 진입 금지 지시나 무정차 통과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17]
  • 09시 56분: 대곡행 1080열차가 이미 검은 연기가 가득 차 있던 중앙로역 승강장에 도착하여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으며, 승강장에 있던 연기가 전동차 안으로 밀려들자 기관사가 즉시 출입문을 닫았다. 이후 지하 1층 지하상가로 검은 연기가 계속해서 차오르기 시작하였고, 여전히 대합실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였으며 잠시 뒤 방화셔터가 작동하여 지하상가와 대합실 사이 대피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미처 셔터가 내려가기 직전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끝내 지하 1층 대합실에 갇혀버렸다.[18]
  • 09시 57분: 전차선이 단전되면서 전동차의 전원이 끊어지며 이에 따라 전동차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 09시 57분: 1080열차 기관사가 운전사령에게 열차무선을 통해 "엉망입니다. 빠른 조치 바랍니다."라며 적절한 지시를 내려주도록 요구하였다. 운전사령은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 채 "대기하고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하라"라고 지시하여 1080열차 기관사는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라고 안내방송을 하였다. 그리고 곧 중부소방서 서문로 소방파출소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하여 인명구조를 신속히 시작하였다.
  • 09시 57분: 중앙로역 역무원이 화재 사실을 119에 신고하였다.
  • 09시 58분: 1080열차 기관사가 종합사령실에 연락하여 승객 대피 여부를 결정하여 줄 것을 요구하던 중 전동차에 잠시 전력이 공급되어 출발시도를 하였으나, 1080열차에 전력이 공급되어 기관사가 출발을 시도하면 전력이 다시 끊기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승객대피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1080열차 기관사는 전동차가 곧 출발할 예정이므로 전동차 안에 대기하도록 승객들에게 방송하였다. 이때쯤 1079열차에서 1080열차로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사이 종합사령실과 1080열차간 열차무선 통화가 두절되었다.
  • 10시 02분: 종합사령실에서 1080열차에 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중앙로역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고 1080열차 기관사에게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하였으며, 1080열차 기관사는 출입문을 개방하고 승객대피 안내방송을 실시하였으나, 1~4호차 중 일부 객차 및 5, 6호차[19] 전체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고[20] 승객들이 수동으로 출입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 전동차 안에 갇혀 있게 되었다. 결국 1080호에서는 1호차 1명, 2호차 8명, 3호차 2명, 4호차 13명, 5호차 55명, 6호차 63명으로 모두 142명이 사망했다. 이때 소방파출소 및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여 구조 활동을 시작하였다.
  • 10시 04분: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서 복현소방파출소 등 16개 소방파출소, 달서소방서, 동부소방서 등에 구급차와 물탱크차 출동을 요청하였으며[21], 지하 1층과 지하 2층 대합실에서 인명구조를 계속 실시하였다.
  • 10시 10분: 1080열차 기관사는 운전사령의 "전동차 판 내리고 차 죽이고 가라"는 지시를 받고 승객들의 안전과 대피를 확인하지 않은 채 전동차의 주간제어기 키(마스터 키)[22]를 뽑아 모든칸의 출입문이 닫혔고[23], 1080호 기관사는 일부 객실 출입문만 열어주고 대피하였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승객들은 그대로 전동차 안에 갇혀 질식해 사망하였다. 이후 1080호 기관사는 역사의 출입구를 통해 탈출하였다.[24]
  • 10시 12분: 소방본부 종합사령실에서 대구시내 병원 구급차 동원을 요청한다.
  • 10시 17분: 종합사령실에서는 더이상 다른 전동차가 중앙로역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고, 전열차의 운행을 중단시켰고, 승객들을 모두 하차시켰다. 중앙로역 역무원들은 탈출 후 모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때, 중부소방서장이 자체 비상소집 명령을 내렸다.
  • 10시 25분: 소방본부장이 경북소방본부에 구조대 및 구급대 지원 요청을 하였다.
  • 10시 28분: 종합사령실에서 전 열차의 운행중지 및 승객하차를 지시하였다.
  • 10시 52분: 소방본부장이 소방 대응 단계 광역 3호를 발령하여 해당 본부의 전 직원을 비상 소집하도록 명령하였다.
  • 11시 11분: 경북소방본부 6개 대의 구급차 12대가 지원 출동하였다.
  • 13시 38분: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었으며, 생존자들은 밖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소방대원들은 지하 2층과 지하 3층 승강장으로 내려와 본격적인 시신 수습 작업을 실시하였다.

2.2. 지하철 공사 직원의 초동 대응

1. 기관사

가. 1079호 열차 기관사
안심행 1079호 열차 기관사는 09:52:32경 중앙로역에 도착하여 출입문 개방상태에서 후사경과 CCTV로 승객 승하차 상태를 감시하던 중 하차 승객들의 동요와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운전실 밖으로 나가 1호차 객실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화재를 진화하려고 운전실에 있는 소화기를 가지고 1호차 객실로 뛰어가 객실 안 불길을 향해 소화기를 분사하였으나 소화액을 전부 분출하여도 불길이 진화되지 않고 확산되어 더 이상 화재를 진압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마지막 칸까지 뛰어가서 승객들을 대피시킨 뒤 본인도 출구로 대피하여 의식을 잃고 구조되었다. 그러나 당황한 나머지 운전사령에게 화재위치, 규모 등에 대하여 보고하지 못하였다.

나. 1080호 열차 기관사
대곡행(현재 설화명곡행) 1080호 열차 기관사는 09:55:30경 대구역을 출발할 무렵 운전사령으로부터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해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열차무선 전체호출(ALL Call)을 통하여 통보받았으나 평상시처럼 S-ATO모드[25]로 대구역을 출발하여 중앙로역에 진입하였다.

중앙로역에 진입하기 전 이미 터널 내부에 비상등이 모두 꺼져있었고, 상당거리 전방에서 역구내에 매연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였으나 큰 화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중앙로역 승강장으로 진입하면서 운전사령에 보고하기 위해 열차무선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통화가 되지 않고 09:56:45경 1080열차는 자동으로 중앙로역 상선 승강장에 정차한 후 출입문이 개방되었다.

승강장 상태를 확인하려고 운전실측 창문을 열어보니 유독가스가 극심하여 "출입문을 닫습니다. 곧 출발합니다." 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곧바로 객실출입문을 닫고 중앙로역을 출발하기 위해 FMC모드[26]로 전환하여 출발하려 하였으나 09:57:07경 전차선 단전이 발생되어 출발하지 못하였다.

곧바로 운전사령과 무선통화로 전차선 급전 및 조치를 취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09:58경 다시 운전사령과 무선통화로 승객대피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 급전이 이루어져 출발하려 하였으나 바로 단전이 되어 출발하지 못하였다.

09:59경 다시 운전사령과 무선통화에서 급전과 단전이 반복되어 전동차를 재 기동하겠다고 통화한 후 팬터그래프(전차선으로부터 전력을 받아들이는 장치)하강 및 MC Key[27]를 off한 후 잠시 대기하였다가 전동차를 기동하여 출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몇 차례 전동차 출발에 실패하자 승객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라는 안내방송을 2~3회 실시하고 10:03경 자신의 휴대폰으로 운전사령실과 통화하면서 "연기가 많이 찼으면 문 열어 놓고 안내방송을 하여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운전실 우측측면 출입문 열림 스위치(DOOS3)로 출입문을 개방하고 2회 정도 승객대피 안내방송을 하고 운전용품함에 비치된 손전등을 꺼내어 객실로 이동 중 입구에서 3~4명이 대피시켜 줄 것을 요청하여 계단입구까지 유도하고 다시 운전실로 돌아왔다.

10:10분 경 다시 운전사령실과 통화하던 중 "전동차 판 내리고 대피하라"라는 지시를 받고 MC Key를 취거하여 일부승객과 함께 지상으로 대피하였다.


2. 중앙로역 역무원
중앙로역 역무실에는 승강장을 비롯한 역구내를 감시하는 CCTV 5대가 설치되어 있고 승강장에는 상선과 하선에 각각 2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전동차가 승강장에 진입하여 승강장을 벗어날 때까지 역무실 CCTV 감시모니터에 나타나 감시할 수 있다.

또한, 화재수신반은 역구내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경보가 울리면서 화재 발생구역에 경보 등이 표시되며, LCP(현장운전취급 제어반)가 설치되어 있어 중앙로역 및 인접 역인 반월당역, 대구역을 운행 중인 열차번호와 운행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종합사령실 운전사령과의 직통전화인 사령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중앙로역에는 역무실 1개소, 매표소 2개소, 개집표소 4개소, 발매기실 3개소가 있고, 사고당일인 2월 18일에는 조책임자 1명, 역무실 모니터 감시 및 수입금관리 1명, 매표소 2명, 기기관리 1명 등 총 5명이 근무하였다.

가. 조책임자
당일근무 조책임자는 근무 직원들을 지휘감독하고 역사시설물을 관리하는 등 역의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역무실 승차권창고에서 수입금 계산을 하고 있는 모니터 감시 및 수입금 관리담당자 의 수입금 계산을 도와주고 있었다.

09:53경 1079열차의 방화로 인하여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역무실의 화재수신방으로 하선 (안심방면) 승강장 화재감지기가 동작됨을 확인하고, 때마침 역무실로 들어오던 기기관리담당자에게 하선 (안심방면)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실제로 화재가 발생되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하였다.

역무실 승차권 창고에서 수입금 계산을 하던 직원에게도 소화할 것을 지시한 후 09:55경 운전사령에게 사령전화로 "중앙로역 실제 화재입니다. 전혀 앞에 분간이 안 됩니다. 신고 좀 부탁합니다." 라고 화재발생을 보고하였으나 1079열차에서 화재가 발생되었다고 상세하게 보고하지 못하였다.

09:57경 119에 중앙로역 대합실에 실제 화재 상황을 신고하였고, 09:59경 다시 운전사령으로부터 중앙로역 신호장애로 선로전환기를 쇄정하라는 지시와 함께 전동차 안에서 화재가 났는지 물어 와 그 장소에 연기가 많아 어딘지 모르며 선로전환기 쪽으로 내려 갈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10:04경 다시 운전사령으로부터 승객들이 올라가니 안내방송을 하라는 지시를 받은 후 유독가스와 매연이 극심한 가운데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역무실로 들어와 "살려 달라" 고 하여 방독면을 씌워주었고 매연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벽을 짚어가면서 지하 1층 대합실로 올라온 후 3번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나. 기기관리 근무자
기기관리 근무자는 09:30경 제2 매표소에서 근무하다가 업무를 교대하고 역무실로 들어오던 중 역무실에 근무하던 조책임자로부터 승강장에 실제 화재가 발생되었는지 확인해 보라는 지시를 받고, 지하 3층 하선 (안심방면) 승강장으로 내려가 1079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연기가 자욱함을 확인하고 신속히 역무실로 돌아와 조책임자에게 실제 화재사실을 보고하였다.

실제 화재사실을 보고 받은 조책임자가 역무실에 있는 소화기를 주면서 발화지점으로 가서 소화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안심방면 승강장으로 달려가 1079열차 1호차 객실 안을 향하여 소화기를 분사하였으나 불길이 거세어 진화가 되지 않았다.

이후 매연과 유독가스가 급속히 번지며 주변이 암흑상태가 되어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주위사람들을 소리 등으로 안내하여 지하 2층 대합실로 대피시키고, 매연과 유독가스가 극심하여 견딜 수가 없어 매표실을 나와 미처 대피하지 못한 몇 명의 승객과 함께 손을 잡고 지하 1층으로 대피하던 중 실신하여 119에 구조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다. 수입금 관리 및 모니터감시 근무자
수입금 관리자 휴가로 수입금 관리 및 모니터 감시업무를 맡은 역무원은 역무실 내 승차권 창고에서 전일 수입금을 은행에 입금하기 위해 승차권 발매기에서 동전을 수거하여 계수기로 금액을 세고 있었다.

이 때 조책임자가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하며 역무실에 있는 소화기를 주면서 화재 발생현장으로 내려가 소화하라는 지시를 받고 불이 어디서 났는지 살피면서 하선 (안심방면) 승강장쪽 계단을 내려가려 하였으나, 계단으로 승객이 올라오면서 지하 3층 승강장에는 사람이 없으니 대피하라고 하며 자기가 화재현장을 목격하고 119에 신고하였다는 하는 승객과 함께 나오다가 지하 1층 대합실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밖으로 나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라. 매표소 근무자
제1 매표소에서 근무하던 직원은 화재경보가 울리고, 승객의 "불이야" 하는 고함소리를 듣고 매표실안에 있는 비상버튼을 눌러 개집표기 및 게이트를 모두 개방시키고, 매표실 방송장치로 승객대피 안내방송을 2~3회 실시하고 중앙로역 중간지점에 설치된 게이트 상태 확인과 매표 수입금을 정리하던 중 유독가스 및 매연으로 호흡이 곤란하여 고통을 참아가며 4번 출구로 대피하여 소방관에 의해 구조되었다.

한편, 제2 매표소에서 근무를 하던 직원은 비상게이트를 개방하여 승객대피가 용이하도록 하고 매표실내 방송장치를 이용하여 승객대피 안내방송을 하고, 하선 (안심방면) 승강장 계단 쪽으로 내려가려 하였으나 연기가 심하게 올라와 내려가지 못하고 매표소로 돌아와 상황을 파악하다가 매연과 유독가스로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벽을 짚어가며 계단을 찾아 지하 1층 대합실 기둥부근에서 의식을 잃기 직전 소방관에 구조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3. 종합사령실
종합사령실에는 열차운행 관리를 담당하는 운전사령, 전력공급 관리를 담당하는 전력사령, 종합열차제어시스템 관리를 담당하는 신호사령, 역사공조방재 관리를 담당하는 기계설비사령, 열차무선 통신시스템 관리를 담당하는 통신사령 등이 있다.

근무자는 종합사령실 전체를 총괄하는 종합사령팀장 1명과 각 사령을 책임지고 있는 담당(과장) 각 1명이 통상 근무하고 있고, 이번 사고 발생당시 운전사령실에는 9명이 1조 3명씩(주사령 1명, 선사령 2명) 3조 2교대로 근무하였고, 전력사령실에도 9명이 1조 3명씩(주사령 1명, 선사령 2명) 3조 2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설비사령실에는 6명이 1조 2명씩 (주사령 1명, 선사령 1명) 3조 2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3-1. 운전사령
운전사령은 신호 및 선로전환기의 취급과 LDP(열차운행상황표시판), CCTV 등에 의한 열차운행 감시와 통제, 선로상의 열차운행 정리, 운전사고 및 장애, 이례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긴급조치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LDP에는 1호선 전 구간 열차 운행정보가 표시되고 CCTV 22대가 설치되어 있어 각 역 승강장에 전동차 진입 시부터 벗어날 때까지 모습을 감시할 수 있다.

가. 주사령 근무자
열차운행 관리업무를 수행하던 주사령은 09:55경 대곡~중앙로역간 선사령의 "중앙로역 화재" 하고 전파하는 소리를 듣고 중앙로역 화재사실을 알았으나, 화재발생으로 인한 검은 연기 때문에 CCTV 모니터에 중앙로역 승강장 모습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 화재원인과 규모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했고, 09:58경 교대역~큰고개역의 궤도단락으로 신호제어가 되지 않아 선로전환기 수동취급 지시 및 지연열차의 운행통제를 하였다.

나. 대곡역~중앙로역간 선사령 근무자
대곡~중앙로역간 선사령 근무자는 09:55경 중앙로역의 조책임자로부터 "중앙로역 실제 화재입니다. 전혀 앞에 분간이 안 됩니다. 신고 좀 부탁합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운전사령실에 "중앙로역 화재"를 복창하여 운전사령실 근무자들에게 화재사실을 전파하였다.

화재로 인하여 발생한 검은 연기 때문에 CCTV 모니터에 중앙로역 승강장 모습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 화재원인과 규모에 대하여 알기 어려웠음으로 일단 중앙로역 부근을 운행 중인 전동차를 정차시키고 화재원인과 규모 등에 대하여 정확히 파악한 후에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여야 함에도 큰 화재가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열차무선 전체호출(ALL CALL)을 통하여 중앙로역에 화재가 발생하였으니 주의 운전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09:57경 중앙로역 상선 (대곡방면) 에 도착한 1080열차 기관사로부터 전차선 단전과 승객대피에 대한 조치방법에 대해 요청받고 무선통화로 승객 안내방송을 지시하던 중 통화가 끊어졌다.

이후, 단전구간 운행 열차 기관사로부터 단전내용을 보고 받고 안내방송을 시행토록 지시하는 등 운전정리를 하던 중 10:17경 전 구간의 열차 운행이 곤란하여 전 열차에 운행대기를 지시하였다.

다. 대구역~안심역간 선사령 근무자
대구역~안심역간 선사령 근무자는 대곡~중앙로역간 선사령 근무자의 중앙로역 화재발생 전파내용을 듣고, 09:55경 기계설비사령에게 사령전화로 화재사실 확인과 재연설비를 가동할 것을 통보하였다.

09:57경 중앙로역 조책임자에게 사령전화로 1079열차에 소화기를 가지고 내려갔는지 확인한 후 09:59경 중앙로역 선로전환기 장애가 발생되어 사령전화로 중앙로역 조책임자에게 쇄정하도록 지시하면서 전동차 안에서 화재가 났는지 확인하였으나 화재장소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10:03경 1080열차 기관사에게 전화통화로 연기가 많이 찼으면 전동차 출입문을 개방하고 승객대피 안내방송과 승강장 위로 대피시킬 것을 지시하였고, 10:06경 전 전동차에 열차무선으로 반월당~신천간 하선 전차선 단전으로 하선 (안심방면) 전동차의 정상운행이 안 되고 있으며, 상선 (대곡방면) 전동차는 정상 운행할 것과 상선 전동차중 단전전동차 및 신호현시 불능인 전동차는 사령에 통보하도록 지시하였다.

10:10경 1080열차 기관사로부터 걸려 온 일반전화 통화에서 전동차와 현장상황이 파악되지 않으면, 팬터그래프를 내리고 전동차 기동을 끄고(MC Key 취거) 대합실로 대피할 것을 지시하였다.

10:17경 전역에 열차 운행중지 및 대기를 지시하였으며, 10:28경 종합사령팀장으로부터 전동차 운행중단 지시를 받고 모든 열차의 승객을 하차할 것을 지시하였다.

3-2. 기계설비사령
기계설비사령은 각 지하철역사에 설치된 기계, 방재설비를 감시할 수 있는 컴퓨터를 통하여 기계설비의 중앙감시 및 제어기능을 수행하며 기계, 방재설비에 이상이 발생하였을 경우 응급조치 및 관련 부서에 대한 통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가. 주사령 근무자
09:00부터 1단계 구간 (대곡역~중앙로역) 설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09:30경에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사내 2층 휴게실에서 대기하던 중 10:03경 기계설비담당으로부터 화재발생 사실을 휴대폰으로 연락을 받고 사령실로 돌아와 중앙로역 시종점 본선 배기 송풍기를 수동으로 가동하였다.

대합실 및 승강장 공조기의 환기팬을 가동하던 중 중앙로 신호기계실에 직원 10여명이 고립되어 있다는 통보를 받고, 중앙로역사 패키지 에어컨을 수동 가동하고 본선급기 송풍기도 수동으로 가동하여 배기시키고, 배연팬, 공조기 환기팬이 정상 가동되는지 감시하였다.

나. 선사령 근무자
09:00부터 2단계 구간 (대구역~안심역) 설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09:30부터 주사령이 건강검진을 위해 2층 검사장으로 내려간 후 혼자 기계설비 사령 장치를 감시하던 중 09:53경 중앙로역 화재경보가 주컴퓨터에 현시되고 그 내용이 프린터로 출력되었으나,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09:55경 운전사령으로부터 중앙로역 화재발생 확인 및 재연설비를 가동할 것을 통보받고서 주컴퓨터의 화재경보사실을 확인하고 재연설비를 가동하였다.

3-3. 전력사령
전력사령은 전동차 운행에 필요한 전차선 전력과 각 역사에 필요한 전력공급 계통을 감시할 수 있는 컴퓨터를 통하여 전력공급 계통을 감시 및 제어하며 이상이 발생하였을 경우 응급조치 및 관계 부서에 통보업무를 담당한다.

가. 주사령 근무자
전력공급 계통을 감시하던 주사령은 09:57경에 영대병원~신천변전소 구간 전차선로 상하선이 영대병원변전소 반월당측 (안심방면) 과 신천변전소 반월당측 (대곡방면) 의 HSCB(직류고속도차단기: 전차선 양단에 설치되어 전력공급과 과부하 등 회로이상시 신속히 차단하여 관련 장치를 보호하는 차단기)가 개방되고 반월당변전소 직류 급전계통의 모든 차단기가 개방되며 단전됨을 확인하고 자동급전이 정상적으로 실행되는지 감시하였다.

자동재폐로(전차선 급전중 과부하 등 회로이상으로 차단기가 차단되면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차단기를 3회까지 투입하여 급전을 시도하는 기능)에 의한 급전이 실패함으로 선사령에게 신천변전소 반월당측의 차단기를 오버라이드(전차선 급전구간의 전력공급은 인접한 변전소 양단에서 공급하고 있으며, 과부하 등 회로이상으로 한 변전소 차단기가 차단되면 같은 급전구간의 인접변전소 차단기를 연계 차단시키는 기능이 있으며, 연계차단이 되지 않도록 설정함)로 절체하여 자동재폐로를 실행한 결과 영대병원변전소 하선 (안심방면) 구간은 급전하였다.

그러나 신천변전소 반월당측 상선 (대곡방면) 은 자동재폐로가 실행되던 중 짧은 시간 (17초, 33초)동안 급전이 유지된 후 다시 단전이 되면서 자동재폐로가 또 다시 이루어졌으나 실패하여 수동으로 HSCB를 투입할 것을 선사령에게 지시하였으나 급전에 실패하였다.

나. 선사령 근무자
전력공급계통을 감시하던 선사령은 09:57경 영대병원~신천변전소 구간 전차선로 상하선이 영대병원변전소 반월당측 (안심방면) 과 신천변전소 반월당측 (대곡방면) HSCB가 개방되고 반월당변전소 직류 급전계통의 모든 차단기가 개방되며 단전됨을 확인하고 자동재폐로의 과정이 정상적으로 실행되는지 감시하였다.

자동재폐로에 의한 급전이 실행되지 않아 주사령의 지시에 따라 신천변전소에 반월당측의 차단기를 오버라이드로 절체하였으나 신천변전소의 반월당측 하선 (안심방면) 차단기는 투입 즉시 개방되었고 상선(대곡방면) 차단기는 짧은 시간(17초, 33초)동안 급전을 유지하다가 개방되면서 자동재폐로가 실행되었으나 이후 다시 개방되어 수동투입으로 또 다시 급전을 시도하였으나 급전이 되지 않았다.

2.3. 사건 규모 확대

1079열차 기관사는 화재발생 이후 초기 진화에 실패하자 중앙사령실에 통보하지 않은 채 대피했고, 결국 이로 인한 지하철 사령실의 오판으로 09시 55분에 원래 역을 무정차 통과해야 했던[28] 1080열차가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했다.

게다가 중앙사령실에서 119에 신고를 늦게 했고[29], 1080열차 기관사가 출입문을 열어주었지만, 이후 마스터 콘트롤 키를 뽑고 탈출하였다. 기관사가 일부러 마스터키를 뽑고 탈출한 것이 아니고 사령실의 지시였다. #[30] 1080열차 기관사는 역사내 연기로 인해 1079열차에 불이 붙은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지하철은 가연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배웠기에(불량 내장재로 인해 화재가 커졌다) 이렇게 심각한 화재였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기에, 1080열차 기관사는 사후 안전 관리 문제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확대의 원인으로는 다음 내용들이 꼽힌다.
  • 마스터키가 뽑히는 바람에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혔다.[31]
  • 당시에는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갇힌 사람들이 많았다. 지하철 문은 보통 문 옆 의자 아래나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그 안의 레버를 당기면 손으로 열 수 있는데, 사고 전에 이 방법이 시민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레버 위치와 사용법에 대해서 아주 조그맣게 써놨기 때문에 관계자나 철덕, 지하철 타면서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32] 당시에는 비상레버 사용법이 지금처럼 전동차 문짝과 의자 옆면에 크게 적혀있지 않았고 레버 주변에만 작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당시에 국내에서 운용되던 전동차들은 공압식 문으로[33], 밸브 코크가 모두 의자 밑에 위치해 있어서 진짜로 방법을 아는 사람 아니면은 문 여는 비상코크가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도 드물었고 이 비상코크의 존재 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공기가 모두 빠지기 전까지 몇 초 정도의 대피 지연이 불가피했다. 대피 지연으로 인해 열차 안에서 호흡곤란에 빠진 승객들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탈출 방법을 알고 있던 사람이 몇몇 객차에 타고 있었기에, 그나마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예컨대 많은 인명피해가 난 1080열차의 경우 4호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 중에는 당시 철도청 공무원이었던 권춘섭(당시 금호역 역장)이 사태를 직감하고 비상 코크를 취급하여 출입문을 수동개방하였다. # 바로 옆객차인 5호 객차에서는 승객들이 수동으로 출입문을 여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승객 중 일부는 창문과 문을 부수고 탈출하였다고 한다.

참사 이후 이런 심각한 문제가 지적 받으면서, 이후엔 개방 레버가 출입문 바로 옆으로 옮겨지고 전자식 도어의 보급이 확산됐다. 하도 홍보를 많이 해서 이제는 지하철 문과 스크린도어를 수동으로 열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 방화 셔터가 일찍 닫히면서 나오려던 사람들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화재가 난 1079열차에 비해 훨씬 많은 인명피해가 1080열차에서 발생하였다. 물론 방화 셔터에는 화재가 발생한 쪽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닫히는 경우를 대비해 문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자주 이용하는 역이든 아니든 평소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라면 찾기 힘들다. 찾는다 해도 좁은 문으로 다수가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화재 당시 중앙로역은 연기가 발생하여 시야가 극도로 차단되어 있는 데다가 단전 상태였기 때문에 전등까지 모두 나가[34] 문 손잡이를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손전등 기능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당시엔 그런 기능이 없었고, 피처폰의 저열한 화면 밝기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 대구지하철공사의 거듭된 인력 감축 때문에 안전요원이 없었고, 역사 상주 직원이 4~5명뿐이었으며 안전 교육을 제대로 이수받지 못했다. 때문에 신속한 대피안내가 불가능했다.
  • 중앙로역이 이용객에 비해 규모가 협소했고 구조는 복잡했다. 역 위의 중앙대로가 당시 왕복 4차선,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정비된 현재 왕복 2차선으로 협소해 개착식으로 시공한 1호선 중앙로역은 협소할 수 밖에 없었고 지하상가가 역 중앙을 관통하여 다른 역들에 비해 구조가 복잡했다. 그런데 이용객은 참사 전 해인 2002년 기준 일평균 5만 명이 넘었다. 안 그래도 혼잡한데 화재가 발생했으니 혼란은 더 컸고 이는 대피 지연을 불러왔다.

2.4. 결과

결국 사건이 일어난 지 약 3시간 이후인 오후 1시 38분경에 화재는 진압이 되었지만, 사망 192명 (신원 확인된 사망자 185명, 인정 사망 1명, 신원 미상 사망자 6명), 부상 151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다.

* 인정사망(認定死亡)이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87조의 규정에 의거 사망의 확증(시체 확인 등)은 없지만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수난,화재,사변 등)에는 그것을 조사한 관공서의 사망보고에 기하여 가족관계등록부에 사망의 기재를 하게 됨으로써 사망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신원미상 사망자 6명 중 3명은 DNA가 파괴되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사망자였고, 나머지 3명은 DNA가 나왔으나 이를 대조할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신원 확인이 어려운 사망자였다.

현재 대구시립공동묘지에 가매장된 상태 이다.

1. 2.18 대구지하철 참사 신원확인불능 A26-ca03, A24-ca08의 묘

2. 2.18 대구지하철 참사 신원확인불능 K42의 묘

3. 2.18 대구지하철 참사 신원확인불능 K14의 묘

4. 2.18 대구지하철 참사 DNA감정 확인 미신고 K35(여)의 묘

5. 2.18 대구지하철 참사 DNA감정 확인 미신고 K05(여)의 묘

6. 2.18 대구지하철 참사 DNA감정 확인 미신고 D08-ca01(남)의 묘

성별

1. 사망자 - 186명(신원미확인 사망자 6명 제외) - 남자: 61명, 여자: 125명

2. 부상자 - 151명(법적보상 제외자포함) - 남자: 80명, 여자: 71명

연령별

1. 사망자 186명 - 0~9세: 4명, 10~19세: 30명, 20~29세: 52명, 30~39세: 28명, 40~49세: 15명, 50~59세: 28명, 60세 이상: 29명

2. 부상자 151명 - 0~9세: 3명, 10~19세: 18명, 20~29세: 38명, 30~39세: 39명, 40~49세: 30명, 50~59세: 12명, 60세 이상: 11명

직업별

1. 사망자 186명 - 무직: 29명, 학생: 47명, 가사: 26명, 자영업: 11명, 일용직: 2명, 회사원: 15명, 공무원,교사: 5명, 기타: 51명

2. 부상자 151명 - 무직: 5명, 학생: 29명, 가사: 37명, 자영업: 10명, 일용직: 17명, 회사원: 32명, 공무원, 교사: 14명, 기타: 7명

지역별

1. 사망자 186명 - 중구: 1명, 동구: 92명, 남구: 4명, 북구: 8명, 수성구: 6명, 달서구: 8명, 달성군: 2명, 경북: 48명, 기타: 17명

2. 부상자 151명 - 중구: 2명, 동구: 78명, 서구: 5명, 남구: 11명, 북구: 10명, 수성구: 6명, 달서구: 13명, 달성군: 6명, 경북: 14명, 기타: 6명

지하철이 대중교통수단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시간이 9시 53분경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바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인명피해의 규모가 컸다.

사상자 가운데 동구 주민이 가장 많았던 것은 안심역에서 출발한 1080열차에 탑승한 승객들의 인명피해가 컸고, 달서구 대곡역에서 동구 안심역으로 가던 1079열차에 동구 지역 주민들이 많이 탑승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고가 발생한 뒤 중앙로역 일대는 실종된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플랜카드를 붙히기도 하였으며, KTF와 LG텔레콤, SK텔레콤 등 통신사들은 중앙로역 기지국 데이터를 조회, 탑승객들의 마지막 휴대전화 신호 위치를 조회해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청~장년층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시기적으로 봄방학 기간이었던 점과 사고 당일 계명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가족이 함께 탑승하였다가 사고를 당한 사례가 18가족이나 되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게 하였다.

이번 지하철 사고에서는 부-모, 모-자, 처-자 등 1가구에 2명 이상의 가족이 동시에 참변을 당한 유가족이 12가구나 되었으며, 특히 두 딸을 동시에 잃었던 모친 김○○의 경우 보상합의 후 두 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제를 지내기 위해 경남에 있는 한 사찰을 찾았다가 9월 한반도 남부를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해 사찰내 요사체가 붕괴되면서 모친도 두 딸의 뒤를 따라갔다.

동시 사망자 현황

1. 부-모: 2가구

2. 모-자: 1가구

3. 처-자: 6가구

자녀

1. 딸: 1가구

2. 아들: 1가구

3. 딸·아들: 1가구


이 참사의 여파로 약 8개월간 중앙로역뿐만 아니라 명덕역부터 신천역까지 6개 역의 영업이 중단되었으며, 전 구간이 영업을 재개할 때까지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걸렸다. 이 때문에 약 1~2년 동안 대구 지하철의 이용객은 반 이상 감소했다. 또한 중앙로역 구조물 안전문제가 제기되어, 중앙네거리 국채보상로 교차점을 제외한 중앙대로 대구역 - 반월당 구간[35]이 전면 통제됐다. 이로 인해 시내버스들은 계산오거리 혹은 봉산육거리로 우회 운행했으며, 402번의 경우는 아예 북성로 구간을 포기하고 한때 한일극장으로 다녔다.

파일:attachment/대구 지하철 참사/info0031.jpg

또한 이 사고로 전동차는 완전히 불에 타 고철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불에 녹아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사고 뒤 공개된 차량 내부는 시꺼먼 재와 고철만 남아있어 사고 당시의 참상을 잘 대변한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화상보다는 유독가스에 의한 기도화상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되지만, 그렇다 해도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유해들은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승객들이 유독가스 때문에 일차적으로 실신해 대피하지 못하는 동안 1080호 전동차로 불이 완전히 옮겨붙어 결국 시신 자체가 온전하게 남아있지 못할 만큼 전소되어 버린 것이었다.[36] 심지어 뼛가루조차 못 찾아 들고 있던 지팡이 하나만으로 사망이 인정되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대구 지하철 참사/info0051.jpg

3. 피해가 컸던 원인

  • 부실한 사회 안전망과 저급 전동차
    대중교통수단인 전철의 객차가 화재에 매우 취약한 가연성 재질인 폴리우레탄 폼 재질의 시트, FRP 소재로 구성된 내장재, 폴리염화비닐 재질로 된 내부 통로 자바레 및 바닥재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특히 시트가 빠른 속도로 불에 타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발생시켰다. 거기다 당시 열차차량에 대한 소방안전대책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고작 소화기 비치가 전부였고 객차의 경우 건축법, 소방법 및 전기사업법 등 각종 규제나 안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건임에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기관사와 종합사령실 관계자 몇 명 정도만 과실과 직무유기로 처벌되는 수준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또한 1993년 대구지하철공사에서 매입한 전동차량의 단가는 1량 당 5억 원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낙찰 이후 예산부족을 이유로 대금을 더 삭감하였다. 이는 전동차를 부실한 재질로 제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선진국에 수출하는 전동차의 단가는 약 17억, 서울 및 부산, 인천 도시철도의 단가는 약 8억이었던 것에 비해 무척 싼 가격이었다.
  • 열차 내장재 문제는 이 사고가 업계에 준 가장 크고 뼈아픈 교훈이었던 만큼, 당시 개통을 목전에 두고 있던 광주 도시철도 1호선과 가장 먼저 내장재 개조에 착수한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을 필두로 전국의 모든 도시철도 및 광역철도들이 2003년 말부터 2006년까지 내장재를 불연재로 교체했다.
  • 열차 내 안전교육의 미비
    지금 우리가 지하철을 탈 때 거의 필수요소급 BGM처럼 듣는 "전동차 상단에 출입문 비상취급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라는 방송도 이 사고 이전에는 없었다. 참사 당시에 비상시 대응 매뉴얼이 홍보 및 숙지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참사의 규모를 키운 큰 원인으로 지적받았고, 열차 내장재와 마찬가지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 지금의 철저한 차내안전교육에 이른다.
  • 휘발유를 함부로 판매하는 안전 불감증
    사건이 발생하기 전, 김대한은 방화를 목적으로 주유소를 방문하여 자동차 세척용 샴푸통 용량 4리터의 흰색 플라스틱 통에 휘발유를 구입해 갔다. 한편, 주유소 측에서는 정확한 사용목적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인화성과 폭발 위험이 높은 휘발유를 적절하지 않은 용기에 담아 판매함으로써 사건이 일어나는 데 한 몫을 한 셈이었다. 석유관계법에 따르면 자동차용 휘발유는 절대로 변형된 방법으로 임의의 용기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적발될 경우 해당 주유소에 강력한 행정 처분이 내려지게 된다. 그렇지만 기름보관용 플라스틱통에는 휘발유는 20리터까지, 경유는 30리터까지 구매&운반이 가능하다.

4. 사고 이후 조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건축 안전 시스템을 바꾸었던 것처럼, 이 사건 이후로 철도 안전 시스템 자체가 대수술을 거쳤다고 할 만큼 개선되었다.

사고 다음날 조해녕 당시 대구광역시장과 대구지하철공사는 명덕역부터 신천역간 열차운행을 중단하였고, 운행이 정지된 구간에는 셔틀버스를 운행시켰다. 정부는 대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고, 당월 25일 대구광역시 당국은 윤진태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사장을 해임시키면서도 그 다음날 시청 공무원, 지하철 종사자, 대민지원육군 병력들을 동원해 현장 및 월배차량기지로 실려온 사고 열차들을 물청소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해 유족들과 주변인들을 기겁하게 만들고 분노케 하였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도 사건 현장을 인간 띠로 둘러싸기도 했고, 안심차량기지 쓰레기 더미까지 뒤져 유해 14구의 일부와 유류품 146개를 수거했다. 한편 대구시는 이 논란에 대해 "물청소 안 했다"라던가, "청소는 유가족이 동의했다"라고 둘러대듯 해명했지만, 전부 거짓이었다.

이에 여론은 조해녕 시장의 퇴진을 요구했으나, 그의 소속 정당이자 자성론을 내세우던 한나라당은 이를 '마타도어(흑색선전)'로 일축했고, 지역 유력 일간지 매일신문도 칼럼 잃어버린 8년을 통해 대구 유니버시아드까지 들먹이며 참사 책임소재 및 구조적 문제 규명을 '진보적 시각'이라고 보며 철 지난 색깔론을 주장했으며, 매일신문 사장 정재완 신부(니꼴라오)까지 유가족 농성에 대해 "미국 같았으면 총 맞아 죽었다"라고 비난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또한 방화범 및 기관사, 종합사령실 직원 등 지하철 관련자 8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게다가 이 당시 비상시 매뉴얼은 장식밖에 안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이에 대해 각자 책임질 건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참사에 직접적인 이들만 처벌됐을 뿐[37], 안전에 취약한 역사를 건축하고 인력을 감축시킨[38] 시 당국 및 대구지하철공사는 처벌을 비껴갔다. 참사 당시 중앙로역 검수, 통신근무자, 청소원 등 현장근무자 7명이 숨졌음에도 말이다. 그나마 윤진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이 시설 청소로 인한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04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대구지하철노조는 지하철 시설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역사상 첫 파업을 벌여 안전요원 확충, 전동차 내장재 교체, 안전방재시설 확충 등 특별단체교섭을 달성해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의 반응은 부정적이었고, 검찰은 해당 파업이 노조의 본래 목적과 무관했다며 이원준 노조위원장을 붙잡아 형사처벌했다. 2004~2005년에도 2호선 인력감축이 안전에 역행한다 하여 2차례 파업을 전개했다가 이후 조합원 13명이 해고되었다. 다행히 2014~2015년에 8명이 복직됐지만 4명은 아직 복직되지 못하고 있고, 나머지 1명은 2012년에 이미 폐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동시에 부산, 인천지하철노조도 지하철 안전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자 서울지하철이고 부산지하철이고 인천지하철이고 할 것 없이 부랴부랴 차량과 시스템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당시 굴러다니던 차량들은 유독성 가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연재 시트를 전부 뜯어내고 알루미늄 시트로 바꾸었으며 그 이후로 제작하는 신형 차량들의 경우에는 난연재가 사용된 시트가 채택되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나중에 난연재 모켓 시트를 알루미늄 시트 위에 덧붙였다.[39] 참고로 이 당시에는 이미 한국의 전동차 제작사가 불연재로 제작된 차량을 외국으로 수출하던 상황이었다. 한국 철도회사들은 고작 원가 절감을 이유로 불에 잘 타는 내장재를 사용했던 것이다. 사실 객차 내장재는 불연재를 사용하는 것이 참사 이전부터 원칙이었으나, 이걸 지키는 국내 철도회사는 상술했듯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는 불연재 교체 시에도 나타난 문제인데, 푹신하고 앉기 편한 난연재/불연재 소재도 있는 반면 딱딱한 시트나 아예 쇠로 된 불편하지만 가격이 싼 소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전국 지하철 내의 '테마열차' 투입이 거의 없어졌다. 이전만 해도 지하철에서는 가끔 특수하게 책을 끼워서 이동하는 도서관 열차나 불교 연등 장식을 한 봉축열차를 운행한다거나 하여튼 별의별 신기한 한정 열차를 굴렸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 이쪽도 불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 탓인지 사건이 일어난 뒤 한동안 테마열차 운행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경의중앙선도서관 열차와 같이 테마열차가 재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건 이전만큼은 못하다. 주로 외관이나 내부에 간단히 스티커만 붙이는 정도다.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의 경우 연말연시마다 새해 이벤트 열차를 운영하는데 여기에 헬륨풍선과 천장 장식물 등 온통 불에타면 유독가스를 내기 딱 좋은 것들로 꾸며놨다가 공사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정신 못차렸냐며 민원이 올라오는 바람에 2021년부터 랩핑만 하는 등 규모가 축소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광고 래핑 소재가 가연재인 경우가 있다. 개인업체에서 광고열차 계약을 맺는 경우 업체 주관에 따라 해당 열차에 대한 광고물 랩핑 소재부터 형태까지 결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 등의 지하철 운영 주체의 확인이 없는 상태에서 원가 절감을 위해서 가연재 랩핑을 사용하는 것이다. 관련영상 래핑 소재가 가연재라도 나머지 부분은 불연재기 때문에 불이 번지지는 않겠지만, 래핑 부분이 타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역사 내에 인공암반 소재를 사용한 모든 도시철도역((예)충무로역)의 인공암반을 철거 리모델링 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력이 컸다. 인공암반이 화재 시 유해물질을 발생 시킨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고 울퉁불퉁한 구조로 인해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우왕좌왕하며 머리를 부딪혀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유사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객실 내, 역사 내 안내 방송과 안내 영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승객들의 인식 수준도 높아졌고 출입문 수동 개폐 요령이나 소화기 사용 방법 등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전에 매우 작게 안내되어 있던 비상시 문 개방 방법도 크게 문이나 문 바로 옆 좌석 위에 붙게 되었다. 서울지하철에서는 운행 시간 중 일부를 할애하여 특정 역에 지하철을 멈추고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 수동 개방 방법을 시연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40] 이후 설치되는 스크린도어에도 비상 개방 레버를 크고 눈에 띄기 쉬운 색으로 만들고 비상시 사용할 수 있음을 알리는 문구를 붙였고 화재를 대비해 방독면과 산소통, 손전등이 다수 비치되었다. 화재시 비상 탈출 경로 안내문도 추가로 역마다 부착되었다. 플랫폼의 영상장비에는 역에 비상 정차했을 때나 터널에서 비상 정차했을 때 탈출하는 방법 영상을 주기적으로 상영해주고 있다.

한편, 참사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은 역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승객들이 승강장의 안전선 밖으로 넘어가거나 안전펜스에 손을 대는 행위를 엄금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승강장을 순찰 중이던 사회복무요원이 즉각 제지한다. 사회복무요원이 없을 경우 역무실에서 방송을 통해 제지한다. 그러나 작정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41]은 즉시 제지할 수 없기 때문에 2017년 대구 도시철도의 전 역사에 모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다.[42]

지하역사의 스크린도어의 경우 우리나라의 역사들이 건설된 것이 스크린도어가 도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제연(除燃)설비가 승강장 상부에서 공기를 공급하고, 하단의 선로 쪽에 공기를 빨아들이고 외부로 배출하는 방식[43]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게 되면 연기를 승강장과 선로로 분리, 격리는 가능하게 되지만 승강장에서는 외부 공기를 공급하기만 하고 발생하는 연기를 역사 외부로 배출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반대로 선로에서는 공기를 그냥 빨아들이기만 하는데, 흔히 생각하기에는 공기를 외부로 빨아당기면 끝인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되면 공기의 압이 낮아져서 연기가 외부로 빨려가는 양이 적어지므로 비효율적이며, 정상적인 제연설비는 효율성을 위해 외부공기를 공급하고, 연기를 배출하는 2개가 한 세트로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 역사의 스크린도어의 경우 상단부가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44] 이 점이 사쿠라기초 사고를 겪은 일본이 스크린도어를 적극적으로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하더라도 난간형 형태만 고집하는 이유라고들 한다.[45]

이 점을 감안했는지 대구지하철의 스크린도어 내부(열차측) 비상개폐 레버는 어두워진 상태에서도 식별이 쉽도록 형광색으로 되어있고 비상 개방 방법에 대한 표지가 A4 반절 수준으로 일반 종이 형태로 손잡이 옆에 작게 붙어있는 서울교통공사 등지와 달리 상당히 눈에 잘 띄고 형광색으로 비교적 크게 붙어있다.

그리고 화재 발생시 역사 내가 정전으로 앞이 안보인 점을 감안하여 출구 계단마다 축광(야광) 유도 표지판[46]을 붙여 놓아서 화재와 같은 비상시 정전으로 모든 등이 소등 된 상태에서도 쉽게 탈출할 수 있게 하였다.

5. 관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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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고의 후유증

살아남은 사람들도 가스 노출에 의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 가스 자체의 유독 성분도 문제지만 고열의 가스로 인해 피부와 호흡기에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전신화상도 살아남아도 고생이다. 그리고 설사 몸에 아무런 이상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들이라 해도 후일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목숨이 왔다갔다 했던 당시의 충격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생하고 있다. 2003년 3월 21일 다큐 '병원 24시' 영상

그렇기에 사고 희생자들과 그에 관계된 유족들은 현재까지도 이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자들은 대부분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이 발생한 사람, 우울증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 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아닌 대구 시민들 중에서도 지금도 특히 중앙로역을 포함해서[47] 지하철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7. 여담

  • 이 사고 이후 대구광역시에서는 사고일인 매년 2월 18일추모 행사를 하고 있는데, 20[age(2000-01-01)]년 현재는 [age(2003-02-18)]주년이 되었다. 9주년인 2012년에는 한겨레21에서 특집으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이후의 삶을 기사화했다.("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 반면 추모사업은 국민성금으로 조성된 특별위로금 운영과 유족회 출연기금 등을 두고 유족들이 갈등하는 등 한동안 난항을 겪다가 2016년 '218안전문화재단'이 세워졌다.
  • 사건 이후 전 국민이 발벗고 나서서 참사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금을 수없이 보냈으며, 인터넷에서는 전년도에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 마크를 이 사건에서도 추모의 의미로 많이 사용했으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노란 리본처럼 그 당시에도 추모의 의미로 많은 시민들이 '근조'(謹弔)라고 새겨진 검은 리본을 달았다.
  • 이때 대한민국의 대량살상 기록이 갈아엎어졌다. 김대한이 갈아엎은 이 기록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까지 11년 2개월간 대한민국의 최대 인원이 대량살해당한 사고로 남았다.
  • 대구지하철 사고 유족 중 한 명은 2017년 다음 스토리펀딩 <재난참사 없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이후 책 <재난을 묻다>로 출판)에서 해당 사고에 대해 '인간사회는 서로간 신뢰가 중요하다'고 전제하며 국민들을 속게 하는 행정 및 정치가 계속되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뼈 아픈 교훈을 전했다.
  • 사건 당시 대구를 연고로 하고 있던 대구 동양 오리온스 농구단은 19일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홈 경기가 있었다. 사건 이후 대구광역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고, 5일동안 시민애도기간을 정한 상태였다. 이에 동양은 몰수패를 각오하고 경기를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경기를 진행했으며, 대신 치어리더 등의 응원 없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74:82로 LG의 승리. 이리하여 동양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잃어버린 15초 사건으로 인해 통합 우승은 놓치게 된다.
  • 이 후 K리그안양 LG 치타스 서포터들이 대구 FC와의 경기를 앞두고 게시판에 '불전동차' 라는 지역 비하 발언을 하면서 네티즌의 항의가 폭주하며 안양 레드 치타스 홈페이지가 마비되자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와 대구·안양시청 홈페이지, 안양LG 축구 치타스홈페이지 등 인터넷 게시판까지 항의와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서포터즈 측이 사과문을 올렸다.
  • 사고 발생 3년 후인 2006년에는 반월당역에서 서문시장역으로 운행중이던 대구 지하철 2호선 열차에서 화재 경보기가 오작동 되었던가 하면#, 반고개역을 출발한 전동차가 터널 안에서 멈춘 뒤 갑자기 전동차 내의 조명이 모두 꺼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고#, 동대구역을 폭파해버리겠다는 신고가 접수돼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며#, 수성구청역 지하 2층의 환기실에서 짧은 시간동안 많은 연기가 발생해 승객들이 대피하고 소방차까지 출동하는 일이 빚어지는 등# 대구 지하철 참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대구 시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사고들이 유난히 많이 발생했다. 대구 이외의 지역에서도 2006년 상반기에 총 3건의 화재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이중 부산 지하철 경성대·부경대역과 서울 지하철 인덕원역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하기도 했다. ##
  • 당시 뉴스를 보면, 사고가 난 후 다른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지하철 창문을 깨고 나가거나 선로를 따라 대구역 등 인근 역으로 걸어가서 대피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거의 모두 부상 하나도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48] 사고가 일어난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은 화재 흔적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상태지만[49], 사고 당시부터 2년 6개월을 넘는 시간 동안 해당 역 근방의 지하도 전체에 굉장한 어떻다고 표현하기 힘든 냄새가 흘러넘쳤으며, 그와 함께 통행인의 수는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 있다고 추정된다.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당연하고, 지하도는 상당한 시간 동안 스산한 분위기에 유동 인구마저 상당히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로 참사의 흔적이 이어졌다.
  • 피의자 김대한은 당시 화상을 입어 달아나던 중 북구 노원동3가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범죄 사실이 드러나 검거, 구속되었다. 그는 마치 정신 이상처럼 굴려는 듯 진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사고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 우려도 나왔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에 의하면 정신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심신장애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1심에서 현존전차방화치사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2심에서 감형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 이후 상고를 포기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가, 2004년 8월 30일 지병인 호흡 곤란과 뇌졸중으로 급사했다.
  • 김대한은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반신, 하반신 모두 장애가 와서 지적장애 2급[50]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의 방화 사유는 심한 우울증 후 정신 질환이 심해진 데 따른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중부경찰서에 출두하여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병인 뇌졸중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 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김대한의 직계 가족은 사건 이후 곧 경북 지역을 떠났다. 친척들도 이쪽 집안은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한다.
  • 2013년 2월 15일, 김범일대구광역시장은 참사 10주년을 앞두고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도시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
  • 참사 10주년이 되는 날인 2013년 2월 18일, 대구 각지에선 추모 행사가 열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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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 12주년 추모벽이 중앙로 역 지하 2층에 마련되었다고 한다. 국민성금 5억 2,000만원을 들여 길이 27m, 폭 3m, 340㎡ 넓이로 조성되었으며, 추모 공간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벽과 사건 당시 불에 그을린 벽과 그리고 화재의 열기에 수화기가 녹아내린 공중전화, 당시에 있었던 매점, 혈압측정기, 물품 보관함, ATM기와 희생자의 유류품 등도 전시하고 있다.
  • 이 사고로 인해 PTSD라는 질병이 양지에서 공론화되었다. 이전에도 5.18 민주화운동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처럼 PTSD 환자가 많이 발생한 사건사고는 많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당시 신경정신과) 상담 자체가 터부시되고 의지드립이 난무하던 분위기상, 피해자는 상처를 숨겨야 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해 PTSD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여 후대의 참사 처리에 있어 PTSD 치료는 외적 부상 치료 이후에 반드시 행해지는 치료로 자리잡았다.
  • 2014년 8월에 대구광역시의 한 취객이 문재인 당시 의원을 죽이러 간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가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해선 열심히 뛰면서 정작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에도 유족들을 비밀리에 도왔음이 유족 중 한 명인 박성찬 씨에 의해 알려졌다. 기사 1 기사 2
  • 이 사건으로 금고 5년을 선고받은 기관사 최상열 씨는 2008년 만기출소 후, 설령 그 때로 돌아간들 다시는 전동차에 오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51]
  • 불에 타 전소된 전동차 12량 중 9량은 고철로 판매하였으며, 1량은 2007년에 대구안전테마파크에 안전 교육용으로 조성되었고, 나머지 2량은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현재까지 대구 안심차량기지에 천막에 씌워진 채 방치되어 있다. 원래 1818호만 대구안전테마파크에 기증하고 나머지 11량은 파주에 고철매각하려고 했으나 유족들의 반대로 1130호, 1730호는 사실상 안심기지에 방치 중이다.
  • 매년 2월 18일 사고 발생시간에 중앙로역으로 도착한 전동차는 추모의 의미로 5초간 경적을 울린다. 영상
  • 2022년 2월 19일 대구 FC 홈개막전에서 팬들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추모하는 내용의 걸개를 내걸었다.#

7.1. 대중매체에서

  • 2003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동년 2월 22일, 5월 31일 각각 방영되었으며 해당 내용의 요약본이 유튜브에 공개되었다. 영상
  • 2007년 감우성, 최강희 주연의 옴니버스 영화 <내 사랑>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사고 장면이 나온다.
  • 홍승우비빔툰에도 이와 관련된 8행시를 그리는 에피소드가 연재되었는데 단행본으로는 5권에 실려있다.
  • 윤인완이 스토리를 쓰고 김지혁, 유현, 변병준, 최경아, 서문다미, NANO, 요요 등이 작화를 맡은 단편집 문화 컨텐츠의 이해 (2010) 2부 "동화" (작화: 변병준) 편은 최면 치료를 받고 당시의 기억을 지워버린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작품을 통해 실제 사건을 컨텐츠화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에서도 대구 지하철 탈출이라는 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학교 탈출 같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뒤에서 방화범(파이어뱃) 역할의 플레이어가 쫓아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건물과 미네랄을 뚫고 도착 지점까지 가는 것으로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제작 의도가 고인드립이 아닌 본 사건에 대한 분노감이기도 하여 굳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맵에 따라서 마지막에 방화범(김대한)과 방화범 어머니까지 죽일 수 있게 되어있다.[52]
  • 국산 쯔꾸르 게임 동결세계의 주 배경이기도 하다.
  • 이 사고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가사에서 이 사고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54] 한때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 행사에도 추모곡 용도로 쓰여서 유명해진 노래가 지금도 가끔 추모곡 용도로도 들리곤 하는 M.C The Max1집 음반의 후속곡인 <마지막 내 숨소리>라는 곡이다.
  • 2020년 11월 4일 유퀴즈온더블럭에 당시 화재 감식 및 신원 확인을 했던 법과학자가 출연했다. 영상 바로 다음주인 2020년 11월 11일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진입했던 소방대원이 출연했다. 영상
  • 2021년 5월 2일 알쓸범잡 5화에서 이 참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영상

7.2.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

각종 매체들을 통해 희생자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대화하던 내용들이 알려져 눈시울을 적셨다.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오늘 하루 보고 싶어도 쬐금만 참아요.」
  • 사고 발생 7분 전(오전 9시 46분) (사고 발생 9시 53분) 예비 신부 송혜정이 예비 신랑 이호용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
  • 사고 발생 4분 전(오전 9시 49분) 김인옥이 남편 이홍원에게 한 통화기록 중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 사고 발생 3분 전(오전 9시 50분) 서동민이 선배 송두수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 오전 9시 54분(사고 발생 1분 후), 대학생 딸이 어머니 김귀순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 오전 10시 01분(사고 발생 8분 후) 김인옥과 남편의 통화기록 중

"역에서 불났다고 지금 바로 신고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알았지? 오빤 괜찮으니까."
  • 오전 10시 02분(사고 발생 9분 후)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오빠가 급한일이 생겨서 어디 좀 다녀와야 될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들어가. 알았지?사랑해
  • 오전 10시 11분(사고 발생 19분 후), 이성운이 여자친구에게

"만약 내가 내일 당장 없다면 넌 어떻게 할거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ㅎㅎ
  • 10시 14분(사고 발생 21분 후), 고등학생 이미영이 여동생에게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 간다. 할렐루야...아멘"
  • 10시 22분(사고 발생 29분 후), 서부교회 집사 김창제가 부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엄마 나간거죠? 난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마요. 사랑해"
  • 10시 43분(사고 발생 50분 후), 함께있던 아들 손준호가 탈출에 성공해 생존한 모친 박현자에게[55]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 개신교 모임 강사 허현이 강사 강지현에게

"아... 안 돼... 안 돼!"
  • 오전 9시 58분(사고 발생 5분 후), 이현진이 어머니에게.[56]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 장계순과 딸 이선영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 아들 박정순이 노모 황점자에게. 이날 그는 직장을 얻으러 가는 중이었다.

"여보! 나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네. 건강하게 잘 지내"
  • 남편 오승유가 아내 김민정에게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 어머니 최금자가 아들에게

"아빠 뜨거워 죽겠어요..살려주세요".
  • 아들 정민회가 아버지에게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가스도 해주려고 했는데..미안.. 내딸아, 사랑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오늘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오빠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냐. 그리고 기다리지마 나 안간다."

"너 정떨어진다ㅋㅋ 우리 그냥 헤어지자 ㅋㅋ"
  • 죽음을 예감한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걸 연인이 알면 슬퍼할까봐 일부러 기분 나쁘게 이별 메시지를 보낸 것.

7.3. 사건 이후

팔공산에 위치한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당시 불에 탄 1079열차 전동차 몇 량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건을 가정해서 인체에 무해한 짙은 연기를 뿌려놓고 당시의 사건을 체험할 수 있다. 사족으로 대구경북지방병무청 소속의 사회복무요원소양교육을 받을 때 두 반 중 한 반이 이 곳으로 견학을 갔었고 나머지 반은 포스코로 견학을 갔었으나 2016년 3월부터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에 위치한 사회복무연수센터에서 4박 5일(3박 4일) 합숙교육으로 변경되어 더 이상 견학은 가지 않는다.

2013년 2월 7일에는 대구도시철도공사 임직원들이 참사 10주년을 앞두고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방문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지난 10년간 중앙로역 화재 참사와 관련된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한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관련 기사

7.4. 기타

  •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해 지하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57] 이 때문에 지하철을 도시철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다.[58]
  • 이전에 벌어졌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달리 대구 지하철 참사 때는 휴대전화가 도입된 이후였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통한 위치추적 시스템으로 실종자, 사망자를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휴대전화 보급율이 현재처럼 높지 않았기 때문에, 휴대전화가 없던 노년층이나 학생 등 상당수 승객들의 유족들은 CCTV로 해당 열차에 탑승했음을 증명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59] 때문에 당시 중앙로역에는 실종자들의 인적사항과 당일 행적들을 적은 실종 포스터들이 빼곡히 붙어있었다. 이 후 휴대전화 보급율이 100% 넘어가고 모바일이 발달된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는 실종자들의 탑승 여부와 위치 확인이 즉각즉각 가능해져, 이러한 광경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7.4.1. 고인비하

  • 디시인사이드[60],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는 대구를 비하할 의도로 불에 탄 희생자들을 통구이로 빗대거나, 범인인 김대한을 통구이 요리사인 머한셰프라 지칭하는 고인 모독 발언과 지역 비하 발언을 했었다. 이것 때문에 리그베다 위키에서도 영향을 미쳐 패드립 관련 내용 추가를 두고 위키게시판 내에서 토론과 편집 분쟁이 격하게 일어나 최종적으로 영구 동결처리까지 갔고, 패드립 관련 내용은 독립 문서로 작성금지됐다.
  • 래퍼 창모는 2013년 공개한 믹스테입 '돈 벌 시 간'의 수록곡 'Dopeman'의 가사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를 이용해 비하하여 구설에 올랐다.
  • 2014년 극우 유튜버 윾튜브로 잘 알려진 극우 페이지 유머저장소가 과거 일베의 통구이 발언에 동조하여 타요전철 드립을 친 것이 밝혀져 큰 논란을 겪었다.
    {{{#!folding 【내용 보기】
    파일:풍동(윾튜브) 대구 지하철 참사 비하.jpg}}}
    타요전철의 의미는 '전철이 (불에) 타요'라는 의미이며, 사진 속 셰프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대구 지하철 참사의 범인 김대한이고 통칭 김머한 셰프라고 부르며, 그가 요리사가 되어 대구 시민들을 통구이로 요리해 버렸다는 의미의 조롱을 하고 있다.

8. 유사 사례

1989년 6월 4일 러시아에서 가스폭발로 우파 철도 참사가 일어나 585명이 사망하였다. 이는 철도 화재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으며, 역대 두번째로 사망자를 낸 철도 사고다. 하지만 이 사고는 가스폭발로 일어난 참사다.

1995년 10월 28일 바쿠 지하철에서 화재가 나 289명이 숨졌다. 다만 이 사고 역시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방화로 인해 일어난 것은 아니고 전기 오작동으로 인해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바쿠 지하철 화재 참고.

2004년 1월 5일 홍콩 MTR 췬완선 열차가 애드미럴티역 진입 도중 유사한 화재가 났으나, 불길은 10여분 만에 꺼지고 부상자 14명을 빼곤 인명피해가 없었다. 과거 대구지하철과 달리 1973년 개통 시기부터 차체를 일찍이 불연/난연재로 한 덕이라 피해가 적었다.

2005년 1월 3일 서울 지하철 7호선에서도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이 당시 전동차는 아직까지 불에 잘 타는 가연재 재질이었던 탓에 하마터면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번질 뻔했다. 광명사거리역에서 1차 진화를 했지만 종착역인 온수역까지 오는 10여분 동안 불씨는 가연성 소재에 남아 지하철 내부를 태웠고 소방차가 온수역에 도착하기 전 5분간 객차 8량 중 3량이 반소되거나 전소되었다.[61] 이 당시에도 전동차가 가연재 소재였던 탓에[62] 피해가 크게 확산될 수 있었지만[63]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다.[64]

2014년 5월 28일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이 있었지만,[65] 다행히도 모두 전원 무사히 대피하였고, 조기대응에 성공하여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9. 관련 문서

10. 관련 매체

11.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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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중 185명은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에게 유해를 전해 줄 수 있었지만, 시신이 완전히 소실된 3명, DNA는 확보했으나 연고자를 찾지 못한 3명은 미신고자로 남아있다.[2] 사망자는 시신이 없더라도 사망이 인정되었지만, 이때는 사망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다. 시체를 찾지 못하는 사망자인 셈이다. 그리고 시신은 있는데 훼손 상태가 심하여 신원 확인은 물론이고, 더욱 심한 경우에는 성별마저 판별이 불가능한 시신도 존재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신원 확인이 안 되어서 코드명으로 있다.[3] 10월 21일 이후로는 중앙로역은 패널로 막은 상태로 무정차 통과하는 식으로 운행을 재개했으며, 중앙로역 복구는 동년 12월 31일이다.[4] 118편성[A] 따로 결번 처리는 하지 않았고, 현재도 같은 번호를 설화명곡발 안심행/안심발 설화명곡행 열번으로 사용 중이다.[6] 130편성[A] [8] 역대 지하철 사망자 수 1위를 기록한 사고는 바쿠 지하철 화재이다.[9] 검색되는 기사 중 가장 빠른 기사이자 유일한 1보 기사다.[10] 당시 현장에서 구조된 172명을 뺀 나머지.[11] 당시 CCTV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최초 발생 이후 불이 플랫폼까지 번져 CCTV가 나가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1분도 안 되었다.[12] 1079호 객차에서 발견된 사망자는 0명이지만, 1079호에서 빠져나온 승객들중 대합실이나 승강장에서 질식해 사망한 승객수가 49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1080호 승객들이다.[13]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면 기록하는 원인이 되었다. 휘발유를 구입한 사람이 방화를 저지르면 판매한 사람은 도움을 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14] CCTV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이 상황에서도 전동차 선두부에 있던 사람들만 긴급히 대피하고, 전동차 후부에 있는 사람들은 화재를 전혀 짐작하지 못해, 계속 전동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방화범이 탈출을 시도하고, 시민들이 초기 화재 진압을 시작하려던 시각이 53분 12초고, 전동차 선두부의 화재로 중앙로역의 1번 CCTV가 작동을 멈춘 시각이 53분 30초다. 하지만 전동차 후미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53분 35초부터 대피를 시작했다. 나중에 이 문제는 큰 지적을 받고, 전동차의 객차간 연결통로를 완전 개방형으로 설계해 다른 객차의 상황을 최대한 빨리 알 수 있도록 만들 것을 권고해, 이후 전동차 설계가 완전 개방형 연결통로를 지향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15] 현재는 개칭된 119안전센터의 과거 명칭.[16] 하지만 이 조치는 화재현장에 그냥 들어가라.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라. 라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종합사령실의 초기대응 실패로 인해 다른 열차가 중앙로역 승강장으로 들어왔고, 결국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하는 원흉이 되었다.[17]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후속열차 진입을 무조건 막야야 큰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다.[18] 셔터가 내려와도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비상문이 설치되어 있지만, 당시 검은 연기와 유독성 가스가 발생해 앞을 분간하기 힘들어 찾기 더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되고, 사람들은 아비규환 속에 탈출구를 찾지 못하였다.[19] 5호차와 6호차는 맨 처음 불이 난 1079호 1호차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기계설비 오작동으로 인해 5호차 승객들이 옆 객차인 4호차로 넘어갈 수도 없는 상태였고, 4호차와 5호차 사이 주요 배선이 화재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결국 주요 기계 설비가 작동하지 않아 기관사의 어떤 조치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5, 6호차에서는 1080호에서 가장 많은 118명이 사망했다.[20] 4호차 또한 화원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출입문이 거의 대부분 열리지 않았으나 당시 4호차 객차에 철도청 소속 권춘섭 금호역장이 함께 탑승해 있었고, 미리 상황을 인지한 권춘섭 역장이 미리 비상탈출개폐장치를 개방하였기에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21] 사실상 광역 2호 발령[22] 자동차로 치면 시동 키다. 차키를 뽑으면 출입문이 닫히고, 엔진이 꺼지고 라이트, 오디오, 에어컨 등등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다.[23] 화재 진압후 1080호 열차가 발견되었을때는 1호차와 4호차 출입문만 열려 있었다고 한다.[24] 원칙상 타인이 운전실에 들어가 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기관사는 비상상황 발생시 마스터키와 제동핸들을 가지고 나가게 되어있다.[25] 반자동 열차운전. 열차의 운행, 정위치 정차, 출입문 개방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출입문 폐쇄, 출발은 기관사의 수동취급으로 이루어지는 운전방식.[26] 수동운전. 열차운전, 정지, 출입문 등 모든 제어를 기관사의 수동취급으로 이루어지는 운전방식.[27] Master Control Key. 자동차열쇠와 같이 받아들이는 장치.[28] 당시 1080이 출발 후 도착한 중앙로역-대구역 사이의 거리는 700m, 기관차가 아무리 천천히 출발해도 2분 남짓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운전사령이 판단을 달리 했다면 1080열차의 피해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29] 중앙로역 역무원이 신고를 한 시각이 사고 4분 후인 9시 57분이였다.[30] 사실 위의 경과항목에도 나와있다시피 비상상황 종료 이후 열차탈취를 막기 위해 기관사는 탈출 전 마스터키와 제동핸들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31] 파일:RP00179-36.jpg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ㅤㅤㅤ전동차의 경우에는 대체로 이렇게 생겼다. 마스터키가 뽑히면 비상제동/브레이크 등 일부 기능을 제외하곤, 열차의 모든 기능이 그 즉시 정지된다. TGV의 경우, 마스터키가 감지되지 않으면 즉시 제동이 체결된다. 물론 기관사는 기관차 탈취를 막기 위해 운전실을 떠날 경우 무조건 마스터키와 제동손잡이를 뽑고 탈출해야 하지만, 그 당시 기관사가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조치를 취했거나 운전사령의 정확한 지령을 통해 마스터키를 제거하지 않고 출입문 개방 시도를 하거나 직접 수동으로 열었다면 더 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당시 마스터 키 구조상 제거하면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히기에, 빨리 대피시키려고 기관사가 남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기관사는 승객 대피에 전념하다 열차와 운명을 함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32] 지금처럼 방송도 하지 않았고, 철덕들도 인터넷이 지금같은 시대가 아니라 많지 않았다.[33] 인천 1호선 제외[34] 비상등이 화재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리면서 피해를 키웠다.[35] 지금의 대중교통 전용지구[36] 전동차 특유의 형상으로 인해 불이 크게 붙을 경우, 시체를 소각하는 화덕과 비슷한 형태가 되어 일반 화재보다 시체훼손이 훨씬 심하다.[37] 그마저도 방화범은 무기징역 기관사는 금고 5년이 선고되는 등 그야말로솜방망이 처벌로 끝내어 비판받았다.[38] 1998년 1호선 개통 후 외환위기 등의 여파로 적자만 계속되어 2002년 기준 부채가 1조 3,316억 원에 달했으며, 공사측은 재정 적자를 해소시키기 위해 인력을 줄였다.[39] 겨울에는 이 알루미늄 시트를 열로 데워서 지나치게 차가워지는 걸 막는다. 이게 또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들한테는 엉덩이 난방으로 불리며 또 다른 민폐로 취급받는 모양이다.[40]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 행해졌다. 지하철이 늦어진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41] 예를 들어 투신자살하는 사람[42] 먼저 1호선 반월당, 중앙로, 동대구역, 2호선 문양, 반월당, 정평~영대역에 설치했고, 이후 2단계에 나눠서 설치되었다. 2호선 다사, 대실역은 처음부터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었고, 3호선은 처음부터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만, 3호선의 스크린도어는 난간형이고 높이도 사람의 키높이 이하라서 작정하고 뛰어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해서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43] 평상시에는 선로에서 차량이 역에 정차하며 발생하는 마찰열로 인한 더운 열기를 빨아들여 외부로 보냄으로써 승강장에 그 열기가 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겸한다.[44] 단, 이 경우 열차풍과 미세먼지, 소음을 감소시키는 기능은 하지 못하게 된다.[45] 대구 도시철도 3호선에 설치되어 있는 그런 형태.[46] 이후에는 역사 바닥의 점자블록에도 ıIı 형태의 야광 유도표지가 추가되었다.[47] 참사 이전 중앙로역은 일평균 이용객이 5만 명에 달했으나 참사의 여파와 대구역 민자역사롯데백화점 대구점 개점 이후 지하철 대구역에서 대구역 지하상가를 잇는 통로가 개설되고 2호선 개통 후 달구벌대로 북측에도 반월당역 출입구가 개설되며 주변 역들로 이용객이 분산되어 다시는 5만 명대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48] 이것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으로, 화재가 나면서 생기는 열 때문에 공기가 데워지면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 연기도 그 바람을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화재 사고 매뉴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을 아래로 최대한 숙이고 저지대로 가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실제 사고 사례를 보면 연기가 많은 화재 사고 현장에서는 저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이 고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들보다 생존률이 높다.[49] 역에 '통곡의 벽'이라는 벽 너머엔 아직 일부가 남아있다.[50] 등급제가 철폐된 2019년 7월 기준으로 중증 지적장애에 해당함.[51] (원문기사 링크 소실로 각주 발췌)
“2008년에 출소한 뒤 희생자들의 유골이 묻힌 곳(안전테마파크)에 다녀왔습니다. (희생자들에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동차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막상 화재가 나니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지금도 대구지하철 화재 얘기만 나오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사고 이후 가족들과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평생 그날 일을 입에 올리지 않을 겁니다.”
그는 2008년 초 만기 출소한 뒤 외부와 일절 연락을 끊은 채 살았다. 취재진은 지난 13일 밤 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최씨를 만났다. 그는 “화재 사고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다시는 전동차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너편 전동차(1079호)에 불이 붙은 걸 전혀 못 봤습니다. 연기가 자욱하기에 승강장 쓰레기통 같은 데서 불이 났나 보다 했습니다.” 최씨는 “지하철 전동차는 불연재를 사용해 절대로 불이 붙지 않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전동차에 화재가 났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링크가 소실된 중앙일보 원문 기사에 있던 내용으로 참사 관계자들 중 유일한 인터뷰 기사다,이후 최상열씨의 근황은 불명이다.
[52] 하지만 당시 피해자 측이 몰라서 고소하지 않았을 뿐이지, 추모의 의미가 담겨 있더라도 피해자 측이 불쾌하게 여기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범인을 죽인다는 내용이 담겼더라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게임 소재로 쓰이는 것이 불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김대한이야 참사를 일으킨 범죄자지만 김대한 어머니를 죽인다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53] 주요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연관되어 있으며, 철수가 쓰러진 샛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장면 다음에 잠깐 나온다. 그런데 영화를 광고할 때 실제 사고와 관련이 있고, 그 사고의 기억으로부터 서로를 치유해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차승원 원톱의 개그 영화, 전형적인 진부한 신파 영화처럼 광고를 하는 바람에 영화를 직접 본 사람들에게 도대체 왜 광고를 그렇게 만들었냐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54] 원래 가사는 한 남자가 큰 사고를 당해서 곧 죽음을 앞두는 상황에서 자신의 애인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는 분위기인데, 이게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들의 당시 상황과 미묘하게 매치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노래는 참사 이전인 2002년에 발매되었다.[55] 이날 아들 손준호와 모친 박현자는 함께 지하철을 탔다가 사고를 겪었고, 계단 근처에서 서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박현자는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했으나 아들 손준호는 탈출에 실패한 채 발견되었다.[56] 이현진은 이해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해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는 식전에 추도 의식을 가지고 예정된 신입생 환영 행사를 취소했고, 유족은 보상금으로 서울대 측과 협의하여 장학기금을 조성하였다. 여담이지만 이현진 양은 사망 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동생에게 '누나가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라는 메시지도 남겼다.[57] 대구지하철공사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오명을 벗기 위해 아예 대구도시철도공사로 이름을 바꿨다.[58] 서울지하철공사도 이 사건 이후인 2005년 10월에 사명을 서울메트로로 변경했다. 이후 2017년 5월 31일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통합하여 서울교통공사가 되었다.[59] 당시 실종자의 가족들이 자신의 가족이 해당 열차에 탑승하는 CCTV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일일히 각 역에서 구해 제출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이 열차에 승차하는 모습을 보고 오열, 실신하는 가족들도 많았다.[60] 특히 야갤[61] 752편성이 사고열차로 사고 후 반소/전소된 3량을 떼고 822편성에서 3량을 가져와서 752편성에 연결해서 쓰고 있다.[62] 752편성은 사고 당시 내장재가 개조되지 않았다.[63] 만약에 기관사가 대구 지하철 참사의 그 1080열차 기관사처럼 승객들과 차량을 내팽개치고 도주해 1차 진화 자체를 하지 못하고 752편성을 광명사거리역에 세웠다면 752편성 전량은 물론 광명사거리역에 있는 전차선, 광명사거리역의 승강장을 다 태워먹을 뻔했다. 그리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해 제2의 대구 지하철 참사라고 불렸을 것이다.[64] 1차 진화를 할 때 타고 있던 승객들을 역으로 대피시켰다.[65] 열차의 내장재가 난연재, 불연재여서 불이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았다. 사고 열차는 수리 후 지금도 멀쩡히 운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