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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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2년 7월 8일 제15보병사단에서 일어난 군부대 살인 사건.2. 전말
이 사건의 가해자인 최영오(崔永吾, 1938년 ~ 1963년 3월 18일) 일병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천문기상학과(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4학년 재학 중에 대한민국 육군에 학적보유병 신분으로 입대했다. 사건의 발단은 그날 오전 8시에 시작되었는데 최 일병의 선임인 정방신(鄭邦信) 병장과 고한규(高漢奎) 상병이 최 일병의 애인이 보낸 편지 12통을 자기들이 마음대로 뜯어 보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놀란 최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사과를 요구하자 선임병들은 되레 건방지다며 최 일병을 구타했고 격분한 최 일병은 두 선임병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말았다. 참고로 정 병장과 고 상병은 둘 다 최종학력이 중졸이었으며[1][2] 학력 덕분에 자신들보다 늦게 입대한 주제에 일찍 제대[3]하는 최영오 일병의 존재 자체가 괘씸했기 때문에 굳이 주먹까지 휘두른 것이다.위의 기록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인 '대학신문'의 보도 내용이고 군법회의 자료에 의하면 이야기가 좀 다른데 이상석 군법무관이 1992년에 출판한 <군법과 군사재판>이라는 책에 나온 해당 사건에 대한 판결 기록은 다음과 같다.
서울문리대 ○○학과에 재학중이던 최○○[4]은 19XX.8.3. 군에 입대하여 일등병으로 복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 일병에게는 입대 전부터 사귀던 애인이 있어서 두 사람은 며칠이 멀다 싶게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서울로부터 여자의 편지가 빈번히 날아들자 같은 중대의 서무계를 보는 정 병장(당 22세)와 고 상병 등이 호기심에 종종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게 되었고 원래 성격이 쾌활한 이들이 편지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을 가지고 최 일병(당 23세)에게 "사랑하는 ○○씨, 보고싶어서 이 밤도 잠 못 이뤄요." 운운하며 놀려댈 뿐만 아니라 타 전우들에게도 공개하며 희롱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5] 웃고 넘겼으면 좋았을 것을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최 일병이 사감을 품고 19XX.7.4. 소속 중대장의 소원수리 때에 "사신검열을 사병들이 함부로 하는 일이 있으니 시정해 달라."는 요지의 청원을 내어, 중대장으로부터 정 병장 등이 주의를 받게 되고 이후 그들 상호간에 미움의 정이 쌓여 가다가 19XX.7.7. 저녁 일석점호시간에 전 중대원이 집합한 자리에서 정 병장의 선창에 따라 구령 조정을 3회 실시하게 되었는데 정 병장이 "열중 쉬어" 구령을 선창하자 유독 최 일병만이 "편히 쉬어"라고 엉뚱한 구령을 불렀다. 정 병장이 "대열 속에서 누가 야유하느냐?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으나 불응하므로 "누구인지 다 알고 있으니 소대 내무반으로 오라."고 말한 후 중대원을 해산시키고 내무반에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역시 오지 않으므로 직접 찾아가서 최 일병에게 "왜 대열 중에서 바로 나오지 않고 남자가 비겁하게 구느냐."고 꾸짖자 최 일병이 "잘못되었다"고 사과를 하였다. 그러나 정 병장이 이어서 "바닥에 엎드려뻗쳐."라고 말하자 최 일병이 "사과를 하는데도 왜 그러느냐."며 엎드리기를 거부하고 되려 선임병에게 대들자 화가 난 정 병장이 주먹으로 최 일병의 얼굴을 몇 대 때리게 되었고 격분한 최 일병도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계속 덤벼들자 정 병장이 옆에 있던 목봉으로 최 일병의 넓적다리를 한 대 쳤고 최 일병이 그 목봉을 잡아 서로 옥신각신하던 중 옆 방에 있던 인사계 이 상사[6]가 달려와 그들을 제지하게 되었다. 평소부터의 적개심이 절정에 달한 최 일병은 정 병장 등을 죽여 없애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이튿날인 19XX.7.8. 낮 12:35경 사단사령부 연병장에 전 장병이 집합하여 위문공연을 관람하게 되었을 때 마침 정 병장과 고 상병이 내무반 앞 국기게양대에 연병장 쪽의 무대를 향하여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보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내무반에 뛰어들어가 M1 소총에 있는 실탄 1크립(8발)을 장전한 후 들고 나와 그들의 등 뒤에서 정 병장에게 4발, 고 상병에게 3발을 각각 발사하여 명중시킴으로써 현장에서 즉사하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처벌 1심 : 사형, 2심 : 항소기각, 3심 : 상고기각 (19XX.3.18. 사형집행) |
다만 당시 군 사법부는 군 측에 불리한 사건은 강압과 회유로 조작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005년 출범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낸 의문사 조작 사건만 120건에 달할 정도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판결문은 최 일병에 대해서는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즉 군 복무에 부적합한 인물로 정의하며 '웃고 넘겼으면 좋았을 것을'(이 말이 참 지금의 마인드로는 황당할 뿐이다), '도리어 화를 냈다' 등 대놓고 최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총동원하여 묘사한 반면 반면 고참들의 잘못은 '호기심에', '원래 쾌활해서'라며 애써 쉴드를 쳐 주는 등 최 일병과는 반대로 최대한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구타 및 가혹행위는 최소한도로 서술하는 등 대놓고 편향적이다.
최 일병이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 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이 사건은 세간에 널리 화제가 되었다. 상관 살해로 군법회의에 기소된 최 일병은 사형 판결을 받았고 대법원에 항고했으나 대법원도 사형 판결을 확정지었다. 최 일병의 동문들은 물론 서울대 학생들과 각계각층에서 사형만은 면하게 해 달라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군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던 데다 엄벌을 요구하는 피해자 유족들의 강력한 탄원도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관살해죄는 당시 법정형이 사형밖에 없었다.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조항이 위헌 판결이 내려져 개정된 후에도 상관살해죄는 그 법정형이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뿐일 정도로 매우 처벌이 강한 죄이다. 일반적인 살인죄라면 그러한 탄원서로 사형은 면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으나 상관살해죄는 그 법정형 자체가 사형뿐이기에 탄원서를 돌려도 사형 판결은 피할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최 일병은 결국 1963년 3월 18일에 급하게 총살되었다. 심지어 처형되기 3시간 전에 최 일병의 형인 최영수(崔永壽)가 최 일병을 면회했는데 "다음 면회 때는 어머니와 조카를 데려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는 걸로 보면 최 일병 자신도 불과 3시간 뒤에 처형되는 건 전혀 몰랐던 걸로 보인다. 총살된 후 최 일병은 훈련병으로 강등되었고 시신은 가족 동의도 없이 군에 의해 강제 화장처리되었다. 그 반면 살해당한 정 병장과 고 상병은 본인들도 잘못이 없었던 건 아님에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7]
최 일병은 죽기 직전에 "내 가슴에 붙은 죄수번호를 떼어달라"고 말했고 최후 진술로 "내가 죽음으로써 우리나라 군대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민주적인 군대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라고 한 뒤 총살 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물론 이것은 기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시에는 사형수의 최후 진술을 기자의 생각하여 뇌피셜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실제 참관했던 성직자들의 증언과 당시 기사가 다른 경우도 여럿 있었는데 이수근이나 군사정권 시절 사법살인의 피해자들이 사형 전에 했다는 참회도 다 이런 류였다. 그리고 실제로 저런 말을 했더라도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육군 측에서 공개했을 리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최 일병의 어머니마저 아들의 뒤를 따라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형이 집행된 후 사체인수확인서를 수령한 최 일병의 모친 이숙자(李淑慈)는 그날 밤 11시 50분 경 마포종점 근처의 한강둑에 올라가 강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여기서 대신 죽으면 아들은 사형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유서가 아니라 사형 집행 확정 전의 호소문에 적힌 말이었다. 사건 이후 최영오 일병 가족은 연좌제로 용공분자로 낙인찍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까지 고생하게 되었다.[8]
또 최영오 일병의 여자친구인 장현숙(張賢淑)은 죄책감으로 인해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마음을 헤아려 장양이 다니던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독신으로도 평생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 문과대학에서 약학대학으로 전과하도록 주선해 주었다고 한다.
1965년에 유현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성일, 엄앵란, 김승호, 독고성 등이 출연한 영화 <푸른 별아래 잠들게 하라>가 개봉했는데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멜로 사회물이었다. 문제는 주인공 보정을 하다 못해 왜곡까지 한 미화물이라는 점인데 총 맞아 죽은 선임들은 사실은 대학교 재단과 결탁한 이들이고 주인공이 입대 전에 꿈꿨던 사립대학교 경영합리화안에 반대한 높으신 분들의 하수인들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싸우다가 과잉방어로 하수인들을 죽게 했다는 내용이다.
1990년대 KBS에서 제작한 법정 관련 재연 드라마[9]에서도 이 사건이 소개되었다. 물론 군법회의 기록은 전혀 참조하지 않고 선임병을 최 일병의 여자친구에 대해 온갖 음담패설과 강간 모의까지도 하는 죽어마땅한 이들로 묘사한다. 배정자, 오세훈 변호사는 그런 재현물을 제작할 때 "반드시 공판기록을 참조하라"고 조언한 바 있었다. 이 작품 역시 판결문 등은 최소한의 객관성조차 고려하지 않은 작품. 단 당시 군 사법부의 관행도 그렇고 위의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판결문의 내용이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매우 낮아 공판기록조차도 왜곡이 많을 가능성이 높아 참조하기는 어려웠다.
21세기에도 정식 정훈교육 시간 혹은 행정보급관의 일장훈시 타임에 선임병들은 후임병 우편물을 함부로 뜯어보지 마라, 걸리면 군기교육대&영창 보내겠다면서 누누히 강조하는 것도 이 사건의 영향이 크다.[10] 또 이 사건 이후 단기학보병 제도가 폐지되었다.
현재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베저장소나 박사모 같은 단체나 우파 유튜버와 같이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11]은 최영오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댓글창에는 고인드립은 기본이고 호남 지방에 대한 비하를 포함한 키배까지 일어나곤 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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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종장교 제도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는 대졸은 물론이고 고졸도 엘리트 대우를 받던 시대였다. 21세기에 대졸도 깡통 취급받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된다.[2] 그러나 1960년대 초반은 초졸(당시에는 국졸)이나 무학도 상당히 많은 시대였던지라 중졸 학력은 전혀 낮은 것이 아니었다.[3] 학적보유병 제도가 1년 6개월 동안 군복무 후 복학하면 남은 군복무 기간은 군복무를 한 것으로 인정하며 복학하지 않으면 부대로 재소집해 남은 군복무를 하게 하는 제도다. 자세한 내용은 귀휴 문서의 귀휴병 내용에 있다.[4] 원문 그대로 병기. 여기서 최○○는 최영오 일병.[5]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이석현 상병도 주동자라고 한다.[6]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본명은 이현국.[7] 정 병장은 1995년에, 고 상병은 2012년에 현충원에 안장되었다.[8] 그 악명높은 삼청교육대도 강제로 끌려갔을 것이다.[9] MBC의 '죄와 벌' 같은 형식이라고 보면 된다.[10] 실제로 '편지개봉죄'라는 죄가 정말 있다! 처벌 사례[11] 특히 비슷한 세대를 살아 온 사람들에게 최영오에 대해서 물어보면 빨갱이라는 대답부터 시작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나온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규모 아동 성범죄 사건인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의 주범 조주빈의 형량이 너무 강하다고 동정하거나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범인 장대호를 극찬하는 전형적인 내로남불 작태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