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1975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다룹니다. 1994년 부산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유괴 살인 사건에 대한 내용은 부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낙서. 출처
당시 경찰이 수배한 범인의 몽타주[1]
1. 개요
1975년 8월 20일 오후 8시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2]에서 7살 김현정양이 실종 후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불과 닷새 후 동구 좌천동에 살던 5살 배준일 군이 실종된 후 살해된 채로 발견된 연쇄살인 사건으로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2. 김현정양 살인사건
핫도그를 유난히 좋아했던 김 양은 그 날도 ‘핫도그를 사먹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다소 늦은 시간이었지만 핫도그를 파는 구멍가게는 김 양의 집에서 5분 정도의 지척거리에 있었다. 간식으로 핫도그를 즐겨먹던 김 양은 거의 매일같이 집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핫도그를 사먹고 돌아오곤 했다. 당시 아직 해가 밝았기 때문에 김 양의 부모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일인지 한참이 지나도 김 양은 돌아오지 않았고 불안해진 김 양의 부모는 딸을 찾아 나섰다. 핫도그 가게 주인에 따르면 이 날도 김 양은 핫도그를 산 뒤 곧장 집을 향해 뛰어갔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목격된 김 양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주민들과 인근 파출소 순경까지 나서서 김 양을 찾았지만 아이의 모습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지만 김 양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다음 날이자 약 10시간 후인 8월 21일 오전 5시 45분경 부산직할시 중구 동광동 용두산공원 산책로 인근 숲 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공원을 순찰하던 공원 관리인 35살 문모 씨는 어린아이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즉시 '여기 용두산공원에 어린 여자아이가 죽어 있습니다.'라고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 중부경찰서에 보고되었다. 2시간이 지난 8시경에야 형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신고로 들은 것보다 훨씬 참혹한 모습이었다.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고 죽은 아이는 손발이 움직이지 못하게 속옷을 찢어 만든 끈으로 손발이 결박되어 있었다. 문제는 복부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적힌 소름끼치는 낙서였다.
경찰은 단순 객사로 생각하고 상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5]
문제는 손발이 묶인 채 목이 졸려 죽은 모습의 아이를 보고도 이런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보고 후 여자아이에 대한 신원수배를 내렸으며 그날 오후 '신원 수배된 아이가 어제 실종된 내 딸인 것 같다.'고 연락이 들어왔는데 바로 전 날 실종된 김 양의 가족이었다.
김 양의 가족은 처참하게 죽은 김 양을 보고 절망했지만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가족이 있고 명백히 타살당한 김 양을 걸인 취급하고 식중독으로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김 양 가족의 강력한 요구 끝에 경찰은 이 사건을 유괴살인으로 초점을 맞추고 급히 수사방향을 변경했다. 김 양의 시신 발견 당시는 사망한 지 여러 시간이 지난 후였는데 시신 상태로 보아 실종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김 양이 집을 나선 시간과 살해 추정 시간 등을 따져 볼 때 김 양은 핫도그를 사먹고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한 것이 분명하며 그 시간은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김 양을 봤다는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는데 특히 범인이 해가 지지 않은 시각에 그것도 주택가에서 무모하게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주택가에서 강제로 김 양을 끌고 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괴에서 살해까지의 범행이 목격자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 수사팀은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김 양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일차적인 탐문수사에 들어갔고 채무나 치정 등 원한관계에 의한 보복범행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김 양의 부모와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조사했지만 용의점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수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김 양의 이마와 오른쪽 귀 밑에는 심한 타박상이 있었다. 당시 김 양은 팬티만 착용한 상태였는데 상의와 신발은 발견되지 않았다. 통상적인 아동 유괴살해사건의 경우 범행 목적은 돈이지만 김 양의 경우는 예외였다. 수사팀은 범인이 김 양을 살해한 뒤 김 양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금품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범인의 목적은 돈이 아닌 성범죄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사팀은 아동 성추행 전력이 있는 동종수법 전과자 및 성도착증 환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진행했으며 동시에 시신에 글씨를 써놓은 점으로 미뤄 정신병력이 있는 인물에 대한 탐문조사도 병행했다.
하지만 이런 수사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또 한 건의 엽기적인 아동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3. 배준일군 살인사건
8월 24일 오후 7시경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집 앞에서 놀던 5살 배준일 군이 갑작스레 실종되었다. 당시 아버지의 진술에 따르면 배군이 저녁을 먹은 뒤 잠자는 줄 알았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배 군이 집에 없었다고 한다.[6] 마지막 목격자는 배 군의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의 직원이었는데 그가 오후 7시경 집 앞에서 혼자 놀고 있던 배군을 목격했고 당시 20원을 손에 쥐어준 뒤 사먹고 빨리 들어가라고 말한 것이 사람들에게 목격된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한다. 배 군의 가족들은 밤이 새도록 찾아다녔으나 누구도 7시 이후의 배 군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고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날이자 약 11시간 후인 8월 25일 오전 6시경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7]의 어시장의 상자 하차장에서 관련 일을 하던 박 모씨가 한 쪽에 쌓여 있었던 사과상자 더미 사이로 작은 손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사과상자를 살짝 들췄더니 사과상자 안에는 손발이 결박된 채 죽은 남자아이의 시신이 있었다. 바로 전 날 실종된 배준일 군의 시신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시신을 조사했는데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했고 손발을 묶은 끈은 아이가 입고 있던 런닝셔츠를 찢어 만든 것이었으며 런닝셔츠를 걷어 올렸더니 복부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빼뚤빼뚤한 글씨로 낙서가 적혀 있었다.
후하하 죽였다.
이것은 일종의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4. 수사 전개와 특이사항
범인의 엽기 행각에 수사팀들은 또 한 번 치를 떨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건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범행 대상이 10세 미만의 아동이라는 점
-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상의를 찢어 손발을 묶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점
- 범행 시간이 해질녘이라는 점
- 살해 후 피해 아동의 배에 사인펜으로 의문의 낙서를 해 놓았다는 점
특히 낙서의 필적이 같다는 점은 두 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이라는 것에 무게를 실어줬다. 뿐만 아니라 범인은 김 양 때와 마찬가지로 배 군의 집에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아동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아 범인은 아동혐오론자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수사와 관련해 8월 23일[8] 오후 11시에 부산 대교파출소로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왔는데 그 내용은 "자신이 김 양을 살해했고 대양공고와 대양중학교 사이에서 그녀를 살해했다[9]"는 것이었다. 이상한 건 20분 후인 11시 20분 또 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인데 이번에는 "수사 좀 잘해라. 그래서 나를 잡을 수 있겠냐? 7698이다. 7698, 복창해라"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경찰이 7698을 복창하자 곧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곧바로 몽타주가 배포되었는데 이것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가 사실 김 양 사건 바로 이틀 전인 8월 18일에 한 건의 사건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피해자는 살아남았고 범인에게 목졸림을 당했으나 간신히 그것이 풀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부모가 극도로 불안해한 탓에 병원에 그녀가 죽었다는 식으로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한편 소름돋게도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가 아까 김 양의 시신에서 발견되었던 글씨에 언급된 대신공원이며 이 피해자의 이름이 바로 이정숙이었다. 이와 함께 사건의 자세한 내막도 밝혀졌는데 이 양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과 4시간 동안 대신공원에서 같이 있었는데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범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 왔고 이후 자연스럽게 대신공원까지 같이 이동했다고 하며 같이 물놀이를 했는데 갑자기 범인이 자신에게 주인님이라 부르라고 시켰고 이에 그녀가 범인에게 주인님이라고 불러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또 다시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시켰다고 하는데 그러고선 갑자기 자신의 몸을 결박한 뒤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피해자를 방치한 뒤 사라졌으나 이후 그녀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10]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는데 앞서 범인이 전화를 통해 남겼던 7698이라는 숫자는 이 양의 집 전화번호였다고 한다.
5. 유사 사건
출처출처2
출처3원 블로그는 글이 삭제됨
1975년 11월 30일 오전 11시 30분경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의 영선초등학교[11] 화장실에서 여자아이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피해자는 이 국교 1학년 8살 이 모양이었는데 사인은 질식사였고 목에 졸린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으며 자열창[12]도 목과 복부 등에 있었으며 그 날 밤 11시 30분경 서구 감천2동 뒷산에 있는 까치고개 인근에서 13살 이 모군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이 군은 국제시장의 한 양복점 직공이었는데[13] 사건 당일 노상에서 김밥장사를 하던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먼저 귀가한 후 실종된 상태였다. 이 군의 사인도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는데 안면을 둔기로 심하게 구타당한 것이 달랐다.
두 사건의 범인은 사건 발생 하루 만인 12월 1일 새벽 야간순찰을 하던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야간통행금지 위반으로 신병이 인도된 24살 박 모씨를 조사하던 경찰은 전날 행적에 의문을 갖고 추궁한 결과 이 양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경찰은 박 모씨가 이 양을 살해한 후 이 양의 친언니마저 살해하려 했다가 미수에 그쳤으며 같은 날 이 군도 살해했다는 것을 추가로 밝혀냈다.
살해된 이 양은 박씨 누나의 딸로 조카였다. 11월 30일 오전 11시경 박 씨는 자기 매형의 집에서 혼자 TV를 보던 이 양을 놀러가자고 꾀어 학교로 데리고 가 화장실에서 목졸라 죽이고 이어 중구청 옆 육교 밑에서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이 군을 꾀어 아미동에서 감천동으로 넘어가는 까치고개에 이르러 목을 졸랐으나 반항하자 돌로 죽였다는 것이다. 이 양의 어머니 박 모씨는 검거된 범인이 자신의 남동생인 것이 밝혀지자 한 때 실신했다가 '동생이지만 혈육의 정을 떠나 극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범인 박 씨는 지난 1월 대전교도소를 나온 전과 3범으로 출감 1년도 지나지 않아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 두 어린이를 살해한 혐의로 박 씨가 검거되자 수사팀은 난리가 났다. 수사력은 당연히 여름에 발생한 두 건의 아동 살인 사건과의 관련성을 찾는 데 모아졌다. 박 씨는 살해된 이 양의 외삼촌이었으며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3년 전부터 누나네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고 절도죄로 구속됐다가 그해 초 출소한 인물로 누나에게 용돈을 요청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행패를 부리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박 씨는 경찰조사에서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신의 계시를 받아 두 어린이를 죽였다.’는 황당한 말을 했지만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은 없었다. 당시 수사팀은 박 씨를 상대로 앞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과의 관련 여부를 집중 추궁했으나 다른 범행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개별사건으로 결론났으며 수사는 그대로 종결됐다.
박 씨가 앞서의 사건들과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나자 경찰은 수개월간 비상을 걸고 범인 찾기에 안간힘을 다했지만 수사는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한 채 답답한 날들이 계속됐다. 수사팀은 처음부터 수사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김 양과 배 군이 살해된 직후 부산 곳곳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유사 범행이 여러 건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범행이 대부분 미수에 그친 탓에 피해 아동들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아동을 상대로 범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범인은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 8월 24일 부산직할시 동구 좌천동에서 집 앞에서 놀고 있던 10살 한모 군을 30대 남자가 연필깎이 칼로 위협해 납치하려고 한 사건
- 8월 25일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가야동의 한 야산에서 동생과 메뚜기를 잡고 있는 10살 최모 양을 30대 남자가 끌고 가 성추행한 사건
- 8월 26일 부산직할시 동구 수정동에서 9살 여아 납치미수사건
- 8월 27일에는 부산직할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13세 여아 납치미수사건
- 8월 28일 부산직할시 동래구 우2동[14]에서 7세 남아 유괴미수사건
경찰은 이 중 8월 27일 온천동 사건의 범인을 검거했으나 나머지 사건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명됐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은 8월 29일 특별지시를 내려 사건을 해결하도록 했다. 극히 이례적으로 같은 날 부산시경찰국과의 공조수사를 위해 부산지방검찰청에도 수사본부가 설치되었으며 그 해 12월 용의자의 몽타주가 담긴 전단지 10만 장을 제작해 배포하는 동시에 ‘현상금 100만 원’을 내걸고 현상수배를 하고 검거 경찰관에겐 1계급 특진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끝내 범인을 검거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 무렵 유사한 수법으로 피해를 당한 어린이들의 진술을 분석해 좁혀진 범인의 윤곽은 ‘키 170cm 가량의 왜소한 체형을 갖고 있는 20~30대의 남자’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사건 발생 15년이 지난 1990년 8월 21일과 8월 25일 앞서 김 양과 배 군 두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되었다.
전 경찰대학 범죄심리학과 교수였던 표창원은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20~30대 남성으로 경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2018년 12월 6일 KBS 2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오늘의 셜록 1회에서 부산 사인펜 살인마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오늘날 거의 50년은 지난 사건이기에 당시 용의자가 20~30대임을 감안해도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면 60대 후반~80대 중후반의 고령일 가능성이 크다.[15] 1975년 당시에는 86%가 살아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들 중에서도 6명 중 1명 꼴로 세상을 떴다. 물론 대다수가 아직 살아 있다지만 노인이라서 20~30살 때랑 얼굴이 완전히 딴 판일 듯 하며 당시 40~50살 이상이라면 현재 사망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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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세간에는 배준일 군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택시기사의 증언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자세한 사항은 수사 전개와 특이 사항 문단 참고.[2] 당시에는 부산직할시 서구 장림동이었다. 서구는 1983년 사하구로 분리되었는데 그 때 장림동은 사하구로 들어갔다.[3] 범천동은 부산진구에 있으며 대신공원은 서구 서대신동3가에 있다.[4] 이 글귀의 내용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문단 참고.[5] 1970년대에는 식중독으로 죽거나 아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경찰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6]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7] 앞서 말한 김 양의 집과 가깝다.[8] 참고로 김 양의 사건이 발생한 이틀 뒤의 시점이다.[9] 김 양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와 매우 가까운 영도구다.[10] 아마 범인은 이 양이 사망한 것으로 착각한 듯 하다. 그 탓에 두 번째 피해자인 김 양의 시신에 그러한 글귀를 남겼고 이후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형사들에 대해 답답한 나머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힌트를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11] 당시에는 영선국민학교. 2002년 인근 학교와 통폐합되어 폐교되었다.[12] 칼에 베이거나 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13]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직공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군의 어머니 김 모씨는 아들이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죽었다고 울먹였다.[14] 현재 우2동은 해운대구에 있다.[15] 1975년에 갓 20살인 1956년생도 2023년 기준으로 칠순에 가까운 노인이며 69.6%가 생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