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경찰이 배부한 몽타주 |
사건 발생 장소인 사바이 단란주점[1] |
1. 개요
1998년 6월 1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2] 단란주점[3]에서 20대 남성 3인조로 추정되는 범인들이 단란주점 업주와 그녀의 지인이었던 택시 기사, 손님 등 3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달아난 사건.아래 후술할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수많은 시체를 봐 왔을 법의학자들조차도 지금껏 봐 왔던 범행 중에서 가장 잔인하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4] 현장에서 수많은 지문과 족적, 혈흔은 물론이고 목격자들까지 있었으나 끝내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하여 사건 발생으로부터 15년이 지난 2013년 6월 14일 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아 버렸다.[5][6]
그것이 알고싶다 1020회[7]에서 이 사건을 상세히 다루었다.
2. 사건 내용
1998년 6월 14일, 이 때는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사건이 일어난 당일은 대한민국 대 멕시코의 경기가 열렸던 날이였다.[8] 그래서 전 국민들의 시선은 경기가 열렸던 프랑스의 리옹을 향해 있었다.그런데 이날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 단란주점에서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6월 14일 새벽 3시경 사바이 단란주점의 손님이었던 여성 최 씨가 하반신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피를 철철 흘리며 계단에서 올라오면서였다. 당시 단란주점 근처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던 택시 기사 한 씨는 한 여성이 길거리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다가갔는데, 가까이 가보니 여성은 상체에서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고 하의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누워서 손을 흔들고 있는 상태였다.
놀란 한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주변 행인들도 다가와 쓰러져 있던 여성의 몸을 옷으로 가려주었다. 쓰러져 있던 여성 최씨는 생명이 위급한 상태였기에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사건 신고를 받은 경찰은 급히 현장으로 출동하였다. 경찰이 주점 계단으로 내려가자 역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으며, 현장 곳곳을 수색하던 중 1번 방의 문을 열었을 때 그들의 눈 앞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이 씨와 그녀의 지인인 택시 기사 고 씨, 또 다른 지인인 김 씨 3명이 모두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9]
여주인 이 씨는 허벅지와 등에서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되었는데 매우 깊숙하게 찔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참혹했지만 입 가장자리에는 무려 13cm 길이의 칼로 찢겨나간 상처가 있었다.[10] 택시 기사 고 씨는 몸에 무려 17군데나 칼에 의해 찔리고 베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가장 끔찍하게 사망한 사람은 손님으로 온 김 씨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목이 반 쯤 잘려 있었고 이마에는 마치 발로 짓밟힌 듯 선명한 신발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사건 현장에는 물이 틀어져 있었는지 바닥이 흥건했으며 방 안에 있던 접시와 술잔, 술병 등의 기물들이 깨져 파편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 사건에서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의문점들이 나왔다.
먼저 피해자들 중 여성 피해자 2명(이 씨, 김 씨)의 머리카락을 칼로 자른 흔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조금만 자른 것도 아닌, 꽤 시간을 들여 칼로 뭉텅뭉텅 잘라놓았다. 범행을 저지르고 나면 최대한 빨리 달아나는 것이 범인의 기본적인 심리인데,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고 칼로 자르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행위였고 이러한 기괴한 행동을 한 이유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두 번째로 범인들은 피해자의 엉덩이를 칼로 찔렀다는 점인데 엉덩이는 치명상을 입힐 만한 부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자상을 남긴 이유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목이 반쯤 잘린 채로 발견된 김 씨 여인의 시신에서도 특이한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발바닥에 혈흔이 묻어 있었다. 이로 봐서는 범인들은 2명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 후에 김 씨를 끌고 다니며 공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단란주점의 카운터의 수화기는 내려져 있었고 주변은 뭔가 급하게 뒤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 씨의 바지 주머니에는 칼로 찢긴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마치 강도의 소행인 것처럼 보였다. 수사 결과 김 씨의 금목걸이와 이 씨의 금팔찌, 고 씨의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현금 일부가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피해자들에게는 구타를 당한 흔적도 있었는데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이삼재 전 총경은 '입식 옷걸이[11]를 부숴서 만든 몽둥이로 때린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 발생 직후 범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남겼을지 모르는 혈흔이나 체액, 그리고 현장 바닥에 남아있을 족적을 감추기 위해 주방 수도꼭지를 틀어 노래방 1, 2번 방 바닥을 물로 흥건하게 적셔 놓았으며, 감식요원들의 작업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유리컵과 접시 등을 잘게 부수어 바닥에 뿌렸고 신문지로 자신들의 손길이 닿은 집기 곳곳에 남겨진 지문들을 닦아내는 등 범행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유유히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다.[12] 다만 증거 인멸을 한다고 했지만 범인 입장에서 이러한 행위는 검거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애초에 증거를 감출 수단을 갖추고 온 것이 아니라 범행 이후에 인멸을 시도했기 때문에 시간 지체는 물론 미처 지우지 못한 증거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로 인해 감식반원들이 용의자 3명이 처음 들어간 2번 방과 사람들을 살해한 1번 방, 그리고 금품을 뒤져간 카운터 테이블 주변에서 범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4장의 유류지문[13], 담배꽁초 24개, 운동화 족적 3개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지만 훗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범인들의 것으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 흔적은 고작 운동화 족적 3개뿐이었다.
경찰은 유일한 생존자인 최 씨의 증언을 통해 범인들이 고 씨의 현금 66,000원을 강취해 갔음을 파악했지만 나머지 피살자들로부터는 얼마의 현금을 강취해 갔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범인들은 강취해 간 고 씨의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카드, 롯데카드, 김 씨의 비씨카드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피해 여성들에게 강취한 18K 금목걸이 2조와 금팔지 1조 등도 현찰화하는 과정에서 근거를 남기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노래방 기계를 조회해 알게 된 것이라고는 범인들이 부른 다음과 같은 노래들 뿐이었다.
1. 흔적[14] 2. 장난감 병정[15] 3. 문밖에 있는 그대[16] 4. 준비 없는 이별[17] 5. 하나의 사랑[18] |
시신의 참혹한 상태와 현장에 난무한 혈흔 때문에 수사에 참여한 경찰들에게는 이 사건이 역대 최고로 잔혹하기 짝이 없던 강도살인 사건으로 각인되었다고 한다.
3. 사건 경위
목격자인 이 씨 언니의 진술에 따라 추적해 본 사건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6월 13일 저녁 10시경 본래 사바이 단란주점의 여주인이었던 이 씨 대신 이 씨의 언니가 대신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 3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1번 방으로 들어갔고 용의자 갑이 도우미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용의자 을이 "지금은 아가씨를 부를 때가 아니다"라고 말리면서 갈등을 벌이다가 결국 양주 1병과 과일 안주를 주문해서 마셨다고 한다.그리고 20분 후인 10시 20분에 단란주점 근처에서 식당 종업원 일을 하던 김 씨가 지인인 최 씨와 함께 맥주 한 잔을 하려고 이 사바이 단란주점을 찾았다. 김 씨는 여주인 이 씨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잠시 후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이 씨가 언니와 교대하기 위해 단란주점으로 왔고 이 씨 언니는 남편이 밤 11시 50분경에 데리러 와서 단란주점을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씨 언니 부부가 가게를 나설 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용의자들이 당시 히트곡이었던 최유나의 <흔적>이라는 노래를 불렀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범인들은 여유가 있어보였고 차마 이들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차분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범인들은 박강성의 <장난감 병정>과 <문 밖의 그대>,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등을 불렀다고 했는데 차마 살인을 일으킬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모두 서정적인 가사의 발라드 노래들만 불렀다. 잠시 후 6월 14일 자정, 이 씨의 지인이자 택시 기사였던 고 씨가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단란주점에 잠깐 들렀다고 하며 전반전이 끝난 새벽 1시 반에 이 씨의 언니가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단란주점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다.
이러한 진술을 토대로 미루어 볼 때 범행은 이 씨의 언니가 전화를 걸었던 6월 14일 새벽 1시 반에서 경찰에게 신고가 들어온 새벽 2시 반까지 1시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범인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왜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이렇게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도대체 이 단란주점의 업주와 그 지인들은 무슨 원한을 샀기에 그토록 참혹한 죽음을 맞았던 것일까?
4. 경찰의 수사
당초 경찰은 이 사건을 접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사건이 발생하고 무려 [age(1998-06-1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했으므로 이같은 경찰의 판단은 오판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이 그런 판단을 내렸던 것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단 사건 당일은 축구 중계가 있었던 날이라 단란주점을 찾은 손님들이라고는 피해자 4명과 범인 3명해서 7명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 7명 중 3명이 살해당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나머지 3명은 함께 모여서 단란주점을 방문했으니 자연히 범인은 나머지 3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범인들은 너무도 많은 증거품들을 남겨두고 갔고, 지문들도 덕지덕지 남아 있었는데 한 두 개도 아니고 무려 39개나 되는 지문을 남겨 놓았다. 그런 데다 범인들을 목격한 목격자들(이 씨 언니 부부)까지 있었으니 경찰 입장에서는 이만큼 착한 범인들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초 확신했던 그 착한 범인들은 알고 봤더니 매우 교활하고 영악한 범인들이었고 결국 [age(1998-06-14)]년 동안 계속 숨바꼭질을 하게 되었다.
일단 경찰들의 예상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CCTV가 없었다는 점에서였다. 사건이 일어난 1998년만 하더라도 방범용 CCTV 설치가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당시 단란주점 내부에도 CCTV가 없었기 때문에 범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잡아내기 어려웠다. 경찰들은 사건이 일어난 때가 초여름이었기에 새벽에도 어느 정도 통행이 있었을 것이고 사바이 단란주점 건너편에 포장마차가 1~2군데 있었기 때문에 목격자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 보고 탐문수사를 통해 범인들의 도주로를 파악하고 다른 목격자들을 찾는 데 주력했으나 하필이면 사건 당일이 1998년 6월 14일은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첫 경기가 열렸던 날이었다.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경기보다도 시청률이 높았다. 즉, 이 때문에 목격자들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경찰들은 범행 현장에서 범인들의 흔적을 찾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현장에서 범행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으나 당시 기술로는 채취된 시료들 중 DNA를 확실하게 뽑아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문을 집중적으로 찾았고, 39개의 지문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 중 31개는 대조 가치가 없다고 보았고 나머지 8개의 지문으로 대조해 본 결과 모두 주점 관계자들의 지문으로 밝혀졌다. 거기다 지문이 묻어 있었을 법한 술병과 술잔 등도 범인들이 모두 산산조각을 내버려 지문을 채취할 수 없었다. 현재의 과학 기술이라면 쪽지문 하나로도 밝혀낼 수 있겠지만 1998년 당시의 과학 기술로는 역부족이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 서울에는 비가 많이 내린 데다 범인들이 수돗물을 틀어 놓아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에는 바닥이 온통 물 천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문 채취에 난항을 겪었고 물 때문에 지문이 훼손되어 어렵게 발견한 것들도 감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5. 생존자 최 씨의 증언
그래서 경찰은 마지막 남은 생존자 최 씨에게 희망을 걸었다. 최 씨는 사건 당시 목 부위를 심하게 다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직접 손으로 글씨를 써서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최 씨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 김 씨가 자신에게 6월 13일 밤 10시 경에 "내 얘기 좀 듣고 가라"며 자신을 신사동의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데리고 갔고, 둘은 1번방으로 들어가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주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의자 갑은 김씨와 최씨가 있는 1번방의 문을 열었고, "화장실 가려다가 잘못 들었다"고 말하며 다시 나갔다.이후, 여주인 이 씨가 자신과 김 씨에게 범인들이 있던 2번 방에서 합석하는 것이 어떠냐며 제안했고, 둘은 제안을 받아들여 2번 방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다. 최씨는 남자들 사이에서 뭔가 섬뜩한 기운을 느껴 먼저 나왔고[19] 친구 김 씨도 뒤이어 나와 1번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화장실이 급해서 방을 나온 최 씨는 카운터에서 택시 기사와 업주 이 씨 그리고 3명의 용의자 사이에 단란주점 카운터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큰 관심 없이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1번 방으로 돌아갔다. 이 시기에 범인들과 이 씨, 고 씨 사이에 모종의 트러블이 생겼을 확률이 높다.
최 씨가 1번 방으로 돌아오고 5분 정도 지난 후, 상황이 갑자기 긴박하게 돌아갔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용의자 갑, 을, 병과 택시 기사 고 씨, 업주 이 씨가 함께 1번 방에 들어왔는데 고 씨와 이 씨의 손은 뒤로 돌려진 채로 결박되어 있었고 용의자 3명이 고 씨와 이 씨를 발로 차서 1번 방에 처넣었다. 택시기사 고 씨는 "말로 해결하자"고 했고 업주 이 씨는 "살려달라"는 소리만 했다. 범인들은 뒤이어 겁에 질린 채로 있던 김 씨와 최 씨에게 다가가 이들 또한 케이블 타이로 결박했고, 두 여인 중 먼저 김 씨에게 다가가 "금목걸이를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김 씨가 계속 금목걸이를 넘겨주지 않으려 반항하자 흥분한 범인들은 김 씨를 끌어내 시멘트 바닥에다 패대기친 후 구둣발로 수차례 이마를 밟다시피 하며 구타했다. 겁에 질린 최 씨가 "그거 그냥 줘 버려!"라고 소리치자 다른 범인이 “씨발년아. 넌 조용히 해!”라며 최씨의 옆구리와 목 부위를 칼로 찔렀다.
잠시 기절한 뒤 깨어난 최씨의 귀에는 범인들이 몽둥이로 사람들을 퍽퍽 때리는 소리, 신음소리와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범인 중 한명은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이 씨에게 “말이 많다”며 이 씨의 입안에 칼을 넣어 귀 부근까지 찢어버렸고, 이 장면을 목격한 최 씨는 엄청난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들은 다짜고짜 김씨와 최씨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칼로 머리카락을 뚝뚝 잘라 바닥에 내팽겨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했다.
범인들은 이 씨와 고 씨, 김 씨를 칼로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죽인 뒤 피해자들의 머리를 흔들며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했다. 이때 최씨는 죽은 척을 하며 숨도 쉬지 않고 머리를 축 늘어뜨렸고, 최씨의 얼굴을 흔들어보던 범인은 “뒤졌구먼” 이라며 밖으로 나갔다. [20] 이후 방 밖에서 10분여간 유리잔들을 깨부수는 소리, 수돗물을 트는 소리가 들렸고 범인들은 "빨리 가자! 시간이 없다!"면서 도주했다. 최 씨는 목과 옆구리를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급소를 피해 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최 씨가 생생히 기억한 사실이 있는데 바로 범인들이 자신에게 털어놓은 범행 동기였다. 범인들이 칼로 그녀를 위협할 때 최 씨는 "남편이 지금 뇌 수술 중이라 일을 못해서 내가 식당에서 일해서 받은 일당 가지고 겨우겨우 먹고 살고 있다"고 호소하며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그때 범인이 "우리도 회사 잘려서 아줌마랑 같은 처지이고, 우리도 안 이러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며 폭력과 함께 금품을 요구했고 실제로 택시기사의 현금 66,000원과 여성 피해자들의 귀금속 일부, 신용카드, 체크카드 등을 빼앗아 갔음이 드러났다.
6.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일단 현장에 남겨진 흔적들과 피해자의 증언들을 고려해 볼 때 언뜻 봐서는 금품을 노린 범죄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건의 실체를 깊이 들여다 보면 금품을 노린 범죄라고 보기에는 몇 가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우선 이 범죄가 강도의 짓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피해자 고 씨의 상태였다. 당시 고 씨는 금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시계줄은 풀려 있었으나 범인들이 시계를 가져가지는 않았다. 고 씨의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은 금반지를 가져가지 않았으며 여성 피해자들의 손목에 차고 있던 반지와 금팔찌 등 김 씨의 목걸이 2개와 이 씨의 팔찌 1개를 제외하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즉 귀중품을 노린 범죄라고 하기에는 남기고 간 귀중품들이 너무 많았다.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급히 귀금속들을 훔치고 입막음을 위해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달아났기 때문에 미처 다 챙기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범인들은 업주 이 씨의 입을 찢는다든지 엉덩이를 칼로 찌른다든지 하는 불필요한 시신 훼손을 했고 여성 피해자들의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고 자르는 짓을 했다. 이렇게 사건 현장 훼손에 오랜 시간을 쏟았다는 점을 보면 강도의 소행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현금 일부와 신용카드, 체크카드, 귀금속 일부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경찰 측에선 피해자들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지 않았는지 수사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카드를 쓰거나 훔쳐간 귀금속들을 장물로 내놓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장물품표를 발부해 전국 보석상에 뿌리다시피 했지만 좀처럼 귀금속들의 판매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로 보아서는 단순강도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생존자 최 씨도 "범인들이 단순한 강도들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최 씨는 범인 일당들 중에서 유독 용의자 갑이 조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1990년대 말에는 대도시 유흥가를 중심으로 조직폭력배들이 활개를 치면서 갖가지 폭력 사건이라든지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남에서도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신사동은 그 무렵에 조폭들의 이권 다툼이 활발했던 곳이었다.
생존자 최 씨는 범인들이 사용한 칼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기억했는데 칼의 길이가 부엌에서 쓰는 일반 식칼 치고는 길이도 길었고 하얗고 반짝거리는 데다 두께도 매우 얇았다고 한다. 이 증언대로라면 범인들이 쓴 칼은 흔히 사시미로 부르는 회를 칠 때 쓰는 회칼임이 분명했다. 당시 조폭들이 살인 무기로 회칼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일당들이 조폭들일 수도 있다는 데 설득력이 있다. 정말 범인들은 이 단란주점의 이권을 노린 조폭들이었을까?
2016년 2월 2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당시 사바이 단란주점이 딸린 건물의 건물주를 만나 그 사실에 대해 물었다. 당시 사바이 단란주점은 유명한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이 자주 들락거리는 고급 음식점인 사바이 음식점에 딸린 단란주점이었고 사바이 음식점은 3명이서 돈을 합자해 투자해서 운영한 고급 음식점이었다고 하는데 혹 이들 사이에서 지분을 놓고 다툼이 일어나지는 않았는가 했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바이 음식점은 1998년 무렵에 매출이 급감한 상태였고 이 씨 자매에게 따로 단란주점만 임대해 준 것이지 조폭이 노릴 만한 이권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주점은 본래 사바이 음식점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2차로 놀다 가라고 서비스 룸 형식으로 만들어 둔 것이었고 이 씨 자매가 임대를 받아 단란주점을 운영한 지는 고작 반 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사바이 음식점 건물 관계자는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서 한 인터뷰에서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던 중 형사들이 범행 동기에 대해 '택시 기사 고 씨를 노린 청부살해가 아니냐'는 추리를 한 것을 들었다고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돈을 노린 범죄였다면 범인들은 주점에 들어온 직후에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나는 것이 더 사리에 들어맞는다. 범인들이 들어왔을 당시에 주점에는 여주인 이씨 혼자 있었다. 그런데 범인들은 6월 13일 밤 10시 쯤에 단란주점에 들어와서 최소 3~4시간 정도 지나서야 범행을 저질렀다. 그 사이에 택시 기사 고 씨가 축구 중계를 보기 위해 지인이었던 이 씨가 운영하던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들어왔는데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은 단순 강도살인이 아닌, 애초부터 고 씨를 타깃으로 노리고 저지른 청부살인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여자들은 입막음을 위해 살해한 것이고 물건 일부를 훔쳐가고 카운터 등을 어지럽힌 것도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고 씨가 단란주점에 방문할지 알고 미리 그곳에 가있었는지가 의문이 된다. 만약 고 씨를 노린 게 맞다면 도대체 고 씨가 무슨 원한을 샀기에 남에게 청부살해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까? 정말 이 사건을 저지른 범인들은 살인청부업자였을까?
6.1. 범인은 이 씨의 전 남편?
범행 동기가 단란주점의 이권을 노린 것이나 강도의 소행이 아니라 애초부터 택시 기사 고 씨를 노린 청부살해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가장 먼저 범인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살인을 교사한 인물로) 거론된 사람은 업주 이 씨의 전 남편이었다. 사건 당시 업주 이 씨는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는데 이 씨의 전 남편이 이 씨와 사이가 각별했던 택시 기사 고 씨가 불륜 관계가 아닌가 의심해서 살인청부업자에게 살인을 교사했던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그러나 택시 기사 고 씨의 지인들은 "그가 남들로부터 원한을 살만 한 짓을 저지르거나 보복당할 짓을 한 적은 없다"고 단언했으며 경찰들이 살인교사범으로 의심했던 이 씨의 전 남편도 그 무렵에 경제적으로 심히 쪼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 청부를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 점과 더불어 뚜렷한 혐의점도 없기 때문에 결국 이 씨의 전 남편을 기소할 수는 없었다.
6.2. 범인 검거?
경찰이 조기에 범인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또 하나의 근거는 생존자 최 씨가 사건 당시의 일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범인들의 몽타주가 조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무려 10만 장이 넘는 범인들의 몽타주가 그려진 수배지를 전국에 뿌렸고 당시 MBC에서 방영했던 공개수배 프로그램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방송하는 등 대대적으로 공개 수배를 알렸다. 그 결과 전국 각지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쏟아졌다고 한다.그리고 마침내 범인으로 의심되는 1명을 검거했는데 경찰 측에서 검거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범인 3명 중 을이었다. 일단 피해자의 진술로 얻어낸 을의 몽타주를 보았을 때 피의자의 얼굴은 몽타주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고 3명의 범인을 목격했던 이 씨의 언니도 용의자를 보자마자 "범인 3명 중 한 사람이 맞다"고 하면서 정말로 범인 3명 중 1명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용의자가 잡히게 된 이유는 공개수배 전단지를 본 누군가가 용의자의 얼굴이 범인 3명 중 1명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체포된 용의자는 이 씨의 언니가 누군지도 모르는 듯 했다. 이 씨의 언니가 그를 보자마자 왜 그랬냐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을 때도 오히려 “저 사람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며 형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연히 용의자는 6월 14일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이때 사건 조기 해결에 목숨을 걸었던 경찰은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용의자를 신나게 구타하며 강압수사를 하는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하고 말았다! 결국 강압수사에 못 이긴 피의자는 자신의 알리바이도 제대로 대지 못했고 거기에 '내가 진범인데 기억을 못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겹쳐 허위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사건이 있었던 당일 용의자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형과 축구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결국 경찰은 용의자를 풀어 줘야 했고 이 사건은 단순한 촌극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7. 프로파일링으로 밝혀낸 새로운 사실
2016년 2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프로파일링 전문가들과 함께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일어난 이 살인 사건은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렸다. 경찰들은 당초 '이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고 추측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범인 검거에 실패한 이유도 이 사건의 초점을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고 잘못 맞추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7.1. 범행은 우발적이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소속의 권일용 범죄분석팀장은 "이 사건은 계획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 첫 번째 근거로 자신들의 정체가 이미 노출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다시 사건 경위를 살펴보자면 범인들은 6월 13일 밤 10시 쯤에 찾아왔는데 그때 단란주점은 이 씨의 언니가 보고 있었고 그녀는 자정이 조금 되기 전에 업주 이 씨와 교대했으며 이때 이 씨 언니의 남편이 단란주점으로 들어와 이 씨 언니를 데리고 나갔다. 즉 목격자가 최소 2명이 있고, 이 중 한 명은 약 2시간 정도 자신들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는 것을 범인들이 모를 리가 없다. 이미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단란주점에 머물렀고 여기서 살인 사건까지 일으킨 점으로 볼 때 계획적으로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일어난 범죄라면 뚜렷한 목격자가 있었고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고 판단해 계획을 미루거나 장소를 옮겼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당시 경찰 측에서는 범인들이 신문지로 지문을 닦았다는 점을 들어 이것은 계획적인 살인 사건이라고 단정했다. 사람의 손에서 분비되는 땀은 지방 성분이 있어 물수건 같은 것으로 닦아도 물체에 지문이 남지만 문지로 닦을 경우 종이라는 재질의 특성상 수분 및 지방 성분을 모두 흡수하여 지문이 지워지게 된다.[21] 그래서 경찰들은 이 점을 들어 계획적인 범죄라고 단정했는데 자신의 족적 등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지우기 위해 물을 틀어놓고 나간 점, 자신들의 지문이 묻었을 잔과 술병들을 잘게 깨뜨려 부수고 간 점 등을 들어 계획적인 범죄라고 보았던 것이다.[22]
이에 대해 권일용 팀장은 반론을 제기했다. 정말 계획이 있는 살인범들이나 어떤 가학자들을 보면 신속한 처리와 증거 인멸의 계획이 현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 사건의 범인은 이미 모든 범죄가 저질러질 때까지 자기 흔적들을[23] 많이 남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것을 나중에 피해자들이 다 죽은 뒤에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무엇이 남아 있을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들어 그는 이 사건이 계획적 범죄가 아닌 우발적 범죄라고 주장했다.
범인들은 양주 3병을 마신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알코올 도수 40%가 넘는 독한 술을 3명이서 3병을 마셨다면 꽤나 술에 취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혹 성범죄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실제로 범인 일당들이 단란주점에 들어왔을 때 도우미를 요구하기도 했고 피해자들은 옷이 벗겨지거나 찢긴 흔적이 있었으며 특히 생존한 최 씨는 하의가 발가벗겨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여성 피해자들의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앞서 언급했듯이 범인들은 칼로 여성 피해자 2명의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자르고 달아났는데 머리카락을 잡고 칼로 자르는 행위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범인들 입장에서는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범행을 저지른 후 최대한 빨리 현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시간을 더욱 허비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영국에서 2010년에 이른바 헤어컷 킬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검거된 바 있었다. 그는 여성들을 살해한 후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잘라갔는데 알고 봤더니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성도착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사건도 머리카락 성도착증을 앓는 자들이 저지른 소행일까?
이에 대해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범인들이 성도착증을 가진 자들은 아닐 것'이라고 일언지하에 부정했는데 일반적으로 특이한 성적 취향이 있는 자들은 절대 같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도 그러한 이상성욕이 있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범죄일수록 단독범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24] 그런데 이 사건은 3명이서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특이한 성적 취향이 있는 자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하여 프로파일링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이 사건은 계획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아니며, 술에 취해 있던 범인들이 피해자와 어떤 이유로 충돌하게 되었고, 순간적인 분노나 우울함을 이기지 못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이다.
7.2. 의문점
그러나 우발적인 범죄로 보기에도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있다는 것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계획적 범행이 아닌 우발적 범행이라면 3명중에 단 한명의 반대 없이 모두가 살인을 실행 했다는게 아이러니하다. 이 부분은 우발적 범행이 맞다면 과거에 이미 "발각되지 않은 살인 경험"이 있었을걸로 추정되는 부분이다.또한 범인들이 사건 당시 이미 살인에 쓸 연장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일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라면 대개 주변에 있던 도구들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우선 손에 잡히는 것들로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곳이 단란주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떨이나 소화기, 술병, 주방에서 쓰는 식칼 등으로 살인을 저질러야 사리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 범인들은 이미 살인 도구를 챙겨왔다. 피해자들을 결박할 때 쓴 것들은 케이블 타이였는데 일반적으로 케이블 타이를 지니고 다닐 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단란주점에 말이다. 사건 당일 단란주점 문 앞에 자동차 한 대가 문을 막은 채로 주차되어 있다는 것도 목격되었는데 이는 범인이 이 단란주점의 통행을 차단하기 위해 한 행동으로 볼 수 있었다. 중간에 범인 일당들 중 둘이서 실랑이를 하다가 1명이 위에 올라갔다 내려왔다고 했는데 연장을 챙기러 간 것인지 주점 문을 잠그기 위해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다 생존자 최 씨는 일반적으로 부엌에서 쓰는 식칼이 아닌 회를 칠 때 쓰는 회칼을 차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냈다. 범행에 쓰인 칼이 이 단란주점 주방에서 쓰이는 식칼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인들은 이미 처음부터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건 현장에는 그 식칼을 꽂는데 썼을 것으로 보이는 칼집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이 설을 지지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서 그 문제의 칼집을 통해 범인들이 쓴 칼을 조사해 본 결과 해당 칼은 잠수할 때 그물에 걸렸을 경우 자신을 구조하기 위해 그물을 자를 목적으로 쓰는 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이삼재 전 총경도 이 칼은 공수특전단이 쓰는 칼이라고 했는데 역시 양쪽에 톱니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실제 생존자 최 씨도 칼에 톱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고 특히 톱니를 매우 강조해서 그렸으며 피해자들의 상처에서도 2가지 흉기를 쓴 것이 드러났다. 범행은 우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살인 도구는 미리 준비했다는 점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다만 범인 세 명 중 한 명에게서 조폭 느낌이 물씬 났고 실제로 조폭들은 예기치 못한 폭력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평소에도 몸 안에 흉기를 숨겨 두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므로 만약 조폭이라고 할 경우 연장을 가지고 다녔다는 사실만으로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케이블 타이만이 의문점으로 남는다.
또한 사건 발생 시간이 1998년 월드컵 한국과 멕시코전 경기 후반전에 일어난걸로 봐서 그 시간대에는 단란주점 및 유흥업소에 손님이 없다는걸 노렸을 수도 있었던 부분이다.
참고 기사
7.3. 결론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인터뷰를 가진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범행 자체는 우발적이지만 범인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과거에 살인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당시 시신의 부검을 담당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는 시신의 행태를 들어 "살인을 처음 해 본 게 아니거나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등의 특별한 경험이 없는 한 이런 식의 범행은 힘들지 않겠냐"는 견해를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의 정성국 박사 역시 범죄 행태가 너무 잔인하고 너무 대범하다는 점을 들어 일반인이 저지른 범행은 아니라고 밝혔다. 즉 이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으켰지만 범인들은 과거에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특히 생존자 최 씨는 용의자 갑, 을, 병 중에서 갑을 매우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최 씨의 말에 따르면 갑이 그 3명 중에서도 리더 격에 해당하는 인물로 보였다고 한다. 그가 살인 관련된 모든 지시를 내렸고 증거 인멸 지시도 그가 내렸다는 것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박지선 교수는 3인조 강도의 경우는 보통 1명의 주범이 있고 종범들이 존재하는데 몽타주의 사진에서 주범으로 보이는 갑의 머리 길이가 다소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혹시 그가 교도소에서 출소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 소속의 김원배 범죄수사연구관[25]도 흉악범죄 전과가 있는 자들 혹은 장기복역수들 이런 사람들이 출소 직후에 보통 주점에서 이런 범죄를 종종 저지른다는 점을 들어 범인 중 적어도 1명은 전과자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3명의 범죄 경력은 제법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피해자들을 결박하는데 썼던 케이블 타이였다. 생존자 최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도 케이블 타이에 두 손을 결박당했는데 어떻게 몸부림치다 보니까 저절로 풀렸다고 한다. 본래 케이블 타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집어넣어 당기면 톱니가 단단히 물려 결박되므로 성인 남성이라도 풀기 매우 어렵지만 반대로 집어넣으면 겉으로 봐서는 결박이 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톱니가 물리지 않아 그냥 쉽게 풀리게 되어 있다. 이 경우라면 가냘픈 여성이라도 쉽게 풀고 나올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 발견된 케이블 타이는 반대 방향으로 끼워져 있었는데 이는 결국 범인 중에 케이블 타이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며 따라서 3명 중에 치밀한 사람이 있지만 그와 반대로 범죄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범인들이 현장에 흘리고 간 칼집인데 보통 특수부대 요원들이나 당시에도 간첩 사건이 많았는데 간첩들이 이용했던 단도 중 하나라고 한다.[26]
세 번째는 경찰들이 놓쳤던 증거인 사건 현장 바닥에 뒹굴고 있었던 고무골무였다.
피해자들 중에는 고무골무를 쓰던 사람이 없었다. 특이하게도 이 고무골무는 혈흔 하나 없이 깨끗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이삼재 전 총경은 이 고무골무를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 범인의 것으로 보았다. 즉 범인들 중 누군가가 실수로 흘리고 갔다는 것이다.
이 고무골무는 주로 전자제품을 제조하는 공장의 노동자, 제본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의 직군에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자는 전자제품의 부품을 다루다 보면 정전기에 많이 노출되는데 고무는 부도체이므로 정전기 예방을 위해 주로 사용했고[27] 후자는 책을 넘길 때 넘기기 좋게 하기 위해 많이 썼다는 것이다. 이 고무골무가 범인 중 한 사람이 흘리고 간 것이라면 범인은 전자제품 제조 공장 노동자였거나 제본소 노동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고 보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최 씨가 범인 중 한 명이 자신이 직장에서 구조 조정을 당해 해고되었다고 발언한 것이다. 권일용 팀장은 이 말과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연관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범인의 말을 통해 볼 때 범인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나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반복된 해고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 씨가 범인에게 "남편이 뇌수술 중이라 일을 못하고, 내가 번 돈으로 겨우겨우 먹고 산다"고 호소하며 빌었을 때 범인이 "나도 회사에서 잘려서 아줌마랑 같은 처지"라고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은 알게 모르게 범인이 내뱉은 범행 동기이고 범인의 심리 상태를 말해 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권일용 팀장은 이 사건이 일어났던 1998년 무렵 들어 한국에서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성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았을 때 범인 3명 중 갑은 이미 여러 차례 강력범죄를 저질렀던 경험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2명 중 1명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이 잦았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이다 보니 제대로 취직해서 밥벌이를 하기는 어려운 상태였고 그 때문에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져 있어 마치 과거 지존파들처럼 소위 사회 기득권층에 대해 이유 없는 적대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강남에서도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신사동의 이 사바이 단란주점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 씨와 고 씨가 연관된 무언가가[28]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일어났으며 이에 범인 3명이 격분해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평소 소지하고 다니던 연장들로 피해자들을 해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묻지마 범죄인 셈이다.
8. 여담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인해 2000년 8월 1일 이후에 일어난 미제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범인을 잡을 경우 처벌이 가능해졌지만 이 사건은 1998년 6월 14일에 일어난 사건이라 공식적으로는 사건 발생으로부터 만 15년이 지난 2013년 6월 14일 자로 시효가 만료되었다. 범인을 잡으려면 범인들이 1998년 6월 14일~2013년 6월 14일 사이에 3년 이상 외국에 체류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만 가능한데 범죄자가 형사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외국으로 도피할 경우 즉시 공소시효가 정지되며 해외에 체류한 기간은 시효 기간에 산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범인들도 [age(1998-06-14)]년째 행방이나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것을 보면 해외로 도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특히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노(老) 형사들은 공소시효도 끝났고 이미 퇴직했지만 여전히 개인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으며 "공소시효가 끝났더라도 절대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원배 범죄수사연구관은 "이 사건은 분석 결과 3~5% 이내의 특이한 범죄인데, 그 범인들의 특징은 전부 연쇄성 범죄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단 1건을 저질러도 여죄가 있었고 유사 범행이 계속 일어났으므로 추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삼재 전 총경도 "지금 이 사건이 [age(1998-06-14)]년째 미제사건인데, 그 사이에 이 범인들이 이것보다 더 큰 범행을 저질렀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으며 그 이후로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안타깝게 순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8년 9월 23일 서울청 서울강남경찰서 소속 박용성 경사가 밤 10시 쯤 이 사건의 용의자 3명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강남구 역삼2동에서 잠복근무를 시작했는데 다음 날인 9월 24일 새벽 1시에 범인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가 배회하는 것을 목격하고 본인 소유의 오토바이를 타고 미행을 시작했으나 강남수도사업소 앞 노상에서 불법주차차량과 추돌하여 사망했다. 이후 용의자 3명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경찰이나 방송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경찰이 박 경사의 순직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은 했다.
경찰 병력 2만여 명이 투입되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제사건이 되어버린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age(1998-06-14)]년 전 그날 경찰은 어디서 초점을 잘못 맞추었기 때문에 많은 증거물을 획득하고도 범인 검거에 실패하게 된 것일까? 일부에서는 필리핀 관광객 연쇄 표적납치 살인사건의 범인들과 몽타주의 유사성을 들어 동일범이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필리핀 관광객 연쇄 표적납치 살인사건의 범인들 중 최세용 등 일부는 이 사건 당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으므로 범인일 수 없다.
사건으로부터 11년이 지난 2009년 안타깝게도 살해당한 여주인 이 씨의 유일한 아들이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고 한다.
3년 후 벌어진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과 유사점이 많다. 범인이 3명인 것, 장소가 유흥업소인 것, 범행 도구와 살해수법이 비슷하다는 점, 게다가 2층이 중국집이라는 점 등.
2022년 8월 27일 방영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1999년 파주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피해자의 손목을 묶은 매듭의 형태와 피해자의 목에 가해진 흉기에 의한 절창상의 높은 유사도를 근거로 해당 사건을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의 3인조가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두 사건이 벌어진 시기가 1년 6개월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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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에 세워진 경찰차 옆에 목격자의 쏘나타 3 택시가 주차되어 있다. 사건 이후에는 건물이 외관마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리모델링되어 당시의 모습(삼각형 모양 지붕)을 찾아보기 힘들다. 네이버 로드뷰를 통해 건물의 뒷길에서 보면 약간이나마 찾아볼 수는 있다.[2] สบาย. '편안하다', '좋다' 등의 뜻을 가진 태국어 단어다.[3] 강남구 논현로 825(구 주소 신사동 585-9)[4] 심지어 10년 이상 법의학자로 일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과 교수도 가장 충격적이고 잔혹한 사건이라고 꼽았는데 당시 피해자들의 시체가 고문을 당했던 것으로 보일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5]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으나 2000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은 모두 시효 만료 처리하기로 결정하여 결국 이 사건도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사실상 완전범죄가 되었다.[6] 다만 범인들이 해외로 도피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이럴 경우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 의거하여 공소시효가 정지되므로 검거된다면 처벌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있다.[7] 2016년 2월 27일 방송분[8] 현지 시각으로 6월 13일 17시 30분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서머타임을 쓰기 때문에 6월에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시차는 7시간이므로 한국 시각으로는 6월 14일 0시 30분에 경기가 시작되었다.[9] 피해자의 본명은 따로 있지만 본 문서에서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공개된 가명을 사용하여 기술한다. 피해자들의 본명과 나이가 적힌 뉴스 기사는 이곳 참조.[10] 시신이 마치 미국의 미제사건인 블랙 달리아 사건의 피해자 엘리자베스 쇼트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였다고 한다.[11] 흔히 고깃집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나뭇가지 형태의 옷걸이를 말한다.[12] 그럼에도 현재의 기술로는 현장에서 제대로 된 과학 수사와 프로파일링을 거쳤으면 이들을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사건 당시인 1990년대에는 그 정도의 과학 수사를 하는 기술이 없었다.[13] 완전한 지문이 아니라 일부만 남겨진 지문은 의외로 많이 발견되었다.[14] 가수 최유나의 노래다.[15] 가수 박강성이 부른 노래다.[16] 역시 박강성의 노래다.[17] 가수 녹색지대의 노래다.[18] 가수 박상민이 부른 노래다.[19] 용의자 중 한 명이 최 씨에게 몸을 밀착시키면서 상체를 더듬는 등 성추행을 시도했다고 한다.[20] 그런가 하면 최 씨의 상태를 확인하던 중 밖에 있던 범인 하나가 “됐어, 그 아줌마는 죽이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현장 정리 후 황급히 떠났다고 한다.[21] 하지만 유성 잉크로 인쇄한 신문지로 닦으면 지문이 잘 지워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며 보통은 무엇을 닦으려면 거친 신문지를 사용하지 않고 꼼꼼히 닦을 수 있으며 단란주점에 반드시 구비되어 있는 냅킨이나 화장지 아니면 피해자 의복 같은 천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유리창이나 그릇의 손자국이나 기름을 닦는 데 신문지는 일상적으로 이용되었다. 당장 학교나 군대에서도 유리창을 신문으로 많이 닦았다).[22]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면 장갑을 껴서 지문을 남기지 않고 술 마시고 놀지도 않고 바로 살해하고 나갔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 행동력이 약해지고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으니까.[23] 예를 들자면 가장 위험한 흔적인 지문이라든지.[24] 바바리맨을 생각해 보자. 바바리맨 혹은 바바리걸은 자신의 알몸이나 성기 등을 남들에게 노출해 쾌감을 얻는 성도착증 환자들인데 그들이 여럿이서 같이 다니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있는가? 대개 노출증 환자들은 혼자서 움직이지, 절대 여럿이서 움직이지 않는다. 노출증을 앓고 있는 남자들이든 여자들이든 자기네들끼리도 서로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25] 본래 1998년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었는데 퇴직하고 범죄수사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며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26] 이점 때문에 유튜버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는 범인이 북파공작원 출신일수도 있다고 추리했다. 특히 지방층이 많은 엉덩이에 칼질을 하면 치명상이 거의 나오지 않아 고문법으로 쓰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27] 하지만 이것은 틀린 내용이다. 정전기 예방을 위해서라면 부도체가 아니라 전도체를 사용하여야 한다. 정전기는 도체가 공기, 고무 등 부도체를 사이에 두고 발생하는 것이다. 산업용 도전성 골무가 나와 있다. 다만 이것이 감전을 막기 위해서라면 말이 된다. 전자제품 조립이나 수리하는 인원은 의복에 도체(탄소 섬유 또는 금속)가 들어가서 자연 방전이 잘 되는 작업복을 입으며 신체의 한 부분을 접지가 되는 곳에 연결하는 금속제 접지선 클립을 달고 작업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전기 때문에 반도체가 쇼트를 일으켜 망가지면서 불량품이 되어버린다.[28] 최 씨가 방에서 나와 화장실에 갔을 때 다섯 사람이 카운터에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고 증언했으므로 범인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두 사람 중 한 명(또는 두 사람 모두)이고 이에 원래 목적은 고 씨 또는 이 씨였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와 최 씨는 사건, 그리고 범인들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