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9 07:53:12

우순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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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우순경 사건 당시 신문.jpg
우순경 사건을 보도한 1982년 4월 27일자 경향신문 1면.
1. 개요2. 발단3. 전개4. 경찰의 한심한 대응5. 희생자6. 피해가 커진 이유7. 이후8. 대중매체에서9. 같이 보기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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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2년 4월 26~27일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일대에서 우범곤 순경에 의해 발생한 총기난사 및 연속살인 사건. 당시 경찰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를 경찰로 채용했다.[1]
  • 90여명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국민들이 총에 맞아 죽거나 중상으로 앓을 때 경찰들은 온천에서 접대를 받고 있었다.
  • 경찰의 근무 기강 해이가 만연하여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다. 또한 해당 경찰서장도 접대로 이탈했다.
  • 무기고 열쇠를 분실하는 등 관리가 허술해 사망자수를 늘렸다.
  • 경찰들이 범인을 잡으려고 노력하기는 커녕 사건 현장에서 오히려 멀리 도망가 숨어 있었으며 사건 후 뒷수습까지 엉망진창이었다.
  • 한때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임에도 백서 하나 편찬하지 않았다.
  • 사망자 수도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2. 발단

1981년 12월 30일 오후 5시, 궁류지서로 전근 온 뒤 이듬해 2월 8일에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에 살던 전(田)양과 사귀게 되었고 3월 9일에 전양의 집에서 동거 생활을 한다. 그런데 사실 전양의 가족들은 동거 전부터 두 사람의 교제를 극력 반대했는데, 이유는 바로 우범곤의 술버릇이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욕설은 기본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등 심하게 행패를 부려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2] 가족들이 반대를 안 할 수가 없었던 것. 애초에 우범곤이 궁류지서로 전근 온 것도 말이 전근이지 실제로는 사고를 쳐서 좌천당한 것인데, 원래 101경비단 소속으로 청와대 경호로 근무했다가 거친 성격으로 인해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아 청와대 경호에서 제외, 전출 처리되었을 정도였다.[3]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에 들어가기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 뒤 함께 살라며 만류했지만 우범곤이 결혼 비용이 없다며 가을로 식을 미루기로 하고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고집했다. 가뜩이나 집안이 가난해 늘 열등 의식에 젖어있던 우범곤은 식도 올리기 전에 여자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3. 전개

1982년 4월 26일, 그날 우범곤은 저녁시간 근무를 위해 낮 12시경에 집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고는 낮잠을 잤다. 그가 잠든 와중에 동거녀가 그의 몸에 붙은 파리를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쳤고, 그 둘은 이를 계기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화를 미처 식히지 못한 채 우범곤은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뒤, 저녁 7시 반경에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코피가 날 정도로 동거녀를 주먹으로 폭행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녀의 친척 언니가 뛰어 들어와 말리자 친척 언니의 뺨마저 닥치는 대로 때리며 난폭하게 굴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건의 전말을 들은 그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다.[4]

지서로 향해 지서에 배속된 육군 방위병들과 소주를 퍼마시던 우범곤은 동거녀의 남동생이 와서 경찰이면 다냐고 소리를 질러대자 폭발, 카빈총을 장전했고 만류하는 방위병들을 총을 쏴 내쫓은 다음에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M2 카빈 2자루, 실탄 144발, 수류탄 8개 등을 탈취했다. 그 이후 우범곤의 범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자시각범행 내용
4월 26일밤 9:40지서를 나와 대구에서 표구사를 하는 26세 남자[5]에게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궁류면 토곡리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조준 사격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했다.
밤 9:45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궁류우체국[6]으로 가서 여성 교환원[7] 2명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 1명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총상을 입어 사경을 헤메던 24살의 여성 교환원이 숨지기 직전, 마을 이장 집의 행정전화와 의령우체국 간의 코드를 연결했던 덕분에 주민[8]에 의해 신고(22시 34분)가 가능했다.
밤 10:00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를 마구 난사하였고, 주민 4명 인근 마을의 2인을 살해했다.[9]
밤 10:10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을 살해했다. 심지어 여기서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수류탄을 투척하기도 했다.
밤 10:50평촌리의 한 상갓집[10]에 난입하여 “비상이 걸렸다”고 말하고는 문상을 한다는 핑계로 부의금 3천 원(오늘날의 4만 원 가량)을 내고[11] 문상객들과 어울려 10여 분간 함께 술을 마셨는데, 여기서 문제의 난폭한 주사가 또 발동,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상주의 이종사촌이 문상객들을 접대하다 말고 나서서 "경찰이면 경찰이지, 상갓집에서 버릇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라고 꾸짖자 이에 격분해서 총기를 난사[12],
상주 일가족[13] 등 12명을 살해하였다. 이후 그는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난사하여, 이곳에서만 무려 23명을 살해했다.
4월 27일새벽 5:35평촌리 마을에 다시 나타나 알고 지내던 주민의 민가에 침입했다.
그는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그 자리에서 우범곤 본인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

우범곤의 범행 중 가장 악질적인 점은 어린이와 갓난아기까지 무차별로 살해했다는 것으로, 민가에 침입해서 아이들을 사살하는가 하면[14] 평촌리 상갓집에서[15] 20여명을 사살하고 난 뒤 피바다가 된 현장을 떠나려다 뒤에서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아직 안 죽은 게 있어?"라면서 되돌아가서는 그대로 아기를 사살해 버렸다[16]고 한다.

또한 우범곤이 총기를 난사하고 다니는 동안 한 택시 기사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빨리 불 꺼요, 지금 불 안 끄면 다 죽어요"라며 위험을 알렸고, 택시 기사의 말대로 불을 끈 집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택시 기사는 이후에 안타깝게도 우범곤에게 사살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간발의 차로 미처 불을 끄지 못한 집들도 변을 당하고 말았다.

4. 경찰의 한심한 대응

한 시간 동안 화기를 사용해 마을 4개를 오가면서 수 십 명을 살상한 전대미문의 살상 사건에도, 당시 한국 경찰은 대응은 커녕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마을 유력자로부터 온천접대 후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궁류지서장 허창순 경사 일행은 밤 22시 50분경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자초지종이 담긴 신고를 받지만 무시하고 궁류지서로 들어온다. 그곳에서 우범곤이 무기를 탈취해 총격을 벌이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 총격 현장에 자기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도피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지서장 일행은 무기고로 향해 각자 무기를 챙기고 출동은 했으나... 우범곤 순경이 이동한 반대 방향으로 출동하는 추태를 부렸으며 당시 궁류지서 맞은편에 면사무소가 있었기에 여기에 방송을 했다면 우범곤 순경의 희생자를 줄일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궁류지서 경찰들이 도주로 화룡점정을 찍었고 이후 이들은 경찰 직무포기로 인정되어 처벌을 받았다.

한편 마을에 살던 의령군 민방위과 공무원의 사건 전파를 받고 의령경찰서 경무과장 신현기와 보안과장 김영석 휘하 전투경찰 30명이 자정 무렵 도착했으나 우범곤의 소재를 파악하기는커녕 어두컴컴한 시골길에서 갑자기 피격 당할것을 두려워하여 마을 초입 다리 밑 등 곳곳에 숨어있었다. 후에 경찰은 이를 매복이었다고 변명했으나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주민 살상이 진행 중인데 경찰은 현장에 진입하지 않고 웅크려 있었다는 것이며 더구나 매복을 다리 밑에서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당시 관할 책임자인 의령경찰서장 최재윤 경정(1982년 당시 57세)은 다음날 부산에서 서장회의가 있다는 핑계로 하루 일찍 부산으로 이동하여 근무지를 보고 없이 무단이탈한 상태였다. 보고를 받고 복귀하여 범행 지역에 이르는 다리에 도착한 것은 익일 새벽 1시 20분이나 되어서였다. 현장에 도착한 의령서장은 경찰들을 규합하여 범인 수색에 나서기는커녕, 곳곳의 사상자를 목격하고 두려움에 빠져 곧바로 궁류지서로 도망쳤다.

지서에 도착한 의령서장은 우범곤이 많은 실탄을 가져갔다는 보고를 받자 더더욱 두려움에 빠져 지서 안에만 틀어박혔다. 게다가 지서에서 마을 스피커로 경보를 발령하고 사이렌을 울리거나, 또는 예비군을 동원하거나 의령서 휘하 인근 지서에 경찰 지원을 지시하지도[17] 않고 단지 내무부에 상황 보고만 하였을 뿐 아무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지서에 대기하고 있던 경무과장과 보안과장도 마찬가지로서, 만약 이들이 밤 22시 24분에 처음 신고를 접수한 즉시 경보 방송을 발령하였다면 적어도 희생자의 절반을 구했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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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종료 직후 현장을 지키는 39사단 기동타격대

새벽 2시에는 주민 2명이 목숨을 걸고 산을 넘어와 큰일이 났다며 마을에 있던 의령 경찰들에게 출동을 재촉하였으나 서장은 날이 어두워 시야가 확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이것도 거부하였다.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마산시·진주시의 기동대가 궁류에 도착하였으나 결국 사건은 우범곤의 자폭으로 종료되었으니 요약하면 경찰력의 개입이나 저지가 없었으며 오죽하면 이 사건당시 경찰은 단 1발도 못 쐈다. 그렇게 주민 살상이 진행되었고 속수무책으로 종료됐다.

게다가 위 타임라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범곤이 26일 23시경부터 다음날 자폭하는 새벽 5시경 사이에 무려 6시간 가량 딱히 범행을 실행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조용히 있었는데, 만약 그가 쉬지 않고 계속 날뛰었다면 이 때 경찰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으니 피해가 몇 배로 훨씬 커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5.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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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로해 주는 경찰관을 경계하는 어린이. 이 아이는 우범곤의 학살극으로 형을 잃고 졸지에 6대 독자가 되었다. 훗날 우순경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출연하여 이 사진에 대해 설명하기를 "누구도 믿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우순경부터가 경찰이었으니 당연한 부분.

이 사건으로 인하여 무려 62명의 주민들이 사망했고, 33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6명의 희생자는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총상이 악화되어서 사망했다.[18]

우범곤이 의령군 일대의 네 개 마을을 거의 쓸다시피하여 살인을 저지르다보니, 시골사회 규모를 감안하면 심대한 피해를 남겼다. 조상 대대로 친척 일족이 모여 사는 산골마을의 특성상 일가족이 모조리 몰살당하거나, 가족들을 모두 잃고 일가 중 혼자만 살아남은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위에도 언급되었듯 나이 어린 희생자들도 상당수였는데, 20세 이하의 희생자가 무려 16명에 달했으며 그 중 생후 1개월 된 갓난아기[19]를 포함해 10세 이하의 희생자는 6명이었다.
파일:우순경000.jpg
의령지서에 돌을 던지며 항의하는 주민들

우체국에서 숙직하다 참변을 당한 집배원의 경우, 그의 부인마저 집에서 우범곤에게 살해되는 바람에 슬하의 세 남매는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첫번째 희생자인 청년과 우체국에서 피살된 교환원은 미혼으로 사망한 것이 비통하게 여겨져 유족들끼리 합의하에 영혼결혼식을 올려주기도 했다. 범행이 일어났던 의령 지방에는 아직까지도 4월 26~27일 즈음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고 한다.

6. 피해가 커진 이유

이날은 반상회를 하느라 마을 주민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고 밤늦게까지 불을 켠 집이 많았다. 또 기강 해이로 인해 경찰의 근무지 무단이탈이 만연했는데, 궁류지서의 다른 경찰관 3명도 반상회에 참석하려고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상태였으며, 지서장 역시 마을 유지의 온천 접대를 받으러 지서를 무단이탈한 상태였다. 지서는 다른 근무자 없이 텅 비어 있는 상태였으며 이에 우범곤은 무기고에서 다량의 화기를 용이하게 탈취할 수 있었다.

우범곤의 직업이 경찰이었으며 사건 당시에도 근무복을 착용하고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총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의심없이 우범곤을 맞이했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20] 더구나 당시는 무장공비가 심심치 않게 출몰하던 시대였으므로 주민들은 총소리를 무장공비가 나온 것으로 생각했고 경찰인 우범곤이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했어도 공비소탕 작전을 수행중인 것으로 인식했다.

7. 이후

위 사건은 대량 학살급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하루 뒤 조간신문이 아닌 석간신문에 보도됐는데, 이는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이후 주재기자 제도가 금지되어 연합통신 타전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당시 연합통신이 보낸 것도 내용이 엉성해 뉴스 당일 오후에 기자를 파견하고 나서야 자세히 알려졌다. 사건 몇 달 후 '충견 바둑이 오보 사건'[21]을 계기로 주재기자제 재도입 문제가 수면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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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는 궁류지서장

국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전대미문의 흉악범죄를 저질렀다는 충격성과, 사건 진행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의 비열함과 무능함에 피해가 커졌다는 점 때문에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하여 전두환 정부는 내각 사퇴 압력에 직면했다. 가뜩이나 1982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막 정권을 차지한 상태에 1월 두발자유화와 2월 야간통행금지 폐지, 3월 KBO 리그 개막으로 지지율을 얻기위해 빗장을 풀고 있었는데 이런 사태가 터졌으니 발등에 불 떨어진 전두환 정권의 후속조치는 이례적으로 빨랐고 당시 경찰 관계자들을 선처벌 후조사 순으로 되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정부합동조사반은 이 사건이 상부에 보고도 늦고 출동도 늦은데다 진압마저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궁류지서장 허창순, 의령서장 최재윤을 파면·구속 기소하고 관계자 수 명을 직위해제시켰다. 내무부 장관이던 서정화[22]는 책임을 지고 문책성으로 사임하였고 후임으로 체육부 장관이었던 노태우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국회 내무위에선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치안 문제가 아니라 보고 체계와 무기 관리 등 당국의 치안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내각 총 사퇴까지 요구했다.
의령군을 찾은 전두환의 모습을 담은 1982년 5월자 대한뉴스
전두환 정권은 지역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의령군을 찾아 주민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하는 한편, 국가 차원의 대책위원회를 열어 대대적인 보상을 실시했다. 사건이 일어난 의령군 등 서부 경상남도 지역은 TK와 함께 대한민국 제5공화국과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으므로[23], 전두환이 아무리 간선제로 당선된 대통령이지만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유족들에게는 대학등록금 및 의료비 지원 방안이 이루어졌고 궁류면에 대한 인프라 구축 사업 역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먼저 의령읍~정곡면 간 11km 국도를 새로 포장한 뒤 군도였던 의령~궁류 간 12km 도로를 지방도로로 승격해 경상남도 예산으로 새로 포장했다. 또한 마을 안길 포장, 교량 가설, 주택 개량, 농로 개선 등 총 12개 부문 환경개선 및 생산기반 시설 사업이 진행되었고, 평촌마을 윗쪽에 벽계저수지 및 보가 설치돼 궁류면은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다. 그러나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궁류면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 사건으로 경찰공무원 임용규정이 개정되어 경찰공무원 응시자에 대해 고졸 이상부터라는 학력 제한 규정이 제정되었으며, 인적성 검사와 전과 등 과사실 유무에 대한 조회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실 우범곤은 전문대 중퇴 학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학력 제한이 예전부터 있었다 해도 충분히 응시할 자격이 되었다.

당시 의령경찰서장 최재윤에 대한 대법원 공판[24]에서는 형법 직무유기 관련 중요 판례로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주관적으로는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과 객관적으로는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있어야 하고 다만 직무집행에 관하여 태만, 분망, 착각 등 일신상 또는 객관적 사정으로 어떤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는 형법상의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 조치가 다만 적절하지 못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형법상 직무유기죄가 성립할 수 없는 것"으로 결국 직무유기죄는 불성립되었다. 그리고 파면처리되었던 것도 징계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고 무효가 됐다.#

8. 대중매체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생겼는데도 테러가 아닌 경찰이 저지른 범죄인데다 사건 백서조차 편찬되지 않은 대한민국 공권력의 역대급 흑역사라서 대중매체에선 잘 안 다룬다. 그나마 2008년 7월 15일 tvN <범죄의 재구성>과 2011년 11월 6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언빌리버블 스토리' 코너에서 각각 다뤘다.

유명 역술가 차길진[25]은 어떻게 맨 정신인 사람이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수십 명이나 죽일 수 있느냐며 이것은 의령에서 죽은 빨치산 56명의 원혼 때문이라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급의 주장[26]을 했다. 당연히 과학적 증거 따윈 없으며 헛소리에 가깝다. 단, 차길진의 아버지가 6.25 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에 참가한 차일혁 총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빨치산 운운 발언의 근원이 어디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사건으로부터 2년 후인 1984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결성된 하드코어 펑크 밴드 'Bum Kon'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앨범을 무려 세 개나 냈다. 디스코그래피 2008년에는 이 밴드의 앨범이 CD로 리마스터되어 나오기도 했다. 앨범 리뷰 번역기 돌린 한국어와 북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1999년에 신승수 감독, 조재현, 임하룡 주연의 한국 영화 얼굴이 우순경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제 사건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으며, 순수했던 경찰 조재현이 시골의 작은 사회에 점차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막판에 총기난사하는 것만 같다. 대체 왜 포스터에 충격 실화라면서 과대광고를 했는지 의문일 따름. 오히려 영화는 살인자에게 그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고, 피해자들에게도 모종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묘사했으니 이 영화를 실화라고 하는 것은 실제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참고로 흥행 기록은 관객 1천 명이 전부이다. 다만 개그맨 임하룡의 정극 데뷔작으로서 전혀 우스운 모습이 아닌[27] 연기가 돋보였고 원로 배우 윤인자[28]의 마지막 출연작으로의 가치가 있다.

2012년에 연재됐던 네이버 웹툰 연: 시즌2의 진달래 에피소드가 이 사건을 직접 다루고 있다. 문제는 작가인 구아진(필명 구아바)이 픽션임을 강조하면서 이 사건을 거대한 정치적인 음모로 보일 수 있는 뉘앙스가 있었다. 이 사건의 생존자였던 아이가 방송국 PD가 되어 이 사건을 다시 취재하면서 당시 우범곤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거나 사실은 범인은 여러 명의 사격 전문가들이었다거나 이 사건 이후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이 되어서 대선가도에 들어서게 되어[29] 최종적으로는 높으신 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거나, 이 사건으로 전투경찰이 생겼다거나[30] 방송은 권력이 장악한다거나 하는 가설을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있다. 당연히 댓글란은 전쟁터 수준, 오죽했으면 우범곤 사건을 5공화국 사주로 돌리는 만화 그릴 수 있으면 5.18도 북한의 사주로 일어난 거라는 만화 그려도 되는 거냐고 항의도 있었고 구아바 자신도 지역드립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한다. 이야기 자체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 아동학대를 경험한 PD가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사회부조리에 눈을 뜨고 언론 자유 사수에 앞장선다는 내용인데, 거창하게 풀었던 이야기에 비해 주제의식은 좋지만 끝이 미약하였고 굳이 의문 사건도 아닌데[31] 지나치게 음모론적으로 풀고 나갔다는 지적[32]이 있었다. 아무래도 민감한 소재인 만큼 그런 듯.

2016년 소설가 김경욱개와 늑대의 시간라는 제목으로 소설화 하였다.

2017년 3월 나홍진이 사건을 영화화 한다는 소식이 있지만, 2년 전 작가와 계약을 했을 뿐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한다.


2018년 7월 5일 KBS2 <속보이는 TV 인사이드>에서 이 사건을 재조명했다. 당시 생존자,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와 재현 영상으로 구성했고 현재는 당시와 달라졌지만 당시 실제 장소를 찾아가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현재까지 외형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무기고[33]도 볼 수 있다.

웹툰 악의 혈통에서 매을리 마을회관 살인 사건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1년 11월 25일 방송분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뤘다. 당시 경찰의 대응이 워낙 뒷목 잡게 만드는 수준이었던 탓에, 이 대목을 언급하기 직전 장도연이 이야기 친구로 출연한 김동현에게 혈관은 괜찮냐고 물었을 정도.[34] 당시 우범곤의 살육을 목격한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가 방송 중반 및 엔딩 크레딧에 실리기도 했다. 또한 우범곤이 근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 본인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크든 작든 사고를 칠 여지가 있는 사람을 해임하거나 해서 조기에 걸러내지 않고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데 그쳤던 당시 경찰의 안이한 인사조치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35]

휴먼버그대학교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다. 그러나 최대호라는 가명으로 나온다.

의령군은 2022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위령비를 건립할 계획이다.

9. 같이 보기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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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범곤은 청소년기부터 폭력성을 드러냈으며 주폭질도 많이 했었고, 경찰 근무 당시에도 비정상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의학적으로 인격장애 및 정신질환자(분노조절장애 + 반사회성 인격장애 + 알콜중독)로 판단될 여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해병대 출신 무술 유단자로, 운동은 경찰 중에서도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으며 특히 사격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 경비단에서도 잠시 근무했다가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으나, 폭력성이 심각하여 정신적으로 명백히 문제가 있는 사람임에도 뛰어난 신체 능력이 있었기에 경찰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자세한 사항은 우범곤 문서 참조.[2]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도 우범곤의 술버릇에 대해 '술만 마시면 멍멍이가 된다'라고 에둘러 표현했다.[3] 101경비단 이전에 근무했던 부산의 파출소에서도 피의자들을 윽박지르거나 험하게 다루는 등 난폭한 모습을 보였다는 증언이 있다.[4] 그 와중에 동네 이웃 주민 하나가 우범곤을 말리다가 봉변을 당했고, 이에 이 사람의 아들이 지서로 간 우범곤을 쫓아가서 "위아래도 없느냐"라며 따졌다고 한다.[5] 재수없게도 그는 예비군 훈련을 위해 잠깐 마을에 들른 사람이었다.[6] 현 KT 의령지사. 1981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 설립 이후에도 우체국이 전화업무를 겸하는 경우가 있었다.[7] PSTN이 보편화 되기 전 자석식 전화는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를 교환원이 직접 수동으로 연결해 주어야 했다. 1980년대 초까지 한국은 가정용 유선전화의 보급도 원활하지 않았다.[8] 언론 기사에 따르면 이 주민은 교환원 덕분에 신고할 수 있었다는 걸 알고 슬퍼했다고.[9] 동거녀 전양은 생존했지만 전양의 가족을 살해했다.[10]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청정로3길 38. 사건 이후 철거되어 단층 슬레이트 건물이 새로 지어졌고, 그 건물에는 지역 보건진료소가 자리잡았다.[11] 이후 여러 방송 및 언론 매체에서는 이런 일련의 행동이 타인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 것이라는 분석을 많이 내놓았다.[12] 일부 매체에서는 한 문상객이 "실탄도 없는 총 갖고 뭐하냐"라며 시비를 걸며 도발하자 총기 난사를 시작한걸로 각색하기도 했다.[13] 이 집의 문상주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중 우범곤 때문에 어머니와 세 자녀, 어린 조카까지 모두 잃고 하루에 장례를 3번이나 치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 문상주는 언어장애인(당시는 주로 '벙어리'로 칭함)이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터라, 장례를 치르는 내내 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상주의 이런 안쓰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주민들이 대신 곡을 해주며 함께 오열했고,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도 특히 이 상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했을 정도였다.[14] 당시 아버지와 다른 형제는 잠을 자고 있었고 이 아이는 학교 숙제를 하느라 깨어 있었다. 그런데 불이 켜져 있던 이 집에 우범곤이 난입해서 잠을 자는 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발사하고 아이들까지 살해했던 것. 한편 이 가족의 어머니는 압곡리에서 반상회에 참석했다가 우범곤의 총기 난사에 휘말려 총알이 3발이나 스쳐간 상태로(당시 의사로부터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본인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가까스로 생존, 큰아들에게 업혀 집에 돌아왔다가 참혹한 집안의 모습을 보고 넋을 잃었다고 한다. 또한 운계리에서는 마을에 단 하나뿐이던 구멍가게에 들러서 여주인에게 태연하게 마을에 공비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사이다를 달라고 하더니, 사이다 한 병을 비우기가 무섭게 여주인과 아이 두 명을 포함한 일가족에게 총을 난사하여 모조리 죽여 버렸다.[15] 우범곤이 누군지 아는 사람도 꽤 많았고, 경찰 제복을 정상적으로 입고 온 상황이라 총을 가지고 왔는데도 간첩 때문에 그러는가 보다 해서 아무도 경계하지 않았다고 하며 오히려 환영을 했었다. 게다가 위에도 언급되었듯 우범곤은 무려 조의금까지 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술상에서 술을 받아 약간 먹다가 갑자기 이유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하여 시비를 걸고는 상주의 친척들과 연장자들이 "젊은사람이 상가에서 왜 욕질이냐"고 이를 비난하자, 그때부터 갑자기 총을 쏴서 있던 사람들을 다 마구 죽이는 이해할 수 없는 행각을 보인 것이다.[16] 이종백씨(상주의 이종사촌)의 증언에 따르면 총성에 놀라 기절했다가 아기 울음소리에 깨어날 때 우범곤이 "아직 안 죽은 게 있어?"라고 말하는 걸 들었고 그 직후 우범곤이 아기를 쏜 뒤 가버렸다고 한다. 이종백씨는 당시 첫 격발소리에 놀라 바로 기절해서 계속 쓰러져 있었고 당시 밤 산골의 야외라 잘 보이지 않는 바람에 다른 많은 사람을 죽이느라 정신없던 우범곤도 제대로 확인을 안해서 이미 자신에게 공격당해 죽은 줄 알고 공격하지 않은 걸로 추정된다.[17] 이상은 1960~80년대까지 대간첩/대테러 상황에서 경찰이 일반적으로 취하던 조치였다.[18]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제작진이 방송 준비를 하면서 경찰청에 질의를 했는데 경찰청 공식 답변은 56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건 이후 부상의 정도가 심각하여 사망한 사람의 수는 집계하지 못하였다.라고 추가 답신을 보내왔다고 한다. 당일 사망자 수만 세고 그 뒤의 사망자 수는 집계하지 않은 즉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종합하면 현장에서 사망한 56명+부상 악화로 숨진 6명이 더해지면서 희생자가 62명으로 집계된 것이다.[19] 상갓집에서 사살당한 그 아기다.[20] 이는 노르웨이 연쇄 테러에서도 마찬가지였다.[21] 저수지에서 놀다 물에 빠진 어린이를 바둑이라는 개가 구출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현장에 간 기자들이 자세한 취재를 한 결과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이야기이다.#[22] 서정화는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의 사돈이다. 즉 김승연의 장인이다.[23] 흔히 PK라 불리는 부울경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본거지였기 때문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부산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된 동부 경남에만 해당되는 얘기고, 의령군같이 농촌이 많은 북서부 경남은 신군부와 민주정의당의 지지세가 훨씬 더 높았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서부 경남은 동부 경남에 비해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굉장히 높게 나온다. 무엇보다도 전두환 대통령도 의령 위에 있는 합천군 출신이기도 하다.[24] 재판관이었던 대법관 중 한명이 바로 이회창이었다.[25]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26] 그리고 2011년 11월 6일 서프라이즈 방영분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서프라이즈에서는 한때의 화를 참지 못해 저지른 범행으로 축소하여 이야기하였다. 물론 원혼의 원 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걸로 서프라이즈보다 더 서프라이즈한 발언으로 확정. 차길진은 스포츠조선에 정기 연재를 하면서 김형욱 생존설이나 케네디 암살에는 외계인 음모가 있다라는 류의 이야기를 자주 올렸다. 그 증거라는 게 대부분 영혼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였으니 신빙성은 각자 생각해볼 것. 아니...생각하고 말고 할 게 있나. 게다가 마산 전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지대는 공산군이 강제징집을 한 동네지 국군이 뭔가 작전을 벌인 동네는 아니다. 점쟁이가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어설프게 주워듣고 썰을 풀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오히려 국군에 의해 죽었다면, 이런 소리도 나오지 말아야 한다. 공교롭게도 거창 신창면이 삼가현에서 떨어져, 거창으로 넘어간 곳이고, 궁류도 바로 옆 초계에서 떨어져, 의령으로 붙었다. 그리고, 그 합천 망신 시키는 출신자가 대통령을 할 때에 그것도 자기 조상 미화한다고, 신경쓰는 의령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다.[27] 하다못해 나중에 나온 웰컴 투 동막골이나 인사동 스캔들은 나름 개그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여기서는 그런 거 없다.[28] 빨간 마후라의 술집 마담, 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노 비구니 등.[29] 단 이건 입증하기 어려운 게 정권을 잡은 이후, 혹은 그전이라도 사실상 노태우 후계론은 내부 대세였고 올림픽 위원장으로 활약하여 이전부터 인지도가 높았으며 내무부 장관 재임 이후에는 4.13 호헌조치민주정의당 내 반발로 인해서 후계 자체가 위태로운 적도 있었다. 단순히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로 우범곤 사건을 조작했다고 하기에는 정황 증거 자체도 부족한 편.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오히려 노태우와 김옥숙이 박철언에게 무슨 일만 나면 사퇴해야 하는 내무부 장관에 오르길 꺼렸다고 묘사했다. 실제로 노태우는 내무부 장관에 오른 직후에 경찰들의 월급이 너무 박봉이라면서 경찰들의 처우 개선 문제를 꺼냈다가 우범곤 사건 옹호로 잘못 받아들여져 "나랏돈으로 살인마들을 지원하다니!"라는 극단적인 전국민적인 분노에 직면하고 목이 달아날 뻔하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부랴부랴 사과해야 했다.[30] 이건 오류이다. 1.21사태 항목을 보면 알듯이 김신조 사건 이후에 창설한 것이 전투경찰. 원래 목적은 시위진압도 아니었다.[31] 한국 전쟁이라든가 5.18 민주화운동, 혹은 군사정권 때 진짜 흑역사들을 주제로 삼는 게 나았고 단순히 경찰의 흑역사로 간주한 사건을 정권의 고의적 양민학살로 몰아갔던 것. 동일 논리면 지존파도 경찰의 음모임. 하지만 그런 굵직한 사건을 소재로 삼을 경우 논란이 불거지기에 네이버에서 연재 허가가 떨어질 리 없다. 그런데 음모론으로 몰아갈 일이 아닌 걸 음모론으로 모는 것도 어쩌면 아주 부적절한 결정이다.[32] 예컨대 작중 우범곤 수준으로 대량 학살을 감행했다면 죽는 순간까지 사람들과 함께 동귀어진을 하지 자살을 감행하진 않을 것이라는 말이 실려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츠야마 살인사건이 그런 예이다.[33] 사용하지 않는다.[34] 듣다가 혈압 올라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뜻. 또한 장도연은 이 질문 뒤에 경찰의 대응에 관해 정말로 듣다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동현은 방송 후반부에서 사건 희생자 명단을 보다가 상갓집에서 사살당했던 아기의 연령 란에 적힌 '1세'라는 나이를 보고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35] 즉 우범곤에 대한 징계가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게 아닌 경찰직 해임으로 이루어졌다면 우순경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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